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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철학사전 ㅣ 민음 생각 3
볼테르 지음, 사이에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평점 :
볼테르(Voltaire, Francois-Marie Arouet,1694 ~ 1778)의 <불온한 철학사전 Dictionnaire philosophique portatif>은 백과사전처럼 구성된 책으로 다양한 주제의 짧은 글을 통해 계몽주의자인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 중 이전 시기와 비교해 특징적인 몇 개의 주제(자연, 인간, 사회, 신/종교)를 통해 볼테르의 생각을 들여다 보도록 하자.
[그림] 볼테르(사진 출처 : 위키백과)
1. 자연 : 인간에게 본성을 준 존재
볼테르에게 자연은 인간에게 본성(本性)을 부여한 존재다. <불온한 철학사전>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성격, 운명 등은 인간의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 자신에 의해 좌우될 수 없는 외재 요인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들 요인은 자연 또는 절대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불변의 법칙(法則)에 의해 작동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법 Lois 자연이 인간을 만들 때 몇 가지 본성을 부여했다. 자신의 보존을 위한 자기애, 타인의 보존을 위한 자비심, 다른 동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사랑, 그리고 어떤 동물보다도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재능이 그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우리 몫을 준 다음 이렇게 말했다. "알아서 해!"(p416) <불온한 철학사전> 中
성격 Caractere 성격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으로 형성된다. 그런데 감정도 생각도 자신이 자신에게 주는 게 아님이 충분히 입증됐다. 따라서 우리의 성격은 우리에게 달린 것일 수 없다.(p156) <불온한 철학사전> 中
운명 Destin 세계는 그 자체의 본성, 그 물리법칙에 따라 존속하는 것일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절대자가 자신의 지고한 법칙에 의거해 창조했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세계에 내재하는 법칙은 불변이다. 어느 경우이든 세계에 내재하는 법칙은 불변이다.(p212) <불온한 철학사전> 中
2. 인간 : 이성을 가진 피조물
자연으로부터 본성을 부여받은 것은 인간만은 아니다. 다른 동식물 또한 자연으로부터 본성을 부여받아 만들어졌는데, 이들과 인간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볼테르는 그것을 스스로 완성해 가는 재능, 이성(理性)이라고 파악했다.
사랑 Amour 짝짓기를 할 때 동물은 대부분 오로지 한 가지 감각으로만 쾌락을 맛본다. 그리고 욕구가 충족되는 순간 모든 것이 사그라진다. 인간을 제외하면 그 어떤 동물도 포옹을 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이 허락한 것을 누리며 스스로 완성해 나갈 수 있는 재능을 부여받았다. 바로 그런 재능으로 인간은 사랑을 완성했다.(p44) <불온한 철학사전> 中
전쟁 Guerre 모든 동물은 끊임없이 전쟁 중이다. 모든 종이 저마다 다른 종의 포식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에게 이성을 주셨으니, 이 이성은 인간이 동물을 흉내 내는 수준으로 타락하지 말라고 경고해 주어야 마땅하다. 자연은 인간에게 동족을 죽일 무기도, 그들의 피를 빨려는 본능도 부여하지 않았으니 더욱 그러하다.(p331) <불온한 철학사전> 中
이 땅을 혐오와 비열로 더럽힌 그 증오스러운 재앙을 보면 자연이 스스로 만든 작품을 경멸하고, 스스로의 계획을 부정하며, 스스로의 의도에 반대되는 일은 하지 않느냐고 비난하게 된다. 이것이 정말 가능한 최상의 세상일까?(p45) <불온한 철학사전> 中
저자는 비록 다른 생물들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간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곳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정말 악인은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한다. 적은 수의 악인이 재앙을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가장 큰 악은 동족간에 서로 죽이는 행위다. 인간이 자신의 권한을 넘는 행위인 동족을 죽이는 행위가 볼테르 관점에서는 가장 나쁜 행위다.
악인 Mechant 결과적으로 세상에는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사악한 존재가 많지 않다. 물론 여전히 나쁜 사람이 많고, 여전히 불행한 일이 일어나고 끔찍한 범죄가 저질러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불평하고 과장하면서 얻는 기쁨이 너무 큰 나머지 자그만 상처에도 세상에 피가 넘쳐흐른다고 비명을 지른다.(p427) <불온한 철학사전> 中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악(惡)은 인간이 서로를 죽이는 것이다. 우리가 죽은 이후에 살을 구워 먹든 양초를 만들든 그것은 큰 차이가 없다. 어차피 선량한 인간은 자기가 죽은 이후에 무언가에 유용하게 쓰인다는 사실에 화를 낼 리 없기 때문이다.(p59) <불온한 철학사전> 中
<불온한 철학사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내용 연결을 위해 몇몇 내용을 첨가해본다. 사회는 인간이 이러한 악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이들을 통치할 권력이 필요하며 그 결과로 여러 형태의 정체(政體 Etatas, Gouvernements)가 수립되었다는 내용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권한이 왕권신수설로 연결된다면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의 이론을, 사회계약론으로 연결된다면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 ~ 1778)사상이 가능할 것이다. 이 부분은 다음에 다시 정리하도록 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자.
3. 사회
볼테르는 <불온한 철학사전>의 여러 곳에서 정체에 대해 언급한다. 여러 체제의 정체가 있지만, 저자는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 이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처럼 최선의 정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처지에 따라 다른 정체를 원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또한, 권력자와 민중의 다툼은 항상 발생하지만, 결국은 민중의 복속으로 끝난다는 말을 통해 소수에 의한 다수 지배 현상을 설명한다.
민주 정치 Democratie 민주 정치는 아주 작은 나라이면서 또한 지정학적 위치가 좋을 경우에만 적합한 정치체제인 것 같다... 그렇다면 공화정이 군주정보다 더 좋은 정치체제인가? 이것은 늘 되풀이되는 질문이다. 이 논쟁의 끝은 매번 동일한데, 즉 인간을 통치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p210) <불온한 철학사전> 中
조국, 고향 Patrie 당신의 조국이 왕정 국가인 것과 공화정 국가인 것 중 어느 쪽이 낫겠는가? 해법을 부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모두 귀족 정치를 선호한다. 서민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민주 정치를 원한다. 왕정을 선호하는 것은 왕들뿐이다... 지상의 거의 모든 곳이 군주들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것은 인간이 자치를 할 만한 그릇인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p451) <불온한 철학사전> 中
평등 Egalite 가난한 자들 모두가 절대적으로 불행한 것은 아니다. 그들 중 대다수는 태어날 때부터 가난한 상태로 태어나는데, 끊임없는 노동에 쫓기다 보면 자신들의 처지를 깊이 느낄 여유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처지를 인식하는 순간 계층 간에 싸움이 일어난다... 이런 싸움들은 길든 짧든 결국 모두 민중의 복속으로 결말이 난다. 왜냐하면 강자들에게는 금전이 있고, 이 금전이야말로 한 나라 안에서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p227) ... 인간이라는 종은, 본래의 성향 그대로라면,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상태로 노동력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 무한한 수효의 인간이 있지 않은 한 존속할 수 없다.(p228) <불온한 철학사전> 中
4. 신/종교
<불온한 철학사전>에서 볼테르는 종교(宗敎)에 대해 매우 비판한다. 종교가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었다는 말,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내용, 이교도에 대한 기독교의 배타성을 지적하는 저자의 글을 통해 종교(특히 기독교)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종교재판 Inquisition 종교재판은 교황과 성직자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위선의 왕국을 공고히하는, 매우 경이롭고 매우 기독교적인 발명품이다.(p383)... 종교재판은 우리시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박해를 견뎌 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신성함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괴물은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p388) <불온한 철학사전> 中
기도 Piere 한 마디로, 우리가 신에게 기도하는 이유는 오로지 우리가 우리 모습대로 신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신을 마치 도발하거나 달래거나 할 수 있는 무슨 파샤나 술탄인 양 취급한다. 요컨대, 모든 백성들은 신에게 기도한다. 현자들은 체념하고 신에게 복종한다.(p482) <불온한 철학사전> 中
종교 Religion 한마디로 그리스도교 아닌 이교도의 종교는 거의 사람 피를 흘리지 않았는데 정작 우리의 종교는 세상을 피로 적시다시피 한 것이다. 우리 종교는 아마도 유일하게 훌륭한 종교이고 유일하게 진실한 종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종교의 방편을 쓰면서 너무도 많은 악을 저질렀기에 다른 종교에 대해 얘기할 때는 겸손해야 한다.(p497) <불온한 철학사전> 中
이처럼 <불온한 철학사전>을 통해 우리는 종교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을 바라보고 새로운 자세로 인간을 탐구하려는 계몽주의(啓蒙主義 Lumieres) 지식인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우리가 과학(科學 science)라 부르는 방법을 활용해 인간과 자연을 알아가고자 노력한 계몽주의자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영혼 Ame 지적 능력을 갖춘 영혼은 정신일까, 물질일까?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 창조되었을까, 아니면 무(無) 속에 있다가 우리가 태어날 때 같이 나올까? 이 땅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영혼은 우리가 사라진 이후에도 영원히 살아갈까? 전부 훌륭해 보이는 질문들이다. 하지만 이 질문들은 모두 맹인이 다른 맹인에게 빛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p27) <불온한 철학사전> 中
그렇지만, <불온한 철학사전>에서 이러한 계몽주의의 새로운 흐름과 동시에 우리는 한계도 확인할 수 있다. 영혼과 같이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 아직은 종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18세기 당대 지식인의 인식과 한계를 느끼게 된다.
당신이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영혼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초자연적인 계시의 도움 없이 당신 혼자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당신 안에 당신이 알지 못하는 능력이 있어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p36)... 그대의 미약한 이성만으로는 또 다른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신이 우리에게 생각하는 능력을 주셨고, 나머지도 모두 마찬가지다. 신이 그 섭리를 통해 우리에게 비물질적인 영원한 영혼이 있음을 알게 하신다면 모를까, 우리 스스로 그 증거를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다.(p37) <불온한 철학사전> 中
<불온한 철학사전>은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에세이(essay) 형식으로 쓴 글이다. 책 곳곳에 나타난 저자의 재치와 유머는 자칫 무겁게 나갈 수 있는 책의 무게를 덜어준다. 그러면서도,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인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一讀)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