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히기 1


 아이가 스스로 책을 사서 보는 나이는 몇 살쯤 될까요. 아이는 왜 스스로 책을 사서 보는 날을 맞이할까요. 아이로서는 어버이가 장만해 주는 책을 읽어도 나쁘지 않을 텐데, 어이하여 굳이 제 돈을 들여 제 책을 따로 마련해서 읽는 날을 맞이하려고 할까요.

 아이가 좋은 책을 읽으면서 크면 좋다 할 만합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장만해 준 좋은 책을 하나둘 맛나게 받아먹는 가운데 씩씩하고 튼튼한 넋을 살찌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한테 좋은 책만 있고 좋은 삶은 없다면, 아이가 스스로 읽은 좋은 책을 좋은 삶으로 펼쳐낼 길이 없다면, 아이가 맞아들인 좋은 책이 바탕이 되어 스스로 좋은 책을 새롭게 알아보는 눈길과 손길을 열 수 없다면 어찌 될까 궁금합니다.

 우리 살림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텔레비전이 없어야 할 까닭이 있느냐고 묻는 분이 있는데, 저는 거꾸로 여쭙니다. 텔레비전이 있어야 할 까닭이 있느냐고.

 우리 살림집에는 빨래기계가 없습니다. 빨래기계를 안 쓰는 까닭이 있느냐고 묻는 분이 많은데, 저는 되레 여쭙니다. 빨래기계 없으면 빨래를 못할 까닭이 있느냐고.

 텔레비전을 들이든 안 들이든 전기삯에 텔레비전 수신삯이 끼어 있습니다. 한국전력에 전화삯을 들여 따로 알리지 않으면 텔레비전 수신삯은 억지로 빠져나갑니다. 텔레비전을 켜면 어떤 방송을 보려 할 때이든 꽤 길게 흐르는 광고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광고를 안 보고 즐길 수 있는 방송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가 값싸다 하지만, 지하철과 버스는 온통 광고투성이입니다. 눈높이에 따라 빼곡하게 들어찬 광고판입니다. 어지러이 붙어 눈을 지치게 하는 광고덩어리입니다. 이처럼 광고삯을 받는 지하철이요 버스라 한다면, 광고로 돈을 버는 만큼 찻삯을 더 줄이거나 아예 거저로 해야 마땅합니다.

 온누리는 돈에 따라 짜맞추어져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물을 마실 수 없고 뒷간을 쓸 수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느긋하게 다리쉼을 하자며 앉을 자리마저 없습니다. 온통 된통 돈으로 흐르는 누리인데, 이런 누리에서 책읽기란 어떤 일이 될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좋은 책 수없이 사들여 읽힌다 한들 아이는 무엇을 받아먹으며 무슨 얼을 북돋울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착하거나 참되거나 고운 삶이 사랑받을 수 없는 나라에서, 아름답거나 빛나거나 훌륭한 책 하나가 아이한테 어떠한 마음밥이 될는지 걱정스럽습니다.

 아이는 틀림없이 제 손으로 제 마음밥 살찌울 제 책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책만 찾을 수 있다고 모든 일이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김없이 제 온몸으로 제 온삶을 찾아야 하니까요. 아이 온삶을 일구면서 즐기는 책이어야 합니다. 아이 온삶을 빛내면서 즐기는 일이어야 합니다. 아이 온삶을 밝히면서 즐기는 놀이여야 합니다. 아이 온삶을 돌보면서 즐기는 밥이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좋다 하는 책을 들여다볼 때에, 줄거리와 목소리는 아주 좋은데, 말투나 낱말이나 말결이나 말씨는 영 글러먹거나 아쉽게 어긋나 있기 일쑤입니다(깊으며 너른 넋을 펼치는 리영희 님 책조차 씁쓸하고 슬픈 말마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인데, 리영희 님이 배우며 살아오던 무렵에는 옳고 바른 말로 가르치는 틀이 없었고, 오늘날까지 이런 틀은 서지 못합니다). 말다운 말로 훌륭한 말씀을 펼치는 책이란 무척 드뭅니다. 그나마 어린이책은 어른책보다 낫지만 어린이책에 깃든 말마디는 몹시 두렵습니다. 아이가 차츰 커서 푸름이가 되고 어른이 될 무렵 스스로 쥐어들 책에 담길 말마디는 대단히 무섭습니다. 아이들은 이런저런 책에 어떤 말이 스몄는가는 제대로 느끼지 않으면서 알맹이만 받아먹을 테니까요. 때로는 알맹이는 받아먹지 못하면서 허울좋은 겉치레 말마디에 젖어들 테니까요.

 청소년범죄라는 이름이 붙지만 하나같이 어른범죄입니다. 어른이 저지르던 못된 짓을 아이들이 보고 따라합니다. 어른이 아름답게 살아갈 때에는 아이 또한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어른이 아름다우며 훌륭한 말을 하는데 아이가 엉터리 말을 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어른 스스로 돈바라기 삶에 매여 있는 동안 아이 또한 저절로 돈바라기 삶에 매입니다.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를 비롯해 ‘어린이 경제동화’가 수없이 쏟아집니다. 아이한테 ‘철학동화’이니 ‘과학동화’이니 하다가 바야흐로 ‘경제동화’ 판까지 나아갑니다. 그런데, 아이한테 철학동화이든 과학동화이든 경제동화이든 읽히려는 사람은 어른이고, 이런 책을 만들어 돈을 버는 사람 또한 어른입니다.

 가야 할 바른 길이 있습니다. 가야 할 고른 길이 있습니다. 가야 할 알맞은 길이 있습니다. 어른부터 먼저 책다운 책을 골라서 잘 읽어야겠습니다. 아이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아이가 커 갈 앞날이 아름답길 바란다면 어른이 꾸리는 삶부터 고치고 다듬고 매만지고 보듬어야 합니다. 어른이 하루하루 꾸리는 오늘부터 아름답게 가꾸면서 앞날을 차근차근 아름답게 가꾸려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어른부터 올곧게 살며 아름다움을 가꾸고 사랑하는 마음일 때에 비로소 아이한테 책 하나 알맞게 쥐어 줄 수 있습니다.

 좋은 책 만 권을 읽혀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그렇지만 좋은 책 만 권을 아이 머리속에만 가두어 둔다면, 만 권을 가둔들 십만 권을 가둔들 백만 권을 가둔들 아이가 무럭무럭 크지 못합니다. 머리속에는 백만 권 책이 들어 있으나 손과 다리와 가슴에는 아무것이 없다면 이 아이 앞날은 어찌 될까 모르겠습니다. 아니, 참 무섭습니다. 손으로는 아무 할 줄 아는 재주가 없는데 머리에는 책이 만 권이나 담아 놓은 아이라면 매우 무섭습니다.

 머리에 책 한 권조차 들어 있지 않지만 두 손과 두 다리와 자그마한 가슴에는 싱그러우며 튼튼한 빛줄기 하나 건사하는 아이라면 참말 반갑습니다. 눈부시도록 놀라우며 고맙습니다. (2003.3.5.처음 씀/2010.10.25.달.고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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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책을 사는 곳


 나한테 여느 책을 사는 곳은 헌책방. 온갖 책을 사는 곳 또한 헌책방. 새로 나오는 책을 사는 데는 명륜동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 문화책과 예술책을 살 때에는 혜화동 인문책방 〈이음책방〉. 만화책을 살 때에는 홍대 앞 〈한양문고〉. 예전에는 사진책을 늘 〈이음책방〉에서 샀는데, 이제 〈이음책방〉에서는 사진책을 예전처럼 많이 다루지는 않으니 어디에서 사야 할까. 사진책을 알뜰히 다루는 책방이 없으니 시골집에서 받아보도록 누리책방에서 사야 하나. 어쩌면 몇 갈래 책, 이들 인문사회과학이나 환경이나 문화나 만화를 다루는 책을 빼놓고 앞으로 누리책방 아니고서는 책을 살 길이 꽉 막혀 버릴는지 모른다. 더구나 인문사회과학이나 환경을 다루는 책이라 할지라도 자그마한 책방에서는 모두 갖추지 못한다(그래서 전화로 미리 주문을 해서 사야 하지). 사람들 스스로 즐거이 다리품 팔며 책방마실을 하는 맛과 멋이란 거의 모두 사라질는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책방마실 맛과 멋은 벌써 많이 사라지거나 없어졌을 뿐 아니라, 진작부터 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다리품 팔아 책을 살피고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내가 사서 읽을 책을 찾는 즐거움을 잊거나 잃었다. 지난날 사람들은 으레 단골 책방을 몇 군데씩 두었는데, 오늘날 사람들은 단골 책방을 몇 군데쯤 꼽을 수 있을까. 단골 새책방 몇 군데뿐 아니라 단골 헌책방 여러 군데를 으레 사귀며 살던 ‘책 사랑이’란 그예 자취를 감출 사람들일 뿐인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아닌, 동네에서 가볍게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는 가까운 단골 책방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책은 책방에서 사야 하는데, 이제 사람들은 겉보기는 책방이지만 이마트나 롯데마트와 마찬가지인 커다란 ‘할인매장’ 같은 ‘독점 대형 창고’에서 더 값싼 물건을 골라 버리고 만다. (4343.10.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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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사람과 책읽기


 아픈 사람과 안 아픈 사람이 있습니다. 아픈 사람 가운데에는 더 아픈 사람과 덜 아픈 사람이 있어요. 안 아픈 사람 가운데에는 아플 수 있는 사람하고 끝까지 안 아플 수 있는 사람이 있고요. 다 다른 사람한테 꼭 같이 말하며 몸을 다스리라 할 수는 없습니다. 아주 튼튼한 사람을 쓰러뜨린 아픔을 다스려 씻는 길하고 몹시 여린 사람한테 찾아든 아픔을 다스려 씻는 길은 무척 다르겠지요. 아픔 씻는 길이 사람마다 다른데, 책을 읽는 길이 사람마다 비슷할 수조차 있을까요. 가난한 사람을 돕는 길이란, 여느 살림집을 허물고 다시 짓는다는(재개발) 정책이 나아갈 길이란, 배움터라는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길이란, 얼마나 똑같이 헤아리며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책은 섣불리 ‘읽으라 시킬’ 수 없고 ‘읽으라 이끌’ 수 없으며 ‘읽으라 떠민’다든지 ‘읽으라 부추길’ 수 없습니다. 다만, 사람마다 다른 삶과 넋과 말을 헤아리며 책 하나 건네면 어느 만큼 책이야기 나눌 수 있겠지요. (4343.10.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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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철에서 책읽기 2


 송명규 님이 쓴 산문책 《후투티를 기다리며》(따님,2010)를 읽다가 126쪽에서 멈춘다. “가방을 팽개치고 허겁지겁 차 속에서 쌍안경을 꺼내들었다. 렌즈 한켠에 달걀처럼 생긴 검은 물체가 아른가렸다. 떨리는 두 손을 진정시키며 가까스로 초점을 맞췄다. ……. 부엉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지에 걸린 채 햇빛을 반사하며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까만 비닐봉지였다. 나는 무엇에 얻어맞은 듯 한참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내가 사는 시대를 착각했다. 나는 현대인이다. 그리고 현대는 미루나무에 부엉이 대신 비닐봉지가 앉아 있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다.”라는 대목을 두 번 세 번 네 번 거듭 되읽는다. 고개를 그리 끄덕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 이 땅 모습이다. 틀림없이 우리 삶자락 이야기이다.

 오늘 이대 앞에서 지하철을 타는데 코를 찌르고 살을 후벼파는 냄새가 잔뜩 나서 도무지 숨을 쉴 수 없다. 바깥은 그지없이 하늘 파랗고 구름 하얀데, 지하철역으로 들어서니 온통 불빛이요, 눈이 어두워지고 만다. 새삼스레 이 도시 서울을 생각한다. 우리는 왜 땅밑으로 내려가야 하는가. 왜 이 땅밑 기차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가. 우리한테 얼마나 넓은 땅이 있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앞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넓게 나다니며 사람을 사귀거나 다른 마을 구경을 해야 하는가. 내 조그마한 보금자리와 삶터를 조촐히 사랑하며 아낄 수는 없는가. 지하철을 타며 책을 읽으면 ‘시간 살리기’라 여겨 왔는데, 굳이 지하철까지 타야 하거나 책까지 챙겨 읽어야 하느냐 싶다.

 맑은 햇살을 받아들이며 빨래를 해서 널고, 이 햇살을 아이와 옆지기랑 느끼며 산길을 천천히 오르내릴 때에 한결 기쁘며 뿌듯하겠구나. 얼굴과 손발이 푸석해지고 목이 마르다. 오늘이 한글날이라고 한다. (4343.10.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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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신문


 광벌로 가는 시골버스를 기다리며 음성읍사무소에서 충북 신문들을 훑다. 운동경기 소식을 아예 안 싣는 신문이 여럿 된다. 운동경기 소식을 싣더라도 방송편성표하고 주식시세표를 안 싣는 신문이 꽤 많다. 어쩌면 충북 쪽 신문들은 이 세 가지를 거의 안 다루거나 다루더라도 아주 작게 다룬다고 할 만하다. 생각해 보면, 시골사람한테는 박지성이나 추신수나 김연아나 추성훈이나 …… 여자축구나 …… 거의 부질없는 얘기이다. 이런 얘기까지 시골신문이나 지역신문이 다룰 까닭이 없다. 시골신문이나 지역신문이라면, 시골사람 삶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와 지역 살림살이와 자연 터전을 보듬는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을 노릇이다. 그러나 충북 신문들은 시골사람 삶이나 지역 살림살이 이야기보다는 지역 정치꾼과 지역 공무원 이야기로 가득하다. (4343.10.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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