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말이야
장 뒤프라 지음, 조정훈 옮김, 넬리 블루망탈 그림 / 키즈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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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5



시골에서 밤하늘을 보았니?

― 태양은 말이야

 장 뒤프라 글

 넬리 블루망탈 그림

 조정훈 옮김

 키즈엠 펴냄, 2012.10.26. 11000원



  시골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눈부시도록 쏟아지는 별잔치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전깃불이 없고 자동차도 오가지 않는 시골일 때에 흐드러지는 별잔치를 누리면서 즐겁게 춤을 출 만합니다. 달밤에 춤을 춘다는 말이 있는데, 별이 쏟아지는 한밤에 별잔치를 올려다보노라면 참말 저절로 춤이 흘러나옵니다.


  고요한 겨울 밤이든, 개구리 노랫소리로 우렁찬 여름 밤이든, 또 풀벌레 노랫소리가 고즈넉한 가을 밤이든, 아니면 무럭무럭 자라난 새끼 새들이 신나게 노래하다가 잠드는 봄 밤이든, 별밤이란 더없이 고운 숨결이 흐르는 때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아이들 이불깃을 여미고 쉬를 누러 마당으로 내려서는 한밤이면 으레 마당 한복판에 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뒤꼍에도 올라 빙글빙글 돌며 밤하늘을 올려다보곤 합니다. 미리내를 살피고 숱한 별자리를 헤아리며 초롱초롱 빛나는 저 별처럼 이 지구별도 초롱초롱 빛나면서 저 별한테 보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앗, 눈부셔!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 (2쪽)



  장 뒤프라 님이 글을 쓰고 넬리 블루망탈 님이 그림을 그린 《태양은 말이야》(키즈엠,2012)를 재미있게 읽습니다. 이 그림책을 함께 보는 큰아이가 문득 묻습니다. “아버지, 지구는 풀빛이야? 지구는 풀빛 별이야?” 그림책을 보니 해님 곁에 있는 지구가 풀빛이로군요. “우리가 선 이곳에서는 지구가 어떤 빛깔인지 볼 수 없지만, 지구 바깥인 우주로 나가서 보면 풀빛으로 보인대.”


  그림책 《태양은 말이야》는 지구과학이나 우주과학을 아이들이 쉽게 바라보고 살피도록 도우려고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린이가 지구 바깥으로 마음껏 날아다니고, 해님 곁에서 춤을 추다가는, 해님을 둘러싼 뭇별하고 나란히 노래를 부르는 그림이 나와요.


  우주옷도 안 입고 어떻게 우주에서 저렇게 떠다니거나 날아다니느냐고 따진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아이들은 꿈나라에서 이렇게 마음껏 우주를 가로지를 수 있어요. 해님 곁에 다가가서 “해님, 해님은 어떻게 태어났어요?” 하고 물어볼 수 있고요.




새로 태어난 행성들은 태양을 따라다녔어. 어미 닭을 졸졸 따르는 병아리 떼처럼 말이야. (11쪽)



  2000년대까지 밝힌 과학 지식으로 작고 예쁜 그림책이 하나 나옵니다. 앞으로 2050년대 과학이 새로 나타나거나 2200년대 과학이 새로 샘솟거나 2500년대 과학이 새로 일어서면 그때에는 그때대로 더 새로운 이야기를 다루는 그림책이 나올 만하겠지요.


  해님하고 얽힌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아이들은 해님 무게가 몇 톤이나 되는지 몰라도 됩니다. 해님 너비나 지름을 숫자로 알지 않아도 됩니다. 우주에 별이나 은하가 몇이나 되는지 몰라도 되고, 지구에 있는 사람 숫자를 몰라도 되지요. 다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으면 돼요. 우주는 아주 놀라운 별나라이고, 이 지구도 아주 사랑스러운 별나라입니다. 너른 은하로 헤아리면 지구라는 별은 그야말로 작아서 먼지나 티끌만큼도 안 될 만합니다. 지구라는 테두리에서 바라보면 어린이 한 사람은 더없이 작아서 먼지나 티끌만큼도 안 될 만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 아끼면서 사랑할 이웃이에요. 해님을 둘러싼 ‘병아리 떼’ 같은 별처럼, 은하를 이룬 수많은 별처럼, 우리는 이 지구라는 곳에서 ‘다 다른 사람’이자 ‘다 다른 별’처럼 삶을 짓습니다.




아주아주 커다란 은하는 커다란 태양과 별들을 끌고 다니며 빙글빙글 돌고 있어. (14쪽)



  도시에서는 아주 깜깜한 밤에도 별을 보기 어렵습니다. 밤 한 시나 새벽 두어 시에도 별을 구경하기 어렵지요. 전깃불이 너무 밝거든요. 자동차도 너무 많아요. 어쩌면 도시에서는 굳이 별을 보아야 하지 않을 수 있어요.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별보다는 문명을 보고 문화를 보아야 할는지 몰라요.


  그래도 우리는 해님이 있기에 이 삶을 누려요. 해님이 따스하게 비추기에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요 꽃이 피어요. 해님이 포근하게 어루만지기에 겨울에도 꽁꽁 얼어붙기만 하지 않아요. 해님이 햇볕하고 햇빛하고 햇살을 베풀기에 이 지구에서 저마다 즐거우면서 새로운 삶을 누려요.




아름답게 반짝이는 은하를 저 멀리에서 큰곰자리가 바라보고 있어. 큰곰자리는 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커다란 곰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야. (18쪽)



  너른 우주에서 별자리는 여러 별을 그림처럼 엮은 이음고리입니다. 우리 지구별에서도 ‘국경’이 마치 별자리와 같다면, 이 나라와 저 나라 사이가 마치 그림처럼 곱게 엮은 이음고리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 나라와 저 나라 사이에 쇠가시울타리를 세우지 말고, 이 나라와 저 나라 사이에 군대나 전쟁무기를 두지 말고, 이 나라와 저 나라 사이에 따사로운 숨결이 흐르면 어떠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우주에서는 별과 별 사이에 전쟁도 전쟁무기도 없는데, 지구라는 자그마한 별에는 전쟁도 전쟁무기도 너무 많아요.


  해님이 지구별을 따사롭고 포근하게 감싸듯이 지구에서는 우리가 서로서로 따사롭고 포근한 손길이 되기를 빌어 봅니다. 해님 같은 마음으로 삶을 지을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해님 같은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살림살이와 마을살이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4348.12.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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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합창단 미래그림책 117
뤼크 포크룰 글, 아니크 마송 그림, 임희근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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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3



작은 개구리도 있고, 노래 못 하는 개구리도 있지

― 개구리 합창단

 뤼크 포크룰 글

 아니크 마송 그림

 임희근 옮김

 미래아이 펴냄, 2011.6.7. 9000원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가락에 맞추면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가락을 맞추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누군가는 놀랍도록 노래를 잘 부를 수 있고, 누군가는 좀 어설프거나 어수룩하다 싶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기에 노래꾼이 될 수 있으며, 노래를 썩 못 부른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스스로 즐겁게 흥얼거릴 수 있어요.


  나는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내가 노래꾼이라거나 노래 솜씨가 훌륭하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그저 즐겁게 밥을 지으려고 노래를 불러요.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나들이를 다니면서도 노래를 불러요. 발판을 구르는 다리에 힘이 풀리거나 땀이 비오듯이 쏟을 적에 새롭게 기운을 내려고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하고 함께 누리는 나들이가 즐거워서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자랍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노래를 하는 마음을 물려받으면서 자랍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실컷 노래하고 춤추면서 노는 삶을 누리면서 자라요.



개구리는 노래를 참 잘해요. 만나는 개구리들한테 꿈이 뭐냐고 한번 물어보세요. 아마 다들 합창단원이 되는 거라고 대답할걸요. (4∼5쪽)



  뤼크 포크룰 님이 글을 쓰고, 아니크 마송 님이 그림을 그린 《개구리 합창단》(미래아이,2011)이라는 그림책을 가만히 읽습니다. 그림책 앞뒤로 ‘개구리 노래’가 적힙니다. 이 그림책을 펴는 큰아이는 한글을 읽을 줄 알기에 개구리 노래를 부르면서 그림책을 봅니다. 작은아이는 아직 한글을 읽을 줄 모르나 말은 알기에 누나가 부르는 노래를 저도 따라서 부릅니다.


  그림책을 본다고 해서 말없이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림책에 적힌 글만 읽거나 그림만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보면서도 얼마든지 노래를 부를 만해요. 그림책을 보는 내내 신나게 노래를 부를 만하고, 그림책을 덮은 뒤에도 재미나게 노래를 부를 만하지요.




루시 차례가 되었어요. 그러자 지휘자 선생님이 큰 소리로 말했어요. “아가야, 넌 여기 뭐 하러 왔니? 쯧쯧, 그렇게 작아서야 어디 노래나 제대로 하겠니? 얼른 돌아가거라.” “저……. 그래도 한번 들어나 봐 주세요.” “안 될 말이야! 자, 다음 개구리!” (10쪽)



  그림책 《개구리 합창단》은 개구리 마을에 있다는 ‘개구리 합창단’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개구리 마을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노래패’에 들고 싶어 해요. 마음껏 노래를 부르려는 꿈을 키우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려는 삶을 생각하며, 언제나 곱게 노래를 부르려는 살림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노래패에 들 만한 새 개구리를 뽑는 지휘자 개구리느 ‘몸집’을 보면서 심사를 봅니다. 몸집이 조그마한 개구리는 아예 노래조차 부를 길이 없고, 몸집이 커다란 개구리는 몸집만큼 노래를 잘 하겠거니 여깁니다.


  참말 이와 같을까요? 몸집이 작으면 노래를 못 할까요? 몸집이 크면 노래를 잘 할까요?


  우리 둘레를 살피면 몸이 작아도 빼어난 목청을 뽐내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아주 작은 몸으로도 어마어마한 목소리를 뽑아내어 아름답거나 훌륭하거나 사랑스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꽤 많아요.




“아, 루시! 나한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난 슬플 때면 요리를 해. 내가 너한테 영양만점 메뚜기 수프를 끓여 줄게. 그걸 먹으면 네 키가 쑥쑥 클 거야. 그 대신 너는 나한테 노래를 가르쳐 줘. 어때? 좋지?” (14쪽)



  노래패에 들지 못한 ‘작은 개구리’는 풀이 죽습니다. ‘노래를 못 해’서 노래패에 못 드는 ‘큰 개구리’도 똑같이 풀이 죽습니다. 한쪽은 노래를 잘 하지만, 몸집이 작다면서 아예 끼워 주지 않고, 한쪽은 몸집이 크지만 노래를 못 한대서 안 끼워 줍니다.


  이때에 몸집이 큰 개구리는 몸집이 작은 동무 개구리더러 ‘노래를 가르쳐 주지 않겠느냐’고 묻습니다. 큰 개구리는 작은 개구리한테서 노래를 배우기로 해요. 작은 개구리는 온힘을 다해서 노래를 가르치려고 해요. 그런데 말이지요, 이제 새로운 골칫거리가 있습니다. 큰 개구리는 아무리 배우고 배워도 노래 솜씨가 영 나아지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두 개구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래를 하고 싶은 작은 개구리는 앞으로 노래를 할 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요? 노래를 못 부르는 큰 개구리는 앞으로 무엇을 할 만할까요?



“베르타, 우리 노래하러 가야지!” 루시가 베르타를 불렀어요. “싫어! 너는 내가 없어도 혼자 노래할 수 있잖아. 그리고 언젠가 네 키도 클 거야. 그럼 난 뭐가 되니? 다들 네 목소리를 좋아한다고. 내가 아니라.” (21쪽)




  우리 집 두 아이를 바라보면, 두 아이는 한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태어났어도 저마다 좋아하는 놀이가 다릅니다. 한 아이는 끈덕지게 피리를 불려 하고 피아노를 치려 하면서 스스로 가락을 깨우칩니다. 한 아이는 아직 끈덕지지 못할 뿐더러, 다른 데에서도 살며시 칭얼거리기를 좋아합니다. 한 아이는 무엇이든 스스로 해 보면서 하나씩 익히고, 한 아이는 아직 무엇이든 살그마니 기대어 보려고 합니다. 이러면서도 한 아이는 저 스스로 좋아하는 일에서는 온마음을 쏟아서 아주 멋지게 해내요.


  나이가 같은 아이들이 여럿 있다면, 이 아이들은 나이만 같을 뿐 무엇이든 다 다릅니다. 어느 아이는 공을 차고 싶고, 어느 아이는 책을 읽고 싶으며, 어느 아이는 흙을 파면서 놀고 싶어요. 어느 아이는 천천히 걷고 싶으며, 어느 아이는 자전거를 달리고 싶을 테고, 어느 아이는 어깨동무를 하면서 달리기를 하고 싶을 테지요.


  아이들은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저마다 마음으로 품을 꿈도 다릅니다. 앞으로 얻고 싶은 일자리도 다르기 마련이에요. 그러니, 다 다른 꿈으로 자라는 다 다른 아이들한테 똑같은 것을 시키거나 똑같은 틀에 옭아맬 수 없습니다. 다 다른 아이들은 저마다 좋아하면서 즐거고 잘 할 수 있는 놀이하고 일을 누려야 환하게 웃습니다. 우리 삶터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손길로 다 다른 꿈을 지어서 가꾸기에 아름답지요.


  그림책 《개구리 합창단》에 나오는 두 개구리 가운데 한 개구리는 스스로 힘을 쓸 뿐 아니라 꿈을 놓지 않기에 끝내 노래패에 들어갑니다. 두 개구리 가운데 한 개구리는 구태여 노래패에 들기보다는 ‘다른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다른 즐거운 길’을 가기로 합니다. 마음을 바라볼 줄 알고, 마음을 돌볼 줄 알며, 마음을 씩씩하게 다스릴 줄 알면, 우리는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기쁘게 웃는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4348.12.1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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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손손! 온세상 그림책
하마다 케이코 글.그림, 한영 옮김 / 미세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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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0



고운 손으로 짓는 따사로운 살림

― 손손손!

 하마다 게이코 글·그림

 한영 옮김

 미세기 펴냄, 2010.9.30. 11000원



  과자를 담은 종이상자는 쓰레기통에 넣으면 쓰레기가 됩니다. 종이상자를 차곡차곡 모아서 끈으로 묶어 놓으면 되살려 쓸 수 있는 헌 종이가 됩니다. 종이상자를 가위로 알맞게 오려서 이 종이에 그림을 그려 넣으면 종이인형이 태어납니다.


  앞뒤가 하얗고 깔끔한 종이로도 종이인형을 빚을 수 있고, 한쪽만 하얗고 깔끔한 종이로도 종이인형을 빚을 수 있습니다. 앞뒤로 광고가 가득 찍힌 종이라 하더라도 하얀 종이를 겉에 바르면 새롭게 예쁜 종이인형을 빚을 만합니다.


  손을 쓰면 무엇이든 새롭게 거듭납니다. 손을 써서 가꾸면 무엇이든 아름답게 다시 태어납니다. 손을 내밀어 차근차근 보듬으면 무엇이든 즐겁고 멋스러운 이야기가 흐르는 삶이 됩니다.



손, 우리 손. 손은 날마다 여러 가지 일을 해.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단추를 끼우지. 목욕물 온도도 재고, 그림을 그리고, 터널을 만들어. 철봉에 매달리기도 해. 손은 언제나 도움이 돼. 그것만이 아니야. 훨씬 더 멋진 일도 할 수 있어. (2∼3쪽)



  손으로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놀이를 보여주고, 손으로 지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일을 보여주며, 손으로 가꿀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는 그림책 《손손손!》(미세기,2010)을 읽으면서 ‘손’이란 무엇인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 그림책을 빚은 하마다 게이코 님이 《엄마 엄마 함께 놀아요》라든지 《아빠 아빠 함께 놀아요》 같은 그림책을 빚기도 했고, 《귀엽지 않은 내 동생》이나 《동생을 드립니다》 같은 그림책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어버이하고 아이가 즐겁게 노는 삶을 가만히 들려주었고, 언니하고 동생이 서로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기쁨을 넌지시 들려주지요. 《손손손!》은 그야말로 우리 손으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대목을 밝힙니다. 우리 손은 언제나 기쁨이 되어 고운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대목을 알려주어요.




빨래를 손으로 두드려 널면 쫘악 펴져. 손바닥 다리미, 팡팡팡! 소리를 크게 내고 싶을 때는 손을 입에 대 봐. 소리를 잘 듣고 싶을 때는 손을 귀에 대고. (7쪽)



  아침저녁으로 짓는 밥은 손으로 짓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 손은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려서 밥상을 펼치고 설거지를 하는 손이기도 합니다. 밥상을 차리자면 먹을거리를 얻어야 하는데, 사람이 먹는 모든 밥은 흙에서 나와요. 그러니까, 나는 내 손으로 흙을 가꾸거나 돌보거나 일구면서 밥을 짓는 셈입니다.


  아이한테 입히는 옷은 예부터 어버이가 손수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했습니다. 풀에서 얻은 섬유질을 물레를 자아서 실로 빚고, 이 실은 베틀을 밟아서 천으로 짜요. 옷 한 벌을 지으려면 무척 손이 많이 갑니다. 헌 옷을 기울 적에도 손이 가고, 지저분해진 옷을 빨래할 적에도 손이 가지요.


  아기는 어버이가 대 주는 기저귀로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기는 기저귀에 똥오줌을 누면서 천천히 자라요. 어버이는 기저귀를 늘 새롭게 빨고 햇볕에 말립니다. 우리 손은 밥을 짓고 옷을 지을 뿐 아니라, 흙을 돌보며 빨래를 건사하는 손입니다.


  그리고, 우리 손은 집을 짓지요. 나무를 베고 돌을 나릅니다. 흙을 옮기고 톱질을 합니다. 망치질도 하고 대패질도 해요. 문틀을 짜고 창호종이를 발라요.




울먹이는 사람이 있으면 두 손으로 살며시 손을 감싸 줘. “옆에 있을 테니까 기운 내.” 하고 손이 말해 줄 거야. (18쪽)


악수를 해 봐. 마주 보고 손과 손을 맞잡는 거야. 처음 만났지만 친구가 될 수 있어! 싸웠지만 금방 화해할 수 있어! (20∼21쪽)



  두 손이 있기에 삶을 짓는다고 할 만합니다. 그래요, 우리는 두 손으로 모든 삶을 짓고 노래합니다. 한국말에 있는 ‘짓다’는 하나같이 두 손으로 스스로 빚는 삶을 보여줍니다. 밥짓기랑 옷짓기랑 집짓기를 비롯해서, 살림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노래를 지을 적에도 손길이 닿습니다. 춤을 짓고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짓는 동안에도 따사로운 손길이 흐릅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따사로이 쓰다듬습니다. 아이가 어버이를 살가이 안습니다. 동무랑 동무가 즐겁게 어깨동무를 합니다. 이웃이 사이좋게 모여서 기쁘게 잔치를 엽니다. 반갑기에 손을 맞잡고, 힘든 일이 있을 적마다 두 손 굳게 잡습니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면서 두 손이 땀으로 젖습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손을 나누면서 새롭게 일어섭니다.




손, 손은 정말 굉장해. 어쩌면 손은 마음이 드나드는 문일지도 몰라. (28쪽)



  그림책 《손손손!》도 그림책 작가 한 사람이 손으로 빚습니다. ‘손수’ 빚은 이야기예요. 그리고 ‘몸소’ 지은 이야기입니다. 손을 써서 이야기 하나가 태어나고, 온마음을 기울인 온몸으로 힘을 쏟아서 이야기 하나가 새삼스레 온누리를 따사로이 보듬습니다.


  그리고 어버이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두 손으로 그림책을 쥡니다. 아이도 어버이 무릎에 앉아서 그림책을 함께 쥡니다. 큰 손이 둘 작은 손이 둘, 이렇게 네 손이 그림책 하나를 붙잡고 즐겁게 노래하듯이 이야기를 읽습니다.


  손, 손, 손, 이 손은 바로 사랑을 짓는 손입니다. 손, 손, 손, 이 손은 언제나 노래를 부르는 손입니다. 손, 손, 손, 이 손은 한결같이 기쁜 웃음으로 서로 아끼는 손입니다. 이 고운 손으로 우리 함께 따사로운 살림을 지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8.12.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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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아저씨 손 아저씨 우리 그림책 1
권정생 지음, 김용철 그림 / 국민서관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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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2



아무것도 없으니 서로 돕는구나

― 길 아저씨 손 아저씨

 권정생 글

 김용철 그림

 국민서관 펴냄, 2006.2.20. 1만 원



  한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은 ‘손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한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은 ‘마음이 넉넉한’ 사람입니다. 한손을 내밀 줄 모르는 사람은 ‘손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손을 내밀 줄 모르는 사람은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누가 도울까요? 돈이 있는 사람이 이웃을 돕지 않아요. 마음이 있고 사랑이 있는 사람이 이웃을 돕습니다. 이웃을 누가 아낄까요? 집안이 넉넉한 사람이라든지 집이 커다란 사람이 이웃을 아끼지 않아요. 마음이 너그럽거나 사랑이 가득한 사람일 때에 이웃을 돕습니다.




윗마을 길 아저씨는 두 다리가 불편했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방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앉아서만 살았대요. 부모님이 계실 때는 잘 보살펴 주셔서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었지요. (5쪽)



  권정생 님이 쓴 글에 김용철 님이 그림을 붙인 《길 아저씨 손 아저씨》(국민서관,2006)를 읽습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가만히 읽으면서 두 아저씨가 이루는 삶을 지켜봅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할 두 아저씨가 서로 돕는 모습을 그림책으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런데 길 아저씨가 손 아저씨한테 아무것도 없지는 않습니다. 두 아저씨한테는 저마다 ‘발’이 있고 ‘눈’이 있어요. 그리고 ‘손’이 있습니다. 여기에 ‘마음’이 있어요.


  두 아저씨는 어릴 적부터 집 바깥으로는 거의 나다니지 못한 채 집에서만 머물렀다고 해요. 두 아저씨네 어버이는 두 아저씨를 어릴 적부터 알뜰히 돌봐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아저씨네 어버이는 그만 먼저 돌아가셨지요.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텐데, 어버이는 아이보다 나이가 많으니까요.




손 아저씨가 커다란 대추나무 집에 구걸하러 갔을 때 그 집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에그, 딱하기도 하지. 하지만 윗마을 길 총각한테 비하면 괜찮은 편이야. 길 총각은 두 다리를 못 쓰니 방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앉아만 있다는구먼.” (15쪽)



  어버이를 잃은 뒤 두 아저씨는 이제 빌어서 먹어야 합니다. 앞을 못 보는 아저씨도 다리가 없는 아저씨도 이도 저도 못하면서 남한테 손을 내밀어 겨우 끼니만 때우지요. 손수 부칠 땅도 모르거나 없는 터요,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모르지요. 몸을 제대로 놀리지 못하니 나무를 하지도 못하고 방에 불을 지피지도 못할 테지요.


  그런데 두 아저씨는 이웃 할머니가 다리를 놓아서 만납니다. 할머니가 다리를 놓았다기보다 ‘손 아저씨’가 동냥을 할 적에 이웃 할머니가 ‘길 아저씨’ 이야기를 했고, 손 아저씨는 길 아저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이 번쩍 뜨이듯이 새 길이 열렸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하지만 나는 걷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겠나.” “걱정 말게나. 다행히 나는 앞을 못 보지만 이렇게 두 어깨가 튼튼하니까 내가 자네를 업고 다니겠네.” 길 아저씨는 금세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20쪽)



  두 아저씨는 여태 아무것도 없는 빈몸인 줄 알았으나, 둘이 한자리에서 만나며 비로소 두 아저씨한테는 서로 저마다 ‘새로운 것’이 있는 줄 깨닫습니다. 두 아저씨는 서로서로 하나씩 있는 새로운 것을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레 살리기로 합니다. 두 아저씨는 이녁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따스한 사랑을 고이 살려서 앞으로 씩씩하게 살자고 다짐합니다.


  참말 두 아저씨는 어버이가 따스히 돌보고 사랑으로 보살폈기에 이렇게 살아갈 수 있어요. 참말 두 아저씨는 ‘먼저 떠난 어버이’가 알뜰히 돌보고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었기에 ‘어버이 뒤를 좇아 죽으려는 마음’을 품지 않고 씩씩하고 꿋꿋하게 살아서 이렇게 서로 돕는 길을 걸을 수 있어요.



길 아저씨와 손 아저씨는 점점 솜씨가 늘어 온갖 물건을 만들었어요. 집 안에서 지게도 다듬고, 바소쿠리와 봉태기도 만들고, 멍석도 짜고, 깨끗한 돗자리도 엮었어요. 길 아저씨와 손 아저씨도 이제는 남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어요. (29∼30쪽)




  서로 아끼고 돕는 두 아저씨를 바라보는 이웃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두 아저씨네 이웃은 두 아저씨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푸근해지거나 애틋해지겠지요. 어쩜 저리 서로 아끼면서 착하게 사느냐 싶어서 한마을 살붙이로 더욱 살뜰히 마주할 만하겠지요.


  이러는 동안 두 아저씨는 이웃집 일손을 살짝 거들기도 합니다. 두 아저씨가 서로 눈이 되고 발이 된 터라, 두 아저씨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서 거들 만한 일거리가 있습니다. 적어도 새끼를 꼴 수 있고, 바구니를 짤 수 있습니다. 멀리 움직이거나 들에 나가거나 멧골에 오르는 일은 못하더라도, 집안 마당에서 할 만한 일거리가 있어요.


  두 아저씨는 저마다 손을 놀려 이래저래 온갖 살림살이를 지을 수 있을 적에 얼마나 기뻤을까요? 두 아저씨는 스스로 살림을 짓고 삶을 지을 수 있는 날을 맞이하면서 얼마나 보람찼을까요? 이런 두 아저씨 몸짓과 마음결을 지켜본 이웃 아낙은 두 아저씨한테 시집가기로 했다 하고, 두 아저씨는 저마다 마음 고운 짝을 만나서 한결 재미나며 아름답게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길 아저씨 손 아저씨》는 이 그림책 바탕을 이루는 글을 쓴 권정생 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이 아파 늘 드러누워 지내듯이 살며 다른 바깥일을 할 수 없던 나날이라 하더라도, 서로 마음으로 돕고 아끼는 벗님하고 이웃님이 있기에 오늘 하루도 힘껏 살아내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든요. 다른 재주도 힘도 솜씨도 없지만, 몸져누운 자리에서 한 줄 두 줄 온마음을 쏟아서 쓴 글이 이렇게 고운 이야기책으로 거듭났어요.


  아무것도 없으니 서로 돕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니 서로 아낍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서로 사랑합니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고 어깨동무를 하기에 아름답습니다. 내 밥그릇을 챙기려 할 적에는 서로 안 돕고 서로 안 아끼며 서로 안 사랑합니다. 함께 누리는 삶자리를 헤아리려 하기에 서로 돕고 서로 아끼며 서로 사랑하지요. 4348.12.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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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곰 형제와 여우 - 헝가리 민화
블라디미르 투르코프 지음, 배은경 옮김, 에우게니 M. 라쵸프 그림 / 한림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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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1



‘어머니 이야기밥’을 한귀로 흘리니

― 아기 곰 형제와 여우

 블라디미르 투르코프 글

 에우게니 M. 라쵸프 그림

 배은경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15.10.20. 9500원



  어머니는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입니다. 아버지도 아이한테 이야기를 해 주는 어른이에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이를 따스히 품에 안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적에 살림살이가 아름답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물려주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한테 이야기를 물려주지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이야기를 즐겁게 받아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새롭게 어른이 되어 새롭게 태어날 아이들한테 새로운 이야기를 물려줍니다.


  오래된 헝가리 옛이야기에 어여쁜 그림 옷을 새롭게 입힌 《아기 곰 형제와 여우》(한림출판사,2015)를 읽으면서 이야기밥이란 무엇인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에 그림을 넣은 에우게니 라쵸프 님은 《장갑》이라는 그림책에도 멋스러운 그림을 넣었는데, 《아기 곰 형제와 여우》에 나오는 곰하고 여우가 입은 옷을 살피면 빛깔하고 무늬가 무척 고와요. 어쩜 이렇게 고운 빛깔하고 무늬로 옷을 지었을까요. 이러한 옷 한 벌을 짓기까지 얼마나 품을 많이 들였을까요.



아기 곰들은 엄마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며 자랐어요. 아기 곰 형제는 이제 엄마 품에서 벗어나 세상을 자유롭게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곰들은 엄마를 오랫동안 설득하고 또 설득했어요. 엄마 곰은 어린 형제에게 항상 같이 행동하고, 서로 도우며, 싸우지 말 것을 당부하고 또 당부했습니다. (5쪽)



  그런데, 고운 옷을 받아서 입은 아기 곰 두 마리는 그리 사이좋지 못한 듯합니다. 어미 곰은 두 아기 곰한테 ‘같이 다니’고 ‘서로 도우’며 ‘싸우지 말기’를 바라는 말을 자꾸자꾸 했다고 해요. 아무래도 두 아기 곰이 여느 때에 늘 따로 다닐 뿐 아니라, 서로 안 도우며, 이내 툭탁거리기 때문일 테지요.


  어미 곰하고 아기 곰 사이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어미 곰은 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아기 곰을 가르치려 합니다. 아기 곰은 어미 곰한테서 늘 이야기를 듣지만 아무래도 으레 한귀로 흘리는 듯합니다. 아기 곰 두 마리는 어미 곰 품을 떠나서 ‘넓은 바깥누리’를 누비고 싶다 말한다는데 두 아기 곰이 씩씩하며 야무지게 ‘넓은 바깥누리’를 누빌 만한 때가 오면 마땅히 먼 마실을 보내겠지요. 그러니까, 어미 곰이 보기에 아기 곰은 아직 ‘길을 나설 때’가 아니라 할 만합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채 바깥누리로 나간다고 해서 잘 지내거나 잘 배우리라고는 느끼기 어려우리라 여기는 듯합니다.


  그래도 아기 곰들은 어미 곰한테 졸랐을 테지요. 어머니 이야기를 으레 한귀로 흘리던 이 아기 곰들은 ‘바깥누리로 길을 나서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 잘 될 줄’ 잘못 알고서 그저 졸라댔을 테지요.




조금 더 걸어가니 오솔길에 동그란 치즈 덩어리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누군가 떨어뜨리고 간 것 같았어요. 함께 좋아하던 곰 형제는 곧 다투기 시작했어요. “내가 먼저 봤으니까 내 치즈야!” (7쪽)



  어버이가 물려주는 이야기밥을 잘 받아서 먹으며 마음을 살찌우는 아이들은 차근차근 철이 듭니다. 어버이가 물려주는 이야기밥은 ‘교훈’이나 ‘훈계’가 아닙니다. ‘삶’이요 ‘살림’입니다.


  아직 어른이 아닌 아기인 두 마리 곰이니 “같이 다니라”고 이릅니다. 두 아기 곰은 아직 힘이 여리거나 모자라니까 “서로 도우라”고 이르지요. 아직 철이 덜 들고 힘도 모자란 아기 곰인 만큼 “싸우지 말아라” 하고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도와도 힘이 모자랄 판에 싸우는 데에 힘을 빼다가는 아무것도 못할 테니까요.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싸우는데?” “치즈는 하나인데 우리는 둘이니까 그렇지.” “내가 도와줄게. 잘 나눌 수 있어.” 교활한 여우가 말했어요. (10쪽)



  그림책 《아기 곰 형제와 여우》에 깃든 옛이야기는 어떻게 흐를까요? 한겨레 옛이야기에도 이와 비슷한 줄거리가 있습니다. 두 형제가 서로 돕지 않고 제 밥그릇을 더 챙기려고 다투면서 벌어지는 바보스러운 일을 넌지시 들려주는 옛이야기가 있지요. 아마 이런 옛이야기는 어느 겨레에나 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형제 사이뿐 아니라 이웃 사이에서도 서로 도울 때에 즐겁고, 동무 사이에서도 서로 도울 때에 기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그마한 힘이라 하더라도 손에 손을 맞잡고 어깨를 겯을 적에 커다라면서 단단한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아기 곰은 길에서 문득 본 치즈 덩어리를 보고는 이내 어머니 말씀을 잊고 다투기부터 합니다. 길에 떨어진 치즈 덩어리라면 ‘치즈 덩어리를 잃은 임자’가 따로 있을 텐데, 이 치즈 덩어리를 잃은 임자를 찾을 생각은 안 하고, 누가 먼저 이 치즈 덩어리를 차지해서 냠냠냠 먹느냐 하고 다툽니다.


  어미 곰은 아기 곰한테 ‘길에 떨어진 치즈 덩어리’를 그냥 차지해서 먹으라고 이야기했을까요? 틀림없이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내 것’이 아닌데 함부로 차지하지 말라고, 이 치즈 덩어리를 잃고 슬퍼할 임자를 찾으라고 이야기했을 테지요.




그렇게 여우는 치즈를 베어 먹고 또 베어 먹었지만 매번 치즈 덩어리 크기는 달랐어요. 여우는 먹고 또 먹으며 치즈 크기를 비교했어요. 마침내 커다랗던 치즈 덩어리는 아주 작은 치즈 두 조각이 되고 말았죠. (13쪽)



  그림책에 나오는 여우는 꾀바릅니다. 여우는 두 아기 곰이 하는 바보스러운 짓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른’으로서 한 가지를 깨우쳐 줍니다. 너희 둘이 그렇게 다투기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할 뿐 아니라, 둘 사이가 그저 나빠지기만 한다는 대목을 깨우쳐 주지요. 적어도 너희 둘이 치즈 덩어리를 사이좋게 나누어 먹을 생각이라도 했다면 서로 새로 기운을 낼 수 있다는 대목을 깨우쳐 주어요. 다만, 꾀바른 여우는 거저로 이렇게 깨우쳐 주지 않습니다. 커다란 치즈 덩어리가 작은 조각이 되도록 냠냠냠 가로채어 먹으면서 깨우쳐 줍니다.


  아기 곰은 ‘비싼값’을 치르고서야 뒤늦게 한 가지를 배우는 셈입니다. 아니, 아기 곰은 그동안 어미 곰이 들려준 이야기를 흘려버렸기에 쓴맛을 보는 셈입니다. 아기 곰이 여느 때에 어미 곰 이야기를 귀여겨들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요. 아기 곰이 여느 때에 어미 곰 말씀을 고운 사랑으로 여겨서 마음밭에 씨앗으로 심었다면 이런 아픔은 없었겠지요.


  이야기밥은 마음을 살찌웁니다. 이야기밥은 마음을 북돋우는 고운 씨앗이 됩니다. 마음자리에 즐거운 이야기 씨앗을 심어서 날마다 알뜰살뜰 가꾸기에 앞으로 새로운 꿈이 자랄 수 있습니다. 온누리 아이들아, 너희를 사랑으로 낳고 사랑으로 돌보며 사랑으로 가르치는 어머니 마음밥을 부디 마음에 기쁘게 새기렴. 4348.12.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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