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는 벤야민(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1892 ~ 1940)과 아도르노(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 1903 ~ 1969)을 다룬 입문(入門)서적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Frankfurter Schule)인 두 사람은 대중문화에 대해서 상반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대표되는 20세기을 대표하는 문화양식을 대중문화(大衆文化)라 했을 때, 이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할 것인가?
먼저 아도르노의 관점부터 시작해 보자. 아도르노는 인간이 자기보존의 목적으로 계몽이 출발되었지만, 점차 자연, 사회, 내적 자연의 지배로 확대되어 가면서 인간 자체의 말살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 ~ 1973)가 사용하는 '계몽 enlightenment'은 신화와 마법의 전제 專制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서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이성적으로 각성된 사유 양식"을 지칭한다.(p52)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애초에 계몽의 출발은 인간이 자연의 위협적인 힘에 맞서서 자신을 보존하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데서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자기보존'이라는 개념인데, 아도르노는 자기보존이야말로 모든 생명체의 진정한 법칙이라고 강조한다... 이성적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이다. 이제 인간은 자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자연을 지배하는 길로 들어선다.(p53)... 인간은 대자연의 지배로부터 권력을 빼앗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귀결하는 바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와 억압이라는 또 다른 '야만'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도르노의 생각이었다.(p54) <벤야민 & 아도르노> 中
그 결과 인간의 이성은 주체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사회 지배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는데, 이를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이라 부른다. 최대 효율을 위해 동일성을 추구하는 도구적 이성에 의한 지배는 대중 문화에서도 이루어지고, 아도르노는 대중문화를 일종의 지배 수단으로 파악한다.
이제 인간의 이성적 사유는 진정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 스스로를 반성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리고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에만 몰두하는 도구적 이성 instrumental reason 이 되어버렸다.(p78)... 도구적 이성의 기저에 깔려 있는 정신적 원리가 바로 동일성 원리 the princilpe of identity 라는 것이다. 동일성 원리란 주체가 대상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서로 다른 대상들을 주체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하나의 형식으로 강제하는 지배 원리다.(p82)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오늘날 철저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일종의 비즈니스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문화산업이란 궁극적으로는 인간 주체의 내면적 자연, 그러니까 인간의 감정, 충동, 욕망, 본능, 상상력, 육체 등에 대해서 외적 자연에 가했던 것과 똑같은 폭력을 가함으로써 동일성 원리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지배의 수단이다.(p88)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이에 반해, 벤야민의 대중문화론은 긍정적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대량생산로 대표되는 20세기의 기술 복제 시대에 대중문화는 일반 대중을 각성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자.
벤야민은 대중문화의 산물이 대중을 기만하고 불구로 만든다고 비판한 아도르노와는 달리,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로서 영화가 몽타주라는 형식 원리를 통해 대중의 충격과 각성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대중을 집단적 주체로 형성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보았다. 한마디로 말해 아우라의 붕괴를 특징으로 하는 기술 복제 시대에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p217) <벤야민 & 아도르노> 中
벤야민에 따르면 기술 복제 시대를 거치면서 종래 예술이 가지고 있던 권위(아우라)가 상실되었다. 종교예술로 대표되는 과거와 달리 기술복제시대에 들어, 대량생산이 되면서 예술작품은 희소성을 잃게 된 것이다. 그는 특히 사진과 영화에 주목하면서 '소외'를 통해 대중들은 종래 익숙했던 것들을 새롭게 보면서 새롭게 자각하게 된다고 대중문화를 해석한다.
벤야민이 대중문화의 산물을 보다 긍정적인 각도에서 평가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보다도 오늘날 기술 매체의 발전, 즉 복제 기술의 발전이 예술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주목했다.(p173)... 벤야민에 따르면 예술의 생산 방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기술적 복제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기술 복제 시대의 새로운 예술의 등장은 전통적인 예술에 어떠항 영향을 끼쳤는가? 벤야민은 그것을 한마디로 아우라 Aura의 상실이라고 설명한다.(p175) <벤야민 & 아도르노> 中
보통 소외라는 개념은 부정적인 의미로 곧잘 이해되지만, 여기에서 벤야민이 사용하는 '소외 alienation' 개념은 브레히트의 '소격 Verfremdung' 개념에서 차용해 온 것으로, 긍정적이고 유익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p188) ... 소외는 우리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낯설게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을 다시 주목하고 세부까지 조명할 수 있도록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인간과 대상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p189)... 벤야민은 이러한 장이야말로 정치적으로 훈련된 시각의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젖힌다고 보았다.(p191)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정리하면, 아도르노에게 대중문화는 도구적 이성의 결과로 일종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수단이지만, 벤야민에게 대중문화는 복제를 통해 대상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새롭게 깨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수단이 된다. 그렇다면, 두 석학 중 누가 현실을 바르게 바라본 것일까.
[사진] 영화 <토이 스토리 Toystory> 中( 출처 : ttps://www.youtube.com/watch?v=y03qIQciuxQ)
영화 <토이스토리 2> 에서 주인공 중 하나인 버즈(Buzz)는 자신을 유일한 우주전사로 생각하지만, 마트에 진열된 수많은 '버즈'를 보면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다가 나중에는 다른 버즈를 도와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대중문화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외양이 같은 수많은 버즈에 집중하는가, 아니면 각성하는 버즈에 집중하는가가 아도르노와 벤야민 관점의 차이점이라 여겨진다.
20세기의 대중문화에는 이러한 양면이 모두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대중문화에 대해 우리는 어떤 관점을 취해야할 것인가. 이에 대한 선택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상황이라 생각된다. 보다 현명하게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이처럼 <벤야민 & 아도르노>는 대중문화에 대한 두 사상가에 대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어, 이름만 들어본 이들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좋은 입문서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에 대한 내용을 옮기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아도르노에게 "변증법이란 수미일관한 비동일성의 의식"이 된다. 아도르노는 헤겔 Georg Hegel, 1770 ~ 1831 의 변증법에 대해 부정의 부정을 통해 긍정을 산출하는 긍정적 변증법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에 반해 부정의 부정이 긍정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 즉 사회에서 부정적인 것이 지속되는 한 부정의 부정은 부정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부정 변증법'을 주장한다. 한 마디로 말해 사유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부정 변증법은 비동일자의 구제를 목표로 한다.(p136) <벤야민 & 아도르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