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읽을걸 - 고전 속에 박제된 그녀들과 너무나 주관적인 수다를 떠는 시간
유즈키 아사코 지음, 박제이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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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책을 안 읽는 세상에 책 제목이 '책이나 읽을 걸'이어서 좀 시대에 안 맞는 느낌도 들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과연 무슨 책 얘기를 할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게다가 주로 여자들이

주연으로 활약하는 소설들을 일본 여성 작가가 소개하는 설정이었는데 잘 모르는 작가라 과연 어떤

책들을 얘기할 지 궁금했다.

 

이 책에선 '그래도 꿈꾸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혼자서도 걸어갈 수 있도록', '세상에 아부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우리를 빛나게 해주는 것'의 부제를 단 네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 각각 프랑스,

일본, 영국, 미국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작품마다 4~5페이지 정도를 할애하면서 간략한 줄거리와

저자의 감상을 담고 있는데 아무래도 여성 작가다 보니 여성의 관점에서 작품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역시나 이런 책들을 보면 내가 본 책들이 몇 권이나 실려 있는지, 내가 본 느낌과 과연 어떻게 다른지를 먼저 확인하는데 아무래도 여성들이 활약하는 작품들이 많다 보니 제대로 읽어본

책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조지 오웰의 '1984',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까지 총 네 편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제목은 익히 들어본 작품들이

적지 않아 저자 나름 세계적인 고전들을 망라해서 소개하기 위해 노력한 것 같았다. 먼저 프랑스

소설들을 다룬 부분에선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필두로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영화로도 친숙한

'위험한 관계'와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나나' 등의 작품이 등장한다. 프랑스 소설 중에서 한 권도

읽은 책이 없다니 좀 충격적이었는데, 주로 여자들을 억압하던 당시의 관습에 도전해 자유분방한

연애를 꿈꾸던 여자들이 파멸하는 얘기들이 많아서 역시나 여성 작가로서 감정이입이 많이 된 것

같았다. 두 번째 파트에선 일본 소설들이라 '빙점' 외에는 제목조차 모르는 작품들이었는데 자국의

작품들이라 작가의 신변잡기적인 얘기와 공감이 훨씬 짙어졌다. 영국편에선 여성적인 작품들에

대한 편중이 조금은 약해졌는데 요즘 영어공부용으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찰스 디킨스의 명작 '위대한 유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미스터리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의 '봄에 나는 없었다'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이 실려 있었다. 마지막

미국편에선 영화로도 유명한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

등이 등장해서 낯설지는 않았는데 이런 책들을 보면 내가 아직 안 본 책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들은 솔직히 손이 쉽게 가진 않는데 유명인들이 읽은

감상을 소개한 이런 책들을 보면 왠지 모를 도전 욕구가 불끈 솟아오른다. 이 책에서 다룬 책들을

금방 볼 수는 없겠지만 틈틈이 한 권씩 찾아보며 작가의 느낌과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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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채우는 인문학 - 문득 내 삶에서 나를 찾고 싶어질 때 백 권의 책이 담긴 한 권의 책 인문편
최진기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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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책을 보는 편이지만 여전히 볼 책도 많고 보고 싶은 책도 많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책들을 다

볼 수도, 볼 필요도 없기에 결국 내 입맛에 맛는 책들 위주로 읽게 되는데 직접 읽지 못하는 책들은

종종 책을 소개하는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만남을 가지곤 한다. 이 책은 직장, 마음, 미술, 사랑,

여행, 사회, 음식, 교육, 역사, 인물이라는 10개의 주제에 걸쳐 100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인문학이란

커다란 관점에서 저자의 개인적인 책에 대한 감상을 담고 있다. 이런 책을 보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내가 본 책이 몇 권이나 소개되어 있는가 하는 것인데,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필두로 해서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 로렌 슬레이터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곽금주의 '도대체 사랑',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 사회학',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까지 총 8권이었다. 음식이나 교육 등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분야의

책들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 선방한 결과로 보이는데 과연 내가 읽었던 책들에 대해선 어떤 평가를

했는지, 안 읽은 책들은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기에 이 책에 수록된 것인지 궁금했다.

 

사실 이 책은 책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것보단 저자 개인의 감상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어쩌면

책을 소개하는 책이라기보단 책에 대한 에세이집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김현의 '행복한 책 읽기'와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데, 서문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상처와 위안,

희망에 관한 저자 자신을 위한 책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공감이 가는 부분들도 있고 나완 좀 생각이 다르다고 느낀

부분들도 있었다. 100권을 똑같은 비중으로 소개한 건 아니고 좀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한 책들과

(흰색 종이) 서평 형식으로 간략하게 소개한 책들(회색 종이)로 구분되었는데 흰색 종이의 책들에는

마지막 부분에 독서법과 팁을 적어 놓아 책을 직접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솔직히 저자인 최진기 강사를 이 책을 보기 전에 잘 몰랐는데 유명한 인문학 강사이면서도

나름 파란만장한(?)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인 것 같았다. 책을 읽는 것이 결국 책과 독자

간의 대화라고 본다면 독자의 삶과 인생관, 경험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통해 저자 자신의 감상을 잘 드러낸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인문학 서적들을 나름 소화하여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 게 아닌가 싶다. 몇 권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공통 분모였던 8권이 시간이 지나면 최소 두 자리 숫자로 늘어나 있을 것 같다.

209 가만히 생각하면 미숙한 운전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 못지않게 미숙한 사랑으로 발생되는 사고도 위험한 것 같습니다. 운전과 사랑의 공통점은 행위 당사자인 자신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커다란 상처를 준다는 것이죠.

258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내가 왜 어디를 가게 되었는가를 먼저 생각해보는 여행이 되어야 진짜 좋은 여행이 됩니다. 여행을 가는 이유는 여행 자체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여행을 가고 난 이후에 여행 전과 내가 달라지고 싶어서 아닌가요?
저는 여행을 ‘마음의 성형 수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형을 하는 이유가 성형 자체 때문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형을 하는 이유는 성형 이후의 삶이 성형 이전의 삶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여행 이후의 삶이 여행 이전의 삶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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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 도시의 풍경에 스며든 10가지 기념조형물
백종옥 지음 / 반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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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독일 여행을 갔을 때 본의 아니게 쾰른에 오래 머무면서 나름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여행 계획을 짤 때 베를린도 넣고 싶었지만 교통편이 좀 불편해서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는데

독일의 수도이자 분단과 통일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베를린을 안 가보고 독일을 제대로 안다고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 책은 베를린에 소재하는 10곳의 기념조형물을 소개하면서 그곳에 담겨져 있는

의미와 함께 역사를 어떻게 공공미술로 승화시켜 국민들이 잊지 않도록 만드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념조형물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에 설치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예술적으로 형상화되었을 때 훨씬 설득력이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며, 그것은 이른바

'장소 특정적 미술'로서의 기념조형물이라고 말하면서 베를린이 바로 장소의 맥락과 의미에 적합하게

설치된 기념조형물들의 좋은 사례들을 만날 수 있는 도시라고 얘기한다. 일상적인 풍경과 단절되지

않도록 제작, 설치된 방식을 저자는 '도시의 피부에 스며드는 방식'이라고 정의하면서 이런 형식이야말로

기념조형물이라는 '예술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적절하고, 도시의 피부 깊숙이 침투하지 못하고 겉도는 기념조형물은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과 무관한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베를린 시내에 산재한 10곳의 기념조형물들을 자세히 소개하는데, 전쟁의 비극을 묵상하는

신위병소인 노이에바헤, 분서의 흔적으로 베벨 광장의 지하의 텅 빈 도서관, 홀로코스트를 추모하는

코라베를리너 거리,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죽음으로 가는 역이었던 그루네발트역의 17번 선로,

베를린 시내 곳곳에 있는 나치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석을 만든 슈톨퍼슈타이네 프로젝트, 

탐 크루즈 주연의 영화 '작전명 발키리'로도 유명한 히틀러 암살미수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슈타우펜베르크 거리, 유대인 강제이송을 담당했던 아이히만의 반인륜적 범죄를 상기시키는

실슈트라세 정류장, 냉전으로 인한 분단의 상징이었넌 체크포인트 찰리와 추모공원이 된 베를린

장벽 지역, 유명 관광지로 변모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까지 베를린 시내에 있는 독일 현대사의

적나라한 사건들을 기념하는 조형물들의 의미와 가치를 잘 보여주었다.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잘못을 잊지 않으려는 독일의 역사의식이 잘 드러났는데 이웃에 있는

나라와는 참 다른 성숙한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천편일률적으로 우뚝 솟은 

탑을 기념물로 만들곤 하는데 이런 기념물들에 과연 제대로 된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저자의 말대로 기념조형물에는 도시의 역사가 녹아 있어야 하고, 그 역사에 대한 기억이

설명적인 수준을 넘어 특유의 예술적 감성과 형식으로 승화되어 있어야 함에도 우리나라의 기념

조형물들에는 제대로 된 철학과 역사의식, 미적 감각이 부족해보이는 건 애초에 기념조형물을 만드는

단계에서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사실 체크포인트 찰리부터 이스트사이드

갤러리까지 마지막에 등장하는 삼총사는 나름 유명 관광지라 베를린 갈 기회가 있으면 들를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 장소들은 일부러 마음 먹지 않으면 가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베를린

시민들의 일상 속에 역사적인 기념조형물들이 함께 존재하면서 과거를 잊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는 조지 산타야나의 말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는데 우리도 기념조형물들을 만들 때 이 책에서 소개된 베를린의 사례들을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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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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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는데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워낙 심해서 아직도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는 무관한 먼 나라 사람들의

일로만 치부하곤 한다. 나도 어쩌다 가끔씩 부의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하면 좋을까 생각할 때가 있지만

나 살기도 힘들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어서 결국에는 방관자로 침묵하게 된다. 이런

어려운 문제에 대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로 가난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던

장 지글러가 이번에는 이 책에서 손녀 조라와 주고 받는 문답 형식으로 가난이 사라지지 않는

근본 원인을 밝혀내고 있다.

 

장 지글러는 이 책에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가난으로 고통을 겪는 근원적인 이유로 자본주의를

들고 있다. 극히 적은 소수를 위한 풍요와 대다수를 위한 살인적인 궁핍을 만들어낸 자본주의가

'식인 풍습'을 만든 주범이라고 극언(?)에 가까운 말을 하면서 자본주의의 탄생부터 그 역사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사회조직 형태로서의 자본주의는 적대적인 사회 계급 간의 수백 년 묵은 투쟁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마르크스의 이론에 기초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초기 자본 축적 단계에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사람들을 착취하며 이룬 부를 바탕으로 현재의 자본주의 질서를 구축했음을

잘 보여줘서 자본주의의 태생 자체가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과 절망, 고통의 대가임을 알려주었다. 

한편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원리인 사유재산권 개념이 중대한 실수라는 흥미로운 주장도 한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가 사유재산권을 신성불가침적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자본주의자들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토대를 마련해주었다는 것인데 자본주의의 기본 토대 자체를

부정하여 놀라우면서도 나름의 논리를 제시했다. 독점화와 다국적화의 두 가지 특성으로 대변되는

금융자본의 힘은 초기 자본주의가 자본을 축적하는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소위 남반부 국가들로

불리는 가난한 나라들의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현대 소비사회의 욕망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그들의 만행에 눈 감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직 이익 추구만을 하는 자본주의자들의

횡포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이에 분노한 사람들이 프랑스 대혁명 당시처럼

봉기하여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으로 마무리한다. 자본주의를 지구상의

모든 병폐의 근원으로 제시하면서 나름의 자세한 설명을 해주는 점에선 그동안 간과했던 부분들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자본주의의 대안이나 그 구체적인 해결책 등은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도 분명 존재했다. 여전히 신자본주의 세력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라 세계적인 빈부

격차는커녕 국내 빈부격차 문제도 해결하기가 힘들지만 자본주의의 태생적인 문제와 현재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손녀에게 쉽게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잘 알려준 책이었는데 저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본주의가 완전히 파괴된 새로운 세상인 유토피아가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의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이에 맞서는 저항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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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대통령의 위트 - 조지 워싱턴에서 조지 W. 부시까지: 1789~2000, 미국 대통령들의 재기 넘치는 명코멘트와 일화
밥 돌 지음, 김병찬 옮김 / 아테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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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미국 대통령이 워낙 특이한(?) 인물이라 그렇지 상당수의 미국 대통령들은 나름의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들로 보였다. 사실 우리 정치에선 그다지 유머나 위트가 중요하지 않지만 미국 정치에서는 유머나

위트 능력이 정치인의 필수 덕목 중 하나로 보이는데 이 책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위트와 유머 순위를

매기면서 그들의 어록 내지 일화를 소개하고 있어 과연 누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흥미를 자아냈다.

저자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다가 빌 클린턴에게 패배해 낙선했던 밥 돌 전 상원의원이어서 나름 미국

현대 정치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기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는데 그가 미국 역대 대통령 41명과

(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22대와 24대 대통령을 역임해

총 41명임) 이 책을 쓸 당시가 2000년 대선 직전이어서 곧 대통령이 될 예비 주자였던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까지 총 43명에 대한 저자 나름의 유머와 위트 평가가 적나라하게 소개된다. 

 

전직 대통령 41명을 '경지에 이르다', '양키 위트', '솔직담백, 과장, 무표정', '클래스룸 유머리스트',

'평균보다는 더 재미있는 대통령', '사람들 생각엔 재미없었던 그들', '고집불통', '농담거리 신세'라는

크게 8개의 범주로 구분하고 있는데, 영예(?)의 첫 번째 소개된 대통령은 바로 에이브러햄 링컨이었다.   

사이가 안 좋던 조지 매클랠런 장군이 링컨을 놀려먹으려고 '암소 6마리를 포획했으니 어떻게 할까요'

라고 전문을 보내자 링컨은 '장군, 우유를 짜시오'라고 답신을 보내지 않나, 자신의 가족들이 전쟁에서

희생한 전쟁영웅이라면서 자신의 아들을 대령으로 임명해달라는 청탁에 '부인의 가족은 이 나라를

위해 충분히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할 때입니다'라고 대답하는 등 링컨은

곤란한 상황도 유머와 위트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대부분 유력한 후원자들의 청원서를

첨부한 사면 요청을 받다가 이런 청원서가 전혀 없는 사면 요청에 비서에게 이 사람은 친구가 없는지

물어본 후 없다고 하자 본인이 친구가 되겠다며 사면에 서명하는 모습이나, 노예제도 옹호론자에게

'누구든지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주장을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노예를 시켜 보면 어떨까

하는 강한 충동이 생깁니다'라고 일침을 놓는 장면 등 역시나 링컨의 명성에 어울리는 일화들이

가득했다. 링컨 외에 최상급의 평가를 받은 사람은 레이건과 두 명의 루스벨트(프랭클린과 시어도어)가

선정되었다. 나름 미 대통령들을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으니 19세기의 대통령들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각자의 유머와 위트 관련된 사연들과 함께 만나니 훨씬 친근감이

느껴졌다. 유머나 위트가 대통령의 업적이나 능력과 꼭 비례하는 건 아니었지만 거의 최하위권의

대통령들이 거의 모르는 대통령들로 채워져 있는 걸 보니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워낙 많은 권한과 책임이 따르는 자리이다 보니 유머와 위트가 없이는

정말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유머와 위트를 가진 대통령은 이를 잘 수행해냈고 그렇지 못한

대통령은 여러 모로 어려움을 겪은 듯 했다. 마치 만담이나 유머집이라 할 정도로 나름 소소한 재미를

주면서도 미 대통령들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는데 우리의 대통령과 정치문화도 좀 더 

독설만 주고 받는 막장정치가 아닌 유머와 위트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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