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유강은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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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지성주의가 우리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감정을 사람들에게 불러넣은 복음주의 신앙에서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반지성주의가 정치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평등을 향한 우리의 열정과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반지성주의가 교육계에서 막강한 세력이 된 것은 교육에 관한 우리의 신념이 복음주의에 입각한 평등주의였다는 사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가능한 지성에 의한 수술이라고 할 만한 끈질기고 섬세한 방법으로 선의의 충동에 기생하는 반지성주의를 잘라내야 한다.(p47) <미국의 반지성주의> 中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 1916 ~ 1970)는 <미국의 반지성주의 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에서 미국 사회에 만연한 반(反)지성주의의 뿌리를 밝히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 건국 초기의 분위기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미국 독립선언서(Declaration of Independence) 에 담긴 생존, 자유, 행복 추구의 사상이 점차 희미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 귀족 지식인 계급에 의한 건국과 이들의 몰락


 저자에 따르면 미국 건국 당시 미국 사상에 큰 영향을 준 두 집단 -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 ~ 1790),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 ~ 1826) 등 건국의 아버지와 청교도 성직자 계급 - 에 의한 지배는 내부 분열(分裂), 대중민주주의 확산과 산업화(産業化)등의 사회변화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미국사의 초기에는 두 개의 지식인 집단이 영향력이 막강한 사회적 권력을 행사하는 데 관여하거나 책임을 도맡았다. 청교도 성직자들과 건국의 아버지들이다. 다만 자신들의 결함이나 어찌할 수 없는 역사적 변화 때문에 두 집단 모두 나중에는 우위를 상실했다.(p544)<미국의 반지성주의> 中


 시간이 흐르면서 귀족적인 엘리트 집단의 지배 대신 대중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았지만, 정치에서 지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쇠퇴한 것을 민주주의 운동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당파 분열이 극심해 지면서 엘리트 집단은 몰락하기 시작했고 정치 윤리도 존중하지 않게 되었다. 훌륭한 인격과 용기로 미국 혁명을 주도하고 탁월한 통찰력과 기량으로 1787 ~ 88년에 새로운 정부를 수립했던 이 사람들이 1796년에는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철저히 분열되고, 프랑스 혁명의 여파에 따른 의견 충돌까지 겹치면서 히스테릭하게 서로 으르렁대게 된 것이다.(P207) <미국의 반지성주의> 中


2. 대중민주주의 확산과 기업 문화의 대두


 이들을 대신한 것은 민중(民衆)이었다. 몰락한 귀족 지식인 계급과는 반대로 대중민주주의가 확산되면서 미국 민중의 지식 수준은 높아졌고, 삶의 지혜가 학문의 지식보다 강조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또한 종교적으로는 성직자들의 권위가 추락하였고, 이들을 대신하여 복음주의가 민중에 퍼지게 되었다. 여기에, 산업화로 인해 기업들의 산업 인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사회적으로 초등교육에 대한 필요가 높아져 가면서 일반 민중 의식은 초등 교육 중심으로 종교적으로는 복음주의와 함께 확산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분위기의 문제점은 바로 지식에 대한 혐오이며, 남성 위주 분위기 형성이었다. 후대에 말보로 맨(Marlboro Man)으로 대표되는 미국 남성의 이미지는 이때부터 만들어지게 되었다.


[사진] Marlboro Man(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91831279878083075/)


 민중민주주의가 힘과 자신감을 키워감에 따라, 직관력을 타고난 민중의 지헤는 지식 계급이나 자산 계급의 교양 있고 지나치게 세련되고 자기중심적인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일반적인 믿음이 더욱 강해졌다. 복음주의자들이 마음의 지혜나 하느님과의 직접 교섭을 중시하고 학문으로서의 종교나 형식적으로 제도화된 성직자 집단을 거부한 것처럼, 평등주의 정치를 주창하는 이들도 보통사람의 타고난 현실적 감각과 진리와의 직접 대면을 중시하고 훈련된 지도자들을 배제시키자고 제안했다.(p219) <미국의 반지성주의> 中


 복음주의와 원시주의가 미국인의 의식의 뿌리에 반지성주의를 심어놓는 데 일조했다면, 기업 사회는 반지성주의가 미국적 사고의 전면에 계속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미국적 삶의 민주적, 능률적인 성격에는 항상 행동하고 결정하는 생활이 수반되었다. 대범하게 생각하는 습관, 신속한 결정, 즉각적인 기회 포착 등이 장려되었다 - 그러나 이 모든 활동이 사고에서의 신중함이나 치밀함, 정확함과 어울리지는 않는다.(p84) <미국의 반지성주의> 中


3. 초등 교육 중심의 정책


 그 결과 미국의 교육은 고등 교육 중심이 아닌 초등 교육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제한된 예산 하에서 전국에서 빠른 시기에 초등 교육을 수행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과제였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교육은 자연스럽게 질(質)이 아닌 양(量)에 치중한 성장을 하였다. 그 결과 교육자는 저임금의 여성 인력으로 채워지게 되었고, 이는 교육과 교양을 경시하는 미국 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윌리엄 매닝 William Manning이 생각하는 교육론은 일반인들도 큰돈 들이지 않고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고등교육은 예전처럼 오로지 초등교육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즉 보통학교 common school에 저임금의 교사들을 보내는 방향으로 체계화해나가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일반교양을 지닌 값싼 노동력을 배출하는 쪽으로 고등교육의 기능을 한정하자고 제안했다. 수준 높은 학문에는 장려할 만한 본질적인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p217) <미국의 반지성주의> 中


 모든 사람이 보통학교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고, 남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교육시키려면 마땅히 고도로 훈련된 교사들을 공급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데, 미국에는 그에 필요한 능력이나 의지가 없었다. 언제까지고 값싼 교사만을 찾았다. 학교 교사는 공무원으로 여겨졌고, 공무원의 급여는 지나치게 높아서는 안 된다는 사고가 미국의 평등주의 철학에 있었기 때문이다.(p437) <미국의 반지성주의> 中


 교육이 여성의 직업으로 여겨지는 미국에서는 교직이 정당한 남성의 일이라는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 때문에 미국에서 교육과 문화는 여성의 일이라는 남성적 신념이 강화되었다.(p438) <미국의 반지성주의> 中


4. 대중과 분리된 지식인


 19세기 미국 민중들이 반지성의 길을 걸었다면, 미국 지식인들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 19세기 초반 미국의 급격한 사회 경제 변화는 젠틀맨(Gentle man)계급을 낳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이들은 문화 예술을 후원하는 긍정적 역할과 함께 미국 지식인들을 현실참여로부터 배제시키는 부정적 역할도 함께 수행하였고, 이후 미국 지식인들은 미국 사회 주류로부터 '소외' 당하게 되었다. 

 

 1820년 무렵부터 기존의 공화주의적 질서는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의해 급속하게 무너졌다. 평신도들이나 복음주의자들은 이미 기성 성직자들의 권위를 떨어뜨린 상태였다. 이제는 새로운 정치 스타일을 지닌 새로운 유형의 민주적 지도자가 상인-전문직 계급으로부터 정치적 지도력을 낚아챌 차례였다... 그 결과 상당한 부와 여가, 교양을 지녔지만 이렇다 할 권력이나 영향력은 가지지 못한 젠틀맨 계급이 남았다. (p545) <미국의 반지성주의> 中


 건국의 아버지들의 문화를 이어받은 것을 나는 머그웜프 문화 mugwump culture라고  지칭하려 한다. 이 계급은 19세기 내내 독립적이고 세련된 미국 사상이 표출되도록 하는 주된 수용자 노릇을 했다... 18세기 공화주의 유형의 지적 미덕은 머그웜프 환경에서 점차 약해져 사라지고 말았다. 그 주된 원인은 대개 머그웜프 사상가들이 이런 미덕을 현실의 경험과 밀접하고도 유기적으로 관련지을 기회를 빼앗긴 데 있었다.(p546) <미국의 반지성주의> 中


 대다수 미국인들과 달리, 이 계급 사람들은 전통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전통은 힘의 원천이나 출발점이 아니라 맹목적인 숭배의 대상이었다.(p547)... 젠틀맨 계급은 여러 세대에 걸친 비판을 통해 작가들로 하여금 "세상 위에 따로 떨어져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식의 사회 감각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줄곧 노력했다. 그 결과, 청교도들이 가지고 있던 강렬한 확신은 사라졌다.(p549) <미국의 반지성주의> 中


5. 소외된 지식인의 서로 다른 선택


 19세기 말 이후 지식인들의 현실참여는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지만 지식인과 권력과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권력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지식인들은 권력에 대한 혐오를, 권력 참여를 선택한 지식인은 오히려 반지성주의에 선두에 서서 자신의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길을 가게 되었다.


 지식인들은 수효와 영향력를 증대시켜 좀더 조직적으로 미국 사회와 각종 기관, 시장 등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스스로의 소외에 대해 점점 자의식 과잉이 된 것은 19세기 말의 일이었다... 머그웜프 시절의 특수한 소외 상황은 이 세대의 전위적인 사람들의 소외와는 전혀 달랐지만, 양측에 공통되는 소외감이나 불만, 실패, 비탄에 대한 의식이 정신적 유대를 만들어냈다. 적어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민주적인" 지삭인도 귀족적인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녹아들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p558) <미국의 반지성주의> 中


 권력과의 결합을 완전히 포기한 지식인은 자신의 무력한 입장이 모종의 계몽에 유용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이런 지식인이 권력에 접근하고 권력과 관계되는 문제에 관여하다보면 다른 형태의 계몽이 가져다 줄 가능성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권력과 결합된 지식인은 직접적으로 지식인의 공동체의 사고에 따르는 형태로 권력을 행사하려고 한다.(p586)... 미국의 지식인들은 오랫동안 권력의 자리로부터 차단되고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에 놓여왔다. 그래서 그들은 권력과의 갑작스러운 결합에 눈이 부신 나머지 지적 분별력을 상실할 위험이 상존한다.(p587) <미국의 반지성주의> 中


  저자는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미국 건국 초기 '건국의 아버지들'과 '청교도 정신'이 내부 분열과 외부 변화로 인해 사라져 버렸고, 이를 대신한 민중민주주의는 초등 교육 중심의 교육 제도 영향을 받아 반지성주의로 흘렀음을 지적한다. 반면, 건전한 지식인들은 일반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반면, 복음주의 등 극단적인 움직임이 미국 사회를 움직이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미국의 반지성주의 성향은 바뀌지 않은 듯 하다. 대표적으로 2012년 '교과서 진화론 삭제 사건' 등은 이러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여겨지며,  노엄 촘스키(Avram Noam Chomsky, 1928 ~ )와 같은 지식인들의 사회 비판 목소리는 일반 대중에게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1960년대에 씌여진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지금도 유효한 분석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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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 1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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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 10: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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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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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 1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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