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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영웅 ㅣ 베틀북 그림책 31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이정선 옮김 / 베틀북 / 2011년 8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5
누가 ‘참다운’ 영웅이고, 누가 ‘거짓쟁이’일까?
― 진짜 영웅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이정선 옮김
베틀북 펴냄, 2011.8.10. 1만 원
우리 집 큰아이가 더 어릴 적에 ‘머스마’인지 ‘가시내’인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가 머스마이건 가시내이건 대수롭지 않지만, 사람들은 이 아이 성별을 꼭 알아야만 하는 듯이 여겼습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요즈음 둘레 사람들한테서 ‘가시내’인지 ‘머스마’인지 헷갈리다는 소리를 으레 듣습니다. 늘 누나 옷을 물려받아서 입으니 가시내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럴 때면, 왜 굳이 아이가 머스마인지 가시내인지 알아야 하느냐고 되묻습니다. 아이 이름을 궁금해 하고, 아이가 무슨 놀이를 좋아하는지 궁금해 하며, 아이가 어떤 꿈을 마음속에 품는지 궁금해 하면 이 아이하고 서로 사이좋은 동무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별의 어느 여름, 아이들이 들판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지. “와, 여기 웃기게 생긴 잠자리가 있다.” “어, 정말이네. 진짜 괴상하게 생겼다.” “괜히 기분 나쁜걸!” (3쪽)
미야니시 타츠야 님이 빚은 그림책 《진짜 영웅》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이 그림책을 몹시 재미있어 합니다. 그리고, 무척 답답해 합니다. 왜 이 그림책을 재미있어 하느냐 하면 ‘잠자리 외계인’인 ‘바라랑맨’이 아주 착한 숨결이기에 재미있어 합니다. 왜 이 그림책을 답답해 하느냐 하면 ‘스페셜맨’이 나쁜 외계인인데 지구별 사람들이 이를 너무 못 알아채기 때문에 답답해 합니다.
그림책 《진짜 영웅》에는 세 별나라가 나옵니다. 맨 먼저 지구입니다. 그리고, 지구로 살짝 찾아온 바라랑이 사는 바라랑별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구별 사람들을 몽땅 사로잡아서 잡아먹으려고 하는 스페셜별입니다.
그림책 첫머리를 보면, 바라랑별에서 지구별로 온 조그마한 ‘바라랑 사람’은 잠자리 모습인데, 지구별 아이들한테는 낯선 모습입니다. 지구별 아이들은 이 바라랑 사람을 보고는 ‘못생긴 잠자리’라 여기면서 함부로 잡아서 날개를 함부로 뜯으려 합니다. 이때에 어느 아이가 이를 말리고, 바라랑 사람을 놓아 주지요.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영웅 흉내라도 내는 거야?” 아이들은 잠자리를 놓아준 아이를 마구 쥐어박고 발로 찼어. 하지만 그 아이는 후회하지 않았어. 아무 말 없이 맞고만 있었지. (7쪽)
잠자리 날개를 뜯으며 놀려는 짓궂은 아이들을 막은 아이는 어찌 되었을까요? 짓궂은 아이는 잠자리가 아닌 이 아이를 두들겨패면서 성풀이를 합니다. 착한 동무를 짓밟고 괴롭히면서 놉니다. 잠자리를 놓아주었다고 생각한 아이는 제가 한 일 때문에 동무들한테 얻어맞지만 씩씩합니다. 잠자리를 놓아주기를 잘했다고 여깁니다.
이윽고 열 몇 해나 스물 몇 해가 흐릅니다. 지구별에 우주선이 찾아오고, 외계인이 내려요. 커다란 몸집으로 바뀐 ‘바라랑 사람(바라랑맨)’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바라랑 사람이 읊는 말을 지구별 사람은 하나도 못 알아듣습니다. 게다가 지구별 사람들은 바라랑 사람을 놀리기만 합니다.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따지고 말아요. 생김새에 따라서 ‘잘생기면 좋’고 ‘못생기면 나쁘’다고 여깁니다.
“그게 아니라니까.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나쁜 외계인에게 모두 다 잡아먹히고 말 거야!” 바라랑맨이 힘을 주어 말했어. 그러자 누군가 이렇게 말했지. “푸하하, 얼굴이 새빨개졌어. 이제 오줌이 나올 것 같아!” “그, 그게 아니야. 그런 말이 아니란 말야.” 바라랑맨은 눈물을 글썽였어. 그러자 사람들이 깔깔대며 이렇게 수근댔지. “어떡해. 벌써 오줌을 쌌나 봐.” “저 외계인 진짜 웃긴다.” (14∼15쪽)
그림책 《진짜 영웅》을 살며시 덮고 생각을 기울입니다. 그림책 이름에도 나오듯이 ‘참된(진짜) 영웅’은 누구일까요? 주먹다짐으로 동무를 때려눕히면서 으르렁거리는 아이가 참된 영웅일까요? 주먹힘으로 이웃이나 동무를 괴롭히면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사람이 참된 영웅일까요? 권력을 휘두르면서 평화를 짓밟거나 깨부수는 이들이 참된 영웅일까요? 대통령쯤 되거나 시장이나 군수쯤 되어야 참된 영웅일까요? 전쟁무기를 가장 많이 갖춘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가 지구에서 참된 영웅일까요?
“여러분, 괜찮습니까? 나는 스페셜별에서 온 스페셜맨입니다.” 스페셜맨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어. “이 우주인은 말이 통하네.” “스페셜맨은 참 잘생겼다!” 사람들은 스페셜맨을 보고 모두 기뻐했지. (20쪽)
우리한테는 영웅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는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마음으로 삶을 짓는 이웃이 있으면 됩니다. 나는 나부터 스스로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살림을 지을 줄 알면 됩니다. 내 이웃만 착하거나 참답거나 곱기를 바라지 말고, 언제나 나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는 착한 마음이 되고 참다운 넋이 되며 고운 숨결이 될 때에 즐겁지요.
그림책 《진짜 영웅》을 보면, 지구별 사람들은 바라랑 사람이 하는 말과 몸짓은 하나도 안 알아채려고 하지만, 지구별 사람들 입맛에 맞추어 사탕발림을 하는 ‘스페셜 사람(스페셜맨)’이 읊는 말에 모두 홀랑 넘어가고 맙니다. 아무래도 우리 누구나 이런 몸짓이 된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마음으로 서로 마주하려는 몸짓이 아니라, 겉모습이나 겉치레에 따라서 휘둘린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까만 양복에 까맣고 커다란 자동차를 몰면 뭔가 있어 보인다고 여기지요. 후줄그레한 차림새라면 공공기관이나 큰 건물에서는 아예 발도 못 붙이게 하기 일쑤이지요. 민소매에 반바지에 고무신 차림으로 대학교수를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할 만합니다. ‘예의’라는 이름으로 겉모습에 대단히 눈길을 둡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셔요. 장님한테는 겉모습이 무엇일까요?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한테 겉모습이란 무엇인가요? 귀로 소리를 못 듣는 사람한테는 목소리가 무엇일까요? 왜 겉모습을 따져야 할까요? 왜 생김새나 차림새에 따라서 사람을 가르거나 따지거나 재는 일을 해야 할까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일하는 사람은 가벼우면서 수수한 차림새입니다. 흙을 만지며 일하니 으레 맨발에 고무신이기 일쑤입니다. 흙내음에 땀내음이 가득한 차림새이기에 ‘함부로 보’거나 ‘아무렇게나 마주해’도 되지 않을 테지요? 그림책 《진짜 영웅》은 바로 이 대목을 가만히 짚습니다. 여느 살림집에서 여느 어버이로서 아기를 낳아서 돌보는 사람들이야말로 ‘참다운 영웅’이고, 꽃 한 송이와 나무 한 그루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참다운 영웅’이며, 동무를 아끼는 착한 마음일 때에 비로소 ‘참다운 영웅’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참다운 영웅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위인전이나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수수하고 투박한 이웃하고 동무가 모두 참다운 영웅입니다. 4348.11.2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