1938년 10월 1일 이전에 체코 침공을 결정한 히틀러는 체임벌린 수상에게 300여명의 수데텐 독일인이 총살당했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수데텐은 합병되어야 한다고 단언하였다.(p763)... 9월 19일 영국과 프랑스 양국 정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제안을 체코 정부에 보내기로 합의하였다. 즉 독일어 사용자가 주민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은 독일에 할양하며 할양 후 새로운 국경을 체코 정부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이런 제안은 실로 체코의 독립 자체에 관계되는 것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만일 체코가 계속 저항한다면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다는 최후통첩을 9월 21일 새벽2시 15분에 체코 정부에 전달하였다. 체코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p764) <세계외교사> 中
히틀러의 나치독일은 1938년 비밀리에 재군비를 완료하고, 빠르게 제국을 확장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야심은 당시 독일인이 많이 거주하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 수데텐 지역의 할양을 요구하면서 노골적으로 드러냈지만, 이러한 독일의 무리한 요구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참혹한 전쟁을 피하고자 수데텐 지방의 할양을 체코 정부에게 압박했고, 이는 세계외교사에서 가장 큰 실패로 일컬어지는 뮌헨 협정로 이어지게 된다.
[사진] 뮌헨협정(출처 : https://www.britannica.com/event/Munich-Agreement)
뮌헨협정(Munich Agreement 1938년 9월 29일)은 히틀러가 고데스베르크에서 요구한 모든 것을 수용한 것이었다. 체임벌린과 달라디에는 이 뮌헨 협정으로 자신들이 체코를 구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히틀러는 영국과 프랑스가 체코의 운명을 자신에게 맡긴 것이라고 믿었다.(p768) <세계외교사> 中
영국과 프랑스의 수뇌는 독일이 수데텐 지방을 가져간 후에는 더이상 침략을 하지 않으리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가졌지만, 이후 독일은 1939년 체코와 폴란드, 1940년 노르웨이를 차례로 침략했고,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은 시작되었다. 영국의 처칠(Sir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874 ~ 1965)는 <제2차 세계대전 The Second World War>를 통해 당시 상황에 대해 아래와 같이 회고한다.
왜곡된 낙관주의의 물결이 1939년 3월 한 달 동안 영국 전역을 휩쓸었다. 독일의 강력한 압박에서 비롯된 체코슬로바키아의 긴장이 안팎으로 점점 더 고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뮌헨 협정을 지지하는 내각과 언론은 영국 국민을 끌고 들어간 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p218)... 1939년 3월 10일 히틀러는 뮌헨 협정의 결정에 의해서 방어선을 빼앗긴 채 쓰러지기 직전에 있는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프라하에 도착한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독일의 보호령으로 선포했고, 독일 제국에 합병시켰다.(p219) <제2차 세계 대전 上> 中
15일, 체임벌린은 하원에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군의 무력에 의한 보헤미아 점령은 오늘 아침 6시에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당연히 지금 일어난 사태를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유로 우리의 진로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 세계 모든 사람들의 염원은 여전히 평화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p220) <제2차 세계 대전 上> 中
수데텐을 독일에게 넘겨주고 독일이 침략의사를 포기를 바랐던 영국과 프랑스는 결국 체코까지 잃고 나서야 자신들의 판단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침략행위에 대한 규탄이 전부였다. 반면, 그들의 그릇된 판단에 따라 지불한 대가는 컸다.
체코의 점령은 오스트리아/수데텐의 병합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체코는 독일인이 거주한 지역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그것이 적나라한 침략행위라는 것은 만인에게 분명하였다. 독일인의 거주 지역만을 목적으로 한다는 히틀러의 공언이 허위임이 밝혀진 것이다. 영국은 1939년 3월에 이르러서야 그동안 추진했던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이 오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p771) <세계외교사> 中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81년 전 일어난 역사적 사건(뮌헨협정)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약 2개월 동안 우리의 모든 관심을 집어삼킨 '조 국 법무부 장관 임명'. 대통령의 정당한 지명 후에도 검찰, 언론 그리고 자유한국당의 공격이 드센 상황이다. 비록 9월 28일 촛불집회 이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선(戰線)이 명확해졌다고 보는 편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 시점에서 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이 조국 사퇴를 주장하는 것은 그렇다고 하겠지만, 자유한국당, 검찰과 언론에 반대한다면서 이들과 같은 주장을 펴는 이들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조 국이 사퇴한다면, 지금의 혼란이 가라앉을 수 있을까. 그런 낙관적인 생각은 수데텐을 히틀러에게 넘겨주면 평화가 온다고 믿은 체임벌린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건으로 공세수위를 높여 내년 4월 총선에서 승기를 잡으려 흠집 내기에 여념이 없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이번 '조 국 법무부장관'과 관련한 일련의 일들은 박근혜 탄핵 이후 사회모순과 부조리와의 전쟁에서 주력회전(主力會戰)으로 판단된다.
주력회전이란 주력의 싸움이며 부수 목적을 추구하는 중요하지 않은 싸움이 아니다. 주력회전은 목적을 달성하기 곤란하다는 사실을 간파하는 순간 조기에 포기하고 마는 단순한 시도가 아니라, 진정한 승리를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싸움이다.(p203)... 주력회전은 응축된 전쟁으로서 전체 전쟁 또는 전역의 중심으로 간주될 수 있다. 태양광선이 오목거울의 초점에 집중되어 완전한 형상과 최고의 불꽃을 형성하듯이 전쟁의 일체의 힘과 요소들이 주력회전에 집중되어야 통합 효과가 최고도로 발휘된다.(p215) <전쟁론> 中
클라우제비츠(Carl Phillip Gottlieb von Clausewitz, 1780 ~ 1831)가 <전쟁론 Vom Kriege>에서 강조한 주력회전의 중요성을 생각해 본다면, 이제 우리의 활은 시위를 떠났고, 여기서 물러서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