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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길에서 작은 선을 주웠어요 ㅣ 신나는 새싹 17
세르주 블로크 글.그림, 권지현 옮김 / 씨드북(주)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1
네 고운 손길이 어여쁜 사랑을 이루는구나
― 어느 날 길에서 작은 선을 주웠어요
세르주 블로크 글·그림
권지현 옮김
씨드북 펴냄, 2015.9.30. 12000원
여덟 살 큰아이가 아침에 일어나더니 귤빛 실 한 가닥을 묶더니 실뜨기를 합니다. 손가락을 놀려서 이리저리 무늬를 이루더니 길쭉한 실뜨기를 보여줍니다. “자, 이거 뭐 같아?” 큰아이가 보여주는 실뜨기를 들여다봅니다. “음, 풀잎?” “풀잎? 음, 그러네. 풀잎처럼 보이네.”
실뜨기를 할 적에 풀잎을 뜨는 사람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풀잎 무늬가 되도록 실뜨기를 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또는, 실뜨기를 하는 사람 마음속에 풀잎이 있다면 풀잎을 뜰 수 있겠지요.
주워서 살펴보니 그것은 아주 작은 선이었어요. 보잘것없는 작은 선……. 나는 선을 주머니에 넣고 따뜻하게 감싸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4∼6쪽)
세르주 블로크 님이 빚은 긴 그림책 《어느 날 길에서 작은 선을 주웠어요》(씨드북,2015)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서는 프랑스말 ‘trait’를 ‘선(線)’이라는 한자말로 옮겼으나 ‘線’은 “줄 선”이라는 한자입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은 ‘줄’입니다. 영어라면 ‘line’일 테지요.
아무튼, 그림책을 보면 아이가 어느 날 길에서 자그마한 ‘줄’을 하나 줍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아무 빛깔이 없으나 자그마한 줄만 빨강입니다. 다만, 자그마한 줄이 빨강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이 줄을 알아차리지 않아요. 아마 다른 사람들 가운데 작은 줄을 알아차린 사람도 있었을 테지만, 아무도 이 줄을 들여다볼 생각을 안 했고 주우려 하지도 않았어요. 오직 어느 작은 아이가 작은 줄을 알아보고는 가만히 몸을 숙여서 천천히 주웠습니다.
나는 틈만 나면 공책을 펴고 선에게 말을 걸었어요. 선은 나를 쳐다보다가 여기저기를 긁적긁적했어요. 아마 나랑 놀고 싶나 봐요. (16∼17쪽)
때때로 우리는 서로서로 곁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그럼 선은 기지개를 펴며 긴 수평선을 그렸지요. 저길 보세요! 저 멀리 뜬 배 한 척이 보이지요? (30쪽)
작은 줄을 주운 아이는 이 작은 줄로 무엇을 할 생각일까요. 작은 줄을 주운 아이는 이 작은 줄을 어디에 놓으려 할까요.
작은 아이는 작은 줄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학교에서 공부할 적에는 책상에 올려놓습니다. 집에서도 늘 곁에 둡니다. 작은 줄은 그야말로 작은 줄이었는데, 작은 아이가 지켜보고 살펴보고 들여다보고 마주보는 동안 천천히 자라요.
네, 작은 줄에도 ‘목숨’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줄은 작은 아이한테서 눈길을 받는 동안 따사로우면서 씩씩하게 자라지요. 작은 아이는 작은 줄을 돌보는 너른 품이 되면서, 작은 줄하고 늘 함께 어울려 노는 동무가 되어요.
우리는(나와 선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어요.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46∼48쪽)
작은 아이는 작은 줄을 살뜰히 아낍니다. 작은 줄도 싱그러운 숨결로 꾸준하게 자라면서 작은 아이를 알뜰히 사랑하지요. 두 넋은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합니다. 두 넋은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한길을 걷습니다.
작은 아이는 작은 줄을 아끼는 마음을 어디에서 어떻게 배웠을까요. 아마 이녁 어버이한테서 배우거나 물려받았을 테지요. 작은 줄은 작은 아이한테서 새로 배우고 물려받는 사랑을 어떻게 건사할까요. 저 스스로 기쁘게 누리면서 작은 아이한테도 돌려주고, 이웃 누구한테나 이 기쁨과 보람을 베풀 테지요.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작은 아이하고 작은 줄은 어느덧 ‘작지 않은 어른’이 되고 ‘작지 않은 줄’로 거듭납니다. 두 넋은 오래오래 함께하면서 언제까지나 이 길을 나란히 걷는 길벗으로 지내요.
나는 오랜 친구인 선의 몸을 조금 잘라 냈어요. 아주 작은 선으로요. (74쪽)
아이들은 작은 종잇조각에도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작은 종잇조각은 쓰레기통에 버리면 쓰레기가 되고, 이 종잇조각을 쳐다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러나, 작은 종잇조각을 가만히 손바닥에 얹어 연필로 쓱쓱 그림을 그리면 멋진 ‘그림’으로 거듭나요. 작은 종잇조각에 크레파스로 빛깔옷을 입히면 새로운 놀잇감으로 거듭나요.
흔하디흔한 광고종이라 하더라도, 뒤쪽 하얀 자리에 곱게 그림을 그리면, 이 광고종이는 어느새 고운 그림으로 거듭납니다. 아주 깨끗하면서 고운 종이가 있더라도 쓰레기통에 버리면 쓰레기가 되고, 이 깨끗하면서 고운 종이를 쳐다보지 않고 묵히거나 처박으면 이 종이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 됩니다.
사랑을 기울여서 사랑을 담을 때에 사랑이 됩니다. 웃음을 지으서 웃음을 담기에 웃음이 됩니다. 노래를 부르며 노래를 담으니 노래가 되어요.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하는 길은 아주 쉽습니다. 그저 사랑을 나누거나 베풀거나 함께하면 됩니다. 선물꾸러미나 케익이나 자가용이나 놀이공원이나 아파트를 베푼대서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따사롭고 너그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오로지 포근하고 넉넉한 손길로 어깨동무를 할 적에 시나브로 사랑이 되어요.
그림책 《어느 날 길에서 작은 선을 주웠어요》는 어느 날 문득 알아차리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빚은 고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랑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삶은 늘 우리 곁에서 사랑이 됩니다. 노래는 늘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삶을 짓는 사람들 가슴속에서 피어나서 곱게 흐릅니다. 4348.10.2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