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 가공을 가급적 피하고 자연 상태의 재료를 그대로 사용하려는 한국 전통 건축의 주요 특징을 잘 나타낸다.(p54)... 한국 전통 건축의 기둥에서 드러나는 비가공성의 매력은 기본적으로 나무를 재료로 사용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이에 반해 돌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서양 건축의 기둥은 또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p55)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 中


 임석재 교수의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는 비교건축학의 입장에서 동서양 건축을 비교한 교양 건축서다. 건물 구성 요소, 건축의 구성 원리, 건물의 감상법으로 구성된 책은 저자의 상세한 설명을 제공하여 독자들에게 많은 사실을 전달한다. 많은 유익한 내용음 담고 있는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에서 잠시 생각이 머무를 대목은 아래의 문단이었다.


[사진] 수덕사 대웅전(출처 : 불교신문)


 수덕사 대웅전의 의인화는 여인의 은근한 자태를 연상시키는 고도의 은유작용으로 해석된다. 이에 반해 칼라트라바 Santiago Calatrava의 리옹 공항 청사 Lyon Airport Station의 의인화는 인체의 이동과 같은 역동성에 대한 직설화법으로 제시된다.(p107)... 이러한 차이는 서양 문화가 동 動적인 특징을, 반면에 한국 문화가 정 靜적인 특징을 갖는 것으로 대비되는 이분법의 연장선상에 놓인다.(p108)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 中


[사진] Lyon International Airport(출처 : https://www.chamonet.com/airports/aeroport-lyon-st-exupery-23522)


 서양 교회의 건축적 여정은 한국 전통 건축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한국 전통 건축처럼 숨겼다 보였다 하는 은근함 대신 목표물을 확실하게 설정하여 강조한다... 서양 교회의 건축적 여정에서는 긴장감의 연속적 상승에 의해 종교적 강도가 일직선으로 높아지는 역동감을 경험할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특성을 구별하는 정 靜과 동 動의 개념이 이 주제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된다.(p232)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 中


 동적이면서 인위적인 서양 문화, 정적이면서 자연 중심의 우리 문화. 이는 책의 전반에서 두 문화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입장이며, 반복적으로 설명되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서양 문화를 동적인 문화로, 한국(동양) 문화를 정적인 문화로 단정짓는 저자의 시각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고딕 양식 건축물은 유럽 문명이 이룬 영광스런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고딕 양식은 그 시대의 기술을 총동원해서 만들어 낸 석조 천장과, 탑과, 첨탑 속에서 사람들이 신의 얼굴에 닿아 우리의 일상 생활을 천국으로 이끌려고 했던 시도였다.(P53)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건축의 역사> 中


 서양 교회의 대표적인 건축 양식인 고딕 양식(Gothic architecture)은 간략하게 중세 철학인 스콜라(Scholar) 철학과 기술이 결합되어 완전무결한 신(神)의 세계를 지향하는 하나의 표현으로 설명된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고딕건축이 바라보는시공간이 없는 완전무결한 세계야말로 정(靜)적인 세계이며, 이를 추구한 서양 문명이야말로 정(靜)의 문화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불완전한 현세에서 구현된 성당 건축과 여기에 나타난 동(動)적인 부분의 끝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서양 문화= 동적인 문화'라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의 지붕은 긴장과 이완이라는 상반된 느낌을 동시에 가지면서 변화무쌍한 모습을 연출해낸다. 이 같은 특징은 한 가지로 고정된 모습을 보여주는 서양의 지붕과 자주 비교된다. 두 지붕 간의 차이는 하늘과 땅에 대한 두 문명권의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다. 하늘과 땅을 별개의 개념으로 보는 서양 건축에서는 한 건물 안에 하늘과 땅의 이미지가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붕으로 환언하자면, 서양 건축의 지붕에서는 땅을 닮은 수평선과 하늘을 향하는 수직선이 동시에 표현되지 않는다.(p19)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 中


 이에 반해,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을 건축에 있는 그대로 담아 내려는 한국(동양) 문화는 오히려 동(動)적인 특성을 가진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그렇다면,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어디에서 발견하는 편이 더 나을까. 이를 위해 중국 철학자 리쩌허우(李澤厚, 1930 ~ ) 와 조선 철학자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 1527 ~ 1572)의 말을 빌려본다.

 

인간중심설은 중국 전통이 아니라 서양 전통입니다. 서양은 이전에 신이 중심이었는데, 신의 지위가 동요한 뒤로는 인간이 중심이 되었지요. 신이 중심일 때 인간은 신이 만든 존재였고, 자연계는 신이 인간에게 다스리라고 한 것이었어요. 신이 동요된 이후에는 당연히 인간의 통치가 이어졌지요.(p168)... 이건 삼각관계에요. 황제는 백성을 통치하고, 하늘은 황제를 통치하고, 하늘은 인간의 영향을 받지요.(p171) <중국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역 易>에서 "태극은 양의를 낳는다." 했다지만, 양의가 생기기 전에는 양의가 어디에 있었으며, 이미 양의가 생긴 뒤라면 태극 太極의 이치가 또한 어디에 있습니까? 이에 따라 밝게 분별하고 깊이 생각한다면 이 理와 기 氣가 뒤섞인 하나일 따름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에 대해 말하자면, "태극이 양의를 낳기 전에는 양의가 본래부터 태극 속에 있었고, 태극이 양의를 낳은 뒤에는 태극의 이치가 또한 양의 속에 있다."로 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양의가 생기기 전이나 이미 생긴 뒤에도 원래부터 늘 태극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만약 태극과 양의가 서로 떨어진다면만물이 생겨나지도 못할 것입니다.(p490)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中


이런 점에서 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의 특징을 짓는다면, '관계(關係)'에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인간'의 분리가 서양 철학의 관점이라면, 음(陰)과 양(陽) 그리고 태극(太極)을 통해 변화/생성이 이루어지는 것이 동양 철학의 관점이라는 점에서 두 사상의 특징을 '관계'에서 찾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니라 여겨진다. 사실, 이에 대한 언급이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공간(空間)'을 설명할 때 '불이(不二) 사상'에 기반하여 공간에 대해 설명하지만, 이로부터 동적인 요소를 끌어내지는 않는다. 한옥의 공간에 담겨 있는 동적인 요소는 책에서 잘 드러나지 않고, '모호함'으로 감춰져 있다.


 내/외부  공간 사이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은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에 해당한다.(p380)... 이 공간들은 내부 아니면 외부 하는 식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그 성격이 한없이 모호하기만 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런 모호한 공간이야말로 한옥을 한옥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p382)... 한옥의 이런 공간적 특징은 한국의 전통적인 불이 不二 사상을 기본 배경으로 한다. 너와 내가 본디 하나이듯 내/외부 공간도 그렇게 하나이지 서로 간에 나머지 반쪽처럼 크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p393)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 中


 그렇다면, 서양 건축에서 정(靜)적인 요소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에서는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는  한옥과 달리 개인 방이 발달한 서양 가옥의 구조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은 상당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한 욕망은 문명과 시간을 관통한다. 잠, 성, 사랑, 병, 생리 현상 뿐 아니라 기도하고 명상하고 읽고 쓰고자 하는 영혼의 욕구도 은둔을 부추긴다. 그런 욕망은 다양한 공간의 형태를 꿈꾼다... 군중은 칩거를 부추겼다. 군중은 수많은 젊은이처럼 혁명을 구경하러 파리에 온 요아힘 하인리히 캄페를 칩거하게 만들었다.(p140) <방의 역사> 中 


 미셸 페로(Michelle Perot, 1928 ~ )의 <방의 역사 Histoire de chambres>에서는 사생활의 공간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한다. 외부와의 단절, 자신 내면을 지향하는 칩거의 공간인 '자신만의 공간'에서 우리는 동적인 면 보다 정(靜)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정리하면, 동서양 문화의 차이는 '동(動)-정(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성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하여 한국 전통 건축이 왜 우수한지를 살펴보는 동시에 두 건축에 대한 우열 판단의 시각에서 벗어나 동서양은 하나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p483)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 中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는 위의 문장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저자의 희망처럼 우리는 책을 통해서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지만, 서로의 장점을 취해가며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로 수렴되고 있는 오늘날의 동서양 건축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는 이를 효과적으로 잘 전달한 책이지만, 다소 극단적으로 두 문화를 대조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을 남긴 책이라는 평과 함께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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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7 12: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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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7 1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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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8 1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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