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마녀 루시
리오넬 르 네우아닉 지음, 이재현 옮김 / 행복한아이들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4



아기를 낳아 돌보면서 비로소 어른이 된다

― 엄마가 된 마녀 루시

 리오넬 르 네우아닉 글·그림

 이재현 옮김

 행복한아이들 펴냄, 2003.7.15. 8500원



  아이들은 하루 내내 놀고 싶습니다. 갓난쟁이도, 다섯 살 어린이도, 열 살 아이도 모두 즐겁게 하루 내내 놀고 싶습니다. 그런데 갓난쟁이를 돌보는 어버이로서 아기하고 하루 내내 놀 겨를을 마련하는 이들이 부쩍 줄어듭니다. 아기를 보육시설에 맡긴 채 일하러 다니는 어버이가 매우 많고, 두어 살쯤 되면 으레 어린이집에 아이를 넣기 마련이며, 한 번 보육시설에 들어간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기 앞서까지 어린이집하고 유치원을 드나듭니다.


  보육시설이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아이들은 얼마든지 놀 만합니다. 또래 동무를 만날 수 있어서, 제법 안 심심하게 놀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퍽 어린 아이들은 또래 동무 못지않게 어머니하고 아버지랑 놀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이들한테는 또래 동무도 있어야 하지만, 아직 많이 어리며 여린 아이들은 어버이가 베푸는 따사로운 사랑을 받기를 바라요. 제 어버이가 저를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 아이요, 따사로운 사랑을 누리면서 기쁘게 뛰놀고 싶지요.



“페르 부인, 당신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당신의 경우는 매우 절망스럽군요. 지옥에서 생긴 당신의 병은 절대 나을 수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무슨 병이죠?” 루시는 너무나 당황스러워하며 물었습니다. “고약하게 생긴 작은, 음, 그러니까 아기가 생겼습니다.” (9쪽)



  리오넬 르 네우아닉 님이 빚은 그림책 《엄마가 된 마녀 루시》(행복한아이들,2003)를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마녀 루시는 그저 마녀로만 지냈고, 마녀로서 ‘아이를 잡아서 괴롭히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마녀 루시는 어느 날 ‘사랑에 푹 빠졌’고, 사랑스러운 짝을 찾아서 지옥에 가서 악마랑 사귀었다는군요. 머잖아 마녀 루시는 몸이 달라진다고 느꼈고, 배가 볼록해졌답니다. 이즈음 지옥에 있던 악마는 마녀 루시가 못마땅했고, 마녀 루시도 악마가 못마땅해서 서로 헤어지기로 합니다. 마녀 루시는 지옥을 떠나서 땅에 있는 ‘마녀네 집’으로 돌아가요. 그리고 병원에 가서 몸에 어떤 일이 생겼느냐고 물으니 의사는 ‘아기가 생겼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나 루시의 뱃속에 있는 아기 엠마는 마녀가 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습니다. “마녀가 될 거라면 차라리 안 태어나고 말 거야.” 엠마는 엄마 배를 발로 툭툭 차면서 소리쳤습니다. “못된 짓을 하거나, 끈적거리는 벌레를 꿀꺽 삼키는 짓 따위는 싫어! 나는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이 사는 세상으로 가겠어.” (14쪽)



  지옥에 있는 악마도, 땅에 있는 마녀도, 또 마녀네 여러 동무와 이웃도, 루시한테 ‘아기가 생긴’ 일을 기뻐해 주지 않습니다. 어쩜 그런 끔찍한 일을 겪느냐고 한마디씩 합니다. 마녀네 이웃은 마녀 루시한테 ‘뱃속 아기를 없애는 길’을 도와줄까 하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녀 루시는 아기를 낳기로 합니다. 루시 몸에 생긴 새로운 목숨이 태어나면 그야말로 ‘멋진 마녀’가 되어 이 별을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리면서 어지럽히는 ‘훌륭한 마녀 짓’을 하리라 꿈을 꾸지요.


  이때에 루시 뱃속에서 자라는 아기는 ‘어머니 루시’하고 사뭇 다른 마음입니다. ‘마녀 루시’는 스스로 그저 ‘마녀’라고만 여길 뿐, ‘어머니’로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녀 루시’는 ‘(아기) 마녀 엠마’를 낳아서, 두 마녀가 신나게 마녀 짓을 할 생각을 해요. 이와 달리 ‘뱃속 아기’는 루시가 ‘마녀’ 아닌 ‘어머니’라고 여기고, ‘마녀 아기’로 태어난다면 차라리 안 태어나고 죽는 쪽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두 사람은 어떤 길로 갈까요? 마녀 루시는 그저 이녁이 스스로 마녀라고만 여기는 길을 갈까요? 뱃속 아기는 마녀인 어머니가 못마땅해서 어머니 몸에서 태어나기를 손사래치면서 그만 어머니 뱃속에서 죽는 길로 갈까요?




루시는 작은 천사 엠마를 무시무시한 꿈에 나오는 끔찍한 괴물로 바꾸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썼습니다. 그렇지만 우유병에 나쁜 것을 넣어서 먹여도, 할머니가 개발해 놓은 온갖 끔찍한 방법들을 써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루시 페르는 깨달았습니다. 나쁜 것들은 어린 엠마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22쪽)



  아기를 밴 어머니인 마녀 루시는 뱃속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까맣게 모릅니다. 아기가 뱃속에서 발길질을 할 적에도 왜 발길질을 하는지 모르는 채 귀엽게만 여깁니다.


  바야흐로 루시는 아기를 낳습니다. 아기는 이 땅에 태어나기로 굳게 마음을 먹습니다. 게다가 아기 엠마는 ‘마녀 엠마’ 아닌 ‘아기 엠마’이기를 꿈꾸었어요. 이리하여, 엠마는 갓 태어날 적에 등에 날개를 달았지요. 악마와 마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엠마인데 그만, 그러니까 참말 그만, ‘천사 엠마’가 태어났습니다.


  마녀 루시만 깜짝 놀라지 않습니다. 마녀네 이웃 모두 깜짝 놀라고, 지옥에서 아기를 보겠다며 찾아온 악마와 악마네 동무들도 모두 깜짝 놀라요. ‘천사’인 아기 엠마가 무서워서 모두 벌벌 떱니다.


  아기 엠마는 스스로 ‘천사’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엠마는 엠마 스스로 ‘어머니한테서 태어난 아기’라고 여길 뿐입니다. 엠마는 마녀 루시가 ‘마녀’라는 이름표보다는 ‘어머니’라는 사랑으로 저를 바라보고 안아 주기를 바라지요.




별별 일을 겪고 난 후, 루시와 엠마는 마법사의 나라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루시와 엠마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답니다. 마치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처럼. (33쪽)



  그림책 《엄마가 된 마녀 루시》를 읽는 내내 지난 여덟 해를 돌이켜 봅니다. 그림책 《엄마가 된 마녀 루시》를 덮으면서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나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비로소 아버지라는 자리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두 아이는 스스로 잘 뛰어놀고 밥도 잘 먹으며 똥오줌도 잘 가려서 누는 몸짓을 보여주면서, 나를 ‘어버이’이자 ‘어른’으로 이끌어 줍니다.


  나는 나이를 먹었기에 어른이 아닙니다. 나는 혼인을 했기에 남편이나 아버지가 아닙니다. 나는 우리 집을 따사로운 보금자리로 가꾸겠노라 하는 꿈을 키우면서 살림을 건사하기에 비로소 남편이나 아버지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마음속에서 길어올리기에 나와 짝꿍은 서로 ‘곁님(곁에서 지키고 보살피는 님)’이 될 수 있습니다. 나와 곁님은 서로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어버이요 어른으로 거듭나고, 이동안 두 아이는 스스로 씩씩하고 의젓하게 자랍니다.


  모든 사람은 아기로 태어나고, 아기로 태어나서 어린 나날을 누리며, 이윽고 천천히 철이 들면서 슬기로운 사랑으로 삶을 짓는 꿈을 키웁니다. 몸뚱이만 어른이 아닌 마음으로 어른이 되려고 아기를 낳습니다. 아기를 기쁜 웃음으로 키워서 밝은 노래를 부르는 하루가 되기에, 어느덧 어른으로 거듭나지요.


  그렇다고 ‘혼인해서 아기를 낳지 않은’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혼인만 했대서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기를 낳아 돌보았어도 모두 어른이 되지는 않습니다. 혼인을 하지 않았어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숨결이라면 어른입니다. 혼인을 했어도 아기를 안 낳은 살림이라면, 아기 없는 삶에서도 이웃을 언제나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넋이라면 어른이지요. 마음 가득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을 줄 알고, 이 사랑 씨앗을 두루 베풀 때에 비로소 어른입니다.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사랑이라는 씨앗을 물려받아서 즐겁고 튼튼하게 자랍니다. 4348.11.22.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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