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과 책읽기


 좋은 삶을 좋게 바라보는 사람은, 붓을 들면 ‘좋다 느끼는’ 글을 쓰거나 ‘좋다 느끼는’ 그림을 그리며, 사진기를 들면 ‘좋다 느끼는’ 사진을 찍습니다. 좋은 삶을 좋게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붓을 들면 ‘좋게 살지 못하는’ 슬픈 이야기 깃든 글을 쓰고, 사진기를 들면 ‘좋게 껴안지 못하는’ 안타까운 낯빛 서린 사진을 찍습니다.

 글쟁이·그림쟁이·사진쟁이야 이렇다 치고, 글을 읽거나 그림이나 사진을 보는 사람은 좋은 삶을 좋은 눈길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떠한 글·그림·사진이어도 좋은 넋으로 좋은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좋은 삶을 좋은 눈매로 마주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좋은 글·그림·사진이어도 사랑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얄궂거나 뒤틀린 글·그림·사진에 휩쓸리고 맙니다. (4344.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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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맡 책읽기


 아침맡이면 파란 빛깔로 물드는 먼 멧자락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겨울 멧새가 집 둘레를 바지런히 날아다니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윽고,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 옹옹옹 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종알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바야흐로, 새벽녘 씻어서 불리던 쌀에 물을 더 부어 불을 넣을 때입니다. 밥이 보글보글 익는 동안 다른 찬거리와 국을 끓이고, 오늘 하루도 어제처럼, 또 이듬날에도 오늘처럼, 바쁘며 눈코 뜰 사이 없는 나날을 보내야겠지요. 이래저래 느긋이 쉴 겨를이 없으니 이 방 저 방 이곳저곳에 책을 이냥저냥 쌓아 놓습니다. 어느 때라도 들추고 싶어서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놓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 곳에 정갈히 갈무리해 놓을 때에 책을 한결 차분히 들여다볼는지 모릅니다. 외려, 이리저리 어지러이 놓으니까 책은 책대로 더 못 보면서, 삶은 삶대로 집살림이 이리저리 어수선하다 하겠지요.

 언손을 부비면서 조금씩 녹입니다. (4344.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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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가 되는 책읽기


 책을 읽는 사람들은 꾸준히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책을 살피거나 헤아리는 눈썰미가 넓어지지는 않는 듯합니다. 예부터 ‘책을 좋아하면, 자꾸자꾸 더 좋은 책을 자꾸자꾸 알고 말아 책읽기에 그만 풍덩 빠지고 만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책이 수천억 수조억쯤 쏟아지는 나날이 아닌, 고작 다섯 수레에 책을 실을 만큼 있던 지난날에 이런 말이 나돌았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슬기로워지기보다는 바보스러워지지 않느냐 느낍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 스스로 슬기롭게 살아가기보다는 지식을 잔뜩 쌓고픈 생각을 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바보스러운 길로 구르지 않느냐 느낍니다.

 참말로 왜 책을 읽으려나요. 책을 읽은 내 삶은 책을 아직 읽지 않던 어제 삶하고 견주어 얼마나 아름다워졌는가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사진을 한 장 두 장 더 찍으면서 차츰 아름다워져야 합니다. 사진이란 아름다움을 찾는 삶자락이기 때문입니다. ‘예쁘장하거나 그럴싸한 모습’이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울거나 웃으면서 복닥이는 삶이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사람들 삶을 내 삶결과 눈썰미에 따라 담는 일이 사진입니다. 그러니,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나 스스로 한결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맞습니다. 사진을 오래도록 알뜰히 찍은 사람은 손마디며 눈길이며 매무새이며 그지없이 아름다워야 옳습니다.

 책을 오래오래 읽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익은 벼’와 같아야 합니다. 책을 많이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쉽고 가난한 말’을 써야 합니다.

 이 나라에서 책을 오래오래 읽은 사람은 으레 ‘뻣뻣한 쭉정이’와 같습니다. 이 땅에서 책을 많이많이 읽었다는 사람은 누구나 ‘딱딱하고 어려운 말’, 또는 영어나 한문을 즐겨 섞어 씁니다.

 사람이 되는 책읽기를 하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4344.1.2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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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콩콩 책읽기


 빨래와 아이 씻기기를 마치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 아이는 아빠를 앞질러 저 앞에서 콩콩콩 뛴다. 아이는 그냥 걷지 않는다. 언제나 콩콩콩 뛰면서 걷는다. 조그마한 아이가 콩콩콩 내닫는 소리가 ‘콩콩콩’ 들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아이를 바라볼 때면 내 귀에는 ‘코옹 코옹 코옹’ 하는 소리가 톡톡톡 들린다. 아이는 저렇게 가볍게 콩콩콩 내닫는데, 아빠는 언제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끙끙끙 걷는다. 너무 무겁게 걷나? 아이 외할머니가 “어쩜 벼리는 저렇게 콩콩콩 뛰냐? 하기는, 아이 때는 다 저렇게 뛰더라.” 하고 말씀할 때에 비로소 우리 집 아이가 콩콩콩 뛰는 줄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 아이뿐 아니라 이웃한 어느 집 아이들이건 콩콩콩 뛴다. 때때로 콩콩콩 안 뛰는 아이를 보기도 하는데, 콩콩콩 뛰지 못하거나 않는다면 아이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아이가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웃갸웃하곤 한다.

 콩콩콩 어린이는 집에서 혼자 책을 펼칠 때이든 아빠나 엄마가 곁에서 책을 읽어 줄 때이든 노상 콩콩콩 책읽기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며 오래오래 그림을 되삭일 때에는 어쩜 이렇게 깊이 빠져들 수 있을까 싶은데, 옆에서 불러도 알아듣지 못한다. 온통 그림에 마음을 쏟는다. 요사이는 글자를 알아본다. 글자가 무엇을 적바림했는지를 알아보지는 않는다. 꼬물꼬물한 ‘구림’이라고 여긴다. 아빠는 늘 수첩이나 공책에 요모조모 쪽글을 쓰니까, 아이는 아빠 곁에서 “아빠 공부해?” 하고 묻는다. 글을 쓰는 일이 마치 ‘공부하는’ 듯하다는 이야기는 누구한테서 들었을까. 이 소리도 외할머니한테서 들었던가? 이리하여, 요사이 그림책 글자를 알아보는 아이는 ‘구림’이라고 말하다가는 “구림 아냐. 공부야.” 하고 고쳐 말한다. 아빠가 곰곰이 글을 쓰면, “아빠 공부해? 응, 공부해.” 하다가는 저도 작은 수첩과 볼펜을 들고 아빠 옆에 나란히 앉아서 ‘공부를 한’다. 작은 수첩에 꼬물꼬물 글씨를 줄을 가지런히 맞추면서 요모조모 그린다. 게다가 꼬물꼬물 줄맞춘 그림그리기를 한 쪽 가득 하고, 다음 쪽 가득 또 한다.

 예전부터 늘 느끼지만, 아이들이 책을 좋아한다면 어버이가 책을 좋아하는 집안이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버이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 집안이다. 아이들이 읽는 책을 살피면, 이 집 어버이가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는지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아이들이 책을 건사하는 매무새를 들여다보면, 이 집 어버이가 책을 어떻게 마주하거나 다루는가를 환히 읽을 수 있다.

 참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영어를 말하거나 영어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아이를 만날 때면, 이 아이가 더없이 불쌍하지만, 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버이가 참으로 딱하며 안쓰럽다. 퍽 어린 나이에 일찍부터 갖가지 학원에 다니거나 온갖 지식을 주워섬기는 아이를 마주할 때면, 이 아이가 그지없이 가여우면서, 이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가 그토록 슬프며 안타까울 수 없다.

 왜 즐겁게 살아가지 않을까. 왜 즐겁게 사귀지 않을까. 왜 즐겁게 책을 읽지 않을까. 책이란 즐겁게 읽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즐거이 어우러지는 고운 목숨이다. 삶이란 즐거이 태어나서 즐거이 흙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콩콩콩 가벼이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하루하루 콩콩콩 맑고 밝은 말마디를 노래하듯 읊으면서 지내면 사랑이요 평화이다. (4344.1.26.물.ㅎㄲㅅㄱ)
 

 

이 그림책은 '영어 그림책'이 아닌 '리처드 스캐리' 그림책. 아직 우리 나라에 번역이 안 되었을 때 헌책방에서 찾아낸 아빠 보물. 그러나 아이는 아빠 보물이건 뭐건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이 예쁘니까 책이 낡고 닳도록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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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녘 책읽기


 시골집에서 새벽에 일어나면 맨 먼저 달빛과 별빛이 반깁니다. 까만 하늘이 차츰 파란 빛깔로 바뀌면서 닭이랑 멧새랑 우는 소리가 이 다음으로 반깁니다. 겨울날 차가운 바람이 이들과 함께 시골사람을 반깁니다.

 봄 여름 가을 동안 내리 바라보던 나무는 겨울에 들어서며 옷 벗은 나무가 되었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거추장스러운 짐을 내려놓고 새봄을 기다리는 나무입니다. 또다시 살펴보면 거추장스러운 짐이라기보다 새봄에 새힘으로 새삶을 일굴 나무가 되도록 스스로 잎을 모조리 떨구어 흙을 살찌우려고 옷을 벗은 나무요, 알몸이 된 나무이며, 빈털털이가 된 나무입니다.

 멧골자락에서는 하늘과 흙과 나무와 눈밭과 달과 해를 마음껏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겁습니다. 시끌벅적한 자동차 소리라든지, 싸구려라 외치는 물건 파는 소리라든지, 철따라 유행이 바뀌는 대중노래 소리라든지, 사람들 싸우거나 멱따는 소리라든지, 하나도 귀로 스며들지 않습니다. 식구들 움직이는 소리와 아이가 떠드는 소리를 듣는 조그마한 보금자리입니다.

 밤나절 잠자리에 들면 언제나 허리가 쑤시고 결립니다. 이제 아이도 잠들었으니, 아빠는 아빠 하고픈 일을 하거나 책 좀 손에 쥘 수 있나 하고 헤아립니다. 무거운 눈꺼풀을 낑낑 인 채 책을 쥡니다. 이때에라도 읽지 않으면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책이기에, 손 덜덜 떨면서 책을 쥡니다.

 새벽녘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어제 잠들기 앞서 읽던 책을 만지작거립니다. 참말 이토록 고단한 나날에 내가 읽을 만한 책을 읽었는지,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내 곁에 둘 만한 책을 사랑하는지 곱씹습니다. 밤나절 잠자리에 들 무렵에는 이런 책이든 저런 책이든 손에 쥐지만, 막상 하루가 지나 새벽녘이 되면 엊그제 읽은 책은 덧없다고 느낍니다.

 책은 종이뭉치에 있지 않은 줄 알면서 종이뭉치에 깃든 책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않나 곱씹습니다. 글을 쓰는 책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걸상에 앉아 글을 쓰도록 할 수 있지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글을 쓰는 일도 즐겁습니다. 어쩌면, 겨울날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기운을 느껴서 한결 좋고, 무릎을 꿇으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한편, 내 마음결을 차분히 다스리니까 글쓰기에는 한결 나을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식구들 끼니를 어떻게 마련할까 하고 생각하면서 한숨을 가늘게 쉬다가는, 다 읽은 책 읽다 만 책 읽으려 하는 책 거듭 읽는 책 들을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며 잎사귀 하나 없는 두릅나무에 머잖아 새잎이 돋으며, 이 새잎과 새싹을 칼로 살살 잘라서 냠냠짭짭 먹을 새봄이 곧 올 테지, 하고 꿈을 꿉니다. (4344.1.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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