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충 3대 비극 - 제10회 상상만발 책그림전 수상작 지식 그림책 5
이승아 지음 / 이루리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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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에 이곳 에코델타시티로 이사를 왔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에코델타시티에 첫 입주를 시작하는 아파트였다. 그러니 사방은 허허공터였고, 밤이면 개구리 소리가 꽤 시끄럽게 들렸다. 눈앞을 날아다니는 날파리들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벌레들이 한가득인 곳이었다. 1년 사이에 주변은 여전히 허허벌판이지만, 그 많던 벌레들이 제법 많이 사라졌다. 인간들이 살기 시작하면 확실히 다른 생물들은 힘을 잃는 것 같다. 


빨간색 무대 커튼 사이로 모기와 바퀴벌레, 그리고 초파리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해충 3대 비극이라는 걸 보니 이들의 이야기이지 싶다. 아이들은 '비극'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비극이란 인생의 슬픔, 고통, 파멸을 주제로 한 문학·연극 장르로, 주인공의 불행한 결말을 통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고 네이버는 설명한다. 우리가 지금부터 보게 될 비극은 해충을 주인공으로 한다.


제사상을 차려놓고 있는 모기. 장구벌레들은 오지 않는 모모를 찾는다. 어이없게도 모기의 제사상 앞에는 모기향이 있다. 올여름엔 너무 더워서 모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래도 숲으로 가면 모기가 제법 있었다. 7월 초에 야외활동을 하면서 제법 많이 물렸다. 모기는 암컷이 문다고 한다. 여름밤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 귀 옆에서 들려오는 앵~~ 소리에 잠을 설친 날이 제법 된다. 이 그림책 속 사람들처럼 어둠 속에서 모기소리를 쩣아 손바닥을 내리친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주인공 모기도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 모기의 선례를 알고 있기에 절대 빨간 것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어이없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고 만다.


다음 등장 해충은 바퀴벌레이다. 아, 정말 징그럽게 생긴데다 색깔까지 비호감이다. 지구에서 아주 오래산 바퀴벌레지만, 인간에 의해 여전히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음식 찌꺼기가 있는 곳에 모여 든 바퀴벌레는, 음식인줄 알고 달려들었지만, 극약을 먹고 죽고 만다. 


마지막 이야기는 초파리다. 초파리 역시 얼굴이 비치고 좋은 향이 나는 곳에 가지 말라고 그렇게 교육을 받았지만, 결국은 유혹에 이끌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고 만다. 물론 초초는 죽어가면서도 웃고있었다지. 


세 해충들의 이야기를 유머를 섞어 전달하지만, 그건 인간의 관점에서 그렇지, 그들에게는 이런 비극도 없다. 


이 그림책의 마지막 장에 오면 이들의 영정 사진이 보인다. 물론 이 해충들의 죽음에 전적으로 인간이 관여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동물 순위 1위가 모기라고 하니 정말 놀랄 일이다. 그런데 2위를 보면 더 기가 찬다. 사람이다. 더군다나 전쟁이나 인간이 낸 사고를 제외하고 인간이 인간을 죽인 숫자만으로 2위로 차지했다. 결국은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동물은 이 3대 해충들이 아니라 인간들이란 말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해충들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해충3대비극이었다. 


이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어본다면, 해충에 대해서도, 비극에 대해서도,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초등 저학년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다보면 그림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문자 자체가 추상적인 기호이지만, 그 기호를 한번 더 꼬아놓은 그림글자는 더 어려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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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0
김선미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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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 스티커의 기원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누군가를 놀리거나 욕하는 문구를 적은 종이를 등에 붙이는 악의적인 장난에서 영감을 받은 걸 수도 있다. '바보', '멍청이' 같은 단어가 등에 붙은 걸 발견한 상대가 폭발하면 '장난이었어. 왜 그렇게 화를 내?' 하며 변명하는 폭력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니까. 사실 기원이야 어찌 되었든 내 알 바 아니고, 처음 보는 저주 방식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다양한 이유로 싫었지만, 그게 꼭 저주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은 어차피 기후 이변 문제 하나만으로도 종말의 길을 착실히 걷고 있다.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인공지능 같은 기술 문제도 있으니 그냥 둬도 곧 멸망할 것 같았다. p.27



어렸을 때, 유치한 장난이지만 친구 등에다 놀릴만한 문구를 써서 붙여놓고 깔깔대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 장난 같은건가? 김선미 작가의 '스티커'를 읽은 뒤 '비스킷'을 읽었다. '비스킷'이 시기상으로 먼저 나온 책이라, 이 책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김선미 작가는, 약간 뭐랄까, 기후 위기나 자연현상과 재해 같은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아마도 작가의 기본 성향 또는 지향점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세상을 보는 아름다운 시선만큼이나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애정이 묻어난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 그리고 사회에 나왔을 때 겪게 될 현실에 대해 걱정은 했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없었다. 그냥 내 아이라도 이 험한 세상에서 별 탈 없이 살아내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청소년들의 고민을 잘 짚어 낸다. 그것을 '스티커'라는 징벌 개념의 저주를 통해 드러낸다. 다만,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해결책은 상대방 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이러한 해결책은 '긍정적 에너지'가 아닌 '부정적 에너지'를 증가시킨다. 


복수하고 싶다면 무덤을 두 개 파 놓으라는 말이 있다. 하나는 상대의 무덤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무덤이라고 한다.p.63


"맞아.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주 스티커는 떨어져서 땅으로 스며들어 저주 스티커에 깃든 부정적인 에너지가 땅에 흡수되는 거지. 부정적인 에너지가 축적되다가 더 이상 땅이 품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거야. 작게는 진도가 낮은 지진이나 규모가 작은 해일이 일어나고, 크게는 산사태, 폭풍, 대형 산불, 진도가 큰 지진이 발생해."p.93


사회적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제재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남을 배려하고, 약자를 도와주며, 기본을 지키는 사회.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런 사회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세상이기에 상대도 나와 같은 고통을 받아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저주 스티커를 판매하는 주인공은 요마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다. 우연히 손에 넣은 저주스티커 제작 도구로 소소하게 용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도와달라고 외치지 않아서 그래. 요즘 사람들은 섣부르게 나서려고 하지 않거든. 도움받을 일이 생기면 주변에 있는 사람을 특정해서 도와달라고 해야 해. 거기 안경 쓴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병실을 방문한 경찰이 설명했다. 도움을 받을 때도 지침이 있다는 게 이상했다.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아서 도움받지 못한거라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오히려 동물이 인간보다 더 나은 게 아닐까. p.54


살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세상과 맞닥뜨릴 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볼 때 무기력함을 느낀다. 도움을 받을 때도, 누군가를 콕 집어서 요청해야한다는 게, 피해자 입장에서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할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보면 당연히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보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고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주술적인 '저주'라는 것, 그러니까 사적인 제재이면서 익명을 보장할 수 있는 징벌의 방법이 있다면 솔깃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요마도 알고 있다. 가해자에게 똑같은 방법 혹은 상응하는 방법으로 벌을 주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을. 다만,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는 기분마더 옳지 않다고 가볍게 치부할 생각"(p.105)도 없다.


책에서는 요마의 반대편에서 저주스티커를 떼고 다니는 '소우주'라는 아이가 나온다. 소우주의 가족들은 저주스티커를 제거하는 일을 한다. 소우주를 통해 저주가 아닌 스스로 강해짐으로써 부당한 세상에 맞서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딪쳐야지. 부딪쳐도 깨지지 않도록 널 단단하게 만들어야지. 지금은 이 아이가 입김만 불어도 날아가게 생겼잖아. 네가 널 지켜 줘. 땅에 딛고 선 두 다리에 힘주고 눈에도, 가슴에도, 손가락에도 힘을 빡 주고 계속 널 지켜 내는 거야. 널 욕하고, 때리고, 힘들게 하는 아이들에게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거야. 처음에는 힘들 수 있어. 하지만 갈수록 나아질 거야. 약속해. 오늘부터 널 지켜 내는 연습을 하면 시간이 지나 네 앞에 어떤 멍청이가 나타나도 너는 깨지지 않을 수 있어."


아, 그렇구나. 지켜 줘야 하는 거였구나. 마음이 부서지려고 할 때, 나쁜 마음이 날 잡아먹으려고 할 때, 내가 날 지켜줘야 했구나. 내가 날 지켜 주지 못해서 나는 저주 스티커를 만들었던 거구나.p.204


스스로 강해지라고 하는 말은, 전작에 등장했던 '무너져 내리고 스스로 비스킷이 되어 버린 아이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서는 해낼 수 없지만, 그때 곁에서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준다면, 혼자가 아니기에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저주 스티커를 주문했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누군가를 미워하고 저주하고 싶은 순간들이 쌓여 오히려 나를 망쳐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책에서는 스스로 그렇게 자신을 지켜내야한다고 말하면서, 소우주와 다른 주변 인물들을 통해 곁에서 너의 편이 되어 힘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청소년들의 마음을 만져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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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의 세상 - 제1회 사회평론 어린이·청소년 스토리대상 대상 수상작 사회평론 어린이문학 1
정설아 지음, 오승민 그림 / 사회평론주니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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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죽음의 문이 어디에 있는데?"

내 물음에 아빠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미지의 세상에 있을 것 같다."

"미지의 세상?"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 말이야. 바다 깊은 곳이랄까?"

-중략-

"네가 아빠를 좀 보내주라."

"어딜?"

"바다지, 어디긴 어디야. 그게 네가 해야 할 역할 같다."  p.16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죽음을 목도한다. 

뉴스 속 죽음은 현실감이 없으니 제쳐두더라도, 

늘 함께 하던 반려동물의 죽음이나,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들의 죽음도 심심찮게 맞닥뜨린다.

사람마다 그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이 다 다르다.


이루는, 

갑자기 아빠가 죽은 후, 집안에서건 밖에서건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소설이 이루의 시선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런 사실을 잘 느낄 수 없다.

별 문제 없는 아이 이루에게 죽은 아빠가 '죽살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질 뿐이다. 아빠가 신종 귀신이 된 것인지, 아빠의 진짜 모습을 잊은 것인지, 이 일이 꿈인지 헷갈리지만, 아빠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이루는 생각한다. 귀신들에게서는 항상 사연이 넘쳐 나고, 귀신이 된 이유와 자주 나타나는 장소, 하는 행동 등이 정말 다양하다. 하지만 죽었다가 살아난 후 살아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돌아다닌다는 귀신은 없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 '소생'이라면, 아빠는 소생한 걸까? 그렇지만 아빠는 자신이 살아난게 아니라고 말한다. 


이렇게 만나게 된 아빠귀신, 아니 아빠와 이루는 아빠가 원하는 바다로 보내주기 위해서 함께 움직인다. 『이루의 세상』이라는 제목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해하였다. 


​엄마나 주변 사람들은 이루에게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 아닐까 걱정을 한다. 하지만 이루는 자신이 그런 트라우마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가 죽은 후 대부분의 어른들은 '엄마 마음'을 잘 헤아리라고, 말 잘 들으라고 말했다. 이루는 '어른들은 아이가 다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p.79)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서 가장 많이 다친 사람은 이루 자신이었다. 


이루의 세상에서는 핏빛 비가 내리거나, 나무가 되어 혼자만 움직일 수가 없다. 구렁이 모습의 괴물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빠가 굳은 표정으로 넌 나무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루  자신도 나무가 아니란 걸 알고 나무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왜 날 괴롭히는 거야?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이 사라지게 해줘!'

속으로 외치는데 아빠가 말했다.

"말을 해야 알지. 괴로우면 괴롭다고.”(p.99)


이루는 사람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빠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슬프고 두려움이 많이 앞섰다. 이루가 귀신 책을 들춰 보고 공포물을 찾아본 것은 무섭고 싶지 않아서, 잘 견디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루에게 아빠는 말한다.


"그런데 그거 아냐? 귀신이든 좀비든 강시든, 모두 살아있는 사람이 만든 존재야. 사람들의 생각에서 나온 거지. 사람들은 귀신이 한 맺혀서 나타나는 거라고 하지만, 어쩌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한이 남아서 귀신을 만들어낸게 아닐까 싶어. 죽은 사람을 무섭거나 슬프거나 황당한 존재로 만들어 놓아야, 자신이 느끼는 무서움, 슬픔, 황망함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서……………."(P.147~148)


이루는, 자신이 얼마나 아빠를 그리워했는지 깨닫는 순간, 땅이 흔들리는 지진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만든 세상은 두렵고 무섭고 슬펐다. 이제 아빠의 세상을 보고 싶었다. 


이루가 자신만의 세상, 두렵고 무서웠던 그곳에서 나와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가 이끌어내 주기는 어려웠다. 자기 스스로 그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어떤 사람은 죽음이나 슬픔이라는 감정을 툴툴 털고 나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그게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고, 죽음과 이어진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에겐 더욱 그러하다.


이루는 어린 나이에 아빠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이루를 걱정하고 기다려준 사람들이 있었다. 이루의 세상은 그렇게 좀더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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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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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상큼발랄할 에세이일 것이라고 상상했는데 그렇진 않았다.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보고, 막연히 그런 책일 거라 생각했다. 최지은 작가의 전작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건 완벽한 나의 실수이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에는 맞지 않았지만, 작가의 마음이 읽혀졌다.


나는 가족에 대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다른 부분보다, 특히 나는 가족이나 집안 사람들에 대해서는 냉정한 편이다. 살갑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최지은 작가는,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를 흐릿하게 기억합니다. 처음은 나의 이름을 읽고 쓰는 것. 다음으로 할머니의 이름, 아빠, 언니, 돌아가신 할아버지, 큰아빠, 큰엄마, 작은고모, 작은고모부...... 가족들의 이름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의 호칭이 아니라 이름을 기억하는 것, 호칭과 이름을 연결하는 것, 그리고 나의 손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적고 잠시 바라보는 것. 그것이 할머니와 나의 단란한 놀이였습니다." (p.22)


"나의 불행과 어머니의 부재를 연결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이름을 알지 못했고, 어머니의 이름을 나의 손으로, 나의 글씨로 받아 적어본 적 없으니까. 단 한번도 "엄마"라는 말을 소리 내어 불러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나에게 어머니는 '없는 세계'였습니다. (p.22)


어린 시절, '나'가 가지지 못한 것, '나'에게 없는 그것으로 인해 친척 집에 가면 늘 뭔가를 망가뜨리는 사람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완벽하지 않은 것. 사람들은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진실이고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면, 부족하거나, 정상이 아닌 것으로 결정해버린다.


작가에게 가난과, 어머니의 부재,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조손가정이라는 '사정'은 늘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만들었다. '가난한 형편에 무엇이든 망가뜨리면 할머니가 곤란해질 것'(p.73)을 걱정해야 하는 아이는 '만지는 것'보다 '보는 것'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눈밭에서 눈을 뭉치고 굴리는 것보다 눈 내리는 정경을 바라보는 것이 좋고 파도 속에 몸을 맡기는 것보다 저만치서 바닷소리를 듣는 것이 좋다. 물건을 사러 가서도 "착용해보세요" 권하는 직원의 친절에 "그냥 볼게요"로 답하는 것이 편해졌다. 물론 내 것을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것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p.73)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것이 작가의 환경이나 작가의 주변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냥, 성향상 그렇게 되는 사람도 있다. 결국은, 그것이 나의 모자람과 나에게 없는 '부재'의 대상때문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작가는 글을 써서 내보낸 자신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송신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어쩌면, 나는 작가가 원하는 대로 읽지 않은 독자일 수 있다. 나와 작가의 상황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니까 그럴 수 있지 않겠나. 많은 부분, 나와는 다른 상황인식, 그리고 다른 감정선을 느껴서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다음에는 좀더 밝고, 가벼운 글로 다시 만나고 싶다.


"어려서 할머니의 돌봄을 받고, 할머니로부터 스스로 돌보는 법을 배운 내가 이제야 할머니를 돌보는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죽음은 예외 없이 완전한 타인의 돌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흙이 되고, 구름이 되고, 바다가 되어 완전히 되돌아갈 수 있도록."(p.84)


"한 사람의 부재는 세계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뒤흔든다. 한 사람이 스스로 사라진 구멍은 그가 존재했던 세계를 무너뜨린다. 한 사람의 자살은 남은 사람의 세계를 틀림없이 파괴하고 영영 복구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만다. 녹지 않는 눈송이가 허공에 멈춰 있는 '겨울' 속에 한참을 가두어두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내가 또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봐. 이파리 하나라도 상하게 만들까봐. 나는 얌전히 조심한다. 사라지지 않는 누군가의 숨결이 내 안에서 흐르는 것을 느낀다."(p.105)


"나는 순한 어린이였습니다. 크게 말썽을 피우거나 무언가를 요구하는 어린이가 아니었어요. 조손가정의 어린이로서 '나는 할머니를 힘들게 하지 말자, 무엇이든 적당히 잘하자' 하는 마음이 늘 앞섰습니다. 조용하고 희미하지만 커다랗고 무변하게 늘 내 앞에 서 있던 그 마음이 무엇인지 그때의 어린이는 몰랐지만 할머니는 걱정했을지 모릅니다. 내 앞에 서 있는 그것이 나보다 더 크게 자라날까봐."(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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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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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좀 심뽀가 좀 고약해서인지,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린 화제작 등은 잘 안읽는다. 어쩌면 이 책도 그런 이유로 읽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소설집이라서 다른 계간지 등을 통해 읽은 소설도 있었다.


이번에 독서동아리 선생님들과 읽을 책을 고르다가, 7~8월 여름 동안은 이런저런 이유로 집중하기 어려운 시기기도 하고 해서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추천을 했다. 내가 읽기 전에 대학생인 딸에게 먼저 읽어보라고 줬더니,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혼모노...라는 소설집의 제목이자 동명의 소설은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았다. 일본문화에 대해 개방적인 나지만, 소설집의 제목이 일본어를 차용한 것이 마음에 안들었다. 일본 잡지도 늘 읽고, 일본 소설도 그림책도 좋아하지만, 한국 소설에 일본오 제목이란것은 이상하게 맘에 안들었다.


하지만,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진짜인가 가짜인가, 진짜는 진짜인가, 진짜 가짜인가, 진짜와 가짜는 어떻게 구분하나....등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소설이 혼모노였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집에서,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잉태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예술에 도취된 사람들이 불편했다."(p.17)


왜냐하면, 자칭 시네필이었던 전 애인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타인에게 자신의 예술적 취향을 강요하던 사람. 취미가 없는 것을 기이하게 여기던 사람. 심미안이 없다며 면박을 주던 사람. 모럴이 없다며, 지루하다고 했던 그 사람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모럴'의 뜻을 검색해본다.


모럴: 인생이나 사회에 대한 정신적 태도,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의 구분에 관한 태도.


'나'는 어느날 혼자 보게 된 영화 '인간불신'에 압도되어 김곤 감독의 팬이 된다. 잘 나가던 김곤 감독에게 '그 일'이 일어나면서 국내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인격자라도 된 듯 돌을 던지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그가 안쓰러웠고, 이해가 되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다가도, 어느날은 자신에 대한 불신이 커지기도 한다.


길티클럽의 사람들을 만나기로 한건, 어쩌면 이 사람들은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돌팔매질 앞에서도 여전히 그를 우상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기에 묘한 동질감과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들과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애를 낳아보니 알겠더라고요. 그게 실수가 될 수 없다는 걸요. 끔찍한 일이에요. 그건,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몇번이고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감독님께 물어보고 싶었어요. 한번도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잖아요. 미안하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게 없던 일이 될 순 없겠지만. 사람은 변할 수도 있으니까요."(p.48)


폭탄을 건드린 미지 선생님의 이야기에, '나'는 누군가가 항변해주기를 바란다. 무슨 말이라도 당당하게 해주었으면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아무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폭탄을 막아야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나'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여자'에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더 가혹한 거 아닌가요? 입증된 것도 없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 사건을 어떻게 사실이라 단정 짓는지, 무고한 사람을 왜 죄인으로 모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게 더 가혹한 일 아니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믿어야죠. 우리는 그래야 되는거 아녜요?"(p.49)


믿음.


어쩌면 이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과연 '어떤 믿음'이란 게 있을까 고민하였다. 근거와 논리가 있는 믿음이 아닌 무조건적이고, 광기 어린 믿음을 강요하는 사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쪽이 아니면 저쪽이 되어야 하는 현실. 그런 믿음 앞에 근거, 논리, 이런 건 사치였다.


정치적 현실을 떠올리긴 했지만, '나'의 경우처럼 '독자인 나' 역시 그런 믿음으로 여전히 모임을 계속 하고 있는 대상이 있다. 바로 요 며칠 전에도 '근거 없는' 가짜 뉴스로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의 '믿음'은 여전히 그를 두둔하고 있었다. 사실은, 어떤 사건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에게 가해지는 '여론의 처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나'가 '그 여자'에게 말했듯이.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지난 이년간 저는 하루하루를 참담한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쳤다는 것 잘 압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작업했던 스태프들, 그리고 제 작품을 사랑해 주신 관객분들께 죄송합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 송구스러우나 영현군에게도 진심으로 사죄하려 합니다. 죄송합니다."(p.56)


김곤의 진정성 있는 사죄가 이루어졌던 GV에서 오히려 '나'는 그동안 내가 믿어왔던 것들이 모두 가짜가 되는 경험을 한다. 생각할수록 허무해지고 괴로워지는 그 날이었다.


이 소설의 제목이 왜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일까 하던 즈음, 호랑이 만지기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치앙마이 패키지 여행에 타이거 킹덤 체험을 한다. '나'는 그곳에서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악취"(P.62)를 느낀다.


모형으로 보일만큼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호랑이 등 뒤에서 호랑이를 쓰다듬는다. '나'는 내키지 않아 망설이는데 사육사가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알고 설명을 한다. "발톱이랑 송곳니를 다 빼서 괜찮대요"(P.63) 야생의 본능을 상실한 호랑이는 호랑이일까? 무기력하게 누워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호랑이, 불편한 듯 근육을 움찔대긴 하지만, 덤벼들지 않는 호랑이를 만지며, '나'는 "어쩐지 죄를 저지르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흥분되"는 것을 느낀다. 길티클럽과 호랑이 만지기는 둘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을 주는 것이었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에서 여재화는 취조실을 설계하며 어려움에 봉착한다. 

"공간을 설계할 때는 요령과 경험도 필요하나 그것만을 불가결이라 할 수는 없었다. 불가결은 상상력이었다. 무형의 공간에 선을 더하고 면을 채우고 종국에는 인간까지 집어넣는 일. 그곳에서 살아갈 인간을 위한 자문자답은 기본이거니와 미학과 독창성까지 살리는 일. 그것이 건축가가 갖추어야 할 불가결이었다. 한데 이 취조실은 채우면 채울수록 공허함만 커졌다."(P.180)


여재화는 자신의 순수했던 시절을 떠나보내고, 이제는 세속이나 명욕 같은 불순물만 남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동조의 반응 정도만 기대하며 푸념을 하던 여재화는 구보승의 대답을 듣고 당황한다. 구보승은 본인이 도면을 수정해보겠다는 것이다.


구보승은 창문을 모조리 지운 뒤 사견을 전한다. "제 생각에, 이 공간엔 창을 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피조사자가 유리를 깨고 밖으로 나갈 가능성도 있고 자칫 비명이 새어나갈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이 생기잖습니까. 죽고자 하는 사람도 빛 속에선 의지와 열망을 키웁니다.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을 수도 있고 흔들렸던 신념이 굳건해질 수도 있죠."(P.181)


여재화는 빛이 사람의 마음을 두드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한줌도 안 될 인간다움이나마 지킬 수 있다면 지킬 수 있도록 창을 넣었다. 물론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는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내 생각엔) 그 공간을 설계하고 있는 여재화, 본인을 위한 의미가 컸다.


여재화는 삼층 설계를 구보승에게 맡긴다. 제자를 위하는 마음에서였다기보다, 제자의 공을 가로채기 위한 마음과,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한 속셈이었다. 구보승은 결과적으로 폭이 좁은 수직창을 배치하였는데, 희망이 인간을 잠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고문이라는 걸 의도한 배치였다. 여재화는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이라고 가르쳤고, 건축은 인간을 위한 공간이 되어야한다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구보승이 만든 건 인간의 희망을 짓밟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가 원하는 취조실이라는 공간 건축을 수락하는 순간부터 여재화가 말하는 '인간을 위한 건축'이라는 개념은 허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애초에 목적 자체가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인데, 그곳의 햇볕이 어떻게 인간의 희망을 붙들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을 위한 건축이 진짜 건축이라면, 여재화가 수주받은 그 건축은 가짜 건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여재화의 건축물이 아닌 구보승의 건축물로 이름 붙여졌더라도 말이다.


《잉태기》를 읽는다. 이 소설이 내게 어떤 울림을 줬다기보다 육아와 자녀교육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번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미안해하지도 겸연쩍어하지도 않고 내 돈을 거리낌 없이 쓰는 아이. 나는 이것을 사치라 생각지 않는다. 이욕도 아니지. 이 아이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누릴 뿐이다. 자연스럽고 기껍게."(P.244)


서진의 엄마는 이혼한 딸의 출산을 도와주기 위해 괌에 있는 병원을 정해준다. 삼십년 전만 해도 돈만 있으면 뉴욕으로 출산원정을 갈 수 있었는데, 시부가 매섭게 반대하고 한푼도 보태주지 않을거라 하는 바람에 하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 내 딸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엄마는 서진이 시부, 그러니까 서진의 할아버지와 서진이 잘 지내는 것이 마땅찮다. 서진이라는 이름이 있는데도 복이라고 부르는 사람. 시모는 시부를 일생 부모 정 못 받고 살아온 사람이라며 서진의 엄마와 시부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가, 난 말이다, 결핍이 집착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애정도 적절히 내어줄 줄 알아야해.. 아가, 넌 저 양반처럼 살지 마라. 저 양반은 안 닮았으면 좋겠어."(P.273)


이 소설에서 시모는 딱 저 정도 등장하지만, 시부와 며느리인 서진엄마를 가장 잘 파악했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결핍이 내 핏줄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을 경고한 것이다. 둘 다 서진이를 위한 것이라 하지만, 자신의 출산조차 엄마와 할아버지의 의견에 이리 왔다 저리갔다 하는 서진을 보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 사이에서 외줄타기하듯 살아왔을 서진이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상황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며 살아온 영악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공항에서 두 어른이 싸울 때, 양수가 흘러 고통을 호소하는 서진이의 외침은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나는, '나'여야 한다. 서진이에게 준 사랑을 두 사람은 진짜라 여겼겠지만, 결국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나 진짜였지, 서진이에게는 가짜였다. 공항에서의 싸움 씬 뒷 장면을 상상해본다. 아무래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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