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냉이 평화그림책 10
권정생 시,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07



강낭알을 꿈꾸는 수수하고 조용한 평화

― 강냉이

 권정생 글

 김환영 그림

 사계절 펴냄, 2015.11.20. 11000원



  큰아이가 지난가을에 물었습니다. “옥수수 먹고 싶어.” 나는 큰아이한테 말합니다. “그럼 씨앗 심어.” 큰아이는 웃으며 대꾸합니다. “와, 씨앗 심자! 심자!” 강냉이를 거의 다 거두는 늦여름에 이르러 우리 집 옆밭에 강냉이 씨앗을 다섯 톨 심고, 우리 집 뒤꼍에도 석 톨을 심습니다. 이제 곧 가을이 되고 겨울이 다가올 줄 알지만, 아이하고 함께 씨앗심기를 누리려고, 아이가 바라는 강냉이 씨앗을 심었습니다.


  늦여름에 심은 강냉이 씨앗은 첫겨울에 이르러 비로소 알이 뱁니다. 다만, 봄에 심어서 늦여름 즈음 거두는 강냉이하고 달리 알이 빽빽이 들어차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큰아이는 제 손으로 씨앗을 훑어서 물에 불린 뒤에 흙에 심는 일을 했습니다. 조그마한 강냉이 씨앗 한 톨에서 떡잎이 나오고 줄기가 오르며 꽃이 피다가 열매가 차츰 굵어지는 모습을 늘 마당 한쪽 옆밭에서 지켜보았어요.



집 모퉁이 토담 밑에 (3쪽)



  권정생 님이 조곤조곤 쓴 글(시)에 맞추어 김환영 님이 그림을 그린 《강냉이》(사계절,2015)를 새롭게 읽습니다. 글(시)하고 그림이 새삼스레 어우러지는 이야기로 가만히 읽습니다. 권정생 님은 이녁이 나고 자라며 들은 경상도 안동말로 강냉이 이야기를 썼고, 김환영 님은 아스라하다면 아스라한 한국전쟁 언저리에 시골에서 강냉이 씨앗을 심고 오붓하게 노래하던 수수한 시골사람 이야기를 그림으로 빚습니다.




생야는 구덩이 파고 난 강낭알 뗏구고 어맨 흙 덮고 (7쪽)



  집 모퉁이 흙담 밑에 씨앗을 심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어매)는 빙그레 웃습니다. 어머니 혼자 밭일을 한다면 수월하면서도 빠르게 끝마칠 텐데, 어머니는 혼자 밭일을 하지 않아요. 어린 아이들한테 밭일을 맡겨요. 그렇다고 고되다거나 힘든 일을 맡기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할 만큼 일감을 주고는 빙그레 웃으면서 지켜봅니다.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북돋우고, 잘 못 하면 잘 못 하는 대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어머니랑 함께 흙내음을 맡으면서 흙빛으로 웃으면서 구슬땀을 흘려요.


  이렇게 마당 한쪽 밭 한 뙈기를 일구어 강냉이를 심은 뒤 아이들은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고 노래하면서 놉니다. 저희가 씨앗을 심은 옆밭 곁에서 마음껏 노래하면서 놀아요. 얼른얼른 자라라고 노래하고, 부쩍부쩍 크라면서 웃고 놀지요.


  참말 모든 시골자락 논밭에서 자라는 곡식이나 열매는 아이들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자랍니다. 참말 모든 시골마을 논이며 밭에서 자라는 곡식이나 열매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커요.




“요건 내 강낭” 손가락으로 꼭 점찍어 놓고 (13쪽)



  그림책 《강냉이》를 들여다봅니다. 그림책에 흐르는 모습만 놓고 본다면, 1980년대 이야기인지 1960년대 이야기인지, 또는 1940년대나 1920년대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를 굳이 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시골에서는 언제 어디에서나 수수하면서 조용한 살림이거든요. 딱히 어느 연대를 헤아려야 하는 시골살림이 아닙니다. 씨앗을 심고, 흙을 북돋우고, 밭을 보살피며, 곡식이랑 열매를 거두는 살림은 예나 이제나 같아요. 즐겁게 심고 기쁘게 돌보며 흐뭇하게 거두는 살림은 참말 오늘이나 앞으로나 같아요.


  그런데, 그림책 《강냉이》는 한국전쟁 언저리 모습입니다. 이리하여, ‘강낭알’을 심은 아이들은 저희 보금자리에 머물지 못합니다. 어디론가 떠나야 합니다. 애써 심은 강낭알을 거두지 못한 채 떠나야 해요. 전쟁 불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전쟁 손아귀에서 뛰쳐나와야 합니다. 조용히 흙을 일구며 살던 시골사람은 낫이랑 호미랑 괭이만 손에 쥐면서 수수하게 살림을 지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총칼 탱크 전투기에 밀려서 보금자리를 잃거나 잊어야 합니다.




어매캉 아배캉 난데 밤별 쳐다보며 고향 생각 하실 때만 (25쪽)



  총칼하고 탱크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총칼하고 탱크를 젊은이 손에 쥐어 주면서 서로 ‘죽일 놈’으로 여겨서 참말 죽이라고 시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왜 낫이랑 호미랑 괭이를 지어서 흙을 가꾸지 않고, 온갖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젊은이 손에 쥐어 주고는 서로 죽이고 죽는 끔찍한 전쟁을 일으켜야 할까요?


  정치권력이 다르니 전쟁을 해야 할까요? 나라가 달라졌으니 서로 싸워서 한쪽은 몽땅 죽어야 할까요? 정치권력이 다르고 나라가 달라도 똑같이 밥을 먹고 강냉이를 먹는 살림이지 않을까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흙내음을 맡으면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나날이 되지 않을까요?


  서로서로 사이좋게 모여서 강낭알을 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강낭알을 네 밭에도 심고 내 밭에서 심으면서 여름 바람이 차분해질 무렵 함께 오두막에 모여서 강냉이를 폭 삶아서 맛나게 잔치를 벌일 수 있기를 빌어요. 네 강냉이도 맛있고 내 강냉이도 맛있는 기쁜 살림을 나눌 수 있기를 빌어요. 오순도순 어우러지는 두레랑 품앗이가 이 땅에서 새롭게 살아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저마다 제 밭을 가꾸면서 사랑할 수 있기를 빌어요. 4349.1.1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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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6-01-13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그림책 저도 읽었어요. 사투리 입말이 정말 정겨워서 뒤에 실린 표준어로 고친 시가 얼마나 싱거운지 비교되더군요^^

숲노래 2016-01-13 05:31   좋아요 1 | URL
표준 서울말이 참... 싱겁지요 ^^;;;
고장마다 교과서도 다 고장말로 가르치면
한국 문화가 한결 재미나게 살아날 텐데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