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 식물학자가 자연에서 찾은 풍요로운 삶의 비밀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존 버고인 삽화 / 다산초당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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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와 안전을 갈망한다. 하지만 이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다. 생태심리학자들이 보여주듯 감사의 실천은 과소비에 제동을 건다. 선물의 관점에서 관계를 증진하면 결핍과 부족함의 감각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충분함의 분위기가 조성되면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굶주림이 가라앉는다. p.22


감사와 호혜성은 선물 경제의 화폐다. 여느 화폐와 달리 교환이 이루어질 때마다 양이 불어나고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면서 에너지가 집중되는 놀라운 성질이 있다. 진정한 재생가능자원인 셈이다. 인간 경제의 화폐가 어머니 대지님에게서 비롯하는 흐름을 모방한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선물의 화폐를 상상할 수 있을까? 관계로서의 호혜성에 대해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내가 말하는 호혜성은 의무가 결부된 쌍방 교환이 아니다. 그러므로 상호적 '지불'로 해소될 수 없다. 이런 호혜성은 선물이 멈추지 않고 퍼져 나가도록 한다. 그러면 선물은 축적되어 정체하는 일 없이 계속 움직인다. p.24~25


자연경제에서 흐름의 원천이 태양이라면 인간 선물 경제에서 선물의 흐름을 끊임없이 보충하는 '태양'은 무엇일까?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p.29


선물 경제는 시장경제보다 먼저 등장한 대안이자 '삶을 지탱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선물 경제에서 부는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을 만큼 가진 상태로 받아들여지며, 풍요를 다루는 방법은 내어주는 것이다. 실제로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많이 쌓아두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베푸느냐다. 선물 경제의 화폐는 관계다. p.50


돈이 만들어지려면 사고팔 상품이 있어야 한다. 상품이 희소할수록 가격이 높아지고 수익이 커진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풍성하고 거저 얻을 수 있는 대지의 선물을 상품으로 전환하여 사유화하고 높은 가격을 매겨 희소하게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이 시장경제학이다. 미친 짓 같다.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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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평소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와 '풍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더 많이 가져야 안정되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감사하고 나누는 마음에서 진정한 풍요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특히 "선물 경제의 화폐는 관계"라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신뢰와 배려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큰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자연이 원래는 모두의 선물이었는데, 그것을 희소한 상품으로 만들어 가치와 가격을 매기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묻는 부분이었다. 평소에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내용이라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결국 풍요는 얼마나 많이 쌓아두느냐가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데서 만들어진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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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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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책 한권 들고 나와 오롯이 그 이야기 속에 파묻히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은 오후반차를 쓸 예정이었고, 바로 귀가하기보다 카페라도 가서 책을 읽을 생각을 했다.


책장에 꽂혀있지만, 아직 읽지않은 책 중에 한권을 들고 나왔다. 


이 뜨겁고 쨍한 여름날에 읽을 책은 아닌 것 같았지만, 책을 펼친 뒤 세 시간 정도 만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제목부터 죽음과 장례식을 이야기하고 있어 조금 무겁고 서늘한 느낌이 들었지만, 막상 읽고 나니 죽음보다는 남겨진 삶과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최근 다양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죽은 사람을 보거나 그들의 사연을 해결해 주는 주인공을 자주 접해서인지, 처음에는 이 책의 설정이 조금 식상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마지막 순간 단 하나의 기억만을 간직한 채 나타나고, 그 기억에 얽힌 일을 해결한 후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점차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다음에 나타날 사람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져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죽은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기억은 대부분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미처 전하지 못한 진심을 전하고 싶어 했고, 누군가는 고마웠다는 말을 남기고 싶어 했다. 또 누군가는 남겨진 사람을 걱정하며 부탁을 전했고, 누군가는 살아 있을 때 하지 못했던 사과를 건넸다. 죽은 사람의 마음이 전달되면서 남아 있는 사람 역시 오랫동안 품고 있던 미안함과 원망에서 조금씩 벗어나거나, 잃어버렸던 삶의 의지를 다시 찾기도 했다.


결국 죽은 사람과 산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고맙다는 말이나 미안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미루며 살아간다. 나중에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나중’이 반드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죽음 앞에서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이 대단한 성공이나 재산이 아니라 한 사람과 나눈 기억이나 전하지 못한 말일 수 있다는 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책을 읽으며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생각해 보았다. 특별히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큰 어려움 없이 필요한 것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다. 삶에 대한 거창한 기대는 없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한 즐거움에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나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늘 더 큰 목표나 특별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지금 가진 것을 편안하게 누리고 작은 즐거움을 알아보는 것도 괜찮은 삶의 모습일 것이다. 다만 언젠가 후회하지 않으려면 마음속에만 담아 둔 고마움과 미안함은 조금 더 자주 표현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완벽한 장례식』은 마지막 순간에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은지 묻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여전히 낯설고 무겁지만, 그 질문을 통해 지금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마지막에 떠올릴 단 하나의 기억이 무엇일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후회보다는 따뜻한 기억이 남을 수 있도록 오늘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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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월급사실주의
남궁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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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에는 비정규직 아나운서, 공부방 운영자, 식당 수습 직원, 프랜차이즈 본사 직원, 간호조무사, 물류센터 일용직, 프리랜서 통역사, 비건 식당 매니저 등 서로 다른 노동 현장을 다룬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1. 남궁인, 「오늘도 활기찬 아침입니다」


지방 방송국의 프리랜서 아나운서 지민은 새벽 방송과 각종 행사를 병행하고, 퇴근 후에도 SNS로 자신을 홍보한다. 방송국 공채지만 안정적인 직원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이유로 불평하지 못하지만, 지민의 노동은 소득과 고용 모두 불안정하다. 특히 여성 방송인에게는 실력뿐 아니라 외모, 나이, 이미지 관리까지 노동으로 요구된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면 열악한 근무조건도 감수해야 할까?


2. 손원평, 「피아노」


혜심에게 공부방은 처음에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수익과 생존의 문제이다.

노동에서 순수한 열정은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할수는 있지만 현실과 마주치면 노동은 이상과 같은 방향으로 세우기가 어렵다.


3. 이정연, 「등대」


전 직장에서 해고된 설희는 복어 전문점의 수습 직원으로 일한다. 정직원 전환을 기대하며 부당한 말과 행동을 참는다. ​

설희가 부당함을 참는 이유는 소극적인 성격 때문만이 아니라 정직원이 되어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4. 임현석,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화장품 프랜차이즈 본사 영업부 직원 진영과 가맹점주 선영. 진영은 점주의 어려움을 이해하면서도 선배에게 배운 화법과 웃음, 공감하는 척하는 태도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 


이 작품에서 ‘인성’은 실제 사람됨이라기보다 웃음, 친절, 공감하는 말투처럼 외부에 드러나는 태도에 가깝다. 회사에서 잘 풀리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기보다 조직이 원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연기하고 성과를 내는 사람일 수 있다.


5. 정아은, 「두 친구」


지현과 승미는 친구였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다. 병원에서 간호조무사와 환자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과거와 현재, 우월감과 열등감, 부러움과 연민이 복잡하게 뒤섞인 관계를 보여준다.


6. 천현우, 「빌런」


소설 속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위치에 있지만 서로 연대하기보다 학벌, 업무 배치, 온라인 평판을 두고 상대를 공격한다. 구조적인 노동 문제에 대한 분노가 사회가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개인에게 향한다. 


7. 최유안, 「쓸모 있는 삶」​


사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편집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쓸모’는 누가 결정하는가?​


8. 한은형, 「식물성 관상」


식물을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생 민지는 비건 식당을 운영하는 보이사에게 발탁되어 매니저가 된다. 


“진정성 없는 게 이 시대의 진정성”이라는 말은 보이사의 사업관을 압축한다. 그는 비건이라는 가치를 실제로 실천하기보다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이미지를 판매한다. 문제는 단순한 ‘패션 비건’이 아니라, 윤리적 언어를 이용해 노동자를 착취하고도 자신을 진보적인 사람으로 포장한다는 데 있다.


이 소설집에서 노동은 단순히 돈을 버는 행동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을 계속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 외모, 감정, 양심, 인간관계, 신념까지 내놓는다. 그런데 성실하게 일한다고 해서 안정된 삶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조직에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작품 속에서 잘 풀리는 사람은 조직의 논리를 빨리 이해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용하며, 자신의 진심을 감추는 데 능숙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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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찾기의 기쁨 - 지금의 나를 건강하게 하는 제철휴식
유보라 지음 / 북스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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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에도 제철이 있다면 그건 바로 오늘, 지금일 거예요. 오늘의 휴식을 내일로 미루면, 일상은 금방 상해버리니까요."(p.9)


공부도 잘 쉬어야 잘 할 수 있고, 일도 잘 쉬어야 더 잘 할 수 있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 말을 잘 생각해보면, 뭔가를 잘 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있는 쉼이다. 


그래서였을까. 쉬고 나서도 충분히 쉬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은. 휴식하는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제 다시 뭘 해야 하지?'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휴식찾기의 기쁨』을 읽으면서 나에게 물었다.

나에게 '쉼'은 무엇일까?


50대가 되어 시작한 본격적인 '혼자 놀기'

3~40대의 시간을 보내면서는 잘 생각하지 않았던 소재이자 주제이다. 50대의 나는 '혼자 놀기'를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은 뭔가를 할 때 누군가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하고, 혼자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기도 한다. 혼자 다니는 모습이 마치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친구가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신경 쓰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요즘 혼자인 시간이 첨 좋다. 


혼자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보고 싶은 전시가 있으면 혼자 기차를 타고 가기도 하고, 공연 하나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기도 한다. 

누군가와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쉬어가고, 배가 고프면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서 먹는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오래 머물고, 별로라면 미련없이 돌아선다. 

무엇보다 편안한 것은 내 뇌가 동반자인 누군가와 끊임없이 보폭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저 사람은 괜찮을까?'

'힘들지는 않을까?'

'이걸 먹고 싶어할까?'

'이제 이동해야하나?'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배려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오롯이 내 기분과 내 몸의 신호에만 귀를 기울이면 된다. 

그래서 내가 혼자 노는 시간은 단순히 혼자 보내는 시간이 아니다.

회사 업무로 지친 몸과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놓는 시간이고.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서 해야 하는 일에서 잠시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다. 


쉰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쉼은 나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무엇을 더하거나 덜어낼지 능동적으로 결정하는 시간이다. 산책을 하기로 결심하거나 특정 모임을 가지 않기로 선택하는 일도 포함된다. 결국 쉼은 내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변화를 주는 일이다. (p.16)


산책을 하기로 하는 것도 쉼이고, 가고 싶지 않은 모임에 가지 않기로 하는 것도 쉼이다. 늘 가던 길 대신 다른 길을 걷고, 낯선 음식을 먹고, 평소 듣지 않던 음악을 듣는 것도 휴식이 될 수 있다.


책에서는 '일상에 균열 만들기'(p.56~57)를 소개한다. 


장소와 사람, 익숙한 경로를 바꾸는 물리적 균열. 새로운 음악과 음식, 전시를 만나는 감각적 균열. 늘 반복하던 감정에서 한 발짝 물러나 다른 방식으로 반응해보는 정서적 균열. 기록을 통해 나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는 인지적 균열.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소통의 균열.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혼자 놀기도 이런 ‘균열 만들기’에 가까웠다.

늘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 일과 집안일의 리듬에서 잠시 빠져나와 낯선 곳으로 가는 것. 평소와 다른 풍경을 보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전시와 공연을 만나는 것.

거창한 여행이 아니어도 일상에 작은 틈 하나를 내는 것만으로 숨통이 트일 때가 있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잘 대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스스로를 돕는 마음이다. 나에게 정성을 쏟는 시간, 그 일상에 모여 거대한 회복의 에너지를 만든다.(p.65)


모든 시간을 낭만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지만, 반대로 모든 시간을 효율만 추구하며 살아갈 수도 없다. 중요한 건 효율적이어야 하는 상황과 비효율로 남겨두어야 하는 상황을 스스로 잘 구분하는 일이다. (p.43)


나는 효율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일을 할 때도 같은 시간이라면 조금 더 잘하고 싶고, 불필요한 것은 줄이고 싶다. 특히 업무를 할 때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런데 그 방식이 삶 전체로 넘어오면 문제가 생긴다.


휴일에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여행을 가면 여러 곳을 봐야 할 것 같고, 책을 읽으면 무엇이라도 얻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쉬는 것조차 잘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휴식까지 생산적일 필요는 없다.


아무런 결과가 없어도 좋고, 남는 것이 없어도 좋다. 멀리까지 갔다가 카페 한 곳에 오래 앉아 있다 돌아와도 되고, 전시를 보고 아무런 깨달음을 얻지 못해도 괜찮다. 그 시간이 즐거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효율적이어야 할 시간과 굳이 효율적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구분하는 것. 어쩌면 그것도 나이가 들면서 배워가는 삶의 기술인지 모르겠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쉼의 모든 동기를 사랑으로 새로 쓰겠다는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더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도, 게으른 나를 다그치기 위해서도 아닌, 오직 나를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휴식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끈질기고 단호하게 지금 나는 괜찮은지 물어보는 다정함으로 쉼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 마음과 함께라면 좋은 쉼의 절반은 아미 완성이다.(p.222~223)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쉼의 동기를 ‘사랑’으로 다시 쓰자고 말한다.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아끼기 때문에 쉬는 것. 다시 열심히 달리기 위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괜찮은지 살피기 위해 멈추는 것. 


『휴식찾기의 기쁨』을 읽고 나니 내가 요즘 즐기고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혼자 카페에 가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공연 하나를 보겠다고 훌쩍 기차를 타는 것도 굳이 의미를 붙일 필요가 없었다.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도 아니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니까.

내가 편안하니까.

그 시간이 나를 기분 좋게 하니까.

그것으로 충분했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잘 대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스스로를 돕는 마음이다.”(p.65)


휴식에도 제철이 있다면 정말 오늘인지도 모르겠다.

내일 조금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의 나를 잘 살아내기 위해서 쉬는 것.

이제 내가 찾고 싶은 휴식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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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도 카페에서 책 읽고 싶어 - 책 읽는 할머니의 명랑한 독서 노트
심혜경 지음 / 오아시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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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영문학과, 중어중문학과, 일본학과를 거쳐 프랑스 언어문화학과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무슨 까닭으로 어학 관련 공부만 그리 오래 했을까? 그건 모두 책 때문이다. 소설, 비소설 가리지 않고 원문을 모두 읽어 버리고 싶은, 책을 향한 일방적인 짝사랑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책의 쓸모와 함께, 읽고 쓰는 일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런 나의 마음이 가득한 '비밀의 방'을 공개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p.10)


저자는 원서로 책을 읽고싶어 오랫동안 언어학습을 했다고 하였다. 그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찔끔찔끔 하던 언어학습에 박차를 가할 용기가 생겼다. 원서로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면 단박에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책읽는 할머니의 삶이, 느리게 움직이지 않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살아있는 것 같다. 내 삶도, 내 미래도, 내 노년의 어느 날들도 그리했으면 좋겠다.


저자가 읽고 소개한 책 중에 내가 읽은 책이 겨우 8권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그만큼 읽을 책이 많다는 것이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이 독서란 걸 한번더 알게 되었다. 


나도 명랑하고 멋진 할머니로 나이 들고 싶다. 오늘 이곳에선 할머니들의 합창이 들릴 것이다. 문화회관과 카페 곳곳에 할아버지들이 앉아 기다리는 걸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북클럽에서 매주 한 번씩 모여 거의 1년에 걸쳐 읽었다는 몽테뉴의 에세 시리즈는 나도 한번 더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독서모임에서도 매주 1권씩 함께 읽고 있지만, 최근엔 좀 많이 가벼워졌다. '노년이 되면 새로운 지혜를 얻을 가능성이 희박해지며, 주어진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p.35)는 사실을 나 역시 느끼고 있다. 


'지금껏 일은 해 왔을 테니, 이제 일이 없다고 해서 주눅들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걸 하면서 그때가 바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자기 스스로에게 입증하는 시기라고 생각하면 어떨지. 그 일이 금전적 수입과 연결되면 좋고, 안 되면 수준에 맞게 내 돈 들여 가며 놀기. 일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존재가 될까 걱정하는 마음은 우선 내려놓는 거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다른 누구와도 닮지 않은, 자신만의 캐릭터를 찾아낼 수 있는 시간이 온 거다. 나이가 들어서 변하는 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으며, 특히 외모가 달라지는 건 자명한 진리이다. 그 진리를 '늙었다'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하지 말고, 자기다움에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p.36-37)


'오늘도 햇빛이 들도록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고 다른 이들의 지혜를 얻어 오기 위해 공부 모임과 독서 모임을 만들러 나간다. 공부와 독서에 대한 세포번식을 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함께 가면 오래 멀리 갈 수 있다.'(p.40)


'이미 저물었지만 할 일이 많이 남았다면 아직 괜찮다는 뜻이다. 하루가 다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할 일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다. 용기 있는 사람들은 인생의 어느 시기에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런데 혼자만 하면 재미가 없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 그리고 아끼는 사람들에게만 시간을 내주고 싶다. 시간은 모든 것이므로.'(p.52)


''사무실의 도른자들'에게 스트레스받은 일을 집에 가져가서 가족에게 불평을 털어놓고 싶었던 상황들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고, 마음이 느슨해지려면 '내버려두기'를 제대로 해야될 듯. (중략)


《렛뎀 이론》의 저자 멜 로빈스에 의하면, '내버려두자'라는 말을 많이 할수록 걱정하던 많은 것이 시간이나 관심을 쏟을 가치가 없는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내 에너지를 쏟을 필요도 없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타인에게 무관심하거나 그 사람을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른 사람은 그 사람대로 행동할 수 있게 배려하면서, 나자신에게도 똑같이 해 주는 걸 의미한다.(p.143)


'읽었던 책의 내용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게 기억력의 문제는 아니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 주니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어차피 읽어도 잊어버리게끔 되어 있다는 거다. 그렇게 잊어버리기 때문에 한 번 더 읽을 수 있고, 그렇게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책이 가진 힘이라고 한다. 그러니 마음 놓고 잊어버리자.'(p.243)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않은 생각은, 유쾌하고 즐거운 나의 노년에 대한 기대였다. 기대수명만큼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년 이후의 삶을 계획하면서, 나 역시 카페에서 책을 밁으며 세상을 조금은 여유롭게 바라보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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