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 - 소비자를 위한 유기농 가이드북
백승우 외 지음 / 시금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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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 환경책 읽기 2024.4.16.

숲책 읽기 218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

 백승우와 네 사람

 시금치

 2013.9.5.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백승우와 네 사람, 시금치, 2013)를 읽고서 책이름을 그대로 생각해 봅니다. 누가 망치는가 하면, ‘유기농’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함께 망치겠지요. ‘유기농(有機農)’은 우리말이 아닌 일본말입니다. 일본에서 논밭을 짓는 길 가운데 하나를 들여오면서, 일본말도 그대로 뻗었습니다. ‘유기농’이 아니면 ‘관행농’이라 하는데, 나란히 일본말입니다. ‘무농약’도 ‘친환경’도 우리말이 아니고, 우리말일 수도 없습니다.


  우리말은 꺼풀을 안 씌웁니다. 똥오줌으로 거름을 내어서 논밭을 지으니 ‘거름짓기’에 ‘거름살림’입니다. 투박하게 ‘똥짓기·똥살림’이라 할 만합니다. 따로 밑구멍(하수구)을 내어 똥오줌을 물에 쓸려 버리는 얼거리가 아닌, 어느 집에서나 똥오줌을 알뜰히 건사해서 다시 흙으로 달래는 길인 ‘거름짓기’예요.


  일본말 ‘농약’은 논밭을 살리는 물(약)이 아닙니다. 풀을 죽이는 물이 ‘농약’입니다. 그러니 ‘농약’이 아니라 ‘풀죽임물’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걸맞습니다. ‘비료’라는 일본말도 ‘거름’이 아닌 ‘화학물질 합성비료’이니 ‘죽음거름’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맞습니다.


  이름부터 제대로 써야, 논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름에 꺼풀을 씌우거나 허울을 덮으면, 처음부터 제대로 못 볼 뿐 아니라, 자꾸 샛길로 빠지거나 엉뚱한 데에 휩쓸립니다.


  논밭을 일구니 ‘논밭꾼’입니다. ‘농부·농업인’이 아닙니다. 흙을 다루니 ‘흙꾼’입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길을 걸으면서 어떤 일을 짓는지 스스럼없이 밝힐 때라야, 흙도 숲도 마을도 나라도 이 별도 북돋운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일본말 ‘소비자’라는 꺼풀도 벗을 노릇입니다. ‘서울사람(도시인)’이라고 하면 됩니다. 논밭에서 서울로 가는 논밭살림입니다. 흙에서 거두어 서울로 보내는 푸성귀와 낟알이에요.


  “원래 농업은 광합성 작용만으로도 가능했다”는 무슨 소리인지 한참 짚어 보았습니다. 워낙 논밭은 햇볕으로 지었다는 뜻이겠지요. 말을 꼬니 꺼풀을 씌우고, 꺼풀을 씌우니 속모습을 못 보고, 속모습을 못 보고 모르니, 논밭꾼도 서울사람도 흙살림이 나아갈 즐겁고 아름다운 푸른길을 함께 놓치는구나 싶어요. 이제부터는 서울사람도 논밭일꾼도 어깨동무하면서 노래하는 길로 나아갈 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손수 거두건, 사서 누리건, 손을 맞잡고서 두레를 맺는 길은 얼마든지 가까이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ㅅㄴㄹ


두 팔 뻗어서 닿을락 말락 하는 데에 달린 어린 애호박에 비닐 튜브를 씌우는 노동은 정말 비인간적입니다. (54쪽)


생협 실무자들 역시 소비자들의 이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유기농을 확산시키려는 시도를 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농산물은 위험하고 친환경 농산물은 안전하다는 말은 제가 생각할 때 허구입니다. (73쪽)


원래 농업은 광합성 작용만으로도 가능했다. 태양에너지를 우리가 쓸 수 있는 어네지로 만드는 에너지 공장이 바로 농업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농업은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 되어 버렸다. (185쪽)


+


논밭이 펼쳐진 이곳의 실제 해발고도는

→ 논밭이 있는 이곳 땅눈금은

→ 논밭이 넓은 이곳 땅높이는

28쪽


이를 결품이라고 하는데

→ 이를 모자라다고 하는데

→ 이를 빠진다고 하는데

→ 이를 없다고 하는데

47쪽


일단 시장으로 유입된 농산물은 촌각을 다투며 소비자를 향해 달려갑니다

→ 먼저 저자로 들어간 남새는 사람들한테 휙휙 달려갑니다

→ 저잣판에 들어온 들살림은 사람들한테 번개같이 달려갑니다

53쪽


친환경 채소 시장의 현주소가 이렇습니다

→ 오늘날 깨끗한 푸성귀판이 이렇습니다

→ 요즈음 들사랑 남새마당이 이렇습니다

79쪽


그것에 맞게 수변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 이에 맞게 물가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 이에 맞게 둔덕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124쪽


축산물은 보통 생산과정에 대한 고려 없이 단지 맛으로 평가될 뿐이다

→ 고기붙이는 키움길을 살피지 않고 그저 맛으로 따질 뿐이다

→ 뭍고기는 자람결을 헤아리지 않고 그저 맛만 볼 뿐이다

127쪽


방사선으로 살균한 것들은 쓸 수 없다

→ 죽음빛으로 쏘이면 쓸 수 없다

→ 죽음재로 쪼이면 쓸 수 없다

129쪽


지역의 경제사회 전반이 영향을 받는다

→ 마을과 살림에 두루 퍼진다

→ 마을과 살림에 고루 스민다

141쪽


농부들이 잡곡 농사를 피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 논밭님이 고루알을 꺼릴 만하다

→ 흙지기가 두루알을 내칠 만하다

→ 흙일꾼이 온낟알 안 할 만하다

154쪽


존재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 있는 까닭이 있다

→ 살아가는 뜻이 있다

165쪽


원래 농업은 광합성 작용만으로도 가능했다

→ 워낙 논밭은 햇볕만으로도 지었다

→ 모름지기 해바라기로 짓는 논밭이다

18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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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4-1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호박 규격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 읽었던 것 같다는 어렴풋한 기억이 책 표지 보니 떠올랐습니다. 그 용어를 모르겠네요. 비닐을 씌워서 균질하게 만드는 농법...이 있었는데 .....문장을 새로 다듬어주시는 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셨을까요? 저는 무심코 그냥 써서 다 편하게 느꼈던 문장인데 고쳐주신 아래 문장을 보니 고쳐쓰는 게 훨씬 좋네요

숲노래 2024-04-16 10:55   좋아요 1 | URL
예전에 애호박은 저마다 생김새도 크기도 달랐는데, 아마 20년쯤 된 일인데, ‘인큐베이터 호박‘이라는 이름으로 비닐을 씌워서 꽤 비싸게 시장에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인큐 호박‘이 ‘인공적‘이라고 여겨 꺼렸고, 값이 오지게 비쌌는데, 이제는 애호박은 마치 길둥굴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펑퍼짐하게 자라는 호박‘은 ‘호박이 아닌 줄‘로까지 여기고 말아요. 20년쯤 앞서 ‘인큐 호박‘은 저잣거리나 마트에서 5000원이 넘었습니다. 이제는 값이 매우 싸지요.

농업용어도 일본말이 워낙 많고, 우리말로 풀어낸 말씨가 너무 드물어, 거의 새로 짓고 엮다시피 손질해야 했어요. 한 해 넘게 걸려서 느낌글을 매듭지었네요 ^^;;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