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형제 춤추는 카멜레온 61
알렉시스 디컨 글.그림, 최용은 옮김 / 키즈엠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01



새끼 새와 새끼 악어는 서로 형제가 되어

― 우리는 형제

 알렉시스 디컨 글·그림

 최용은 옮김

 키즈엠 펴냄, 2012.10.12. 11000원



  알렉시스 디컨 님이 빚은 그림책 《우리는 형제》(키즈엠,2012)는, 어느 날 알에서 나란히 깨어난 두 짐승이 서로 돕고 아끼면서 일구는 삶을 차분히 그립니다. 그런데 두 알은 모두 어미가 없이 깨어나요. 어미는 온데간데없이 알만 덩그러니 나란히 있다가 깨어납니다. 게다가 한 알에서는 새끼 새가 깨어나고, 다른 한 알에서는 새끼 악어가 깨어나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까요? 그림책이니까 이렇게 그릴 수 있을까요? 참말 새알이랑 악어알이 나란히 있다고 깨어나기도 할까요?


  그림책을 읽는 아이한테는 새랑 악어가 두 알에서 나란히 깨어나는 일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을 읽는 아이는 왜 새알하고 악어알이 나란히 있다가 깨어나는가를 따지거나 묻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있다가 알이 깨어난다고만 여깁니다. 두 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깨어나는 모습만 물끄러미 들여다보아요.



얼마 뒤 알에서 아기 새가 태어났어요. 그리고 곧 아기 악어가 태어났지요. “네가 내 동생이구나.” 새가 말했어요. “형, 나 배고파.” 악어가 말했지요. (4∼5쪽)



  새알이든 악어알이든 모두 알입니다. 새이든 악어이든 모두 새로운 목숨입니다. 어린 짐승은 모두 ‘아기’예요. 새끼 새이니 더 귀엽거나 새끼 악어이니 무섭지 않습니다.


  그림책 《우리는 형제》를 보면, 먼저 깨어난 새끼 새가 나중에 깨어난 새끼 악어를 보면서 “네가 내 동생이구나” 하고 말합니다. 나중에 깨어난 새끼 악어는 먼저 깨어난 새끼 새를 보면서 “형, 나 배고파” 하고 말해요. 둘은 그냥 동생이고 형입니다. 둘은 한자리에서 깨어난 형제요, 앞으로 사이좋게 삶을 지을 살가운 곁지기라고 할 만합니다.



“형, 뭘 먹어야 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다 가져왔어.” “내가 먹기에는 너무 크다. 네가 잘게 씹어서 줄래?” 먹이를 다 먹고 난 새와 악어는 두 눈을 끔쩍이며 주이를 둘러봤어요. “형, 나 추워.” “응, 나도.” (10∼11쪽)




  새끼 새하고 새끼 악어는 서로 돕고 기대고 아끼고 사랑하고 돌보면서 천천히 자랍니다.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짐승 눈치를 볼 까닭은 없습니다. 두 새끼 모두 어미가 없이 저희끼리 깨어났고, 저희끼리 먹이를 찾으며, 저희끼리 둥지를 지어요.


  악어는 따로 둥지를 짓지 않습니다만, 새끼 새는 어릴 적부터 ‘스스로 살아남으’려고 둥지를 짓습니다. 어미 새가 곁에 없어도 몸속에 깃든 숨결에 따라 저절로 집짓기에 나섭니다. 새끼 악어도 어미 악어가 없으니 어떻게 삶을 지어야 하는지 잘 모르지만, 형으로 삼는 새끼 새가 둥지를 지을 적에 이 일을 거들어요. 왜냐하면 밤에 춥거든요. 둥지가 있으면 한결 포근히 잠들 수 있어요.


  그림책 《우리는 형제》를 아이들하고 읽으면서 ‘말도 안 돼!’라거나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고 묻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저 차분히 이 이야기를 따라갈 노릇입니다. 새는 새끼리만 살아야 하거나 악어는 악어끼리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섣불리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두 어린 목숨이 서로 아끼면서 보살피는 숨결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조용히 읽어야 합니다.



다시 날이 밝았어요. “저것 봐, 정말 예쁘다.” 밝아 오는 해를 보며 악어가 말했어요. “응, 눈부셔. 우리 노래할래?” 따뜻한 햇살이 비치자 새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새가 즐겁게 노래를 불렀어요. 악어는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지요. (12∼14쪽)




  새끼 악어는 먹이를 찾아서 나릅니다. 새끼 새는 노래를 불러 어린 동생을 타이르고 달래며 북돋웁니다. 새끼 새는 날갯짓을 익히는데, 새끼 악어도 날아올라 보려고 애씁니다. 새끼 악어는 물에 둥둥 뜨면서 노는데, 새끼 새도 불에 둥둥 뜨면서 함께 놀려고 합니다.


  그래요, 사랑입니다. ‘난 못 해!’ 하고 못을 박지 않습니다. 서로 무엇을 좋아하거나 즐기는가를 가만히 살펴서 함께 하려고 합니다. 서로 무엇을 잘 하는가를 곰곰이 살펴서 솜씨를 키우거나 살찌웁니다.


  이렇게 두 어린 목숨은 무럭무럭 자라고, 어느덧 씩씩하고 의젓한 어른이 됩니다. 그리고, 두 어린 목숨이 어른이 된 어느 날, 다른 숲으로 마실을 갔는데, 다른 숲에서 ‘처음으로 어떤 모습’을 봅니다.


  네, 한쪽에서는 새끼리 놀고, 다른 한쪽에서는 악어끼리 노는 모습을 보아요. 새끼일 적에 함께 깨어나서 자란 새랑 악어는 ‘저희 둘이 그저 같은 형제’인 줄 알고 살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대목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어른이 된 새는 다른 새가 모인 나무로 날아가고, 어른이 된 악어도 다른 악어가 우글거리는 늪으로 날아가요.



둘은 함께 하늘을 나는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물 위에 통나무처럼 둥둥 떠 있는 법도 연습했지요. 나무에 오르는 법도 연습하고, 멋진 춤을 추는 법도 연습했어요. 날씨가 좋을 때는 바위에 올라가 따뜻한 햇볕을 쬐었어요. 그리고 추울 때는 서로 꼭 붙어 몸을 따뜻하게 했지요. “형이 우리 형이라서 참 좋아.” 악어는 곧 까무룩 잠이 들었어요. (18∼19쪽)




  새 무리에 낀 ‘새’는 이곳에서 어떻게 지낼까요? 악어 무리에 낀 ‘악어’는 그곳에서 어떻게 살까요? 새라는 모습으로 태어났으니 새라는 모습으로만 살아야 할까요? 악어라는 모습으로 태어났으니 악어라는 모습으로만 살아야 할까요?


  그림책 《우리는 형제》는 아이한테 조용히 묻고, 이 그림책을 함께 볼 어른한테도 넌지시 묻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눈으로 새랑 악어를 바라보는지 묻습니다. 새랑 악어는 서로 어떤 사이인가를 묻습니다. ‘형제’란 누구이고 ‘동무’나 ‘이웃’이란 누구이며, ‘한식구’란 누구이냐고 물어요. ‘적’이나 ‘맞잡이’나 ‘남’이란 누구인가 하고 묻습니다. 어떻게 살 적에 스스로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 하는 대목을 묻습니다. 겉모습으로 이웃을 살피려 하는지, 속마음으로 동무를 사귀려 하는지, 사랑으로 한식구를 돌보거나 아끼려 하는지, 스스로 기쁨으로 누릴 삶이란 무엇이라 할 만한지를 묻습니다.


  겉모습이 같으니 형제이거나 동무이거나 이웃일까요? 겉모습이 다르니 너랑 나는 그저 남이면서 적이나 맞잡이 사이로 지내야 할까요?


  그림책 《우리는 형제》를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을 틈틈이 다시 꺼내어 읽으면서 새삼스레 생각에 잠깁니다. 어버이가 낳는 아이는 어버이한테 저마다 사랑스럽습니다.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도 사랑스럽고, 이웃 아이도 사랑스럽습니다. 나도 아름다운 사람 가운데 하나이고, 나를 둘러싼 수많은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아름다운 숨결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몸짓이요 말짓이어도 얼마든지 서로 아름다운 넋입니다. 서로 다른 삶이고 살림이어도 얼마든지 서로 사랑스러운 목숨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인종이나 나라를 따질 까닭이 없이 모두 ‘지구별 형제’입니다. 서로 따사로이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할 반가우면서 기쁜 ‘지구별 형제’입니다. 4349.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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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부릉! 삐익! 출발! 춤추는 카멜레온 46
크리스티 뎀프시 지음, 아이생각 옮김, 브리짓 스트레빈스 마르조 그림 / 키즈엠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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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9



아이들한테 자동차는 얼마나 멋진가

― 부릉부릉! 삐익! 출발!

 크리스티 뎀프시 글

 브리짓 스트레빈스 마르조 그림

 아이생각 옮김

 키즈엠 펴냄, 2012.8.10. 1만 원



  큰아이에 이어 작은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온 뒤부터 ‘자동차’가 나오는 그림책을 장만합니다. 작은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았으면 ‘자동차’가 나오는 그림책을 장만하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나로서는 자동차라고 하는 탈거리는 거의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았으니까요.


  작은아이는 자동차 장난감뿐 아니라 자동차를 몹시 좋아합니다. 머스마란 누구나 자동차를 이렇게 좋아하는가 하고 생각해 보다가, 자동차뿐 아니라 모든 탈거리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끼는데, 더 생각해 보니 나도 어릴 적에 자동차를 비롯한 온갖 탈거리를 참으로 좋아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인 나도 어릴 적부터 자동차 같은 탈거리를 좋아하고, 손가락으로든 진흙으로든 돌멩이로든 나무토막으로든 자동차 놀이를 했습니다. 이러한 결이 그대로 아이한테도 흐를 테며, ‘내 몸을 쓰지 않고’ 빠르게 달리거나 날아오르거나 헤엄치는 탈거리란 참으로 많은 아이들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겠지 하고 느낍니다.




여기는 자동차 경주 대회가 열리는 경기장입니다. (2쪽)



  크리스티 뎀프시 님이 글을 쓰고, 브리짓 스트레빈스 마르조 님이 그림을 빚은 《부릉부릉! 삐익! 출발!》(키즈엠,2012)을 장만해서 아이들하고 읽습니다. 자동차 장난감으로 온 하루를 보내는 작은아이는 이 그림책을 보더니 눈을 반짝반짝 빛냅니다. 온갖 자동차가 나오니 재미있고, 온갖 자동차가 온갖 곳을 마음껏 달리니 즐겁습니다. 아직 글씨를 모르더라도 그림만으로도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대목을 알아차립니다. 아직 글씨를 알고 싶지 않더라도 그림으로도 넉넉히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서 마음껏 놉니다.


  그림책이 왜 아름답거나 즐거운가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오직 그림으로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그림 한 점으로 온누리 아이들이 서로 동무가 되어 즐거운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대목을 손꼽을 수 있어요.


  흔히 ‘사진’이나 ‘사진책’만 놓고서 ‘국경을 넘는 마음’이 흐른다고 하는데, 그림책을 놓고도 얼마든지 나라도 겨레도 뛰어넘습니다. 말을 몰라도 아이들은 장난감 자동차 하나를 사이에 놓고 따사로이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요.




가파른 길을 쌩쌩 달립니다. 어두컴컴 굴도 문제없군요. (6쪽)



  자동차가 잔뜩 나오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는 아직 자동차가 없습니다. 나는 운전면허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머잖아 우리 집에도 자동차를 장만해 보자고 꿈을 꿉니다. 앞으로는 ‘무인자동차’도 나올 테고,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무인자동차’를 탈 수 있을 테며, 이런 자동차가 나올 때쯤에는 자동차 값도 무척 쌀 뿐 아니라 보험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리라 느껴요. 아니, 앞으로는 찻길만 달리는 자동차가 아니라 하늘을 날고 바닷속을 헤엄치는 재미난 자동차가 나올 테지요. 그때에는 우리 집 온 식구가 재미난 자동차를 타고 찬찬히 이곳저곳 누비면서 새로운 이웃도 만나고 새로운 마을도 찾아가면서 삶을 더 재미나게 누릴 만하리라 봅니다.



일등은 달팽이 선수가 차지했네요. 정말 축하합니다! (25쪽)





  아직 지구별에는 기름만 먹는 자동차가 아주 많습니다. 기름만 먹는 자동차로는 찻길만 달릴 테지만, 기름이 아닌 햇볕도 먹고 바람도 먹으면서 ‘깨끗하고 끝없이 쓸’ 수 있는 자동차가 나오면, 이러한 자동차는 시골 할매와 할배도 느긋하게 탈 만하리라 생각해요. 걷기 싫어서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 힘든 몸이나 나이가 되는 사람도 자동차를 즐거이 타면서 어디로든 마음껏 다니는 새로운 앞날이 열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림책 《부릉부릉! 삐익! 출발!》은 온갖 자동차가 ‘빨리 달리기 경주’를 하는 줄거리를 보여주지만, 막상 책을 펼치면, ‘더 빨리 달리기’를 보여주지 않아요. ‘달팽이 자동차’가 으뜸을 차지한다고 하는 마무리처럼, 그야말로 수많은 자동차가 지구별 구석구석을 찬찬히 달리면서 아름다운 이웃을 만나고, 스스로 아름다운 숨결이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꿈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한국에서 자동차를 모는 어른들이 이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찻길에서 좀 느긋하고 차분할 수 있어도 아름답겠지요? 끼어들기라든지 마구 헤집으면서 앞지르기라든지 골목길에서 함부로 빵빵거리며 놀래킨다든지, 이런 일은 좀 그만두고, 서로 아끼면서 함께 삶을 즐기는 자동차가 늘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9.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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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하는 소년 콩닥콩닥 7
마가렛 체임벌린 그림, 크레이그 팜랜즈 글 / 책과콩나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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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4



뜨개질하고 살림하는 사내가 아름다워라

― 뜨개질하는 소년

 크레이그 팜랜즈 글

 마가렛 체임벌린 그림

 천미나 옮김

 책과콩나무 펴냄,2015.8.20. 11000원



  나는 어떤 어른으로 살림을 지을 적에 아름다울까요? 마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 문득 이 대목을 돌아봅니다. 큰아이가 아홉 살 나이로 넘어설 문턱에서 이 대목을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곰곰이 돌아보니 어떤 어른으로서 어떤 살림을 지을 적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건드리거나 짚어 주는 둘레 이웃이나 어른은 찾아보기 어려웠구나 싶습니다. 한집에서 지내는 곁님을 빼고는 이러한 대목을 이야기하거나 밝히는 사람이 몹시 드물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둘레에서 이러한 대목을 이야기하거나 밝히는 사람이 드물기에 나 스스로 이 대목을 잊거나 놓쳐도 되지는 않을 테지요.


  사내가 집안일을 왜 하거나 배우려 하느냐는 소리를 익히 들으면서 자란 어린 날을 되새깁니다. 집에 가시내가 있는데 왜 마흔 넘은 사내가 집안일을 하느냐는 소리를 아직도 들으면서 두 아이를 건사합니다. 한해넘이를 앞두고 문득 생각에 잠깁니다. 삶을 슬기롭게 바라보도록 북돋우는 소리라면 귀여겨들을 노릇이고, 삶을 슬기롭게 마주하도록 이끄는 소리가 아니라면 굳이 듣지 않아도 될 노릇이지 싶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오붓하게 지을 살림을 생각할 노릇이고, 앞으로 이 보금자리를 차근차근 곱게 가눌 길을 살필 노릇이지 싶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맨날 데굴데굴 구르고,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놀았어요. 하지만 라피는 시끄러운 소리나 거친 놀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쉬는 시간이면 혼자 가만히 앉아 있거나 함께 있어 줄 선생님을 찾아다니곤 했어요. 평화롭고 조용한 시간을 누리고 싶어서요. (5쪽)



  크레이그 팜랜즈 님이 글을 쓰고, 마가렛 체임벌린 님이 그림을 그린 《뜨개질하는 소년》(책과콩나무,2015)을 아이들하고 거듭거듭 재미있게 읽습니다. 뜨개질하는 소년이라니, 얼마나 멋있고 사랑스러우면서 의젓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내가 뜨개질을 하기에 멋있고 사랑스러우면서 의젓하지는 않습니다. 가시내가 뜨개질을 할 적에도 멋있고 사랑스러우면서 의젓합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찾을 뿐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삶을 짓는 길을 생각하며, 이 길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와 교사한테서 사랑을 받습니다. 따순 눈길로 ‘치우침 없이’ 바라보는 사랑을 받으면서 기쁘게 뜨개질을 하지요.




“선생님, 뭐하세요?” 라피가 묻자, 선생님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어요. “동생한테 줄 목도리를 뜨고 있단다.” “와, 예쁘다! 선생님, 뜨개질 하는 거 어려워요?” “꾸준히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 가르쳐 줄까?” “네, 네! 가르쳐 주세요!” (7쪽)



  학교에서 공차기를 안 하는 ‘라피’라는 아이는 으레 놀림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라피는 일부러 애써 공차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피는 알록달록하거나 울긋불긋한 빛깔하고 무늬가 깃든 옷을 입고 싶습니다. 애써 거무죽죽하거나 시커먼 옷을 입고 싶지 않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입니다만, 치마는 가시내만 입을 옷이 아닙니다. 사내도 입고 싶으면 얼마든지 입을 만합니다. 발을 하나씩 꿰기에 바지이고, 허리에 두르기에 치마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이 그림책에 나오는 라피라는 아이가 치마를 두르지는 않습니다.


  뜨개질하는 아이는 뜨개질만 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노래하기를 즐기고, 그림 그리기를 사랑하며, 뜨개질하기를 새로 익혀서 언제나 신이 나서 이 삶을 누릴 뿐입니다.


  라피는 학교에서 ‘가시내 같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을 어머니한테 고스란히 옮깁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는 ‘아이(라피)가 얼마나 자랑스러우면서 사랑스럽고 훌륭한 아이(아들)’인가 하는 대목을 부드럽게 이야기해 줍니다. 아이는 어머니 말을 듣고 한결 씩씩하게 기운을 내고, 더욱 즐겁게 잠자리에 든 뒤에, 학교에서 어떤 일을 겪더라도 의젓하고 당찬 몸짓이 됩니다.




“엄마? 내가 이상하고 특이한 거예요? 나는 왜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뜨개질하는 걸 좋아할까요? 엄마는 내가, 여자애 같아요?” “아니. 엄마는 네가 아주 라피 같은데. 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남자애들은 맨날 축구 얘기만 해요. 엄마, 나 정말 여자애 같은 거 아니죠?” “여자애라니? 라피, 좋아하는 게 다른 애들이랑 다를 뿐이지. 넌 엄마 아빠의 훌륭한 아들이야. 엄마 아빠는 네가 아주 자랑스럽단다.” (16∼17쪽)



  나는 곧잘 바느질을 합니다. 아버지가 집에서 바느질을 하면 두 아이가 “뭔데? 뭔데?” 하면서 곁에 달라붙습니다. 한참 바느질을 구경하다가 저희도 바느질을 해 보겠노라 엉겨붙기도 합니다. 절구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몸짓쯤은 큰아이도 얼마든지 해 볼 수 있다면서, 큰아이는 씩씩한 살림순이가 되기도 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칠 수 있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삶을 보여주거나 살림을 가르치는 하루일까요?


  아이들은 어버이 손길을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어른 눈길을 바라봅니다. 삶을 보여줄 어버이 손길을 기다리고, 사랑을 가르칠 어른 눈길을 바라보지요. 오직 뜨개질뿐만 아니라, 삽질도 호미질도 낫질도 톱질도 망치질도 기다립니다.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아이들 스스로 손을 놀려서 살림을 짓는 길을 배우고 싶습니다.




라피는 학교에 도착하자 오도넬 선생님에게 달려갔어요. “선생님, 보여 드릴 게 있어요.” 선생님은 천천히 가방을 열어 보았어요. “어머나, 망토잖아! 네가 지었니? 라피, 정말 놀랍구나.” (26쪽)


라피 생일에 엄마는 특별한 상표를 선물해 주었어요. 라피가 뜨개질과 바느질을 끝낼 때마다 달 수 있는 라미만의 상표였지요. ‘디자이너 라피’ (31쪽)



  《뜨개질하는 소년》이라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아버지한테 목도리를 손수 떠서 선물합니다. 치렁치렁 길게 늘어지는 멋진 목도리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멋지고 훌륭한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 아이한테 걸맞는 선물을 해 주기로 합니다. 아이가 뜨개질을 마치면, 이 뜨개옷에 붙일 ‘이름표(상표)’를 마련해 주어요. ‘디자이너 라피’라는 이름을 넣어서.


  온누리에 오직 한 벌뿐인 옷을 짓는 아이인 셈입니다. 온누리에 오직 이 보금자리에서만 감도는 따순 사랑을 받아서 자라는 아이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온누리 모든 집안에서 저마다 다르면서 고운 사랑이 즐겁게 자라서 마음껏 넘칠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살림이 되리라 느껴요.


  뜨개질하는 아저씨가 예쁩니다. 집안일하는 아버지가 곱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 함께 살림을 돌보고 삶을 짓는 하루가 될 때에 이곳에서 사랑이 싹틉니다. 4348.12.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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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공주 비룡소의 그림동화 141
배빗 콜 지음,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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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8



‘나이가 꽉 차’도 시집가기 싫은 공주

― 내 멋대로 공주

 배빗 콜 글·그림

 노은정 옮김

 비룡소 펴냄, 2005.5.17. 9000원



  아이들은 얼마든지 놀 만합니다. 어른도 얼마든지 놀 만합니다. 공부만 해야 하는 아이가 아니고, 일만 해야 하는 어른이 아닙니다. 삶을 즐겁게 누릴 아이요 어른이고, 삶을 사랑스레 가꿀 아이요 어른입니다.


  아이는 나이에 맞추어 이것을 하거나 저것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나이에 글을 떼거나 어떤 학교를 마쳐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어느 나이에 이르러 어떤 일을 반드시 해내야 하지 않아요. 더군다나 아이한테는 ‘꽉 찬 나이’가 없습니다.


  이는 어른한테도 마찬가지예요. 어른도 몇 살 나이가 되었으니 이런 일을 꼭 해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도 어느 나이에 이르면 무엇을 반드시 해내야 하지 않습니다.



내 멋대로 공주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가씨로 지내는 게 좋았거든요. 하지만 공주가 워낙 예쁘고 부자여서 모든 왕자들이 결혼하고 싶어 했죠. (2∼3쪽)



  배빗 콜 님이 빚은 이쁘장한 그림책 《내 멋대로 공주》(비룡소,2005)를 재미있게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내 멋대로’라고 하는 공주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괴물이라고 여길 만한 짐승을 귀염둥이로 곁에 둡니다. 언제나 귀염둥이 짐승(괴물)을 돌보고, 드넓은 꽃밭을 가꾸면서 하루를 누려요. 내 멋대로 공주로서는 나이가 꽉 찼기에 혼인을 한다든지 시집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없습니다. 내 멋대로 공주로서는 공주 이름 그대로 ‘마음껏 하고픈’ 대로 하면서 삶을 누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루는 왕비가 말했어요. “너도 이제 나이가 꽉 찼으니 짐승들하고 그만 노닥거리고 어서 남편감이나 찾아라!” (6쪽)



  어버이가 왕이나 왕비라고 해서 아이한테 꼭 ‘왕국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굳이 왕국을 물려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왕국뿐 아니라 커다란 회사도 이와 같다고 할 만해요. 어버이가 어떤 내로라하는 대단한 회사를 세운 대표나 회장이나 사장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구태여 그런 회사를 물려받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로서는 아이를 ‘후계자’로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아이로서는 아이 나름대로 아이 삶을 즐겁고 씩씩하면서 알차게 가꾸는 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군인이기에 아이도 군인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운동선수이기에 아이도 운동선수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의사이기에 아이도 의사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교사이기에 아이도 교사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언제나 아이 스스로 가장 즐겁거나 기쁜 삶을 찾아서 꿈을 키울 노릇입니다.




아무도 공주가 시킨 일을 해내지 못했어요. 왕자들은 모두 쑥스러워하며 성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됐겠지?” 내 멋대로 공주는 킥킥 웃으며 말했죠. 공주는 이제야 마음이 푹 놓였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 뺀질이 왕자가 짜잔 나타난 거예요! (20∼21쪽)



  그림책 《내 멋대로 공주》에 나오는 내 멋대로 공주는 ‘아무튼 어머니 아버지 말을 듣기’로 합니다. 그래서 공주한테 찾아온 수많은 왕자한테 이것저것 시켜 봅니다. 공주가 시키는 일을 거뜬히 해낼 수 있어야 ‘남편감’으로 받아들이겠노라 하고 밝힙니다.


  수많은 나라에서 찾아온 수많은 왕자는 공주가 시키는 일을 하나도 못 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공주는 공주 스스로 좋아하고 사랑하며 즐기는 일을 왕자들한테 시키는데, 수많은 왕자 가운데 ‘내 멋대로 공주가 여느 때에 즐겁게 하는 일(놀이)’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없어요. 공주한테 찾아온 왕자는 너나 할 것 없이 ‘공주 겉모습’이나 ‘공주 재산’을 바라보면서 찾아왔을 뿐입니다. 공주하고 사이좋게 놀거나 어울리면서 ‘먼저 동무가 되려는 마음’인 사람이 없어요.


  생각해 보셔요. 사이좋은 동무로 함께 놀고 꿈꾸고 사랑하려는 사이가 아니라, 그저 ‘공주와 왕자’라고 하는 ‘후계자로 짝짓기’만 해야 한다면, 공주는 살아가는 보람이나 뜻이 없습니다. 왕자한테도 이런 삶은 보람이나 뜻이 없을 테고요. 즐거움도 기쁨도 없이 왕좌에 앉는 일이란 웃음도 노래도 이야기도 흐르기 어렵습니다.




뺀질이 왕자는 내 멋대로 공주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공주는 하는 수 없이 왕자에게 마법의 뽀뽀를 했고 ……. (26∼27쪽)



  수많은 왕자는 공주가 시키는 일을 해내지 못하는데, 마지막으로 뺀질이 왕자는 공주가 시키는 일을 모두 거뜬히 해냅니다. 이러면서 뺀질이 왕자는 생각합니다. “내 멋대로 공주도 별것 아니군”


  자, 이제 뺀질이 왕자는 어떻게 될까요? 뺀질이 왕자는 수많은 ‘경쟁자’를 신나게 물리치고 내 멋대로 공주하고 짝이 될까요? 공주를 아끼거나 사랑하려는 마음이 아닌 ‘공주가 시키는 일쯤이야 대수롭지도 않다’고 여기는 마음으로 공주하고 어떤 삶을 누리려 하는 생각일까요?


  공주는 ‘하는 수 없이’ 왕자한테 뽀뽀를 합니다. 그러나 그냥 뽀뽀가 아닌 ‘마법 뽀뽀’입니다. 왕자는 ‘마법 뽀뽀’인 줄 모르는 채 ‘다른 모든 경쟁자를 물리쳐서 으뜸이 되었다는 자랑’만 생각합니다. 즐거운 삶을 짓는 놀이를 꿈꾸는 공주는 마지막 장난으로 ‘마법 뽀뽀’를 하는데, 이를 받아들일 만한 뺀질이 왕자가 될는지, 아니면 ‘저런 공주하고는 못 살겠다’고 외칠는지, 마지막 이야기는 우리가 저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4348.12.2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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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42
로버트 배리 글.그림, 김영진 옮김 / 길벗어린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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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7



‘성탄절나무’ 한 그루가 돌고 돌아서

―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

 로버트 배리 글·그림

 김영진 옮김

 길벗어린이 펴냄, 2014.12.1. 1만 원



  선물은 언제 우리한테 올까요? 선물은 누가 우리한테 줄까요? 선물은 어디에서 샘솟아서 우리한테 이를까요? 선물은 왜 우리한테 나타날까요? 선물은 어떻게 우리한테 닿을까요?


  하늘에서 뚝 하고 선물이 찾아올 수 있을 테지만, 선물이 우리한테 오려면 ‘선물이 될 것’을 우리가 애타게 바라고 꿈꾸며 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애타게 바라거나 꿈꾸거나 빌지 않고서야 선물을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늘 생각하고 언제나 가슴에 두기에 선물을 받을 만하구나 싶습니다. ‘소원종이’에 바람이나 꿈을 적는다고 하듯이, 마음에 어떤 꿈을 생각으로 깊게 새겨서 노상 되뇔 수 있을 때에 이러한 바람이나 꿈을 이룰 수 있지 싶습니다.



나무를 세우고 보니 상상한 것과 퍽 달랐어요. 나무 꼭대기가 천장에 닿아 픽 꺾였어요. 윌로비 씨가 한숨을 폭 쉬었어요. “오, 이런! 이대로 둘 순 없지!” (8쪽)




  로버트 배리 님이 빚은 그림책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길벗어린이,2014)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한 해가 저무는 섣달에서도 스물나흘째 날에 생기는 일을 재미나게 담은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 첫머리를 보면 윌로비라고 하는 할아버지 댁에 ‘성탄절나무’ 한 그루가 찾아오는 모습이 나옵니다. 윌로비 씨는 무척 큰 집을 거느린 분이고, 무척 커다란 성탄절나무를 이녁 집안에 들이려 합니다. 그런데 커다란 집이지만 커다란 나무가 그만 다 안 들어갑니다. 나무 꼭대기가 천장에 닿아서 구부러집니다.


  윌로비 씨는 나무 꼭대기가 구부러지니 집사를 불러서 꼭대기를 자르라고 말합니다. 집사는 나무 꼭대기를 자르지요. 그러고는 이 나무 꼭대기를 이 커다란 집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한테 선물로 줍니다. 그리고 이 ‘잘린 나무 꼭대기’를 받은 사람은 이녁 나름대로 이녁 방에도 놓으려 하는데 이녁 방에서 천장에 닿으니 새삼스레 다시 ‘나무 꼭대기’를 또 잘라요.



정원사 팀 아저씨가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보았어요. 팀 아저씨는 버려진 나무를 그냥 지나칠 사람이 아니었어요. (14쪽)



  그림책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를 보면 ‘나무 꼭대기’는 자꾸 잘립니다. 여러 사람 손을 거친 뒤에는 여우가 이 나무 꼭대기를 봅니다. 여우는 이녁 보금자리로 가져가서 이 ‘여러 차례 잘려서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두는데 또 ‘나무 꼭대기’가 천장에 닿는군요.


  나무 꼭대기는 또 잘려서 버려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잘려서 버려진 나무 꼭대기는 자꾸자꾸 다른 짐승 손으로 갑니다. 더 작은 짐승이 ‘더 작아진 나무 꼭대기’를 손에 쥡니다. 처음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였는데 차츰 자그마한 ‘나무 꼭대기’가 되고, 마지막으로 생쥐한테 이릅니다.




밤이 깊었어요. 아빠 여우가 지나가다가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봤어요. 아빠 여우는 곰곰 생각하다가 자루에 나무 꼭대기를 담았어요. (22쪽)



  생쥐한테까지 닿은 ‘나무 꼭대기’는 사람 눈길로 보자면 매우 작습니다. 그렇지만 생쥐한테 ‘마지막으로 남은 나무 꼭대기’는 작지 않습니다. 사람한테는 매우 작아 보일는지 모르나, 생쥐한테는 ‘무척 큰’ 나무 한 그루라고까지 할 만합니다. 생쥐는 ‘나무 꼭대기를 집으로 가져가느’라 무척 애먹습니다. 눈밭에서 구르고 넘어지거든요. 아빠 생쥐가 나무 꼭대기를 가까스로 집까지 끌고 가니, 이 나무 꼭대기는 생쥐네 집에 꼭 들어맞습니다. 생쥐네 집에서는 더 ‘나무 꼭대기를 잘라야 할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밤에 윌로비 씨를 비롯해서 여우며 토끼이며 생쥐이며 모두 기쁜 웃음이 가득합니다.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 알맞게 ‘성탄절나무’ 한 그루를 집안에 두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이든 크고작은 짐승이 사는 집이든 저마다 가슴으로 품는 꿈으로 바라보는 성탄절나무를 누립니다.



아빠 생쥐가 지나가다가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봤어요. 아빠 생쥐는 나무 꼭대기를 끌고 가다가 눈밭에서 꽈당. 계단을 오르다가 미끌미끌 꽈당! 후유,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어요. 엄마 생쥐가 손뼉을 짝 쳤어요. “어쩜, 우리 집에 딱 맞아요!” 생쥐 식구는 나무 꼭대기에 샛노란 치즈 별을 달았어요. (30∼31쪽)




  나는 책상맡에 ‘내 꿈’을 적거나 그린 종이를 올려놓거나 붙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 꿈을 적거나 그린 종이를 문이나 벽마다 붙입니다. 우리는 우리 꿈을 아침저녁으로 언제나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마음에 품은 꿈을 늘 바라보면서 이러한 꿈으로 나아가는 길을 새롭게 생각합니다. 스스로 꿈길로 걸어가고, 스스로 꿈노래를 부릅니다. 하려고 하는 일을 생각하고, 이루려는 사랑을 생각합니다. 나아갈 길을 헤아리고, 함께 어우러질 살림을 헤아립니다.


  그림책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를 가만히 돌아보면, ‘나무 꼭대기’를 얻은 이들은 모두 ‘이만 한 크기로 성탄절나무가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나무 꼭대기가 버려질 때마다 길에서 이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요. 모두들 길에서 이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알아보았어요.


  여느 때에 늘 꿈으로 마음에 품지 않았다면 ‘나무 꼭대기가 버려진 자리’ 옆을 지나갈 일이 없었으리라 느껴요. 언제나 꿈으로 고이 마음에 품었기에 ‘나무 꼭대기가 버려진 자리’ 옆을 지나갔을 테고, 나무 꼭대기를 알아보았구나 싶어요. 왜냐하면, 나무 꼭대기가 버려진 자리 옆을 지나가면서 ‘다른 것’은 알아보지 않고 오직 ‘나무 꼭대기’만 알아보거든요.


  한 해가 저무는 섣달 끝자락에서 지난 발걸음을 되새기고, 앞으로 내딛을 발걸음을 되짚습니다. 꿈을 품기에 꿈을 이룬다고 하는 말을 곱씹습니다. 새해에 이루고 싶은 꿈을 아이들하고 함께 새롭게 종이에 적거나 그려서 잘 보이는 자리를 골라서 척 붙여야겠습니다. 4348.12.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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