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전쟁
아자 가트 지음, 오숙은.이재만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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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걸어간 진화의 길이 전쟁을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 것일까? 아니면 싸움은 나중에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에야 등장한 것이고 따라서 인간에게 '부자연스러운' 것일까? (p22) <문명과 전쟁> 中


 <문명과 전쟁 War in human Civilization>에서 저자 아자 가트(Azar Gat)는 위와 같은 물음을 던진다. 이 질문을 요약하면 '전쟁'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사회의 질서의 영향으로 태어난 것인지로 정리될 것이다. 그리고, <문명과 전쟁>은 이 질문에 대한 답(答)이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두 관점을 대조하면서 논의를 진행시키는데,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 ~ 1778)의 관점이 바로 그것이다.


[사진]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년 4월 5일 ~ 1679년 12월 4일) (출처 : 위키백과)


[사진]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년 6월 28일 ~ 1778년 7월 2일) (출처 : 위키백과)


 이런 질문에 대해 17세기와 18세기에 상반되는 두 가지 고전적 대답이 제시되었다...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와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가 내놓은 답이었다. 홉스에게 인간의 '자연 상태'는 고질적인 '투쟁 warre'의 하나로서 이익과 안전, 명성을 위한 살인적 다툼이자 만인 대 만인의 전쟁이며 삶을 '가난하고 힘들고 잔인하고 단명하게'만드는 원인이었다... 반면에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rments de l'inmegalite parmi les hommes>(1755)에 따르면, 원주민들은 자연 속에 드문드문 흩어져 자연의 풍부한 자원을 평화롭게 이용하면서 대체로 조화롭게 살았다. 그러다가 농업, 인구 성장, 사유 재산, 계급 분화, 국가의 강압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전쟁이 등장했고 문명의 나머지 모든 병폐들도 함께 나타났다고 루소는 주장했다.(p22) <문명과 전쟁> 中


 <문명과 전쟁>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의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저자는 루소보다는 홉스의 손을 들어준다. 에덴(Eden)과 같은 지상낙원을 전제로 한 루소의 이론보다는 한정되고 냉혹한 자연을 전제로 한 홉스의 이론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치명적인 폭력과 전쟁은 사실 전혀 특별하지 않다. 근본적으로 말해 '전쟁 수수께끼'의 해답은 그런 수수께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폭력적 경쟁, 일명 분쟁은 자연 전체의 통칙이다. 유기체들은 언제나 자원이 극히 부족한 조건에서, 그들 자신의 증식 과정 탓에 더욱 힘겨워지는 조건에서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경쟁하기 때문이다.(p855) <문명과 전쟁> 中


  저자는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일방적으로 논의를 진행시키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저자의 결론에 반(反)하는 주장 - 루소의 견해 - 역시 소개된다. 전쟁이 '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 더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이들의 주장 속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 Return to Nature'라는 루소의 말을 떠올리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자연 상태에서 전쟁은 근본적으로 비적응적인 특질이었으며 농업과 국가의 등장으로 비로소 이 특질이 '청산'되기 시작했다고 믿고 있다... 젊은 남자들의 공격적 성향, 지도자가 없는 사회에서의 효과적인 사회 통제 부재, 서로 다른 집단 간의 상호 의심, 복수, 사회체제의 자기 유지 성질, 중재 제도를 발전시키는 일의 애로점, 전쟁의 성공과 전반적인 활력의 종교적 연관성 등이 그런 요인들이다.(p165) <문명과 전쟁> 中


 기본적으로 생산성과 인구가 꾸준히 늘어 근대 직전까지 10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인구 팽창과 생산성 증대 사이에는 얼마간 상관관계가 있었으므로 잉여 생산은 크게 늘지 않았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계속 식량생산자로서 최저 생활수준 근처에서 위태롭게 살아갔다.... 권력과 자원 축적이 선순환 매커니즘에 따라 서로를 강화하는 가운데, 대규모 사회적 권력 구조들이 출현했다.(p525) <문명과 전쟁> 中


 산업-기술의 도약은 인류 역사에서 혁명이 일어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 혁명은 부와 권력의 지속적이고도 기하급수적인 증대를 가져왔고, 이전 시대들을 지배했던 맬서스의 덫에서 사회를 구해주었다. 그렇지만 일단 강대국 간의 전쟁이 발발하고 나면 교전국들은 자원을 훨씬 많이 동원할 수 있었다.(p731)... 이 과정은 일부 강대국에서 근대 전체주의 체제의 등장을 촉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세력권은 시장의 잠식 효과 못지않게 군사적 승리와 압력을 통해 확대되었다.(p733)  <문명과 전쟁> 中


 산업-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권력의 집중은 전쟁의 규모를 더 키웠고, 전쟁 양상은 총력전의 형태로 변모되어 왔다는 것이 루소파 학자들의 의견이다. 저자는 이러한 루소파 학자들의 의견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 안에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Leviathan)의 모습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강화해 나간다. 


 정치적 합병이라는 부단한 과정을 달성하기 위한 주요 수단은 무력 사용과 위협이었다.(p528)... 국가 내부와 국가들 사이에서 권력을 차지하려는 투쟁, 그리고 권력이 수반하는 이익을 차지하려는 투쟁은 동시에, 그리고 불가분하게 일어났다.(p528)... 이 모든 과정의 근간을 이룬 추세가 증대하는 규모였음에도, 국가가 성장하고 '홉스적 전쟁'에서 일반적인 전쟁으로 이행함에 따라 전반적으로 폭력적 죽음의 비율은 분명히 낮아졌다.(p534) <문명과 전쟁> 中


 리바이어던이 가져다 주는 작은 안정이 자연 상태의 무질서보다 낮다는 근거를 저자는 역사 속에서 발견한다. 저자에 따르면 폭력적 사망의 비율은 문명화에 따라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연 상태로 수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명화가 전쟁의 원인이라는 루소의 주장은 성립하지 않게 된다.


 이 싸움에 '의례적' 측면은 전혀 없었고, 루소주의의 에덴동산 같은 풍요롭고 천진한 환경에서 싸움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진실에 한결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홉스였다... 부족한 자원과 여성을 둘러싼 생존 경쟁, 걸핏하면 폭력 사태로 변모한 경쟁이 인간의 삶을 지배했다... 폭력적 사망 비율은 국가사회보다 이런 수렵채집인 사회에서 훨씬 높은데, 국가사회에서의 비율은 가장 파괴적인 국가 간 전쟁을 치를 때에만 25퍼센트에 근접한다. 그러나 이 비율은 자연에서 동물들의 일반적인 종내 살해 비율과 일치한다.(p856) <문명과 전쟁> 中


 저자 아자 가트는 결국 전쟁이라는 현상이 '문명화 civilized'된 결과물이 아니라, 자연(nature)이 가지는 일반적인 특징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다만, 인간 사회에서의 전쟁은 사회 발전에 따라 '개인간 다툼'에서 '국가간 다툼'이라는 양상으로 흘러갔고 이러한 점을 루소파 학자들은 간과했다고 비판한다.(전투가 전쟁이 되는 규모의 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 아자 가트는 루소, 존 로크(John Locke, 1632 ~ 1704)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계약론자들과 대척점에 서 있다. 


 인간 사회들의 크기와 복잡성이 극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인간 집단의 싸움도 덩달아 변화했다. 인간 집단 자체의 크기가 증가함에 따라 집단 싸움의 규모도 커진 것이다. '전쟁'을 관습적으로 대규모 조직 폭력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규모가 대폭 커지고 조직화된 사실을 반영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p857) <문명과 전쟁> 中


 사회 안에서 폭력적 죽음의 비율이 낮아진 까닭은 대개 폭력이 승리했기 때문이지 어떤 평화로운 합의 때문이 아니었다. '국내의 평화'를 강요하는 한편 사회에서 자원을 징수하고 흡사 마피아처럼 '보호'와 여타 서비스를 변덕스럽게 제공한 것은 승리한 통치자가 제도화를 통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독점한 폭력이었다.(p858) <문명과 전쟁> 中


 <문명과 전쟁>의 책 전반에서 저자가 말하는 주장은 위와 같이 요약된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최근 9.11 테러에까지 인류학, 고고학, 심리학, 경제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분석한 책이기에 금방 읽히지는 않지만, 여러 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면에서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지는 한계 또한 분명하다. 미국 극우파의 주장을 떠올리는 아래의 글을 읽으면서 반발감이 생기게 되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슬람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엄중한 단속'이 문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 대량살상무기 위협은 주로 급진적 이슬람과 연관되지만, 그 위협의 진짜 심각성은 어떤 '초강력 화난 사람'이나 집단이라도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현재로서는 대량살상을 초래하는 기술과 무기의 확산, 그런 기술과 무기를 사용할 법한 사람들을 전 세계에 걸쳐 엄중히 단속하는 것만이 그 위협에 맞서는 단 하나의 유효한 대응책이다.(p852) <문명과 전쟁> 中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 교수이며 홉스주의자인 저자의 입장이 책 곳곳에 담겨있기 때문에, 미국 '매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이 그 한계점이라 생각된다. 여기서 말한 <문명의 전쟁>의 큰 줄기와 한계점을 한 번 짚은 후 책을 읽는다면 한결 즐거운 독서가 되리라 생각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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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6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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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6 15: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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