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암탉 피리 부는 카멜레온 95
필라르 마르티네즈 각색, 강형복 옮김, 마르코 소마 그림 / 키즈엠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7



밀알을 심어서 빵을 얻기까지

― 붉은 암탉

 필라르 마르티네즈 글

 마르코 소마 그림

 강형복 옮김

 키즈엠 펴냄, 2013.2.15. 1만 원



  옛이야기를 읽을 적에는 옛사람이 살던 발자국을 읽습니다. 먼 옛날부터 오늘까지 이어진 옛이야기에는 옛사람이 오랜 나날에 걸쳐서 지은 살림살이가 고이 깃듭니다. 옛이야기를 줄거리로만 훑을 수도 있고, 깊은 속내를 살필 수도 있으며, 오늘날 터전에 맞추어 새롭게 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붉은 암탉이 살았어. 붉은 암탉은 언제나 병아리들과 함께 다녔지. 붉은 암탉은 게으른 개와 잠꾸러기 고양이, 수다쟁이 오리와 함께 아담한 집에서 살고 있었어. (3쪽)



  유럽에서 예부터 내려온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붉은 암탉》(키즈엠,2013)을 가만히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붉은 암탉 한 마리가 어느 날 밀알을 주운 뒤 이 밀알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땅에 심어 보기로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씨앗심기’나 ‘농사’를 처음으로 하던 나날에 어떠한 모습이었나를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그동안 ‘들이나 숲에서 나는 것’을 그냥 훑어서 먹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씨앗을 갈무리해서 땅에 손수 심어 보기’를 하던 살림살이가 이 옛이야기 그림책에 담겼다고 할까요.


  밀알을 그냥 먹고서 잊을 수 있고, 이 밀알을 심어 보자는 생각을 새로 품을 수 있습니다. 붉은 암탉은 새로운 길을 가 보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붉은 암탉은 늘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거든요. 코앞에 있는 밥에만 마음을 쏟기보다 아이들한테 가르칠 것을 새롭게 헤아려 본 셈이라고 할 만해요.


  붉은 암탉은 병아리한테도 묻고 한집 동무한테도 묻습니다. 병아리는 어미 닭하고 함께 ‘밀알심기’를 하겠다고 나섭니다. 병아리(아이들)는 어미 닭(어버이)한테서 새로운 일을 배우되 즐거운 놀이로 삼으려 해요. 이와 달리 동무들은 ‘밀알쯤 안 심어도 배고플 일이 없으니 귀찮아’ 하는 생각입니다.




붉은 암탉이 친구들에게 물었어. “밀알을 밭에 심을 건데, 누가 좀 도와줄래?” “난 싫어.” 게으른 개가 멍멍 대답했어. “나도 싫어.” 잠꾸러기 고양이가 야옹 대답했지. “싫어, 싫어.” 수다쟁이 오리도 꽥꽥 대답했어. “그래? 그럼 우리끼리 하지 뭐.” (6쪽)



  붉은 암탉은 밀알(밀씨)을 어떻게 심어야 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먼저 땅을 갈아 보기로 합니다. 땅갈이를 할 적에 동무들을 불러 보지만 아무도 함께 일하겠다고 나서지 않아요. 병아리는 어미 닭하고 함께 일하겠다고 나서지요.


  땅을 갈고서 이랑이랑 고랑을 냅니다. 이랑이랑 고랑을 내고서야 비로소 씨앗을 심습니다. 씨앗을 심은 뒤에는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아요. 늘 돌아보면서 고이 돌봅니다. 이러고 나서 밀베기(가을걷이)를 해야지요. 밀베기를 한 뒤에는 자루에 담아서 방앗간으로 가져가서 가루를 내지요. 잘 빻아서 밀가루가 되면 다시 자루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가지요. 집으로 가져간 뒤에는 반죽을 해서 알맞게 틀을 잡고서 굽지요.


  처음에는 밀알 한 톨이지만, 이 밀알 한 톨을 심어서 가꾸고 지켜보고 돌보고 거두어들이고 빻고 건사하고 반죽하고 굽기까지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갑니다. 제법 긴 나날에 걸쳐서 품을 들여야 하고요. 이동안 병아리는 암탉 곁에서 모든 일을 차근차근 배워요. 그리고 이동안 암탉하고 한집에 사는 동무들은 귀찮거나 성가시다면서 한 번도 안 거들어요.




막 빻은 밀가루를 가지고 돌아온 붉은 암탉이 친구들에게 물었어. “맛있는 빵을 구울 건데, 누가 좀 도와줄래?” “난 싫어.” 게으른 개가 멍멍 대답했어. “나도 싫어.” 잠꾸러기 고양이가 야옹 대답했지. “싫어, 싫어.” 수다쟁이 오리도 꽥꽥 대답했어. “그래? 그럼 우리끼리 하지 뭐.” (18쪽)



  숱한 일손 가운데 한 번도 거들지 않은 동무들은 ‘빵을 다 구워서 맛난 냄새가 솔솔 나니’까 비로소 같이 먹자고 달려듭니다. 이제껏 뒷짐만 지더니, 맛난 빵을 보니 마음이 바뀌었을까요.


  이때에 붉은 암탉은 동무들이 못 들어오게 막아요. ‘우리(병아리하고 암탉)끼리 일을 해서 얻은 빵은 우리끼리 먹겠다’고 밝히지요. 여태 수없이 함께 일하자고 할 적에 한 번도 함께 일하지 않고서 배만 채우겠다고 하니까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혀요.


  붉은 암탉은 동무를 아낄 줄 모르고 저만 생각하는 몸짓일까요? 아니면, 동무들이야말로 동무를 아낄 줄 모르고 저만 생각하는 몸짓일까요? 이 대목에서는 우리 겨레 옛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놀부와 흥부가 문득 떠오릅니다. 놀부는 그저 심술만 부리는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흥부는 스스로 땅을 갈아서 씨앗을 심는 살림을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을까요?




“아니, 안 돼!” 붉은 암탉이 말했어. “나랑 병아리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동안, 너희들은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잖아. 그러니 이 빵은 나랑 병아리들만 먹을 거야.” (26쪽)



  그림책 《붉은 암탉》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골고루 들려줍니다. 이 그림책을 아이한테 읽히거나 함께 읽으면, 아이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말해요. 아무리 그래도 붉은 암탉이 동무들한테 빵 한 조각이라도 주면 안 될까 하고도 생각하고, 참말 동무들이 너무했다고도 생각하지요. 이런 생각을 들은 뒤에, 나는 어버이로서 여기에다가 몇 가지 생각을 덧붙여 봅니다.


  《붉은 암탉》 같은 옛이야기는 모든 실마리를 다 보여주지 않아요. 줄거리만 가만히 들려준 뒤, 이 다음에 이 옛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려 하는가 하는 대목은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첫째, 붉은 암탉은 동무들한테 빵은 안 주고 밀알을 한 움큼씩 주었을는지 몰라. 둘째, 붉은 암탉은 이날 밤 조용히 동무네 집에 찾아가서 문앞에 빵을 한 바구니씩 주었을는지 몰라. 셋째, 붉은 암탉은 동무들이 스스로 밀씨를 들에서 거두어 이듬해에 스스로 밀씨를 심기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모르는 척 지냈을는지 몰라. 넷째, 동무들은 이듬해에도 밀씨는 안 심고 그냥 들에서 나는 것을 그날그날 훑으면서 느릿느릿 지냈을는지 몰라.’ 하는 생각을 들려줍니다.


  어미 닭한테서 밀알을 심어서 거두어 빵을 굽는 데까지 지켜보고 배운 병아리는 이웃 아저씨랑 아주머니한테 어떻게 할까요? 씨앗심기하고 거두기하고 밥짓기(빵굽기)를 모두 찬찬히 배운 병아리는 앞으로 어떤 살림을 스스로 지을 만할까요? 이 뒷이야기는 이 그림책에서 다루지 않습니다만, 옛이야기를 아이하고 함께 읽는 어버이라면 이 대목은 아이하고 머리를 맞대고 조용히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재미있으리라 느껴요. 4349.1.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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