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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시간여행자를 위한 문명 건설 가이드 -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도구와 기계의 원리
라이언 노스 지음, 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시간여행은 SF 스타일의 콘텐츠들의 단골 소재라서 워낙 다양한 버전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그다지
새롭지는 않은데 이 책은 길 잃은 시간여행자를 위한 문명 건설 가이드라는 제목을 달고 있어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했다. 인간의 문명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닌데 지금의 문명을
누리는 건 쉽지만 자신이 누리던 문명을 혼자서 재현해보라고 하면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흥미롭게도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혹시나 못 돌아오게 될 경우
이 책을 참조해서 문명을 건설해보라는 독특한 설정을 하고 있어 이 책만으로 과연 길 잃은 시간
여행자가 과거에서 현재의 문명을 재현해낼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먼저 초보 시간여행자가 자주 묻는 질문이 나오는데 시간여행자가 과거를 바꾸면서 이후의 역사도
바뀌는 게 아닌가 하는 점에 대해선 새로운 타임라인이 생성된다고 답변하여 평행우주론에 가까운
세계관을 가진 듯 했다. 정작 타임머신을 고치는 방법은 없다고 하고 총 17챕터에 걸쳐 문명을 건설
하는데 필요한 유용한 기술들을 알려주는데 먼저 자신이 도착한 과거의 시점이 어느 때인지부터
알아보는 순서도로 시작한다. 문명의 5가지 핵심 기술로는 음성 언어, 문자 언어, 수 체계, 과학적
방법, 잉여 열량의 5가지를 제시하는데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것들부터 다시
만들면서 시작해야 한다면 정말 가깝하기 짝이 없을 것 같다. 인류가 탄생해서 위 5가지 기술을
갖추기까기 걸린 시간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5가지 기술 없이 살았던 기간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시간여행자 자신이 이미 위 5가지 기술을 어떻게든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과거의 어느 시점에 불시착했는지 모르지만 도착한 곳의 인류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들에게
현재 인류의 문명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인데 거기서 살아남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알려주는 방법들은 꼭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불시착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흔히 얘기하는 무인도에 혼자 남겨졌을 때 생존하는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 책에선 단순히
생존하는 걸로는 만족하지 않고 문명 건설에 도전하라고 하니 너무 꿈이 거창한 것 같기도 했다.
암튼 농부가 되는 방법, 야생에서 식용 동식물을 구별하는 법, 당신의 문명에 유용한 동식물 목록,
죽기 싫으면 반드시 챙겨야 할 기초 영양소 등 일단 생존에 필요한 필수 기술들로 시작한다. 이
단계를 지나면 도구와 기술들을 발명하는 단계가 나오는데 빵, 술, 소금, 유리 등 비교적 단순한(?)
것들은 물론 증기 기관, 배터리, 변압기, 시계, 온도계 등 과연 직접 만들 수 있을까 싶은 것들의
제작 방법까지 알려준다. 이렇게 기술, 화학까지 배우고 나면 더 고상한(?) 철학, 미술, 음악까지
도전하고 마지막으로 컴퓨터까지 만드는 단계에 이르게 되니 책 제목 그대로 문명을 건설하는
최소한의 지식을 총망라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들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그냥 사용하고 즐기면 되는 거지만 이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면 결코 쉽지 않을 것인데 그런 상황이 된다면 과연 만들려는 시도 자체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만 없으면 또 없는 대로 살 수도 있는 것들이 많아서
없는 환경에 적응하고 사는 게 훨씬 쉽게지만 문명의 이기를 맛본 사람이 그 부재를 견디며 살기도
쉽지는 않을 듯 싶다. 암튼 문명에 꼭 필요한(?) 온갖 도구와 기계의 원리들을 총망라하면서 그
역사도 간략하게 알려준 책이어서 정말 특별한 설정이라 할 수 있었는데 예전에 읽었던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도 일맥상통하는 느낌도 들었다. 이 책에서 배운 기술들을 실제 써먹을
일은 거의 없겠지만 혹시나 시간여행을 갈 날이 오면 이 책을 꼭 가지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