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케이크 왕이야! 책 읽어주는 책
엠마 치체스터 클라크 글.그림, 포 옮김 / 어썸키즈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0



즐겁게 먹고 싶어서 손수 케이크를 굽지요

― 내가 케이크 왕이야

 엠마 치체스터 클라크 글·그림

 포 옮김

 어썸키즈 펴냄, 2014.5.20. 11000원



  케이크는 누구나 구울 수 있을까요? 오븐이 있다면 손쉽게 굽겠지요. 오븐이 없으면 케이크를 못 구울까요? 오븐이 없어도 지짐판에 불을 아주 여리게 넣어서 케이크를 구울 수 있습니다. 다만 오븐으로 하듯이 손쉽게 굽지는 못 하고 손이 많이 가야 해요. 오븐으로 구울 적하고 여느 지짐판으로 구울 적에는 반죽도 좀 다르게 합니다. 굽는 판이 다르니까요. 소금이나 물도 오븐에서 구울 적하고 다르게 맞추고요.


  우리 집에는 오븐이 없어서 집에서 빵이나 케이크를 굽기에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븐이 없으면 없는 대로 수도 없이 해 보고 또 해 보면서 여느 지짐판으로도 빵이나 케이크를 굽는 길을 새로 찾았습니다. 이렇게 하기까지 여러 해 걸렸어요.


  그러면 왜 굳이 오븐 없는 집에서 빵이나 케이크를 구우려고 했을까요? 왜냐하면 집에서 굽는 빵, 이를테면 ‘집빵’이 대단히 맛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식구 입맛에 맞추어서 손수 굽는 빵이 참말 맛있더군요. 아마 아이들도 옆에서 거들면서 함께 반죽을 하고 굽고 기다리면서 모든 얼거리를 함께 지켜보고 바랐기 때문에 더 맛난 집빵(마치 집밥처럼)이 태어나는구나 싶어요.



“루루야, 너 케이크를 구워 본 적 있어?” 알피가 물었어요. “어머, 알피! 누구나 케이크 정도는 구울 수 있어!” 루루가 말했어요. (8쪽)



  엠마 치체스터 클라크 님이 빚은 그림책 《내가 케이크 왕이야》(어썸키즈,2014)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살랑살랑 꼬리마을’이 무대입니다. 이 살랑살랑 꼬리마을에서도 ‘루루네 집’이 무대예요.


  살랑살랑 꼬리마을은 ‘온갖 개’가 모여서 사는 조그맣고 예쁜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서 루루네 집은 이 예쁜 마을에서도 가장 예쁘다고 할 만한 작은 아이(개)네 집입니다.



“우리는 아주 커다란 케이크를 구울 거라서 아주 커다란 쟁반이 필요해요!” 루루가 말했어요. “케이크에 소시지를 넣으려고요. 아저씨 생각은 어떠세요?” “케이크에? 미스터 첨프차프 씨가 웃었어요. “정말 웃긴 케이크로구나!” (11쪽)





  어느 날 살랑살랑 꼬리마을에서 ‘케이크 대회’가 열립니다. 이 마을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개)이 저마다 집에서 손수 케이크를 구워서 겨루기를 한다고 해요. 마을사람들은 누가 굽는 케이크가 가장 멋질까 하고 두근두근 설레면서 기다립니다. 아이들(개)은 저마다 제 마음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케이크를 굽습니다. 자, 그러면 이 그림책에서 주인공은 루루는 어떤 케이크를 구울까요?


  루루는 매우 예쁜 아이입니다만 이제껏 케이크를 한 번도 구운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케이크 대회가 열린다고 하니까 그저 이 대회에서 ‘1등’을 하겠다고 꿈을 꿉니다. 그런데 루루는 케이크 굽기를 배우지 않아요. 책조차 살피지 않아요. 게다가 루루는 케이크에 소시지를 넣으려 하고, 반죽도 아무렇게나 양념이나 간도 아무렇게나, 굽는 시간도 아무렇게나 …… 무엇이든 아무렇게나 합니다. 옆에서 동무(개)가 그렇게 해도 되겠느냐고 묻지만 아랑곳하지 않아요.


  루루네 집에 있는 오븐에서 나온 ‘케이크’는 차마 케이크라고 하기 어려운 모습이 됩니다. 그렇지만 루루는 이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를 들고 학교에 가요. 그러고는 이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로도 1등을 거머쥐고야 말겠다고 여깁니다.



“나는 정말, 정말 최고가 되고 싶었어!” 루루가 흐느꼈어요. “항상 이길 필요는 없어, 루루야.” 알피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우승은 중요하지 않아. 케이크를 재미있게 만들었잖니. 안 그래?” (24쪽)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못 할 만할까요? 처음에는 누구나 낯설어서 서툴기 마련입니다. 어른도 처음부터 칼질을 잘 하지 않아요. 손가락을 베기도 하면서 꾸준히 칼질을 하기에 채썰기를 잘 해내고 이모저모 밥을 잘 지을 수 있습니다. 아이도 차근차근 칼질을 익히고 반죽하기를 익히면서 이모저모 재미나게 밥살림을 가꿀 수 있습니다.


  글씨를 처음부터 잘 쓴 사람은 없어요. 연필 쥐기부터 찬찬히 익히고 손가락에 힘을 붙이면서 비로소 글씨가 하나 태어납니다. 이 글씨를 자꾸자꾸 가다듬으면서 글꼴이 자리를 잡고, 어느덧 내 마음을 고이 드러내는 글을 쓸 수 있어요.


  아이들하고 함께 살면서 이 같은 살림을 하나씩 돌아봅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못 하는 아이들은 어버이랑 함께 살면서 하나씩 배우고, 하나씩 익혀서, 차근차근 자라요.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익히며, 글씨를 배우고, 호미질이나 젓가락질을 익힙니다. 이동안 아이들은 수없이 넘어지거나 틀리거나 어긋납니다. 그런데 넘어지거나 틀리거나 어긋나는 일은 나쁘지 않아요. 걷다가 넘어지면서 웃고, 글씨를 쓰다가 틀리며 웃습니다. 반죽을 하다가 튀어서 웃고, 젓가락으로 집다가 흘려서 웃어요.



루루는 모두가 자신의 춤을 바라보느라 자리를 비켜 주었다는 사실도 몰랐어요. 모두들 루루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어요. “루루는 살랑살랑 꼬리마을에서 제일 춤을 잘 춰!” (28∼29쪽)




  그림책 《내가 케이크 왕이야》로 돌아가 보면, 이 그림책에 나오는 루루는 케이크 대회에서 1등으로 뽑히지 못해 몹시 서운해 합니다. 그런데 케이크 대회를 마치고 마을잔치가 벌어지는데, 이 마을잔치에서 루루는 신나게 춤을 춰요. 즐거운 노랫가락이 흐를 적에 루루는 저절로 몸이 움직이면서 아주 멋지게 춤을 춥니다. 이때에 살랑살랑 꼬리마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루루가 춤을 몹시 잘 추기 때문에 ‘루루가 마음껏 춤을 출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어요. 루루는 그저 노랫가락이랑 춤사위에 흠뻑 빠져들면서 신나게 춤을 추었고, 마을사람들은 저마다 루루를 추켜세우면서 이 마을에서 춤을 가장 잘 춘다고 얘기합니다.


  케이크 대회에서 1등으로 뽑히지 못한 루루는 어느새 마음이 풀어집니다. 다시 홀가분하면서 씩씩한 마음이 되어요. 이리하여 루루는 동무들더러 저희 집에 가서 케이크를 함께 먹자고 말하지요. 그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를 말이지요. 동무들은 차마 그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를 먹겠다는 엄두를 못 내지만, 그래도 루루네 집에 함께 갑니다. 루루가 밥상에 차린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를 입에 대 봅니다.


  그런데 웬걸요, 생김새로는 볼품없던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인데 맛은 훌륭하다는군요. 루루는 온갖 것을 뒤죽박죽으로 섞어서 ‘케이크 같지 않은 케이크’를 구웠지만 맛만큼은 아주 훌륭한 ‘새 주전부리’를 빚은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밥을 지을 적에는 밥상에 차린 것이 없어도 맛이 아주 좋아요. 아마 그러한 얼거리하고 같으리라 느낍니다. 기쁘게 지은 밥을 기쁘게 먹고, 기쁘게 짓는 살림으로 모든 어버이는 아이들하고 기쁜 하루를 누립니다. 4349.1.1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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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친구야 즐거운 유치원 1
나카가와 히로타카 지음, 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 이정원 옮김 / 보물상자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09



오늘부터 동무라면 우리 함께 웃어야지

― 오늘부터 친구야

 나카가와 히로타카 글

 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

 이정원 옮김

 보물상자 펴냄, 2009.7.30. 8500원



  나카가와 히로타카 님이 글을 쓰고, 하세가와 요시후미 님이 그림을 그린 《오늘부터 친구야》(보물상자,2009)를 찬찬히 읽습니다. 더없이 상냥하구나 싶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유치원에서 ‘언니가 된’ 아이들이 ‘새로 유치원에 들어오는 동생’을 기쁘게 맞이하는 이야기가 조곤조곤 흘러요. 유치원이라는 데에 처음 발을 들이는 아이들은 모두 낯설 텐데, 유치원 언니들은 동생들을 헤아리면서 재미난 공연도 하고, 유치원 시설을 알려줄 뿐 아니라, 서로 사이좋게 노는 길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치원 언니가 부르는 노래를 헤아리다 보면 살짝 웃음이 납니다. “우리가 언니 오빠지만 절대 괴롭히지 않을 거야” 하고 부르는 노래란, 웬만한 여느 유치원 언니 오빠는 동생을 ‘(잘) 괴롭힌다’는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새 친구들이 왔어요. 반갑게 맞이해 줘요. (2쪽)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나 유치원 바깥에서나 모두 동무입니다. 즐겁게 어우러지는 동무입니다. 함께 놀 뿐 아니라, 서로 아끼거나 보살피는 동무예요. 힘이 여린 아이가 있으면 기꺼이 힘을 내어 도울 줄 알지요. 걸음이 느린 아이가 있으면 이 아이한테 맞추어 천천히 걸을 줄 알고요. 셈이 더딘 아이가 있으면 차근차근 셈하기를 일러 줄 뿐 아니라, 나긋나긋 부드러이 말을 해 줄 줄 알아요.


  오늘은 유치원에서 어우러지는 동무라면, 앞으로는 학교에서 얼크러질 동무입니다. 그리고 학교를 떠나 사회에서 만나면 오래도록 어깨를 겯으면서 함께 일하고 함께 꿈을 가꾸고 함께 살림을 짓는 동무입니다.




“우리 악수하자. 오늘부터 우린 친구야. 우리가 언니 오빠지만 절대로 괴롭히지 않을 거야. 큰 소리로 같이 웃자. 오늘부터 우린 친구니까.” (7쪽)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도 않습니다. 우리 집은 보금자리이면서 학교이고 살림터이자 도서관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집에서 배우고, 집에서 놀며, 집에서 서로 어우러져요. 두 아이는 툭탁거릴 때도 곧잘 있지만, 툭탁거릴 때보다 서로 아끼면서 노는 겨를이 훨씬 길어요. 아니, 하루를 통틀어서 살피면 툭탁거리는 겨를은 하루에 2∼3분조차 안 되지 싶고, 온 하루를 그야말로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놉니다.


  아이들이 툭탁거린다면 어느 한쪽이 어떤 놀이를 잘 못 한다든지, 달리기가 느리다든지, 뭔가 다른 아이보다 처진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나이나 몸집이나 힘에 따라서 다 다르기 마련이지만, 이런 모습을 맞대어서 견주면 틀림없이 어느 한쪽은 풀이 죽어요. 풀이 죽으면서 시샘을 할 수 있고, 동무를 풀 죽게 하면서 우쭐거릴 수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다투거나 괴롭히는 몸짓이 되는구나 싶어요.




“어어, 친구끼리 싸우면 안 돼. 그네가 하나밖에 없으니까 순서대로 타야지. 이걸 맞히는 사람부터 타는 거다. 자, 어느 손에 구슬이 들었게?” (19쪽)



  어깨동무를 하는 사이라면 어느 한길을 서로 아끼면서 찬찬히 나아가려는 숨결이라고 느낍니다. 어깨를 겯고 노는 동무라면 혼자서만 재미있게 놀려 하지 않고 다 함께 즐겁게 놀려고 하는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 사이에서도 이와 같아요. 우리가 이 사회에서 어깨동무를 하는 사이라면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더 갖춘 사람은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덜 갖춘 사람한테 따사로이 손을 내밀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동무이니까요. 아이들만 놀이를 함께 누리는 동무가 아니라, 어른들도 일을 함께 하고 살림을 함께 짓는 동무예요. 아이들만 유치원에서 동무로 지낼 삶이 아니라, 어른들도 사회와 마을에서 서로 아끼면서 사이좋은 동무로 지낼 삶이라고 느껴요.


  그림책 《오늘부터 친구야》는 바로 이러한 대목을 아이들한테 넌지시 일깨워 주려 하지 싶어요. 어릴 적부터 서로 동무로 삼으면서 즐겁게 지내는 마음을 기르며 자라면,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서로 도울 때에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스스로 알아차릴 테니까요.




“봐, 금방 양보해 주잖아. 먼저 고맙다고 인사하고. 이리 와. 이제 네 차례야. 형아가 밀어 줄게.” (23쪽)



  장난감이나 놀이기구는 하나뿐인데 두어 아이들이 서로 먼저 놀겠다고 아웅다웅을 하면 서로 하나도 못 놀 뿐 아니라, 장난감이나 놀이기구가 망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꼭 차례를 세워서 지켜야 하지 않아요. 함께 즐거울 길을 찾아야지요. 가위바위보를 해 볼 수 있고, 한 아이가 이 놀이를 하면 다른 아이는 저 놀이를 할 수 있어요. 아이들끼리 이러한 대목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저마다 새로운 놀이를 즐기면서 빙글빙글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두 아이 사이에서 하나를 놓고 다툼이 생기면, 누가 옳으네 그르네 하고 따진들 부질없을 뿐 아니라 두 아이 사이에 골이 깊어질 뿐입니다. 새로운 놀잇감을 떠오르게 하고, 새롭게 재미난 놀이를 보여주면, 두 아이는 어느새 ‘내가 먼저 하겠다’고 나서던 마음이 스르르 풀려서 사라집니다. 다시 말하자면 새로운 놀이를 알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기에 다툼이 생기지 싶어요.


  오늘부터 동무라면, 오늘부터 서로 동무로 하기로 했다면, 우리는 서로 빙그레 웃는 사이입니다. 함께 웃고 함께 노래하는 길을 생각하기로 하기에 동무가 됩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유치원에 안 다니는 아이들도 모두 사이좋게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빌어요.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나 학교에 안 다니는 아이들이나 서로서로 아끼는 마음을 북돋울 수 있기를 빌어요. 4349.1.1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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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말하는 여우 -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감동 그림책 시리즈 1
이모토 요코 그림, 코와세 타와미 글, 프뢰벨교육연구소 옮김 / 프뢰벨행복나누기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08



동무가 된 아이와 여우 사이를 갈라놓는 어른

― 내 친구, 말하는 여우

 코와세 타마미 글

 이모토 요코 그림

 프뢰벨교육연구소 옮김

 프뢰벨행복나누기 펴냄, 2004.1.15. 8000원



  이모토 요코(いもと ようこ, 1944∼)라는 일본 그림책 작가가 있습니다. 나는 이분 그림이 어릴 적부터 익숙합니다. 어릴 적에는 이분 이름을 모르는 채 이분 그림을 둘레에서 아주 쉽게 보았습니다. 공책이나 책받침이나 책살피나 문방구 같은 데에 곧잘 이분 그림이 나왔거든요. 이와사키 치히로(いわさきちひろ, 1918∼1974) 님 그림도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보았어요. 이밖에도 일본 그림책 작가 여럿 작품은 한국에 퍽 널리 조용히 들어왔습니다. 다만 1980년대가 저물고 1990년대로 접어들 무렵까지 ‘누구 그림’인지 감춘 채 들어왔지요.


  내가 어릴 적에는 그냥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그림’이라고만 여겼고, 그저 ‘한국 어떤 그림책 작가’가 그렸겠거니 하고 여기던 그림인데,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되어 그림책을 살피다가 이모토 요코 님 작품이나 이와사키 치히로 님 작품을 ‘책으로 만나’면서 크게 놀랐습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런 멋진 그림과 그림책을 빚은 이웃나라 사람 삶을 하나도 안 보여주었기에 나도 그저 모르는 채 살았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겁내지 마. 내가 도와줄게.” 타미는 여우에게 조심조심 다가갔어요. “커다란 가시네. 가시덤불에 걸렸었구나!” 타미는 여우 발에서 가시를 뽑아냈어요. (5쪽)



  《내 친구, 말하는 여우》(프뢰벨행복나누기,2004)는 코와세 타마미 님이 글을 쓰고, 이모토 요코 님이 그림을 그린 책입니다. 책이름에 잘 나오듯이 ‘말하는 여우’가 나오는 그림책이에요.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 ‘타미’라는 아이가 있고, 이 아이는 숲에서 혼자 놀다가 여우를 만납니다. 그런데 여우가 슬프게 울어요. 아이는 여우한테 다가갑니다. 여우가 무서워하니 여우를 달래면서 가만히 살핍니다. 이러다가 여우 발에 가시가 박힌 줄 알아채고는 살살 뽑아 줍니다.


  발에 박힌 가시가 빠진 여우는 홀가분하면서 기쁩니다. 이때 여우는 아이한테 ‘말하는 여우’ 모습을 드러내요. 아이는 여우한테 스스럼없이 다가갈 줄 알았기에, 여우가 말을 할 적에 놀라기는 했지만 둘이 사이좋은 동무가 될 수 있으리라 느꼈어요. 이날부터 둘은 숲에서 살가운 놀이동무가 되어서 한껏 즐겁게 뛰놉니다.




다음 날, 타미는 숲 속으로 갔어요. “말하는 여우를 다시 만나면 좋을 텐데…….” 바로 그때였어요. 바스락바스락. 누군가 갑자기 덤불 속에서 툭 튀어나왔어요. (8쪽)



  그런데 말이지요, 아이랑 여우는 서로 사이좋은 동무이지만, 어른들 생각은 다릅니다. 어른들은 이 아이가 숲에서 혼잣말을 하면서 떠든다고 여깁니다. 게다가 여우라는 짐승을 제대로 만나거나 사귄 적도 없으면서 그저 여우를 나쁘게만 바라보아요. 타미네 어머니와 아버지도 타미가 더는 숲으로 못 가게 막을 뿐 아니라, 여우는 무서운 짐승이라고 말합니다.


  마을 어른들이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타미랑 여우가 얼마나 사이좋게 노는지 마을 어른들이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아니 마을 어른들도 숲에서 사는 수많은 짐승하고 사이좋게 지내면서 함께 놀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 보았다면, 참말 다를 텐데요. 아무래도 마을 어른들 스스로 ‘아이처럼 여우하고 동무로 사귄’ 적이 없기 때문에 여우를 나쁘게 볼는지 모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마을 어른들뿐 아니라, 여느 자리에 있는 퍽 많은 어른들도 ‘여우나 여러 숲짐승을 이웃으로 여겨서 사귀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해요.


  아이는 여우하고 동무가 될 수 없을까요? 어른은 여우하고 이웃이 될 수 없을까요? 우리는 누구를 동무로 여겨야 할까요? 우리한테는 누가 이웃이 될 만할까요?




마을 사람들은 타미를 점점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어요. “타미가 산마루에서 혼잣말을 하고 있더라니까요!” “혹시 여우에게 홀린 게 아닐까요?” 그 소문은 타미의 엄마와 아빠에게까지 들렸어요, “타미야, 이제 숲 속에 가면 안 된다!” 엄마가 단단히 일렀어요. (15쪽)



  동무가 된 아이와 여우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는 어른입니다. 그러나 어른으로서는 어쩔 수 없구나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마음으로 바라보며 서로 동무가 되지만, 어른들은 마음이 아닌 겉모습으로 바라보다가 이모저모 따지기 때문입니다.


  참말 눈을 가만히 감고 마주하면 ‘말하는 사람’이든 ‘말하는 여우’이든 똑같을 텐데요. 우리가 동무나 이웃을 사귈 저에 ‘눈을 감고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다면, 겉모습이나 재산이나 이런저런 것을 따지지 않을 텐데요.


  그렇잖아요. 반가운 동무는 잘생기거나 못생기지 않아요. 동무를 사귈 적에 얼굴을 볼 일이 없어요. 아니, 동무하고 사귀며 놀 적에 얼굴을 바라보기는 할 테지만, 얼굴 생김새가 잘생겼거니 못생겼거니 따지지 않아요. 우리는 얼굴 생김새로만 동무가 되거나 같이 놀지 않으니까요.


  어른들이 함께 일하는 이웃을 사귈 적에도 이와 같아요. 겉모습이나 생김새만으로 ‘함께 일할’ 수 있어요. 마음으로 믿고 기대며 아끼고 보살피고 어깨동무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일 때에 비로소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여우를 잡으려고 산에 올라갔어요. 타미는 여우가 걱정이 되었어요. 타미는 몰래 집에서 빠져나와 산으로 올라갔어요. 타미는 말하는 여우를 찾아 헤맸어요. 그러나 말하는 여우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말하는 여우야…….” 타미는 너무나 지쳐 쓰러지고 말았어요. (26쪽)



  그림책 《내 친구, 말하는 여우》에 나오는 조그맣고 여리며 어린 아이 타미는 여우가 걱정스럽습니다. 마을 어른들은 여우 사냥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여우가 ‘잘못한’ 일은 하나도 없지만, 여우 같은 짐승은 숲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먼먼 옛날부터 숲에는 여우뿐 아니라 늑대도 이리도 삵도 범도 곰도 오소리도 너구리도 족제비도 쥐도 뱀도 잔나비도 솔개도 매도 수리도 올빼미도 소쩍새도 꾀꼬리도 박새도 할미새도 모두모두 저마다 사이좋게 어우러져서 지내는데, 사람들(아니 어른들)은 그만 사람 아닌 짐승은 숲에서 사라져야 하는 줄 여기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은 ‘사람인 동무와 이웃’도 사귀지만 ‘짐승인 동무와 이웃’도 사귀는데다가 ‘풀과 꽃과 나무인 동무와 이웃’도 사귀는데, 어른들은 이 대목을 자꾸 놓치거나 잊고 말아요. 어른들 스스로 얼마 앞서까지 아이였던 줄 잊었기 때문일까요.


  포근한 마음이 흐르는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는 동안 아이들은 이 줄거리에 빠져듭니다. 나도 곁에서 이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아이랑 여우가 부디 오래도록 사이좋은 동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림책을 넘깁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여우를 비롯한 숲짐승’을 살가운 이웃으로 여길 줄 아는 슬기로운 어른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림책을 펼칩니다. 온누리 아이들 누구나 마음에 한가득 사랑을 담아서 기쁘게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는 어른으로 거듭나기를 꿈꾸면서, 이모토 요코 님 이쁘장한 그림책을 새삼스레 읽고 자꾸 읽어 봅니다. 4349.1.1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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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냉이 평화그림책 10
권정생 시,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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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07



강낭알을 꿈꾸는 수수하고 조용한 평화

― 강냉이

 권정생 글

 김환영 그림

 사계절 펴냄, 2015.11.20. 11000원



  큰아이가 지난가을에 물었습니다. “옥수수 먹고 싶어.” 나는 큰아이한테 말합니다. “그럼 씨앗 심어.” 큰아이는 웃으며 대꾸합니다. “와, 씨앗 심자! 심자!” 강냉이를 거의 다 거두는 늦여름에 이르러 우리 집 옆밭에 강냉이 씨앗을 다섯 톨 심고, 우리 집 뒤꼍에도 석 톨을 심습니다. 이제 곧 가을이 되고 겨울이 다가올 줄 알지만, 아이하고 함께 씨앗심기를 누리려고, 아이가 바라는 강냉이 씨앗을 심었습니다.


  늦여름에 심은 강냉이 씨앗은 첫겨울에 이르러 비로소 알이 뱁니다. 다만, 봄에 심어서 늦여름 즈음 거두는 강냉이하고 달리 알이 빽빽이 들어차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큰아이는 제 손으로 씨앗을 훑어서 물에 불린 뒤에 흙에 심는 일을 했습니다. 조그마한 강냉이 씨앗 한 톨에서 떡잎이 나오고 줄기가 오르며 꽃이 피다가 열매가 차츰 굵어지는 모습을 늘 마당 한쪽 옆밭에서 지켜보았어요.



집 모퉁이 토담 밑에 (3쪽)



  권정생 님이 조곤조곤 쓴 글(시)에 맞추어 김환영 님이 그림을 그린 《강냉이》(사계절,2015)를 새롭게 읽습니다. 글(시)하고 그림이 새삼스레 어우러지는 이야기로 가만히 읽습니다. 권정생 님은 이녁이 나고 자라며 들은 경상도 안동말로 강냉이 이야기를 썼고, 김환영 님은 아스라하다면 아스라한 한국전쟁 언저리에 시골에서 강냉이 씨앗을 심고 오붓하게 노래하던 수수한 시골사람 이야기를 그림으로 빚습니다.




생야는 구덩이 파고 난 강낭알 뗏구고 어맨 흙 덮고 (7쪽)



  집 모퉁이 흙담 밑에 씨앗을 심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어매)는 빙그레 웃습니다. 어머니 혼자 밭일을 한다면 수월하면서도 빠르게 끝마칠 텐데, 어머니는 혼자 밭일을 하지 않아요. 어린 아이들한테 밭일을 맡겨요. 그렇다고 고되다거나 힘든 일을 맡기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할 만큼 일감을 주고는 빙그레 웃으면서 지켜봅니다.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북돋우고, 잘 못 하면 잘 못 하는 대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어머니랑 함께 흙내음을 맡으면서 흙빛으로 웃으면서 구슬땀을 흘려요.


  이렇게 마당 한쪽 밭 한 뙈기를 일구어 강냉이를 심은 뒤 아이들은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고 노래하면서 놉니다. 저희가 씨앗을 심은 옆밭 곁에서 마음껏 노래하면서 놀아요. 얼른얼른 자라라고 노래하고, 부쩍부쩍 크라면서 웃고 놀지요.


  참말 모든 시골자락 논밭에서 자라는 곡식이나 열매는 아이들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자랍니다. 참말 모든 시골마을 논이며 밭에서 자라는 곡식이나 열매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커요.




“요건 내 강낭” 손가락으로 꼭 점찍어 놓고 (13쪽)



  그림책 《강냉이》를 들여다봅니다. 그림책에 흐르는 모습만 놓고 본다면, 1980년대 이야기인지 1960년대 이야기인지, 또는 1940년대나 1920년대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를 굳이 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시골에서는 언제 어디에서나 수수하면서 조용한 살림이거든요. 딱히 어느 연대를 헤아려야 하는 시골살림이 아닙니다. 씨앗을 심고, 흙을 북돋우고, 밭을 보살피며, 곡식이랑 열매를 거두는 살림은 예나 이제나 같아요. 즐겁게 심고 기쁘게 돌보며 흐뭇하게 거두는 살림은 참말 오늘이나 앞으로나 같아요.


  그런데, 그림책 《강냉이》는 한국전쟁 언저리 모습입니다. 이리하여, ‘강낭알’을 심은 아이들은 저희 보금자리에 머물지 못합니다. 어디론가 떠나야 합니다. 애써 심은 강낭알을 거두지 못한 채 떠나야 해요. 전쟁 불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전쟁 손아귀에서 뛰쳐나와야 합니다. 조용히 흙을 일구며 살던 시골사람은 낫이랑 호미랑 괭이만 손에 쥐면서 수수하게 살림을 지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총칼 탱크 전투기에 밀려서 보금자리를 잃거나 잊어야 합니다.




어매캉 아배캉 난데 밤별 쳐다보며 고향 생각 하실 때만 (25쪽)



  총칼하고 탱크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총칼하고 탱크를 젊은이 손에 쥐어 주면서 서로 ‘죽일 놈’으로 여겨서 참말 죽이라고 시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왜 낫이랑 호미랑 괭이를 지어서 흙을 가꾸지 않고, 온갖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젊은이 손에 쥐어 주고는 서로 죽이고 죽는 끔찍한 전쟁을 일으켜야 할까요?


  정치권력이 다르니 전쟁을 해야 할까요? 나라가 달라졌으니 서로 싸워서 한쪽은 몽땅 죽어야 할까요? 정치권력이 다르고 나라가 달라도 똑같이 밥을 먹고 강냉이를 먹는 살림이지 않을까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흙내음을 맡으면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나날이 되지 않을까요?


  서로서로 사이좋게 모여서 강낭알을 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강낭알을 네 밭에도 심고 내 밭에서 심으면서 여름 바람이 차분해질 무렵 함께 오두막에 모여서 강냉이를 폭 삶아서 맛나게 잔치를 벌일 수 있기를 빌어요. 네 강냉이도 맛있고 내 강냉이도 맛있는 기쁜 살림을 나눌 수 있기를 빌어요. 오순도순 어우러지는 두레랑 품앗이가 이 땅에서 새롭게 살아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저마다 제 밭을 가꾸면서 사랑할 수 있기를 빌어요. 4349.1.1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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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6-01-13 00:27   좋아요 0 | URL
이 그림책 저도 읽었어요. 사투리 입말이 정말 정겨워서 뒤에 실린 표준어로 고친 시가 얼마나 싱거운지 비교되더군요^^

숲노래 2016-01-13 05:31   좋아요 1 | URL
표준 서울말이 참... 싱겁지요 ^^;;;
고장마다 교과서도 다 고장말로 가르치면
한국 문화가 한결 재미나게 살아날 텐데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합니다 ^^
 
질척질척 철퍼덕 진흙 할아버지 꼬꼬마 도서관 5
오시마 다에코 지음, 육은숙 옮김, 가와카미 다카코 그림 / 학은미디어(구 학원미디어)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06



아이들은 흙을 만지면서 놀고 싶다

― 질척질척 철퍼덕 진흙 할아버지

 오시마 다에코 글

 가와카미 다카코 그림

 육은숙 옮김

 학은미디어 펴냄, 2006.5.5. 8500원



  모래가 있는 바닷가에 가면 바닷물에 뛰어들어 놀 수도 있고, 모래밭에서 모래를 쌓으면서 놀 수도 있습니다. 볕이 따숩고 바람이 없는 날이라면 겨울에도 바닷가로 자전거를 달려서 모래밭놀이를 하러 갑니다. 다른 고장이라면 엄두를 못 낼 수 있지만, 전남 고흥이라는 고장에서는 한겨울에도 무척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곤 해서, 이런 날은 모래놀이나 흙놀이를 하기에 좋습니다.


  집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바닷가로 가서 모래놀이를 할 수 있고, 뒤꼍에서 흙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호미로 땅을 쪼고 꽃삽으로 다지며 손으로 무늬를 그리면서 저마다 재미난 흙집을 지으면서 놀아요.


  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흙을 일구며 살았고, 흙으로 집을 지었으며, 흙에서 난 것으로 실을 얻어서 옷을 지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러한 피를 물려받아서 흙놀이를 좋아할는지 모릅니다. 몸으로 먼저 알기 때문에 흙을 맨손으로 만지면서 놀 적에 무척 기뻐하면서 하루 내내 재미나게 웃음을 지을는지 몰라요.



비가 내리는 숲 속은 안개가 낀 듯 흐릿해요. 나무가 도깨비처럼 보이고, 어쩐지 보통 때하고는 다른 기분이 들어요. “피피야, 어쩐지 무섭다. 그치?” (4쪽)




  오시마 다에코 님이 글을 쓰고, 가와카미 다카코 님이 그림을 그린 《질척질척 철퍼덕 진흙 할아버지》(학은미디어,2006)를 읽습니다. 어머니랑 아이랑 개 한 마리, 이렇게 셋이 깊은 숲에 있는 작은 집에서 산다고 하는데, 이 작은 ‘숲집’에 사는 아이는 날마다 숲마실을 다녀요. 나이로 치자면 예닐곱 살 즈음 되지 싶은 ‘그림책 아이’인데 개 한 마리를 이끌고 씩씩하게 숲마실을 누립니다.


  아이는 혼자 다닌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집에는 어머니가 있고, 언제나 함께 다니며 노는 개가 있어요. 그리고 숲에 깃들면 수많은 숲동무가 이곳저곳에서 나타나요. 그림책 《질척질척 철퍼덕 진흙 할아버지》에서는 ‘진흙 동무’가 짠 하고 나타나지요.



단비는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면서 데굴데굴 구르네요. 바로 그때예요. 진흙탕 속에서, “어이쿠, 위험해!” 하는 소리가 나더니 검은 덩어리가 불쑥 솟아올랐어요. 그리고 단비를 와락 감싸 안았어요. (8∼9쪽)



  비가 오는 날 비옷을 입고 숲마실을 나온 단비(그림책 아이)는 어쩐지 이날 따라 무섭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앞뒤를 안 가리고 막 숲을 가로지르면서 달리는데, 돌멩이에 걸려서 넘어지려 해요. 이때에 땅밑에서 커다란 진흙덩이가 솟아올라요. 땅밑에서 솟아오르는 커다란 진흙덩이가 단비를 포근히 안아 주기에 단비는 조금도 안 다칩니다.


  커다란 진흙덩이는 단비한테 말을 걸어요. 이 진흙덩이는 진흙 할아버지라고 합니다. 지렁이를 귀여운 동무로 삼는 멋진 ‘흙 할아버지’입니다. 흙 할아버지 곁에는 흙 아이가 있어요. 이 흙 아이들은 단비라고 하는 멋진 아이가 숲으로 찾아와 주어서 반갑습니다. 흙 할아버지도 흙 아이도 숲 아이인 단비하고 함께 놀기로 합니다.




“할아버지, 우리 함께 놀아요!” 단비는 진흙 할아버지를 잡아끌었어요. “그래, 그래. 비가 그칠 때까지만이다.” 그때 여기저기 진흙탕 속에서 진흙 꼬마들이 나타나 진흙 할아버지를 따라왔어요. (12쪽)



  숲이란 어떤 곳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풀하고 나무만 우거지면 숲이라고 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흔히 시골이라 일컫는 곳은 논밭이랑 집만 있는 자리가 아니라, 마을이 숲에 포근히 안긴 곳이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오늘날에는 도시하고 멀리 떨어진 곳을 가리켜 시골이라 하지만, 예부터 시골이라고 하는 곳은 바로 숲으로 둘러싸여서 숲내음을 마시고 숲넋을 키울 만한 보금자리였지 싶어요.


  아이들은 숲에서 마음껏 여러 동무하고 이웃을 만나면서 놉니다. 어른들은 숲에서 나무를 하거나 나물을 합니다. 아이들은 숲에서 실컷 뛰놀거나 뒹굴면서 씩씩하고 의젓하게 자랍니다. 어른들은 숲에서 얻은 나무로 집을 짓거나 불을 피울 뿐 아니라, 숲에서 얻는 나물로 맛난 밥을 짓습니다.


  그리고, 숲이 있기에 늘 싱그러우면서 푸른 바람이 불어요. 맑으면서 따사로운 바람은 숲에서 태어납니다. 여기에다가 깨끗하고 시원한 물은 숲에서 샘솟지요. 냇물도 샘물도 숲에서 솟아요. 사람으로 태어나고 먹고 마시고 누리는 모든 숨결을 숲에서 얻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나, 진흙 할아버지 무릎이 의자가 되었네. 따뜻하고 흔들흔들 재미나요. 해님 냄새도 나고요.” 드르렁드르렁, 진흙 할아버지 숨소리가 들려요. 피피도 진흙 꼬마들도 잠이 들었어요. 단비도 스르르 잠이 들었어요. (23쪽)



  숲에 깃들어 흙 할아버지하고 노는 아이는 할아버지 몸에서 해님 냄새를 맡습니다. 해님은 흙을 따사로이 감싸고, 해님 기운을 받은 흙은 풀이며 꽃이며 나무이며 튼튼하게 북돋웁니다. 흙이 있어서 씨앗을 심습니다. 흙이 있기에 꽃이 핍니다. 흙이 있기에 숲이 우거져요.


  그림책 아이는 온통 흙투성이가 되도록 놉니다. 흙 아이를 동무로 삼기도 했고, 흙 할아버지가 지은 흙집에 들어가서 소꿉놀이도 하거든요.


  우리 집 아이들도 아주 꽁꽁 얼어붙도록 추운 날이 아니라면 맨발에 맨손으로 흙밭에 온몸을 맡기면서 놀기를 좋아합니다. 손발에서 흙내음이 나는 놀이를 즐기고, 온몸에서 흙가루가 포시시 떨어지도록 흙을 가까이합니다.


  흙을 만지면서 흙을 압니다. 흙을 만지면서 흙을 생각합니다. 흙을 만지면서 흙을 노래합니다. 흙을 만지면서 삶을 새로 배우고 사랑을 새로 가꿉니다. 4349.1.1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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