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더 높이
제르마노 쥘로 글, 알베르틴 그림, 조정훈 옮김 / 키즈엠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3



‘1227미터짜리 집’ 꼭대기로 피자 배달을 하라고?

― 높이 더 높이

 제르마노 쥘로 글

 알베르틴 그림

 조정훈 옮김

 키즈엠 펴냄, 2012.11.30. 12000원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 같은 큰도시로 나들이를 가면 언제나 앞만 보고 걷습니다. 다른 곳을 보기 어렵기도 하지만, 사람이 아주 많기 때문에 앞을 안 보다가는 다른 사람들한테 부딪히기 일쑤이고, 발도 곧잘 밟힙니다. 서울 같은 큰도시는 거님길이 좁고, 버스나 전철을 탈 적에도 언제나 사람이 북적거리는데다가, 한눈을 판다 싶으면 내릴 곳을 놓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가게도 많고 집이나 건물도 많은 서울입니다. 사람이 많으니 자동차도 많은 서울이요, 찻길도 넓은 서울이에요. 이런 서울에서는 하늘 볼 겨를이 없습니다. 북적거리는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하늘을 안 보기도 하고, 애써 하늘을 보려고 해도 건물이나 전깃줄에 가로막힙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틈으로 하늘을 살펴보더라도 그저 새카맣거나 뿌옇기에 하늘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어렵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볼일을 마친 뒤에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로 돌아올 적에는 버스 창밖으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너덧 시간을 달리는 버스에서 내내 하늘을 보다가 버스를 내리면, 크게 기지개를 켜고 하늘을 실컷 올려다봅니다. 이 파란 하늘을 보고 싶었다고, 이 파란 하늘을 흐르는 하얀 구름을 보고 싶었다고, 이 파란 하늘을 흐르는 하얀 구름을 가르는 새를 보고 싶었다고, 마음속으로 노래합니다.



갑자기 부자가 된 벼락 씨의 집. 모으고 모아서 부자가 된 차곡 씨의 집. (1∼2쪽)




  제르마노 쥘로 님이 글을 쓰고, 알베르틴 님이 그림을 그린 《높이 더 높이》(키즈엠,2012)라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자동차와 짐차와 삽차를 좋아해서 날마다 자동차 놀이를 하는 작은아이하고 읽을 마음으로 이 그림책을 장만했습니다. 작은아이뿐 아니라 큰아이도 이 그림책을 재미있어 하는데, 큰아이는 늘 그림을 그리며 놀기 때문에 ‘높이 더 높이’ 오르다가 그만 와르르 무너지는 줄거리가 흐르는 이 그림책을 보면서 깔깔깔 웃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무척 아슬아슬한 줄거리입니다. 부자가 된 두 사람이 자그마치 1227미터에 이르기까지 집을 올린다고 하는데, 한쪽 집이 와르르 무너지니 사람이 다칠 수 있거든요.


  어린이가 함께 보는 그림책이니, 사람이 다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1227미터나 올리다가 무너지는 집 이야기를 읽다 보면, 참말 사람들이 세우는 문명이나 문화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집을 올리고 또 올려야 할까요? 높이 더 높이 올려야만 할까요? 경제성장을 높이 더 높이 이루어야 할까요? 성적이나 결과나 실적 따위를 높이 더 높이 거두어야 할까요?



옷을 잘 입는 건축가, 겉멋 씨. 깐깐한 토목 기술자, 꼼꼼 씨. (5∼6쪽)



  그림책 《높이 더 높이》에는 두 가지 부자가 나옵니다. 한 부자는 “벼락치기 부자”입니다. 다른 한 부자는 “차곡차곡 모은 부자”입니다. ‘벼락부자’는 갑자기 부자가 된 결에 따라서 ‘벼락건물’을 올리려 합니다. ‘차곡부자’는 차곡차곡 부자가 된 결에 맞추어 ‘차곡건물’을 올리려 합니다.


  그림책 《높이 더 높이》는 길쭉하게 끝없이 오르는 집 모습에 맞추어 길쭉한 판짜임입니다. 하늘을 찌를듯이 치솟는 두 집을 견주어 보이려고 하는 판짜임인데, 책꼴도 재미있습니다.


  그나저나 1227미터에 이르기까지 올린 집에서 늘 맨 꼭대기에 머물며 산다는 두 부자인데, 두 부자는 저렇게 높은 곳에서 무엇을 할까요? 저렇게 높은 곳에 있어야 ‘다른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선다고 여길까요?




세계 모든 텔레비전 전파를 잡을 수 있는 우산 모양의 안테나. 차곡 씨의 애완견 말티의 다섯 번째 생일을 위한 콘서트. (13∼14쪽)



  그림책을 보면, 벼락부자도 차곡부자도 마치 돈자랑을 하는구나 싶도록 온갖 큰잔치를 엽니다. 아무 때나 잔치를 벌이고, 집안에 골동품이라든지 보물이라든지 잔뜩 그러모으려 합니다. 쓰지도 않을 것이지만 남한테 자랑하려고 하는 것을 자꾸 갖춥니다. 벼락부자뿐 아니라 차곡부자도 ‘돈을 쓰고 더 쓰는 삶’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이웃하고 나누는 삶이 아니라, 언제나 혼자 쓰고 혼자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기만 해요.


  1227미터에서 끝난 ‘집짓는 다툼’을 벌인 두 부자는 이제 1227미터에 이르는 집에서 머물다가, 벼락부자는 집이 와르르 무너져서 ‘무너진 집’에서 더는 살지 못합니다. 이와 달리 차곡부자는 집이 튼튼해서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차곡부자한테는 다른 말썽거리가 있지요.


  차곡부자는 벼락부자하고 ‘똑같이’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지 않습니다. 돈이 많으니 심부름꾼을 둘 테고, 심부름꾼이 모든 일을 다 맡아서 해 주겠지요. 그런데, 아무리 돈으로 심부름꾼을 부릴 수 있다고 해도, 1227미터에 이르는 높은 곳에 사는 부자한테 맞추어 줄 심부름꾼이 더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저 높은 데까지 밥을 실어다 나르자면 얼마나 고단할까요. 날마다 ‘높은 산’을 오르내리듯이 밥을 갖다 주고 이 일을 하고 저 살림을 해야 한다면 그야말로 버틸 수 없는 노릇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한들, 이런 ‘1227미터짜리 집’에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차곡부자는 전화를 걸어서 피자를 시켜요. 자, 피자집 일꾼은 어떻게 할까요? 차곡부자는 피자집 일꾼더러 1227미터에 이르는 꼭대기까지 피자를 갖다 달라고 하는데, 피자집 일꾼은 ‘피자 배달’을 1227미터까지 들고 올라가서까지 마칠까요?




“현관에서 비밀번호 PARK79를 누르고 왼쪽 계단으로 올라오세요. 복도 끝까지 오면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그걸 타고 8층까지 올라오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왼쪽 두 번째 문에서 비밀번호 JO82를 누르세요. 앞에 보이는 계단을 올라와 오른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4층까지 올라오세요. 복도 끝까지 걸으면 빨간 발판이 깔린 작은 계단이 있어요. 계단을 내려오면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그걸 타고 63층까지 올라오세요. 그리고 나선 모양 계단을 올라와서 왼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78층까지 올라오세요. 복도 끝까지 와서 오른쪽으로 7번째 문에서 비밀번호 YUNSEUL을 누르고 들어오세요. 방 한가운데 둥근 탁자가 있을 거예요. 그 위에 피자를 올려놔 주세요.” “그냥 현관 앞에 놓고 갈게요.” (28∼30쪽)



  그림책 《높이 더 높이》에 나오는 차곡부자가 시킨 피자 한 판을 들고 높다란 집 문간에 닿은 피자집 일꾼은 물끄러미 저 높은 꼭대기를 올려다보다가, 차곡부자가 시키는 말을 듣다가, 피자를 조용히 문간에 내려놓습니다. “그냥 현관 앞에 놓고 갈게요.” 하고 말합니다.


  맨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던 차곡부자는 더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저 저 밑바닥에 있는 피자를 바라봅니다. 이때에 어디에선가 멧돼지가 나타나요. 멧돼지는 1227미터짜리 집 문간에 놓인 피자를 집습니다. 그러고는 ‘무너진 다른 1227미터짜리 집’ 부스러기를 사뿐사뿐 뛰어넘습니다. 그러고는 높다란 나무 밑에서 기다리는 ‘멧돼지 식구’한테 가고, 멧돼지 식구는 ‘차곡부자네 피자’를 맛나게 먹습니다.


  여러모로 보자면 우스갯소리 같은, 아니 우스개놀이 같은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입니다. 어떤 부자가 집을 크게 지어도 1227미터짜리로까지 짓겠느냐 싶지만, 참말 바보스러운 삶만 생각하는 부자는 이런 우스개짓을 저지르고 맙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작품을 보면 ‘초콜릿으로 성을 지어 달라고 하는 인도 왕자’ 이야기가 나와요.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면 ‘초콜릿 성’은 무너질 텐데, 이런 생각도 못 하면서 초콜릿으로 성을 지어 달라고 하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요.


  돈을 어떻게 쓸 때에 즐거운가를 모르는 부자요, 삶을 어떻게 가꿀 때에 기쁜가를 모르는 부자라고 할까요. 돈을 긁어모으는 데에서는 훌륭했기에 부자가 되었을는지 모르나, 이 돈으로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는 데에서는 아주 젬병이고 만 부자입니다.


  삶을 삶답게 지을 때에 웃고, 삶을 삶답게 가꾸면서 이웃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할 적에 노래가 흐릅니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가 있느냐는 시골 할배 말씀처럼 혼자만 높이 더 높이 올라서야 참답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운 재미란 그야말로 없기 마련이지 싶습니다. 높이 더 높이 올릴 집이 아니라, 서로 오순도순 어우러질 집살림을 가꿀 일이요, 서로 따스하면서 넉넉하게, 또 서로 웃고 노래하는 즐거움이 넘실거리도록 이웃하고 손을 맞잡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4348.11.25.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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