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풋콩, 콩나물 떡잎그림책 2
고야 스스무 글, 나카지마 무쓰코 그림 / 시금치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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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4



씨앗을 손수 심고, 밥도 손수 짓자

― 콩 풋콩 콩나물

 고야 스스무 글

 나카지마 무쓰코 그림

 엄혜숙 옮김

 시금치 펴냄, 2015.6.29. 9500원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모든 밥은 언제나 ‘밥’이었습니다. 누구나 손수 밥을 지어서 먹었고, 누구나 집에서 밥을 차려서 먹었어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은 손수 밥을 짓지 않으며, 집에서 밥을 차리지 않습니다.


  좀 먼 옛날을 헤아리면, 수수한 시골자락에서 마을을 이루며 살던 사람은 누구나 손수 흙을 일구고 열매를 얻어서 밥을 지었습니다. 이와 달리 임금이나 신하나 부자는 손수 흙을 안 일구었고 열매도 손수 안 얻었으며 밥도 손수 안 지었어요. 궁중에서 밥을 지은 사람들 이야기가 연속극으로 나오기도 했는데, 궁중에 있는 사람(거의 모두 사내)들은 ‘남이 차리는 밥’만 받았습니다. 게다가 ‘밥이 되기까지 흙을 어떻게 일구는가’ 같은 대목을 알지 않았어요. 공중에서 밥짓기를 도맡은 사람도 ‘흙짓기’는 하나도 몰랐겠지요.


  좀 먼 옛날에는 몇몇 권력자나 부자만 ‘밥·흙·삶’을 몰랐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몇몇 권력자나 부자뿐 아니라 여느 공무원이나 공장 일꾼조차 ‘밥·흙·삶’하고 멀찌감치 떨어집니다. 권력자나 부자는 권력자나 부자대로 ‘손에 물이나 흙을 묻힐 뜻’이 없고, 여느 공무원이나 공장 일꾼처럼 수수한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손에 물이나 흙을 묻힐 겨를’이 없습니다.



어느 봄날이었어요. 삼 형제는 옆집 할아버지한테서 콩을 10알씩 받았어요. “겨우 10알? 이걸로는 배불리 먹을 수 없는데.” “괜찮아. 밭에 심으면 늘어나거든.”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3쪽)




  고야 스스무 님이 글을 쓰고, 나카지마 무쓰코 님이 그림을 그린 《콩 풋콩 콩나물》(시금치,2015)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습니다. 수수한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을 가만히 읽습니다. 세 아이가 할아버지한테서 콩을 열 알씩 얻어서 이 콩을 심어서 거두는 삶을 천천히 읽습니다.


  세 아이는 할아버지가 건넨 콩을 처음 받을 적에는 ‘겨우 열 알’이라고 여깁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코앞에 있는 콩알은 꼭 열 알이니까요. 아직 아이들은 이 콩알이 ‘알’일 뿐 아니라 ‘씨’인 줄 모릅니다. 콩알이면서 콩씨라서, 이 씨앗을 심으면 열 알이 스무 알도 되고 백 알도 되는 줄 몰라요.



꽃이 핀 다음에 꼬투리가 주렁주렁 열렸어요. 그리고 꼬투리들은 하루하루 더 통통해졌어요. (7쪽)



  세 아이한테 콩알을 열씩 골고루 나누어 준 할아버지는 어릴 적에 어떠했을까요? 아마 할아버지도 어릴 적에는 ‘겨우 열 알?’ 하고 여기지 않았을까요? 할아버지도 어릴 적에 이녁 할아버지한테서 ‘콩씨를 심어서 새로운 콩알을 넉넉히 거두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요? 해마다 씨앗을 조금씩 불리면서 삶을 북돋우는 기쁜 웃음을 차근차근 물려받지 않았을까요?


  세 아이는 할아버지를 믿기로 합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세 아이는 씨앗심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씨앗을 심는 일은 일이면서 놀이가 되고, 놀이이면서 일입니다. 흙을 만지면서 일하는 동안 새로운 손길이 퍼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배웁니다. 남이 파는 흙이 아닌 손수 파는 흙으로 밭을 가꾸는 동안 손수 수수께끼를 내고 실마리를 풀면서 손수 배우는 삶이 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책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할아버지한테서 배우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그저 씨앗을 나누어 주고 심어 보라는 말만 해 줍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씨앗을 심어 봅니다. 그리고, 아이들 나름대로 씨앗을 길러 보기로 해요.




이남이가 더 기다리지 못하고 그만 줄기를 잡아 쑥 뽑고 말았어요. “어, 왜 그래?” “아직 다 안 익었잖아?” 일남이와 꽃님이가 말했어요. “이건 풋콩하고 아주아주 비슷해. 틀림없이 먹을 수 있을 거야!” (20쪽)



  첫 해에 콩알을 제법 많이 거둡니다. 다음해에 한 아이는 그만 콩씨 불리기를 해 놓고 까맣게 잊습니다. 그런데, 어두운 곳에 둔 콩씨에서 뿌리가 길게 자꾸 나오면서 ‘콩나물’이 되어요. 다른 한 아이는 아직 덜 익은 콩꼬투리를 보고는 벌써 콩알을 거두려 합니다. 언젠가 ‘풋콩’을 보았다면서 풋콩을 먹고 싶다 합니다.


  한 아이가 콩나물을 거두고, 다른 아이가 풋콩을 거두는 일은 잘못한 일이 아닙니다. 틀리거나 나쁜 일도 아닙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심어서 열매를 맺기까지 찬찬히 지켜보고 기다리면서 보살피는 몸짓’을 제대로 못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콩씨는 두 아이한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요. 두 아이는 콩을 새롭게 먹는 길을 깨닫습니다.


  이윽고 셋째 아이 이야기가 흐릅니다. 셋째 아이는 다른 두 아이하고 다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보살피면서 야무지게 기다립니다. 두 아이가 거두지 못한 콩알을 아주 넉넉히 거둡니다. 셋째 아이는 두 아이 몫에다가 훨씬 넉넉히 남도록 콩알을 거두어요.




꽃님이 콩은 아직도 많이 남았어요. 그래서 삼 형제는 똑같이 콩을 나눠 가졌어요. “이걸 씨앗으로 해서 더 많이 거두자!” “그래, 자꾸자꾸 불리자!” “벌써부터 설렌다!” (23쪽)



  콩을 다루어 먹는 길은 여럿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듯이 콩나물을 넣은 라면을 끓일 수 있고, 풋콩을 삶아 먹을 수 있습니다. 콩자반을 먹을 수 있고, 두부나 된장을 빚어서 먹을 수 있어요. 콩밥을 하거나 콩국수를 할 수도 있지요. 콩고물이 푸짐한 콩떡을 찧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한 가지씩 새롭게 배웁니다. 처음부터 모두 다 배우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해마다 한 가지씩 새로운 기쁨으로 배웁니다. 첫 해에 모두 다 배우지는 않아요.


  천천히 자라면서 야물게 크는 콩처럼, 아이들은 천천히 자라면서 야물고 튼튼한 아이로 우뚝 섭니다. 모든 아이는 천천히 배우면서 슬기롭게 자랍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천천히 거듭나고 천천히 빛납니다. 우리 어른도 누구나 처음에는 하나씩 새롭게 배우면서 천천히 자라는 아이였을 테지요.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함께 씨앗을 심고, 어머니 아버지하고 살림을 기쁘게 짓는 숨결이었을 테지요. 4348.10.1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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