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정말 화가 나요!
크리스틴 다브니에 그림, 스티븐 크롤 글, 이미영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8



부아가 나고 골이 나며 성이 터질 적에는

― 정말정말 화가 나요!

 스티븐 크롤 글

 크리스틴 다브니에 그림

 이미영 옮김

 크레용하우스 펴냄, 2005.5.30. 8000원



  아침에 큰아이를 불러서 나무랍니다. 여태 수없이 말한 대목을 오늘 아침에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책을 볼 적에 한손에 먹을것을 쥐지 말라 했으나, 큰아이는 또 아침부터 한손에 먹을것을 쥔 채, 다른 한손으로 책을 꾹 누르면서 넘깁니다.


  한손으로 책을 꾹 누르면 책이 다치고, 한손에 먹을것을 들면 가루나 물이 떨어지지요. 엊저녁에 아이들을 재운 뒤 방바닥을 치울 적에 살피니 만화책 한 권 곳곳이 얼룩지고 구겨졌습니다. 내가 못 본 사이에 또 이렇게 했네 싶었는데, 아침에도 다시 이 모습이기에, 책부터 얼른 덮으라 이릅니다. 먹을 적에는 먹고, 놀 적에는 놀고, 잘 적에는 자고, 읽을 적에는 읽고, 똑똑히 해야 한다고 이릅니다.


  아이는 입을 삐죽 내밉니다. 받아들이고픈 마음이 없는 셈입니다. 아이 마음속에는 ‘아차, 또 놓쳤네.’ 하는 생각이 아니라 ‘나무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래.’ 하는 생각이 불길처럼 솟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 좋아할 거라고 말할 때, 정말정말 화가 나요. (2쪽)


혼자서 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을 때, 정말정말 화가 나요. (4쪽)




  스티븐 크롤 님이 글을 쓰고, 크리스틴 다브니에 님이 그림을 그린 《정말정말 화가 나요!》(크레용하우스,2005)를 읽습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몹시 재미나게 읽습니다. 아마 그림책 아이하고 저하고 비슷하게 흐르는 어떤 마음이 있을 테지요. 우리 집 아이들 스스로도 이 그림책 아이하고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일 테고요.


  아이가 싫어한다고 하는 일을 어버이가 시킬 적에 골이 날 수 있어요. 아이가 내키지 않는 밥을 먹으라고 어버이가 건넬 적에 성이 날 수 있어요. 누나처럼 잘 해내지 못한다고 여길 적에 성이 날 수 있어요.


  그러면 이런저런 일을 겪을 적에 성을 낼 만할까요? 아이로서뿐 아니라 어버이로서도 이와 같아요. 아이들이 어떤 일을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성내는 어버이’가 굳이 되어야 할까요? 아이들이 어떤 일을 잘못한다고 여겨서 ‘골내는 어버이’가 애써 되어야 할까요?



같이 놀고 싶은데 놀아 주지 않을 때, 정말정말 화가 나요. (14쪽)


약속을 해 놓고 지키지 않을 때, 정말정말 화가 나요. (16쪽)




  부아가 나고 골이 나며 성이 터질 적에는, 부아도 골도 성도 모두 터뜨려야지 싶습니다. 부아도 골도 성도 터뜨리지 않고 마음속에 가두면, 그만 마음이 다치고 말아요. 부아를 내거나 골을 부리거나 성을 터뜨린다고 해서 잘못일 수 없어요. 이렇게 부아가 나는 마음을 지켜보고, 골을 부리려는 마음을 바라보며, 성을 터뜨리는 몸짓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아이는 아이대로 성을 내다가 문득 배웁니다. 어버이도 아이한테 성을 내다가 ‘아이한테 성을 내는 몸짓’이 바로 어버이 스스로한테 성을 내는 셈이로구나 하고 느끼면서 문득 배우고요.



그렇지만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말하게 해 줄 때, 내 기분은 훨씬 좋아져요. (28쪽)




  아이도 성을 낼 수 있어요. 어버이고 골을 부릴 수 있어요. 그리고, 아이도 어버이도, 서로 성을 내거나 골을 부린 뒤에 마음을 훌훌 털고 새롭게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얘야, 네가 성을 낼 수 있지. 그러면 그 성부림이 어디에서 오는지 헤아려 보자. 나는 나대로 나한테 말합니다. 나는 왜 오늘 골을 부리는 어버이가 되었나 하고 되새기면서, 내가 짓는 골부림은 어디에서 비롯했는가를 생각해 보아요.


  이러면서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왜 얼마나 골이 나거나 성이 나거나 부아가 났는가를 이야기해요. 이러면서 말끔히 고요한 마음으로 거듭나도록 하면서, 다시 손을 맞잡고 신나게 놀지요.


  아이도 말해야 하고, 어버이도 말해야지 싶어요. 가장 따사로운 말을 마음속에서 길어올려서 말해야지 싶어요. ‘자, 우리 서로 손을 맞잡자’ 하고 말해야지 싶어요. 성이 나는 까닭을 살펴서 티없는 마음으로 털어놓고, 성이 나는 생각을 찬찬히 털어내면서 새로운 웃음과 노래가 피어날 수 있는 길로 나아가야지 싶어요.


  너도 나도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뭔가 잘 안 되었을 뿐이니까, 뭔가 우리가 배워야 하는 일이라서 이러한 몸짓을 하는구나 하고 여기면서, 즐겁게 밥을 차려 먹으면서 웃자, 하고 가만히 얼싸안아야지 싶습니다. 4349.1.2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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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암탉 피리 부는 카멜레온 95
필라르 마르티네즈 각색, 강형복 옮김, 마르코 소마 그림 / 키즈엠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7



밀알을 심어서 빵을 얻기까지

― 붉은 암탉

 필라르 마르티네즈 글

 마르코 소마 그림

 강형복 옮김

 키즈엠 펴냄, 2013.2.15. 1만 원



  옛이야기를 읽을 적에는 옛사람이 살던 발자국을 읽습니다. 먼 옛날부터 오늘까지 이어진 옛이야기에는 옛사람이 오랜 나날에 걸쳐서 지은 살림살이가 고이 깃듭니다. 옛이야기를 줄거리로만 훑을 수도 있고, 깊은 속내를 살필 수도 있으며, 오늘날 터전에 맞추어 새롭게 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붉은 암탉이 살았어. 붉은 암탉은 언제나 병아리들과 함께 다녔지. 붉은 암탉은 게으른 개와 잠꾸러기 고양이, 수다쟁이 오리와 함께 아담한 집에서 살고 있었어. (3쪽)



  유럽에서 예부터 내려온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붉은 암탉》(키즈엠,2013)을 가만히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붉은 암탉 한 마리가 어느 날 밀알을 주운 뒤 이 밀알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땅에 심어 보기로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씨앗심기’나 ‘농사’를 처음으로 하던 나날에 어떠한 모습이었나를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그동안 ‘들이나 숲에서 나는 것’을 그냥 훑어서 먹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씨앗을 갈무리해서 땅에 손수 심어 보기’를 하던 살림살이가 이 옛이야기 그림책에 담겼다고 할까요.


  밀알을 그냥 먹고서 잊을 수 있고, 이 밀알을 심어 보자는 생각을 새로 품을 수 있습니다. 붉은 암탉은 새로운 길을 가 보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붉은 암탉은 늘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거든요. 코앞에 있는 밥에만 마음을 쏟기보다 아이들한테 가르칠 것을 새롭게 헤아려 본 셈이라고 할 만해요.


  붉은 암탉은 병아리한테도 묻고 한집 동무한테도 묻습니다. 병아리는 어미 닭하고 함께 ‘밀알심기’를 하겠다고 나섭니다. 병아리(아이들)는 어미 닭(어버이)한테서 새로운 일을 배우되 즐거운 놀이로 삼으려 해요. 이와 달리 동무들은 ‘밀알쯤 안 심어도 배고플 일이 없으니 귀찮아’ 하는 생각입니다.




붉은 암탉이 친구들에게 물었어. “밀알을 밭에 심을 건데, 누가 좀 도와줄래?” “난 싫어.” 게으른 개가 멍멍 대답했어. “나도 싫어.” 잠꾸러기 고양이가 야옹 대답했지. “싫어, 싫어.” 수다쟁이 오리도 꽥꽥 대답했어. “그래? 그럼 우리끼리 하지 뭐.” (6쪽)



  붉은 암탉은 밀알(밀씨)을 어떻게 심어야 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먼저 땅을 갈아 보기로 합니다. 땅갈이를 할 적에 동무들을 불러 보지만 아무도 함께 일하겠다고 나서지 않아요. 병아리는 어미 닭하고 함께 일하겠다고 나서지요.


  땅을 갈고서 이랑이랑 고랑을 냅니다. 이랑이랑 고랑을 내고서야 비로소 씨앗을 심습니다. 씨앗을 심은 뒤에는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아요. 늘 돌아보면서 고이 돌봅니다. 이러고 나서 밀베기(가을걷이)를 해야지요. 밀베기를 한 뒤에는 자루에 담아서 방앗간으로 가져가서 가루를 내지요. 잘 빻아서 밀가루가 되면 다시 자루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가지요. 집으로 가져간 뒤에는 반죽을 해서 알맞게 틀을 잡고서 굽지요.


  처음에는 밀알 한 톨이지만, 이 밀알 한 톨을 심어서 가꾸고 지켜보고 돌보고 거두어들이고 빻고 건사하고 반죽하고 굽기까지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갑니다. 제법 긴 나날에 걸쳐서 품을 들여야 하고요. 이동안 병아리는 암탉 곁에서 모든 일을 차근차근 배워요. 그리고 이동안 암탉하고 한집에 사는 동무들은 귀찮거나 성가시다면서 한 번도 안 거들어요.




막 빻은 밀가루를 가지고 돌아온 붉은 암탉이 친구들에게 물었어. “맛있는 빵을 구울 건데, 누가 좀 도와줄래?” “난 싫어.” 게으른 개가 멍멍 대답했어. “나도 싫어.” 잠꾸러기 고양이가 야옹 대답했지. “싫어, 싫어.” 수다쟁이 오리도 꽥꽥 대답했어. “그래? 그럼 우리끼리 하지 뭐.” (18쪽)



  숱한 일손 가운데 한 번도 거들지 않은 동무들은 ‘빵을 다 구워서 맛난 냄새가 솔솔 나니’까 비로소 같이 먹자고 달려듭니다. 이제껏 뒷짐만 지더니, 맛난 빵을 보니 마음이 바뀌었을까요.


  이때에 붉은 암탉은 동무들이 못 들어오게 막아요. ‘우리(병아리하고 암탉)끼리 일을 해서 얻은 빵은 우리끼리 먹겠다’고 밝히지요. 여태 수없이 함께 일하자고 할 적에 한 번도 함께 일하지 않고서 배만 채우겠다고 하니까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혀요.


  붉은 암탉은 동무를 아낄 줄 모르고 저만 생각하는 몸짓일까요? 아니면, 동무들이야말로 동무를 아낄 줄 모르고 저만 생각하는 몸짓일까요? 이 대목에서는 우리 겨레 옛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놀부와 흥부가 문득 떠오릅니다. 놀부는 그저 심술만 부리는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흥부는 스스로 땅을 갈아서 씨앗을 심는 살림을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을까요?




“아니, 안 돼!” 붉은 암탉이 말했어. “나랑 병아리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동안, 너희들은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잖아. 그러니 이 빵은 나랑 병아리들만 먹을 거야.” (26쪽)



  그림책 《붉은 암탉》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골고루 들려줍니다. 이 그림책을 아이한테 읽히거나 함께 읽으면, 아이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말해요. 아무리 그래도 붉은 암탉이 동무들한테 빵 한 조각이라도 주면 안 될까 하고도 생각하고, 참말 동무들이 너무했다고도 생각하지요. 이런 생각을 들은 뒤에, 나는 어버이로서 여기에다가 몇 가지 생각을 덧붙여 봅니다.


  《붉은 암탉》 같은 옛이야기는 모든 실마리를 다 보여주지 않아요. 줄거리만 가만히 들려준 뒤, 이 다음에 이 옛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려 하는가 하는 대목은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첫째, 붉은 암탉은 동무들한테 빵은 안 주고 밀알을 한 움큼씩 주었을는지 몰라. 둘째, 붉은 암탉은 이날 밤 조용히 동무네 집에 찾아가서 문앞에 빵을 한 바구니씩 주었을는지 몰라. 셋째, 붉은 암탉은 동무들이 스스로 밀씨를 들에서 거두어 이듬해에 스스로 밀씨를 심기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모르는 척 지냈을는지 몰라. 넷째, 동무들은 이듬해에도 밀씨는 안 심고 그냥 들에서 나는 것을 그날그날 훑으면서 느릿느릿 지냈을는지 몰라.’ 하는 생각을 들려줍니다.


  어미 닭한테서 밀알을 심어서 거두어 빵을 굽는 데까지 지켜보고 배운 병아리는 이웃 아저씨랑 아주머니한테 어떻게 할까요? 씨앗심기하고 거두기하고 밥짓기(빵굽기)를 모두 찬찬히 배운 병아리는 앞으로 어떤 살림을 스스로 지을 만할까요? 이 뒷이야기는 이 그림책에서 다루지 않습니다만, 옛이야기를 아이하고 함께 읽는 어버이라면 이 대목은 아이하고 머리를 맞대고 조용히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재미있으리라 느껴요. 4349.1.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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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가 줄을 타고 물들숲 그림책 4
이성실 글, 다호 그림 / 비룡소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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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5



바람을 타고 춤을 추는 긴호랑거미

― 거미가 줄을 타고

 이성실 글

 다호 그림

 비룡소 펴냄, 2013.7.5. 11000원



  우리 집에는 거미가 많이 삽니다. 시골집이니 거미가 많이 살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는 농약도 살충제도 없기 때문에 거미가 많이 살아요.


  우리 집 안쪽에는 후 하고 바람을 불면 갑자기 빙글빙글 춤을 추는 다리가 긴 거미가 곳곳에 살아요. 옷장 뒤쪽이나 책꽂이 뒤쪽 빈틈에 집을 지으며 살고, 손이 안 닿는 높은 보꾹에도 살아요.


  우리 집 바깥쪽에는 몸에 고운 무늬가 아리따운 거미도 살고, 새까만 거미도 살며, 어른 손가락보다 살짝 굵은 꽤 큰 거미도 살아요. 이러한 거미는 파리랑 모기를 잡아먹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 날마다 틈틈이 드나드는 새한테 잡아먹히기도 해요. 거미는 커다란 줄을 하룻밤 만에 짓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서 마당을 걷다가 얼굴에 줄이 걸리기도 하는데, 이 거미줄에는 잠자리나 나비도 걸리고, 때로는 귀뚜라미나 방아깨비가 걸리기도 해요.



거미는 온몸에 털이 많아. 다리 마디에 틈도 많아. 가느다란 털과 틈으로 먹이가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어. (5쪽)



  이성실 님이 글을 쓰고, 다호 님이 그림을 그린 《거미가 줄을 타고》(비룡소,2013)를 아이들하고 함께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여러 거미 가운데 ‘긴호랑거미’ 한살이를 다뤄요. 이 긴호랑거미는 우리 집 바깥쪽에 꽤 많이 살아요. 후박나무 가지랑 평상 사이에 줄을 이어서 어른보다 커다란 거미집을 짓기도 하고, 뒷간이랑 대문이랑 동백나무 사이에 엄청나게 큰 거미집을 지어서 우리가 바깥으로 드나드는 길을 막기도 해요. 이때에는 거미한테 넌지시 이르지요. ‘얘야, 네가 이렇게 집을 지으면 우리는 네 집을 허물 수밖에 없단다. 그러니, 우리가 지나가는 길 말고 날벌레가 날아다니는 길목에만 집을 지으렴.’ 나뭇가지로 거미집을 걷으면서 ‘자, 부디 이 줄을 다시 네 몸에 담아서 새 집을 짓기를 바란다.’ 하고 덧붙여요.




눈이 어두운 암컷은 알을 낳기 전에 많이 먹어야 하기 때문에 짝짓기 하려고 다가온 수컷을 먹이로 알고 잡아먹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수컷은 암컷이 마지막 탈피를 하느라 힘이 빠진 순간이나 먹이를 실컷 먹고 난 뒤에 다가와 짝짓기를 해요. (14쪽)



  여러 거미 가운데 《거미가 줄을 타고》에 나오는 긴호랑거미는 참으로 고운 무늬와 빛깔이 사랑스럽구나 싶습니다. 아직 작은 긴호랑거미는 그야말로 앙증맞도록 귀엽지요. 다만, 아이들은 커다란 긴호랑거미를 보면 살짝 무섭다고 여기곤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긴호랑거미가 아무리 커다랗게 자란다고 하더라도 어린이보다 훨씬 작아요. 아이 주먹만큼 자라지는 않아요.


  문득 돌아보면 예부터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거미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일렀어요. 거미를 보면 집 바깥으로 가만히 내놓아 주라고 일렀지요. 이 땅에서 사는 거미는 사람을 물거나 쏘지 않아요. 손바닥에 살그마니 올려놓아서 바깥으로 내놓을 수 있고, 정 꺼림칙하면 쓰레받기에 살포시 올려서 집 바깥으로 내놓으면 돼요.


  예부터 거미가 맡은 몫을 잘 알기에 거미를 살뜰히 여기면서 고운 이웃님으로 삼았다고 느껴요. 오늘날에는 거미가 맡은 몫을 제대로 살피지 않기에 농약하고 살충제를 지나치게 쓰는구나 싶어요.




바람이 잔잔하게 부는 봄날이야. 이제 새끼 거미들이 흩어질 때가 되었어. 새끼 거미들은 줄지어 나무로 기어올라. 그러고는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 공중으로 흩어져. 꽃잎이 휘날리듯 가볍게! 꽁무니에 달린 거미줄을 타고 휘익! (23쪽)



  거미가 사는 곳에 여러 벌레가 함께 삽니다. 여러 벌레가 사는 곳에 거미가 함께 삽니다. 그리고 이곳에 사람이 함께 살아요. 거미만 살지 않고, 벌레만 살지 않아요. 더욱이 사람만 살지 않습니다. 서로 어우러지는 삶이고, 함께 어깨동무하는 살림입니다. 서로 아끼는 삶이며, 같이 웃음짓고 춤추는 살림이에요.


  바람을 타고 춤을 추는 긴호랑거미처럼, 우리도 바람을 쐬며 춤을 춥니다. 바람을 타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날아가는 새끼 거미처럼, 우리 아이들도 바람을 싱그러이 마시면서 새로운 꿈을 키우고 새로운 사랑을 꽃피웁니다. 4349.1.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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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 - 스텔라이야기.겨울편
마리 루이스 개이 글 그림, 조현 옮김 / 현암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4



이렇게 멋지고 착한 누나가 다 있을까

― 눈의 여왕 (스텔라 이야기·겨울 편)

 마리 루이스 개이 글·그림

 조현 옮김

 현암사 펴냄, 2007.7.10. 7800원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에 맞추어 네 권으로 나온 ‘스텔라 이야기’ 가운데 겨울 이야기인 《눈의 여왕》(현암사,2007)을 겨울에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스텔라하고 샘, 이렇게 두 아이가 나옵니다. 스텔라는 누나이고 샘은 동생입니다. 스텔라는 봄부터 겨울까지 두루 겪어서 제법 잘 알고, 샘은 아직 네 철을 잘 모릅니다. 이것저것 모르는 것이 많아서 궁금한 것도 많은 동생 샘은 누나한테 끝없이 “왜?”라고 하면서 물어요. 이것저것 먼저 겪어서 스스로 깨우친 누나 스텔라는 끝없이 묻는 동생한테 차근차근 하나씩 알려주는데, 누나로서도 아직 잘 모르겠으면 한참 생각을 해 보아야 하는데, 귀찮아 하거나 성가셔 하지 않아요. 그야말로 훌륭하게 동생을 이끌면서 함께 놀고, 신나게 놀며, 멋지게 놀아요.



“누나, 눈은 차가워? 얼음처럼 얼어붙는 거야?” “응, 눈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차갑지. 아기토끼 솜털마냥 보드랍기도 해. 샘, 밖으로 나가자.” (7쪽)




  그림책 《눈의 여왕》에 나오는 스텔라 누나도 어릴 적에 제 동생처럼 늘 “왜?” 하고 물으면서 살았으리라 느껴요. 샘이 아직 동생으로 찾아오기 앞서, 그러니까 스텔라가 퍽 어렸을 적에, 스텔라는 어머니랑 아버지한테, 또 둘레 언니 오빠한테 언제나 “왜?” 하고 물었을 테지요. 스텔라한테도 궁금함을 풀어 준 어버이랑 이웃이 있을 테지요. 늘 모든 것을 궁금하게 여기면서 하나씩 배우고, 언제나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즐겁게 배웠을 테지요.


  그림책을 한참 보다가 우리 집 두 아이가 꽤 어리던 나날을 돌이킵니다. 큰아이가 눈을 처음 보던 날을 돌이키고, 작은아이가 눈을 처음 보던 날을 되새깁니다. 눈을 처음 보던 큰아이는 그저 물끄러미 눈송이를 바라보았고, 뺨에 닿으며 녹고 손바닥에 내려앉아서 녹는 하얀 것을 무척 재미나게 여겼어요. 걸음마를 처음 떼면서 눈밭을 밟다가 뒹구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웃었고, 세 살 무렵부터는 커다란 빗자루를 옆구리에 끼고 눈을 쓰는 일을 거들었어요. 작은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온 뒤에는 큰아이가 눈덩이를 뭉쳐서 동생한테 보여주었지요.



“샘, 우리 눈사람 만들자.” “누나, 눈사람은 어디서 자?” “푹신한 눈밭에서 자지.” “누나, 눈사람은 뭘 먹어?” “눈송이랑 …… 눈으로 만든 완두콩이랑 …… 눈옷이랑!¨ (10∼11쪽)



  한집에서 사는 두 아이는 서로 가장 살가우면서 즐거운 놀이동무입니다. 나이가 벌어지기에 몸집이 다르고, 큰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동생이 다 따르지는 못하지만, 큰아이는 동생한테 맞추어 신나게 놀 줄 압니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하듯이 다 따라가지 못하지만 누나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찬찬히 지켜보고는 하나씩 똑같이 따라하려 합니다. 작은아이는 어버이한테서도 배우지만 누구보다 누나한테서 훨씬 즐겁고 재미나게 배워요.


  어느 모로 본다면 큰아이는 동생한테 놀이동무이면서 길동무이고 스승이기도 한 셈이랄까요. 큰아이 스스로 먼저 겪은 온갖 삶과 살림을 동생한테 기쁘게 알려주고 살가이 보여주며 신나게 물려주는 셈이랄까요.




“누나, 눈은 어디에서 내리는 거야? 여름엔 어디에 가 있다가 와? 그리고 눈덩이 하나에 눈송이가 몇 개나 들어갈까?” “모올라, 샘, 이거 좀 도와줘.” (20∼21쪽)



  그림책 《눈의 여왕》에 나오는 동생 샘은 묻고 묻고 또 묻습니다. 자꾸 묻고 새로 묻고 거듭 묻습니다. 누나가 궁금함을 곧바로 풀어 주지만, 이내 새로운 궁금함을 길어올려서 물어요. 그림책을 가만히 보면, 동생 샘은 누나가 하나씩 알려줄 적마다 “알려줘서 고마워” 하고 말할 틈이 없도록 끝없이 묻기만 해요. 누나 스텔라는 동생이 물을 적마다 곧바로 대꾸합니다. 하나하나 알려주는데, 정 모르겠구나 싶은데 또 새롭게 물으면 “모올라!” 하고 외치지만, 다음에 묻는 것을 알 만하다 싶으면 다시 상냥하게 가르쳐 주지요. 그리고, 동생 마음을 새로운 곳으로 돌릴 줄 압니다. 동생이 그저 묻기만 하지 말고 몸으로 스스로 겪어서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라요. 왜 그러한가 하면, 누나 스텔라도 동생만 하던 때에 언제나 몸으로 스스로 겪어서 한결 잘 알 수 있었을 테니까요.


  이를테면, 어머니랑 아버지가 “바닷물은 짜단다” 하고 말해 준대서 이를 그냥 받아들여서 알기는 어려워요. 아이들이 몸으로 스스로 바닷물을 먹어 보아야 비로소 “아하, 바닷물은 이만큼 짜네” 하고 알지요. 어머니랑 아버지가 “그렇게 달리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면 아프지” 하고 말해 준대서 이를 그냥 받아들여서 알기는 힘들어요. 아이들이 몸으로 스스로 신나게 뛰어놀다가 때때로 넘어지거나 자빠지거나 엎어져서 무릎도 얼굴도 팔꿈치도 깨지거나 긁혀서 피가 나 보아야 “아하, 넘어져서 다치면 이렇게 아프네” 하고 알아요.




“샘, 눈으로 천사를 만들자. 커다란 날개 달린 천사 말이야.” “누나, 눈사람 천사도 날 수 있어? 노래도 할 수 있고?” (28∼29쪽)



  누나 스텔라는 끝없이 왜 왜 하고 묻는 동생 샘한테 ‘눈 천사’를 빚자고 말합니다. 동생 샘은 누나 스텔라가 ‘눈 천사’를 빚자고 말하니, 함께 눈을 뭉쳐서 눈 천사를 빚기보다는 ‘눈 천사’가 하늘을 날 수 있는지 궁금해 해요. 게다가 눈 천사가 노래를 할 수 있는지도 궁금해 해요. 이때에 누나 스텔라는 어떻게 할까요?


  누나 스텔라는 더없이 상냥하고 멋지면서 착한 아이답게 동생 샘더러 ‘귀를 기울여서 들어’ 보라고 말합니다. 눈으로 빚은 천사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동생 샘더러 들어 보라고 말해요.


  이 말을 들은 동생 샘은 ‘왜? 왜? 왜?’ 하고 묻는 말을 그치고는 누나가 말한 대로 조용히 귀를 기울입니다. 모든 말을 멈추고 고요히 귀를 기울여서 ‘눈 천사’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려고 해요. 그림책 《눈의 여왕》에서 이 대목을 읽다가 괜히 짠합니다. 우리 집 큰아이도 동생하고 놀다가 곧잘 이 모습으로 동생을 이끌거든요. 동생이 스스로 새롭게 몸으로 받아들여서 깨닫도록 이끄는 말을 무척 부드러우면서 살갑게 하곤 해요.


  따사로운 말 한 마디로 궁금함을 풀어 줄 뿐 아니라, 스스로 삶을 새롭게 배우는 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너그러운 말 한 마디로 수수께끼를 풀어 줄 뿐 아니라,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사랑을 새롭게 마주하는 살림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모름지기 상냥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어버이 자리에 선 사람도, 누나나 언니 자리에 서는 사람도,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도, 한결같이 상냥하면서 착한 마음씨로 슬기롭게 이야기꽃을 피울 노릇이로구나 싶습니다. ‘왜?’ 하고 끝없이 묻는 아이가 예쁘고, ‘그건 말이지’ 하고 끝없이 알려주는 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4349.1.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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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 속에 들어간 오리 베틀북 그림책 104
조이 카울리 지음, 로빈 벨튼 그림, 홍연미 옮김 / 베틀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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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3



오리 한 마리가 전쟁을 끝장내다

― 대포 속에 들어간 오리

 조이 카울리 글

 로빈 벨튼 그림

 베틀북 펴냄, 2010.8.10. 1만 원



  조이 카울리 님이 글을 쓰고, 로빈 벨튼 님이 그림을 그린 《대포 속에 들어간 오리》(베틀북,2013)라는 그림책은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날아왔습니다. 글은 1969년에 쓰고, 그림은 1984년에 그렸다고 해요. 한국에서는 2010년에 처음 나왔지만 꽤 오래된 그림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이 그림책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사랑받을 만한 따사롭고 부드러운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어요. 책이름으로도 잘 나오는데, 오리 한 마리가 대포 속으로 들어가면서 ‘어떤 일’을 일으키거든요.



“왜 대포를 못 쏴?” 장군이 성난 목소리로 물었어요. “대포알을 넣을 수 없습니다, 장군님.” 장군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어요. “대체 왜 대포알을 넣을 수 없다는 거냐?” 병사가 머뭇머뭇 대답했어요. “그게 저……, 대포 안에 오리가 있습니다.” (3쪽)



  그림책 이야기를 살피면, 먼저 어느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어느 도시로 쳐들어가려고 한답니다. 그런데 장군이 도시를 겨누어 대포를 쏘려고 할 즈음, 병사들이 대포를 안 쏘아요. 장군은 얼른 대포를 쏘라 하지만 병사들은 머뭇머뭇할 뿐입니다. 장군이 크게 성을 내니 비로소 ‘대포에 오리가 들어갔다’고 말해요. 장군은 오리와 함께 대포를 날리라 하지만, 병사들은 대포에 들어간 오리가 ‘둥지를 틀었다’고 말하지요.


  병사들은 어리숙할까요? 아니면 병사들은 착할까요? 둥지를 튼 오리라면 알을 낳으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오리가 대포에 들어가서 둥지를 틀었다고 한다면,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어느 도시로 쳐들어올 즈음이나 이렇게 쳐들어가기 앞서 들어와서 둥지를 틀었을 테지요. 병사들은 싸움터로 가는 길에도 ‘대포에 들어가서 둥지를 튼 오리’를 내내 지켜보았다는 뜻이에요.




“아,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오리가 알을 품고 있는 동안 전쟁을 하지 않는 겁니다. 4주 정도 지나 아기 오리들이 태어나면 대포를 쏠 수 있겠지요.” 시장의 제안에 장군이 기분 좋게 대답했어요. “좋습니다. 그럼 그동안 전쟁은 잊기로 하지요.” (12쪽)



  대포를 쏠 수 없는 장군은 머리가 아픕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싶어서 혼자 도시로 찾아갑니다. 도시를 다스리는 시장님을 만나요. 그런데, 장군은 시장님을 만난 자리에서 ‘대포를 빌려 달라’고 해요. 도시로 쳐들어온 장군인데, 도시에서 장군한테 대포를 빌려 달라 하는군요. 그러면 시장님은 장군한테 대포를 빌려줄까요?


  설마, 빌려줄까요? 안 빌려줄 테지요. 시장님이 다스리는 도시를 스스로 무너뜨리려고 장군한테 대포를 빌려줄 일은 없으리라 봅니다. 시장님은 장군한테 말하지요. 넉 주쯤 지나면 오리가 알을 낳고 나올 테니, 넉 주 뒤면 대포를 쓸 수 있으리라고.


  장군은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래, 그러면 되겠구나 하고 여기지요. 그리고, 이제 또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려 합니다.




“혹시 돈을 빌릴 수 있을까요?” 장군이 조심스레 물었어요. “그건 곤란합니다. 하지만 장군님의 병사들이 우리를 위해 일한다면 돈을 드리겠어요. 우리 도시를 보세요. 집은 우중충하고 가게는 지저분해요. 새로 단장을 해야 합니다. 장군님의 병사들이라면 3주 동안 도시 전체를 말끔하게 단장할 수 있을 겁니다.” (16쪽)



  넉 주 동안 전쟁을 벌이지 못하니, 장군은 병사를 거느릴 돈이 바닥이 납니다. 얼른 전쟁을 치러서 도시를 무너뜨리고 빼앗아야 ‘돈을 얻’거든요. 이리하여 장군은 다시 시장님한테 찾아가서 돈을 빌리려 하고, 시장님은 돈을 빌려줄 수는 없지만 병사들한테 일을 맡겨서 ‘도시 손질(정비사업)’을 해 주기를 바라고, 이렇게 하면 병사들한테 일삯을 주겠다고 말하지요.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까지도 장군은 뭐가 뭔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다만, 병사한테 밀린 일삯(군인 수당)을 주지 않아도 ‘도시에서 일거리를 병사들이 얻어서 돈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만 여겨요.


  자, 이 그림책에서는 전쟁이 무엇이고 평화가 무엇인지 아주 부드럽고도 차분하게 잘 보여줍니다. 전쟁이란 무엇이겠어요? 무기를 잔뜩 짊어지고 이웃으로 쳐들어가서 이웃을 무너뜨리거나 괴롭혀서 이웃한테 있는 돈을 빼앗는 짓이에요. 이웃이 애써 그러모은 살림을 무기를 앞세워서 빼앗는 짓이 전쟁이지요. 장군(정치권력자)은 ‘돈을 들여서 무기를 만들’고 ‘돈을 들여서 군대를 거느’려요. 그러니까, 장군(정치권력자)은 돈을 모으려면 자꾸 전쟁을 일으켜야 하고, 자꾸 이웃을 괴롭혀야 합니다.




병사들은 모자를 손에 쥔 채 아무 말 없이 땅만 뚫어져라 보았어요. “장군님, 저희는 도시에 대포를 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정성껏 고치고 칠해서 예쁘게 단장을 해 놓은 도시가 엉망이 될 테니까요.” 한 병사가 입을 열자 다른 병사도 거들고 나섰어요. “맞습니다. 저희가 얼마나 공들여서 꾸며 놓은 집들인데요.” (26쪽)



  전쟁을 그치고 평화로 넘어가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를 버리면 돼요. 전쟁무기를 안 만들면 돼요. 군대를 거느리지 않으면 돼요. 젊은이가 군대에서 군사훈련을 받도록 하지 말고, 젊은이가 도시나 시골 어느 곳에서나 즐겁게 일할 자리를 마련해 주면 돼요.


  평화로운 곳에는 평화로운 일자리가 있어요. 전쟁이 불거지는 곳에서는 전쟁무기를 만들거나 군인이 되는 일자리가 있지요. 이제 우리는 찬찬히 생각해 보아야 해요.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직업군인이 되어 전쟁무기를 앞세워 이웃을 괴롭히는 짓을 일삼으면서 돈을 벌어야 할까요? 평화롭게 마을을 가꾸고 살찌우면서 아름다운 기쁨으로 돈을 벌어야 할까요?


  그림책 《대포 속에 들어간 오리》는 대포에 들어간 오리가 ‘그저 대포에 들어간 일’만으로도 전쟁을 그치게 하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줍니다. 오리는 대포에서 느긋하게 살면서 여러 병사들한테서 사랑을 받고 보살핌을 받았어요. 알에서 깬 새끼 오리는 어미 오리를 따르면서 장군 뒤를 따르지요. 장군은 ‘대포알하고 오리알을 함께 도시로 날리는 짓’을 하지 않았거든요.


  우리 사회에서도, 이웃 여러 나라에서도, 지구별 어느 곳에서도, 모두모두 전쟁무기는 조용히 내려놓고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마을살이가 될 수 있기를 빌어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기쁜 삶터를 가꿀 수 있기를 빌어요. 4349.1.2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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