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책들을


 좋아하는 책들을 책상맡에 오래오래 놓습니다. 예전에는 이 책들을 혼자서만 좋아하며 살았습니다. 이 책들을 얼마나 좋아하며 아꼈는가는 이 책들을 읽고 나서 곁에 오래오래 둔 이야기를 느낌글 하나로 갈무리할 때까지 혼자만 조용히 알 뿐입니다.

 좋아하는 책인 한편, 아이가 좋아하는 책들을 집에 들여놓습니다. 집하고 맞닿은 도서관으로 이 책들을 옮기지 못합니다. 아이는 아이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날마다 새로 꺼내고 다시 들추며 또 들여다봅니다. 두 번 세 번 열 번 스무 번이 아니라, 백 번 즈믄 번 거듭 읽는데, 이 책을 집에 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뜨개질하는 엄마랑 나란히 앉아 그림책을 보던 아이가 갑자기 아빠한테 뛰어옵니다. “수박! 수박!” 하면서 아빠한테 먹여 준다고 손가락을 둘 오므립니다. 아빠 등을 철썩 때리듯이 덮치며 “맛있어? 맛있어?” 합니다. 아이는 그림책에서 수박을 보고는 손가락으로 수박을 집어 저도 한 입 먹고 아빠도 한 입 먹으라 합니다.

 한 번 읽은 좋았던 책을 두 번 읽거나 세 번 읽곤 합니다. 넌지시 책꽂이에 얌전히 모셔 놓은 다음 새로운 좋은 책을 찾아 책방마실을 즐기곤 합니다. 새로 책방마실을 하며 예전에 읽은 좋은 책을 마주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진작에 읽은 책이지만 한 번 눈길이 가고, 두 번 손길이 갑니다. 속으로 헤아려 봅니다. 이 책을 누군가한테 선물해 볼까?

 우리 집 책꽂이에 얌전히 꽂히거나 누워 있는 책들은 제 손을 거치며 제 눈과 머리와 가슴에 아로새겨진 책들입니다. 이 책들 가운데에는 썩 달갑지 않아 굳이 사둘 까닭이 없다고 여기는 책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달갑지 않달지라도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와 같은 때 이와 같은 목소리가 있었구나’ 하고 돌아보도록 하는 책이라, 제 마음대로 없앤다든지 없는 책이라 말할 수 없어요. 내 아이를 헤아리면서 이 책도 곱다시 꽂아 놓습니다. 이와 함께 제가 참 좋아하는 책들을 차곡차곡 꽂아 놓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책을 새삼 끄집어 내어 새롭게 펼칠 때에도 이 책을 읽는다 말할 테고, 이 책을 굳이 끄집어 내지 않고 가만히 마음속으로 떠올릴 때에도 이 책을 읽는다 말할 만하지 않은가 하고.

 좋아하는 책들을 펼쳐 읽으며 좋아하고, 좋아하는 책들을 예쁘게 꽂아 놓으며 좋아하며, 좋아하는 책들을 반가운 벗님한테 건네주면서 좋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제 손을 거쳐 우리 집에 들여놓은 책들은 우리 아이한테 하나둘 이어가면서 새롭게 좋아하는 책들로 자리잡습니다. 좋아하는 책들을 마음으로 안아들어 눈을 감는 일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4343.11.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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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사람 책읽기


 시골집에서는 큰비가 와락 퍼부을 때 으레 전화줄을 뽑아 놓는다. 벼락이라도 칠라치면 허둥지둥 전화줄을 뽑아야 한다. 자칫 몇 초 늦다가는 벼락이 전화줄을 타고 들어온다. 벼락은 시골집 셈틀을 퍽 하고 터뜨릴 수 있다. 지난여름에는 셈틀까지 탈 뻔했으나 공유기와 모뎀까지만 태우고 끝났다.

 오늘은 갑작스레 날이 흐려지더니 거센 비와 바람이 몰아친다. 부랴부랴 셈틀을 끄고 전화줄을 뽑아야겠다고 생각했으나, 한창 기차표와 비행기표 예약을 하던 터라, 이 일을 끝내야 한다는 마음에 괜히 더 바빠서 콩닥콩닥 조마조마.

 헐레벌떡 일을 마치고 전화줄을 먼저 뽑는다. 벼락이 치기는 해도 잇달아 치지 않으니 한숨을 돌린다. 셈틀을 끄고 얼마 뒤부터 벼락이 꽤나 크게 자주 친다. 전기불까지 모두 끄고 촛불을 켜야 하나 생각해 보았으나 전기불은 그대로 두기로 한다. 두 시간 남짓 이렇게 있었나. 이동안 책을 한 아름 들고 작은방으로 건너와서 아이한테 책을 읽히고, 또 아빠는 아빠대로 책을 읽는다. 그런 다음 저녁을 차려서 먹는다. 저녁을 먹고 나서 또 책을 펼친다. 아이는 이리 뒹굴고 저리 놀다가 바닥에 잔뜩 굴러다니는 그림책을 펼친다. 아이가 하도 이리 던지고 저리 어지르는 바람에 날마다 몇 번씩 치워도 다시금 엉망이라 아예 두 손을 든다. 오늘은 몸이 너무 고단해서 더 치우지는 못하고, 이듬날 일어나서 치울 생각이다.

 혼자서 뒹굴며 놀기도 하다가는 그림책을 보다가는 또 어지르다가는 또 아빠 등에 갑자기 안기다가는 하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가 우리 아이만 한 나이였을 적에 나는 집에서 어머니나 아버지 앞에서 어떻게 놀며 무럭무럭 컸을까. 그때 우리 형은 나를 어떻게 마주해 주었을까.

 둘째를 밴 아이 엄마가 다른 일은 하나도 못하고 오로지 뜨개질만 한다. 뜨개질을 하는 바람에 뜨개질 바늘이며 실을 장만하느라 꽤 목돈이 든다. 내 살림으로는 도무지 바늘과 실 값을 댈 수 없어 형한테 전화를 걸어 바늘 값 보태어 달라고 얘기했다. 형은 몹시 고맙게 동생을 기꺼이 도와준다. 돈벌이가 어수룩한 동생은 노상 형한테서 도움을 받는다. 살림이 바닥날 때마다 형이 도와주어 숨통을 튼다. 내가 쓰는 글이랑 내가 찍는 사진으로 벌이를 제대로 하는 적이 없다.

 아이 엄마 얘기로는 아직 바늘을 다 안 샀단다. 아, 앞으로 바늘을 얼마나 더 사야 하기에 아직 모자라다 그러나. 그렇지만 아이 아빠가 책을 사들이는 데에 쓴 돈을 헤아린다면 바늘을 더 사야 한다는 소리는 하나도 따갑지 않다. 마땅히 사야지. 아무렴, 투덜투덜댈지라도 즐거이 사야지.

 둘째가 태어나기 앞서까지 아이 엄마는 손가락과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뜨개질을 한다면, 아이 아빠는 아이랑 놀며 책을 읽다가는 이른새벽에 조용히 일어나 손가락에 굳은살이 배기도록 글을 써야 할 테지. 빨래하고 밥하고 뭐하다 보면 책을 쥘 엄두가 안 나기는 하지만, 빨래를 마치고 밥하기와 설거지를 마치고 크게 한숨을 돌린 뒤에는 바람소리랑 햇살이랑 달빛을 느끼다가 저절로 책을 펼친다.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 들리지 않고, 집구석에 텔레비전을 모셔 놓지 않다 보니, 아주 홀가분하게 책읽기를 놀이로 삼는다. 그렇다고 재미없거나 지루한 책은 읽고 싶지 않다. 좋은 햇살을 느끼며 좋은 책을 읽는 가운데 하루를 열고, 좋은 밤하늘 달빛을 느끼며 좋은 책을 몇 장 넘기는 가운데 스스르 잠들고 싶다. (4343.11.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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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11 21:35   좋아요 0 | URL
공유기와 모뎀 오랜만에 들어보네요.인터넷 강국이라고 해도 아직 시골까지 전용선이 들어가진 않는 모양이군요^^;;;

숲노래 2010-11-12 05:28   좋아요 0 | URL
시골은 오로지 전화선으로만 인터넷을 한답니다. 이리하여... 일 때문에 사진파일을 보낸다거나 받아야 할 때에는 100메가에 한 시간 반쯤 걸립지요 @.@

카스피 2010-11-12 10:43   좋아요 0 | URL
허걱 한시간 반씩이나요 ㅜ.ㅜ

숲노래 2010-11-12 22:55   좋아요 0 | URL
100메가에 한 시간 반이니... 웬만한 파일을 보내려면 서너 시간은 기본이랍니다 ^^;
 


 돈 되는 책 만들기


 시골에서 살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일이란 참 많다. 이 가운데 하나는 날이 갈수록 농사꾼다운 농사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대목. 농사꾼이 잘못이기 때문이 아니요, 농사를 잘못 지어서가 아니다. 농사짓기란 땅과 하늘과 물과 바람과 목숨을 사랑하는 가운데 내 삶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마음을 잊거나 잃을밖에 없는 이 나라 얼거리에서 몹시 짓눌리거나 아파하다가 그만 참사랑하고 멀어지고 만다. 이 걱정스러운 일은 앞으로 더욱 불거지리라 본다. 농사꾼이라 하여 모두들 참으로 농사를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밑바탕이니까. 따질 값어치조차 없다. 생각해 보자. 책을 내는 책마을 일꾼한테 대고 “당신은 책을 사랑하고 아낍니까?” 하고 물어 볼 일이란 없다. 아니, 물어 보아서는 안 된다. 묻고 자시고 할 까닭 없이 책마을 일꾼이라면 마땅히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매무새를 밑바탕으로 다스려야 하니까. 이러한 밑바탕을 살뜰히 다스리면서 책을 얼마나 더 사랑하고 아끼는가를 북돋아야 하니까. 그런데 농사꾼이고 책꾼이고 밑바탕으로 다스릴 매무새를 잃은 지 오래가 아닌가 싶다. 자꾸자꾸 잃거나 잊는구나 싶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먹고살아야 하기에 얄궂은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만, 우리 사회와 틀거리가 워낙 사람을 팔푼돌이로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금세 돈에 지고 만다. 아니, 금세 돈에 젖어들고 만다. 이리하여, 농사꾼치고 돈 되는 곡식을 안 심는 사람이 없다. 책마을 일꾼치고 돈 되는 책을 안 내려는 사람이 드물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마을 터전 땅과 물과 바람에 걸맞게 곡식을 즐겨 심는 한편, ‘나와 내 살붙이가 먹을 만큼’ 심었다. 요사이는 돈이 되는 고추며 담배며 인삼이며 가리지 않고 심는다. 능금이랑 배랑 복숭아랑 참외랑 수박도 마찬가지이다. 돈을 더 벌도록 곡식이나 열매나 푸성귀를 심어 가꾼다. 어느 시골이든 ‘아무개 마을 고추가 으뜸이다’라느니 ‘우리 마을 능금이 으뜸이다’ 하고 내세우는데, 정작 따지고 보면 ‘고추로 이름나지 않은 마을’이나 ‘능금으로 이름나지 않은 시골’이 있을까. 있으려나. 있을 수 있겠는가. 더 돈을 벌도록 농사를 지으려 하니까 자꾸자꾸 풀약을 치고 비료를 준다. 비닐농사를 지을밖에 없고, 비닐농사를 지은 다음, 이 비닐을 그냥 땅에 파묻거나 태우고 만다. 비닐이 땅에 묻히면 어떻게 된다고 돌아보지 못한다. 비닐을 태울 때에 어찌 되는가를 살피지 않는다.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먹은 곡식이 우리 몸에 어떻게 스며들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오늘날 출판사들 매무새를 곱씹어 본다. 요즈음 출판사들은 돈 되는 책이라면 서로 다퉈 가면서 낸다. 돈이 있으면 돈이 있는 대로 선인세라는 이름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갖다 바치면서 수없이 많은 광고를 퍼부으면서 마구마구 팔아치운다. 그런데, 이렇게 수없이 많은 광고를 퍼붓고 어마어마한 돈을 갖다 바친 책을 오늘날 사람들은 잘도 사 읽어 준다. 어린이책을 내는 출판사들은 이런 진흙탕 싸움을 더 거칠게 한다. 홈쇼핑에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값싸게 책을 집어넣어 동네책방이 싸그리 문을 닫게 내몰 뿐 아니라 어린이책 전문책방마저 문을 닫게끔 몰아세운다. 뜻있다는 출판사라 해서 ‘홈쇼핑 책넣기’를 안 하는가? 한때는 홈쇼핑을 손가락질하던 뜻있다던 출판사들이 하나둘 홈쇼핑으로 돌아서는 한국 책마을이다. 이 가운데에도 돈 많은 몇몇 출판사들은 나라밖에서 나온 ‘좋다고 하는 책’을 서로 웃돈 주고 사들인다. 좋다는 책을 내는 일이 나쁘지는 않다. 우리는 좋다고 하는 책을 내기도 해야 할 텐데, 우리 힘으로 이 나라 사람들과 살가이 나눌 새로운 좋은 책을 차근차근 함께 내놓아야 한다. 이러다 보니, 웬만한 출판사마다 어린이책 안 내는 곳이 드물며, 이제는 “우리는 인문교양서를 냅니다!” 하고 외치기까지 한다. 어린이책을 내놓는 일이 나쁘다거나 인문교양서를 낸다고 외치는 일이 글러먹었다는 소리가 아니다. 여태까지는 어린이책을 하찮게 깔보았을 뿐 아니라, 어린이책은 ‘어리숙한 책’이라고 업신여기까지 했으면서, ‘이제 어린이책이 꽤 돈이 된다’ 싶으니 너도 나도 게걸스레 달겨드는 모습이 불쌍하다. 참으로 어린이책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든지, 어린이책을 내놓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알면서 어린이책판에 뛰어드는 ‘이름나거나 손꼽히는’, 그러니까 ‘어른책만 내며 이름나거나 손꼽히던’ 출판사로 어느 곳을 들 수 있을까. 나로서는 어떠한 ‘어른책만 내던 이름난 출판사’도 참답고 착하며 곱게 어린이책을 만든다고 느낄 수 없다. 또한, 온누리 어떤 책이 ‘인문교양서’가 아닌가. 만화책이든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인문교양서이다. 어른책이든 어린이책이든 인문교양서이다. 요즈음 수많은 출판사들이 떠벌이는 ‘인문교양서’라는 이름은 “아무 책이든 돈이 된다고 하면 가리지 않고 내겠다”는 꿍꿍이를 허울좋게 뒤집어씌운 껍데기라고 느낀다. 큰 틀로 보았을 때 ‘교육’이면 교육, ‘환경’이면 환경, ‘어린이’면 어린이, ‘철학’이면 철학만 곧게 낼 수 있는 줏대와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이렇게 책을 내놓으면 이 출판사에서 내놓는 모든 책은 ‘어린이책이면서 어른책’이요 ‘하나같이 아름다운 인문책’으로 뿌리를 내린다. 어쩌면, 책도 물건인 만큼 책을 팔아야 먹고산다 할 만할 뿐더러, 먹고살 생각으로 책을 만들겠다 밝힐 수 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러면, 참말 돈을 바라고 이름을 바라며 힘을 바란다면, 책 말고 다른 것을 만들면 되지. 책 만들어 얼마나 커다란 돈을 번다고 그러나. 책이 뭐 로또복권인가. 농사짓기가 무슨 로또복권인가. 책이든 농사이든 삶이다. 하루하루 소담스러우며 아름다운 삶이다. 날마다 고마우며 즐거운 삶이다. 내 마음을 다스리고 내 넋을 북돋우는 삶인 농사짓기요 책만들기로 거듭나야 한다. 농사다운 농사를 짓고, 책다운 책을 일구며,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이 되어야 한다. (4338.5.24.불.처음 씀/4343.11.8.달.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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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읽기


 새로 나오는 책을 읽고 싶다면 예전에 나온 책을 먼저 읽으면 됩니다. ‘오래도록 읽을 만한 책(고전)’을 읽으며 무언가 느껴 온누리 바라보는 눈길을 다스리면 넉넉합니다. 내가 받아들여 내 삶을 북돋울 인문책을 옮게 가누고 살피는 몸짓이란, 새로 나오는 ‘참 좋다’고 하는 인문책을 아무리 읽은들 찬찬히 익히거나 배우거나 삭일 수 없습니다. 인문책이란 삶을 담은 책, 한 마디로 하자면 ‘삶책’이거든요. 슬기롭게 살아가자면 슬기로움이 내 삶으로 스며들어야 합니다. 슬기로움이 내 삶으로 스며들자면 수많은 지식을 갖추려고 하는 매무새로는 모자랍니다. 수많은 지식은 머리에 갇혀 옴쭉달싹 못하는 짐덩이입니다. 슬기로움이란 언제나 때와 곳에 맞추어 옳고 바르며 착하고 참다이 움직이도록 이끄는 기운입니다. 슬기로웁게 살아가자면 내 손에 꾸덕살이 박혀야 하고, 내 발바닥에 못이 박혀야 합니다. 내 머리카락은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되면서, 내 살갗은 햇볕에 그을려야 하지요. 이리하여 고전읽기란 삶읽기입니다. 다만, 예전에 나온 책이라 해서 모두 고전이 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예전에 나온 책이라 한들 모두 읽을 만한 책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고 싶으며, 책을 가까이하는 가운데 슬기로운 넋을 일구고 싶다면, 헌책방을 즐겨찾아야 합니다. 헌책방 책시렁에서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 쉰 해가 지나도록 빛줄기가 곱다시 흘러나오며 내 눈길과 눈빛과 눈매와 눈결을 어루만지는 알맹이가 담긴 책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전에 나온 책이란 ‘헌책방에서 오래도록 살아남는 책’을 일컫습니다. 도서관에서 먼지만 먹으며 잠자는 책이 ‘예전에 나온 책’이 아닙니다. 예나 이제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같은 이름표’를 얻지 못하면서, 몇몇 사람 손만 겨우 거치며 몇몇 사람한테 가까스로 알음알이를 하더라도, 책사랑으로 나아가려는 한 사람을 기다리는 고운 책이 ‘예전에 나온’ 책, 바야흐로 고전입니다. 고전을 읽으며 삶을 읽어내어 아로새길 수 있을 때에 하루하루 차근차근 슬기로움을 온몸과 온마음에 적셔 놓습니다. 새로운 슬기나 새로운 지식이나 새로운 책이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4343.1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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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사는 까닭


 배워야 하니 책을 삽니다. 더 배워야 하니까 더 책을 삽니다. 거듭 배워야 하기에 거듭 책을 삽니다. 꾸준히 배워야 하는 만큼 꾸준히 책을 삽니다. 내 길을 갈고닦아야 하는 터라 내 길을 갈고닦을 책을 삽니다. 내 삶을 사랑하는 그대로 내 삶을 사랑할 책을 삽니다. 나 스스로 읽어 나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갈 기운을 얻도록 돕는 책을 삽니다. 오늘 하루 읽고 어제 하루 읽었으며 글피 하루 읽을 책을 삽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혀 읽어 주고 함께 읽는 책을 삽니다. 책꽂이에 곱게 채워 놓을 책은 사지 않습니다. 꽤 많이 팔리는 책이라 해서 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입에 침이 닳도록 추켜세우는 책이라 할지라도 딱히 사지 않습니다. 내 가슴으로 스며들 때에 책을 삽니다. 내 마음이 활짝 문을 열도록 다가오는 책을 삽니다. 나부터 두고두고 사랑할 만한 책을 삽니다. 우리 아이가 튼튼하고 씩씩하게 큰 다음에도 아낌없이 사랑해 줄 수 있을 만한 책일까 헤아리며 책을 삽니다. 돈이 넉넉하기에 책을 사지 않습니다. 돈이 모자라기에 책을 못 사지 않습니다. 돈을 좀 벌었다고 아무 책이나 사지 않습니다. 살림돈이 바닥났어도 책을 삽니다. 집에 책꽂이가 모자라지만 책을 삽니다. 책꽂이 살 돈을 겨우 마련했으나 책꽂이 살 돈으로 다시 책을 삽니다. 이 바람에 애써 산 책을 책꽂이에 알뜰히 건사하지 못하고 바닥에 쌓아 놓고 말지만, 다시금 상자 가득 가방 가득 책을 삽니다. 잠자리맡에 둘 책을 삽니다. 책상맡에 놓는 책을 삽니다. 아이가 날마다 수없이 들여다보며 되읽는 책을 삽니다. 100만 원이 들든 10만 원이 들든 1만 원이 들든, 어쩌면 한 해 꼬박 치르는 책값이 1000만 원 가까이 되거나 웃돌든 어찌 되든 책을 삽니다. 내가 책을 사지 않았다면 책값으로 들인 돈을 어디에 썼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내가 책을 사지 않고 살았으면 책값으로 들였던 돈을 벌 수 있었는지, 또는 오늘까지 이렇게 목숨을 이으며 내 깜냥껏 즐거웠다고 돌아보는 나날을 보낼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리하여 저는 책을 사고, 또 사고, 다시 사며, 거듭 사다가는, 자꾸자꾸 사고, 되풀이해서 사며, 겹쳐서 사기도 하면서, 신나게 삽니다. (4343.10.3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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