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유럽의 상인들 - 무법자에서 지식인으로 역사도서관 교양 18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 지음, 김위선 옮김 / 길(도서출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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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상업혁명'은 대부분의 서유럽 사회를 바꿔 놓은 일종의 사회혁명이기도 했다. 사회 변화와 더불어 한 계층이 사라지는가 하면 새로운 계층이 생겨났다. 특히 중북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네덜란드의 여러 도시, 독일 한자동맹(Hansa 同盟)에 속했던 많은 도시 그리고 카탈루냐 지방의 여러 도시에서 새로 생겨난 눈에 띄는 중요한 사회 변화는 바로 상인 계층의 등장이었다. 장원 경제 체제에서는 가장 천한 신분으로 간주되었던 상인이 이제는 상류 계층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48

카를로 M. 치폴라 (Carlo Maria Cipolla,1922 ~ 2000)의 <중세 유럽의 상인들 Tre Storie Extra Vaganti >는 상인(商人, merchant)을 주제로 한 짧은 대중역사서다. 14세기 초 대상인의 등장 시기와 이후 17세기와 18세기 화폐(貨幣)경제에서 상인의 움직임이 가져온 변화를 통해 독자들은 당시 생생한 경제활동을 중계방송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도시를 주름잡은 상인은 대상인(grandi mercanti), 다시 말해 보통 상인과는 달리 대체로 국제 교역에 종사하며 상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및 금융업(환전과 은행 업무)을 겸하던 사람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와 같은 새로운 형식의 경제 조직체가 육지 무역쪽에서 형성되었는데, 이른바 '콤파니아'라고 불렸다. 콤파니아의 탄탄한 기반은 전형적인 가부장제 형태의 가족이었다.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 (vecchio)이 판단 · 결정하고, 처벌하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 외의 사람은 예외없이 여기에 복종해야 했고 이들에게는 '불평'(mugugno)할 권리조차 없었다. 가족은 콤파니아에서 일할 사람을 선별하고 콤파니아의 모든 자본을 관리하였다. 이것도 새로 생겨난 요소였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50

세 가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상세하고도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이야기는 바로 14세기 르네상스(Renaissance) 시기 피렌체의 중심 가문의 바르디(Bardi) 가문 이야기다. 중세 말기 봉건제와 교회의 권위가 몰락하면서 이들의 공백을 대신하는 대상인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려준다. 현대 영어 company에 해당하는 콤파니아(Compagnia)가 장원을 대신하여 경제의 중심에 서게 된다. 왕과 귀족들에게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자금을 대여해 주고, 대신 사치품을 판매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보던 르네상스 거상(巨商)들의 모습을 우리는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1330년대 초에 심각한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 피렌체의 경제는 말 그대로 완전히 전복되었다. 마치 종이로 만들어진 성이 쓰러지듯이 수많은 콤파니아가 줄줄이 파산했다. 마치 종이로 만들어진 성이 쓰러지듯이 수많은 콤파니아가 줄줄이 파산했다(p60)... 여러 콤파니아가 파산하자 그 여파를 받아 2차, 3차 산업도 일거에 붕괴되었다. 보통, 콤파니아는 상업 활동 이외에도 은행업과 수공업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콤파니아가 도산하자 신용이 삽시간에 치명적으로 감소하였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경제와 관려된 모든 영역이 피해를 입었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61

이들의 투자가 항상 성공을 거둔 것만은 아니었다. 전쟁에 패배한 왕에게 자금을 빌려 준 경우 그들이 가진 채권은 휴지조각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고, 훗날 신성로마제국의 푸거(Fugger)가문처럼 바르디 가문은 잉글랜드 군주에게 투자를 하지만, 백년전쟁에서 패배한 잉글랜드 군주로부터 돈을 받지 못하고 파산위기에 직면한다. 여기에 더해 피렌체 전체 경기가 수축 국면에 진입하면서 많은 콤파니아들이 무너지는 등 바르디 가문을 둘러싼 상황은 결코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바르디 가문의 처세와 그들의 생존 안에서 현대 자본주의적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

세 콤파니아는 좋은 운수를 타고나지 못했다. 하필이면 앞에서 설명한 1330년대와 1340년대 같은 최악의 시기에, 그리고 바르디 가문의 일이 계속 꼬이기만 하는 그런 때에 창립되었으니 말이다. 이들은 서로 똘똘 뭉쳐 가문 특유의 방식이었던 폭력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바르디 가문 사람 몇몇이 이미 피렌체 정부의 요직에서 일했기 때문에 잘하면 입김을 불어넣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건만, 피에로데이 바르디의 주도로 콤파니아의 일부 회원은 피렌체의 정부 체제를 전복하려고 쿠데타를 꾀했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66

교환 중심의 시장 경제라면 바르디 가문은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만,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바르디 가문의 모습은 이 시기에 이미 자본주의적 대처를 잘 보여준다. 막강한 경제력을 활용해서 '화폐위조'라는 중대범죄를 저지르고도, 정치력을 발휘해 독점권을 강화해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근대 이전에 이미 자본주의의 싹이 트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15~18세기 유럽 경제를 분석하며 자본주의의 근원을 찾으려 했지만, 치폴라는 넌지시 자본주의의 기원은 이보다 이전 시대에 있었음을 알려준다.

바르디 가문 사람에게 법이라는 것은 '타인'을 통제하기 위한 편리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바르디 가문 사람은 법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은 법 위에 군림한다고 생각하였다. 베르니오 법령을 새로 제정한 후 피에로는 극악무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즉 정성 들여 작성한 법령에 의거해 약탈을 일삼고 있던 자들을 모두 응징함으로써 '경쟁자'를 '합법적으로' 제거하였고, 그 일대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약탈권을 독점하였다. 그 이상 극악무도해지기도 힘들 것이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72

특히 바르디 가문 출신의 세 사람이 확신했던두 가지 사실은, 첫째, 경찰의 손에 잡힐 확률은 거의 없다는 점, 둘째, 혹 잡힌다 하더라도 그들이 실형을 받기는 힘들 것이라는 점이었다.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지는 않았다. 바르디 가문 사람은 특권층에 속했고, 이 때문에 특별히 법에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실제로 이들은 법을 조금도 괘념치 않았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96

다른 두 편의 이야기의 중심도 역시 상인들이다. 화폐의 품질을 조악하게 만들어 유통시켜 막대한 부을 축적하고 한 나라(오스만 투르크)의 경제를 무너뜨리고, 해상무역을 통해 더 큰 세력으로 커나간 상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14세기 이미 자본주의 형태를 갖춘 대상인들의 현대 자본주의로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상인들>안의 담긴 이야기는 간략하지만 이야기들이 던지는 메세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정치권력과 결탁한 현대 무기산업자본, 환율을 이용하여 경제소국에게 외환위기를 강요하는 투기자본의 모습과 국경을 넘나드는 다국적 대기업의 모습을 우리는 이미 중세와 근대 초기에 발견할 수 있다. 불과 150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경제사 관련 서적을 우리가 가볍게만 읽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에야 증명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도 같이 오랜 역사를 가진 자본주의 문제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는 최소한 중세로 가야할 듯하다. 과연 중세 경제사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중세 유럽의 상인들>을 읽으며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이후 다른 과제를 부여받은 느낌을 받게 된다...

오스만 제국 정부의 모든 힘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조악해질 대로 조악해질 악화 루이지노의 유통을 막아 낼 길이 없었다. 오랫동안 은화 부족 현상을 감내하던 터키 경제는 위조된 대량의 은화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터키의 경제 위기는 더욱 악화되었다. 더 이상 현금을 가지고 거래할 수가 없었다. 생필품의 가격은 두 배로 뛰어올랐고 빵조차 사 먹기가 힘들었다. 터키 제국에는 루이지노 화폐가 넘쳐났다. 하지만 아무도 이 화폐를 받으려 하지 않았고 모두들 이 화폐가 하루빨리 눈앞에서 사라져 주었으면 했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113

상인은 점차 신분이 높은 층과 낮은 층으로 구분되기 시작했고 그 영향은 프랑스어 사전에도 반영되었다. 상점을 직접 운영하며 소매업을 하던 자나 신분 상승을 꿈도 꿀 수 없던 사람에게는 마르샹(marchand)이라는 이름표가 그대로 남았다. 그 외의 사람, 즉 귀족 신분으로 상승할 수 있던 특권층을 위해 네고시앙(negociant)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졌다. 인간사에 흔히 일어나듯이 용어 정의를 둘러싼 논쟁 때문에 싸움, 적대감, 경쟁의식이 생기곤 한다. 어떤 네고시앙을 마르샹이라고 불렀다면 그것은 엄청난 모욕이었다. 자크 사바리는 다행히도 자신이 네고시앙이라 믿었고 수많은 네고시앙을 위한 경제 입문서를 저술하였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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