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까지 내가 본 발벡 성당은 그저 사진으로만보았을 따름이지, 그것도 고작 사도상(像)이나 성당 정문에 새겨져 있는 성모상이나기껏해야 성당 유물을 본떠  만든 것들이 고작이었지.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은 바로 진짜성당이야. 조각상들도 물론 진짜고,
아니, 진짜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테지.
혹은 그 이하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 동안 머리 속에서 무수하게 그려 봤던 발벡 성당 조각상이 실제 크기의 조각상으로 바뀌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테면 세상에 하나뿐인 그 크기로 말이다.
- P8

어둠에 묻힌 채 넋을 놓고 구경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마도 ‘인간 어류학에 능통한 문필가도 끼어 있을 수 있을 터인데. 그렇다면 그는 음식물을 삼키는 여느 늙은 암컷 물고기의 주둥이를 관찰하면서 이를 종에 따라,
혹은 선천적 성질에 따라 분류하고픈 욕망을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후천적 성질에 따라 분류하는지도 모르는데, 왜냐하면 그는 이제 막 샐러드를 입에 쳐 넣는 세르비아 출신의 늙은 부인을 발견하고는 이 여자는 바다 물고기 주둥이를 하긴 했지만 라로슈푸코 집안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포부르 생 제르맹이란 민물에서 성장한 물고기란 사실을 간파할 것이기 때문이다.  - P21

느닷없이 예전 콤브레 시절 이후로는 느껴보지 못했던 바로 그 지고한 희열감이 나를 엄습해 왔다.
마르탱빌 종탑을 보면서 느꼈던 바로 그 희열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희열감은 과거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나는 세 그루 소나무가 서 있는 광경을 보았는데,
그 너머로는 숲으로 덮인 작은 오솔길이 나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언젠가 이미 보았던 광경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과연 그와 똑같은 광경을 예전에 어디서 보았을까 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답을 얻을 수 없었지만, 언젠가 틀림없이 본 광경이란 느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 P26

그 순간 바로 내 눈앞에서 하늘거리는 울타리를 만들며 거친 파도의 동선을 잠시 끊는 이 활짝 핀 아가씨들이야말로 신의 섭리에 의해 모여든 희귀종들의 무리처럼 보였다. 이 아가씨들이 발벡에 사는지, 과연 누구인지 못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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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 2
윌리엄 맥닐 지음, 김우영 옮김 / 이산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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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0년은 세계사에서도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유럽인이 시도한 각종 항해는 지구상의 바다를 그들의 통상과 정복을 위한 공도(公道)로 바꿔놓았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모든 해안지방에 새로운 문화적 전선을 구축했는데, 그 전선은 과거 수세기 동안 아시아의 문명이 스텝지대의 유목민과 대치하던 육상 경계선에 필적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고, 결국에는 그것을 능가하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_ <세계의 역사 2>, p453


 맥닐의 세계사에서 1500년은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전까지는 대등하거나 오히려 뒤쳐진 유럽문명이 이를 기점으로 세계의 중심지로 도약했다는 점에서 이는 중요한 변환점이 된다. 1500년 전 문명 간 영향을 미치던 상호연관성은 이 시기 이후 '중심부-주변부'의 관계로 파악되며,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세계사의 부정합'을 말하는 다음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맥닐에게 비서양 세계의 역사는 서양에서 울렸던 소리에 대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세계의 역사2> 또한 서구중심주의적인 세계사임을 실감하게 된다. 


 1500년 이후 유럽사의 시대구분은 세계사의 기준과 잘 맞지 않는데, 이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근대사의 주제가 서양이 발흥하여 전세계를 지배하는 과정이라면, 유럽 자체의 단계적 발전이 다른 민족과 멀리 떨어져 있는 대륙에 그 충격을 미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시차를 감안하여 1700년까지의 비서양세계의 역사와 1648년까지의 유럽 내부의 역사를 함께 묶어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_ <세계의 역사 2>, p456


 저자는 1500년 직전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통해 유럽세계의 자기변용이 일어났고, 이를 바탕으로 촉발된 다원성이 새로운 변화를 가능케 한 것으로 파악한다. 교황과 황제, 군주와 제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종교와 과학 등등. 수많은 분야에서 촉발된 다양한 종류의 갈등이 미봉합된 상태에서 힘을 축적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힘이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을 이루었으며, 결과적으로 제국주의(Imperialism)시대를 열었음을 말한다.


 1870년 무렵까지 산업혁명의 중심지는 영국이었다. 그 후 동쪽의 독일과 서쪽의 미국이 영국의 산업기술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1789년 이후 민주혁명의 중심지는 프랑스였다. 군주제 관료정부의 결함이 드러나고 공중(公衆)의 비판적 기질이 분출된 결과, 이성과 국민의 의지에 따라 전통적인 정치제도를 개조하려는 장기적이고 정열적이며 신중한 노력이 개시되었다. 이 두 가지 거대한 운동은 최초의 중심지로부터 서양세계 전체로 퍼져 나갔고, 오래지 않아 서양문명의 경계를 넘어서 확대되었다. _ <세계의 역사 2>, p593


 <세계의 역사 2> 에서 저자는 1500년을 전환점으로 새로운 변화의 싹이 움트고 있었으며,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이라는 두 개의 큰 줄기에서 피어난 제국주의라는 결과를 낳았고, 이를 20세기 전반을 규정하는 핵심 특징으로 파악한다. 저자는 제국주의 시대의 정점에서 일어난 세계대전과 식민지들의 독립이 20세기 세계사의 주요 사건이라는 틀에서 바라본다. 이 같은 관점에서 여전히 중심부-주변부 이론은 유효하다. 헤게모니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졌을 뿐.


 과학과 기술, 그리고 부강한 나라로부터 힘의 비결을 배우려는 약소국과 약소 민족의 자연스러운 욕망이 세계를 통합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지리적 차이와 언어의 장벽, 그리고 자국의 문화전통을 보존하길 원하는 바람은 그 반대방향으로 작용했다.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과거와의 문화적 연속성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왔다. _ <세계의 역사 2>, p591


 위에서 보듯, 맥닐의 <세계의 역사 2>는 서구 중심적인 세계사다. 유럽문명은 중심부인 반면, 비유럽문명은 미개문명으로 유럽문명이 이룬 성과를 빠르게 받아들였을 때 진정한 문명으로 거듭난다는 저자의 논리는 책이 쓰인 1990년으로부터 35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유럽사=세계사'라는 서구중심적인 세계관을 알게 되고, 그 한계를 체감한다면 나름의 독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일본인처럼 유럽 문명과의 접촉이 제공한 기회를 십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던 민족은 아시아에 없었다. 다른 민족은 도쿠가와 시대의 일본에 만연해 있던 것 같은 문화의 이원성과 대립적인 이념 간의 긴장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_ <세계의 역사 2>, p585

1500년과 1648년 사이 유럽에서는 지적 다원성이 유럽의 토양에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중세에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으나 이론상으로는 정연하게 공식화된 지식이 세계를 이해하는 완전한 구도를 제공해주었다. 그런 종류의 지식이 사라지자, 교회/국가/직업이 저마다 자기 나름의 입장에 따라 진리를 추구했다. 이런 다양성으로 인해, 유럽의 사상은 오늘날까지 지속적이고 아주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 P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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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 물신 숭배의 허구와 대안 - 카이에 소바주 3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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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증여가 가져다주는 것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인간은 그것을 자신의 '지'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서, 숲의 하우와의 사이에 마치 증여의 순환이 발생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해하려고 합니다... 증여와 순수증여 사이에 서로 겹치는 부분이 발생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증여의 원리가 순수증여와 접촉할 때마다 거기서부터 영력의 증식이 일어난다는 생각입니다... '순수증여'란 '자연'의 별칭인 셈입니다. _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p72


 증여와 순수증여 그리고 교환. 저자는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에서 '보로메오의 매듭'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와 회복해야 할 정신에 대해 말한다. 교환의 매개체인 상품을 통해서는 아무런 가치가 발생하지 않는다. 화폐-상품의 1:1 대응이 교환이라면, 증여는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호혜성'이며, 순수증여는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일방적인 '베풂'이다. 저자는 현대사회가 이기적인 교환관계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수탈-착취의 악순환이 일어났다고 보고, 사람들 상호간의 존중과 배려,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이 생겨난 근원으로 눈을 돌릴 것을 강조한다.


 노동의 증여와 순수증여를 하는 대지의 힘이 서로 만나서 뒤섞이는 부분에 '순생산'은 출현합니다. 인간의 섬세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노동을 받음으로 해서 대지라고 하는 신체는 기뻐하고 열락悅樂을 느끼며, 바로 그때 증식이 일어나고 진정한 잉여가치가 발생합니다. _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p145


 저자는 사람의 노동력과 자연이 만나는 곳에서 순생산이 발생하고, 이로부터 잉여가치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본문에서 잉여가치가 소비되는 '교환'의 세계가 아니라, 가치를 유통하는 '증여'의 세계와 이를 생산하는 '순수증여'에 힘이 실리는 것은  바로 저자의 관심이 비대칭적 문명(文明)을 넘어선 대칭적 문화(文化)로의 복귀 때문이 아닐까. 이런 면에서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이 문명의 경제학이라면, 나카자와 신이치의 경제론은 문화의 경제학이며, 사랑의 경제학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증여 중심의 경제에 바탕한 사회의 사람들은. ‘물‘의 이동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힘이 활성화되고, 인간 사회와 자연을 끌어들여 힘찬 유동을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환에서는 증여에서 활동하던 인격성의 힘이나 영력 같은 것이 전부 억압을 받고, 배제 당하고 제거되어 버립니다. - P53

우리는 중요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국가와 화폐는 신석기 시대의 특징이 남아 있던 사회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한, 인류의 마음의 구조의 변화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서, 그 본질이 완전히 똑같다는 결론입니다. - P118

농업에는 사람들에게서 예술적, 종교적 표현을 유도해내는 힘이 감추어져 있는 듯합니다. 게다가 거기에는 증여의 원리의 극학에 출현하는 순수증여의 원리를 분명한 이미지로서 조형하는 능력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한 발 더 안으로 들어가서, ‘대지‘ 나 ‘자연‘을 신의 활동의 표현으로 간주하게 되면, 어김없이 종교적 사고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직전 상태에서 계속 멈춰 있으면, 예술의 창조가 가능해집니다. - P142

성령과 순수증여의 작용은 참으로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사람의 내부에서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마치 뭔가에 홀린 듯이, 정신적인 흥분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물질적인 세계에서 순수증여의 힘이 격렬하게 움직이면, 그 힘이 교환이나 증여의 원리와 접촉하는 경계 영역에서 순생산이나 자본의 형태로 격렬한 증식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인 세계에서는 풍부한 정신성이 실현되고, 현실의 물질적 세계에서는 풍요로운 부의 증식이 일어나는 병행현상이 나타나게 되겠지요.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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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8-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 - 스완 부인의 주변에서 2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 각색 및 그림, 정재곤 옮김 / 열화당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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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 각색 및 그림, 정재곤 옮김 / 열화당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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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6- 스완네 집 쪽으로 - 고장의 이름 : 이름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 각색 및 그림, 정재곤 옮김 / 열화당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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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5- 스완네 집 쪽으로 ― 스완의 사랑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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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꺼내들었다. 책을 읽으며 화자는 자신의 길을 찾았지만, 내 자신은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게 만들었던 책이라, 손에서 놓은 지 꽤 되었던 차다. 만화로 나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루스트의 길을 잃어버린 나에게 시각적 지도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


 막연한 기대로 펼쳐들었지만, 19세기말의 시대상을 현대 독자들에게 인상적으로 보여줘 한결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눈에 들어온 부분들이 있었다. 마들렌의 과자를 먹는 화자와 뱅퇴유의 소나타를 듣는 스완.


 이들은 모두 외부자극에 의해 자신의 기억을 찾는다는 점에서 '비자발적'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와 동시에 이들 간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화자는 마들렌 과자를 먹으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반면, 스완은 뱅퇴유 소나타를 들으며 오데트와의 사랑을 되새기며 고뇌한다. 전자가 '미각/후각'이라는 여운을 남기는 감각을 통해 '개인의 시간'을 찾는다면, 후자는 '청각'이라는 일시적 감각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추구한다. 여운을 남기는 미각은 자신에게 머물며 자신의 시간을 돌려준다. 소멸되는 청각은 시간을 돌려주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에 의해 재생(연주)되어야 한다. 자립과 외부 의존. 그것은 문학과 음악의 차이로 연결된다. 화가의 캔버스와 작가의 문학작품은 '영속성'을 가진 높은 단계의 예술로 승화되어 화자에게 내면적 기쁨을 가져다주지만, 소멸하는 음악은 스완을 수동적인 감각의 덫에 묶어둔다.  뱅퇴유의 소나타가 스완을 오데트에게 묶었듯, 후에 화자를 알베르틴에게 묶었듯. 이러한 차이는 훗날 화자가 문학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화자에게 되찾은 시간 속에서 '게르망트 쪽 길'과 '메제글리즈(스완네) 쪽 길' 사이의 차이일 것이다. 영속과 순간, 예술과 감각적 사랑 사이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떠올리게 된다. 신앙과 제롬 사이 선택의 갈림길에 선 알리사의 모습은 게르망트와 메제글리즈로 향한 두 갈래길에 선 화자를 연상케 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알리사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위해 제롬을 버렸고, 좁은 문에 들어가는 대신 현실에서의 사랑과 자신을 잃는다. 반면, 화자는 게르망트로 가기 전, 메제글리즈로도 가본다. 알베르틴을 통해. 오데트에 대한 스완의 사랑은 알베르틴에 대한 화자의 사랑으로 변주되지만, 이러한 변주와 경험은 화자를 파멸이 아닌 한 단계 높은 완성으로 이끌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신앙과 예술이라는 서로 다른 목표를 두고, 두 갈래 길에 선 두 주인공의 선택은 이렇게 같은 듯 다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텍스트로만 읽을 때는 떠오르지 않았던 많은 부분을 만화라는 시각자료를 통해 찾게 된다. 화자의 미각/후각 그리고 스완의 청각. 이들을 지켜보는 독자의 시각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감각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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