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 자폐는 어떻게 질병에서 축복이 되었나
존 돈반.캐런 저커 지음,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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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너는 도널드와 비슷한 행동 패턴이란 맥락에서 최초로 사용한 "자폐적"이란 말에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 어린이들이 아주 이른 유아기부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능력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전반적 건강 상태와 "타고난 지적능력"에 큰 문제가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_ 존 돈반, 캐런 저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p44/537

결정적인 두 가지 특징을 파악한 사람이 바로 카너였다. 어린이들은 극단적으로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극단적으로 주변의 모든 것이 동일한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그는 두 가지 극단적 성향이 새로운 증후군의 핵심이며, 그때까지 차이점에 주목한 탓에 공통점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_ 존 돈반, 캐런 저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p48/537

존 돈반 (John Donvan), 캐런 저커 (Caren Zucker)의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In a Different Key: The Story of Autism>는 '자폐'라는 용어가 1930년대 처음으로 '극단적으로 자신의 내부를 지향하며', '동일성을 추구하는' 특성을 사용된 이후 오늘날까지 '자폐'를 둘러싼 여러 문제를 보여준다.

독자들은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에서 '자폐(自閉)'를 둘러싼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만나게 된다.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주변인들.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 접촉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자폐증을 가진 이들은 자신이 부여한 질서를 유지하며 영원(永遠)의 시간을 살아가는 반면, 그와 관계를 맺는 가족, 친구들은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서로를 응시하며 살아간다. 영원을 살아가는 이들과 순간(瞬間)을 살아가는 이들. 영원과 순간. 자폐의 문제는 여기로부터 시작된다.

마음속에서는 분명 생각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지만, 그 톱니바퀴들은 사람들과 소통할 때마다 결정적인 대목에서 어긋나는 것 같았다. 그의 언어는 육각형과 국화들로 이루어졌다. 다른 사람이 의미를 알든 모르든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고집스럽게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분명해졌다. 그것은 '동일함'이었다. 완전하고도 순수한 일상의 반복이었다(p19)... 각각의 행동보다 더 이상한 것은 모든 행동이 다양한 결핍과 재능이 독특하게 결합된 형태로 한 사람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행동의 총합이야말로 도널드라는 사람의 극적 인격을 포괄적으로 규정했지만, 거기에는 이름이 없었다. _ 존 돈반, 캐런 저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p20/537

순간을 살아가는 이들은 어제보다 나은 현재, 현재보다 나은 미래로 발달해야 한다고 믿지만, 영원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런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성(城)에서 좀처럼 나오려 하지 않는다.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자아를 강제로 끌어낼 수는 없다. 이제 논의는 그들이 내부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원인이 무엇인가에 집중된다. 유전적인 원인 때문일까, 아니면 주변으로부터 받은 학대 때문일까. 이런 가정문제로부터 백신접종이나 감염증세가 있는 전염병이라는 사회적 원인까지 수많은 가정과 추측의 역사가 펼쳐진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연구진은 어린이들을 부상 입은 존재로 보았다. 그토록 큰 상처를 입힌 사람은 바로 엄마라고 믿었다. 연구자들끼리는 심리적 유발인자라는 용어를 썼다. 어떤 정서적 외상이 가해져 자폐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정서적 외상의 근원을 밝혀내고 손상을 회복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_ 존 돈반, 캐런 저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p91/537

내면에 갇힌 아이. 자폐인의 가족들은 그 개념만 떠올리면 언제나 애가 탔다. 자폐증이란 가면 뒤에 "진정한" 아들이나 딸이 숨어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용어를 직접 사용한 적은 없지만, 레오 카너는 처음 치료했던 열한 명의 아이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언급함으로써 그런 생각에 불을 붙였다. 마치 더 이상 자폐증이란 속박을 받지 않거나, 자폐 상태에 머물리 않는다면 드러날 참모습은 무엇일까를 궁금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_ 존 돈반, 캐런 저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p291/537

자폐증이 마침내 미국에서 진정 "유명해진" 것은 대중이 공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자폐증은 드물고도 매혹적인 현상에서 전국적으로 급속히 퍼지는 위협으로 돌변했다. 자녀를 키우는 사람은 물론 자녀를 가질 계획이 있는 사람조차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된 것이다. _ 존 돈반, 캐런 저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p342/537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자폐에 관련된 역사를 다루지만, 엄밀하게 말해 절반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는 자폐를 가지고 있는 영원한 시간 속을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거의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다르게 생각한다면, 불멸(不滅)에 가까운 영원 속에서 역사(歷史)란 의미가 없겠지만. 대신, 우리는 자폐를 둘러싼 사회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자폐의 원인이 무엇인가와 어떻게 하면 다른 이들과 다름없는 '정상적'으로 될 수 있을까.

"고기능"이란 말은 자폐성향이 뚜렷하지만 최소한 평균 수준의(종종 그 이상의) IQ와 말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뜻이다. 결국 "고기능 자폐증"이란 아스퍼거 증후군과 매우 비슷하게 들렸다. 결국 "고기능 자폐증"이란 아스퍼거 증후군과 매우 비슷하게 들렸다. 고기능 자폐증과 아스퍼거 증후군 사이에 의미있는 차이가 있느냐는 주제를 두고 한때 자폐공동체 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많은 사람에게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진단명은 삶이라는 퍼즐에서 평생 찾았던 조각 한 개를 끼워넣는 것 같았다. 가족들 역시 그렇게 느꼈다. _ 존 돈반, 캐런 저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p410/537

요약하면,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자폐를 가지고 있는 이'를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인식'의 역사를 다룬 책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그 역사 안에는 진선미(眞善美)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보편 역사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자폐의 원인이나 치료법 등을 찾으려는 진(眞)을 추구하는 모습, 다른 이들과 차이 없는 상태를 '선(善)'으로 규정하고, '다름을 '악(惡)'으로 규정하는 선악 구조, 가족들에게 힘든 자폐 문제도, 뛰어난 재능을 의미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은 일종의 '아름다움(美)'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은 보편역사로서 자폐의 역사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역사를 통해 주체(主體)와 객체(客體) 그리고 인식(認識)의 구도 안에서 문제는 인식이고, 인식의 변화가 역사의 변화임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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