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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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명의 수명은 농업 생산이 쓸모 있는 경작지에 자리 잡고 겉흙을 침식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에 따라 결정된다. 특정 기후와 지질학적 환경에서 흙이 다시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바로 한 농업 문명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이 관점은 문명의 평균수명이 처음 흙의 깊이 대비 흙이 사라지는 순속도의 비율에 달려 있음을 암시한다. 최근의 침식 속도와 장기적인 지질학적 속도를 비교한 연구 결과 적어도 곱절에서 많게는 백 곱절 넘게까지 속도가 빨라진 것으로 드러났다. _ 데이비드 몽고메리, <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p331

데이비드 몽고메리 (David R. Montgomery, 1961 ~ )의 <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Dirt: The Erosion of Civilizations>는 제목 그대로 '흙'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다. 저자는 본문을 통해 흙의 재생과 흙의 침식속도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흙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이 오히려 흙의 침식을 가중시키고 지력(地力)을 떨어뜨려 왔음을 인류의 역사를 통해 잘 보여준다.

문명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문명은 몰락을 선택하는 법이 없다. 다만 세대가 바뀜에 따라 흙이 점점 사라지면 문명은 주춤하다가 쇠퇴하게 된다. 역사가들은 문명 종말의 원인을 기후 변화와 전쟁, 또는 자연재해 같은 개별 사건 탓으로 돌리곤 하지만, 흙의 침식이 고대사회에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_ 데이비드 몽고메리, <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p16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잘 뒷받침해주는 사례가 바로 나일 삼각주(Nile Delta)다. 나일강 상류 지역에 내린 강우로 인해 발생한 강의 범람(汎濫)이 풍요로운 경작지를 선사해주었다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아스완 하이 댐(Aswan High Dam)은 강의 범람과 함께 강의 생명력도 함께 끊어버렸다. 책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4대강 보가 있어 간접적으로나마 그 폐해를 짐작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해수면이 안정화된 뒤로 수천 년에 걸쳐서 발달해 온 나일 삼각주는 오늘날 침적토의 공급이 끊긴 채 쓸려 나가고 있다. 댐 덕택에 농부들은 인공 관개를 이용하여 한 해에만 이모작, 삼모작을 하고 있지만, 강물은 이제 침적토가 아니라 소금을 실어 나르고 있다. 소금의 축적으로 열 해 전에 이미 나일 삼각주 농경지 가운데 10분의 1에서 수확량이 줄어들었다. 나일 강 길들이기는 지구에서 가장 안정적인 농업 환경을 교란시킨 사건이다. _ 데이비드 몽고메리, <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p64

저자가 본문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흙을 매개로 한 자연 생태계의 복원이다. 농경과 목축, 산림이 긴밀하게 연결된 생태계는 흙의 침식을 막고, 양분을 공급하여 지력을 유지시킬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로의 복원은 어떤 인간의 인위적인 노력으로도 달성할 수 없는 지속가능한 문명을 유지시킬 힘이 될 것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작물 경작과 축산업이 함께 성장하면서 서로를 더욱 발전시켰고 더 많은 먹을거리가 생산되었다. 양과 소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식물 부위를 젖과 고기로 바꾼다. 사육되는 가축들은 노동력을 보태 수확량을 증가시켰을 뿐 아니라 작물이 양분을 소비한 흙에 똥거름으로 양분을 보탰다. 남는 작물을 많은 가축이 먹자 더 많은 똥거름이 생겼다. 그 덕분에 다시금 수확이 늘어나 더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었다. _ 데이비드 몽고메리, <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p54

<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에서 저자는 문명을 뒷받침하는 근원을 흙에서 찾는다. 저자는 바람과 비, 농경 등에 의해 침식되고 유실되는 흙과 자연의 복원력에 의해 재생되는 흙의 역학 관계가 문명(文明)의 흥망성쇠와 크게 무관하지 않음을 역사에서 보여준다.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한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흙의 복원을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과제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과거 번영했던 농경 문명들이 하나같이 같은 이유로 쇠퇴한 역사는 이러한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그렇지만, 마치 망망대해에서 물 한 모금 없을 때 타는 듯한 갈증을 못 이겨 바닷물을 마셨을 때 더 큰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인류는 오랜 기간 바닷물의 갈증을 이기기 위해 더 많은 바닷물을 끊임없이 마셔오면서 결국 오늘에 이르렀다. 여러 곳에서 울리고 있는 경고음 속에서 우리는 지금 당장 산출량 극대화, 이윤 극대화를 위해 끊임없이 헤집어 온 지구의 살갗을 이제는 치유할 때, 달라질 때가 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구세계와 신세계 고대 제국들이 주는 공통된 깨우침은, 생산성을 꾸준히 높이는 기름진 흙이 모자라다면 혁신적인 방법조차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땅을 보호하는 한, 땅은 사람들을 지켜 준다. 반대로 땅의 기본적인 건강을 무시하면 문명들은 줄지어 점점 더 빠르게 사라진다. 침식과 토질 고갈의 가혹한 결과 때문에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그 뒤에 여러 문명이 서구에서 나타났다 사라진 것처럼. _ 데이비드 몽고메리, <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p117

중세 농업의 수확량이 낮았던 이유는, 흙의 비옥도를 유지하려면 밭에 똥거름을 주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초지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역사학자들은 흙의 비옥도를 유지하는 데 발휘하는 똥거름의 값어치를 알지 못한 탓이라고 최근까지도 생각했다. 그러나 중세 농부들은 땅을 초지로 만들면 흙의 비옥도를 되살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참을성도 모자라고 필요한 만큼의 투자를 한다는 것이 경제 사정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늘 중요한 관심은 그해 수확량을 최대화하는 것이었다. _ 데이비드 몽고메리, <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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