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를 이어가는 삶


 많이 알고 있어도 고개숙이고, 거의 모두 알아챘다 해도 허리숙이며, 아마 모조리 안다 할지라도 눈을 감고 귀를 열어 내 모자람을 더 깊이 살피는 가운데 살아갈 수 있으면, 책마다 조곤조곤 살가이 말문을 열며 다가오는구나 싶어요. (4343.10.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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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철에서 책읽기 3


 사진을 찾으러 인천으로 온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지역 사진쟁이한테서 작품을 사는 미술은행을 연다고 하기에 나도 작품을 내놓아 보았다. 작품과 함께 ‘포트폴리오’라는 녀석을 A3크기 파일에 담아서 내라고 했기에, 골목 사진 가운데 80점을 추려 두 권을 만들어 냈다. 이제 이 사진첩을 도로 가져가야 하는 터라 모처럼 인천 마실을 한다. 문화재단에서 착불 택배로 돌려주면 좋으련만, 이곳 사람들은 할 일이 많으니까 작품을 낼 때에도 몸소 찾아가서 내도록 하고, 작품을 돌려받을 때에도 몸소 찾아가서 받도록 한다.

 공모에 붙었다면 인천마실이 한결 홀가분했을 테지. 공모에 붙지 않았으니 무거운 사진첩을 돌려받으러 가는 길이 마뜩하지 않다. 그러나 내 사진 80점을 그냥 둘 수 없는 노릇이다. A3 크기로 사진을 80점 만들자면 돈이 얼마인데. 생각해 보면, 작품을 산다 할 때에 문화재단에서 먼저 나서서 작품을 살 테니 몇 점 내놓으시오 하고 말해야 옳지 않나 싶다. 사진쟁이 스스로 ‘나는 이런저런 작품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하고 보여주기 앞서 문화재단 일꾼이 알아보고 찾아와야 할 노릇이 아닌가 싶다. 참말 지역 작가를 돕고 싶다면, 지역 작가를 문화재단이 꼼꼼히 알아보고 살피면서 돕는 길을 헤아려야 할 노릇이라고 느낀다. ‘포트폴리오’를 하나 만들 때에 돈이 얼마인데. 품이 얼마인데. 땀이 얼마인데.

 그러나 내가 섣불리 헛꿈을 꾸었으니까, 배부른 김치국을 마셨으니까, 나중에 가서 이런 말이나 하는 셈일는지 모른다. 그래, 내가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동안 내 땀을 들여 찍은 사진을 내가 고이 여기며 사랑하고 싶어, 이 사진을 돌려받으려고 인천으로 마실을 나왔고, 마실을 나오는 김에 가을녘 골목 삶터를 사진으로 담으려 한다. 쪼들리는 살림에 보태려는 헛마음을 품지 말자. 나 스스로 좋은 내 사진을 즐겁게 찍기만 하자. 이런저런 공모에 어설피 내놓지 말자. 내 골목 사진을 좋아하는 골목 이웃한테 거저로 나누어 주는 일을 다시금 조용히 이어가자.

 어제 낮에 부랴부랴 서울로 오고, 서울에서 헌책방 두 군데와 만화가게 한 군데를 들렀다. 책값으로 30만 원을 알뜰히 썼고, 가방이 미어터져 헌책방 일꾼한테 택배를 한 상자 맡기고 밤 전철을 타고 인천에 와서 여관에 묵는다. 고단한 하루인 터라 전철에서 내내 서서 오는 동안 더 고단한데, 만화책 한 권을 꺼내어 읽으며 고단함을 잊는다. 오자와 마리 님이 새로 내놓은 만화 《이치고다 씨 이야기》(학산문화사,2010) 1권을 읽는다. 오자와 마리 님 새 작품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가. 《PONG PONG》 세 권 다음으로 《민들레 솜털》이 나왔는데, 《민들레 솜털》은 2권까지 번역된 뒤로 3권이 아직 번역이 안 되었다. 어쩌면 일본에서도 3권이 아직 안 나왔으니 번역을 안 할는지 모르지. 그렇지만 오자와 마리 님 만화는 썩 사랑받지 못한다. 찾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고 느낀다.

 전철에서 책을 읽는다. 전철에서 구석에 서서 홀로 싱긋빙긋 웃으며 만화책을 읽는다. 고단함을 잊고 시끄러움을 잊으며 만화책을 읽는다. 다리가 아픈 줄 잊으며 만화책을 읽고, 시골집에서 아이랑 아이 엄마랑 힘겨이 복닥이는 줄 잊으며 만화책을 읽는다. 내 가방에는 시골집 딸아이랑 함께 읽을 그림책이 잔뜩 들었다. 헌책방에서 택배를 맡길 때에 딸아이랑 함께 읽을 그림책은 하나도 안 넣었다. 그림책은 모조리 내 가방에 넣어 질끈 짊어지고 돌아갈 생각이다. 아빠를 기다리는 딸아이한테 곧바로 보여주고 싶어, 어깨가 무겁고 등허리가 휘지만 열 몇 권 장만한 그림책은 기꺼이 짊어지고 돌아가려 한다. 그러니까 골목마실을 하는 동안에도 이 책은 고스란히 짊어질 노릇이다. 종아리와 허벅지에는 알이 배기면서 딸아이와 함께 즐길 그림책을 들고 다녀야 한다.

 무거운 가방을 들쳐메고 골목을 몇 시간 걷자면 참 힘들겠지. 그렇지만 뭐 어떠랴. 어깨를 누르는 무게를 기쁘게 느끼면서 사뿐사뿐 거닐고 나긋나긋 사진을 찍어야지. 시골로 돌아가는 길에는 고속버스가 아닌 무궁화 기차를 타고 싶다. (4343.10.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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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0-29 08:31   좋아요 0 | URL
인천사는 분이야 왔다갔다 할수 있지만 지방 사는 분한테는 좀 너무한 처사군요.문화재단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인가 보지요.마치 공무원 같네요 ㅜ.ㅜ

숲노래 2010-10-29 08:59   좋아요 0 | URL
'인천 출신 작가'도 문화재단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인천 무대를 소재로 하는 작가'도 지원을 받는데, 이런저런 '마음씀'이란 따로 없답니다 ^^;;;

어차피 공무원이니까요... 어쩌면 '공평'한 노릇이라 할는지 모르지요...
 


 아이한테 책 읽히기 2


 아이한테 책을 읽힙니다. 책을 읽어 주다가 그만 숨이 막힙니다. 글 몇 줄이 고작인 그림책에 적힌 글월이 하나같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어쩜 이 한두 줄조차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마구 써갈기는지 궁금합니다. 창작이든 번역이든 골이 아픕니다. 낱말 하나 이렇게 못 고르는지 슬픕니다. 말투 하나 이렇게 못 가다듬는지 괴롭습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히며 책에 적힌 글이 아닌 다른 글을 읽습니다. 책에 적힌 글을 그때그때 다듬거나 고쳐서 새로 읽습니다. 엉터리 말투는 바로잡고 얄궂은 낱말은 손질해서 읽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마저도 고달파 아예 글은 집어치웁니다. 그림만 놓고 새 이야기를 짜서 들려줍니다. 이럴 바에는 한글로 된 그림책이 아닌 외국말로 된 그림책을 읽힐 때가 차라리 낫습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히다가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아이한테 읽힐 만한 괜찮다 싶은 그림책은 하나같이 ‘나라밖 좋은 그림책 번역’이기 일쑤입니다. ‘나라안 좋은 그림책 창작’은 몇 가지 손꼽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무슨무슨 모임에서 손꼽는 괜찮다 싶은 책일지라도 그림결이라든지 줄거리라든지 말마디라든지 티와 모자람과 아쉬움이 자꾸자꾸 보입니다. 나라밖 좋은 그림책처럼 부드러우면서 따사로운 얼과 넉넉하면서 사랑스러운 넋을 나라안 창작책에서는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혀야 할까 망설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아이한테 책을 읽히기 어렵지 않나 싶어 근심스럽습니다. 문득, 아이 엄마가 뜨개질을 하는 모습이야말로 아이한테는 좋은 ‘책 읽히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골로 옮겨서 지내는 살림집은 씻는방이 너무 작아 아이랑 함께 들어가서 빨래를 하지 못합니다. 조금 넉넉하게 크다면 아빠가 빨래를 하는 동안 아이는 곁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빨래하기를 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인천 골목동네 살림집에서 지낼 때에는 씻는방이 꽤 넓어 아이는 언제나 아빠 곁에서 빨래하기를 보고 배우며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아이는 아빠하고 엄마랑 헌책방마실을 함께하면서 책읽기를 스스로 익히고, 아빠하고 엄마랑 골목마실을 함께하면서 사진찍기를 저절로 배웁니다. 집에서 빗자루와 걸레로 쓸고닦는 동안 아이는 빗자루와 걸레로 쓸고닦기를 익힙니다. 집에서 엄마하고 아빠랑 밥을 하면 곁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며 배우고 싶어 합니다.

 아이한테는 책을 읽힌다기보다 삶을 읽힌다고 느낍니다. 아이를 처음 낳을 때부터 아이가 스물일곱 달을 지나는 요즈막까지, 아이한테는 ‘책 읽히기’가 아닌 ‘삶 읽히기’라고 느낍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인 저로서는 ‘책읽기’가 아닌 ‘삶읽기’라고 느낍니다. 삶이 있어야 죽이든 밥이든 있습니다. (4343.10.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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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한테 책 읽히기 1


 아버지나 어머니가 저한테 책을 읽어 준 일은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그러나 모르는 노릇입니다. 제가 떠올리지 못할 뿐, 제 나이 두어 살이나 서너 살 적에 그림책이든 글책이든 알뜰히 읽어 주셨을 수 있어요.

 아버지나 어머니가 책을 넉넉히 사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고작 전집책 몇 가지 사 주셨을 텐데, 얘기를 들어 보면, 그나마 싸구려 전집책 한두 질조차 사 주지 못한 집이 많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사였으니 그무렵 이만큼이나마 있던 셈이라 하겠습니다. 그무렵 교사 가운데 집에 책 없는 사람이 꽤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원수 님 동시책이나 동화책 하나 없던 일이란, 이제 와 돌이키면 참 슬픈 일입니다. 배부른 소리일 수 있겠는데.

 요즘은 참말 책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알짜가 될 만한 책’까지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찌 되었든 책이 참으로 많습니다. 좋든 나쁘든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책은 대단히 많습니다.

 그러면 이 많은 책에는 무슨 이야기가 어떻게 담겼을까요.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 어른인 우리가 읽을 만한 책에는 어떤 줄거리가 담겼을까요.

 책읽기를 좋아하는 저입니다만, 책보다 더 즐거워하는 이야기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저마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살면서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 같은 이야기가 더 반갑고 재미있으며 신납니다.

 그래, 저는 사람들과 만나 ‘책 이야기’ 나누는 일이 즐거운 한편, ‘서로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나눌 때 아주 즐겁습니다. 저는 아직 아이를 낳아서 기르지는 않고 있는데, 제가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면, 또 제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를 가르치는 자리에 선다면, ‘책 읽어 주기’는 가끔 하거나 아예 안 하고 싶으며, 제가 살아온 이야기하고 제가 아이들 나이였을 때 무엇을 하면서 놀고 배우며 동무를 사귀어 이 땅을 부대겼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2006.8.1.불.처음 씀/2010.10.25.달.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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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히기 2


 책을 좋아합니다. 책을 즐겨읽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좋은 책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라고는 할 수 없으나, 조용히 신문배달 일꾼으로 살아가려 했으나 책 만드는 일꾼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함께 신문배달 일꾼으로 살아가는 형들이 지나치게 게을러터져 도무지 함께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일으키는 배달사고 전화를 받다가 지치고, 새벽에 깨우고 깨워도 안 일어나는 형들을 깨우다가 지쳤습니다. 때마침 제가 돌리는 신문에 실리는 글이 자꾸 어그러지며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나는 기자가 아닌 신문배달 일꾼일 뿐인데 신문값 거두러 달마다 집집을 돌아다니다 보면 독자들은 기자가 아닌 배달 일꾼한테 된소리 쓴소리 막소리를 퍼붓습니다. 나보고 어쩌라고. 난 그저 이 신문을 돌리는 삼천 일꾼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따져야 한다면 이 따위 글을 갈겨써서 신문에 버젓이 찍어 내놓은 기자들한테 전화를 걸어 따져야지.

 돌이켜보면 내 어버이 사는 집에서 뛰쳐나왔기에 신문배달 일꾼이 되었습니다. 신문배달 일꾼으로 함께 지내던 형들이 더없이 게으르게 살아갔기에 이 자리에서 뛰쳐나와 책마을 일꾼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와 같이 살아온 내 이야기를 책삶으로 이어 이야기 한 자락 쓰는 사람으로 지냅니다.

 책만 읽다가 책을 만들다가 책으로 엮일 글을 쓰면서 생각합니다. 책만 읽을 때에는 다 만들어진 책에 실린 그대로 읽습니다. 책을 만들 때에는 사람들한테 무엇을 읽혀야 할까를 헤아리며 낱말 하나 토씨 하나 매만집니다. 책으로 엮을 글을 쓸 때에는 내가 털어놓아야 할 내 삶이 무엇인가를 차분히 되새깁니다.

 누구나 책을 쓸 수 없으나, 누구나 책을 쓸 수 있습니다. 모든 글이 책으로 태어나지 않으나, 모든 글은 책으로 태어날 만합니다. 책읽기에서 책만들기를 거쳐 책쓰기로 오는 동안, 일기쓰기가 왜 뜻있고 값있는가를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일기를 안 쓰면 담임교사가 흠씬 두들겨패며 꾸짖다가는 윽박지르니까 억지로 칸을 채웠어요. 일기를 쓰는 맛과 멋은커녕 재미조차 없던 여섯 해였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달리 돌아보곤 합니다. 억지로 써야 하는 글을 써 보았기에, 내 이웃이나 내 벗이나 내 뒷사람한테 ‘글을 억지로 쓰지 마셔요. 힘들고 따분해요.’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을 죽은 듯이 밟혀 지냈기 때문에 젊거나 어린 사내들한테 ‘군대라는 곳에 일부러 가지 마셔요. 우리는 군대가 아닌 평화를 찾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는 이야기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

 그저 책읽기가 좋던 때에는 좋은 책을 사람들이 널리 많이 읽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때에는 좋은 책이라면 잘 팔리는 책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고, 높은 등수에 드는 책이라면 좋은 책이 될 만한 까닭이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책만들기를 하면서 잘 팔리는 책이 한결같이 좋은 책이 아니라고 깨닫고, 때로는 잘 팔리는 책 모두 좋은 책하고는 동떨어지기까지 한다고 깨닫습니다. 책한테 매기는 등수가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비로소 알아차립니다. 사람한테 등수를 매길 수 없듯 책한테 등수를 매길 수 없습니다. 학교한테든 나라한테든 겨레한테든 짐승한테든 등수를 매길 수 없습니다. 책쓰기를 하는 자리까지 오면서, ‘좋은 책 = 잘 팔리는 책’이란 생각은 싹 집어치울 뿐 아니라, 이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니 나도 참 철딱서니없는 바보였다고 깨닫습니다. 한 사람이 읽는 책 하나만큼 소담스러운 책이란 없습니다. 한 사람을 바라보면서 쓰는 책이고 만드는 책이며 읽는 책입니다.

 책 한 권 변변하게 읽지 않는 우리 어머니가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책 한 권 마땅하게 읽지 못하는 이웃 아주머니가 그지없이 곧바릅니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을 겨를 없는 동네 농사꾼 할배가 가없이 훌륭합니다. 책 많이 읽는 저보다 한결 곧바르며 아름답고 훌륭합니다.

 《100만 번 산 고양이》에 나오는 고양이는 100만 번을 살았지만 몸소 겪은 일이란 없습니다. 그저 100만 번을 살았을 뿐입니다. 드디어 100만 번째로 살 무렵에 처음으로 ‘한 가지 일을 겪’습니다.

 이 고양이한테는 백만째 삶에 이르러야 ‘삶을 겪’는, 그러니까 ‘삶을 품에 안’는, ‘삶을 껴안’는 셈입니다. 책을 만 권 읽든 십만 권 읽든 백만 권 읽든 삶을 겪지 못한다면, 삶으로 품에 안지 않는다면, 삶으로 껴안지 않는다면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100만 번 산 고양이》하고 똑같아요. 100만 번을 살아도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느끼지 못하는 고양이처럼, 100만 권째 책을 읽어도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슬픈가요.

 우리는 책만 읽고 살 수는 없습니다. 책을 먹으며 살 수도 없습니다. 일을 하고 놀이를 하며 삶을 꾸리는 사람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책도 읽습니다. 일을 하고 놀이를 하며 삶을 꾸리는 가운데 사랑을 나누고 사람을 사귀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땅을 일구고 곡식을 갈무리하며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며 이부자리를 개고 빨래를 하며 아이를 낳고 돌보며 하루하루 삶을 꾸립니다. 이처럼 삶을 꾸리는 가운데 책이 있고 노래가 있으며 그림이 있습니다.

 누구나 책에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면서도 사람살이를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셔요. 우리들이 일구는 삶처럼 책답고 연속극다운 이야기가 또 어디에 있는가요. 우리들이 겪고 부대끼며 부딪히는 온갖 이야기와 일이 바로 ‘책’이 된답니다. 책에 담는 이야기란 바로 우리 삶이랍니다.

 재미와 즐거움, 슬픔과 아픔, 앎과 슬기란 어디 먼 나라가 아닌 가장 가까운 내 삶에서 비롯합니다. 바로 이 삶에서 책이 나옵니다. 삶 없는 책은 없습니다. 아니, 요새는 삶 없는 책이 많더군요. 삶 없이 돈만 있는 책이 참말 많아요.

 책 없는 삶은 있습니다. 노래 없는 삶도 있고, 사진이든 그림이든 연극이든 영화이든 없는 삶 또한 있어요. 삶이 있기에 책이든 노래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연극이든 영화이든 있습니다. 삶에서 비롯하는 모든 문화요 예술이며 교육이고 정치랑 사회랑 경제입니다.

 들판에 목숨이 있습니다. 숲속에 바람이 지나갑니다. 하늘에 구름이 흐릅니다. 깊은 밤에 달과 별이 있습니다. 한낮에 해맑고 따사로운 햇살이 있습니다.

 저는 헌책방을 자주 다니며 책을 만납니다. 헌책방을 바지런히 다니며 책을 꽤 많이 만나는데, 책만 만나는 일이란 없습니다. 헌책방 일꾼도 만나고 헌책방을 찾는 다른 책손도 만납니다. 헌책방 가는 길에 숱한 사람과 부대낍니다. 헌책방에서 마주하는 책을 펼칠 때에 이 책하고 얽힌 갖가지 이야기하고 만납니다. 오랜 나날 묵은 책을 들추며 오랜 나날에 걸쳐 어떤 삶이 이 책 하나에 녹아들었는가를 되새깁니다.

 책도 책이지만 책한테만 박히기보다 책 안팎을 오가며 사람 삶을 느끼고 나 스스로 꾸릴 삶을 헤아리고 싶습니다. 책을 읽히기보다 삶을 읽히고 싶습니다. 내 고마운 벗님한테랑, 또 내 사랑스러운 살붙이한테랑, 좋다고 하는 책을 읽혀도 나쁘지는 않다지만, 좋다고 할 만한 삶을 읽히며 어깨동무하고 싶습니다. 책이란, 알뜰히 잘 끓인 국에 한 방울 똑 떨어뜨리는 ‘생협 유기농’ 참기름입니다. (2003.10.20.처음 씀/2010.10.25.달.고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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