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자연 그림책
아라이 마키 글.그림, 사과나무 옮김, 타카하시 히데오 감수 / 크레용하우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2



새봄에 해바라기씨를 심어 보자

― 해바라기

 아라이 마키 글·그림

 사과나무 옮김

 크레용하우스 펴냄, 2015.8.10. 1만 원



  씨앗 한 톨에는 아주 멋진 숨결이 고요히 잠들어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씨앗 한 톨은 우리가 즐겁게 심어 줄 날을 기다리면서 새근새근 자요. 한 해를 자기도 하고, 열 해를 자기도 하는데, 때로는 백 해나 오백 해를 자기도 해요. 다만, 씨앗을 잘 건사해야 오래도록 새근새근 자면서 우리를 기다릴 수 있어요. 씨앗을 아무렇게나 둔다면 이 씨앗은 어느새 썩고 말 테지요.




손바닥에 있는 이것은 해바라기 씨앗이에요. 해바라기 씨앗은 4월에서 6월 사이에 심어요. (1쪽)



  아라이 마키 님이 빚은 그림책 《해바라기》(크레용하우스,2015)를 한겨울에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면 우리 집 마당이나 밭자락에 어떤 씨앗을 심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림책 《해바라기》에 나오듯이 해바라기씨도 심을 만합니다. 해님을 닮은 해바라기씨를 심어서 아이들하고 함께 언제나 해바라기 노래를 부를 만해요. 상추씨를 심을 수 있고 시금치씨를 심을 수 있어요. 어떤 씨이든 흙은 모두 고이 품어 줍니다. 어떤 씨이든 우리가 건네는 손길을 기다려요.


  햇볕이 씨앗을 포근히 어루만집니다. 빗물이 씨앗을 촉촉히 적십니다. 바람이 씨앗을 맑게 쓰다듬습니다. 여기에 사람들 손길이 살가이 닿으면서 사랑스러운 꿈 하나가 씨앗에 스며들어요.




해처럼 커다란 해바라기꽃이 피어납니다! (18쪽)



  우리가 심은 씨앗에 싹이 트고 뿌리가 내리면서 떡잎이 나오고 난 뒤에는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어버이 품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도 아기 티를 벗으면서 그야말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기다가 서다가 걷다가 뛰다가 달리다가 노래하다가 웃다가 울기도 하면서 씩씩하게 자라요.


  해바라기는 해님을 바라보면서 웃고, 아이는 어버이를 마주보면서 웃습니다. 해바라기는 해님 기운을 받으면서 잘 자라고, 아이는 어버이 사랑을 받으면서 잘 자라요. 해바라기는 이 바람을 기쁘게 맞아들이면서 살랑살랑 춤을 추고, 아이는 따사로운 눈길로 바라보는 어버이 숨결을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덩실덩실 춤을 춰요.


  정갈히 일군 밭에 씨앗 한 톨을 심듯이, 곱게 돌보는 아이 마음자리에 사랑씨 한 톨을 심습니다. 마당에서는 남새도 꽃도 자라고, 아이 마음속에서는 꿈도 기쁨도 자랍니다. 그리고, 이 보금자리를 가꾸고 이 아이를 보살피는 어버이 마음속에서도 새로운 꿈날개가 훨훨 피어납니다.




여러분도 해바라기 씨앗을 심어 보세요. 씨앗이 꽃을 피우고 다시 새로운 씨앗을 얻을 때까지 소중하게 키워 보세요. (32쪽)



  그림책 《해바라기》는 작은 씨앗 한 톨에서 커다란 꽃송이로 거듭나는 해바라기 한살이를 꼼꼼하게 엮은 그림으로 잘 보여줍니다. 어린이뿐 아니라 ‘씨앗심기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어른’도 재미나고 즐겁게 ‘씨앗심기를 배울’ 수 있도록 차분히 알려줍니다. 씨앗 한 톨에 뿌리가 내려서 줄기가 쑥쑥 오르는 모습을 찬찬히 보여주고, 해바라기꽃을 이루는 혀꽃하고 대롱꽃이 저마다 어떻게 바뀌어 새로운 씨앗으로 거듭나는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알려주어요.


  이 그림책을 빚은 아라이 마키 님이 우리한테 씨앗 한 톨을 심어 보라고 넌지시 말씀하듯이, 참말 우리 스스로 곱게 씨앗 한 톨을 심은 뒤 꾸준히 지켜보고 살펴보면서 ‘그림일기’를 써 본다면, 그림책 《해바라기》 곁에 나란히 꽂을 만한 재미나고 신나는 ‘우리 그림책(관찰일기 그림책)’ 한 권을 빚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씨앗 한 톨이면 돼요. 딱 씨앗 한 톨만 심으면 돼요. 우리 보금자리마다 씨앗 한 톨이 싹을 틔워 꽃을 한 송이씩 피울 수 있으면, 우리 보금자리를 비롯해서 마을에도 나라에도 온누리에도 고운 꽃내음이 흐드러질 수 있어요. 4349.1.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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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화가 났어? 울퉁불퉁 어린이 감성 동화 1
톤 텔레헨 글, 마르크 부타방 그림, 유동익 옮김 / 분홍고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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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1



골부림하는 마음을 다스리기

― 너도 화가 났어?

 톤 텔레헨 글

 마르크 부타방 그림

 유동익 옮김

 분홍고래 펴냄, 2015.2.28. 13000원



  ‘화(火)’가 난다고 할 때가 있어요. 요즈음 사람들이 흔히 쓰는 한자말인데, ‘화’는 한국말로 ‘성’을 가리킵니다. ‘성’은 싫거나 섭섭하거나 서운한 마음을 가볍게 나타내려 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낱말이에요. ‘성’하고 비슷한 ‘부아’는 어떤 일이 잘 안 된다고 할 적에 싫은 마음이 일어나는 모습을 가리켜요. 그리고, ‘골’은 마음에 거슬리거나 싫은 일이 있을 적에 벌컥 안 좋은 마음이 일어나는 모습을 가리키고, ‘짜증’은 마음에 안 맞거나 하기 싫어서 갑자기 치미는 안 좋은 마음을 가리켜요.


  곰곰이 돌아보면, 뭔가 마음에 안 들거나 서운하거나 싫거나 할 적에 느낌이 다 다를 텐데, 요즈음은 ‘화’라는 한 가지로만 뭉뚱그려서 나타낸다고 할 수 있어요. 이냥저냥 다 싫고 마음에 안 드니 굳이 여러 낱말을 알맞게 골라서 쓸 겨를이 없을 수 있겠지요. 성이나 부아나 골이나 짜증 가운데 아이들이 문득 입술을 내밀면서 툭툭거리는 모습은 ‘골’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을 해 보려고 하는데 자꾸 안 되거나 어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꽝 하고 터지는 모습은 ‘부아’예요.



드디어 코끼리가 나무 꼭대기에 올랐어요. 코끼리는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발아래로 숲이 펼쳐져 있었어요. 저 멀리 바다에는 태양이 파도 위로 일렁거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멋진 광경은 태어나서 처음 봤어요. 코끼리는 한 다리로 섰어요. 너무나 행복해 귀를 펄럭이며 코를 하늘 높이 올리고 발레리나처럼 춤을 추려고 했어요. 그런데 몸이 기우뚱하더니 이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13쪽)




  톤 텔레헨 님이 글을 쓰고, 마르크 부타방 님이 그림을 그린 《너도 화가 났어?》(분홍고래,2015)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마음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화가 나든 성이 나든 골이 나든 부아가 나든 짜증이 나든, 이런 마음이 되는 까닭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아무래도 어떤 일이 잘 안 되기에 싫은 마음이 됩니다. 어떤 일이 잘 된다고 할 적에 싫은 마음이 들 일은 없으리라 느껴요. 해도 해도 안 되니까 골이 나요. 나는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니 부아가 치밀어요. 다른 아이들은 잘 하는데 나만 못 한다는 생각에 젖어서 그만 성을 내고 짜증이 샘솟아요.


  《너도 화가 났어?》에 나오는 코끼리는 나무 꼭대기를 반드시 올라가고야 말겠다면서 씩씩거립니다. 그런데 커다란 코끼리 몸집으로는 나무를 타고 오를 적마다 자꾸 미끄러져요. 커다란 코끼리는 나무에서 미끄러져서 바닥에 엉덩이를 찧을 적마다 부아를 냅니다. 다른 사람이나 나무한테 부아를 내지 않고, 코끼리 저 스스로한테 부아를 내요. 이러다가 끝내 우듬지까지 올라가지요. 그러고는 이 우듬지에서 무척 먼 곳까지 환하게 내다보며 모든 부아가 풀려요.


  드디어 스스로 해냈거든요. 참말 스스로 이렇게 해냈거든요. 스스로 마음에 품은 뜻이나 꿈을 이루기까지 넘어지거나 엎어지거나 깨지면 자꾸 부아가 날 만하지만, 이 모두를 헤치고 끝까지 나아가고 보니 부아가 나던 마음은 말끔히 사라져요.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어요.



“글로 쓴다면 그렇게 될 거야. 내가 ‘나는 기뻐’라고 쓰면 나는 기쁜 거야. 기쁘지 않다면 기쁘다고 쓸 리가 없어. 편지 맨 끝에 ‘고슴도치’라고 쓰면 내가 고슴도치가 맞잖아.” 고슴도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내가 무엇이라고 쓰면 그게 바로 나야.’ (36쪽)




  어린이는 어른보다 힘이 여리고 손도 작고 솜씨도 모자란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어린이가 못 하는 일이란 없어요. 어린이는 언제나 어린이 나름대로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더러 어른처럼 무거운 짐을 나르라 할 수 없고, 밥을 지으라든지 집을 지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도 어린이 나름대로 심부름을 할 만하고, 조그마한 살림을 얼마든지 거들 만해요.


  어른도 뜨개질을 처음 하려 하면 잘 안 되지요. 어린이도 뜨개질을 처음 손에 쥐면 잘 안 되기 마련이에요. 안 되고 엉키고 헝클어지고 하면서 천천히 깨닫고 배웁니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흙집을 지을 적에도 처음부터 멋지게 흙집을 짓는 어린이나 어른은 없습니다. 무너지고 쌓고 무너지고 쌓고 하는 몸짓을 되풀이하면서 차근차근 익숙해져서 나중에 흙집을 잘 쌓습니다.


  가위질도 그렇고 글씨쓰기도 그렇지요. 씩씩하게 하고 꿋꿋하게 하면서 비로소 즐겁게 해낼 만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을 처음으로 마주한다면, 서두르지 않을 수 있어야 해요. 서두르기에 부아가 나요. 빨리 해내려 하니 골이 나요. 어른처럼 못 하거나 다른 동무처럼 안 된다고 여기면서 짜증이 나지요.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사람이라서, 어른 사이에서도 이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있고, 이 일이 더딘 사람이 있어요. 어린이 사이에서도 똑같으니, 더 빨리 하는 아이가 있고, 더 천천히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개미는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곳에 ‘화’를 잘 숨길 수도 있다고 했어요. ‘화’를 바다로 흘려보낸 뒤 파도에 밀려 진정시킬 수도 있고요. 그리고 시들어 더는 볼 수 없게 할 수도 있어요. 또 노래를 불러서 ‘화’를 없애 버릴 수도 있다고 했어요. “노래를 불러서 없애 버린다고?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두꺼비가 물었어요. (66쪽)




  어린이한테 ‘싫은 마음 다스리기’를 넌지시 알려주는 《너도 화가 났어?》는 화가 난 아이한테 ‘네가 잘못하지는 않았단다’ 하고 부드럽게 타이릅니다. 화가 날 수 있지요. 화가 나도 되고요. 다만, 화가 났으면, 이 화를 어떻게 스스로 다스리면서 새로운 몸짓으로 거듭날 때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할 수 있으면 돼요.


  즐거움이 사라지기에 화도 나고 성도 나고 골도 납니다. 즐거움을 잊었기에 부아가 나고 짜증이 나지요. 내 마음이 즐거움으로 가득하다면 섭섭하거나 서운한 일이 없어요. 내 마음이 즐거움으로 노래가 된다면 싫거나 밉거나 시샘하는 마음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어른들은 흔히 명상을 하는데, 어린이도 어른하고 함께 가만히 마음을 다스리면서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어린이들은 참으로 고단하거든요. 학교 공부로 고단하고, 학원 공부로도 고달파요. 홀가분하게 뛰놀 틈이 거의 없는 오늘날 어린이인 터라, 어린이도 골이 날 일이 잦다고 할 수 있어요.


  화풀이나 성풀이를 해야 화나 성이 풀릴 수 있기도 할 테지만, 이보다는 저 먼 바닷물에 화를 띄워 보낸다든지, 가랑잎에 성을 실어서 흙으로 돌려 보낸다든지, 가만히 노래를 부르면서 이 노랫가락에 날려 보낸다든지 할 수 있어요.


  “그래, 네가 골이 났네. 그러면 그 골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풀면 되지. 골이 났다고 해서 나쁜 일이 아니야. 골이 난 까닭을 생각해서, 앞으로 즐겁게 노래하면서 놀면 돼. 아니면, 앞으로도 이대로 골만 내면서 아무것도 못 하거나 안 하고 싶니?” 하는 말을 아이한테도 들려주고, 어른인 내가 나 스스로한테도 들려줍니다. 즐거움을 잊은 마음에 어느새 끼어들려고 하는 골부림을 빙그레 웃으면서 슥슥삭삭 비질을 하며 치웁니다. 4349.1.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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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케이크 왕이야! 책 읽어주는 책
엠마 치체스터 클라크 글.그림, 포 옮김 / 어썸키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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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0



즐겁게 먹고 싶어서 손수 케이크를 굽지요

― 내가 케이크 왕이야

 엠마 치체스터 클라크 글·그림

 포 옮김

 어썸키즈 펴냄, 2014.5.20. 11000원



  케이크는 누구나 구울 수 있을까요? 오븐이 있다면 손쉽게 굽겠지요. 오븐이 없으면 케이크를 못 구울까요? 오븐이 없어도 지짐판에 불을 아주 여리게 넣어서 케이크를 구울 수 있습니다. 다만 오븐으로 하듯이 손쉽게 굽지는 못 하고 손이 많이 가야 해요. 오븐으로 구울 적하고 여느 지짐판으로 구울 적에는 반죽도 좀 다르게 합니다. 굽는 판이 다르니까요. 소금이나 물도 오븐에서 구울 적하고 다르게 맞추고요.


  우리 집에는 오븐이 없어서 집에서 빵이나 케이크를 굽기에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븐이 없으면 없는 대로 수도 없이 해 보고 또 해 보면서 여느 지짐판으로도 빵이나 케이크를 굽는 길을 새로 찾았습니다. 이렇게 하기까지 여러 해 걸렸어요.


  그러면 왜 굳이 오븐 없는 집에서 빵이나 케이크를 구우려고 했을까요? 왜냐하면 집에서 굽는 빵, 이를테면 ‘집빵’이 대단히 맛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식구 입맛에 맞추어서 손수 굽는 빵이 참말 맛있더군요. 아마 아이들도 옆에서 거들면서 함께 반죽을 하고 굽고 기다리면서 모든 얼거리를 함께 지켜보고 바랐기 때문에 더 맛난 집빵(마치 집밥처럼)이 태어나는구나 싶어요.



“루루야, 너 케이크를 구워 본 적 있어?” 알피가 물었어요. “어머, 알피! 누구나 케이크 정도는 구울 수 있어!” 루루가 말했어요. (8쪽)



  엠마 치체스터 클라크 님이 빚은 그림책 《내가 케이크 왕이야》(어썸키즈,2014)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살랑살랑 꼬리마을’이 무대입니다. 이 살랑살랑 꼬리마을에서도 ‘루루네 집’이 무대예요.


  살랑살랑 꼬리마을은 ‘온갖 개’가 모여서 사는 조그맣고 예쁜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서 루루네 집은 이 예쁜 마을에서도 가장 예쁘다고 할 만한 작은 아이(개)네 집입니다.



“우리는 아주 커다란 케이크를 구울 거라서 아주 커다란 쟁반이 필요해요!” 루루가 말했어요. “케이크에 소시지를 넣으려고요. 아저씨 생각은 어떠세요?” “케이크에? 미스터 첨프차프 씨가 웃었어요. “정말 웃긴 케이크로구나!” (11쪽)





  어느 날 살랑살랑 꼬리마을에서 ‘케이크 대회’가 열립니다. 이 마을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개)이 저마다 집에서 손수 케이크를 구워서 겨루기를 한다고 해요. 마을사람들은 누가 굽는 케이크가 가장 멋질까 하고 두근두근 설레면서 기다립니다. 아이들(개)은 저마다 제 마음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케이크를 굽습니다. 자, 그러면 이 그림책에서 주인공은 루루는 어떤 케이크를 구울까요?


  루루는 매우 예쁜 아이입니다만 이제껏 케이크를 한 번도 구운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케이크 대회가 열린다고 하니까 그저 이 대회에서 ‘1등’을 하겠다고 꿈을 꿉니다. 그런데 루루는 케이크 굽기를 배우지 않아요. 책조차 살피지 않아요. 게다가 루루는 케이크에 소시지를 넣으려 하고, 반죽도 아무렇게나 양념이나 간도 아무렇게나, 굽는 시간도 아무렇게나 …… 무엇이든 아무렇게나 합니다. 옆에서 동무(개)가 그렇게 해도 되겠느냐고 묻지만 아랑곳하지 않아요.


  루루네 집에 있는 오븐에서 나온 ‘케이크’는 차마 케이크라고 하기 어려운 모습이 됩니다. 그렇지만 루루는 이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를 들고 학교에 가요. 그러고는 이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로도 1등을 거머쥐고야 말겠다고 여깁니다.



“나는 정말, 정말 최고가 되고 싶었어!” 루루가 흐느꼈어요. “항상 이길 필요는 없어, 루루야.” 알피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우승은 중요하지 않아. 케이크를 재미있게 만들었잖니. 안 그래?” (24쪽)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못 할 만할까요? 처음에는 누구나 낯설어서 서툴기 마련입니다. 어른도 처음부터 칼질을 잘 하지 않아요. 손가락을 베기도 하면서 꾸준히 칼질을 하기에 채썰기를 잘 해내고 이모저모 밥을 잘 지을 수 있습니다. 아이도 차근차근 칼질을 익히고 반죽하기를 익히면서 이모저모 재미나게 밥살림을 가꿀 수 있습니다.


  글씨를 처음부터 잘 쓴 사람은 없어요. 연필 쥐기부터 찬찬히 익히고 손가락에 힘을 붙이면서 비로소 글씨가 하나 태어납니다. 이 글씨를 자꾸자꾸 가다듬으면서 글꼴이 자리를 잡고, 어느덧 내 마음을 고이 드러내는 글을 쓸 수 있어요.


  아이들하고 함께 살면서 이 같은 살림을 하나씩 돌아봅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못 하는 아이들은 어버이랑 함께 살면서 하나씩 배우고, 하나씩 익혀서, 차근차근 자라요.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익히며, 글씨를 배우고, 호미질이나 젓가락질을 익힙니다. 이동안 아이들은 수없이 넘어지거나 틀리거나 어긋납니다. 그런데 넘어지거나 틀리거나 어긋나는 일은 나쁘지 않아요. 걷다가 넘어지면서 웃고, 글씨를 쓰다가 틀리며 웃습니다. 반죽을 하다가 튀어서 웃고, 젓가락으로 집다가 흘려서 웃어요.



루루는 모두가 자신의 춤을 바라보느라 자리를 비켜 주었다는 사실도 몰랐어요. 모두들 루루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어요. “루루는 살랑살랑 꼬리마을에서 제일 춤을 잘 춰!” (28∼29쪽)




  그림책 《내가 케이크 왕이야》로 돌아가 보면, 이 그림책에 나오는 루루는 케이크 대회에서 1등으로 뽑히지 못해 몹시 서운해 합니다. 그런데 케이크 대회를 마치고 마을잔치가 벌어지는데, 이 마을잔치에서 루루는 신나게 춤을 춰요. 즐거운 노랫가락이 흐를 적에 루루는 저절로 몸이 움직이면서 아주 멋지게 춤을 춥니다. 이때에 살랑살랑 꼬리마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루루가 춤을 몹시 잘 추기 때문에 ‘루루가 마음껏 춤을 출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어요. 루루는 그저 노랫가락이랑 춤사위에 흠뻑 빠져들면서 신나게 춤을 추었고, 마을사람들은 저마다 루루를 추켜세우면서 이 마을에서 춤을 가장 잘 춘다고 얘기합니다.


  케이크 대회에서 1등으로 뽑히지 못한 루루는 어느새 마음이 풀어집니다. 다시 홀가분하면서 씩씩한 마음이 되어요. 이리하여 루루는 동무들더러 저희 집에 가서 케이크를 함께 먹자고 말하지요. 그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를 말이지요. 동무들은 차마 그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를 먹겠다는 엄두를 못 내지만, 그래도 루루네 집에 함께 갑니다. 루루가 밥상에 차린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를 입에 대 봅니다.


  그런데 웬걸요, 생김새로는 볼품없던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인데 맛은 훌륭하다는군요. 루루는 온갖 것을 뒤죽박죽으로 섞어서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를 구웠지만 맛만큼은 아주 훌륭한 ‘새 주전부리’를 빚은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밥을 지을 적에는 밥상에 차린 것이 없어도 맛이 아주 좋아요. 아마 그러한 얼거리하고 같으리라 느낍니다. 기쁘게 지은 밥을 기쁘게 먹고, 기쁘게 짓는 살림으로 모든 어버이는 아이들하고 기쁜 하루를 누립니다. 4349.1.1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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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친구야 즐거운 유치원 1
나카가와 히로타카 지음, 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 이정원 옮김 / 보물상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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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09



오늘부터 동무라면 우리 함께 웃어야지

― 오늘부터 친구야

 나카가와 히로타카 글

 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

 이정원 옮김

 보물상자 펴냄, 2009.7.30. 8500원



  나카가와 히로타카 님이 글을 쓰고, 하세가와 요시후미 님이 그림을 그린 《오늘부터 친구야》(보물상자,2009)를 찬찬히 읽습니다. 더없이 상냥하구나 싶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유치원에서 ‘언니가 된’ 아이들이 ‘새로 유치원에 들어오는 동생’을 기쁘게 맞이하는 이야기가 조곤조곤 흘러요. 유치원이라는 데에 처음 발을 들이는 아이들은 모두 낯설 텐데, 유치원 언니들은 동생들을 헤아리면서 재미난 공연도 하고, 유치원 시설을 알려줄 뿐 아니라, 서로 사이좋게 노는 길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치원 언니가 부르는 노래를 헤아리다 보면 살짝 웃음이 납니다. “우리가 언니 오빠지만 절대 괴롭히지 않을 거야” 하고 부르는 노래란, 웬만한 여느 유치원 언니 오빠는 동생을 ‘(잘) 괴롭힌다’는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새 친구들이 왔어요. 반갑게 맞이해 줘요. (2쪽)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나 유치원 바깥에서나 모두 동무입니다. 즐겁게 어우러지는 동무입니다. 함께 놀 뿐 아니라, 서로 아끼거나 보살피는 동무예요. 힘이 여린 아이가 있으면 기꺼이 힘을 내어 도울 줄 알지요. 걸음이 느린 아이가 있으면 이 아이한테 맞추어 천천히 걸을 줄 알고요. 셈이 더딘 아이가 있으면 차근차근 셈하기를 일러 줄 뿐 아니라, 나긋나긋 부드러이 말을 해 줄 줄 알아요.


  오늘은 유치원에서 어우러지는 동무라면, 앞으로는 학교에서 얼크러질 동무입니다. 그리고 학교를 떠나 사회에서 만나면 오래도록 어깨를 겯으면서 함께 일하고 함께 꿈을 가꾸고 함께 살림을 짓는 동무입니다.




“우리 악수하자. 오늘부터 우린 친구야. 우리가 언니 오빠지만 절대로 괴롭히지 않을 거야. 큰 소리로 같이 웃자. 오늘부터 우린 친구니까.” (7쪽)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도 않습니다. 우리 집은 보금자리이면서 학교이고 살림터이자 도서관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집에서 배우고, 집에서 놀며, 집에서 서로 어우러져요. 두 아이는 툭탁거릴 때도 곧잘 있지만, 툭탁거릴 때보다 서로 아끼면서 노는 겨를이 훨씬 길어요. 아니, 하루를 통틀어서 살피면 툭탁거리는 겨를은 하루에 2∼3분조차 안 되지 싶고, 온 하루를 그야말로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놉니다.


  아이들이 툭탁거린다면 어느 한쪽이 어떤 놀이를 잘 못 한다든지, 달리기가 느리다든지, 뭔가 다른 아이보다 처진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나이나 몸집이나 힘에 따라서 다 다르기 마련이지만, 이런 모습을 맞대어서 견주면 틀림없이 어느 한쪽은 풀이 죽어요. 풀이 죽으면서 시샘을 할 수 있고, 동무를 풀 죽게 하면서 우쭐거릴 수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다투거나 괴롭히는 몸짓이 되는구나 싶어요.




“어어, 친구끼리 싸우면 안 돼. 그네가 하나밖에 없으니까 순서대로 타야지. 이걸 맞히는 사람부터 타는 거다. 자, 어느 손에 구슬이 들었게?” (19쪽)



  어깨동무를 하는 사이라면 어느 한길을 서로 아끼면서 찬찬히 나아가려는 숨결이라고 느낍니다. 어깨를 겯고 노는 동무라면 혼자서만 재미있게 놀려 하지 않고 다 함께 즐겁게 놀려고 하는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 사이에서도 이와 같아요. 우리가 이 사회에서 어깨동무를 하는 사이라면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더 갖춘 사람은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덜 갖춘 사람한테 따사로이 손을 내밀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동무이니까요. 아이들만 놀이를 함께 누리는 동무가 아니라, 어른들도 일을 함께 하고 살림을 함께 짓는 동무예요. 아이들만 유치원에서 동무로 지낼 삶이 아니라, 어른들도 사회와 마을에서 서로 아끼면서 사이좋은 동무로 지낼 삶이라고 느껴요.


  그림책 《오늘부터 친구야》는 바로 이러한 대목을 아이들한테 넌지시 일깨워 주려 하지 싶어요. 어릴 적부터 서로 동무로 삼으면서 즐겁게 지내는 마음을 기르며 자라면,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서로 도울 때에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스스로 알아차릴 테니까요.




“봐, 금방 양보해 주잖아. 먼저 고맙다고 인사하고. 이리 와. 이제 네 차례야. 형아가 밀어 줄게.” (23쪽)



  장난감이나 놀이기구는 하나뿐인데 두어 아이들이 서로 먼저 놀겠다고 아웅다웅을 하면 서로 하나도 못 놀 뿐 아니라, 장난감이나 놀이기구가 망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꼭 차례를 세워서 지켜야 하지 않아요. 함께 즐거울 길을 찾아야지요. 가위바위보를 해 볼 수 있고, 한 아이가 이 놀이를 하면 다른 아이는 저 놀이를 할 수 있어요. 아이들끼리 이러한 대목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저마다 새로운 놀이를 즐기면서 빙글빙글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두 아이 사이에서 하나를 놓고 다툼이 생기면, 누가 옳으네 그르네 하고 따진들 부질없을 뿐 아니라 두 아이 사이에 골이 깊어질 뿐입니다. 새로운 놀잇감을 떠오르게 하고, 새롭게 재미난 놀이를 보여주면, 두 아이는 어느새 ‘내가 먼저 하겠다’고 나서던 마음이 스르르 풀려서 사라집니다. 다시 말하자면 새로운 놀이를 알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기에 다툼이 생기지 싶어요.


  오늘부터 동무라면, 오늘부터 서로 동무로 하기로 했다면, 우리는 서로 빙그레 웃는 사이입니다. 함께 웃고 함께 노래하는 길을 생각하기로 하기에 동무가 됩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유치원에 안 다니는 아이들도 모두 사이좋게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빌어요.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나 학교에 안 다니는 아이들이나 서로서로 아끼는 마음을 북돋울 수 있기를 빌어요. 4349.1.1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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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말하는 여우 -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감동 그림책 시리즈 1
이모토 요코 그림, 코와세 타와미 글, 프뢰벨교육연구소 옮김 / 프뢰벨행복나누기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08



동무가 된 아이와 여우 사이를 갈라놓는 어른

― 내 친구, 말하는 여우

 코와세 타마미 글

 이모토 요코 그림

 프뢰벨교육연구소 옮김

 프뢰벨행복나누기 펴냄, 2004.1.15. 8000원



  이모토 요코(いもと ようこ, 1944∼)라는 일본 그림책 작가가 있습니다. 나는 이분 그림이 어릴 적부터 익숙합니다. 어릴 적에는 이분 이름을 모르는 채 이분 그림을 둘레에서 아주 쉽게 보았습니다. 공책이나 책받침이나 책살피나 문방구 같은 데에 곧잘 이분 그림이 나왔거든요. 이와사키 치히로(いわさきちひろ, 1918∼1974) 님 그림도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보았어요. 이밖에도 일본 그림책 작가 여럿 작품은 한국에 퍽 널리 조용히 들어왔습니다. 다만 1980년대가 저물고 1990년대로 접어들 무렵까지 ‘누구 그림’인지 감춘 채 들어왔지요.


  내가 어릴 적에는 그냥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그림’이라고만 여겼고, 그저 ‘한국 어떤 그림책 작가’가 그렸겠거니 하고 여기던 그림인데,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되어 그림책을 살피다가 이모토 요코 님 작품이나 이와사키 치히로 님 작품을 ‘책으로 만나’면서 크게 놀랐습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런 멋진 그림과 그림책을 빚은 이웃나라 사람 삶을 하나도 안 보여주었기에 나도 그저 모르는 채 살았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겁내지 마. 내가 도와줄게.” 타미는 여우에게 조심조심 다가갔어요. “커다란 가시네. 가시덤불에 걸렸었구나!” 타미는 여우 발에서 가시를 뽑아냈어요. (5쪽)



  《내 친구, 말하는 여우》(프뢰벨행복나누기,2004)는 코와세 타마미 님이 글을 쓰고, 이모토 요코 님이 그림을 그린 책입니다. 책이름에 잘 나오듯이 ‘말하는 여우’가 나오는 그림책이에요.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 ‘타미’라는 아이가 있고, 이 아이는 숲에서 혼자 놀다가 여우를 만납니다. 그런데 여우가 슬프게 울어요. 아이는 여우한테 다가갑니다. 여우가 무서워하니 여우를 달래면서 가만히 살핍니다. 이러다가 여우 발에 가시가 박힌 줄 알아채고는 살살 뽑아 줍니다.


  발에 박힌 가시가 빠진 여우는 홀가분하면서 기쁩니다. 이때 여우는 아이한테 ‘말하는 여우’ 모습을 드러내요. 아이는 여우한테 스스럼없이 다가갈 줄 알았기에, 여우가 말을 할 적에 놀라기는 했지만 둘이 사이좋은 동무가 될 수 있으리라 느꼈어요. 이날부터 둘은 숲에서 살가운 놀이동무가 되어서 한껏 즐겁게 뛰놉니다.




다음 날, 타미는 숲 속으로 갔어요. “말하는 여우를 다시 만나면 좋을 텐데…….” 바로 그때였어요. 바스락바스락. 누군가 갑자기 덤불 속에서 툭 튀어나왔어요. (8쪽)



  그런데 말이지요, 아이랑 여우는 서로 사이좋은 동무이지만, 어른들 생각은 다릅니다. 어른들은 이 아이가 숲에서 혼잣말을 하면서 떠든다고 여깁니다. 게다가 여우라는 짐승을 제대로 만나거나 사귄 적도 없으면서 그저 여우를 나쁘게만 바라보아요. 타미네 어머니와 아버지도 타미가 더는 숲으로 못 가게 막을 뿐 아니라, 여우는 무서운 짐승이라고 말합니다.


  마을 어른들이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타미랑 여우가 얼마나 사이좋게 노는지 마을 어른들이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아니 마을 어른들도 숲에서 사는 수많은 짐승하고 사이좋게 지내면서 함께 놀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 보았다면, 참말 다를 텐데요. 아무래도 마을 어른들 스스로 ‘아이처럼 여우하고 동무로 사귄’ 적이 없기 때문에 여우를 나쁘게 볼는지 모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마을 어른들뿐 아니라, 여느 자리에 있는 퍽 많은 어른들도 ‘여우나 여러 숲짐승을 이웃으로 여겨서 사귀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해요.


  아이는 여우하고 동무가 될 수 없을까요? 어른은 여우하고 이웃이 될 수 없을까요? 우리는 누구를 동무로 여겨야 할까요? 우리한테는 누가 이웃이 될 만할까요?




마을 사람들은 타미를 점점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어요. “타미가 산마루에서 혼잣말을 하고 있더라니까요!” “혹시 여우에게 홀린 게 아닐까요?” 그 소문은 타미의 엄마와 아빠에게까지 들렸어요, “타미야, 이제 숲 속에 가면 안 된다!” 엄마가 단단히 일렀어요. (15쪽)



  동무가 된 아이와 여우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는 어른입니다. 그러나 어른으로서는 어쩔 수 없구나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마음으로 바라보며 서로 동무가 되지만, 어른들은 마음이 아닌 겉모습으로 바라보다가 이모저모 따지기 때문입니다.


  참말 눈을 가만히 감고 마주하면 ‘말하는 사람’이든 ‘말하는 여우’이든 똑같을 텐데요. 우리가 동무나 이웃을 사귈 저에 ‘눈을 감고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다면, 겉모습이나 재산이나 이런저런 것을 따지지 않을 텐데요.


  그렇잖아요. 반가운 동무는 잘생기거나 못생기지 않아요. 동무를 사귈 적에 얼굴을 볼 일이 없어요. 아니, 동무하고 사귀며 놀 적에 얼굴을 바라보기는 할 테지만, 얼굴 생김새가 잘생겼거니 못생겼거니 따지지 않아요. 우리는 얼굴 생김새로만 동무가 되거나 같이 놀지 않으니까요.


  어른들이 함께 일하는 이웃을 사귈 적에도 이와 같아요. 겉모습이나 생김새만으로 ‘함께 일할’ 수 있어요. 마음으로 믿고 기대며 아끼고 보살피고 어깨동무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일 때에 비로소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여우를 잡으려고 산에 올라갔어요. 타미는 여우가 걱정이 되었어요. 타미는 몰래 집에서 빠져나와 산으로 올라갔어요. 타미는 말하는 여우를 찾아 헤맸어요. 그러나 말하는 여우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말하는 여우야…….” 타미는 너무나 지쳐 쓰러지고 말았어요. (26쪽)



  그림책 《내 친구, 말하는 여우》에 나오는 조그맣고 여리며 어린 아이 타미는 여우가 걱정스럽습니다. 마을 어른들은 여우 사냥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여우가 ‘잘못한’ 일은 하나도 없지만, 여우 같은 짐승은 숲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먼먼 옛날부터 숲에는 여우뿐 아니라 늑대도 이리도 삵도 범도 곰도 오소리도 너구리도 족제비도 쥐도 뱀도 잔나비도 솔개도 매도 수리도 올빼미도 소쩍새도 꾀꼬리도 박새도 할미새도 모두모두 저마다 사이좋게 어우러져서 지내는데, 사람들(아니 어른들)은 그만 사람 아닌 짐승은 숲에서 사라져야 하는 줄 여기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은 ‘사람인 동무와 이웃’도 사귀지만 ‘짐승인 동무와 이웃’도 사귀는데다가 ‘풀과 꽃과 나무인 동무와 이웃’도 사귀는데, 어른들은 이 대목을 자꾸 놓치거나 잊고 말아요. 어른들 스스로 얼마 앞서까지 아이였던 줄 잊었기 때문일까요.


  포근한 마음이 흐르는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는 동안 아이들은 이 줄거리에 빠져듭니다. 나도 곁에서 이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아이랑 여우가 부디 오래도록 사이좋은 동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림책을 넘깁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여우를 비롯한 숲짐승’을 살가운 이웃으로 여길 줄 아는 슬기로운 어른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림책을 펼칩니다. 온누리 아이들 누구나 마음에 한가득 사랑을 담아서 기쁘게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는 어른으로 거듭나기를 꿈꾸면서, 이모토 요코 님 이쁘장한 그림책을 새삼스레 읽고 자꾸 읽어 봅니다. 4349.1.1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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