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 리쩌허우와의 담화록
리쩌허우 지음, 류쉬위안 엮음, 이유진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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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데거 이후 이제 중국 철학이 등장해서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비록, 하이데거가 노자 老子를 좋아하긴 했으나 노자를 억지로 갖다 붙여서 비교하며 논의해서는 안 됩니다. 공자, 그러니까 중국의 전통으로 하이데거를 소화해야 해요.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지 않나요?(p21)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리쩌허우(李澤厚, 1930 ~ )는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該中國哲學登場了>에서 기존의 서양 철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를 대신한 새로운 중국 철학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 본체 情 本體'가 자리한다.


 인성, 정감, 우연은, 내가 기대하는 철학의 운명이라는 주제다. 이것은 장차 21세기에 시적으로 전개될 것이다.(p112)... 어떻게 과거를 슬퍼하고 현재를 아낄 것인가, 어떻게 욕 慾을 정 情으로 이끌어 들여서 욕을 정으로 만들 것인가, 그건 바로 포스트모던에서 중국 철학으로 전환하여 운명을 선택하고 내일을 결단하는 최적의 경로에요. 그건 바로 제가 인류학 역사 본체론에서 말한 '정감 - 이성 구조(문화 - 심리 구조)' 이며 '정 본체'입니다.(p114)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저자는 도구의 사용을 통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인류만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파악한다. 도구의 사용이 인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역사(歷史)가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문자(文字)를 통해 역사의 교훈이 후대에 남게 된다. 이러한 역사 또는 경험의 결과로 철학이 만들어졌다고 바라보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중국 문자란 대체 어떤 개념일까요? 그건 바로 역사에요. 문자는 역사와 경험을 대표합니다. 문자는 역사 경험을 총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요.(p141)... 하이데거가 강조했던 건데 바로 명명 命名이에요. 제 생각에 이름 있음과 명명은 일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 근원을 찾자면, 매듭을 지어 일을 기록하던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최조의 역사이지요.(p142)... 명명은 중요합니다. 그건 역사의 근원이에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중국식 사유를 총괄해낸다면 바로, 역사로 나아가고 경험을 중시하는 겁니다.(p143)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정본체 - 정감은 운명, 인성, 우연과 함께 제기한 것이지요. 일단 그 셋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p50)... 우연 - 역사는 우연으로 가득합니다... 각종 사건에 있어서 우연과 필연의 관계와 비중을 연구하는 것이 역사학의 중심점이라고 했답니다.(p51)... 인성 - 저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인류가 '보편 필연'적으로 도구를 사용하고 제작하는 데 관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역점을 두고 연구한 것은, 도구의 사용과 도구의 제작이 인류의 심리 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구의 사용과 제작으로 인해 형성된 문화-심리 구조, 즉 인성 문제이자 '누적 - 침전 沈澱'에 대한 연구에요. 누적 - 침전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주는 심리 형식이지요.(p53)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철학이 경험의 결과라면, 중국의 철학은 다른 지역의 철학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저자는 중국 철학의 특징으로 반(反) 이분법(二分法) 요소가 그 안에 있음을 강조한다.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성을 구분한 서양 사유와는 달리 중국은 이(理)와 정(情)이 어울어져 도(道)와 예(禮)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서양 철학이 맞닥뜨린 철학의 위기 상황을 겪지 않을 수 있으며 때문에 철학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 된다.


 중국의 '무사 巫史 전통'으로 인해 중국 문화 속의 정감과 이성, 종교와 과학은 뚜렷이 나뉘지 않았던 겁니다. 중국에서는 공자든 맹자든, 한대 漢代의 천일합일이든, 송명이학 宋明理學의 심성 수양이든, 일종의 신앙이고 감성적인 거에요. 동시에 이성적 추리와 논증이기도 하고요. 신앙과 정감이 이성적 사변과 한데 섞여 있는 거죠.(p23)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중국 전통은 이 理와 욕 慾의 관계를 조정하고 구축하기 위한 것이지요. 즉 정이 욕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정을 욕과는 다르게 만드는 것이랍니다. 정에는 이가 있긴 하지만 이와 같은 건 아니지요. 최대한으로 이를 정과 아울러서, 정으로 욕을 변화시켜 '도'와 '예'가 되도록 하는 거랍니다.(p56)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도 道'는 지극히 커다란 보편성을 가지고 있답니다. '도'가 바로 역사 본체론의 제1조 條랍니다. '도'는 인류의 생존과 관계가 있지요... '도'는 사실 '미 美'이기도 하답니다. '도'가 각종 형식감을 창조하거든요. 이런 '감 感'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활동 자체가 외재하는 천지자연과 하나로 일치되는 느낌, 체험, 파악, 인식이랍니다. 그 뒤에야 그것이 비로소 대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외부세계를 규범에 맞도록 만드는, 인간의 물질적 힘과 기예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생활의 각 방면으로 확장되는 거에요.(p146)... '도'는 경험의 척도이고, 경험은 실천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그것은 경험의 산물이죠. 역사의 긴 강을 지나면서 실천을 통해 세워진 겁니다.(p147)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가장 근본적인 광의의 형이상학이 아직 남아 있지요. 광의의 형이상학은 인류의 마음이 영원히 추구하는 것이자 인생의 의이, 삶의 가치, 우주의 근원에 대한 이해이며 질문이에요. 또한 정감의 추구이기도 하지요. 하이데거가 '철학의 종말'을 제기하면서 말한 것은 그리스 철학을 표본으로 삼은 거였어요. 저는 그것을 '협의'의 형이상학의 종결이라고 부르겠습니다.(p17)... 협의의 형이상학은 중국에 없어요. 하지만 중국에는 광의의 형이상학이 있답니다.(p24)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이와 같은 역사와 사상이 만들어지는 흐름과 함께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저자는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를 통해 푸코(Michel Foucault, 1926 ~ 1984)와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 ~ 2004)의 해체주의를 이을 새로운 철학이 바로 중국 철학임을 말한다. 본문에서 데리다가 중국에는 철학이 없다고 말한 사실이 언급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참으로 짓궂은 반론이라 생각된다.


 제가 지금 제기하는 정 본체, 다른 말로 인류학 역사 본체론은 세계의 시각이고 인류의 시각이라는 겁니다. 중국의 전통을 기초로 세계를 보는 것이지요. "인류의 시각, 중국의 관점."(p138)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그리움, 아낌, 감상 感傷, 깨달음으로 공허하고도 해결할 수 없는 '두려움'과 '번민'을 대체하고, 두려움과 번민에서 야기된 포스트모던의 '파편'과 '순간'을 대체하자는 거죠. 인간 자신의 실존이 우주와 협동하고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이 존재하는 곳이에요. 하이데거의 디자인 Dasein 은  '현존재'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해석학에 따른다면 바로 '살아감'이지요. 그리고 제가 말하는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고요.(p22)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에서 저자가 그려내는 새로운 시대 철학의 모습은 중국 철학의 바탕 위에 마르크스의 유물론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이 결합된 모습이다. 이러한 분석도구를 사용하여 역사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철학을 풍부히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새로운 시대의 중국 철학 모습이다.


 "심리가 본체가 된다." 나는 이것이 하이데거 철학의 주요 공헌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본체론'에서 두 개의 본체를 제기했는데, 앞의 본체(도구 본체)는 마르크스를 계승하고 뒤의 본체(심리 본체)는 하이데거를 계승했다. 그런데 이것 모두 수정과 '발전'을 더했다. 중국 전통과 결합하여(p164)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대담 형식으로 구성된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는 이처럼 중국 철학 대가인 리쩌허우의 사상을 정리하여 제시한다. 또한, 저자의 대표작인 <미의 역정><중국고대사상사론> <중국근대사상사론> <중국현대사상사론> 등에 담긴 자신의 의도와 생각도 다뤄지기에, 리쩌허우 저서의 입문서로서의 기능도 갖는 부분은 책이 가진 뚜렷한 장점이다.


 반면, 중국의 역사 경험에서 비롯된 중국 사상을 인류 보편적인 사상으로 해석하는 저자의 주장에는 쉽게 찬성하기 어렵다. 중국과 다른 문명권에 속하는 이들에게도 같은 역사 인식과 철학이 공유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유럽 문명에 속하는 이들은 중국 철학보다는 오히려 불교(佛敎) 사상에 더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실제로, E. F. 슈마허 (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 ~ 1977)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을 통해 '불교 경제학'을 주장했으며, 이러한 사상은 환경 생태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 등으로 뒷받침된다. 또한,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이들은 저자의 사상에서 대국굴기(大國崛起)를 꿈꾸는 중국의 모습을 발견하기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여겨진다. 이런 면에서 저자의 사상은 인류 보편 사상이라기 보다 현대 중국 사회 사상이라 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 엄밀하게는 중국 내부이 변화하는 정치 흐름은 담아내지 못한다는 면에서는 이마저도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 생각된다. 이 부분은 다소 아쉽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얇은 대담집을 통해 대학자의 사상 전반을 훑어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책만이 가진 큰 장점이라 생각하며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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