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ㅣ 우리 아이 인성교육 37
리우쉬궁 지음, 우디 옮김 / 불광출판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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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는다고 기도를 한다. 

그것도 수십 년 동안 '비'라는 글자 하나만 써 온 스님이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처음부터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비가 내리는 것은 자연의 일인데, 사람이 아무리 간절하게 기도한다고 비가 내릴까. 비가 오려면 구름이 만들어지고 대기의 조건이 맞아야 하는 것이지, 사람의 간절함이 하늘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이것이 세상을 오래 살아온 어른의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고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고, 최선을 다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있다는 사실도 안다. 그러니 기도로 비를 내리게 한다는 이야기가 쉽게 믿어질 리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장을 덮고 나서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비가 내리는 기적이 아니라, 스님이 평생 써 온 '비'라는 글자였다.


꼬마 스님은 글을 읽지 못한다. 다른 스님들이 경전을 읽고 공부하는 동안 그가 쓸 수 있는 글자는 오직 하나, '비(雨)'뿐이다. 스님은 매일 마당을 쓸고, 물을 긷고, 밥을 짓고, 채소를 가꾸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그 글자를 쓴다. 그렇게 스무 해가 흐른다.


처음에는 한 글자밖에 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스무 해라는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쓸 수 있는 글자가 하나뿐이라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수많은 글자를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림책 속 '비'라는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한자 雨는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닮았다. 글자 안에 이미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보이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 한 글자가 그림책 속 수많은 그림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스님은 평생 같은 글자를 썼지만, 매일 같은 비를 쓴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기쁜 날의 비와 슬픈 날의 비가 달랐을 것이고, 마음이 평온한 날과 답답한 날의 붓끝도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글자는 하나였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매일 달랐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글자를 하나밖에 모르는 스님이 더 이상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간절함'의 의미다.


우리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때로는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기만 한다. 기도하고, 소망하고, 좋은 결과가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정말 간절하게 바란다는 것은 무엇일까.


스님은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이미 스무 해 동안 자신의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왔다. 마당을 쓸고, 밥을 짓고, 채소를 가꾸고, 매일 한 글자를 썼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한 일도 아니었고, 언젠가 특별한 기적을 이루기 위해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루하루 반복했을 뿐이다.


나는 그 반복이야말로 간절함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간절함은 마음속으로 무엇인가를 강하게 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바람을 위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내일도 다시 해 보고, 당장 달라지는 것이 없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더 가까울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반드시 원하는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스님이 스무 해 동안 글자를 썼다고 해서 실제로 비가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기도가 자연의 질서를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 그림책이 말하는 기적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스님이 쓴 글자가 비가 되어 세상을 적시는 장면은 자연의 법칙을 뛰어넘는 사건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한결같이 쌓아 온 마음이 마침내 세상에 닿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작은 행동들이 모여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고, 보잘것없어 보였던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적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리우쉬궁 작가는 이 그림책을 완성하는 데 약 3년의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어쩌면 작가 역시 매일 그림을 그리고 고치면서 스님처럼 자신의 '비'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 다시 제목을 바라본다.

'비'

짧은 글자 하나에 이토록 많은 시간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비는 사람이 기도한다고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은 분명 사람의 몫이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기적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날들을 묵묵히 살아 내는 동안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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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것들의 시선에서
이꽃님 지음 / 이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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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다큐멘터리의 인터뷰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김벼리라는 낯선 여자아이를 만나 겪은 일들을 여러 인물이 각자의 시선에서 들려준다. 아이들의 뒤를 밟는 수상한 여자아이의 등장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처음에는 불안과 의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점차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 이르면 휼민이가 이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이유가 드러난다.


책을 읽다 보면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상황들이 등장한다. 부모의 말에 삐딱하게 대꾸하고, 방문을 닫은 채 대화를 거부하고, 가족보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는 부모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그런데 김벼리라는 아이가 나타나면서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다. 단절되었던 부모와 자녀 사이에 대화가 생기고, 아이들의 일상에서 한발 비켜나 있던 어르신들도 제 역할을 찾아간다. 마을의 미용실은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 되고, 아이들의 활기와 움직임은 마을 전체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다양한 가정과 관계의 모습도 담겨 있다.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가 사회에서 살아가는 문제, 조손가정의 현실, 세 친구 사이에 새로운 친구가 등장하면서 달라지는 관계와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아이의 감정, 학교폭력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까지.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특히 어른들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또 다른 이야기도 흥미롭다. 아이들의 행동으로 뭔가가 변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어른들이 도움을 주고 상황을 정리한 내용들이 나타난다. 


인터뷰 형식의 구성도 인상적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사람마다 기억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독자는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를 다큐멘터리 화면으로 생각하면 장면과 시선이 빠르게 전환되는 셈인데, 이런 구성은 짧고 빠른 전개에 익숙한 청소년들의 독서 방식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


물론 김벼리라는 인물과 그 아이가 만들어 내는 변화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 아이의 등장이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서로 무관심했던 이웃들을 연결한다는 설정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형제자매와 이웃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어른들은 남의 집 아이도 함께 돌보며 살았다. 이 책에서도 벼리의 등장으로 아이들은 자신의 형제자매뿐 아니라 친구의 형제자매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를 돌보기 시작한다. 이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책을 덮고 나서도 그런 따뜻한 관계의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이 책에서 누군가의 성장은 비극적이고 아픈 경험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상처를 딛고 성장하는 일은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곁에서 손을 내밀고, 관심을 기울이고, 때로는 함께 책임을 나누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부모만의 몫이 아니듯, 아이들이 겪는 문제 역시 아이들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성장을 도와야 하지만, 때로는 그들이 겪는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결국 이 책은 누군가의 관심과 도움이 한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나의 작은 관심과 행동 역시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사족: 책 디자인이 상당히 레트로다. ㅡㅡ 서점에서 눈으로 보고 고를땐 망설여질듯. 작가 이름이 아니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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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나라 2 (양장)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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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다 읽고 나니 당연히 2권이 궁금해졌다.

세종이 장영실에게 “목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물었으니, 이제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한글 창제의 순간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그리고 또 하나.

1권에서 헤어진 한석리와 숙현 아씨는 어떻게 될까.


역시 2권도 잘 읽힌다. 김진명 작가의 소설답게 사건은 빠르게 진행되고, 세종의 문자 창제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자리를 찾아간다.


명을 섬기는 것이 조선을 위한 길인가


2권의 시작부터 세종은 명의 무리한 요구와 맞닥뜨린다.

이미 수많은 말을 바쳤는데 다시 소 육천 마리와 말 오천 마리를 요구한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곧 명에 대한 불충이라며 세종을 압박한다.


읽으면서 답답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의 시대적 환경도 생각하게 된다.

명을 사대하는 것이 조선의 도리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사고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그것이 약소국인 조선을 지키고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던 대신들도 있었을 것이다.


파격적인 변화 앞에는 언제나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믿었던 질서를 바꾸자고 하면,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생긴다. 더구나 당시 조선과 명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 저항에는 나름의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반대를 단순히 사대주의라고만 몰아붙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소설 속 세종이 바라보는 조정은 그렇지만 훨씬 답답하다.

한석리의 처벌을 두고 신하들이 ‘성현의 가르침’을 들고나오자 순식간에 한목소리가 되고, 세종은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이 조선의 조정인지 공자의 조정인지 혼란스러워한다.


조선의 왕이 있는데 조선의 생각은 어디에 있는가.


1권에서 세종이 장영실에게 ‘목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면, 2권에서는 그 생각이 훨씬 구체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글이 물과 같이 흐른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누구에게나 도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세종에게 새로운 글자는 단순히 중국과 다른 조선만의 문자를 갖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자를 알고 사용할 수 있는 일부 사람만이 아니라, 글을 모르는 백성도 자신의 말을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집현전에서 세종이 던지는 말은 더 직접적이다.

“조선의 백성은…… 하늘의 자식이 아니란 말인가?”


글자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양반과 백성의 차이를 넘어 누구에게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길로 나아간다.

그 과정이 얼마나 순탄치 않았을지는 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소설 속 세종의 외로움과 답답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왜 우리만 글자가 없는 것이오?”

몸이 쇠약해진 세종이 마지막처럼 던지는 이 질문에는 단순한 분노보다 답답함과 절박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반대하는 사람과 자기 이익만 좇는 사람은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하게 된 부분이 하나 있다.

변화에 반대한다고 해서 모두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명을 거스르는 것이 조선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것이 기존 질서를 흔드는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판단에 동의할 수는 없어도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하거나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신의 자리와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1권에서 숙현 아씨를 공녀로 보내는 데 관여했던 윤교찬이나 하영번 같은 인물들은 2권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나라가 어떻게 되느냐보다 자신의 자리가 먼저이고, 백성이 어떻게 사느냐보다 자신의 안위가 중요하다. 시대가 달라져도 이런 사람들은 늘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세종에게 반대했던 인물들보다 오히려 이런 인물들이 더 싫었다.

신념 때문에 반대하는 것과 자신의 영달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까.


한석리와 숙현 아씨, 그리고 각자의 자리


1권에서 헤어졌던 한석리와 숙현 아씨의 이야기도 2권에서 어느 정도 매듭을 찾아간다. 공녀가 되어 명으로 향해야 했던 숙현과 그녀를 놓칠 수밖에 없었던 한석리.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궁금했는데, 2권에서는 다시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누군가는 나라를 바꾸려고 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결국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결국 우리 글자를 갖는다는 것


『세종의 나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크게 보탠 소설이다.

그래서 1권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작가의 상상인지 구분하면서 읽을 필요는 있다. 그럼에도 두 권을 다 읽고 나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꽤 분명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말이 있는데 왜 우리의 글자는 없는가.


남의 글자를 빌려 우리의 말을 적어야 했던 시대에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편리한 글자 하나를 발명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일이었고, 당시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겼던 중국으로부터 정신적으로 한 걸음 떨어져 나오는 일이었으며, 무엇보다 글을 가진 사람들의 권리를 글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에게까지 넓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세종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결과를 이미 알고 읽는데도 그곳까지 가는 길이 궁금해진다. 김진명 작가는 역시 이런 이야기를 잘 쓴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부분도 있고, 때로는 ‘조금 너무 나간 것 아닌가?’ 싶은 장면도 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어느새 그가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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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나라 1 (양장)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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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작가를 처음 알게 된 책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였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고 소설 속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던 때이기도 했지만, 책을 읽으며 느꼈던 묘한 흥분은 아직도 기억난다.


김진명 작가의 소설에는 그런 게 있다.

우리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의식하게 만들고, 역사와 민족, 국가라는 조금 거창한 단어에 마음이 움직이게 만드는 힘. 요즘 말로 하면 이른바 ‘국뽕’이 마구 솟아나게 하는 이야기 말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후에도 김진명 작가는 소재를 달리하면서 이런 결의 소설을 계속 써온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는 세종이다.


사실 당장 읽으려고 산 것은 아니었는데, 한번 꺼내 읽기 시작하니 후루룩 읽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금방 1권을 다 읽었다.


짧은 소제목을 따라 이야기가 빠르게 이어지고 문장도 어렵지 않다. 역사소설이라고 해서 많은 배경지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사건과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속도가 붙는다. 조금 어린 친구들도 충분히 읽을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화요설, 그리고 사라진 역사의 흔적

1권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것은 ‘반화요설(反華妖說)’이다.

세종에게 반화요설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의문이다. 과거 반화요설때문에 스승은 죽임을 당했고, 그 내용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서책은 하나도 없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죽었거나 입을 닫는다. 양녕대군 역시 알고 있는 것이 있지만 끝내 발설하려 하지 않는다.


세종은 한석리를 불러 이 오래된 흔적을 좇게 한다.

그래서 반화요설은 단순히 ‘그것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수수께끼라기보다, 누군가에 의해 지워지고 사라진 역사와 생각을 되짚어가는 장치처럼 보인다.


첫 장에서 명나라 사신은 세종에게 조선은 법률도, 월력도, 서책도, 글자도 명나라의 것을 가져다 쓰면서 왜 소리는 제멋대로 내느냐고 몰아붙인다. 심지어 ‘백두산’조차 중국식으로 소리 내야 한다고 한다. 상당히 도발적인 시작이다.

이 장면을 읽고 나면 반화요설을 둘러싼 이야기가 단순히 명나라에 맞서느냐 따르느냐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1권에서는 본격적인 한글 창제 과정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대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것을 향해 조금씩 길이 놓인다.


한석리와 숙현 아씨


또 하나의 축은 한석리와 숙현 아씨다.

숙현은 꽤 인상적인 인물이다. 조선시대 여성이라는 배경을 생각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성향과 심지를 지녔다. 양반이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나무라는 사람에게 숙현은 오히려 양반이 일하지 않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아 먹는다면 도적과 무엇이 다르냐고 되묻는다. 지금 들어도 꽤 당돌한 말이다.


포석정에서 한 줄의 글로 선비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장면도 그렇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모습도 그렇다. 실제 조선시대에 이런 여성이 가능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현대적인 인물이다.


소설을 읽다가 조금 뜬금없다고 느낀 것도 있었다. 연잎의 성질을 이용해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만든 옷이 나오고, 지금으로 치면 핫팩 같은 열주머니도 등장한다. ‘조선시대에 벌써 이런 걸?’ 싶었다. 다만 이런 장치들을 장영실이라는 인물과 연결한 것은 꽤 영리하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발명가 장영실’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소설적 상상력을 펼치기 좋은 인물이다.


그리고 1권의 마지막에 가까워지면서 장영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세종이 장영실에게 묻는다.


“영실아, 목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겠느냐?”


글자가 그림이라면 글자가 가진 소리 역시 그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세종의 생각이다.

우리는 이미 이 생각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알고 있다.


역사소설을 읽을 때는 한편으로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세종, 장영실, 양녕대군처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실존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이 등장하면 이야기는 훨씬 생생해진다. ‘정말 이런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허구의 인물만 등장하는 소설보다 쉽게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사실과 허구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소설 속 세종이 한 생각과 행동이 모두 역사 속 세종의 것은 아니고, 소설 속 장영실이 만든 물건과 그가 한 역할 역시 모두 역사적 사실인 것은 아니다.


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 마찬가지다.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들이 작품 속에서 한 일까지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역사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실제로는 어땠을까?’를 한 번쯤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세종의 나라』 1권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역시 이것이다.

김진명 소설은 잘 읽힌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고 다음 장면이 궁금해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그러면서도 슬그머니 마음 한구석을 건드린다.

우리의 말은 무엇인가. 우리의 글은 왜 필요했을까. 강대국의 문화와 질서 속에서 우리의 것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런 질문을 아주 직선적으로 던지는 것이 김진명 소설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또 ‘국뽕’이 슬그머니 차오른다.


물론 나는 이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던 때처럼 소설 속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을 구분하려 하고, ‘정말 그랬을까?’ 하는 의심도 품는다.


그리고 1권 마지막에 가까워져 세종이 던진 질문 하나 때문에 2권이 궁금해진다.

목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소리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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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미풍 -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위화 지음, 백도라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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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책은 『허삼관 매혈기』를 읽었고, 그 다음은 기억에 없다. 


이 책을 읽은 다음, 다른 책을 더 읽어볼 마음은 가졌으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산곡미풍』은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이 아니라 위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만나는 책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부모, 고향, 병원에서 보낸 시간, 가족과 함께한 일상처럼 아주 개인적인 기억들이 이어진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오래된 기억을 읽고 있는데 자꾸 내 기억이 따라 나왔다.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경험을 계속 쌓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것. 그때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전혀 다른 의미로 돌아오는 것.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의 풍경이나 그때 먹었던 음식, 함께했던 사람들, 아무 생각 없이 주고받았던 말 같은 것들 말이다. 당시에는 그것들이 이렇게 오래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살아오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은 따로 있었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주 사소했던 순간들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좋은 기억만 그런 것도 아니다. 힘들었던 일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하면 그때와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산곡미풍』을 읽는 동안 위화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자꾸 내가 살아온 시간을 생각했다. ‘산곡미풍’, 골짜기에 부는 산들바람이라는 제목도 책을 다 읽고 나니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바꾸는 것이 언제나 거창한 사건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 날 불어온 바람처럼 아주 사소한 기억 하나가 불쑥 찾아와 오래전의 나를 만나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은 결국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어느 날 문득 불어온 바람 하나에 되살아날 오래된 풍경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이 책에서 2024년 4월 10일자로 쓰여진 [청춘이 없다]를 다시 한번 읽어본다. 베이징에 와서 가장 매료된 점이 "난방기"였다고 한다.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손을 불어가며 글을 쓰던 작가의 과거는 베이징에 와서 본 난방기가 꽤 인상깊었던 것이다. 


​초대소의 2인 1실을 사용하던 천홍과 친구네 집 빈방에서 지내던 위화가 야간 산책 때 울긋불긋 화려한 커튼을 다양하게 보았던 기억을 풀어낸다. 낮에는 꾀죄죄했지만 밤이 되면 불 켜진 창에 걸린 커튼이 화려하게 보였던 것이다. 위화와 천홍은 커튼에 비친 사람이 부러웠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집이 있었지만 그들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위로했는데 "우리는 집이 없어도 청춘이 있잖아."(p.241)라고...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지금 우리는 집이 생겼지만, 청춘이 없다."(p.241)라고.


나도 얼마 전까지는 내 집이 없었다. 지금도 물론 3분의 2 이상이 은행 지분인 집이지만, 자기 집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다. 옛 시절을 살았던 어르신들이, 화려한 야경을 내려다볼 때 "저 많은 불빛으로 반짝이는 집이 있는데, 저 안에 왜 내 집은 없을까"라고 읖조리리던 말들이 겹쳐 떠오르는 것이었다. 


어쩌면, 위화의 이 산문집은 그 시절을 조금이라도 겪었던 우리 또래에게 위로가 되는 글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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