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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1 -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 : 미술하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ㅣ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6년 5월
평점 :
본의 아니게 역주행을 하게 되었던 '난처한 미술 이야기' 시리즈가 드디어 시작편인 1권에 도착했다.
애초에 역주행을 하게 된 게 서양미술은 르네상스 이후부터나 볼 게 있지 중세 이전은 따분한 종교
미술이나 다룰 거라 생각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우연찮게 회사 도서실에 6권까지 구비되어 있는
바람에 이미 읽었던 6권 이전인 5권 이탈리아 르네상스편만 읽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5권을 읽고 나니
이전인 4권 중세미술도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서 보게 되었고 중세미술에 대한 편협했던 시각을 되돌아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3권 초기 기독교 문명편을 거쳐 2권 그리스, 로마시대까지 이르렀고
이제 마지막으로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미술편까지 오게 되었다.
원시 시대 미술은 우리가 박물관에서 흔히 보는 빗살무늬토기와 주먹도끼로 시작한다. 이런 물건들은
생활 도구로 생각했지 예술품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는데 대칭인 주먹도끼의 섹시함(?)이나 빗살
무늬토기의 다양한 무늬에서 미술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고 얘기한다. 흔히 원시미술은 동굴벽화에서
그 기원을 찾는데 라스코, 알타미라, 쇼베 동굴벽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다. 동굴벽화를
그린 이유에 대해선 흔히 사냥감의 증가를 기원하는 의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세계관을 표현하는 나름의
상징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비롯해 구석기 시대 비너스들을 만난 후
호주 원주민 미술을 살펴보는데 전에 몰랐던 새로운 벽화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4월부터 시작될
국립중앙박물관 오세아니아 예술 전시가 더욱 기대가 되었다. 이러한 원시미술은 고갱, 피카소 등
근현대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우리도 울산 반구대 암각화 등 원시미술에 나름의 지분이 있었다.
고대 미술에선 역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빼놓을 수 없는데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그 당시 환경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를 해준다. 고대 이집트 미술은 완벽성과 불변성으로 대변되는데 정면성의 원리나 그리드
기법 등이 대표적이다. 그림이 규칙에 맞춰 그리는 글자와 같은 기록 매체라면 조각은 영혼의 안식처로
여겼다는 점도 특색이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대표하는 피라미드의 경우 많은 노예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책에선 노예가 지은 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 농한기에 지었고 오히려
농사일이 없어 놀던 백성들에게 일정한 소득을 얻게 하는 복지 제도에 가까웠고 몸보신하라고 당시의
보약인 마늘도 주었다는 놀라운 반전을 들려준다.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란 이름은 모두 그리스에서
온 거란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고대 이집트와 관련한 기록이 그리스를 통해 전해지다 보니
원래 이집트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피라미드는 메르, 스핑크스는 지평선의 호루스)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화려했던 고대 이집트 미술의 향연을 만끽한 후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견줄 수 있는 우리의 장군총 등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다룬다. 마지막으로 메소포타미아 미술은 앞서
본 이집트와는 또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특히 종교적인 측면에서 이집트가 내세을 중요하게 여긴
반면 메소포타미아는 현세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런 점이 미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관련해선 특히 2023년 베를린 여행 때 갔던 페르가몬 박물관에서 봤던 신바빌로니아의 수도바빌론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이슈타르문이 소개되어 더욱 반가웠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미술품들은 그나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예전에 운영했던 이집트실과 메소포타미아실의 기억이 남아
있어 낯설지는 않았다. 이렇게 서양미술의 뿌리까지 살펴보았는데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미술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해주었기에 '호모 그라피쿠스'라는 용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음을 제대로 보여준
책이었다. 이제 역주행은 끝이 났고 르네상스 이후와 바로크 시대를 다룬 7, 8권으로 정주행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