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동서설 - 감춰진 동이(東夷)의 실체와 고대 한국
부사년 지음, 정재서 옮김 / 우리역사연구재단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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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사년의 <이하동서설>은 중국의 고대 문명을 남북 간의 이항구조로 파악하던 전통적인 관념을 뒤집고 동서 간의 대립으로 인식을 전환시켰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으며, 이(夷) 곧 동이의 실체를 드러내고 정치적, 문화적 지위를 부각시켰다는 점에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p42)... 다만 부사년은 은(殷)과 이(夷)의 관계에 대해서는 하(夏), 주(周)와 대립된 동방의 국가라는 차원에서 친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종족적, 지역적, 기원적으로 구별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아 애매한 느낌을 준다. 은(殷)을 고조선과 같은 계통으로 보는 반면 이(夷)의 활동 범주를 대륙 내지인 산동(山東) 등에 국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고대 한국은 동이계로 간주하지 않는 셈인데 다소 의외라 하지 않을 수 없다.(p43) <이하동서설 : 해제> 中


 <이하동서설 夷夏東西說>은 중국 역사학자 부사년(傅斯年, 1896 ~ 1950)에 의해 이 주장된 내용으로, 중국 고대사를 '하(夏)'와 '이(夷)'의 대립으로 본다는 면에서 1930년대 당시 중국 학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학설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중국 동쪽의 거대한 지역은 하천에 의해 충적된 대평원이어서 산동반도에 있는 산 몇 개를 제외하면 모두가 해발 1,200m 이하의 평지다... 이에 반하여 서쪽의 거대한 지역은 산과 산 사이에 끼인 고원지대여서 도시는 늘 하천의 양안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는 동쪽의 평지를 동평원구(東平原區), 거대한 산 속에 끼인 서쪽의 고지를 서고지계(西高地系)라고 간략히 부르겠다.(p231)... 분명 이(夷)와 은(殷)은 동쪽 체계에 속하고 하(夏)와 주(周)는 서쪽 체계에 속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p235)<이하동서설> 中


 부사년은 먼저 서쪽 고원 지대와 동쪽 평원 지역으로 이루어진 중국 지형에 주목하고 이러한 지형으로부터 '동(東) - 서(西)' 간의 대립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하동서설>에서 말하는 동이(東夷)는 특정 종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구이(九夷)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에는 다양한 민족이 포함된다. 또한, 은(殷) 또는 상(商)은 동쪽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 세력을 넓힌 고대 중국의 제국(帝國)이었다.


 무릇 은상(殷商)과 서주(西周) 이전, 혹은 은상이나 서주와의 동시기에 지금의 산동성 전 지역과 하남서의 동부, 강소성(江蘇省)의 북부, 안휘성(安徽省)의 동북부 전체, 아울러 하북성의 발해(渤海) 연안 및 바다 건너 요동(療東)과 조선의 양안(兩岸)까지 일체의 지역의 모든 부족과 모든 성씨들을 전부 '이(夷)'라고 불렀을 것이다... 하(夏) 한 시대의 대사(大事)란 바로 이러한 이인(夷人)들과의 투쟁이었다.(p155) <이하동서설> 中


 [지도] 하나라 영토 지도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luemir98&logNo=60210194759&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동이(東夷) 가운데에는 부여(夫餘), 읍루(揖婁), 고구려(高句麗), 구려(句麗)[맥이(貊耳)], 예(濊), 한(韓)[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왜(倭) 등이 있다.(p268) <이하동서설> 中


 상인(商人)이 세웠던 제국은 전성기 때 무력이 몹시 강대하였으며, 패망한 이후에도 쓰러뜨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쪽으로 해동에서 일어나 서족으로 기양(岐陽 : 섬서성 기산(岐山)일대)에까지 이르렀던 이 대제국이 당시의 문화 수준에서 건립될 수 있었다는 것은 더할 수 없이 위대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건대 특수한 무기나 견고한 사회조직에 힘입고서야 비로소 이룰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p122) <이하동서설> 中


 부사년은 이러한 '동-서' 대립 구조의 사례로 다음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춘추(春秋)전국(戰國)시대 이래 후한(後漢)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대립이 있어 왔으나, 이후 이(夷)가 동화되면서 이러한 갈등은 점차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진(秦)이 6국을 통합한 것은 서가 동을 이긴 것이요, 초(楚)와 한(漢)이 진(秦)을 멸망시킨 것은 동이 서를 이긴 것이요, 평림병(平林兵)과 적미군(赤眉軍)이 왕망(王莽)의 신(新)나라 왕실에 대적한 것은 동이 서를 이긴 것이요, 조조(曺操)가 원소(袁紹)에 대립한 것은 서가 동을 이긴 것이다. 그러나 양한(兩漢) 때에 이르면 동서의 융합은 이미 상당히 심화되어 대치하는 형국이 삼대에 미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p238) <이하동서설> 中


 저자 부사년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동-서' 대립이라는 일련의 역사법칙을 도출해낸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립 속에서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하동서설>에서 동이(東夷)라는 단어지만, 사실 부사년이 말하고 싶었던 바는 '하(夏)'다. 1928 ~ 1937년까지 은나라의 중심지였던 은허(殷墟) 발굴을 주도한 그는 중국 역사를 보다 이른 시기인 '하'나라로 끌어올리기 위해 '이하동서설'을 주장하였고, 이 책은 이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그가 주장한 학설은 이후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해 <이하동서설>의 연구결과는 현재 거의 폐기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하동서설'은 중국 '동북공정 東北工程'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는 핵심 이론 중 하나라는 점과 그가 만든 대립구도를 바탕으로 많은 재야학자들의 이론이 생산되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변증법적 규칙을 따라 전국 시기에 융합 혼재하게 되었으니 이 과정이 바로 하(夏), 상(商), 주(周) 왕조가 교체되어 온 골격을 이루고 있다. 그중 두드러진 민족 간의 갈등이 바로 동서방간 이(夷)와 하(夏)의 투쟁인 것이다. 진(秦) 왕조가 시작된 이래 2,000년간에 걸친 고대 중국의 민족적 갈등은 남북간 투쟁으로 개괄될 수가 있으므로 광대한 연해지방 이인(夷人)들은 혹은 북쪽으로 이주하여 베링 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거나,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 여러 섬들 및 심지어는 남태평양을 거쳐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p325) <이하동서설 : [부록] 동이(東夷)와 그 역사적 지위> 中


 대개 은나라 사람들은 동방의 이인(夷人)들 가운데에서 가장 선진적인 일부였을 것이며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지니고 갔던 일정한 사회풍습은 은상(殷商)과 떼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사물의 발전추이란 언제나 불균형성을 띠고 있어 선진성과 낙후성이 곧잘 동시에 공존하기도 하므로, 광범위한 동방의 이인(夷人) 지역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원시부락과 그들의 사회적 유물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p314) <이하동서설 : [부록] 동이(東夷)와 그 역사적 지위> 中


 <이하동서설>과 [부록]에 수록된 글 속에서 우리는 동이(東夷)가 중국 문명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반(反) 역할을 수행하는 변증법의 요인에 불과함을 확인하게 된다. 후한 시대 이후 중화 문명이라는 하나의 합(合)으로 녹아들어갔다는 그의 학설 속에서, 고구려 역사가 중국 지방 정부의 역사라는 구도로 발전된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재야 사학에서 이러한 '동 - 서' 대립 구도를 그대로 차용해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존재하는 것은 우려가 되는 지점이다. 

 

 이처럼 <이하동서설>은 우리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역사책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하동서설>을 읽어야 한다면, 이것은 올바른 역사관의 확립을 위해서가 아닐까. 역사(歷史)는 진실(眞實)이어야 하고, 객관적 사실에서 교훈(敎訓)을 끌어내는 것은 후대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바른 역사관의 정립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하동서설'은 목적 역사관의 한계를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역사관은 아니지만,  관련하여 고(故) 리영희님(李泳禧, 1929 ~ 2010)의 언론관과 관련한 명언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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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0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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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07: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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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1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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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1 1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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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3 1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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