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잘 읽어 주는 사람


 책을 잘 읽어 주는 사람은 꼭 있다. 사진을 잘 헤아리는 사람 또한 반드시 있다. 그리고, 책을 잘 못 읽거나 사진을 엉뚱하게 헤아리는 사람은 늘 있다.

 내가 쓴 글을 잘 읽어 주기에 이이를 고맙게 여겨야 하는가. 내가 찍은 사진을 옳게 헤아리기에 이녁을 살가이 마주해야 하는가. 내가 쓴 글을 잘 못 읽었기에 이이를 불쌍히 생각해야 하는가. 내가 찍은 사진을 엉터리로 살피기에 이녁하고 등을 돌려야 하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살아온 결에 따라 사람을 본다. 머리에 든 지식으로 사람을 보려 한다면, 이 사람은 그동안 지식을 머리에 가득가득 쌓는 삶을 꾸렸다는 소리이다. 주머니에 든 돈으로 사람을 재려 한다면, 이 사람은 이제껏 주머니에 돈을 그득그득 채우는 삶을 일구었다는 뜻이다.

 스스로 살아가는 매무새가 아닌 매무새로 사람을 맞이하거나 마주하거나 맞아들이지 못한다. 스스로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착하게 이웃이나 동무를 사귄다. 스스로 올바로 살아가는 사람은 올바르게 이웃이나 동무를 사귄다. 스스로 참다이 살아가는 사람은 참답게 이웃이나 동무를 사귄다.

 사람은 삶으로 보아야지 얼굴이나 몸매나 옷차림으로 볼 수 없다. 사람은 사랑으로 만나야지 주먹이나 주머니나 주민등록증으로 볼 수 없다. 사람은 그저 사람으로 사귄다. 사람 아닌 이름값으로 사귈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이름값으로 사람을 사귈 때에는 나한테 다가오는 사람 또한 이름값으로 다가올밖에 없다. 나부터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나한테 다가오는 사람이 다르다.

 내가 읽는 글이나 책이란 내가 즐기며 좋아하는 삶에 걸맞는 글이나 책이다. 훌륭하다는 책이나 거룩하다는 책이나 아름답다는 책이 아니라, 내가 즐기며 좋아하는 삶에 걸맞게 내가 읽을 글이나 책을 고르기 마련이다. 온누리에는 훌륭한 책이나 거룩한 책이나 아름다운 책은 없다. 즐기는 책과 좋아하는 책과 사랑하는 책이 있을 뿐이다.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고 싶은 길대로,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오늘 하루대로, 누구나 스스로 꿈꾸거나 바라는 모양대로, 책 하나 골라서 장만하여 읽는다.

 글이나 책을 잘 읽어 주는 사람은 글이나 책에 앞서 사람을 잘 읽어 주고 사랑과 삶을 잘 읽어 주는 사람이다. 글이나 책을 잘 못 읽어 주는 사람이라면, 글이나 책에 앞서 사람과 사랑과 삶을 잘 못 읽어 주는 사람이다.

 마음이 맞는 벗이 고맙고, 나 스스로 마음이 맞는 좋은 벗으로 살아가고 싶다. 마음을 읽는 사람이 사랑스럽고, 나부터 마음을 읽는 사람으로서 사랑스럽고 싶다. 그렇지만 참 어수룩하다. 참 어수룩하니까 꿈을 꾸고, 꿈을 꾸는 대로 살아간다. (4344.2.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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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꿈치와 책읽기


 요사이 오른팔꿈치가 새삼스레 다시 저리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오른팔꿈치인데, 요사이 오른팔을 쓸 일이 많았을까. 아니면 몸이 힘들기에 오른팔꿈치도 다시금 찌릿찌릿 저리는가. 병원에 가 보면 금세 나을 오른팔꿈치일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병원에 간다 한들 달라질 수 없는 오른팔꿈치일는지 모른다. 그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죽 안고 지내야 할 내 팔꿈치이고, 더 다치거나 도지지 않도록 알뜰히 건사해야 할 테지. 그런데 둘째를 낳아 두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할 때면 이 팔꿈치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이를 안거나 업는다 해서 팔꿈치가 저리지는 않는다. 아마 손빨래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만, 손빨래를 안 한대서 오른팔꿈치가 좋아질 수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도서관 책을 나르거나 옮기거나 갈무리하지 않는대서 이 팔꿈치가 나아지겠는가. 사진기를 쥐지 않거나 글을 안 쓴다면 이 팔꿈치가 안 아플 수 있겠는가.

 아프니까 아픈 채 살아간다. 고단하니 고단한 채 지낸다.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산다. 그렇지만 배고프면 살기 어려우니까 밥을 먹으려 애쓰고, 끼니를 이으려 용을 쓴다. 아픈 데는 틈틈이 주물러 주고, 아픈 옆지기 또한 틈틈이 몸 곳곳을 주물러 주면서, 집안을 조금이나마 치워야 한다. 몸이 고단하거나 지치더라도 아이하고 놀아 주거나 아이한테 그림책 읽는 틈을 내어야 한다.

 날마다 이래저래 밀리거나 쌓이는 일이 많다. 날마다 조금이기는 하고 모자라기는 하나 이럭저럭 하는 일도 있다. 밀리는 일이라 해서 서운해 할 까닭이 없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내 걸음걸이대로 걸어가면 된다.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못한다. 할 수 있으니 꾸준히 하고, 할 수 없으니 손을 놓을는지 모르지만, 할 수 없더라도 조금은 건드려 본다. 하다가 안 되기에 도와주면 고맙겠다는 말을 꺼내고, 할 수 없기에 해 달라고 비손을 한다.

 내 몸 팔꿈치가 오롯하거나 튼튼하기만 하다면 내 삶은 어떠했을까. 몸 여러 곳이 쑤시고 결리며 저리지만, 이렇게 몸 곳곳에서 아픈 소리를 내니까 서툰 꿈을 덜 꿀 수 있지 않느냐고 여긴다. 몸 곳곳에서 아픈 소리를 내니, 나보다 힘들 옆지기가 둘째를 더욱 사랑스레 보듬도록 옆에서 북돋우지 못하지만, 내 몸이 한결 튼튼했다면, 아픈 사람 아픈 몸이나 마음을 더 못 느끼거나 안 느낀 채 집 바깥으로만 맴돌려고 했으리라 본다. 팔꿈치가 아프니 멧골집에 고맙게 머물면서 이제껏 그러모은 책을 되읽고 다시 읽는다. (4344.2.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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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 어머니와 책읽기


 맹자 어머니는 맹자를 가르치려고 집을 세 차례 옮겼다고 한다. 아무 데에서나 살아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이를 생각할 때에 좋은 터전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옛이야기를 으레 다 안다고 하지만, 막상 이렇게 아는 대로 움직이거나 살아가는 사람은 뜻밖에 매우 적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왜 살아가는가? 도시가 아주 아름답거나 훌륭하거나 깨끗하거나 살갑기 때문에 이곳에서 살아가는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까닭은, 첫째 돈벌이를 할 구멍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둘째, 문화며 제도며 시설이며 많아서 손쉽게 이것저것 누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셋째, 어디로든 오가기 좋기 때문이 아닌가.

 물이 깨끗하지 못하며, 바람이 시원하지 않은데다가, 햇볕을 따사로이 쬘 수 없는 도시이다. 여름에는 너무 춥고, 겨울에는 너무 더운 도시이다. 매캐한 차방귀며, 숨막힐듯 넘치는 사람물결에, 지나치게 많은 아이들이 좁은 곳에 우글우글 몰려서 마음껏 뛰놀거나 배우기 힘든 학교만 있는 도시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안 저절로 남과 겨룰밖에 없고, 밤과 낮을 잊을밖에 없으며, 그토록 많은 사람물결이라지만 외로운 섬처럼 동떨어진다.

 경찰이나 군대가 우리 마을을 지켜 줄까. 자물쇠와 첨단경비장치가 우리 집을 지켜 주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시의원이 우리 살림을 지켜 주겠나.

 사람들 스스로 내 목숨을 참다이 사랑하며 내 이웃을 착하게 아끼는 길을 찾지 않기 때문에, 책다운 책은 옳고 바르게 읽히기 힘들다. 환경이 이토록 엉망진창으로 망가지지만 막상 환경책은 안 읽힐 뿐 아니라, 돈바라기 출판사 돈바라기 껍데기 환경책만 쏠쏠히 팔린다. 사람들 스스로 환경을 살피지 않으며 돈을 좇는 도시에서 삶터를 붙잡기 때문이다.

 맹자 어머니가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에서 살아가고 싶을까. 맹자 어머니가 서울 강아랫마을 같은 데에 제 보배로운 아이를 데리고 살자고 하겠는가. 맹자 어머니는 당신 아이를 데리고 어떠한 터전을 찾아나서겠는가. 마음붙이 동무는 내가 오래오래 살던 곳에만 있지 않다. 마음붙이 마을은 내가 오래오래 살던 곳이기만 하지 않다. 마음붙이 일감은 도시에만 있을 수 없다.

 책을 읽으려면 책을 읽을 만한 데에서 일하고 놀며 살아야 한다. 책을 읽어 가슴으로 새기자면 내 살림살이를 알차며 아름다이 일굴 만한 데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 책사랑이 되자면 삶사랑 사람사랑 목숨사랑 흙사랑 하늘사랑 물사랑 바람사랑이 될 만한 보금자리와 터전과 마을을 얼싸안아야 한다. (4344.2.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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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문을 넓히는 책읽기


 나라밖으로 마실을 다녀와야 ‘보고 들어’ 배우는 대목이 많다고 여긴다. 그러나, 나라안에서 살아가며 돌아다니는 동안 ‘보고 듣는’ 대목을 옳고 바르게 헤아리면서 삭이지 못한다면, 나라밖에서 오래 지내거나 돌아다닌다 할지라도 무엇 하나 못 느끼고 못 배운다. 어디에서 누구한테서나 ‘보고 들으면’서 배울 수 있는 사람이다.

 훌륭하다는 인문책과 사회과학책을 한참 들여다보며 삶과 사람과 삶터를 배우는 대목이 많다고 여긴다. 그러나, 어린이책과 그림책과 문학책을 찬찬히 읽으며 삶과 사람과 삶터를 배우지 못한다면, 훌륭하다는 인문책이나 사회과학책을 아무리 오래도록 많이 들여다보았다 할지라도 무엇 하나 알뜰히 느끼거나 삭이지 못한다. 어느 책이나 어떠한 이야기나 삶과 사람과 삶터를 보여주거나 밝힌다. (4344.2.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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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만큼이나 책읽기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지만, 막상 이 시를 쓴 이원수 님 어린이문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어린이문학이기 때문에 어린이일 때에만 읽히고 지나친다든지, 어린이 아닌 사람은 읽거나 말하거나 아로새길 만하다고는 여기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첫째 아이를 함께 낳아 키우면서, 아이한테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장 위에서도 맨발로 서서 아장아장 귀여운 물오리들아. 나도 이제 찬바람 두렵지 않다.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 같은 노래를 곧잘 불러 줍니다.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이 돌아가시기 앞서 마지막으로 쓴 시 〈겨울 물오리〉입니다. 나는 이 노래를 불러 주면서, 노래는 노래로 잘 짓기도 했으나, 노래에 앞서 시부터 훌륭하기 때문에 이토록 고운 노래가 태어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이 노래를 알 만한 어른이라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머니이곤 합니다. 아이를 함께 낳아 함께 키우는 아버지는 이 노래를 잘 모를 뿐더러, 이 시조차 거의 모릅니다. 아마 아버지 가운데 어린 날 이원수 님 문학을 살가이 마주하거나 즐긴 분은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오늘날이라 해서 이원수 님 문학을 읽히기는 만만하지 않다고도 느낍니다. 왜냐하면, 어린 날 이원수 님 문학을 제대로 맛보거나 즐기지 못한 어른이 아이를 낳는달지라도 아이한테 무슨 책을 읽혀야 좋을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아이만 낳는다고 아이한테 어린이책을 쥐어 주지 못합니다. 어버이 스스로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책을 살가이 마주하는 가운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에는 아이 눈높이로 삶과 사람과 사랑을 볼 줄 알아야 비로소 이원수 님 문학책을 비롯한 아름다운 어린이문학을 찾아나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짝꿍이랑 사귀는 이라면, 사랑하는 짝꿍이 좋아하는 갈래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선뜻 다가서지는 못할지라도 짝꿍이 좋아하는 갈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때가 잦으며, 짝꿍하고 나눌 이야기란 짝꿍이 좋아하는 삶을 조곤조곤 갈무리하는 이야기입니다.

 내 늙은 아버지나 어머니하고 이야기꽃을 피우자면, 내 늙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좋아하는 삶과 얽힌 이야기를 꺼내야 합니다. 나 혼자만 좋아하는 이야기를 꺼낸다면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마음을 살뜰히 쓰고, 생각을 알뜰히 기울여야 합니다. 살섞기와 입맞춤도 사랑이지만, 사랑은 살섞기와 입맞춤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읽기가 되어야 사랑이며, 삶읽기와 사람읽기를 찬찬히 이어갈 때에 비로소 사랑입니다. 내 짝꿍 사랑이 어떠한가를 읽지 못하고, 내 짝꿍 삶을 읽지 못하며, 내 짝꿍이 어떠한 사람이요 내 짝꿍 둘레를 이루어 온 숱한 사람들을 읽지 못한다면 사랑이 되지 못합니다.

 책 하나를 읽자면 깊이 아끼며 돌볼 줄 알아야 합니다. 글쓴이 한 사람을 헤아리자면 이이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소리가 아니라, 이이가 쓴 글과 내놓은 열매와 걸어간 삶을 차분하며 올바로 바라보는 눈결과 손길을 살펴야 합니다. 틀에 박힌 눈이 아니요, 내 틀에 갇힌 눈이 아니며, 내가 마주한 글쓴이 한 사람이 어디에서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랑과 꿈으로 삶을 일구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책읽기를 어느 만큼 하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학교에 다니고 회사에 다니며 보금자리 살림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어느 만큼 책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사랑읽기 꿈읽기를 하는 한 사람인가요. (4344.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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