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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ㅣ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평점 :
조선왕조실록은 워낙 여러 사람들에 의해 정리되어서 역사서로는 단골 소재이기 때문에 많은 종류의
책들이 범람하고 있는데 박영규의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책을 봤지만 내가 즐겨 보는
이덕일 작가표 조선왕조실록이 나온다고 하니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한국 주류 사학계의 식민사관에 기초한 조선왕조실록이 아닌 새로운 시각에 의해 해석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분명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과는 다른 관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 책에선
조선왕조실록의 가치를 먼저 언급한다. 동시대의 중국 왕조의 정사인 '명사', '청사고'가 후대 왕조에서
편찬한 것인 반면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가 직접 편찬한 것이라면 점, 위 중국 정사들이 기전체인 반면
조선왕조실록은 편년체라는 점, 살아있는 권력의 간섭을 막기 위해 후왕도 실록을 볼 수 없도록 한 점
등 조선왕조실록은 중국 정사들과는 다른 독자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왕 시절 동북면 병마사였던 이성계가 토지 개혁 상소문을 올린 사건으로 얘기를 풀어가는데,
그 당시 별의 변고가 많아 서운관에서 변방에서 군사들의 난이 일어날 거란 점사를 내놓았지만
우왕과 중방은 이를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이성계의 등장을 예언한 거라 볼 수 있었다.
격구 천재였던 이성계의 청년 시절 에피소드 등 이성계에 대해 잘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출생지인 화령 흑석리를 식민사학에선 함경도 영흥으로 보고 있으나 이 책에선 두만강 건너
알동지역으로 보고 있다. 이성계의 어머니가 원나라 출신인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충렬왕
이후 고려 왕실이 원나라와 혼인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점도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 배운 용비어천가에 나오던 해동 육룡 중 목조(이안사), 익조(이행리), 도조(이춘),
환조(이자춘)의 이성계 직계 조상들의 얘기도 자세히 알 수 있었는데 이성계가 이자춘의 서자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처음 알게 되었다. 조선 건국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선 당연히 고려의 멸망 과정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공민왕 시대부터 얘기가 전개된다. 원나라 말기의 어수선한 중국 정세의
틈을 이용해 공민왕이 나름 국토 수복과 개혁을 시도했지만 자신이 믿고 힘을 실어줘서 개혁을
추진하던 신돈을 제거하면서 고려는 희망의 끈을 놓게 된다. 공민왕의 암살 후 우왕이 즉위하면서
다시 과거로 회귀하게 되는데 여기서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의 결정적 사건인 위화도 회군이 일어난다.
요동 정벌을 둘러싼 두 세력의 대결은 결국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는데 이 책에선 요동정벌이 허황된
구호만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개혁을 내세운 이성계와 신흥세력이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의
논리로 회군한 것은 이후 조선시대의 사대주의의 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역성혁명을 일으킬
명분으로는 민망할 나름이었다. 암튼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와 정도전 일파는 차츰
반대세력을 제거해나가지만 위기의 순간도 적지 않았다. 고려 충신으로 널리 알려진 정몽주가
거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이성계의 역심을 깨닫지만 이방원의 신속한 결단이 결국 조선 왕조의
문을 열게 만들었다. 전에는 막연하게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가 정권을 잡아 순탄하게 조선을
개국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조선왕조의 탄생까지 여러 우여곡절과 긴박한 순간들이
있었음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새 왕조가 시작되지만 이성계가 후계자 선정에 악수를
두면서 다시 골육상쟁의 피바람이 불게 된다. 이 와중에 북벌론이 제기되고 실제 상당한 준비까지
되었는데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어긋난
일은 다시 어긋날 수밖에 없는 법이라고 대의명분보다는 권력을 탐하는 세력이 이를 가만두지 않아
결국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서 내부분열로 또 한 번 북벌의 꿈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한국사를
보면 늘 내부의 권력 다툼이 더 큰 일을 도모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의 정권교체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건 현재까지 한반도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든 원인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이성계는 자신을 낮추는 섬김의 리더십으로 새왕조를 창조하는 대업을 이루지만 자기 집안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불행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이 책을 통해 고려 말 조선의 건국과정과 조선
초기의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있었는데 역시나 이덕일 작가의 책은 물 흐르듯 술술 읽혀서 역사책을
읽는 건지 소설책을 읽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제 시작된 조선왕조실록 시리즈가 순서대로
잘 나와서 조선 역사를 참신한 시각에서 재조명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