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거즐튼무아 알맹이 그림책 30
마츠오카 쿄오코 글, 오오코소 레이코 그림, 송영숙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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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3



우리는 늘 “아무튼 즐거워” 노래하지요

― 워거즐튼무아

 마츠오카 쿄오코 글

 오오코소 레이코 그림

 송영숙 옮김

 바람의아이들 펴냄, 2013.5.20. 9000원



  아홉 살이 된 큰아이가 저녁에 일기를 씁니다. 큰아이한테 ‘일기’는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글’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오늘 큰아이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로는 마당에서 아버지가 웃몸을 안고서 빙글빙글 돌려 준 놀이입니다. 저랑 동생을 마당에서 갈마들며 빙글빙글 돌려 준 놀이가 오늘 하루 놀이 가운데 가장 크게 남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제는 흙놀이를 한 일이 남길 만한 이야기였다고 적습니다. 이제 하룻밤을 자고 새로운 날이 찾아오면 어떤 이야기를 일기에 적을까요? 오늘이나 어제하고 똑같은 놀이를 누린 이야기를 적을 수 있고, 다르거나 새로운 놀이를 누린 이야기를 적을 수 있겠지요.



땅을 파고 씨앗을 심는 내내, 아줌마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나팔꽃이랑 맛 좋은 수박이 번갈아 가며 떠올랐습니다. ‘나팔꽃일까, 수박일까? 아무튼 즐거운 일이야.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구 말구.’ 하고 아줌마는 생각했습니다. (17쪽)




  마츠오카 쿄오코 님이 글을 쓰고, 오오코소 레이코 님이 그림을 그린 《워거즐튼무아》(바람의아이들,2013)를 읽습니다. ‘워거즐튼무아’는 ‘아무튼 즐거워’를 거꾸로 적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놀이라고 할까요. 말장난일 수 있고요. ‘어싫튼무아’라 하면 ‘아무튼 싫어’일 테고, ‘네밌재튼무아’라 하면 ‘아무튼 재밌네’예요.


  나는 집에서 아이들한테 곧잘 ‘거꾸로 말하기’를 해 봅니다. 그러면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어리둥절해 합니다. 이러다가 큰아이가 먼저 눈치를 채고 ‘아하, 또 뒤집어서 말하네?’ 하면서 웃어요. 이를테면, 나물을 먹을 적에 ‘물나’라 말한다든지, 수박을 먹자고 하면서 ‘박수’ 먹으라 한다든지, 고기를 차린 저녁밥을 ‘밥기고’라 해요.



왕자님도 모르는 것이 있었답니다. 왕자님이 모르는 것은, 성 밖에 사는 왕자님 또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들이지요. 성 밖에서는 아이들이 하루 종일 놀고 있습니다. 봄이 오고 사과나무에 꽃이 피면, 아이들은 나무 밑에서 술래잡기를 하기도 하고 숨바꼭질을 하기도 합니다. 여름이 되면, 아이들은 벌거벗고 시냇물에서 헤엄도 칩니다. 가을에도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있어요. 낙엽을 모아서 산처럼 쌓아 놓고 그 가운데로 풀쩍 뛰어들어 낙엽 속에 파묻히는 것이에요. (22쪽)




  아무튼, 《워거즐튼무아》에는 ‘뚱보 아줌마’하고 ‘왕자’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뚱보 아줌마는 어느 날 부엌을 치우다가 묵은 씨앗을 찾아냈고, 이 묵은 씨앗을 밭에 심기로 합니다. 밭을 갈아서 씨앗을 심으려는 뚱보 아줌마를 본 이웃사람은 그 씨앗이 ‘나팔꽃’ 씨앗이라고도 하고, ‘수박’ 씨앗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씨앗을 심고 보니 호박이 나왔다지요.


  뚱보 아줌마는 씨앗을 심은 뒤 푯말을 세웠대요. ‘라몰도지일꽃팔나’, ‘라몰도지일박수’, ‘워거즐튼무아’ 이렇게 세 마디를 적은 푯말이에요. 그러나, 거꾸로 읽으니 이런 말일 뿐, 뚱보 아줌마는 ‘나팔꽃일지도몰라’하고 ‘수박일지도몰라’하고 ‘아무튼즐거워’라 적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나팔꽃 씨앗하고 수박 씨앗을 모를 수 있을까요? 호박 씨앗하고 수박 씨앗은 크기부터 많이 다른데, 이 대목을 모를 수 있을까요? 뭐, 아무튼 모를 수 있겠지요. 이 그림책은 아무튼 이런 줄거리로 흐르니까요.



“이제부터 요리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만, 이것을 먹을 때는 몇 가지 꼭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사옵니다. 우선 이 ‘라몰도지일꽃팔나’이옵니다만,” 하고 아줌마는 첫 번째 호박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것을 먹으려면 바깥에서, 그것도 시냇물가의 풀밭에서 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외의 장소에서 먹는다면, 목구멍이 막혀서 죽게 될 것입니다.” (51쪽)




  그림책 《워거즐튼무아》에 나오는 왕자님은 궁궐에서 공부만 해야 합니다. 공부만 하느라 지칩니다. 공부 빼고는 할 수 있는 일도 놀이도 없기에 머리가 아픕니다. 이러던 어느 날 마차를 타고 어느 마을을 지나가다가 뚱보 아줌마가 세운 푯말을 보아요. 왕자님은 푯말에 적힌 글을 거꾸로 읽었기에 ‘라몰도지일꽃팔나’가 뭔 소리인지 알 길이 없지만 무척 재미난 주문이라고 여깁니다. 공부에 공부만 거듭하는 나날이 이어지니 그만 꽝 터지면서 ‘라몰도지일꽃팔나’라든지 ‘라몰도지일박수’ 같은 말을 마구 읊었다고 해요. 이러면서 ‘워거즐튼무아’를 주지 않으면 밥을 굶겠다고 외쳤다고 하는군요.


  궁궐에서 왕자님을 가르치거나 모시는 이들은 어쩔 줄 몰라 하지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요. 이러다가 왕자님이 읊은 말은 ‘어떤 아줌마가 세운 푯말에 적힌 글을 거꾸로 외웠을 뿐’인 줄 알아냅니다. 그러나 차마 그 대목을 왕자님한테 밝히지 못합니다. 이때에 뚱보 아줌마는 좋은 생각을 하나 내놓아요. ‘워거즐튼무아’이든 ‘라몰도지일꽃팔나’이든 모두 ‘여느 호박’일 뿐이지만, 왕자님한테 재미있게 ‘호박 요리’를 베풀어 주자고 생각합니다.



임금님은 “공부는 잘 하고 있었나?” 말씀하시고, 왕자님에게 여러 가지를 질문하셨어요. 그러자 왕자님은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임금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시냇가의 풀밭에는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가 어디에 있으며 물이 흐르는 구멍이 어디에 있을까, 또 성 옆 밀가루 가게의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에는 새끼가 몇 마리가 있는지, 거미는 무엇을 먹고 사는지 등의 질문이었지요. 물론 임금님은 그 어떤 질문에도 만족스럽게 대답하지 못했지요. 그러자 왕자님은 자랑스럽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임금님에게 가르쳐 주었답니다. (61쪽)




  뚱보 아줌마는 왕자님한테 호박 요리를 줄 적에 늘 토를 붙입니다. 그냥 먹어서는 안 되고, 냇가에 가서 풀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먹어야 한다고 토를 붙여요. 그리고 혼자 먹으면 안 되고 시골마을 아이들하고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토를 붙입니다. 왕자님 곁에서 심부름을 하는 신하는 이런 토달기, 그러니까 궁궐 바깥에서 햇볕을 쬐면서 ‘워거즐튼무아’를 먹도록 하는 일이 못마땅합니다. 더군다나 뚱보 아줌마는 왕자님한테 입힌 거추장한 옷을 모두 벗긴 뒤 가벼운 차림새가 되어서 ‘왕자님 또래인 시골아이’하고 신나게 뛰놀기를 바라고, 이대로 하도록 북돋웁니다.


  자, 이제부터 왕자님은 어떻게 될까요?


  ‘워거즐튼무아’를 맛나게 먹은 왕자님은 공부가 아닌 놀이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립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수많은 또래 아이들하고 뒤섞여서 온갖 놀이를 처음으로 겪으면서 웃습니다. 허옇던 살갗하고 얼굴은 까무잡잡하게 탑니다. 신하들은 이런 일을 몹시 못마땅해 하는데, 공부에 등을 돌릴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실컷 놀면서 ‘모든 짜증과 괴로움’을 풀어낸 왕자님은 온마음을 바쳐서 공부를 해요. 공부만 시킬 적에는 공부가 죽도록 싫었다면, 실컷 놀면서 바깥바람이랑 햇볕을 쐬도록 한 뒤에는 공부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림책 《워거즐튼무아》를 살며시 덮으며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린이와 푸름이는 얼마나 마음껏 뛰어놀 만할까요?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은 햇볕은커녕 비도 눈도 제대로 맞지 못하면서 입시지옥에서 허덕여야 하지 않나요? 입시지옥을 지나갔어도 어떤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떨어졌느냐에 따라 또 고단한 길이 이어져요.


  아이들은 공부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은 삶을 모르는 채 공부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은 동무나 이웃조차 없이 공부만 해야 할까요? 나팔꽃도 수박꽃도 호박꽃도 모르는 채 공부만 한 아이들이 국회의원이나 판사나 의사가 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동무도 이웃도 없이 ‘궁궐 울타리’에서만 자란 왕자님은 어떤 임금님 노릇을 할까요? 한국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분들은 반지하도 옥탑방도 버스삯도 모르기 일쑤였어요. 대통령 자리에 앉은 분들은 어떤 이웃을 두거나 어떤 동무를 사귀면서 어린 나날을 보냈을까요? 아무튼 《워거즐튼무아》라는 그림책을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읽으면서 “아무튼 즐거워”가 온누리에 가득 퍼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434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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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신기한 사탕이다
미야니시 타츠야 글 그림, 계일 옮김 / 계수나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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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1



‘사탕 한 알’로 달래려 하지 마셔요

― 우와! 신기한 사탕이다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계일 옮김

 계수나무 펴냄, 2009.12.25. 9500원



  아이들한테 사탕 한 알은 얼마나 대단한가 하고 늘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사탕 한 알이면 ‘울던 아이도 울음 뚝’이고, ‘눈물이 가득하던 아이도 눈물 뚝’입니다. ‘싸우던 아이도 싸움 뚝’이 되도록 하고, ‘떼쓰던 아이도 떼 뚝’이 되도록 해요.


  사탕 한 알은 언제나 대단한 힘을 내지만, 때때로 얄궂은 힘도 냅니다. 이를테면, 사탕은 자꾸 사탕을 먹고 싶도록 이끕니다. 사탕 한 알이 울음이나 싸움이나 떼를 끝낼 수 있더라도, 사탕 맛을 본 아이는 자꾸 사탕을 먹고 싶습니다. 바야흐로 사탕을 더 먹고 자꾸 먹고 또 먹고 거듭 먹고 내처 먹고 한결같이 먹겠다면서 울거나 엉겨붙거나 떼를 쓸 수 있어요.


  어른들은 아이를 보며 섣불리 사탕으로 달래려 해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사탕 한 알로 달래려는 몸짓으로는 아무것도 달래지 못해요.



“여기에 있는 사탕을 먹으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단다. 자, 이 노란 사탕 하나 먹어 보지 않을래?” (3쪽)


“사탕을 다 먹고 나면 신기한 힘도 사라진단다. 이번엔 이 파란 사탕을 먹어 보렴!” (9쪽)




  미야니시 타츠야 님이 빚은 그림책 《우와! 신기한 사탕이다》(계수나무,2009)를 읽습니다. 숲에서 사는 꿀꿀이(돼지)가 어느 날 ‘숲 속 사탕가게’에서 ‘놀라운 사탕’을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힘이 없고 어린 꿀꿀이는 이제껏 동무나 이웃한테서 놀림을 제법 받은 듯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돼지 가운데 멧돼지도 아닌 집돼지라면 웬만한 숲짐승한테 여러모로 밀릴 테니까요.


  이런 집돼지인 꿀꿀이는 사탕가게에서 아주 놀라운 사탕을 맛봅니다. 범이 우는 소리가 나는 사탕을 맛보고, 늑대 모습으로 바뀌는 사탕을 맛보지요. 작은 사탕 한 알이지만, 이 사탕 한 알로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는 재미를 깨닫습니다. 이리하여 ‘놀라운 사탕’을 잔뜩 장만해서 주머니에 챙겨요. 그러고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장난’을 치기로 합니다.



꿀꿀이는 기뻐하며 숲 속으로 들어갔어요. 조금 뒤, “어디, 장난 좀 쳐 볼까?” 꿀꿀이는 빨간 사탕 세 개를 한꺼번에 입에 털어넣었어요. (16쪽)




  놀라운 사탕을 손에 쥔 꿀꿀이가 하는 일은 ‘놀이’가 아닌 ‘장난’입니다. 숲에 있는 동무나 이웃하고 재미를 나누려는 놀이를 할 생각을 품지 못해요. 숲에 있는 동무나 이웃을 골리거나 놀리려는 장난을 칠 생각을 해요.


  아무래도 여느 때에 받은 놀림을 돌려주겠노라 하는 생각이었겠지요. 너희도 좀 놀림을 받고 깜짝 놀라 보렴 하면서 장난을 치겠노라 하는 생각이었을 테지요.


  가만히 따지면, 꿀꿀이가 그동안 받았을 놀림은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꿀꿀이가 다른 동무나 이웃을 놀려도 될 만하지 않아요. 네가 나를 놀렸으니 나도 너를 놀리면 될까요? 네가 나를 괴롭혔으니 나도 다른 누군가를 찾아서 괴롭히면 될까요? 네가 내 뺨을 때렸으니 나도 나보다 여린 누군가를 붙잡고 뺨을 때리면 될까요?


  장난꾸러기가 된 꿀꿀이는 혼자서 신납니다. 이러다가 꿀꿀이는 숲에서 ‘참 늑대’를 만나요. 사탕을 먹고 ‘거짓 늑대’가 된 꿀꿀이는 ‘참 늑대’가 이끄는 대로 늑대 무리로 가야 하지요. ‘참 늑대’는 ‘거짓 늑대’인 꿀꿀이더러 그곳에서 뭐 하느냐고, 우리(늑대) 무리로 가야 하지 않느냐고 데려가지요.


  늑대는 언제나 무리를 지어서 다녀요. 혼자 다니지 않지요. 꿀꿀이는 이 대목을 잘 모른 듯해요. 사탕을 먹고 늑대 모습이 된다 하더라도 숲에 있는 늑대는 놀라지 않겠지요. 왜 저놈이 저기에서 혼자 저러나 하고 여기겠지요. 그러니까, 거짓 늑대 노릇을 하는 꿀꿀이는 아주 큰일이 났습니다. 사탕이 다 녹으면 거짓 늑대로 꾸민 모습이 모두 사라질 텐데, 어떡해야 할까요.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게다가 입 안의 사탕이 다 녹으면서 꿀꿀이의 몸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크크크, 잡았다!” ‘아, 이젠 틀렸어!’ 그때 너구리 아저씨가 한 말이 떠올랐어요. ‘깜짝 놀랄 일이 생길 거야.’ (29쪽)




  그림책 《우와! 신기한 사탕이다》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째, 놀라운 사탕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둘째, 놀라운 사탕으로 재미난 놀이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셋째, 놀라운 사탕으로 신나게 장난을 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넷째, 놀라운 사탕으로 혼자 신나게 장난을 치다가 큰코 다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다섯째, 장난을 치더라도 가볍게 한 번만 칠 노릇이고, 동무나 이웃을 자꾸 놀래키면 스스로 덫에 갇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여섯째, 놀라운 뭔가로 장난을 치는 삶은 아무한테도 재미없기 때문에, 동무랑 이웃하고 다 함께 어깨를 겯고 재미난 삶을 짓는 길을 생각하자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가끔 문득 한 알을 얻어서 먹는 사탕일 때에 맛있습니다. ‘사탕중독’이 된다면, 즐거운 맛을 누리는 살림이 아니라, ‘사탕이 없으면 마치 죽음과 같이 되는’ 어리석은 모습이에요.


  사탕에 매여서 ‘놀라운 뭔가’를 손에 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장난감도 그렇고 책이나 다른 여러 가지도 똑같습니다. 어른들도 이와 같아요. 술을 날마다 자주 마셔야 즐거울 수 있지 않아요. 가끔 문득 누리는 술 한 잔이 기쁨이 될 수 있어요. 동무하고 이웃을 불러서 도란도란 알맞게 누리는 조촐한 잔치가 될 때에 비로소 기쁨이라 할 만해요.


  놀라운 사탕으로 그야말로 놀라운 일을 겪은 꿀꿀이는 앞으로는 더 사탕으로 장난을 치자는 생각을 안 하겠지요? 사탕 한 알이 있으면 동무하고 반을 나누어 먹을 수 있겠지요? 남을 놀리거나 괴롭히는 데에서는 기쁨이나 즐거움이 없는 줄 잘 느꼈을 테지요? 4349.2.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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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디와 폴리 : 할머니의 생신 잔치 폴디와 폴리
크리스티안 예레미스, 파비안 예레미스 지음, 유진아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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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2



다 같이 숨은그림찾기를 하며 놀지

― 폴디와 폴리, 할머니의 생신 잔치

 크리스티안 예레미스·파비안 예레미스

 유진하 옮김

 미운오리새끼 펴냄, 2015.11.20. 15000원



  숨바꼭질을 합니다. 마당에서도 하고 집에서도 합니다. 숨바꼭질을 즐깁니다. 고샅에서도 즐기고 골짜기에서도 즐깁니다.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 숨고, 옷장에 살짝 들어가서 숨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숨고, 이불로 문을 가로막으면서 숨습니다. 나무 뒤에 숨고, 자전거 뒤에 앉으면서 숨어요. 풀밭에 쪼그려앉고, 억새풀을 손에 쥐고 숨습니다. 숨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두리번거리면서 즐겁게 찾기놀이를 해요.


  추운 겨울에도 마당에서 얼마든지 숨바꼭질을 합니다. 이러다가 손발이 시리고 몸이 꽁꽁 얼면 집으로 들어가지요. 자, 이제 숨바꼭질은 그만하고 다른 놀이를 해 볼까? 여기에 멋진 ‘숨은그림찾기’ 그림책이 있거든.



오늘은 할머니의 90번째 생신이에요. 세계 여러 나라에 사는 친척들이 생신 잔치를 하러 모두 모였어요. 탐험가 찰리 삼촌도, 한껏 멋을 부린 에스메랄다 숙모도 왔어요. 옆집에 사는 폴리도 직접 쓴 생일 카드를 들고 찾아왔지요. 할머니는 잔치에서 입을 옷들을 허둥지둥 찾기 시작했어요. (4쪽)




  크리스티안 예레미스 님하고 파비안 예레미스 님이 함께 빚은 그림책 《폴디와 폴리 할머니의 생신 잔치》(미운오리새끼,2015)는 ‘펭귄 식구’가 잔뜩 나오는 숨은그림찾기 그림책입니다. 가로세로 길이가 26.7×34.2센티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그림책을 펼치면 두 쪽에 펭귄이 한가득 나옵니다. 아이들은 혼자서 이 그림책을 넘기며 숨은그림을 찾기도 하고, 둘이서 함께 숨은그림을 찾기도 하며, 때때로 어디에 숨었는지 못 찾겠다면서 함께 찾아 달라고도 합니다.


  나는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면서 하나도 모르는 척합니다. 숨은그림찾기는 더 빨리 찾아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후다닥 찾아서 후다닥 넘기면 재미없어요. 이 그림 저 그림 꼼꼼하게 살피면서 찾는 재미인 숨은그림찾기입니다. 어디에 그림이 숨었나 하고 들여다보면서 그림을 넓고 깊이 살피도록 북돋우는 숨은그림찾기예요.


  몇 가지 그림을 숨기려고 구석구석 온갖 그림이 깃듭니다. 두 쪽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흐르면서 새로운 숨은그림찾기가 이루어집니다. 모두 비슷비슷해 보이는 듯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른 펭귄입니다. 몸짓이랑 차림새가 다르고, 낯빛하고 손짓이 달라요. 그림을 꼼꼼하게 알뜰히 담은 《폴디와 폴리 할머니의 생신 잔치》이면서 할머니 펭귄이 아흔째로 맞이한 생일을 기리는 이야기가 흐르기에 한결 재미나게 들여다볼 만합니다. 기쁨을 나누는 이야기를 엿보고, 잔치를 벌이는 웃음 어린 놀이마당을 살펴요.



“이제 다락방에 가서 공작새 깃털이 달린 모자를 찾아보자.” 할머니가 앞장서서 계단을 올라갔어요. 폴리는 오들오들 떨며 말했어요. “다락방에는 유령이랑 박쥐가 우글거릴 텐데…….” 그러자 폴디가 깔깔대며 말했어요. “아니면 유령 박쥐가 있을지도 모르지!” (14쪽)




  가만히 돌아보면 어느 집이나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셈일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살림살이가 어디에 있는가를 다 알 수 있어도, 아이들은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요. 옷장을 뒤지고 서랍을 열며 찬장을 들여다보면서 ‘뭔가 숨은 것’을 찾고 싶습니다. 어디 주전부리가 있는가 하고 살핍니다. 뭔가 남달리 재미난 것이 있을까 하고 찾아봅니다.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깜빡 잊었기에 두리번두리번 찾지요. 제때에 제대로 안 치우는 바람에 잃었구나 싶은 놀잇감을 찾으려고 온 집안을 뒤져요.


  다만, 집안에서 어디에 두었는지 잊거나 잃은 살림살이나 놀잇감을 찾는 일은 ‘오래 끌면 오래 끌’수록 안 재미있다고 할 만합니다. 이렇게 집안을 안 치우고서야 어떻게 살림을 하거나 노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잊거나 잃은 것’을 찾고 나면 한숨을 돌리면서 ‘이제부터 아무 데나 함부로 두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다시 잊거나 잃으면서 한참 온 집안을 뒤지지요.


  숨은그림찾기 놀이를 이끄는 그림책은 이러한 우리 모습을 되새겨 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 보라구, 아무 데나 또 두니까 자꾸 잃지 하고 일깨운다고 할까요. 이것 좀 봐, 즐겁게 놀았으면 네 장난감을 네가 기쁘게 잘 추스리거나 챙기면서 건사해야지 하고 깨우친다고 할까요.


  그림책 《폴디와 폴리 할머니의 생신 잔치》를 펼치면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 너끈히 흐릅니다. 숨은그림을 찾느라 한나절이 쉬 흐릅니다. 예전에 다 찾은 숨은그림이라 하더라도 아기자기하게 흐르는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재미있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숨긴 것’만 찾아보는 숨은그림찾기이지는 않아요. 올망졸망하게 깃든 그림을 들여다보며 재미있는 숨은그림찾기이고, 꼬물꼬물하게 춤추는 그림을 하나하나 짚으며 신나는 숨은그림찾기라 할 만합니다. 4349.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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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의 장군 뜨인돌 그림책 24
재닛 차터스 글, 마이클 포먼 그림, 김혜진 옮김 / 뜨인돌어린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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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0



‘꽃밭 대통령’과 ‘텃밭 장군님’을 기다리며

― 꽃밭의 장군

 재닛 차터스 글

 마이클 포먼 그림

 김혜진 옮김

 뜨인돌어린이 펴냄, 2011.3.7. 11000원



  아이들하고 살면 아이들을 돌보는 하루를 누리지요. 어버이라면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데에 온힘을 쏟아요. 그런데, 어버이는 아이들을 돌보기만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언제나 그 자그마한 손으로 어버이를 감싸 주고 어루만져 줍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데, 아이들도 자그마한 손으로 ‘돌봄질’을 배워서 고스란히 따라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무엇이든 새롭게 배울 뿐 아니라, 어버이를 새롭게 가르쳐요.


  까르르 웃으면 기쁨이 샘솟는다는 대목을 온몸으로 가르치는 아이들이에요. 낭낭낭 노래하면 즐거움이 자란다는 대목을 온몸으로 가르치는 아이들이지요. 어버이는 말을 가르치고 살림이나 일이나 심부름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새로운 말을 짓는 놀이를 어버이한테 가르칠 뿐 아니라, 살림이나 일이나 심부름을 웃고 노래하면서 기쁨이 되도록 하는 몸짓을 가르쳐 줍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이 되고 싶었고 자기 군대가 세상 모든 나라의 장군들에게 칭찬 듣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조드퍼 장군은 날마다 무기를 닦고, 군복을 다리고, 군화에 광을 내도록 병사들을 훈련시켰습니다. (4쪽)



  재닛 차터스 님이 글을 쓰고, 마이클 포먼 님이 그림을 그린 《꽃밭의 장군》(뜨인돌어린이,2011)이라는 그림책을 가만히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이 그림책을 아홉 살 큰아이하고 방바닥에 함께 엎드려서 천천히 읽습니다. 서로서로 한 줄씩 두 줄씩 소리내어 읽습니다. 이동안 여섯 살 작은아이는 곁에서 말소리를 듣지요.


  그림책 《꽃밭의 장군》에 나오는 ‘조드퍼 장군’은 처음에는 수많은 여느 장군하고 엇비슷합니다. ‘싸움터에서 이름을 드날리는 장군’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습니다. 조드퍼 장군은 이녁이 다스리는 부대에서 군인들이 늘 훈련을 잘 받도록 북돋우고, 군화에 먼지 한 점 내려앉지 않도록 지켜보았습니다. 무기를 닦도록 시키고, 무기를 잘 다루도록 이끌지요.




부대로 돌아가는 길에 숲 속 동물들이 조드퍼 장군의 눈에 띄었습니다. 수없이 지나다닌 길이었지만 말을 타고 너무 빨리 지나쳤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장군은 다람쥐, 토끼, 들쥐, 고슴도치, 제비, 멧비둘기 등을 보았습니다. 보기 힘든 공작도 보았지요. (11쪽)



  그림책 이야기가 이대로 흐른다면 재미없을 테지요? 곰곰이 들여다보면 군인이 군대에서 하는 일이란 참 재미없어 보여요. 무기를 닦고, 군화를 닦고, 내무반을 치우고, 옷을 깔끔하게 다려입고, 그러면서 훈련할 적에는 옷을 온통 더럽히면서 뒹굴고, 다시 청소하고 군화와 무기를 닦고, 총칼을 잘 다루는 솜씨를 갈고닦고 …….


  군대를 다녀온 어버이로서 군대를 돌아봅니다. 군대에서 하는 일에는 ‘생산’이 없습니다. 집에서 하는 일, 이른바 집안일은 ‘집살림’이 될 수 있어요. 집살림을 알뜰살뜰 가꾸면 아이들도 즐거워요. 그렇지만 군대에서 ‘군대일’이나 ‘군대살림’을 알뜰살뜰 가꾸면 누구한테 즐거울까요? 바로 몇몇 사람 ‘장군’이나 ‘정치 우두머리(대통령)’한테 즐겁겠지요.


  전쟁무기를 잘 닦아서 번쩍번쩍 빛나도록 하면 무엇이 좋을까요? 부엌칼을 잘 갈거나 호미를 잘 다스리도록 하면 무엇이 좋을까요? 전쟁무기는 ‘누군가를 적으로 삼아서 죽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무기는 아무것도 빚지(생산하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는 모든 것을 없앨(파괴) 뿐입니다.


  집안일이나 집살림은 모든 것을 새롭게 빚고(생산하고) 살리지요. 살리는 일이기에 ‘살림’이면서 ‘집살림’이고, 집안을 살려서 웃음과 노래가 흐르도록 하는 사람이 ‘살림꾼’이에요. 아무튼, 그림책 《꽃밭의 장군》에 나오는 조드퍼 장군은 여느 날하고 똑같이 말을 타고 어느 길을 가다가 그만 말에서 미끄러져요. 그만 꽃밭에 나자빠지지요.




조드퍼 장군은 오랫동안 꽃과 벌을 지켜보았습니다. 얼마나 평화롭던지요. 전에는 왜 이런 것들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한참 후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장군은 자기가 꽃을 깔고 앉았다는 것을 알고 당황했습니다. 꽃은 처지고 슬퍼 보였습니다. 장군은 꽃밭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병사들에게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장군은 꽃 두 송이를 꺾어 가기로 했습니다. (16쪽)



  꽃밭에 나자빠진 장군은 다친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날부터 무엇인가 달라져요. 왜냐하면, 꽃밭에 나자빠지면서 ‘꽃’을 처음으로 느꼈거든요. 이제껏 군사훈련만 하고 ‘전쟁 영웅’이 되기를 꿈꾸던 장군인데, 이렇게 많은 꽃이 이렇게 곱게 피어서 이렇게 향긋한 숨결을 이루는 줄 처음으로 느껴요.


  수많은 병사를 거느리면서 전쟁무기로 이웃나라를 윽박지를 수 있던 ‘장군님’이지만, 숲을 걸어가면서 ‘벌 한 마리’를 보며 움찔 놀라요. 벌이 저를 쏠까 봐 두려워합니다.


  참으로 웃기지요! 총칼로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는 훈련을 하면서 ‘벌 한 마리’가 무섭다니요! 그런데 숲에서 벌은 장군을 쳐다보지 않아요. 벌은 꿀과 꽃가루를 모으느라 바쁘기에 ‘장군 따위는 쳐다보지 않’는다고 해요.




다음날 아침, 조드퍼 장군은 병사들에게 군대를 떠나 집으로 가서 각자의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 되도록 도와 달라고도 했지요. 병사들은 모두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조드퍼 장군보다 더 기쁜 사람은 없었습니다. (21쪽)



  그림책 《꽃밭의 장군》에 나오는 조드퍼 장군은 말에서 떨어져서 꽃밭에 드러누우며 한낮을 보낸 뒤에 숲길을 걸어서 부대로 돌아오고 나서 ‘아주 다른 사람’이 됩니다. 전쟁훈련이나 전쟁무기가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부대 해산’을 하기로 다짐해요. 모든 병사한테 ‘집으로 돌아가라’고 시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이제까지 하던 일을 다시 하라’고 시켜요.


  집으로 돌아간 병사는 이제 ‘군인’이 아닌 ‘아버지’가 됩니다. 때로는 ‘마을 젊은이’가 되지요. 때로는 ‘멋진 일꾼’이 되어요. 들에서 바다에서 숲에서 마을에서 저마다 솜씨를 뽐내면서 제 고향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는 ‘새로운 사람’으로 즐겁게 노래하면서 살림을 짓습니다.


  조드퍼 장군은 ‘군부대’를 바꾸기로 합니다. 군부대에 학교를 세우고 공원을 두며 밭을 일구지요. 짙푸른 텃밭하고 눈부신 꽃밭을 일구어요. 이리하여 조드퍼 장군은 이제부터는 ‘장군’이 아니라 ‘시골 아재’로 거듭납니다. 묵은 탈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어요. ‘이름난 장군’으로 나아가는 길은 내려놓고 ‘사랑스러운 어른’으로 일어서는 길을 걸어요.


  아이들하고 오순도순 이 그림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에서도 군부대 장군님들이 ‘부대 해산’을 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요. 남북녘 정치 지도자가 모여서 ‘남북녘 군대 해산 + 남북녘 전쟁무기 없애기’를 하자면서 다짐을 하고 도장을 꾹 찍으며, 서로서로 젊은 일꾼이 고향마을로 돌아가서 아름다운 마을살림을 가꾸도록 북돋우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하고도 생각합니다.


  군부대 유지하고 전쟁무기 생산에 돈을 쓰지 말고, 마을을 살리고 집살림을 돌보는 데에 슬기롭게 돈을 쓰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나라가 되고 지구별이 될 테지요? 남북녘 정치지도자와 장군님이 모두 ‘꽃밭 대통령’이 되고 ‘꽃밭 장군님’이 될 수 있는 날을 빌어 봅니다. 4349.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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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
이수애 글.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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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9



새봄에 새잎이 돋으니 걱정하지 마

― 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

 이수애 글·그림

 한울림어린이 펴냄, 2015.12.24. 12000원



  겨울에도 제법 포근한 고장에서 살기 앞서까지 ‘늘푸른나무’는 거의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소나무나 잣나무쯤은 겨울에도 푸른 잎을 매다는 줄 알았지만, 다른 나무는 생각해 보기 어려웠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겨울이 꽁꽁 얼어붙는 고장에서는 딱히 다른 늘푸른나무를 만나기 어려웠거든요.


  전남 고흥에서 살며 여러 가지 늘푸른나무를 만납니다. 맨 먼저 동백나무하고 후박나무를 만났고, 가시나무와 아왜나무를 만났어요. 유자나무를 만나고, 태산목 같은 나무도 만나고요. 이들 나무는 한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아요. 아니, 한겨울에도 잎을 푸르게 매단다고 해야 맞겠지요. 때때로 눈이 내리는 날씨가 찾아오면 이들 나무는 바르르 떨면서 눈송이를 잎에 얹는데, 햇볕이 나면서 눈이 녹으면 다시 기운을 내어 짙푸른 잎으로 바뀌어요.



“머리가 너무 둥글고 무거워요. 멋있고 화려한 양버즘나무 머리로 해 주세요.” “아하! 손님한테 잘 어울리겠네요.” 애벌레 미용사는 야금야금 나뭇잎을 갉아 대기 시작했어요. (6쪽)




  이수애 님이 빚은 그림책 《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한울림어린이,2015)를 읽으면서 나뭇잎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 그림책은 ‘가을이 한껏 무르익은 어느 날 잎이 무척 커다랗게 자란’ 나뭇잎 손님이 숲속 머리집으로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잎사귀가 아주 커다랗게 자란 손님은 ‘너무 크다 싶은’ 머리(머리카락 구실을 하는 잎몸)를 좀 손질해 주기를 바랍니다. 숲속 머리집 일꾼인 애벌레는 나뭇잎 손님 잎몸을 야금야금 갉으면서 이모저모 예쁘게 가꾸어 준다고 해요.


  그런데 숲속 머리집에서 나뭇잎 머리를 손질해 주는 애벌레는 고단합니다. 나뭇잎 손님은 이도 저도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애벌레 미용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갉아서 잎몸을 줄이기’뿐인데, 잎몸은 자꾸자꾸 줄지만, 나뭇잎 손님으로서는 이 모습도 저 모습도 마음에 안 들어요.



애벌레 미용사는 한숨을 폭 내쉬었어요. 그러곤 다시 나뭇잎을 야금야금 갉아 대기 시작했지요. 머리는 밝은 노란색으로 물들이고요. (14쪽)



  애벌레 미용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놓고 망설입니다. 가슴을 졸이고, 어쩔 줄 모릅니다. 이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요. 애벌레 미용사는 나뭇잎 손님 머리를 알록달록 꾸며 주지요. 잎몸이 거의 다 사라졌지만 알록달록 새롭게 꾸민 모습을 본 나뭇잎 손님은 이를 마음에 들어 해요. 홀가분하면서 기쁜 몸짓으로 숲속 머리집을 나서지요.


  그렇지만 나뭇잎 손님한테는 또 괴로운 일이 닥칩니다. 아마 겨울을 재촉하는 비일 듯한데, 가을비가 쏟아지면서 ‘애써 손질한 머리’가 모두 망가져요. 나뭇잎 손님은 그저 울음을 터뜨릴밖에 없고, 울음을 터뜨리다가 졸음이 쏟아져서 얼른 나무로 돌아가서 겨울잠을 자기로 합니다. 깊고 깊은 겨울잠을, 고요하고 고요한 겨울잠을, 포근하면서 넉넉한 겨울잠을 달콤하게 자기로 해요.




나뭇잎 손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미용실을 나섰어요. 그런데 갑자기 톡톡톡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졌어요. “으악, 내 머리가 다 망가지겠어!” (26∼27쪽)



  《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는 그림책이니까 나뭇잎이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을 그리고, 애벌레가 미용사 구실을 하는 모습으로 그립니다. 우리 삶으로 돌아본다면, 나뭇잎은 한 해나 여러 해를 살다가 져요. 한 해만 사는 나뭇잎이라면 겨우내 흙으로 돌아갈 테고, 여러 해를 사는 나뭇잎이라면 겨울잠을 잔다고도 할 만하지요.


  그러면 늘푸른나무는 어떠할까요? 늘푸른나무는 잎을 언제 떨굴까요?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에서 자라는 늘푸른나무를 찬찬히 살펴보면, 늘푸른나무는 겨울을 뺀 봄이랑 여름이랑 가을 언제나 잎을 떨굽니다. 딱히 어느 철에 더 많이 떨군다고 하기보다는 세 철 내내 조금씩 잎을 떨구면서 새 잎으로 바꾸어요. 다른 철보다 늦봄하고 첫여름에 잎을 많이 떨군다고도 할 만해요.



나뭇잎 손님은 너무너무 슬펐어요. 몸도 마음도 지쳐 버렸지요. 나뭇잎 손님은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어요. 따뜻한 바람이 불 무렵, 나뭇잎 손님은 긴 잠에서 깨어났어요. (30∼32쪽)




  추운 겨울은 추위로 모두 얼어붙게 합니다. 추위가 닥치면 누구나 오들오들 떨면서 몸을 웅크립니다. 풀은 겨우내 거의 모두 시들어 죽고, 나무도 겨우내 잔뜩 옹크려요. 다만, 나무는 겨우내 몸을 옹크려도 씩씩하게 겨울눈을 내놓습니다. 가장 추운 겨울에 나무는 새롭게 꿈을 꾸면서 겨울눈을 두 가지 내놓지요. 하나는 꽃눈이고 하나는 잎눈이에요. 봄을 기다리면서 터뜨릴 새 꽃송이하고 잎사귀는 겨울 바람을 마시면서 고요히 꿈을 꾸듯이 천천히 자랍니다.


  그림책 《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는 겨우내 꿈을 꾸면서 새봄에 새롭게 깨어나는 나뭇잎을 가만히 보여줍니다. 이 그림책은 숲속 머리집에서 온갖 예쁜 모습으로 잎몸을 꾸미는 줄거리를 길게 다루지만,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자리에서 ‘새봄 새잎’을 상냥하게 보여주어요.


  걱정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까요. 커다란 잎몸이 모두 없어졌다고 한들 걱정할 까닭이 없다는 이야기를 속삭인다고 할까요. 새봄에 새롭게 돋으면서 그야말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테니까요. 그리고, 숲속 머리집 일꾼인 애벌레도 나뭇잎처럼 겨울잠을 잘 테지요. 겨울 들머리까지 힘껏 일하며 잎을 잔뜩 갉아먹은 애벌레는 이제 더는 잎을 갉을 수 없도록 자라서 기나긴 겨울잠을 자겠지요. 그러고는 새봄에 새잎이 돋을 즈음, 어여쁜 나비로 눈부시게 태어나서 나뭇잎한테 찾아갈 테고요. 나뭇잎한테 인사하고 함께 놀다가 어느 날 나뭇잎 뒤쪽에 앙증맞도록 작은 알을 깔 테고, 이 알은 다시 애벌레로 자라서 ‘숲속 나뭇잎 머리(잎몸) 손질’을 해 주는 몫을 맡을 테지요.


  어른인 나도, 어여쁜 아이들도, 날마다 즐겁고 고요히 밤잠을 자면서 새롭게 꿈을 꿉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밤이 지나면 아침이 와요. 하루를 기쁘게 누렸으니 즐겁게 잡니다. 아침마다 기지개를 한껏 켜면서 새롭게 노래를 부릅니다. 4349.1.3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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