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
마크 펫.게리 루빈스타인 지음, 노경실 옮김 / 두레아이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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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6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는 없다

―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

 마크 펫·게리 루빈스타인 글

 마크 펫 그림

 노경실 옮김

 두레아이들 펴냄, 2014.4.30. 12000원



  고단하거나 졸릴 적에 애써 참으며 설거지를 하다가는 그만 손에서 접시나 그릇이 미끄러져서 개수대로 쿵 떨어집니다. 자칫하면 애먼 접시나 그릇이 깨집니다. 밥을 지을 적에 늘 홀가분한 몸과 마음이 되어 노래하는 숨결일 때에 맛난 밥을 지어요. 다 먹은 그릇하고 접시를 치울 적에도 언제나 홀가분한 몸하고 마음이 되어 노래하면서 수세미를 쥐지 않는다면 날마다 접시를 깨고 맙니다.


  어른하고 대면 조그마한 손이랑 발인 아이들이 개구지게 놀다가 소꿉을 떨어뜨립니다. 세발자전거를 둘이 올라타면서 오랫동안 놀았는데, 낡은 세발자전거는 이제 두 아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앞바퀴가 폭삭 주저앉습니다. 아이들이 마당하고 고샅에서 마음껏 달리면서 놀다가 그만 자빠지거나 엎어집니다. 소매도 무릎도 흔히 구멍이 납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 베아트리체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 대신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라고 부릅니다. 베아트리체가 실수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죠. (7쪽)



  마크 펫 님하고 게리 루빈스타인 님이 함께 빚은 그림책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두레아이들,2014)를 읽습니다. 도무지 잘못이라고는 저지르지 않는다는 아이가 나오는 그림책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아이는 누구라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요. 아이는 잘못이라고는 모르니까요. 어른들이 아이를 바라보며 “너 잘못했어!” 하고 말하니까 아이는 멀뚱멀뚱 어른들을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아, 이렇게 하면 싫어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걸음마를 떼는 아이가 넘어진들 잘못이 아닙니다. 힘이 여린 아이가 물건을 떨어뜨린들 잘못이 아닙니다. 한창 말을 익히거나 글을 배우는 아이가 소리가 샌다든지 글씨를 틀리게 쓴들 잘못이 아닙니다. 참말로 아이한테서 잘못이라고 할 만한 대목이 없습니다.




누나와 달리 레니는 실수투성이며, 엉뚱한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크레파스를 먹거나 통조림 콩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거든요. 두 발 대신 두 손으로 춤을 추거나, 두 손 대신 두 발로 피아노를 치기도 합니다. 레니는 실수하는 걸 겁내지 않거든요. (8쪽)



  우리 어른한테는 잘못이 있을까요? 우리 어른은 어떤 잘못을 저지를까요? 아이를 큰소리로 나무란다든지, 아이한테 회초리를 드는 일은 잘못일까요 아닐까요. 아이가 한 일이 아닌데 아이를 몰아세운다든지,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 섣불리 아이를 꾸짖는다면, 이런 몸짓은 잘못일까요 아닐까요.


  잘과 잘못을 나누는 눈길은 좋다와 나쁘다를 나누는 눈길입니다. 좋다와 나쁘다를 나누는 눈길은 이것과 저것을 가르는 눈길입니다. 이것과 저것을 가르는 눈길은 온누리를 두 가지 틀로 잘라서 옭아매는 눈길입니다.


  접시는 깰 수 있고,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질 수 있고, 큰소리로 왁왁거릴 수 있고, 밥을 태울 수 있고, 골을 부릴 수 있고, 책을 찢을 수 있고, 주머니에 구멍 난 줄 모르다가 돈을 흘릴 수 있고, 놀다가 시간 가는 줄 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하고 놀이는 언제나 다르면서 새로운 삶입니다. 이른바 경험이라고 합니다. 이 경험을 했다고 좋다고 여길 수 있고, 저 경험을 했으니 나쁘다고 여길 수 있을 텐데, 좋고 싫음을 떠나서 차분히 바라볼 수 있으면 마음도 새로울 수 있어요.




음악이 멈췄습니다. 베아트리체는 어쩔 줄을 몰랐어요. 울어 버릴까? 무대 뒤로 숨어 버릴까? 사람들도 많이 놀라 숨죽이고 무대를 쳐다보았습니다.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가 실수를 하다니! (23∼24쪽)



  아이는 무엇이든 스스로 하면서 배웁니다. 어른도 밥을 짓다가 그만 부엌칼에 손가락을 베면서 밥짓기를 새삼스레 더 배우기도 합니다. 어른도 낫질을 하다가 그만 낫날에 손가락을 베면서 풀베기나 나락베기를 새삼스레 더 배우기도 해요.


  그릇을 떨어뜨려 깨는 사이에 한 가지를 배웁니다. 아이들이 재미나게 놀다가 그만 툭탁거리는 사이에 스스로 한 가지를 배웁니다. 낮잠을 안 자고 밤잠도 건너뛰면서 놀려고 하는 아이들은 문득 코피가 터지면서 새삼스레 한 가지를 배웁니다. 가을이 저물며 겨울 문턱에 다다를 즈음 바람결이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새롭게 한 가지를 배워요. 추운 날 굳이 얇게 옷을 입겠노라 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찬바람을 쐬어야 비로소 두꺼운 옷을 입든 여러 벌을 껴입든 하면서 배웁니다.




베아트리체는 (햄스터) 험버트를 올려다보고, 험버트는 베아트리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흠뻑 젖은 험버트의 털에 찢어진 풍선 조각들이 잔뜩 묻어 있었어요. 베아트리체가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낄낄거리며 웃다가 결국 크게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25쪽)



  그림책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는 사랑스러운 이야기 한 가지를 들려줍니다. 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문득문득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면서 배운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아이도 어른도 똑같은데, 어떤 일을 했을 적에 꼭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어요. 그저 겪어 보는 일입니다. 처음으로 겪는 일이고, 갑작스레 겪는 일이에요.


  그러니, 아이들이 어떤 일을 겪거나 치르든 차분하게 바라보면서 따스하게 안아 줄 수 있어야 슬기롭게 배워요. 어른들도 어떤 일을 겪거나 치르든 차분하게 마주하면서 포근하게 어루만질 수 있어야 사랑스럽게 배워요.


  때때로 어떤 어른들은 자꾸 바보짓을 일삼기도 하는데, 게다가 바보짓을 일삼으면서 아무것도 못 배우는구나 싶기도 하는데, 이런 어른들은 아직 사랑을 모르기에 바보짓을 하리라 느껴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모르고, 바보스러운 어른이 이녁을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모르기에 자꾸 바보짓을 할 테지요. 4348.1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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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 꿈꾸는 작은 씨앗 14
길상효 글, 조은정 그림 / 씨드북(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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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59



숲과 시골에서 태어난 빛깔말

― 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

 길상효 글

 조은정 그림

 씨드북 펴냄, 2015.8.30. 11000원



  나는 어머니한테서 말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한테서 말을 배웠습니다. 여기에 우리 형도 나한테 말을 가르쳐 주었어요. 내가 쓰는 말은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형한테서 하나하나 물려받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와 곁님한테서 말을 물려받습니다. 나와 곁님은 우리 아이들한테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서 저마다 예전에 물려받은 말을 차곡차곡 물려줍니다. 먼먼 옛날부터 이러한 결대로 흘렀어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스승입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반가운 님이에요.



이름 없는 것들에게 첫 이름을 지어 주신 내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들께 (앞머리)




  길상효 님이 글을 쓰고, 조은정 님이 그림을 빚은 《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씨드북,2015)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시골 할머니한테 찾아가는 도시 가시내(아이)가 시골 할머니한테서 빛깔말을 하나씩 배우는 얼거리로 한겨레 빛깔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양, 노랑, 푸름, 빨강, 검정, 이 다섯 가지 빛깔이 저마다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이야기를 새롭게 엮어서 들려줍니다.



“할매 어렸을 적엔 하도 배고 고파가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가 전부 하얀 떡가루면 얼매나 좋을까 하고는 입 벌려서 받아 먹고 그랬데이.” (4쪽)




  ‘해맑은’ 웃음이나 ‘해맑은’ 목소리는 무척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해맑은 웃음은 더욱 보기 좋고, 해맑은 목소리는 더욱 듣기 좋습니다. ‘해맑다’와 함께 ‘해밝다’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두 낱말은 “하얗고 맑다”나 “하얗고 밝다”를 뜻할 텐데, 여기에서 말하는 ‘하얗다’는 바로 하늘에 뜬 ‘해’와 같은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러니, 해맑은 웃음이란 “해처럼 맑은 웃음”이요, 해맑은 목소리는 “해처럼 맑은 목소리”입니다.


  가을이 되어 나락이 누렇게 익습니다. 누런 들판을 바라보며 금빛 물결이 출렁인다고도 합니다. 우리 모두를 먹여살리는 가을 들판 ‘나락알(나락 열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샛노란’ 빛깔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잘 익은 나락(벼) 열매를 두고 ‘누렇다’ 같은 빛깔말을 씁니다만, 아직 기계나 낫으로 베지 않고 논에 뿌리를 둔 “잘 익은 나락 열매”를 보면 ‘노란’ 빛깔이에요. ‘노랗다’는 바람에 한들거리는 나락 열매 빛깔이요, ‘누렇다’는 알뜰히 베어 햇볕에 살뜰히 말릴 적에 나락 열매가 차츰 달라지는 빛깔이라고 할 만하구나 싶습니다.



“그런디, 나는 왜 푸른 것을 푸르다고 하는 줄 아나? 풀이 푸르니께 푸르다고 하는 기다.” (13쪽)




  아이랑 어버이는 언제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수수께끼 놀이를 하듯이 말을 배우고 가르칩니다. 빛깔 하나를 알려줄 적마다 빛깔하고 얽힌 말마디가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듯이 춤을 춥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날에는 누구나 시골에서 살며 온갖 빛깔이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대목을 온몸으로 알고 온마음으로 헤아렸으나,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며 빛깔말을 잊거나 몰라요. 말이 태어난 뿌리를 모르기에 아무 말이나 함부로 쓰면서 갖가지 영어가 퍼지니, 하양도 노랑도 풀빛도 빨강도 까망도 밀립니다. 말이 태어난 뿌리를 어른들도 가르치지 못하고 아이들도 궁금하게 여기지 않으니, 그야말로 아무 말이나 엉터리로 쓰면서 우리 넋을 글 한 줄에 슬기롭게 못 담기 일쑤입니다.



할머니는 시골집 뒷산에 묻히셨어요. 풀과 나무가 우거진 푸른 뒷산에요. 여기 서면 할머니 집 마당이 내려다보여요. 해가 쨍쨍한 날 빨랫줄에 널어놓은 하얀 이불 홑청이 사각사각 잘도 마르던 곳이에요. (20쪽)




  ‘푸르다’는 ‘풀’이라고 하는 숨결에서 비롯한 빛깔말입니다. 그러면 풀이란 무엇일까요? 땅에서 씨앗이 깨어나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을 올려 꽃을 피우는 숨결이 바로 ‘풀’입니다. 풀 가운데 저절로 돋으면서 사람이 먹으려고 뜯거나 캐거나 훑으면 ‘나물’이고, 사람이 밭을 따로 일구어 씨앗을 손수 심어서 얻으면 ‘남새’입니다. 나물과 남새를 아울러 ‘푸성귀’라 하지요. 그러니, 밭은 모두 ‘남새밭’입니다. 들이나 산에서 캐는 “먹는 풀”은 들나물이나 멧나물이에요. 요새는 ‘푸르다·풀’하고 얽힌 말밑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기에 ‘야채·채소’ 같은 일본 한자말이나 중국 한자말을 함부로 섞어서 잘못 쓰기도 합니다.


  새까만 열매를 맺는 ‘까마중’을 보면 ‘검다·까맣다·깜깜하다·캄캄하다’처럼 갈리는 빛깔말을 새삼스레 돌아볼 수 있기도 합니다. 구름을 보고, 새파란 하늘을 보며, 온갖 빛깔로 피어나는 들꽃을 보고, 또 알록달록 고운 나무 열매를 보면, 빛깔을 이루는 낱말은 언제나 숲하고 시골에서 태어나 숲하고 시골에서 싱그러이 자라는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을에 가을빛을 느끼고, 겨울에 겨울빛을 느끼지요. 봄에 봄빛이 새롭고, 여름에 여름빛이 눈부십니다. 크레파스에 있는 빛깔이 아니라, 우리 둘레에 있는 빛깔입니다. 눈을 들어 둘레를 살필 때에 알아차리는 빛깔이고, 우리를 둘러싼 삶터를 넉넉히 품으면서 새로 배우는 빛깔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문득 고개를 갸우뚱해 하리라 느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여느 살림집에서 가스불을 켜면 파란 불꽃이 일거든요. 나무를 태우는 빛깔일 때에 ‘붉다’를 알려줄 텐데, 도시에서는 장작불을 보여주기에는 만만하지 않겠지요. 그때에는 이 그림책 《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를 넌지시 펼쳐서 아이하고 빛깔말을 새롭게 바라보고 함께 생각해 보셔요. 4348.10.28.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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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길에서 작은 선을 주웠어요 신나는 새싹 17
세르주 블로크 글.그림, 권지현 옮김 / 씨드북(주)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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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1



네 고운 손길이 어여쁜 사랑을 이루는구나

― 어느 날 길에서 작은 선을 주웠어요

 세르주 블로크 글·그림

 권지현 옮김

 씨드북 펴냄, 2015.9.30. 12000원



  여덟 살 큰아이가 아침에 일어나더니 귤빛 실 한 가닥을 묶더니 실뜨기를 합니다. 손가락을 놀려서 이리저리 무늬를 이루더니 길쭉한 실뜨기를 보여줍니다. “자, 이거 뭐 같아?” 큰아이가 보여주는 실뜨기를 들여다봅니다. “음, 풀잎?” “풀잎? 음, 그러네. 풀잎처럼 보이네.”


  실뜨기를 할 적에 풀잎을 뜨는 사람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풀잎 무늬가 되도록 실뜨기를 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또는, 실뜨기를 하는 사람 마음속에 풀잎이 있다면 풀잎을 뜰 수 있겠지요.




주워서 살펴보니 그것은 아주 작은 선이었어요. 보잘것없는 작은 선……. 나는 선을 주머니에 넣고 따뜻하게 감싸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4∼6쪽)



  세르주 블로크 님이 빚은 긴 그림책 《어느 날 길에서 작은 선을 주웠어요》(씨드북,2015)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서는 프랑스말 ‘trait’를 ‘선(線)’이라는 한자말로 옮겼으나 ‘線’은 “줄 선”이라는 한자입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은 ‘줄’입니다. 영어라면 ‘line’일 테지요.


  아무튼, 그림책을 보면 아이가 어느 날 길에서 자그마한 ‘줄’을 하나 줍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아무 빛깔이 없으나 자그마한 줄만 빨강입니다. 다만, 자그마한 줄이 빨강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이 줄을 알아차리지 않아요. 아마 다른 사람들 가운데 작은 줄을 알아차린 사람도 있었을 테지만, 아무도 이 줄을 들여다볼 생각을 안 했고 주우려 하지도 않았어요. 오직 어느 작은 아이가 작은 줄을 알아보고는 가만히 몸을 숙여서 천천히 주웠습니다.




나는 틈만 나면 공책을 펴고 선에게 말을 걸었어요. 선은 나를 쳐다보다가 여기저기를 긁적긁적했어요. 아마 나랑 놀고 싶나 봐요. (16∼17쪽)


때때로 우리는 서로서로 곁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그럼 선은 기지개를 펴며 긴 수평선을 그렸지요. 저길 보세요! 저 멀리 뜬 배 한 척이 보이지요? (30쪽)



  작은 줄을 주운 아이는 이 작은 줄로 무엇을 할 생각일까요. 작은 줄을 주운 아이는 이 작은 줄을 어디에 놓으려 할까요.


  작은 아이는 작은 줄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학교에서 공부할 적에는 책상에 올려놓습니다. 집에서도 늘 곁에 둡니다. 작은 줄은 그야말로 작은 줄이었는데, 작은 아이가 지켜보고 살펴보고 들여다보고 마주보는 동안 천천히 자라요.


  네, 작은 줄에도 ‘목숨’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줄은 작은 아이한테서 눈길을 받는 동안 따사로우면서 씩씩하게 자라지요. 작은 아이는 작은 줄을 돌보는 너른 품이 되면서, 작은 줄하고 늘 함께 어울려 노는 동무가 되어요.




우리는(나와 선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어요.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46∼48쪽)



  작은 아이는 작은 줄을 살뜰히 아낍니다. 작은 줄도 싱그러운 숨결로 꾸준하게 자라면서 작은 아이를 알뜰히 사랑하지요. 두 넋은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합니다. 두 넋은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한길을 걷습니다.


  작은 아이는 작은 줄을 아끼는 마음을 어디에서 어떻게 배웠을까요. 아마 이녁 어버이한테서 배우거나 물려받았을 테지요. 작은 줄은 작은 아이한테서 새로 배우고 물려받는 사랑을 어떻게 건사할까요. 저 스스로 기쁘게 누리면서 작은 아이한테도 돌려주고, 이웃 누구한테나 이 기쁨과 보람을 베풀 테지요.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작은 아이하고 작은 줄은 어느덧 ‘작지 않은 어른’이 되고 ‘작지 않은 줄’로 거듭납니다. 두 넋은 오래오래 함께하면서 언제까지나 이 길을 나란히 걷는 길벗으로 지내요.




나는 오랜 친구인 선의 몸을 조금 잘라 냈어요. 아주 작은 선으로요. (74쪽)



  아이들은 작은 종잇조각에도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작은 종잇조각은 쓰레기통에 버리면 쓰레기가 되고, 이 종잇조각을 쳐다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러나, 작은 종잇조각을 가만히 손바닥에 얹어 연필로 쓱쓱 그림을 그리면 멋진 ‘그림’으로 거듭나요. 작은 종잇조각에 크레파스로 빛깔옷을 입히면 새로운 놀잇감으로 거듭나요.


  흔하디흔한 광고종이라 하더라도, 뒤쪽 하얀 자리에 곱게 그림을 그리면, 이 광고종이는 어느새 고운 그림으로 거듭납니다. 아주 깨끗하면서 고운 종이가 있더라도 쓰레기통에 버리면 쓰레기가 되고, 이 깨끗하면서 고운 종이를 쳐다보지 않고 묵히거나 처박으면 이 종이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 됩니다.


  사랑을 기울여서 사랑을 담을 때에 사랑이 됩니다. 웃음을 지으서 웃음을 담기에 웃음이 됩니다. 노래를 부르며 노래를 담으니 노래가 되어요.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하는 길은 아주 쉽습니다. 그저 사랑을 나누거나 베풀거나 함께하면 됩니다. 선물꾸러미나 케익이나 자가용이나 놀이공원이나 아파트를 베푼대서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따사롭고 너그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오로지 포근하고 넉넉한 손길로 어깨동무를 할 적에 시나브로 사랑이 되어요.


  그림책 《어느 날 길에서 작은 선을 주웠어요》는 어느 날 문득 알아차리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빚은 고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랑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삶은 늘 우리 곁에서 사랑이 됩니다. 노래는 늘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삶을 짓는 사람들 가슴속에서 피어나서 곱게 흐릅니다. 4348.10.2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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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쟁이 아기 괴물
완다 가그 글.그림, 정성진 옮김 / 지양어린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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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5



우는 아이는 사랑을 바랍니다

― 심술쟁이 아기 괴물

 완다 가그 글·그림

 정성진 옮김

 지양사 펴냄, 2010.7.7. 1만 원



  그림책 《심술쟁이 아기 괴물》(지양사,2010)을 아이들하고 재미나게 읽습니다. 이 재미난 그림책은 언제쯤 나왔을까 궁금합니다. 그림책 간기에는 그린이 완다 가그 님이 1893년에 태어났다는 이야기만 있습니다. 여러모로 더 살피니, 이분은 1946년에 쉰세 살 나이로 퍽 짧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심술쟁이 아기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그림책은 미국에서 1929년에 처음 나왔고, 영어로는 “The Funny Thing”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완다 가그 님 그림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백만 마리 고양이》는 1928년에 처음 나왔다고 하는군요. 앞으로 열다섯 해쯤 지나면 이 그림책들은 자그마치 백 해나 묵은 이야기가 되는 셈입니다.




보보 할아버지가 물었지. “안녕, 너는 어떤 동물이니?” “동물이 아니야, 나는 괴물이야.” 아기 괴물이 대답했어.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나운 목소리로 물었지. “배가 고파. 괴물이 먹을 건 없어?” (6쪽)



  그림책 《심술쟁이 아기 괴물》에는 여러 동물이 나오고, 여기에 ‘보보 할아버지’랑 괴물 한 마리가 나옵니다. 보보 할아버지는 숲에서 혼자 살며 여러 숲짐승한테 맛난 밥을 지어 주기를 즐깁니다. 어느 날 보보 할아버지가 처음 보는 숲짐승이 찾아왔기에, 보보 할아버지는 상냥하게 “너는 누구냐” 하고 묻는데, 아기 괴물은 ‘동물’ 아닌 ‘괴물’이고, 다른 숲짐승이 먹는 밥처럼 ‘맛없는’ 것은 안 먹는다면서 고개를 홱 돌립니다. 아기 괴물은 인형만 맛있어서 인형만 먹겠다고 하는데, 인형을 빼앗겨서 우는 아이들을 보면 더 맛있다면서 보보 할아버지까지 울립니다.


  저런, 보보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인형을 빼앗기면 얼마나 슬퍼할까 하고 생각하며 눈물까지 짓지만, 심술쟁이 아기 괴물은 아랑곳하지 않아요.


  이때에 내가 보보 할아버지라면, 그러니까 이 그림책을 읽는 아이나 어버이 누구나 보보 할아버지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아기 괴물한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 인형만 빼앗아서 맛있게 먹겠다는 이 심술쟁이 아기 괴물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바보스러운 아기 괴물한테 주먹을 한 방 날려서 매로 다스리면 될까요? 아기 괴물이 무엇을 하든 ‘난 너 못 봤어’ 하고 말하면서 모르는 척하면 될까요?



“인형을 잡아먹겠다고?” 보보 할아버지가 눈이 동그래지며 소리쳤어. “그래, 인형들은 아주 맛있어.” 아기 괴물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지. “안 돼, 인형들을 잡아먹으면 아이들이 슬퍼할 거야.” “그렇지만 인형은 맛있어.” 아기 괴물은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지. (12쪽)




  한참 눈물에 젖던 보보 할아버지는 이내 눈물을 거두고 생각에 잠깁니다. 보보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울지 않도록, 그리고 심술쟁이 아기 괴물한테도 맛난 밥을 지어 주고 싶어서, 여러모로 꾀를 짜냅니다. 모두가 사이좋게 어울리고, 서로 즐겁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해요.


  보보 할아버지가 머리를 짜내면서 ‘옳지!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웃습니다. 그래요. 맞아요. 아기 괴물을 윽박지르거나 나무란다고 해서 일을 풀 수 있지 않아요. 아기 괴물을 때린다고 해서 아기 괴물이 제 넋을 차릴 일은 없어요. 주먹으로 일을 풀려고 하면, 다시 주먹이 돌아오지요. 전쟁은 전쟁으로 끝내지 못해요. 모든 전쟁은 오로지 평화로만 끝낼 수 있어요.


  우는 아기를 달랠 적에 우는 아기한테 꽥 소리를 지르면 될까요?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랠 적에 고개를 홱 돌리며 모르는 척하면 될까요? 우는 아기나 떼를 쓰는 아이가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재미나고 새로우며 즐거운 길을 살그마니 보여주면 됩니다. 머리를 슬기롭게 굴려서 다 함께 재미나고 새로우며 즐거운 길을 찾으면 돼요.



“하지만 너는 말썽꾸러기 아이들의 인형만 잡아먹겠지.” 보보 할아버지가 밝게 웃으며 말했어. ”아니야, 착한 아이들의 인형을 특별히 더 잡아먹을 거야. “아기 괴물이 심술궂게 말했지. “착한 아이들의 인형들은 매우 맛있거든!” (15쪽)



  보보 할아버지는 심술쟁이 아기 괴물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요? 먼저 보보 할아버지는 심술쟁이 아기 괴물을 찬찬히 추켜세웁니다. 아기 괴물한테 달린 꼬리가 참으로 멋지다고 이야기해요. 이 말은 사탕발림일까요? 얼핏 보자면 사탕발림이지만, 가만히 보면 맞는 말이에요. 괴물 꼬리에 있는 무늬는 무척 멋지다고 할 만합니다. 모두들 괴물은 무섭거나 무시무시하다고만 여기지만, 괴물은 괴물대로 언제나 예쁘면서 멋지기 마련입니다. 괴물도, 아기 괴물도, 누구나, 참으로 마땅한 노릇인데, 아이나 어른 모두 칭찬을 받으면 즐거워요.


  보보 할아버지는 아기 괴물을 살살 칭찬합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여요. 그 멋진 꼬리가 더 멋지게 자라도록 할 만한 ‘새로운 밥’이 있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아기 괴물은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앉았지. 날마다 보보 할아버지는 새들에게 점-질을 나르게 했어. 아기 괴물의 꼬리는 자꾸 자라 온 산을 휘감았지. 아기 괴물의 즐거움은 오로지 파란 볏들이 돋아난 멋진 꼬리뿐이었지.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 “점-질은 정말 맛있어!” (30쪽)



  보보 할아버지가 새롭게 짓는 밥은 ‘새롭지 않은 밥’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숲짐승한테 지어 주는 밥을 한덩어리로 섞었을 뿐이거든요. 그러나, 보보 할아버지는 ‘아주 새로운 밥’을 짓는다고 여기면서 이름도 ‘점-질’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아기 괴물은 새로운 밥이라는 소리에 귀가 쫑긋하면서 이 새로운 밥을 아주 맛나게 먹습니다. 이 밥을 먹는 동안 아기 괴물은 ‘인형 빼앗아서 먹기’ 따위는 까맣게 잊습니다.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날마다 새롭게 읽으면서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도 이 그림책 보보 할아버지처럼 슬기롭고 사랑스러우면서 고운 마음결로 아이들하고 씩씩하게 살면 참으로 아름다웁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숲짐승을 아끼고, 언제나 아이들을 사랑하며, 언제나 아기 괴물이며 누구이든 모두 따사로이 어루만질 수 있는 너른 마음이라면, 그야말로 기쁜 삶이 되리라 느낍니다.


  우는 아이는 사탕을 바라지 않아요. 우는 아이는 매질이나 회초리를 바라지 않아요. 우는 아이는 오직 사랑을 바라요. 우는 아이한테 가만히 다가가서 가만히 안으면 어느새 울음을 그칩니다. 우는 아이를 가만히 안고서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를 뽑으며 노래를 부르면 어느새 웃음을 짓습니다.


  삶을 짓는 길은 바로 사랑입니다. 삶을 가꾸는 길은 예나 이제나 사랑입니다. 삶을 보듬으면서 곱게 돌보는 길은 이 지구별 어디에서나 사랑입니다. 사랑을 마음속에서 길어올려서 아이들하고 나누는 하루가 되면, 우리는 날마다 기쁘게 웃고 노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8.10.21.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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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풋콩, 콩나물 떡잎그림책 2
고야 스스무 글, 나카지마 무쓰코 그림 / 시금치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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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4



씨앗을 손수 심고, 밥도 손수 짓자

― 콩 풋콩 콩나물

 고야 스스무 글

 나카지마 무쓰코 그림

 엄혜숙 옮김

 시금치 펴냄, 2015.6.29. 9500원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모든 밥은 언제나 ‘밥’이었습니다. 누구나 손수 밥을 지어서 먹었고, 누구나 집에서 밥을 차려서 먹었어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은 손수 밥을 짓지 않으며, 집에서 밥을 차리지 않습니다.


  좀 먼 옛날을 헤아리면, 수수한 시골자락에서 마을을 이루며 살던 사람은 누구나 손수 흙을 일구고 열매를 얻어서 밥을 지었습니다. 이와 달리 임금이나 신하나 부자는 손수 흙을 안 일구었고 열매도 손수 안 얻었으며 밥도 손수 안 지었어요. 궁중에서 밥을 지은 사람들 이야기가 연속극으로 나오기도 했는데, 궁중에 있는 사람(거의 모두 사내)들은 ‘남이 차리는 밥’만 받았습니다. 게다가 ‘밥이 되기까지 흙을 어떻게 일구는가’ 같은 대목을 알지 않았어요. 공중에서 밥짓기를 도맡은 사람도 ‘흙짓기’는 하나도 몰랐겠지요.


  좀 먼 옛날에는 몇몇 권력자나 부자만 ‘밥·흙·삶’을 몰랐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몇몇 권력자나 부자뿐 아니라 여느 공무원이나 공장 일꾼조차 ‘밥·흙·삶’하고 멀찌감치 떨어집니다. 권력자나 부자는 권력자나 부자대로 ‘손에 물이나 흙을 묻힐 뜻’이 없고, 여느 공무원이나 공장 일꾼처럼 수수한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손에 물이나 흙을 묻힐 겨를’이 없습니다.



어느 봄날이었어요. 삼 형제는 옆집 할아버지한테서 콩을 10알씩 받았어요. “겨우 10알? 이걸로는 배불리 먹을 수 없는데.” “괜찮아. 밭에 심으면 늘어나거든.”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3쪽)




  고야 스스무 님이 글을 쓰고, 나카지마 무쓰코 님이 그림을 그린 《콩 풋콩 콩나물》(시금치,2015)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습니다. 수수한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을 가만히 읽습니다. 세 아이가 할아버지한테서 콩을 열 알씩 얻어서 이 콩을 심어서 거두는 삶을 천천히 읽습니다.


  세 아이는 할아버지가 건넨 콩을 처음 받을 적에는 ‘겨우 열 알’이라고 여깁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코앞에 있는 콩알은 꼭 열 알이니까요. 아직 아이들은 이 콩알이 ‘알’일 뿐 아니라 ‘씨’인 줄 모릅니다. 콩알이면서 콩씨라서, 이 씨앗을 심으면 열 알이 스무 알도 되고 백 알도 되는 줄 몰라요.



꽃이 핀 다음에 꼬투리가 주렁주렁 열렸어요. 그리고 꼬투리들은 하루하루 더 통통해졌어요. (7쪽)



  세 아이한테 콩알을 열씩 골고루 나누어 준 할아버지는 어릴 적에 어떠했을까요? 아마 할아버지도 어릴 적에는 ‘겨우 열 알?’ 하고 여기지 않았을까요? 할아버지도 어릴 적에 이녁 할아버지한테서 ‘콩씨를 심어서 새로운 콩알을 넉넉히 거두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요? 해마다 씨앗을 조금씩 불리면서 삶을 북돋우는 기쁜 웃음을 차근차근 물려받지 않았을까요?


  세 아이는 할아버지를 믿기로 합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세 아이는 씨앗심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씨앗을 심는 일은 일이면서 놀이가 되고, 놀이이면서 일입니다. 흙을 만지면서 일하는 동안 새로운 손길이 퍼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배웁니다. 남이 파는 흙이 아닌 손수 파는 흙으로 밭을 가꾸는 동안 손수 수수께끼를 내고 실마리를 풀면서 손수 배우는 삶이 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책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할아버지한테서 배우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그저 씨앗을 나누어 주고 심어 보라는 말만 해 줍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씨앗을 심어 봅니다. 그리고, 아이들 나름대로 씨앗을 길러 보기로 해요.




이남이가 더 기다리지 못하고 그만 줄기를 잡아 쑥 뽑고 말았어요. “어, 왜 그래?” “아직 다 안 익었잖아?” 일남이와 꽃님이가 말했어요. “이건 풋콩하고 아주아주 비슷해. 틀림없이 먹을 수 있을 거야!” (20쪽)



  첫 해에 콩알을 제법 많이 거둡니다. 다음해에 한 아이는 그만 콩씨 불리기를 해 놓고 까맣게 잊습니다. 그런데, 어두운 곳에 둔 콩씨에서 뿌리가 길게 자꾸 나오면서 ‘콩나물’이 되어요. 다른 한 아이는 아직 덜 익은 콩꼬투리를 보고는 벌써 콩알을 거두려 합니다. 언젠가 ‘풋콩’을 보았다면서 풋콩을 먹고 싶다 합니다.


  한 아이가 콩나물을 거두고, 다른 아이가 풋콩을 거두는 일은 잘못한 일이 아닙니다. 틀리거나 나쁜 일도 아닙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심어서 열매를 맺기까지 찬찬히 지켜보고 기다리면서 보살피는 몸짓’을 제대로 못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콩씨는 두 아이한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요. 두 아이는 콩을 새롭게 먹는 길을 깨닫습니다.


  이윽고 셋째 아이 이야기가 흐릅니다. 셋째 아이는 다른 두 아이하고 다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보살피면서 야무지게 기다립니다. 두 아이가 거두지 못한 콩알을 아주 넉넉히 거둡니다. 셋째 아이는 두 아이 몫에다가 훨씬 넉넉히 남도록 콩알을 거두어요.




꽃님이 콩은 아직도 많이 남았어요. 그래서 삼 형제는 똑같이 콩을 나눠 가졌어요. “이걸 씨앗으로 해서 더 많이 거두자!” “그래, 자꾸자꾸 불리자!” “벌써부터 설렌다!” (23쪽)



  콩을 다루어 먹는 길은 여럿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듯이 콩나물을 넣은 라면을 끓일 수 있고, 풋콩을 삶아 먹을 수 있습니다. 콩자반을 먹을 수 있고, 두부나 된장을 빚어서 먹을 수 있어요. 콩밥을 하거나 콩국수를 할 수도 있지요. 콩고물이 푸짐한 콩떡을 찧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한 가지씩 새롭게 배웁니다. 처음부터 모두 다 배우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해마다 한 가지씩 새로운 기쁨으로 배웁니다. 첫 해에 모두 다 배우지는 않아요.


  천천히 자라면서 야물게 크는 콩처럼, 아이들은 천천히 자라면서 야물고 튼튼한 아이로 우뚝 섭니다. 모든 아이는 천천히 배우면서 슬기롭게 자랍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천천히 거듭나고 천천히 빛납니다. 우리 어른도 누구나 처음에는 하나씩 새롭게 배우면서 천천히 자라는 아이였을 테지요.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함께 씨앗을 심고, 어머니 아버지하고 살림을 기쁘게 짓는 숨결이었을 테지요. 4348.10.1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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