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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앨런 그린스펀.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지음, 김태훈 옮김, 장경덕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2월
평점 :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나라인 미국의 역사는 그 자체가 자본주의의 역사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비교적
짧은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미국이 어떻게 자본주의의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했는지를 제대로
보여줄 거라 기대가 되었다. 특히 저자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20년간 경제 대통령 역할을
해왔던 앨런 그린스펀인지라(공저자로 에이드리언 울드리지도 있음) 전문가의 시선에서 과연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미국이 독립한 1776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총 12장에 걸쳐 시대의 흐름 순으로
살펴보고 있는데 감수자의 말처럼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는 한 마디로 창조적 파괴의 대서사시로 볼
수 있었다. 미국이 탄생할 때 미국은 여러 가지로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는데 먼저
아버지로 산업혁명을 이끈 영국을 두었고(역시 금수저를 이길 순 없다ㅋ), 계몽시대에 탄생했으며
종교개혁의 적자로서 재산권 보호를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여겼으니 그야말로 좋은 조건을 타고났다.
이 책에선 생산성, 창조적 파괴, 정치라는 세 가지 주제에 맞춰 미국 자본주의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
중에서도 역시 창조적 파괴가 미국 자본주의의 역동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었다. 먼저 건국 초기인
1776~1860년까지는 상업공화국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초창기 상황을 정리하는데 당시 산업적
근대화를 추구하는 진영과 노예제를 바탕으로 한 농업사회를 추구하는 진영이 대립하였다. 상업공화국을
지향한 해밀턴과 농업사회로 보존되기 원한 제퍼슨의 대립은 결국 남북전쟁을 통해 자본주의의 승리로
귀결되는데 이후 1865~1914년까지 자본주의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대를 맞게 된다. 폭넓은 분야
에서 근본적인 혁신이 도래한 시대로, 새로운 원자재(강철), 새로운 기본 원료(석유), 새로운 동력원
(전기), 새로운 개인 이동 수단(자동차), 새로운 통신 수단(전화)이 혁신의 동력이 되었다. 이 시기엔
거인이라 부르는 사업가들이 대거 출현했는데, 예전에 봤던 '타이쿤'의 주인공들이었던 카네기, 록펠러,
모건, 굴드를 비롯한 여러 재벌들이 등장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자유방임주의시대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윌슨과 같은 활동가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하딩, 쿨리지 등 행동주의를 자제하는 복지부동형
대통령도 있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던 미국은 1920년대 다시 호황을 맞는데
생산성 개선, 서비스 부분의 성장과 도시의 부상에 따른 경제 현대화, 전기 등 자유방임주의 시대에
이뤄진 위대한 혁신의 민주화와 보급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시대였다. 이러한 유례없던 호황도 대공황
시대에는 속수무책이었는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했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 책에선
미국을 구한 건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시호황이었다. 전후 1945~1970년까지는 다시 성장의 황금기를
맞이한 후 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의 과정을 거쳐 80년대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고, 규제 완화와 세제
개편으로 대표되는 레이거노믹스로 다시 낙관의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PC 혁명과 인터넷 혁명으로
하이테크 경제의 중심이 된 미국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대침체를 겪게 되면서 예전과 같은 역동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 자본주의를 이끌고 온 창조적 파괴가 예전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는데, 창조적 파괴의 비용이 혜택보다 명백한 경우가 많고,
창조적 파괴는 자기를 무력화시키며, 때로 파괴만 하고 창조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보니 더 이상 창조적
파괴를 시도할 수 있는 용기도 없고 그럴 여건도 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비대해진 복지제도와 부실
하게 수립된 규제가 미국의 잠재력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러한 족쇄를 벗는 데 필요한
열쇠는 가졌지만 그 열쇠를 돌릴 정치적 의지를 가졌는지 여부가 중대한 문제라며 이 책을 마무리한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의 경제사를 한 권으로 정리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이 책은 그 큰 흐름을 여러 자료와 사례들을 통해 잘 정리해내면서 창조적 파괴가 미국 경제의 원동력
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개척 정신과 창의성이 오늘날의 미국이 있게 한
힘이라 할 수 있는데 실패가 허락되지 않는 우리 사회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