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자라는 빌딩
윤강미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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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다.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소라고 하면 떠오르는 몇몇 곳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부산 사람들이라면 아무래도 낙동강 수질이나, 철새도래지인 을숙도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이번에 내가 이사하는 곳도 환경 문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곳이다. 


오랫만에 이 그림책을 꺼내보았다. 나무가 자라는 빌딩. 삭막한 빌딩 숲에 알록달록 나무가 자란다. 이 그림책의 뒷면과 앞면이 대조가 된다. 뒷면에는 회색 도시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빌딩숲의 화려한 야경을 멋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불빛 하나하나가 바글바글대는 사람숲이라 생각하면 숨이 턱 막혀온다. 불 꺼진 빌딩숲은 화려함을 벗어던진채 회색 도시가 되어 있다. 




첫 페이지를 넘겨본다. 저 멀리 회색 빌딩숲이 벽처럼 둘러싸고 있고, 앞ㅇ[서는 푸른 숲의 나무들을 베어내며 땅파기가 한창이다. 아파트나 빌딩 근처에는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약간의 자연을 옮겨놓고서 그것을 숲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정작 우리의 숲은 그렇게 도려내어 사라지고 있는데...


숲은 사라지고, 미세먼지는 여과없이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 들었다. 날씨예보를 보면서 미세먼지 수치를 보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이렇게 뿌연 시야가 흐린 날씨인지, 미세먼지인지 분간이 안 갈때도 있는데, 결국은 목이 칼칼해지고 얼굴에 푸석푸석 모래가 붙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곤 한다.


봄이면 황사가 기승이니, 더더욱 그런 날이 많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 여자아이는 창밖을 내다본다. 눈앞에 보이는 건 쭉쭉 올라가고 있는 빌딩들이다. 공기가 안 좋으니 집 안에서만 놀아야 한다. 기껏 화분 몇 개로 자연을 느끼기엔 역부족일 터이다. 


심심한 여자아이는 그림을 그린다. 눈앞에 보이는 빌딩들을 그린다. 우리 동네 아파트와 비슷하겠지만, 사실은 마법처럼 꽃이 자라는 놀이터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아이가 그려낸 마법의 놀이터는 꽃과 나무와 동물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다. 아이는 커다란 숲속놀이터를 꿈꾸며 작은 화분에 자신만의 집을 짓는다. 아이가 만든 집은 작은 화분에 꽃과 나무를 심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 마음 속엔 커다란 숲이 자라고 있다. 아이가 그려낸 마을은 아주 커다랗게 드러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숲과 숲에서 사는 모든 것들을 없애면서 '친환경'이라는 이름만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친환경 페인트, 친환경 자재를 사용한다고 숲을 대체할 수는 없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된 자연을 다시 되돌리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새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 그림책이 생각났다. 환경영향평가때문에 건설에 제동이 걸린다고, 교통 대란이 일어난다고 싫어하면서, 한편으로는 낙동강 수질 때문에 벌레가 많다고 민원을 제기해야한다고, 수질 대책을 내놓으라고 한다. 나의 이익 앞에 일관성 없는 행동이 다 용서가 되는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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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피는 화가야!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104
딕 브루너 지음, 이루리 옮김 / 북극곰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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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피 그림책은 선명한 색감이 눈길을 끈다. 

이 그림책은 보드북으로 되어있고, 아이들이 들춰볼 수 있는 플랩북이다.

새 책이다보니, 플랩을 들추는데 손톱에 조금 까지는 게 아쉬웠다. 

아이들이 들추기 전에 미리 몇번 들운 다음에 주면 좋겠다. 


미피는 화가가 되고 싶어한다. 아니, 표지 그림만 봐서는 미피는 화가다. 

첫장을 넘기면, 미피가 미술관에 간 장면이 나온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색깔을 체험하고, 모양도 경험한다. 

벽에 걸린 그림은 어떤 색을 어떻게 표현한건지 보여준다. 

사과를 그린 그림을 보면서 미피는 색깔의 아름다움을 본다. 

이 페이지의 사과 그림은 예전에 본 요시다 유니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미피는 미술관 마당에 놓인 조각도 구경한다.

집에 돌아온 미피는 색연필을 꺼내 그림을 그려본다.

단순한 도형부터 시작해서 바탕 색도 칠해보고, 구체적인 사물을 그려나간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던 미피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벽에 붙여본다.

진짜 화가가 되었으니, 전시를 하는 것이다. 


딕 브루너의 미피는, 사물이든 주인공이든 단순화하여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짧은 이야기지만, 

어린이들이 예술작품과 만나고 

그 체험을 떠올려 자기화하는 과정을 거쳐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이는 모두가 예술가라고 했다. 

어린이들에게 예술작품을 보고 만지고 체험하게 하는 것은 

작품명이나 화가 이름을 외우고, 정해진 정답을 외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그림책을 읽는다면, 내 생각엔 읽기 전에 전시관람도 좀 해보고 했으면 좋겠다. 

독자의 나이가 어려서 그 의미를 잘 모를 수 있겠지만, 

무엇을 보던지 간에, 

그것이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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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 내 인생 반올림 60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조현실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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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본다. 제목에 이어 표지를 보는건, 이 책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머리 속에 넣고 읽기위해서다.

꽃다발을 들고 행복한 얼굴로 뛰어가고 있는 남자아이 주변으로 칼로리 높은 음식들이 보인다. 내가 굳이 칼로리를 언급하는건 제목의 영향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뚱뚱한 어느 소년의 이야기다.

중3짜리 소년 벵자멩 프와레는 비만이다. 학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고, 예상했던대로 비만 판정을 받았다. 벵자멩이 비만인 것은 많이 먹기 때문이다. 벵자멩에게 음식은 살아가기 위한 세끼 식사가 아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행복한 마음, 이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멋진 공간에서 제공하고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무엇'이다.

나도 어렸을 때 비만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대학 가면 살 빠진다는 말로 누군가는 위로를 했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비만이라고 주의해야한다는 충고를 듣는다.

나는 벵자멩만큼 먹는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산소운동은 거의 하지 않으며, 절대적인 운동 부족이다. 즉, 나의 비만은 음식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의 문제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벵자민이 뚱보로 살면서 겪는 에피소드들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나는 분명히 이 작가가 뚱보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정확하게 그려낼까?

옷을 사러 간 장면에서는 내가 옷을 살 때마다 느끼는 그 느낌 그대로여서 벵자멩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뚱뚱한 사람에게 가혹할 정도로 참견을 한다. 기성복 시장에선 맞는 옷을 찾기도 어렵다. 예쁜 디자인은 엄두도 못낸다. 맞으면 아니 들어가면 입어야한다. 선택의 기회란 건 없다. 물론 최근엔 큰옷도 제법 나오지만 여전히 소수이다.

벵자멩의 다이어트는 눈물겹다. 게다가 그의 행복의 원천인 음식을 먹지 않아야 한다. 살이 약간 빠졌을때, 평소에는 생각지도않았던, 여자친구에게 꽃을 들고 직진하다 실패를 맛본다. 벵자멩의 다이어트는 이 일을 계기로 중단되고 급기야 우울증이 깊어진다.

벵자멩이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책을 통해 확인해보자. 그 어느때보다도 비만청소년이 많아진 요즘이기에, 공감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다.

덧붙임. 알랭삼촌이 할머니에게 화를 낼때, 벵자멩의 다이어트를 응원하는 삼촌을 이해할 수 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비만인 사람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이어트, 외모에 관심 많은 청소년들이 읽으면 건강한 나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비만인 친구들에게는 현명한 행동과 대처를, 비만이 아닌 친구들에게는 비만인 친구를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갖게 해 주는 책이다. 재밌게 읽고 한뼘 더 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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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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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주문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에 관한 글을 써보자고 생각한 후, 어느 날 문득 '내가 느끼고 있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을, 처음부터 그대로 꺼내 솔직하게 나 나름의 문장으로 써 보자.'라고 결심하고 조금씩 조금씩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사실 문장력을 인정 받고 있는 작가기에, 일상의 아주 가벼운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우리와는 다른 글을 써내겠지만, 어쩌면 이런 문장은 독자인 나도 '써 볼까'하는 마음을 먹게 만든다.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

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장. 누가 믹 재거를 비웃을 수 있겠는가? p.18~p.19

하루키가, 그리고 헤밍웨이가 하는 저 말은 비단 소설 쓰는 작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각자 자기에게 대입하여 이해한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누구나 서툰 시기를 거치게 되어있다. 그 시기를 지나면 당연히 숙련된 작업 속도와 능률이 나타난다. 그러나, 서툴고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포기해버리거나 요령만 피워서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당장은 모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함께 일하는 직원에게 비슷한 조언을 한다. 그 조언을 받아들이느냐 마냐는 상대의 자유지만, 적어도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한 사람을 당하지는 못한다.

나와 같은 나이에 접어든 사람이 새삼스럽게 이런 것을 쓴다는 것이 다소 어리석은 일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사실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혼자 있는 것을 별로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는 성격이다. 매일 1시간이나 2시간,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고 혼자 달리고 있어도, 4시간이나 5시간을 혼자 책상에 앉아 묵묵히 글을 쓰고 있어도 별로 고통스럽다거나 지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경향은 젊었을 때부터 한결같이 내 안에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하기보다는 혼자서 말없이 책을 읽거나, 집중해서 음악을 듣는 쪽을 좋아했다. 혼자서 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생각해낼 수 있었다.(중략)

사람의 기본적인 성격은 그다지 급격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항상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

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1장. 누가 믹 재거를 비웃을 수 있겠는가? p.34~p.35

나는 하루키의 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번씩 읽다보면(아, 독서동아리에서 추천하지 않았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키와 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소설가와 공통점이라니.. 하하.

예를 들자면 위에 인용한 저런 점이다. 나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선호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설마'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사람들과도 무리 없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사회생활을 위한 나의 최소한의 노력이고, 나는 고갈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나만의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있다. 혼자 있는 사람이 심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혼자 있어도 할 일이 엄청 많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꽤 많이 알고 있다.

내가 공부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소정의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든 마친 다음, 소위 '사회인'이 되고 나서부터다. 자신이 흥미를 지닌 분야의 일을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추구해가면 지식이나 기술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령 번역 기술도 그렇게 해서 나만의 스타일로, 내 돈을 들여가면서 하나씩 익혀 나갔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시간도 걸렸고 시행착오도 거듭했지만, 그런 만큼 배운 것은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었다.

2장. 사람은 어떻게 해서 달리는 소설가가 되는가 p.63

학교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부를 하는 것은 딱 그만큼의 기본을 익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는 그런 공부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최고의 성과를 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의 경험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사회인'이 되어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을 배우고 익힐 때,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의 노력과 연습을 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으니, 그만큼의 노력을 하게 된다. 당연히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일이니 그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고, 가끔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기초 지식이 되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루키는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다'"(p.75)라고 했지만, 나는 그래도 학교에서 배운 것이 우리 인생에 크고 작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하루키는 인생에는 우선순위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정하고 그것을 자기 안에 시스템화해놓지 않으면 뒤죽박죽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인생을 큰 동그라미로 친다면 그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일들이 모두 각각의 우선순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고 해도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오래할 수는 없다. 다만,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자신의 의지일 수 있다.

하루키의 달리기는, 그의 글쓰기와 닮아있다. 오랫동안 달리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그의 노력은, 그가 오랫동안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 것과 같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 분야의 대가가 될 수는 없다. 대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길은 절대 '연습량'이 충분해야 한다. 하루키가 마라톤에서 실패했을 때 그 원인이 '적당'히 했던 오만함때문이었다.

소설가로서 인터뷰를 하다 보면, "소설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소설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다. 문학적 재능이 전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소설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필요한 자질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제 조건이다. (중략)

재능 다음으로 소설가에게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질문받는다면 주저 없이 집중력을 꼽는다.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 붓는 능력. 그것이 없으면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힘을 유효하게 쓰면

재능의 부족이나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중략)

집중력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력이다.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의식을 집중해서 집필할 수 있었다고 해도, 일주일 동안 계속하니 피로에 지쳐버렸다고 해서는 긴 작품을 쓸 수 없다. 반년이나 1년이나 2년간 매일의 집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소설가에게는―적어도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에게는요구된다. (중략)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그 수치를 살짝 올려간다. 이것은 매일 조깅을 계속함으로써 근육을 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이다.

4장.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p.120~122

달리기는 결국 글쓰기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에 대해 말하지만 실상은 소설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싶은 것이다. 소설을 쓰는 것은 하루키에게 있어서 험준한 산의 암벽을 기어오르거나 길고긴 격투 끝에 정상에 오르는 작업이다. 그러한 내적 이미지를 갖고 장편소설을 쓴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어떤 목표가 있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알고보면, 그저 하루하루를 사는데 급급했는지도 모르겠다. 목표가 없이 그저 살아가는 나날이 오늘따라 한심해졌다. 뭔가 시작하기에 내 나이도 늦지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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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박물관 순례 1 - 선사시대에서 고구려까지 국토박물관 순례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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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유홍준 교수는 역사는 문화유산과 함께 기억해야 그 시대의 시각적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 국토박물관 순례 1권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 그리고 고구려를 다룬다.

유홍준 교수의 책은 웬만해선 거의 다 읽어보았고, 어지간해선 강의도 들으러 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 옆에서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느낌이었다.

특히 세계 고고학 지도를 바꾼 주먹도끼 이야기는, 얼마전 부산문화회관에서 인문학 강의로 들었던 내용이라 복습이 되었다. 함께 이 책을 읽은 독서동아리 선생님들과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 있는데, 고구려의 이야기가 다른 시대의 이야기에 비해 많이 낯설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중국이 동북공정 이후 한국인의 고구려, 발해 유적 답사마저 막고 있다고 하니, 일반인인 나로서는 더 멀게만 느껴진다.

그에 비해 부산 영도나 울산, 언양까지 유물도 익숙하고 자주 보았던 곳이라 이해도 쏙 쏙 잘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럴 때도 적용되는 것 같다. 가까운 곳이기도 하고, 아이에게 경험해주고 싶어서 박물관과 유적지를 자주 다녔기 때문에 나도 아는 것이 많아진 것이다.

"유적지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그곳 문화재에 대한 주민들의 명확한 인식과 자부심이기 때문이다."(P.25)

유홍준 교수는 연천군민들을 대상으로 전곡리 유적지에 대한 강연회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유적지를 둘러싸고, 그 지역 주민들과 부딪치는 일이 자주 언론에 노출되곤 한다. 오래된 유적이나 유물보다 개인의 재산권을 더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뭐라할 수는 없다. 다만, 문화재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패총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이 부산이라고 한다. 10여 곳의 패총 중 4곳이 영도에 있다. 영도는 절영도라는 이름이었고, 그곳에서는 말을 미우는 목장이 있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영도에 유명한 '목장원'도 이것과 관련있는 이름일까 싶다. 말목장이 있던 절영도는 일본에서 들어온 고구마의 첫 재배지이기도 하였다.

대학 다닐때 제법 올라가던 봉래산이 원래는 고깔산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쨌든, 동해가 신선이 사는 곳이라고 산 이름을 봉래산으로 명명하고, 동래이름도 봉래동, 영선동, 신선동, 청학동 등으로 바꿨다고 한다. 동삼동 패총전시관은 아이와 함께 두어번 다녀온 적이 있다. 동삼동 패총에는 신석기인들의 생활쓰레기가 발견되는다. 또 아주 드문 신석기 무덤인 옹관묘, 울주 반구대 암각화와 고래 그림이 연결되는 고래뼈도 발견되고, 이음낚시바늘, 흑요석 등 중요한 유물이 많다.

사실 동삼동 패총하면 얼굴가면 조개껍질이 유명한데, 이것이 애니미즘에서 샤머니즘, 토테미즘으로 넘어가는 초보적인 종교 감정이 들어있다고 한다.

울주의 반구대 암각화는 30여년 전에 몇번 가서 보았다. 답사를 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남권 대학생들이 찾을 수 있는 유적이었던 것 같다. 반구대 그림을 하나하나 보면서 신기해했다. 천전리각석도 갔었고, 장생포 고래박물관과 대곡박물관, 옹기마을 등도 자주 갔던 곳이라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도 하고, 확인도 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고구려는 잘 모르겠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도 안타깝다. 고구려가 이렇게 멀게 느껴지다니... 책을 읽으면서 고구려에 대해 다시 한번 알아간다. 어쩌면, 이 책은 그렇게 우리 역사와 문화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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