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더 높이
제르마노 쥘로 글, 알베르틴 그림, 조정훈 옮김 / 키즈엠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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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3



‘1227미터짜리 집’ 꼭대기로 피자 배달을 하라고?

― 높이 더 높이

 제르마노 쥘로 글

 알베르틴 그림

 조정훈 옮김

 키즈엠 펴냄, 2012.11.30. 12000원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 같은 큰도시로 나들이를 가면 언제나 앞만 보고 걷습니다. 다른 곳을 보기 어렵기도 하지만, 사람이 아주 많기 때문에 앞을 안 보다가는 다른 사람들한테 부딪히기 일쑤이고, 발도 곧잘 밟힙니다. 서울 같은 큰도시는 거님길이 좁고, 버스나 전철을 탈 적에도 언제나 사람이 북적거리는데다가, 한눈을 판다 싶으면 내릴 곳을 놓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가게도 많고 집이나 건물도 많은 서울입니다. 사람이 많으니 자동차도 많은 서울이요, 찻길도 넓은 서울이에요. 이런 서울에서는 하늘 볼 겨를이 없습니다. 북적거리는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하늘을 안 보기도 하고, 애써 하늘을 보려고 해도 건물이나 전깃줄에 가로막힙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틈으로 하늘을 살펴보더라도 그저 새카맣거나 뿌옇기에 하늘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어렵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볼일을 마친 뒤에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로 돌아올 적에는 버스 창밖으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너덧 시간을 달리는 버스에서 내내 하늘을 보다가 버스를 내리면, 크게 기지개를 켜고 하늘을 실컷 올려다봅니다. 이 파란 하늘을 보고 싶었다고, 이 파란 하늘을 흐르는 하얀 구름을 보고 싶었다고, 이 파란 하늘을 흐르는 하얀 구름을 가르는 새를 보고 싶었다고, 마음속으로 노래합니다.



갑자기 부자가 된 벼락 씨의 집. 모으고 모아서 부자가 된 차곡 씨의 집. (1∼2쪽)




  제르마노 쥘로 님이 글을 쓰고, 알베르틴 님이 그림을 그린 《높이 더 높이》(키즈엠,2012)라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자동차와 짐차와 삽차를 좋아해서 날마다 자동차 놀이를 하는 작은아이하고 읽을 마음으로 이 그림책을 장만했습니다. 작은아이뿐 아니라 큰아이도 이 그림책을 재미있어 하는데, 큰아이는 늘 그림을 그리며 놀기 때문에 ‘높이 더 높이’ 오르다가 그만 와르르 무너지는 줄거리가 흐르는 이 그림책을 보면서 깔깔깔 웃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무척 아슬아슬한 줄거리입니다. 부자가 된 두 사람이 자그마치 1227미터에 이르기까지 집을 올린다고 하는데, 한쪽 집이 와르르 무너지니 사람이 다칠 수 있거든요.


  어린이가 함께 보는 그림책이니, 사람이 다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1227미터나 올리다가 무너지는 집 이야기를 읽다 보면, 참말 사람들이 세우는 문명이나 문화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집을 올리고 또 올려야 할까요? 높이 더 높이 올려야만 할까요? 경제성장을 높이 더 높이 이루어야 할까요? 성적이나 결과나 실적 따위를 높이 더 높이 거두어야 할까요?



옷을 잘 입는 건축가, 겉멋 씨. 깐깐한 토목 기술자, 꼼꼼 씨. (5∼6쪽)



  그림책 《높이 더 높이》에는 두 가지 부자가 나옵니다. 한 부자는 “벼락치기 부자”입니다. 다른 한 부자는 “차곡차곡 모은 부자”입니다. ‘벼락부자’는 갑자기 부자가 된 결에 따라서 ‘벼락건물’을 올리려 합니다. ‘차곡부자’는 차곡차곡 부자가 된 결에 맞추어 ‘차곡건물’을 올리려 합니다.


  그림책 《높이 더 높이》는 길쭉하게 끝없이 오르는 집 모습에 맞추어 길쭉한 판짜임입니다. 하늘을 찌를듯이 치솟는 두 집을 견주어 보이려고 하는 판짜임인데, 책꼴도 재미있습니다.


  그나저나 1227미터에 이르기까지 올린 집에서 늘 맨 꼭대기에 머물며 산다는 두 부자인데, 두 부자는 저렇게 높은 곳에서 무엇을 할까요? 저렇게 높은 곳에 있어야 ‘다른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선다고 여길까요?




세계 모든 텔레비전 전파를 잡을 수 있는 우산 모양의 안테나. 차곡 씨의 애완견 말티의 다섯 번째 생일을 위한 콘서트. (13∼14쪽)



  그림책을 보면, 벼락부자도 차곡부자도 마치 돈자랑을 하는구나 싶도록 온갖 큰잔치를 엽니다. 아무 때나 잔치를 벌이고, 집안에 골동품이라든지 보물이라든지 잔뜩 그러모으려 합니다. 쓰지도 않을 것이지만 남한테 자랑하려고 하는 것을 자꾸 갖춥니다. 벼락부자뿐 아니라 차곡부자도 ‘돈을 쓰고 더 쓰는 삶’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이웃하고 나누는 삶이 아니라, 언제나 혼자 쓰고 혼자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기만 해요.


  1227미터에서 끝난 ‘집짓는 다툼’을 벌인 두 부자는 이제 1227미터에 이르는 집에서 머물다가, 벼락부자는 집이 와르르 무너져서 ‘무너진 집’에서 더는 살지 못합니다. 이와 달리 차곡부자는 집이 튼튼해서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차곡부자한테는 다른 말썽거리가 있지요.


  차곡부자는 벼락부자하고 ‘똑같이’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지 않습니다. 돈이 많으니 심부름꾼을 둘 테고, 심부름꾼이 모든 일을 다 맡아서 해 주겠지요. 그런데, 아무리 돈으로 심부름꾼을 부릴 수 있다고 해도, 1227미터에 이르는 높은 곳에 사는 부자한테 맞추어 줄 심부름꾼이 더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저 높은 데까지 밥을 실어다 나르자면 얼마나 고단할까요. 날마다 ‘높은 산’을 오르내리듯이 밥을 갖다 주고 이 일을 하고 저 살림을 해야 한다면 그야말로 버틸 수 없는 노릇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한들, 이런 ‘1227미터짜리 집’에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차곡부자는 전화를 걸어서 피자를 시켜요. 자, 피자집 일꾼은 어떻게 할까요? 차곡부자는 피자집 일꾼더러 1227미터에 이르는 꼭대기까지 피자를 갖다 달라고 하는데, 피자집 일꾼은 ‘피자 배달’을 1227미터까지 들고 올라가서까지 마칠까요?




“현관에서 비밀번호 PARK79를 누르고 왼쪽 계단으로 올라오세요. 복도 끝까지 오면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그걸 타고 8층까지 올라오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왼쪽 두 번째 문에서 비밀번호 JO82를 누르세요. 앞에 보이는 계단을 올라와 오른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4층까지 올라오세요. 복도 끝까지 걸으면 빨간 발판이 깔린 작은 계단이 있어요. 계단을 내려오면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그걸 타고 63층까지 올라오세요. 그리고 나선 모양 계단을 올라와서 왼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78층까지 올라오세요. 복도 끝까지 와서 오른쪽으로 7번째 문에서 비밀번호 YUNSEUL을 누르고 들어오세요. 방 한가운데 둥근 탁자가 있을 거예요. 그 위에 피자를 올려놔 주세요.” “그냥 현관 앞에 놓고 갈게요.” (28∼30쪽)



  그림책 《높이 더 높이》에 나오는 차곡부자가 시킨 피자 한 판을 들고 높다란 집 문간에 닿은 피자집 일꾼은 물끄러미 저 높은 꼭대기를 올려다보다가, 차곡부자가 시키는 말을 듣다가, 피자를 조용히 문간에 내려놓습니다. “그냥 현관 앞에 놓고 갈게요.” 하고 말합니다.


  맨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던 차곡부자는 더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저 저 밑바닥에 있는 피자를 바라봅니다. 이때에 어디에선가 멧돼지가 나타나요. 멧돼지는 1227미터짜리 집 문간에 놓인 피자를 집습니다. 그러고는 ‘무너진 다른 1227미터짜리 집’ 부스러기를 사뿐사뿐 뛰어넘습니다. 그러고는 높다란 나무 밑에서 기다리는 ‘멧돼지 식구’한테 가고, 멧돼지 식구는 ‘차곡부자네 피자’를 맛나게 먹습니다.


  여러모로 보자면 우스갯소리 같은, 아니 우스개놀이 같은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입니다. 어떤 부자가 집을 크게 지어도 1227미터짜리로까지 짓겠느냐 싶지만, 참말 바보스러운 삶만 생각하는 부자는 이런 우스개짓을 저지르고 맙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작품을 보면 ‘초콜릿으로 성을 지어 달라고 하는 인도 왕자’ 이야기가 나와요.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면 ‘초콜릿 성’은 무너질 텐데, 이런 생각도 못 하면서 초콜릿으로 성을 지어 달라고 하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요.


  돈을 어떻게 쓸 때에 즐거운가를 모르는 부자요, 삶을 어떻게 가꿀 때에 기쁜가를 모르는 부자라고 할까요. 돈을 긁어모으는 데에서는 훌륭했기에 부자가 되었을는지 모르나, 이 돈으로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는 데에서는 아주 젬병이고 만 부자입니다.


  삶을 삶답게 지을 때에 웃고, 삶을 삶답게 가꾸면서 이웃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할 적에 노래가 흐릅니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가 있느냐는 시골 할배 말씀처럼 혼자만 높이 더 높이 올라서야 참답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운 재미란 그야말로 없기 마련이지 싶습니다. 높이 더 높이 올릴 집이 아니라, 서로 오순도순 어우러질 집살림을 가꿀 일이요, 서로 따스하면서 넉넉하게, 또 서로 웃고 노래하는 즐거움이 넘실거리도록 이웃하고 손을 맞잡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4348.11.25.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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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영웅 베틀북 그림책 31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이정선 옮김 / 베틀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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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5



누가 ‘참다운’ 영웅이고, 누가 ‘거짓쟁이’일까?

― 진짜 영웅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이정선 옮김

 베틀북 펴냄, 2011.8.10. 1만 원



  우리 집 큰아이가 더 어릴 적에 ‘머스마’인지 ‘가시내’인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가 머스마이건 가시내이건 대수롭지 않지만, 사람들은 이 아이 성별을 꼭 알아야만 하는 듯이 여겼습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요즈음 둘레 사람들한테서 ‘가시내’인지 ‘머스마’인지 헷갈리다는 소리를 으레 듣습니다. 늘 누나 옷을 물려받아서 입으니 가시내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럴 때면, 왜 굳이 아이가 머스마인지 가시내인지 알아야 하느냐고 되묻습니다. 아이 이름을 궁금해 하고, 아이가 무슨 놀이를 좋아하는지 궁금해 하며, 아이가 어떤 꿈을 마음속에 품는지 궁금해 하면 이 아이하고 서로 사이좋은 동무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별의 어느 여름, 아이들이 들판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지. “와, 여기 웃기게 생긴 잠자리가 있다.” “어, 정말이네. 진짜 괴상하게 생겼다.” “괜히 기분 나쁜걸!” (3쪽)



  미야니시 타츠야 님이 빚은 그림책 《진짜 영웅》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이 그림책을 몹시 재미있어 합니다. 그리고, 무척 답답해 합니다. 왜 이 그림책을 재미있어 하느냐 하면 ‘잠자리 외계인’인 ‘바라랑맨’이 아주 착한 숨결이기에 재미있어 합니다. 왜 이 그림책을 답답해 하느냐 하면 ‘스페셜맨’이 나쁜 외계인인데 지구별 사람들이 이를 너무 못 알아채기 때문에 답답해 합니다.


  그림책 《진짜 영웅》에는 세 별나라가 나옵니다. 맨 먼저 지구입니다. 그리고, 지구로 살짝 찾아온 바라랑이 사는 바라랑별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구별 사람들을 몽땅 사로잡아서 잡아먹으려고 하는 스페셜별입니다.


  그림책 첫머리를 보면, 바라랑별에서 지구별로 온 조그마한 ‘바라랑 사람’은 잠자리 모습인데, 지구별 아이들한테는 낯선 모습입니다. 지구별 아이들은 이 바라랑 사람을 보고는 ‘못생긴 잠자리’라 여기면서 함부로 잡아서 날개를 함부로 뜯으려 합니다. 이때에 어느 아이가 이를 말리고, 바라랑 사람을 놓아 주지요.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영웅 흉내라도 내는 거야?” 아이들은 잠자리를 놓아준 아이를 마구 쥐어박고 발로 찼어. 하지만 그 아이는 후회하지 않았어. 아무 말 없이 맞고만 있었지. (7쪽)



  잠자리 날개를 뜯으며 놀려는 짓궂은 아이들을 막은 아이는 어찌 되었을까요? 짓궂은 아이는 잠자리가 아닌 이 아이를 두들겨패면서 성풀이를 합니다. 착한 동무를 짓밟고 괴롭히면서 놉니다. 잠자리를 놓아주었다고 생각한 아이는 제가 한 일 때문에 동무들한테 얻어맞지만 씩씩합니다. 잠자리를 놓아주기를 잘했다고 여깁니다.


  이윽고 열 몇 해나 스물 몇 해가 흐릅니다. 지구별에 우주선이 찾아오고, 외계인이 내려요. 커다란 몸집으로 바뀐 ‘바라랑 사람(바라랑맨)’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바라랑 사람이 읊는 말을 지구별 사람은 하나도 못 알아듣습니다. 게다가 지구별 사람들은 바라랑 사람을 놀리기만 합니다.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따지고 말아요. 생김새에 따라서 ‘잘생기면 좋’고 ‘못생기면 나쁘’다고 여깁니다.




“그게 아니라니까.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나쁜 외계인에게 모두 다 잡아먹히고 말 거야!” 바라랑맨이 힘을 주어 말했어. 그러자 누군가 이렇게 말했지. “푸하하, 얼굴이 새빨개졌어. 이제 오줌이 나올 것 같아!” “그, 그게 아니야. 그런 말이 아니란 말야.” 바라랑맨은 눈물을 글썽였어. 그러자 사람들이 깔깔대며 이렇게 수근댔지. “어떡해. 벌써 오줌을 쌌나 봐.” “저 외계인 진짜 웃긴다.” (14∼15쪽)



  그림책 《진짜 영웅》을 살며시 덮고 생각을 기울입니다. 그림책 이름에도 나오듯이 ‘참된(진짜) 영웅’은 누구일까요? 주먹다짐으로 동무를 때려눕히면서 으르렁거리는 아이가 참된 영웅일까요? 주먹힘으로 이웃이나 동무를 괴롭히면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사람이 참된 영웅일까요? 권력을 휘두르면서 평화를 짓밟거나 깨부수는 이들이 참된 영웅일까요? 대통령쯤 되거나 시장이나 군수쯤 되어야 참된 영웅일까요? 전쟁무기를 가장 많이 갖춘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가 지구에서 참된 영웅일까요?




“여러분, 괜찮습니까? 나는 스페셜별에서 온 스페셜맨입니다.” 스페셜맨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어. “이 우주인은 말이 통하네.” “스페셜맨은 참 잘생겼다!” 사람들은 스페셜맨을 보고 모두 기뻐했지. (20쪽)



  우리한테는 영웅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는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마음으로 삶을 짓는 이웃이 있으면 됩니다. 나는 나부터 스스로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살림을 지을 줄 알면 됩니다. 내 이웃만 착하거나 참답거나 곱기를 바라지 말고, 언제나 나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는 착한 마음이 되고 참다운 넋이 되며 고운 숨결이 될 때에 즐겁지요.


  그림책 《진짜 영웅》을 보면, 지구별 사람들은 바라랑 사람이 하는 말과 몸짓은 하나도 안 알아채려고 하지만, 지구별 사람들 입맛에 맞추어 사탕발림을 하는 ‘스페셜 사람(스페셜맨)’이 읊는 말에 모두 홀랑 넘어가고 맙니다. 아무래도 우리 누구나 이런 몸짓이 된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마음으로 서로 마주하려는 몸짓이 아니라, 겉모습이나 겉치레에 따라서 휘둘린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까만 양복에 까맣고 커다란 자동차를 몰면 뭔가 있어 보인다고 여기지요. 후줄그레한 차림새라면 공공기관이나 큰 건물에서는 아예 발도 못 붙이게 하기 일쑤이지요. 민소매에 반바지에 고무신 차림으로 대학교수를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할 만합니다. ‘예의’라는 이름으로 겉모습에 대단히 눈길을 둡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셔요. 장님한테는 겉모습이 무엇일까요?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한테 겉모습이란 무엇인가요? 귀로 소리를 못 듣는 사람한테는 목소리가 무엇일까요? 왜 겉모습을 따져야 할까요? 왜 생김새나 차림새에 따라서 사람을 가르거나 따지거나 재는 일을 해야 할까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일하는 사람은 가벼우면서 수수한 차림새입니다. 흙을 만지며 일하니 으레 맨발에 고무신이기 일쑤입니다. 흙내음에 땀내음이 가득한 차림새이기에 ‘함부로 보’거나 ‘아무렇게나 마주해’도 되지 않을 테지요? 그림책 《진짜 영웅》은 바로 이 대목을 가만히 짚습니다. 여느 살림집에서 여느 어버이로서 아기를 낳아서 돌보는 사람들이야말로 ‘참다운 영웅’이고, 꽃 한 송이와 나무 한 그루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참다운 영웅’이며, 동무를 아끼는 착한 마음일 때에 비로소 ‘참다운 영웅’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참다운 영웅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위인전이나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수수하고 투박한 이웃하고 동무가 모두 참다운 영웅입니다. 4348.11.2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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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 마녀 루시
리오넬 르 네우아닉 지음, 이재현 옮김 / 행복한아이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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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4



아기를 낳아 돌보면서 비로소 어른이 된다

― 엄마가 된 마녀 루시

 리오넬 르 네우아닉 글·그림

 이재현 옮김

 행복한아이들 펴냄, 2003.7.15. 8500원



  아이들은 하루 내내 놀고 싶습니다. 갓난쟁이도, 다섯 살 어린이도, 열 살 아이도 모두 즐겁게 하루 내내 놀고 싶습니다. 그런데 갓난쟁이를 돌보는 어버이로서 아기하고 하루 내내 놀 겨를을 마련하는 이들이 부쩍 줄어듭니다. 아기를 보육시설에 맡긴 채 일하러 다니는 어버이가 매우 많고, 두어 살쯤 되면 으레 어린이집에 아이를 넣기 마련이며, 한 번 보육시설에 들어간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기 앞서까지 어린이집하고 유치원을 드나듭니다.


  보육시설이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아이들은 얼마든지 놀 만합니다. 또래 동무를 만날 수 있어서, 제법 안 심심하게 놀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퍽 어린 아이들은 또래 동무 못지않게 어머니하고 아버지랑 놀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이들한테는 또래 동무도 있어야 하지만, 아직 많이 어리며 여린 아이들은 어버이가 베푸는 따사로운 사랑을 받기를 바라요. 제 어버이가 저를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 아이요, 따사로운 사랑을 누리면서 기쁘게 뛰놀고 싶지요.



“페르 부인, 당신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당신의 경우는 매우 절망스럽군요. 지옥에서 생긴 당신의 병은 절대 나을 수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무슨 병이죠?” 루시는 너무나 당황스러워하며 물었습니다. “고약하게 생긴 작은, 음, 그러니까 아기가 생겼습니다.” (9쪽)



  리오넬 르 네우아닉 님이 빚은 그림책 《엄마가 된 마녀 루시》(행복한아이들,2003)를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마녀 루시는 그저 마녀로만 지냈고, 마녀로서 ‘아이를 잡아서 괴롭히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마녀 루시는 어느 날 ‘사랑에 푹 빠졌’고, 사랑스러운 짝을 찾아서 지옥에 가서 악마랑 사귀었다는군요. 머잖아 마녀 루시는 몸이 달라진다고 느꼈고, 배가 볼록해졌답니다. 이즈음 지옥에 있던 악마는 마녀 루시가 못마땅했고, 마녀 루시도 악마가 못마땅해서 서로 헤어지기로 합니다. 마녀 루시는 지옥을 떠나서 땅에 있는 ‘마녀네 집’으로 돌아가요. 그리고 병원에 가서 몸에 어떤 일이 생겼느냐고 물으니 의사는 ‘아기가 생겼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나 루시의 뱃속에 있는 아기 엠마는 마녀가 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습니다. “마녀가 될 거라면 차라리 안 태어나고 말 거야.” 엠마는 엄마 배를 발로 툭툭 차면서 소리쳤습니다. “못된 짓을 하거나, 끈적거리는 벌레를 꿀꺽 삼키는 짓 따위는 싫어! 나는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이 사는 세상으로 가겠어.” (14쪽)



  지옥에 있는 악마도, 땅에 있는 마녀도, 또 마녀네 여러 동무와 이웃도, 루시한테 ‘아기가 생긴’ 일을 기뻐해 주지 않습니다. 어쩜 그런 끔찍한 일을 겪느냐고 한마디씩 합니다. 마녀네 이웃은 마녀 루시한테 ‘뱃속 아기를 없애는 길’을 도와줄까 하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녀 루시는 아기를 낳기로 합니다. 루시 몸에 생긴 새로운 목숨이 태어나면 그야말로 ‘멋진 마녀’가 되어 이 별을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리면서 어지럽히는 ‘훌륭한 마녀 짓’을 하리라 꿈을 꾸지요.


  이때에 루시 뱃속에서 자라는 아기는 ‘어머니 루시’하고 사뭇 다른 마음입니다. ‘마녀 루시’는 스스로 그저 ‘마녀’라고만 여길 뿐, ‘어머니’로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녀 루시’는 ‘(아기) 마녀 엠마’를 낳아서, 두 마녀가 신나게 마녀 짓을 할 생각을 해요. 이와 달리 ‘뱃속 아기’는 루시가 ‘마녀’ 아닌 ‘어머니’라고 여기고, ‘마녀 아기’로 태어난다면 차라리 안 태어나고 죽는 쪽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두 사람은 어떤 길로 갈까요? 마녀 루시는 그저 이녁이 스스로 마녀라고만 여기는 길을 갈까요? 뱃속 아기는 마녀인 어머니가 못마땅해서 어머니 몸에서 태어나기를 손사래치면서 그만 어머니 뱃속에서 죽는 길로 갈까요?




루시는 작은 천사 엠마를 무시무시한 꿈에 나오는 끔찍한 괴물로 바꾸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썼습니다. 그렇지만 우유병에 나쁜 것을 넣어서 먹여도, 할머니가 개발해 놓은 온갖 끔찍한 방법들을 써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루시 페르는 깨달았습니다. 나쁜 것들은 어린 엠마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22쪽)



  아기를 밴 어머니인 마녀 루시는 뱃속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까맣게 모릅니다. 아기가 뱃속에서 발길질을 할 적에도 왜 발길질을 하는지 모르는 채 귀엽게만 여깁니다.


  바야흐로 루시는 아기를 낳습니다. 아기는 이 땅에 태어나기로 굳게 마음을 먹습니다. 게다가 아기 엠마는 ‘마녀 엠마’ 아닌 ‘아기 엠마’이기를 꿈꾸었어요. 이리하여, 엠마는 갓 태어날 적에 등에 날개를 달았지요. 악마와 마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엠마인데 그만, 그러니까 참말 그만, ‘천사 엠마’가 태어났습니다.


  마녀 루시만 깜짝 놀라지 않습니다. 마녀네 이웃 모두 깜짝 놀라고, 지옥에서 아기를 보겠다며 찾아온 악마와 악마네 동무들도 모두 깜짝 놀라요. ‘천사’인 아기 엠마가 무서워서 모두 벌벌 떱니다.


  아기 엠마는 스스로 ‘천사’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엠마는 엠마 스스로 ‘어머니한테서 태어난 아기’라고 여길 뿐입니다. 엠마는 마녀 루시가 ‘마녀’라는 이름표보다는 ‘어머니’라는 사랑으로 저를 바라보고 안아 주기를 바라지요.




별별 일을 겪고 난 후, 루시와 엠마는 마법사의 나라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루시와 엠마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답니다. 마치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처럼. (33쪽)



  그림책 《엄마가 된 마녀 루시》를 읽는 내내 지난 여덟 해를 돌이켜 봅니다. 그림책 《엄마가 된 마녀 루시》를 덮으면서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나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비로소 아버지라는 자리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두 아이는 스스로 잘 뛰어놀고 밥도 잘 먹으며 똥오줌도 잘 가려서 누는 몸짓을 보여주면서, 나를 ‘어버이’이자 ‘어른’으로 이끌어 줍니다.


  나는 나이를 먹었기에 어른이 아닙니다. 나는 혼인을 했기에 남편이나 아버지가 아닙니다. 나는 우리 집을 따사로운 보금자리로 가꾸겠노라 하는 꿈을 키우면서 살림을 건사하기에 비로소 남편이나 아버지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마음속에서 길어올리기에 나와 짝꿍은 서로 ‘곁님(곁에서 지키고 보살피는 님)’이 될 수 있습니다. 나와 곁님은 서로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어버이요 어른으로 거듭나고, 이동안 두 아이는 스스로 씩씩하고 의젓하게 자랍니다.


  모든 사람은 아기로 태어나고, 아기로 태어나서 어린 나날을 누리며, 이윽고 천천히 철이 들면서 슬기로운 사랑으로 삶을 짓는 꿈을 키웁니다. 몸뚱이만 어른이 아닌 마음으로 어른이 되려고 아기를 낳습니다. 아기를 기쁜 웃음으로 키워서 밝은 노래를 부르는 하루가 되기에, 어느덧 어른으로 거듭나지요.


  그렇다고 ‘혼인해서 아기를 낳지 않은’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혼인만 했대서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기를 낳아 돌보았어도 모두 어른이 되지는 않습니다. 혼인을 하지 않았어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숨결이라면 어른입니다. 혼인을 했어도 아기를 안 낳은 살림이라면, 아기 없는 삶에서도 이웃을 언제나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넋이라면 어른이지요. 마음 가득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을 줄 알고, 이 사랑 씨앗을 두루 베풀 때에 비로소 어른입니다.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사랑이라는 씨앗을 물려받아서 즐겁고 튼튼하게 자랍니다. 4348.11.22.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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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과나무 춤추는 카멜레온
루스 게리 오바크 글.그림, 최용은 옮김 / 키즈엠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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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1



마당에 심은 나무 한 그루로 나누는 사랑

― 나의 사과나무

 루스 게리 오바크 글·그림

 최용은 옮김

 키즈엠 펴냄, 2015.10.22. 8000원



  나무 한 그루를 돌볼 수 있는 집이랑, 나무 한 그루를 돌볼 수 없는 집은 사뭇 다릅니다. 나는 서른다섯 해가 넘도록 나무 한 그루조차 돌볼 수 없는 집(마당이 없는 집)에서 살다가, 요 다섯 해 남짓 비로소 나무 한 그루를 돌볼 수 있는 집(마당이 있는 집)에서 지냅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갓 태어난 뒤에는 제 나무를 만날 수 없었지만, 작은아이는 갓난쟁이일 무렵부터 우리 나무를 마주하면서 언제나 하루를 새롭게 맞이합니다.


  우리 집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맨 먼저 하는 일이 있어요. 바로 ‘나무한테 절하고 오기’입니다. 나무한테 절을 하고 말을 섞고 바람을 마시고 춤을 추면서 웃지 않으면 밥도 주전부리도 없습니다. 언제나 아침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에는, 흐리나 맑으나 아침에는, 우리 집을 둘러싼 여러 나무한테 절을 하면서 열기로 합니다. 나들이를 가거나 집을 비울 적에도 나무한테 절을 하고,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도 으레 나무한테 절을 하면서 말을 섞어요.



우리 집 마당에는 오래된 사과나무가 있어요. 늘 앙상해서 사람들은 나무가 죽은 줄 알고 주변에 쓰레기를 버렸지요. 하지만 사과나무는 죽지 않았어요. (2쪽)




  루스 게리 오바크 님이 빚은 앙증맞은 그림책 《나의 사과나무》(키즈엠,2015)를 읽으며 나무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apple pigs”라는 이름으로 2015년에 미국에서 처음 나오고, 한국말로는 《나의 사과나무》(키즈엠,2015)로도 나온 예쁜 그림책을 읽으며, 집에 나무가 있느냐 없느냐는 얼마나 다른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오래된 나무’를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아마 이 아이도 집에 있는 나무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테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 스스로 제법 나이가 든 뒤에 비로소 ‘마당에 있는 오래된 능금나무’가 시들시들 앓는 줄 알아차렸구나 싶어요. 집에서 누구도 돌보지 않고 아끼지 않고 눈길도 두지 않아서 시름시름 시드는 나무를 ‘아이’가 알아보았네 싶습니다.



나는 사과나무 주변의 쓰레기를 치우고, 풀을 뽑고, 갈퀴로 땅을 정리했어요. 사과나무 주위로 예쁜 꽃도 심었지요. 봄볕이 따사롭게 비추고, 봄비가 촉촉이 내렸어요. (5쪽)




  아이는 무엇을 할까요? 아이는 나무한테 무엇을 할 만할까요?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합니다. 먼저, 나무 둘레에 쌓인 쓰레기부터 치웁니다. 이러고 나서 자잘하게 돋은 온갖 풀을 뽑아 줍니다. 나무뿌리가 제대로 숨쉴 터를 마련하고, 나무한테 이제부터 제대로 사랑을 나누어 주리라 하고 다짐합니다. 나무가 좋아하도록 고운 꽃을 나무 곁에 심기도 했대요.


  자,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오래되고 아픈 능금나무 한 그루는 아이한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나무 한 그루를 살뜰히 돌본 아이는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까요? 따스한 사랑을 받은 늙은 능금나무 한 그루는 앞으로 아이한테 어떤 선물을 베풀 수 있을까요?



저녁밥도 사과, 간식으로도 사과를 먹었어요. 하지만 사과는 여전히 많았어요. “더 못 먹겠어!” 우리는 소리쳤어요. 그래서 사과를 따서 침대맡에 두었어요. (10∼11쪽)




  그림책 《나의 사과나무》를 보면, 그동안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능금나무가 꽃을 활짝 피웁니다. 꽃을 활짝 피우고 잎도 잔뜩 돋은 능금나무에 새가 다시 찾아옵니다. 새는 능금나무 한쪽에 둥지를 짓습니다. 능금나무에 둥지를 지은 새는 날마다 기쁘게 노래를 부릅니다.


  집에 나무가 한 그루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무는 봄에 새롭게 잎을 틔워서 새로운 숨결과 짙푸른 바람을 베풀지요. 잎이 우거지는 나무는 새를 부르기 마련이라, 새가 찾아들어서 고즈넉히 깃들면, 새는 아름답게 노래하면서 사람들한테 새로운 즐거움을 나누어 줍니다.


  나무가 잘 자라는 집에서는 나무 그늘을 누리면서 쉴 수 있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하루 내내 실컷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선물처럼 내놓는 꽃이랑 열매를 듬뿍 누리지요.



이제 더는 사과를 보관할 곳이 없었어요.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나는 안내문을 쓰고, 초대장을 보냈어요. “사과 축제를 합니다! 모두 모두 오세요.” (19쪽)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바야흐로 ‘아침 낮 저녁’으로 끼니마다 능금을 먹을 수 있습니다. ‘여태 열매 한 알 내놓지 못하던 능금나무’가 어마어마하게 능금을 내놓습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날이면 날마다 능금을 먹는데, 먹고 또 먹어도 능금은 자꾸자꾸 열립니다. 온 집안에 능금을 잔뜩 쌓지만, 능금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집 안팎이 ‘능금바다’가 되어 도무지 어찌저찌 손쓸 틈이 없습니다.


  이때에 ‘나무를 되살린 아이’가 멋진 생각 하나를 그려요. ‘능금잔치’를 열어서 이웃을 부르기로 하지요. 나무가 새를 부르듯이, 사랑이 나무를 되살리듯이, 수북하게 쌓인 너른 능금을 잔뜩 펼쳐서 재미난 잔치를 열기로 해요.


  가까이서 찾아오고 멀리서 찾아온 수많은 이웃은 어마어마한 능금을 신나게 먹습니다. 수많은 이웃이 수없이 능금을 먹어 주기에 비로소 능금바다가 줄어듭니다. 이제 집안이 한결 넉넉합니다. 넘치는 능금 때문에 더는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까, 능금나무 한 그루는 바로 이러한 삶을 바랐구나 하고 느낍니다. 꽃 한 송이와 열매 한 알로 다 같이 오순도순 누리는 사랑을 바랐구나 싶습니다. 서로서로 웃고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춤추면서 하루를 즐거이 누리기를 바랐구나 싶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고 꿈을 나누며 기쁨을 나누기를 바랐구나 싶어요.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며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면 참말 삶이 바뀌리라 생각해요.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모든 집에서 마당을 조그맣게라도 누릴 수 있어서 ‘우리 집 나무’를 돌볼 수 있다면, 또 ‘내 나무’를 아낄 수 있다면, 마음 가득 피어나는 사랑스러운 꿈으로 이웃하고 살가이 어깨동무를 할 수 있겠지요. 4348.11.18.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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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함께 있을게 웅진 세계그림책 120
볼프 에를브루흐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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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1



동무를 떠나보내는 삶인 ‘죽음이’

― 내가 함께 있을게

 볼프 에를브루흐 글·그림

 김경연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7.10.31. 9500원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짓고, 이튿날 새 하루를 새로우면서 기쁘게 맞이하자’고 생각합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적에 ‘이제 곧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새로운 하루는 어떻게 누리면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적에 ‘하루를 더 살았으니, 죽음하고 하루 더 가까워지네’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른인 나도 이렇게 생각하지만, 아이들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잠자리에서 삶을 생각할 뿐입니다. 구태여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부터 오리는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대체 누구야? 왜 내 뒤를 슬그머니 따라다니는 거야?” “와, 드디어 내가 있는 걸 알아차렸구나. 나는 죽음이야.” (4∼5쪽)



  볼프 에를브루흐 님이 빚은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웅진주니어,2007)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오리가 한 마리 나오고, 오리 곁을 늘 맴돌았다는 ‘죽음이’라는 아이가 나옵니다.


  오리는 어느 날 문득 제 곁에 누군가 가까이 있는 줄 깨닫고는 고개를 홱 돌리면서 묻습니다. 그리고, 오리가 이렇게 물을 적에 ‘죽음이’는 그동안 드러내지 않던 모습을 오리 앞에 환하게 드러냅니다. 뒷짐을 진 손에 꽃을 한 송이 든 채 말이지요.



“사고가 났을 때 걱정해 주는 것은 삶이야. 삶은 감기라든가, 너희 오리들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걱정하지. 한 가지만 예를 들게. 여우가 나타났다고 생각해 봐.” 오리는 그건 절대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으스스 소름이 돋았습니다. (9쪽)




  오리는 왜 죽음이를 알아챘을까요? 죽음이는 왜 오리 곁에서 맴돌았을까요? 오리는 죽고 싶은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오리는 이제 삶을 마치고 죽음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무래도 오리 스스로 죽음을 생각했기에 죽음이 늘 곁에 맴도는 줄 느꼈으리라 봅니다. 죽음을 생각하던 나날이었으니 때때로 오싹하기도 하고, 때때로 ‘누가 옆에 있네’ 하고 느꼈을 테지요.


  죽음이는 죽음으로 가도록 이끄는 아이입니다. 그러니 늘 꽃 한 송이를 갖고 다니면서 ‘죽음을 맞이한 님’한테 꽃송이를 가만히 올려놓고 냇물에 주검을 띄워서 흘려보냅니다.



“추워? 내가 따뜻하게 해 줄까?” 오리가 물었습니다. 아무도 죽음에게 그런 제안을 해 준 적이 없었습니다. (13쪽)




  오리는 죽음이를 알아챘지만, 그다지 죽음이를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스스로 곧 죽음이 닥칠 줄 알았기에, 제 곁에 늘 맴돌던 숨결이 무엇인가를 알아챈 뒤에는 아무것도 거리낄 일이 없어졌구나 싶습니다. ‘죽음이 곁에 있는 삶’이란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는 줄 알았다고 할까요.


  바야흐로 오리는 죽음이를 제 동무로 삼아요. 오리는 죽음이가 늘 따라다니는 줄 깨닫습니다. 아침에 번쩍 눈을 뜨면서 죽음이를 깨웁니다. 아직 죽지 않았다고 외치면서 기뻐합니다. 죽음이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오리가 기뻐하는 대로 함께 기뻐합니다. 이러면서 오리하고 함께 놀지요. 못에도 가고 나무에도 오르지요. 어디를 가든 함께 움직여요.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를 읽을 어린이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 그림책을 읽을 어린이는 ‘죽음은 두려워할 만하지 않다’는 대목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죽음을 생각하기에 죽음이 찾아오고, 삶을 생각하기에 삶을 누린다’는 대목을 가만히 마음속에 그릴 만할까요?



오리는 죽음의 옆구리를 툭 치며 큰 소리로 기뻐했습니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죽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도 기쁘다.” 죽음이 기지개를 켜고 말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죽었다면?” “그럼 난 늦잠을 잘 수 없었을 거야.” 죽음이 하품을 하며 말했습니다. (15쪽)




  기쁨을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마음속에 기쁨을 그리면서 삶에 기쁨이 깃들도록 이 길을 걷습니다. 슬픔을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마음속에 슬픔을 그리면서 삶에 슬픔이 스미도록 이 길을 걸어요. 웃음을 생각하니 웃음을 스스로 길어올리고, 눈물을 생각하니 눈물을 스스로 끌어냅니다.


  온누리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뭘 하고 놀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누구나 참으로 재미나게 놀고 신나게 놀며 개구지게 놀아요. 그런데, 학교에 매인 아이들은 ‘아이고, 오늘도 학교에 가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학교 공부가 괴롭거나 대학입시로 고달픈 아이들이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새로 맞이하는 삶’이 그리 기쁘지 않을 만합니다. 아침을 기쁘게 웃으면서 맞이하지 못한다면 아무래도 삶하고 멀어질 테지요. 기쁨이를 부르지 못하고 죽음이를 부를 테지요.


  그림책 끝자락을 보면 ‘죽음이’한테는 “죽음이 삶”이라고 읊는 대목이 나옵니다. 모처럼 동무를 사귀었어도 동무가 죽음으로 가는 길로 이끄는 일이 죽음이한테 삶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죽음이한테도 죽음이 있을까요? 삶을 누리던 목숨이 죽음으로 가도록 이끄는 ‘죽음이가 죽으’면, 이 아이는 ‘삶’이라는 자리에서 다시 태어날까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일 텐데, 참말 삶과 죽음은 수수께끼라고 할 만합니다. 수수께끼를 풀려고 이 땅에 태어나고, 수수께끼를 풀면서 이 삶을 지으며, 수수께끼를 풀거나 맺으면서 이 길을 마무리짓겠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죽음길로 떠난 오리’는 몸뚱이는 고이 내려놓고 새로운 삶길로 갔으리라 생각합니다. 4348.11.1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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