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기억 시리즈를 세 권째 읽는다. 나는, 이 시리즈를 편역한 저자의 주제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른 이가 분류하고 골라낸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들여다보면서 나와는 다른 관점, 혹은 나와 같은 의견을 발견해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 읽게 된다. 그러다보니, 나는 이 책을 정독하기보다 훑어읽는 느낌으로 읽었다.
마침, 어제, '더 드레서'라는 연극을 보았다. 연극 속에서 나는 수없이 많은 세익스피어의 대사를 들었다. 가끔은, 이렇게 비슷한 경험들을 한꺼번에 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크게 4개의 챕터로 구분하고 있다. 첫번째는 마법 같은 사랑과 운명 속을, 두번째는 로맨스 코미디의 서사를, 세번째는 정의에 대한 딜레마를, 네번째는 인간의 욕망과 권력을 다룬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다룰 때 여러 관점이 있을 것이다. 그중 저자의 관점에서 끌어올린 문장을 읽어본다.
첫 장에서는 마법 같은 사랑과 운명을 다룬 작품을 소개한다.
운명적 만남: 변장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 Twelfth Night_십이야
이 당시에는 유럽에서 "여성 위장극"과 성별을 바꾸는 테마가 유행했다고 한다. 남성이 여성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극중에서 다시 남성으로 성별을 바꾸는 상황도 종종 생겼다고 한다. 여성을 연기하는 남성이, 남성으로 변장한 여성을 연기하는 셈이다. 이로 인해 관객으로 하여금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십이야는 그런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장에서는 The Tempest_템페스트, Romeo and Juliet_로미오와 줄리엣, A Midsummer Night’s Dream_한여름 밤의 꿈을 만나볼 수 있다.
두 번째 장에서는 로맨스 코미디의 서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장에서는 The Merry Wives of Windsor_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The Two Gentlemen of Verona_베로나의 두 신사, The Taming of the Shrew_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소개되는데, 개인적으로 읽어 본 작품이 말괄량이 길들이기 뿐이다.
sentence 081
Better three hours too soon than a minute too late.
1분 늦는 것보다 3시간 일찍 도착하는 게 낫네.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 나오는 문장인데, 이야기 속에서 어떤 의미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나도 공감하는 문장이다. 그래서 실제로 나는 일찍 가서 기다리는 편이기도 하고.
이 작품은 ≪헨리4세≫를 본 엘리자베스 여왕이 팔스타프라는 캐릭터에 반해 요청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팔스타프 외에도 여러 작품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한다. 2주만에 집필했다는 말도 있는 이 작품은 그래서인지 특별한 대사나 문장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특별한 것은 서민의 삶을 그려낸 세익스피어의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sentence 140
No profit grows where is no pleasure ta'en. In brief, sir, study
what you most affect.
즐기지 못하면 얻는 게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에게 가
장영향을 주는 것을 공부하세요.
세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최초로 새로운 매체, 그러니까 유성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많이들 아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페미니즘 관점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여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고, 대중성을 가진 자품이기도 하기에 나만의 관점, 그리고 다른 이들의 관점을 비교해봄 직하다.
세 번째 장에서는 정의에 대한 딜레마를 다룬다.
Julius Caesar_율리우스 카이사르, The Merchant of Venice_베니스의 상인, Cymbeline_심벨린, Hamlet_햄릿을 소개하는데, 심벨린은 내게는 낯선 작품이다.
sentence 144
Not that I loved Caesar less, but that I loved Rome more.
카이사르를 덜 사랑한게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네.
카이사르의 암살에 성공한 후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의 충신이었던 안토니까지 암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시민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카이사르를 암살한 것이니 불필요한 살인을 더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추모사를 하던 안토니가 카이사르가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순식간에 브루투스는 위대한 카이사르를 암살한 반역자로 몰린다.
최근의 한국 상황이 겹쳐 떠오른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카이사르도, 브루투스도 하나의 고정된 특징이 아니라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정치란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네 번째 장은 인간의 욕망과 권력을 다룬다.
King Lear_리어왕, Othello_오셀로, Macbeth_맥베스가 그것이다. "오셀로가 정의를 추구했다면 왜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졌던 걸까요. 그의 정의는 자신을 위한 정의였기 때문일 겁니다. 오셀로가 진정 정의로운 사람이었다면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모든 것을 판단하지는 않았겠죠. 확실한 증거와 모든 인물의 말을 들어본 후에 결정했을 겁니다."(p.190) 저자의 이 말은, 세익스피어가 '오셀로'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라면, 지금도 여전히 '정의'를 말하면서 '자기 자신만을 위한 정의'를 구하면서 마치 모두를 위한 정의라고 거짓 선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 책을 통해 세익스피어의 여러 문장을 살펴볼 수 있었다. 약간 아쉬운 것은 그 문장들이 내 마음까지 흔들지믐 못했다는 점이다. 역시 책을 읽고 밑줄을 긋는다면, 내가 직접 읽고 문장을 새겨야 하는 것 같다.
이 책의 마지막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수록되어 있다. 세익스피어는 희곡 뿐만 아니라 소네트도 154편이나 썼다. 식상한 표현으로 인기가 식어가던 소네트를 다시 유행시키기도 했다. 원래의 소네트와는 다른 내용을 담기 위해 자신만의 소네트 형식을 만들었기에, 그것을 세익스피어식 소네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sentence 289
When forty winters shall beseige thy brow
And dig deep trenches in thy beauty's field,
Thy youth's proud livery, so gazed on now,
Will be a tatter'd weed, of small worth held.
마흔 번의 겨울이 그대의 이마를 공격하여
아름다운 들판에 깊은 주름을 새긴다면,
지금 사람들이 감탄하는 그대의 젊음의 화려한 옷은
낡고 해진 누더기가 되어, 하찮게 여겨지리라.
문장의 기억 시리즈를 읽으며, 내가 직접 읽고 직접 문장을 골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 책이 어떤 이에게는 세익스피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그를 더 알아보고 싶어서 그의 작품을 읽어보게 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나는,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다시 한번 차근차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제 느낌과 생각을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