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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말하는 여우 -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감동 그림책 시리즈 1
이모토 요코 그림, 코와세 타와미 글, 프뢰벨교육연구소 옮김 / 프뢰벨행복나누기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08
동무가 된 아이와 여우 사이를 갈라놓는 어른
― 내 친구, 말하는 여우
코와세 타마미 글
이모토 요코 그림
프뢰벨교육연구소 옮김
프뢰벨행복나누기 펴냄, 2004.1.15. 8000원
이모토 요코(いもと ようこ, 1944∼)라는 일본 그림책 작가가 있습니다. 나는 이분 그림이 어릴 적부터 익숙합니다. 어릴 적에는 이분 이름을 모르는 채 이분 그림을 둘레에서 아주 쉽게 보았습니다. 공책이나 책받침이나 책살피나 문방구 같은 데에 곧잘 이분 그림이 나왔거든요. 이와사키 치히로(いわさきちひろ, 1918∼1974) 님 그림도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보았어요. 이밖에도 일본 그림책 작가 여럿 작품은 한국에 퍽 널리 조용히 들어왔습니다. 다만 1980년대가 저물고 1990년대로 접어들 무렵까지 ‘누구 그림’인지 감춘 채 들어왔지요.
내가 어릴 적에는 그냥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그림’이라고만 여겼고, 그저 ‘한국 어떤 그림책 작가’가 그렸겠거니 하고 여기던 그림인데,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되어 그림책을 살피다가 이모토 요코 님 작품이나 이와사키 치히로 님 작품을 ‘책으로 만나’면서 크게 놀랐습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런 멋진 그림과 그림책을 빚은 이웃나라 사람 삶을 하나도 안 보여주었기에 나도 그저 모르는 채 살았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겁내지 마. 내가 도와줄게.” 타미는 여우에게 조심조심 다가갔어요. “커다란 가시네. 가시덤불에 걸렸었구나!” 타미는 여우 발에서 가시를 뽑아냈어요. (5쪽)
《내 친구, 말하는 여우》(프뢰벨행복나누기,2004)는 코와세 타마미 님이 글을 쓰고, 이모토 요코 님이 그림을 그린 책입니다. 책이름에 잘 나오듯이 ‘말하는 여우’가 나오는 그림책이에요.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 ‘타미’라는 아이가 있고, 이 아이는 숲에서 혼자 놀다가 여우를 만납니다. 그런데 여우가 슬프게 울어요. 아이는 여우한테 다가갑니다. 여우가 무서워하니 여우를 달래면서 가만히 살핍니다. 이러다가 여우 발에 가시가 박힌 줄 알아채고는 살살 뽑아 줍니다.
발에 박힌 가시가 빠진 여우는 홀가분하면서 기쁩니다. 이때 여우는 아이한테 ‘말하는 여우’ 모습을 드러내요. 아이는 여우한테 스스럼없이 다가갈 줄 알았기에, 여우가 말을 할 적에 놀라기는 했지만 둘이 사이좋은 동무가 될 수 있으리라 느꼈어요. 이날부터 둘은 숲에서 살가운 놀이동무가 되어서 한껏 즐겁게 뛰놉니다.
다음 날, 타미는 숲 속으로 갔어요. “말하는 여우를 다시 만나면 좋을 텐데…….” 바로 그때였어요. 바스락바스락. 누군가 갑자기 덤불 속에서 툭 튀어나왔어요. (8쪽)
그런데 말이지요, 아이랑 여우는 서로 사이좋은 동무이지만, 어른들 생각은 다릅니다. 어른들은 이 아이가 숲에서 혼잣말을 하면서 떠든다고 여깁니다. 게다가 여우라는 짐승을 제대로 만나거나 사귄 적도 없으면서 그저 여우를 나쁘게만 바라보아요. 타미네 어머니와 아버지도 타미가 더는 숲으로 못 가게 막을 뿐 아니라, 여우는 무서운 짐승이라고 말합니다.
마을 어른들이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타미랑 여우가 얼마나 사이좋게 노는지 마을 어른들이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아니 마을 어른들도 숲에서 사는 수많은 짐승하고 사이좋게 지내면서 함께 놀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 보았다면, 참말 다를 텐데요. 아무래도 마을 어른들 스스로 ‘아이처럼 여우하고 동무로 사귄’ 적이 없기 때문에 여우를 나쁘게 볼는지 모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마을 어른들뿐 아니라, 여느 자리에 있는 퍽 많은 어른들도 ‘여우나 여러 숲짐승을 이웃으로 여겨서 사귀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해요.
아이는 여우하고 동무가 될 수 없을까요? 어른은 여우하고 이웃이 될 수 없을까요? 우리는 누구를 동무로 여겨야 할까요? 우리한테는 누가 이웃이 될 만할까요?
마을 사람들은 타미를 점점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어요. “타미가 산마루에서 혼잣말을 하고 있더라니까요!” “혹시 여우에게 홀린 게 아닐까요?” 그 소문은 타미의 엄마와 아빠에게까지 들렸어요, “타미야, 이제 숲 속에 가면 안 된다!” 엄마가 단단히 일렀어요. (15쪽)
동무가 된 아이와 여우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는 어른입니다. 그러나 어른으로서는 어쩔 수 없구나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마음으로 바라보며 서로 동무가 되지만, 어른들은 마음이 아닌 겉모습으로 바라보다가 이모저모 따지기 때문입니다.
참말 눈을 가만히 감고 마주하면 ‘말하는 사람’이든 ‘말하는 여우’이든 똑같을 텐데요. 우리가 동무나 이웃을 사귈 저에 ‘눈을 감고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다면, 겉모습이나 재산이나 이런저런 것을 따지지 않을 텐데요.
그렇잖아요. 반가운 동무는 잘생기거나 못생기지 않아요. 동무를 사귈 적에 얼굴을 볼 일이 없어요. 아니, 동무하고 사귀며 놀 적에 얼굴을 바라보기는 할 테지만, 얼굴 생김새가 잘생겼거니 못생겼거니 따지지 않아요. 우리는 얼굴 생김새로만 동무가 되거나 같이 놀지 않으니까요.
어른들이 함께 일하는 이웃을 사귈 적에도 이와 같아요. 겉모습이나 생김새만으로 ‘함께 일할’ 수 있어요. 마음으로 믿고 기대며 아끼고 보살피고 어깨동무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일 때에 비로소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여우를 잡으려고 산에 올라갔어요. 타미는 여우가 걱정이 되었어요. 타미는 몰래 집에서 빠져나와 산으로 올라갔어요. 타미는 말하는 여우를 찾아 헤맸어요. 그러나 말하는 여우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말하는 여우야…….” 타미는 너무나 지쳐 쓰러지고 말았어요. (26쪽)
그림책 《내 친구, 말하는 여우》에 나오는 조그맣고 여리며 어린 아이 타미는 여우가 걱정스럽습니다. 마을 어른들은 여우 사냥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여우가 ‘잘못한’ 일은 하나도 없지만, 여우 같은 짐승은 숲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먼먼 옛날부터 숲에는 여우뿐 아니라 늑대도 이리도 삵도 범도 곰도 오소리도 너구리도 족제비도 쥐도 뱀도 잔나비도 솔개도 매도 수리도 올빼미도 소쩍새도 꾀꼬리도 박새도 할미새도 모두모두 저마다 사이좋게 어우러져서 지내는데, 사람들(아니 어른들)은 그만 사람 아닌 짐승은 숲에서 사라져야 하는 줄 여기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은 ‘사람인 동무와 이웃’도 사귀지만 ‘짐승인 동무와 이웃’도 사귀는데다가 ‘풀과 꽃과 나무인 동무와 이웃’도 사귀는데, 어른들은 이 대목을 자꾸 놓치거나 잊고 말아요. 어른들 스스로 얼마 앞서까지 아이였던 줄 잊었기 때문일까요.
포근한 마음이 흐르는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는 동안 아이들은 이 줄거리에 빠져듭니다. 나도 곁에서 이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아이랑 여우가 부디 오래도록 사이좋은 동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림책을 넘깁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여우를 비롯한 숲짐승’을 살가운 이웃으로 여길 줄 아는 슬기로운 어른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림책을 펼칩니다. 온누리 아이들 누구나 마음에 한가득 사랑을 담아서 기쁘게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는 어른으로 거듭나기를 꿈꾸면서, 이모토 요코 님 이쁘장한 그림책을 새삼스레 읽고 자꾸 읽어 봅니다. 4349.1.1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