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소원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7
하이디 홀더 글.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1996년 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13



착한 마음으로 비는 꿈 하나

― 까마귀의 소원

 하이디 홀더 글·그림

 이명희 옮김

 마루벌 펴냄, 1996.2.25.



  나는 내 동무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모릅니다. 내 동무는 그저 동무입니다. 나를 동무로 여기는 이웃은 내가 잘생겼다고 여길까요, 아니면 못생겼다고 여길까요? 모릅니다. 하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생각할 수 있어요. 겉모습을 보거나 따지려 한다면, 나와 너는 서로 동무가 못 됩니다.


  겉모습뿐 아니라 돈(재산)을 놓고 따져도 서로 동무가 못 됩니다. 이름값이 높거나 낮은가를 놓고 따져도 서로 동무가 못 됩니다. 힘이 센가 여린가를 놓고 따져도 서로 동무가 못 되어요.


  동무라고 한다면 마음으로 사귀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동무가 되려면 마음으로 만나서 아낄 수 있는 숨결이어야 합니다. 동무로 지내는 사람은 함께 웃고 노래하면서 삶을 짓습니다.



.. 까마귀는 한숨을 쉬었어요. “아니야, 난 그런 멋진 곳에는 어울리지 않는단다. 낡아빠진 이 깃털 좀 보렴. 게다가 선물 살 돈도 없고. 같이 갈 친구조차 없거든.” “저와 제 친구들과 함께 가요.” “고맙다, 밍크야.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정말 갈 수가 없구나.” ..  (5쪽)




  마음은 착하지만 겉모습을 따진다면 어떤 삶이 될까 궁금합니다. 마음은 안 착하지만 겉모습을 안 따진다면 어떤 삶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마음이 착하면서 겉모습을 안 따진다면 참으로 아름답겠지요. 마음이 안 착하면서 겉모습만 따진마녕 여러모로 그악스럽겠지요.


  우리는 누구하고 동무로 지낼까요? 나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어서 이웃하고 동무로 지내는가요?



.. “생쥐야, 왜 그러니?” “내일이 주머니쥐 생일인데, 전 갈 수가 없어요. 모두들 짧은 제 꼬리를 보고 놀릴 거예요.” “저런! 그만 울고 이걸 받으렴.” 까마귀는 별가루 상자를 열었어요 ..  (14쪽)





  하이디 홀더 님이 빚은 그림책 《까마귀의 소원》(마루벌,1996)을 읽습니다. 한국말로 나온 지 제법 된 그림책입니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그림책 가운데 하나요,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으로 손꼽힙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까마귀’는 여리거나 가여운 동무를 아낍니다. 어려워 하는 동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늙은 까마귀로서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돕습니다. 제 밥그릇이나 보람을 살피지 않으면서 도와요. 기꺼이 돕고, 따사로운 마음으로 도우며, 기쁘게 돕습니다.


  다만, 까마귀는 동무와 이웃을 도우면서 마음이 늘 허전해요. 틀림없이 기쁜 일이요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삶이지만, 늙은 까마귀 마음을 짓누르는 아픔이 한 가지 있습니다.



.. 마지막 남은 별가루를 받아 쥔 토끼 아가씨는 행복하게 집으로 뛰어갔어요. 까마귀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까마귀는 이제 텅 빈 상자를 선반에 올려놓고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  (20쪽)




  늙은 까마귀는 ‘늙음’ 때문에 스스로 괴롭습니다. 늙은 까마귀는 이제 짝꿍도 없이 홀로 지내는 터라, 아무도 저랑 동무가 되어 주지 못 하리라 지레 생각합니다. 여러 동무와 이웃이 까마귀와 함께 놀자고 부르지만, 늙은 까마귀는 자꾸 스스로 깎아내립니다. 스스로 늙고 못생겼다고 말하면서 뒤로 빼거나 손사래칩니다.


  늙은 까마귀는 왜 동무와 이웃이 저를 바라보는 마음을 안 읽으려고 할까요? 다른 동무와 이웃은 늙은 까마귀를 바라보면서 ‘늙었다’거나 ‘못생겼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살가운 동무와 이웃으로 여깁니다. 함께 놀기를 바라고, 함께 웃기를 바라며, 함께 노래하기를 바라요.


  이와 달리 늙은 까마귀는 제 ‘겉모습’에 끄달립니다. ‘늙고 꾀죄죄해 보인다’는 생각에 스스로 사로잡힙니다. 스스로 씌운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합니다. 스스로 가둔 쇠창살에서 허덕입니다.



.. 숨을 죽이고 까마귀는 그 별가루 한 알을 집어 베개 밑에 넣었습니다. “이것으로 될까? 아! 별가루야, 내 소원을 이루어 주렴. 나를 다시 젊고 활기찬 새로 만들어 주렴.” ..  (27쪽)



  늙은 까마귀는 아주 착합니다. 다만, 스스로 제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할 뿐 아니라, 동무와 이웃이 서로 아끼려는 마음조차 못 읽지만, 늙은 까마귀는 아주 착해요. 그래서, 이 착한 마음에 선물이 찾아들고, 이 선물은 늙은 까마귀가 스스로 얽매이면서 붙잡으려고 하는 실타래를 풀어 줍니다. 늙은 까마귀는 젊음을 한 번 되찾아요.


  자, 이제 젊은 까마귀가 되었으니까 동무나 이웃 앞에서도 떳떳할까요? 젊은 까마귀는 아무 거리낌이 없이 신나게 하늘을 가로지르면서 날아다닐 만할까요? 그러면, ‘젊어진 까마귀’는 ‘늙은 이웃 까마귀’를 만나면 어떤 말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늙은 이웃 까마귀더러 그대도 젊어지라고 말할까요? 늙은 모습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늙고 지치거나 못생긴 이웃이나 동무한테 ‘겉모습’이 아닌 ‘마음’으로 어깨를 겯고 기쁘게 노래하자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림책 《까마귀의 소원》은 ‘마음 착한 숨결’이 받는 선물을 사랑스레 보여줍니다. 다만, 마음 착한 숨결은 보여주되 ‘속마음을 읽는 따사로운 사랑’까지 차근차근 건드리지는 못합니다. 이 대목까지 건드리면서 환하게 밝혔다면 훨씬 아름다운 그림책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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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야 안녕?
뻬뜨르 호라체크 지음 / 시공주니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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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11



밥 달라고 노래하는 작은 새처럼

― 작은 새야 안녕?

 뻬뜨르 호라체크 글·그림

 편집부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5.9.1.



  작은 새가 아침을 열면서 노래합니다. 우리는 새를 바라보며 ‘작은 새’라고 흔히 말하는데, 새는 작지도 크지도 않습니다. 사람 몸뚱이에 대고 따지니까 ‘작은 새’인 듯이 보일 뿐입니다. 아무튼, ‘작은 새’는 작은 날개를 파닥파닥 놀리면서 아침을 엽니다. 둥지에서 새로 깨어나 자라는 ‘어린 새’한테 먹이를 찾아 주러 마실을 다녀야 하거든요.


  어린 새는 어미 새한테 얼른 밥을 달라고 외칩니다. 어린 새가 외치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작은 둥지에서 작고 어린 새가 노래합니다. 가만히 보면, 둥지도 새 크기마냥 작습니다. 그러나, 새한테는 꼭 알맞춤한 둥지입니다.


  작은 어미 새는 작은 벌레를 찾습니다. 작은 새이니 큰 벌레를 잡을 수 없어요. 작은 새한테는 작은 벌레로 배부르고, 작고 어린 새는 작은 벌레를 받으며 무럭무럭 몸을 키웁니다. 작은 몸으로 작은 노래를 부르면서 작은 하루를 기쁘게 엽니다.



.. 작은 새야, 일어나 ..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더러 밥을 내놓으라고 노래합니다. 어버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밥을 내놓습니다. 아이들은 조잘조잘 재잘재잘 함께 놀자고 노래합니다. 어버이는 활짝 웃으면서 함께 놉니다. 아이들은 또 조잘조잘 재잘재잘 노래합니다. 무슨 노래를 할까요? 씻겨 달라 노래하고, 새옷을 달라 노래합니다. 어버이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아이들을 씻기고, 새옷을 입혀 줍니다.


  이제 어버이는 아이들이 저희끼리 놀도록 하면서 일을 합니다. 무슨 일을 할까요? 밥을 마련하는 일을 하고, 흙을 일구는 일을 하며, 빨래를 하는 일을 합니다. 비질과 걸레질도 합니다. 이불도 널고, 온갖 살림을 가꿉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엉켜서 놀다가 어버이가 하는 일을 지켜봅니다. 어버이가 일을 하는 매무새를 흉내내며 소꿉놀이를 합니다. 소꿉놀이를 하면서 노래도 불러요. 아이들은 어떤 노래를 부를까요? 어버이가 여느 때에 부르는 노래를 고스란히 따라서, 새로운 가락과 노랫말을 입혀서 부릅니다.



.. 빨리빨리 집으로 돌아가 ..




  뻬뜨르 호라체크 님이 빚은 작고 도톰한 그림책 《작은 새야 안녕?》(시공주니어,2005)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작고 귀여운 새가 나오는 이 작고 도톰한 그림책을 아낍니다. 즐겁게 읽습니다. 나란히 엎드려서 읽습니다. 푸른 빛깔이 감도는 새처럼 우리 몸도 푸른 빛깔이 감돌겠지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가르며 먹이를 찾는 어미 새처럼, 아이들도 파랗게 눈부신 바람을 타면서 뛰놀 테지요.


  어린 새는 캄캄한 둥지에서 어미 새를 기다립니다. 고요한 둥지에서 기다려요. 아이들도 고요한 방에서 불을 다 끄고 새근새근 잡니다. 밤에는 밤잠을 자고 낮에는 낮잠을 자요. 뛰놀며 지친 몸을 누여서 쉽니다.


  아이들은 꿈나라에서도 놀아요. 우리 집 작은아이는 자면서 입맛을 쩝쩝 다십니다. 깨어나서도 먹고, 꿈에서도 먹나 봐요.


  하루 스물네 시간은 언제나 놀이입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은 모두 노래입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은 한결같이 바람이요 꿈이며 햇살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즐겁게 맞이하는 하루입니다. 저마다 새롭게 열면서 기쁜 웃음으로 어깨동무하는 삶입니다. 밥 달라고 노래하는 작은 새처럼 귀여운 아이들이요, 우리 어른들은 모두 작은 새처럼 노래하면서 자랐고, 사랑받으면서 컸으며, 기쁜 숨결로 아름답게 두 다리로 섰기에 이쁘장한 어버이 구실을 다합니다. 4348.4.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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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함께 놀아요 - 遊ぼう, 遊ぼう, おかさん! (1993)
하마다 케이코 지음,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즐겁게 놀았으니 기쁘게 잔다

― 엄마 엄마 함께 놀아요

 하마다 케이코 글·그림

 김창원 옮김

 진선출판사 펴냄, 2005.2.25.



  아이들은 잠자리에 두 발로 걸어서 갈 수 있지만, 어버이가 안아서 데려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기어서 갈 수 있지만, 어버이가 물구나무서기를 시켜서 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조용조용 갈 수 있지만, 하하호호 노래하면서 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나긋나긋 노래하면서 잠들 수 있지만, 우히히히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까무룩 곯아떨어질 수 있습니다.


  잘 놀았기에 잘 잡니다. 잘 못 놀았으면 잘 못 잡니다. 마음껏 뛰고 달리면서 온몸을 움직였으니 기쁘게 잡니다. 마음껏 못 뛰고 못 달리면서 몸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면 잠자리에 들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되기 마련입니다.



.. 엄마는 잠꾸러기, 일어나세요. 파도다, 파도! 철썩철썩 으랏차! 모래톱이야 ..  (4쪽)




  봄이 되어 개구리가 깨어나서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는 밤입니다. 밤새 휘파람새가 노래합니다. 곧 뻐꾸기 노랫소리도 듣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리고, 머잖아 풀벌레 노랫소리가 함께 어우러질 테지요.


  아주 먼 옛날부터 모든 아이들은 밤노래를 들으면서 잠들었어요. 새와 개구리와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잔치를 가득 누리면서 잠들었습니다. 어른도 아이와 함께 숱한 숲노래를 맞아들이면서 잠들었어요. 모두 숲에서 푸른 바람을 마시면서 파란 마음이 되면서 하루를 마무리지었습니다.



..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어요. 설거지도 뚝딱 끝냈지요. 엄마, 이제 우리와 함께 놀아요! 랄랄라 앞치마를 가지고 놀아요 ..  (6쪽)




  하마다 케이코 님이 빚은 그림책 《엄마 엄마 함께 놀아요》(진선출판사,2005)를 읽으면 따사로운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아이와 함께 즐겁게 노는 삶을 담은 그림책이라, 이 그림책을 읽을 아이와 어버이도 빙그레 웃으면서 한 장 두 장 넘길 만하고, 이 그림책에 나오는 놀이뿐 아니라 저마다 늘 아이와 누리는 놀이를 새롭게 돌아보면서 다시 웃을 수 있어요.



.. 우리가 외투예요. 밖은 바람도 불고 추우니까요. 외투가 되어 드릴게요. 어때요, 할머니? 따뜻하죠? ..  (15쪽)



  놀면서 보내는 하루는 길면서 짧습니다. 온갖 놀이를 하느라 바쁘고, 갖은 놀이를 하면서 어느새 해가 뜨고 해가 기울며 해가 넘어갑니다. 더 놀고 싶으나 달과 별이 환한 밤이라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듭니다. 배부르게 밥을 먹었고, 기운차게 뛰놀았으니 새근새근 몸을 쉽니다. 이제부터 꿈나라로 찾아가서 마음이 새롭게 뛰놀 때예요. 낮에는 몸을 움직이면서 논다면, 밤에는 마음을 움직이면서 놀아요.


  하늘을 날고 땅을 파헤칩니다. 우주를 가로지르고 바다를 헤엄칩니다. 수많은 별 사이를 거리낌없이 돌아다니고, 아무리 멀리 떨어진 동무라 하더라도 신나게 손을 맞잡고 놉니다.




.. 손이 졸린다고 말하고 있어. 발도 졸린다고 하는걸. 등이 졸린다고 하잖아. 궁둥이가 졸린다고 말하고 있어 ..  (24∼25쪽)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을 일은 모두 놀이입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놀이를 물려줍니다. 웃으며 노는 삶을 물려주고, 놀면서 웃는 사랑을 물려주지요.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놀이를 물려받으면서 살림살이를 물려받습니다. 웃으며 가꾸는 살림을 물려받고, 살림을 가꾸면서 환하게 웃는 하루를 물려받아요.


  지구별에 따스한 사랑이 감돌 수 있는 까닭이라면, 아이들은 맑게 웃고 어버이는 밝게 노래하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온누리에 따사로운 숨결이 흘러서 푸르게 우거진 숲이 드리울 수 있는 까닭이라면, 어른들은 즐겁게 웃으면서 일하고 아이들은 기쁘게 노래하면서 놀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아빠 아빠 함께 놀아요》와 짝을 이루는 《엄마 엄마 함께 놀아요》는 아주 멋진 그림책입니다. 4348.4.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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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제인 웅진 세계그림책 20
패트릭 맥도넬 글.그림, 장미란 옮김 / 웅진주니어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09



꿈을 가슴에 품고 나아간다

― 내 친구 제인

 패트릭 맥도넬 글·그림

 장미란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11.4.10.



  새벽녘에 새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들리는 새소리입니다. 처마 한쪽에 자리를 잡은 참새가 내는 소리일 수 있고, 바야흐로 봄을 맞이해서 처마 밑 둥지로 돌아온 제비가 내는 소리일 수 있습니다. 어떤 소리이든 반갑습니다.


  저녁에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아직 아스라히 먼 논에서만 들리는 개구리 노랫소리입니다. 마을에서는 마늘밭에만 농약을 뿌리고, 논에까지 농약을 뿌리지는 않는 사월입니다. 개구리는 마을에서 언제 농약을 뿌리는지 알 수 있고 모를 수 있습니다. 개구리 유전자에 ‘요즘 시골 농약 흐름’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깃들었다면, 개구리는 바지런히 알을 낳아서 얼른 올챙이가 깨어나고 얼른 어른 개구리로 되도록 이끌리라 생각합니다.



.. 제인은, 새들이 둥지를 틀고 거미들이 거미줄을 치고 다람쥐들이 나무를 오르내리며 술래잡기하는 것을 지켜보았어요 ..  (4쪽)




  패트릭 맥도넬 님이 빚은 그림책 《내 친구 제인》(웅진주니어,2001)을 보면, ‘타잔과 어울리는 제인’을 읽으며 ‘새로운 제인’을 바라는 ‘원숭이와 동무로 지내는 제인’이 나옵니다. 이 아이는 언제 어디에서나 원숭이와 함께 놀고 생각하고 지내고 말하는데, 새로운 삶을 본 어느 날부터 가슴에 꿈을 품습니다. 온누리에 흐르는 푸른 숨결을 받아들여서, 이 숨결을 노래처럼 부르려는 꿈을 품어요.



.. 제인은 바람에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타잔이 나오는 책을 읽고 또 읽었어요. 그 책에 제인이라는 여자가 나오는데, 아프리카의 밀림에서 살고 있었지요 ..  (22쪽)




  어린이 제인은 어떤 ‘어른 제인’으로 클 수 있을까요. 바로, 어린이 제인 스스로 마음에 품은 꿈대로 클 테지요. 어린이 제인은 어떤 ‘어른 제인’이 되어 삶을 지을까요. 바로, 어린이 제인 스스로 마음에 심은 꿈씨앗대로 삶을 지을 테지요.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품은 꿈대로 삽니다. 그냥 제도권학교에 들어가서 그냥 교과서를 배우는 아이들은 그냥 대학입시를 바라보고 그냥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떨어진 뒤 그냥 회사원이 되거나 노동자가 되어 삽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마음에 담은 꿈은 따로 없이 나 스스로 휩쓸리면서 어린 나날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꿈은 학교 졸업장하고 안 이어집니다. 학교 졸업장이 있기에 꿈을 이루지 않습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한테는 꿈이 있습니다. 돈이 있어서 꿈을 이루지 않아요. 꿈으로 가는 사람은 마음에 꿈씨를 심은 뒤 이 씨앗을 알뜰살뜰 가꿉니다.



.. 제인은 밤마다 나를 침대에 눕히고 기도를 했어요. 자신의 꿈을 이루어 달라고 ..  (28쪽)




  바라거나 비손만 한대서 꿈을 이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라거나 비손을 하는 몸짓이 되면, 이 몸짓 그대로 내 꿈으로 가는 길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하나씩 알아차립니다. 한 걸음씩 천천히 뗍니다. 내 꿈으로 가는 머나먼 길에 이르도록 한 걸음씩 차근차근 떼요.


  우리는 우리 꿈이 있는 곳으로 한달음에 날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꿈이 있는 곳으로 곧장 가로지를 수 있습니다. 저마다 하기 나름입니다.


  꿈을 이루기까지 한 달이 걸릴 수 있고, 한 해가 걸릴 수 있으며, 한 삶이 통째로 걸릴 수 있습니다. 한 삶으로 안 되면 두 삶이나 세 삶을 보내면서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꿈을 이루고 보면, 한 달이나 한 해나 한 삶은 하나도 안 대수롭습니다. 꿈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길이기에 언제나 기쁘면서 홀가분해요.



.. 제인은 너도밤나무를 제일 좋아해서 종종 올라가서 놀았어요. 나무에 뺨을 대면 나무껍질 밑으로 수액이 흐르는 게 느껴지는 듯했어요 ..  (18쪽)




  아이들이 나무와 함께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시골이든 도시이든 모든 아이가 나무를 곁에 두면서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어른들이 나무를 아끼면서 살림을 가꾸기를 빕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회사원이든 아니든 언제나 나무를 마주하고 쓰다듬으면서 하루를 열고 닫을 수 있기를 빕니다. 씩씩하고 짙푸른 나무처럼 어른 누구나 씩씩하고 짙푸른 숨결로 아름다운 꿈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4348.4.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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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단짝 친구 - 친구를 위한 배려 내 친구는 그림책
후쿠자와 유미코 글.그림, 엄기원 옮김 / 한림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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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08



마음을 읽어 함께 어울린다

― 숲 속의 단짝 친구

 후쿠자와 유미코 글·그림

 엄기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4.2.20.



  아이들한테 또래동무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어른들이 으레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또래동무는 나이가 비슷한 아이를 억지로 묶는다고 해서 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아이들을 억지로 학교에 몰아세워서 똑같은 나이인 아이를 같은 교실에 묶어야 또래동무가 되지 않습니다.


  똑같은 교과서에 똑같은 차림새에 똑같은 지식으로 아이들을 다그치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서로 아끼고 보살피지 못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학교에서는 성적과 시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교과서를 둘러싸고 오직 교과서 지식으로 시험을 치를 뿐이니, 아이들은 시험점수를 놓고 서로서로 틀을 지웁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숨결로 즐겁게 어울리도록 하지 못하는 학교이니, 이런 곳에서는 따돌림과 괴롭힘이 끊일 수 없습니다.



.. 둘이 처음 만났을 때 “겨울잠쥐는 작아서 귀여워.” 하고 곰은 생각했습니다. “곰은 크고 듬직해서 멋있어.” 하고 겨울잠쥐는 생각했습니다 ..  (5쪽)





  학교라는 곳에서 마음동무가 있을 수 있을까요? 없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만, 제도권학교에서 마음동무가 나타나기란 참으로 어렵다고 느낍니다. 교과서와 시험점수만 흐르는 제도권학교인 터라, 이 메마른 곳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뛰놀지 못해요. 마음껏 소리치거나 노래하지도 못합니다. 조금만 소리를 높여서 수다를 떨어도 모든 교사가 아이들을 윽박지르거나 조용히 하라며 꾸짖습니다.


  아이들이 교과서를 배우면서 웃는 일이 없어요. 아이들이 수업을 받으면서 하하호호 깔깔낄낄 웃을 수 없습니다. 모두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두 ‘성적 향상’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아이들이 ‘100점’을 받아야 한다고 몰아세우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이 아이들이 ‘100점을 못 받게’끔 ‘변별력’을 키워야 한다고 내세우면서 ‘시험점수 줄세우기’를 시킵니다.


  또래 아이들을 몰아놓은 곳에서 한다는 일이 고작 이런 짓이니, 이 메마른 교실에서 또래 아이들은 ‘동무’가 아니라 ‘맞수’가 될 뿐입니다.



.. 곰은 좋아하는 벌꿀이 듬뿍 들어 있는 벌꿀 몽블랑을 주문했습니다. 겨울잠쥐는 과일이 듬뿍 올려져 있는 3단 생크림 케이크를 주문했습니다 ..  (10∼11쪽)





  후쿠자와 유미코 님이 빚은 그림책 《숲 속의 단짝 친구》(한림출판사,2004)는 아주 사랑스럽습니다. 숲동무로 지내는 큰곰과 겨울잠쥐는 서로 아끼고 보듬는 숨결로 언제나 즐겁게 노래하면서 삶을 지어요. 큰곰은 상냥한 품으로 겨울잠쥐를 아끼고, 겨울잠쥐는 너그러운 품으로 큰곰을 아낍니다. 몸집이 커다란 곰은 상냥하면서 귀여운 몸짓이요, 몸집이 자그마한 겨울잠쥐는 넉넉하면서 씩씩한 몸짓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이 《우리는 단짝 친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책이름을 왜 바꾸었을까요? ‘숲 속’과 ‘우리’라는 말은 사뭇 다른데, 왜 ‘우리’로 바꾸어야 했을까요?


  그림책에 나오는 큰곰과 겨울잠쥐는 ‘숲’에서 동무가 됩니다. 아무 곳에서나 흔히 보는 동무가 아니라 숲동무입니다.


  더 생각해 보면, 요새는 ‘단(單)짝 친구(親舊)’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지난날에는 ‘짝꿍’이라는 말만 썼습니다. 한국사람이 ‘친구’라는 한자말을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그리고, 이 그림책 얼거리를 본다면 ‘단짝 친구’라는 말보다도 ‘짝꿍’이라든지 ‘어깨동무’ 같은 이름이 한결 잘 어울릴 만합니다.



.. “나는 곰의 밭이 부러워.” 겨울잠쥐가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 서로 밭을 바꿔 볼까?” 곰이 겨울잠쥐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잠쥐는 “싫어, 내 밭도 한번 열심히 가꾸어 볼 거야.” ..  (23쪽)




  예쁜 그림책을 넘기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예부터 이 땅에서 수수한 사람들이 늘 쓰던 ‘동무’라는 낱말은 새마을운동과 함께 짓밟혔습니다. ‘동무’는 마치 북녘에서만 쓰는 낱말인 듯 여기면서 억지스레 ‘친구’라는 한자말로 바꿔서 쓰도록 몰아세웠습니다. 이런 그악스러운 독재정권 짓거리가 춤을 추었어도 아이들은 ‘소꿉동무’와 ‘놀이동무’와 ‘어깨동무’와 ‘불알동무’ 같은 이름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책동무’나 ‘글동무’ 같은 이름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림책 《숲 속의 단짝 친구》에 나오는 두 아이를 보면, 처음에는 ‘숲동무’이고, 다음에는 ‘마실동무’이며, 다음에는 ‘밥동무’이고, 다음에는 ‘꽃동무’이자 ‘일동무’요, 마지막에는 ‘잔치동무’이면서 ‘삶동무’인 ‘길동무’가 됩니다. 차츰차츰 살가이 지내면서 ‘어깨동무’를 이루는 ‘짝꿍’이 되어요.



.. “이렇게 많은 고구마와 호박을 우리들끼리 다 먹을 수야 없지.” 곰이 말했습니다 ..  (35쪽)




  기쁨을 나누는 동무라면 ‘기쁨동무’입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동무라면 ‘사랑동무’입니다. 여기에서 ‘사랑’은 남녀나 남남이나 녀녀 사이에 살갗을 부비는 몸짓이 아닙니다. ‘사랑’은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넉넉하면서 포근한 숨결을 가리킵니다. 함께 꿈을 키우는 ‘꿈동무’가 있고, 언제나 이야기꽃을 피우는 ‘이야기동무’가 있습니다. 같이 배우면서 ‘배움동무’이고, ‘마을동무’나 ‘시골동무’나 ‘편지동무’가 있어요.


  동무는 서로 얼굴을 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동무는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그저 함께 있기만 해도 흐뭇합니다. 마음으로 사귀기에 동무입니다. 마음으로 함께하기에 동무입니다. 서로 헤아릴 줄 알고, 서로 생각할 줄 알며, 서로 손을 맞잡고 이 길을 걸을 수 있으니 동무입니다. 숲에서 지내는 두 아이는 멋진 동무입니다. 4348.4.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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