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가 줄을 타고 물들숲 그림책 4
이성실 글, 다호 그림 / 비룡소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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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5



바람을 타고 춤을 추는 긴호랑거미

― 거미가 줄을 타고

 이성실 글

 다호 그림

 비룡소 펴냄, 2013.7.5. 11000원



  우리 집에는 거미가 많이 삽니다. 시골집이니 거미가 많이 살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는 농약도 살충제도 없기 때문에 거미가 많이 살아요.


  우리 집 안쪽에는 후 하고 바람을 불면 갑자기 빙글빙글 춤을 추는 다리가 긴 거미가 곳곳에 살아요. 옷장 뒤쪽이나 책꽂이 뒤쪽 빈틈에 집을 지으며 살고, 손이 안 닿는 높은 보꾹에도 살아요.


  우리 집 바깥쪽에는 몸에 고운 무늬가 아리따운 거미도 살고, 새까만 거미도 살며, 어른 손가락보다 살짝 굵은 꽤 큰 거미도 살아요. 이러한 거미는 파리랑 모기를 잡아먹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 날마다 틈틈이 드나드는 새한테 잡아먹히기도 해요. 거미는 커다란 줄을 하룻밤 만에 짓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서 마당을 걷다가 얼굴에 줄이 걸리기도 하는데, 이 거미줄에는 잠자리나 나비도 걸리고, 때로는 귀뚜라미나 방아깨비가 걸리기도 해요.



거미는 온몸에 털이 많아. 다리 마디에 틈도 많아. 가느다란 털과 틈으로 먹이가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어. (5쪽)



  이성실 님이 글을 쓰고, 다호 님이 그림을 그린 《거미가 줄을 타고》(비룡소,2013)를 아이들하고 함께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여러 거미 가운데 ‘긴호랑거미’ 한살이를 다뤄요. 이 긴호랑거미는 우리 집 바깥쪽에 꽤 많이 살아요. 후박나무 가지랑 평상 사이에 줄을 이어서 어른보다 커다란 거미집을 짓기도 하고, 뒷간이랑 대문이랑 동백나무 사이에 엄청나게 큰 거미집을 지어서 우리가 바깥으로 드나드는 길을 막기도 해요. 이때에는 거미한테 넌지시 이르지요. ‘얘야, 네가 이렇게 집을 지으면 우리는 네 집을 허물 수밖에 없단다. 그러니, 우리가 지나가는 길 말고 날벌레가 날아다니는 길목에만 집을 지으렴.’ 나뭇가지로 거미집을 걷으면서 ‘자, 부디 이 줄을 다시 네 몸에 담아서 새 집을 짓기를 바란다.’ 하고 덧붙여요.




눈이 어두운 암컷은 알을 낳기 전에 많이 먹어야 하기 때문에 짝짓기 하려고 다가온 수컷을 먹이로 알고 잡아먹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수컷은 암컷이 마지막 탈피를 하느라 힘이 빠진 순간이나 먹이를 실컷 먹고 난 뒤에 다가와 짝짓기를 해요. (14쪽)



  여러 거미 가운데 《거미가 줄을 타고》에 나오는 긴호랑거미는 참으로 고운 무늬와 빛깔이 사랑스럽구나 싶습니다. 아직 작은 긴호랑거미는 그야말로 앙증맞도록 귀엽지요. 다만, 아이들은 커다란 긴호랑거미를 보면 살짝 무섭다고 여기곤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긴호랑거미가 아무리 커다랗게 자란다고 하더라도 어린이보다 훨씬 작아요. 아이 주먹만큼 자라지는 않아요.


  문득 돌아보면 예부터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거미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일렀어요. 거미를 보면 집 바깥으로 가만히 내놓아 주라고 일렀지요. 이 땅에서 사는 거미는 사람을 물거나 쏘지 않아요. 손바닥에 살그마니 올려놓아서 바깥으로 내놓을 수 있고, 정 꺼림칙하면 쓰레받기에 살포시 올려서 집 바깥으로 내놓으면 돼요.


  예부터 거미가 맡은 몫을 잘 알기에 거미를 살뜰히 여기면서 고운 이웃님으로 삼았다고 느껴요. 오늘날에는 거미가 맡은 몫을 제대로 살피지 않기에 농약하고 살충제를 지나치게 쓰는구나 싶어요.




바람이 잔잔하게 부는 봄날이야. 이제 새끼 거미들이 흩어질 때가 되었어. 새끼 거미들은 줄지어 나무로 기어올라. 그러고는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 공중으로 흩어져. 꽃잎이 휘날리듯 가볍게! 꽁무니에 달린 거미줄을 타고 휘익! (23쪽)



  거미가 사는 곳에 여러 벌레가 함께 삽니다. 여러 벌레가 사는 곳에 거미가 함께 삽니다. 그리고 이곳에 사람이 함께 살아요. 거미만 살지 않고, 벌레만 살지 않아요. 더욱이 사람만 살지 않습니다. 서로 어우러지는 삶이고, 함께 어깨동무하는 살림입니다. 서로 아끼는 삶이며, 같이 웃음짓고 춤추는 살림이에요.


  바람을 타고 춤을 추는 긴호랑거미처럼, 우리도 바람을 쐬며 춤을 춥니다. 바람을 타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날아가는 새끼 거미처럼, 우리 아이들도 바람을 싱그러이 마시면서 새로운 꿈을 키우고 새로운 사랑을 꽃피웁니다. 4349.1.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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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 - 스텔라이야기.겨울편
마리 루이스 개이 글 그림, 조현 옮김 / 현암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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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4



이렇게 멋지고 착한 누나가 다 있을까

― 눈의 여왕 (스텔라 이야기·겨울 편)

 마리 루이스 개이 글·그림

 조현 옮김

 현암사 펴냄, 2007.7.10. 7800원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에 맞추어 네 권으로 나온 ‘스텔라 이야기’ 가운데 겨울 이야기인 《눈의 여왕》(현암사,2007)을 겨울에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스텔라하고 샘, 이렇게 두 아이가 나옵니다. 스텔라는 누나이고 샘은 동생입니다. 스텔라는 봄부터 겨울까지 두루 겪어서 제법 잘 알고, 샘은 아직 네 철을 잘 모릅니다. 이것저것 모르는 것이 많아서 궁금한 것도 많은 동생 샘은 누나한테 끝없이 “왜?”라고 하면서 물어요. 이것저것 먼저 겪어서 스스로 깨우친 누나 스텔라는 끝없이 묻는 동생한테 차근차근 하나씩 알려주는데, 누나로서도 아직 잘 모르겠으면 한참 생각을 해 보아야 하는데, 귀찮아 하거나 성가셔 하지 않아요. 그야말로 훌륭하게 동생을 이끌면서 함께 놀고, 신나게 놀며, 멋지게 놀아요.



“누나, 눈은 차가워? 얼음처럼 얼어붙는 거야?” “응, 눈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차갑지. 아기토끼 솜털마냥 보드랍기도 해. 샘, 밖으로 나가자.” (7쪽)




  그림책 《눈의 여왕》에 나오는 스텔라 누나도 어릴 적에 제 동생처럼 늘 “왜?” 하고 물으면서 살았으리라 느껴요. 샘이 아직 동생으로 찾아오기 앞서, 그러니까 스텔라가 퍽 어렸을 적에, 스텔라는 어머니랑 아버지한테, 또 둘레 언니 오빠한테 언제나 “왜?” 하고 물었을 테지요. 스텔라한테도 궁금함을 풀어 준 어버이랑 이웃이 있을 테지요. 늘 모든 것을 궁금하게 여기면서 하나씩 배우고, 언제나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즐겁게 배웠을 테지요.


  그림책을 한참 보다가 우리 집 두 아이가 꽤 어리던 나날을 돌이킵니다. 큰아이가 눈을 처음 보던 날을 돌이키고, 작은아이가 눈을 처음 보던 날을 되새깁니다. 눈을 처음 보던 큰아이는 그저 물끄러미 눈송이를 바라보았고, 뺨에 닿으며 녹고 손바닥에 내려앉아서 녹는 하얀 것을 무척 재미나게 여겼어요. 걸음마를 처음 떼면서 눈밭을 밟다가 뒹구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웃었고, 세 살 무렵부터는 커다란 빗자루를 옆구리에 끼고 눈을 쓰는 일을 거들었어요. 작은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온 뒤에는 큰아이가 눈덩이를 뭉쳐서 동생한테 보여주었지요.



“샘, 우리 눈사람 만들자.” “누나, 눈사람은 어디서 자?” “푹신한 눈밭에서 자지.” “누나, 눈사람은 뭘 먹어?” “눈송이랑 …… 눈으로 만든 완두콩이랑 …… 눈옷이랑!¨ (10∼11쪽)



  한집에서 사는 두 아이는 서로 가장 살가우면서 즐거운 놀이동무입니다. 나이가 벌어지기에 몸집이 다르고, 큰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동생이 다 따르지는 못하지만, 큰아이는 동생한테 맞추어 신나게 놀 줄 압니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하듯이 다 따라가지 못하지만 누나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찬찬히 지켜보고는 하나씩 똑같이 따라하려 합니다. 작은아이는 어버이한테서도 배우지만 누구보다 누나한테서 훨씬 즐겁고 재미나게 배워요.


  어느 모로 본다면 큰아이는 동생한테 놀이동무이면서 길동무이고 스승이기도 한 셈이랄까요. 큰아이 스스로 먼저 겪은 온갖 삶과 살림을 동생한테 기쁘게 알려주고 살가이 보여주며 신나게 물려주는 셈이랄까요.




“누나, 눈은 어디에서 내리는 거야? 여름엔 어디에 가 있다가 와? 그리고 눈덩이 하나에 눈송이가 몇 개나 들어갈까?” “모올라, 샘, 이거 좀 도와줘.” (20∼21쪽)



  그림책 《눈의 여왕》에 나오는 동생 샘은 묻고 묻고 또 묻습니다. 자꾸 묻고 새로 묻고 거듭 묻습니다. 누나가 궁금함을 곧바로 풀어 주지만, 이내 새로운 궁금함을 길어올려서 물어요. 그림책을 가만히 보면, 동생 샘은 누나가 하나씩 알려줄 적마다 “알려줘서 고마워” 하고 말할 틈이 없도록 끝없이 묻기만 해요. 누나 스텔라는 동생이 물을 적마다 곧바로 대꾸합니다. 하나하나 알려주는데, 정 모르겠구나 싶은데 또 새롭게 물으면 “모올라!” 하고 외치지만, 다음에 묻는 것을 알 만하다 싶으면 다시 상냥하게 가르쳐 주지요. 그리고, 동생 마음을 새로운 곳으로 돌릴 줄 압니다. 동생이 그저 묻기만 하지 말고 몸으로 스스로 겪어서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라요. 왜 그러한가 하면, 누나 스텔라도 동생만 하던 때에 언제나 몸으로 스스로 겪어서 한결 잘 알 수 있었을 테니까요.


  이를테면, 어머니랑 아버지가 “바닷물은 짜단다” 하고 말해 준대서 이를 그냥 받아들여서 알기는 어려워요. 아이들이 몸으로 스스로 바닷물을 먹어 보아야 비로소 “아하, 바닷물은 이만큼 짜네” 하고 알지요. 어머니랑 아버지가 “그렇게 달리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면 아프지” 하고 말해 준대서 이를 그냥 받아들여서 알기는 힘들어요. 아이들이 몸으로 스스로 신나게 뛰어놀다가 때때로 넘어지거나 자빠지거나 엎어져서 무릎도 얼굴도 팔꿈치도 깨지거나 긁혀서 피가 나 보아야 “아하, 넘어져서 다치면 이렇게 아프네” 하고 알아요.




“샘, 눈으로 천사를 만들자. 커다란 날개 달린 천사 말이야.” “누나, 눈사람 천사도 날 수 있어? 노래도 할 수 있고?” (28∼29쪽)



  누나 스텔라는 끝없이 왜 왜 하고 묻는 동생 샘한테 ‘눈 천사’를 빚자고 말합니다. 동생 샘은 누나 스텔라가 ‘눈 천사’를 빚자고 말하니, 함께 눈을 뭉쳐서 눈 천사를 빚기보다는 ‘눈 천사’가 하늘을 날 수 있는지 궁금해 해요. 게다가 눈 천사가 노래를 할 수 있는지도 궁금해 해요. 이때에 누나 스텔라는 어떻게 할까요?


  누나 스텔라는 더없이 상냥하고 멋지면서 착한 아이답게 동생 샘더러 ‘귀를 기울여서 들어’ 보라고 말합니다. 눈으로 빚은 천사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동생 샘더러 들어 보라고 말해요.


  이 말을 들은 동생 샘은 ‘왜? 왜? 왜?’ 하고 묻는 말을 그치고는 누나가 말한 대로 조용히 귀를 기울입니다. 모든 말을 멈추고 고요히 귀를 기울여서 ‘눈 천사’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려고 해요. 그림책 《눈의 여왕》에서 이 대목을 읽다가 괜히 짠합니다. 우리 집 큰아이도 동생하고 놀다가 곧잘 이 모습으로 동생을 이끌거든요. 동생이 스스로 새롭게 몸으로 받아들여서 깨닫도록 이끄는 말을 무척 부드러우면서 살갑게 하곤 해요.


  따사로운 말 한 마디로 궁금함을 풀어 줄 뿐 아니라, 스스로 삶을 새롭게 배우는 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너그러운 말 한 마디로 수수께끼를 풀어 줄 뿐 아니라,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사랑을 새롭게 마주하는 살림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모름지기 상냥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어버이 자리에 선 사람도, 누나나 언니 자리에 서는 사람도,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도, 한결같이 상냥하면서 착한 마음씨로 슬기롭게 이야기꽃을 피울 노릇이로구나 싶습니다. ‘왜?’ 하고 끝없이 묻는 아이가 예쁘고, ‘그건 말이지’ 하고 끝없이 알려주는 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4349.1.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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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 속에 들어간 오리 베틀북 그림책 104
조이 카울리 지음, 로빈 벨튼 그림, 홍연미 옮김 / 베틀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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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3



오리 한 마리가 전쟁을 끝장내다

― 대포 속에 들어간 오리

 조이 카울리 글

 로빈 벨튼 그림

 베틀북 펴냄, 2010.8.10. 1만 원



  조이 카울리 님이 글을 쓰고, 로빈 벨튼 님이 그림을 그린 《대포 속에 들어간 오리》(베틀북,2013)라는 그림책은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날아왔습니다. 글은 1969년에 쓰고, 그림은 1984년에 그렸다고 해요. 한국에서는 2010년에 처음 나왔지만 꽤 오래된 그림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이 그림책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사랑받을 만한 따사롭고 부드러운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어요. 책이름으로도 잘 나오는데, 오리 한 마리가 대포 속으로 들어가면서 ‘어떤 일’을 일으키거든요.



“왜 대포를 못 쏴?” 장군이 성난 목소리로 물었어요. “대포알을 넣을 수 없습니다, 장군님.” 장군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어요. “대체 왜 대포알을 넣을 수 없다는 거냐?” 병사가 머뭇머뭇 대답했어요. “그게 저……, 대포 안에 오리가 있습니다.” (3쪽)



  그림책 이야기를 살피면, 먼저 어느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어느 도시로 쳐들어가려고 한답니다. 그런데 장군이 도시를 겨누어 대포를 쏘려고 할 즈음, 병사들이 대포를 안 쏘아요. 장군은 얼른 대포를 쏘라 하지만 병사들은 머뭇머뭇할 뿐입니다. 장군이 크게 성을 내니 비로소 ‘대포에 오리가 들어갔다’고 말해요. 장군은 오리와 함께 대포를 날리라 하지만, 병사들은 대포에 들어간 오리가 ‘둥지를 틀었다’고 말하지요.


  병사들은 어리숙할까요? 아니면 병사들은 착할까요? 둥지를 튼 오리라면 알을 낳으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오리가 대포에 들어가서 둥지를 틀었다고 한다면,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어느 도시로 쳐들어올 즈음이나 이렇게 쳐들어가기 앞서 들어와서 둥지를 틀었을 테지요. 병사들은 싸움터로 가는 길에도 ‘대포에 들어가서 둥지를 튼 오리’를 내내 지켜보았다는 뜻이에요.




“아,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오리가 알을 품고 있는 동안 전쟁을 하지 않는 겁니다. 4주 정도 지나 아기 오리들이 태어나면 대포를 쏠 수 있겠지요.” 시장의 제안에 장군이 기분 좋게 대답했어요. “좋습니다. 그럼 그동안 전쟁은 잊기로 하지요.” (12쪽)



  대포를 쏠 수 없는 장군은 머리가 아픕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싶어서 혼자 도시로 찾아갑니다. 도시를 다스리는 시장님을 만나요. 그런데, 장군은 시장님을 만난 자리에서 ‘대포를 빌려 달라’고 해요. 도시로 쳐들어온 장군인데, 도시에서 장군한테 대포를 빌려 달라 하는군요. 그러면 시장님은 장군한테 대포를 빌려줄까요?


  설마, 빌려줄까요? 안 빌려줄 테지요. 시장님이 다스리는 도시를 스스로 무너뜨리려고 장군한테 대포를 빌려줄 일은 없으리라 봅니다. 시장님은 장군한테 말하지요. 넉 주쯤 지나면 오리가 알을 낳고 나올 테니, 넉 주 뒤면 대포를 쓸 수 있으리라고.


  장군은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래, 그러면 되겠구나 하고 여기지요. 그리고, 이제 또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려 합니다.




“혹시 돈을 빌릴 수 있을까요?” 장군이 조심스레 물었어요. “그건 곤란합니다. 하지만 장군님의 병사들이 우리를 위해 일한다면 돈을 드리겠어요. 우리 도시를 보세요. 집은 우중충하고 가게는 지저분해요. 새로 단장을 해야 합니다. 장군님의 병사들이라면 3주 동안 도시 전체를 말끔하게 단장할 수 있을 겁니다.” (16쪽)



  넉 주 동안 전쟁을 벌이지 못하니, 장군은 병사를 거느릴 돈이 바닥이 납니다. 얼른 전쟁을 치러서 도시를 무너뜨리고 빼앗아야 ‘돈을 얻’거든요. 이리하여 장군은 다시 시장님한테 찾아가서 돈을 빌리려 하고, 시장님은 돈을 빌려줄 수는 없지만 병사들한테 일을 맡겨서 ‘도시 손질(정비사업)’을 해 주기를 바라고, 이렇게 하면 병사들한테 일삯을 주겠다고 말하지요.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까지도 장군은 뭐가 뭔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다만, 병사한테 밀린 일삯(군인 수당)을 주지 않아도 ‘도시에서 일거리를 병사들이 얻어서 돈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만 여겨요.


  자, 이 그림책에서는 전쟁이 무엇이고 평화가 무엇인지 아주 부드럽고도 차분하게 잘 보여줍니다. 전쟁이란 무엇이겠어요? 무기를 잔뜩 짊어지고 이웃으로 쳐들어가서 이웃을 무너뜨리거나 괴롭혀서 이웃한테 있는 돈을 빼앗는 짓이에요. 이웃이 애써 그러모은 살림을 무기를 앞세워서 빼앗는 짓이 전쟁이지요. 장군(정치권력자)은 ‘돈을 들여서 무기를 만들’고 ‘돈을 들여서 군대를 거느’려요. 그러니까, 장군(정치권력자)은 돈을 모으려면 자꾸 전쟁을 일으켜야 하고, 자꾸 이웃을 괴롭혀야 합니다.




병사들은 모자를 손에 쥔 채 아무 말 없이 땅만 뚫어져라 보았어요. “장군님, 저희는 도시에 대포를 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정성껏 고치고 칠해서 예쁘게 단장을 해 놓은 도시가 엉망이 될 테니까요.” 한 병사가 입을 열자 다른 병사도 거들고 나섰어요. “맞습니다. 저희가 얼마나 공들여서 꾸며 놓은 집들인데요.” (26쪽)



  전쟁을 그치고 평화로 넘어가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를 버리면 돼요. 전쟁무기를 안 만들면 돼요. 군대를 거느리지 않으면 돼요. 젊은이가 군대에서 군사훈련을 받도록 하지 말고, 젊은이가 도시나 시골 어느 곳에서나 즐겁게 일할 자리를 마련해 주면 돼요.


  평화로운 곳에는 평화로운 일자리가 있어요. 전쟁이 불거지는 곳에서는 전쟁무기를 만들거나 군인이 되는 일자리가 있지요. 이제 우리는 찬찬히 생각해 보아야 해요.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직업군인이 되어 전쟁무기를 앞세워 이웃을 괴롭히는 짓을 일삼으면서 돈을 벌어야 할까요? 평화롭게 마을을 가꾸고 살찌우면서 아름다운 기쁨으로 돈을 벌어야 할까요?


  그림책 《대포 속에 들어간 오리》는 대포에 들어간 오리가 ‘그저 대포에 들어간 일’만으로도 전쟁을 그치게 하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줍니다. 오리는 대포에서 느긋하게 살면서 여러 병사들한테서 사랑을 받고 보살핌을 받았어요. 알에서 깬 새끼 오리는 어미 오리를 따르면서 장군 뒤를 따르지요. 장군은 ‘대포알하고 오리알을 함께 도시로 날리는 짓’을 하지 않았거든요.


  우리 사회에서도, 이웃 여러 나라에서도, 지구별 어느 곳에서도, 모두모두 전쟁무기는 조용히 내려놓고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마을살이가 될 수 있기를 빌어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기쁜 삶터를 가꿀 수 있기를 빌어요. 4349.1.2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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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자연 그림책
아라이 마키 글.그림, 사과나무 옮김, 타카하시 히데오 감수 / 크레용하우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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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2



새봄에 해바라기씨를 심어 보자

― 해바라기

 아라이 마키 글·그림

 사과나무 옮김

 크레용하우스 펴냄, 2015.8.10. 1만 원



  씨앗 한 톨에는 아주 멋진 숨결이 고요히 잠들어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씨앗 한 톨은 우리가 즐겁게 심어 줄 날을 기다리면서 새근새근 자요. 한 해를 자기도 하고, 열 해를 자기도 하는데, 때로는 백 해나 오백 해를 자기도 해요. 다만, 씨앗을 잘 건사해야 오래도록 새근새근 자면서 우리를 기다릴 수 있어요. 씨앗을 아무렇게나 둔다면 이 씨앗은 어느새 썩고 말 테지요.




손바닥에 있는 이것은 해바라기 씨앗이에요. 해바라기 씨앗은 4월에서 6월 사이에 심어요. (1쪽)



  아라이 마키 님이 빚은 그림책 《해바라기》(크레용하우스,2015)를 한겨울에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면 우리 집 마당이나 밭자락에 어떤 씨앗을 심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림책 《해바라기》에 나오듯이 해바라기씨도 심을 만합니다. 해님을 닮은 해바라기씨를 심어서 아이들하고 함께 언제나 해바라기 노래를 부를 만해요. 상추씨를 심을 수 있고 시금치씨를 심을 수 있어요. 어떤 씨이든 흙은 모두 고이 품어 줍니다. 어떤 씨이든 우리가 건네는 손길을 기다려요.


  햇볕이 씨앗을 포근히 어루만집니다. 빗물이 씨앗을 촉촉히 적십니다. 바람이 씨앗을 맑게 쓰다듬습니다. 여기에 사람들 손길이 살가이 닿으면서 사랑스러운 꿈 하나가 씨앗에 스며들어요.




해처럼 커다란 해바라기꽃이 피어납니다! (18쪽)



  우리가 심은 씨앗에 싹이 트고 뿌리가 내리면서 떡잎이 나오고 난 뒤에는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어버이 품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도 아기 티를 벗으면서 그야말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기다가 서다가 걷다가 뛰다가 달리다가 노래하다가 웃다가 울기도 하면서 씩씩하게 자라요.


  해바라기는 해님을 바라보면서 웃고, 아이는 어버이를 마주보면서 웃습니다. 해바라기는 해님 기운을 받으면서 잘 자라고, 아이는 어버이 사랑을 받으면서 잘 자라요. 해바라기는 이 바람을 기쁘게 맞아들이면서 살랑살랑 춤을 추고, 아이는 따사로운 눈길로 바라보는 어버이 숨결을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덩실덩실 춤을 춰요.


  정갈히 일군 밭에 씨앗 한 톨을 심듯이, 곱게 돌보는 아이 마음자리에 사랑씨 한 톨을 심습니다. 마당에서는 남새도 꽃도 자라고, 아이 마음속에서는 꿈도 기쁨도 자랍니다. 그리고, 이 보금자리를 가꾸고 이 아이를 보살피는 어버이 마음속에서도 새로운 꿈날개가 훨훨 피어납니다.




여러분도 해바라기 씨앗을 심어 보세요. 씨앗이 꽃을 피우고 다시 새로운 씨앗을 얻을 때까지 소중하게 키워 보세요. (32쪽)



  그림책 《해바라기》는 작은 씨앗 한 톨에서 커다란 꽃송이로 거듭나는 해바라기 한살이를 꼼꼼하게 엮은 그림으로 잘 보여줍니다. 어린이뿐 아니라 ‘씨앗심기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어른’도 재미나고 즐겁게 ‘씨앗심기를 배울’ 수 있도록 차분히 알려줍니다. 씨앗 한 톨에 뿌리가 내려서 줄기가 쑥쑥 오르는 모습을 찬찬히 보여주고, 해바라기꽃을 이루는 혀꽃하고 대롱꽃이 저마다 어떻게 바뀌어 새로운 씨앗으로 거듭나는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알려주어요.


  이 그림책을 빚은 아라이 마키 님이 우리한테 씨앗 한 톨을 심어 보라고 넌지시 말씀하듯이, 참말 우리 스스로 곱게 씨앗 한 톨을 심은 뒤 꾸준히 지켜보고 살펴보면서 ‘그림일기’를 써 본다면, 그림책 《해바라기》 곁에 나란히 꽂을 만한 재미나고 신나는 ‘우리 그림책(관찰일기 그림책)’ 한 권을 빚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씨앗 한 톨이면 돼요. 딱 씨앗 한 톨만 심으면 돼요. 우리 보금자리마다 씨앗 한 톨이 싹을 틔워 꽃을 한 송이씩 피울 수 있으면, 우리 보금자리를 비롯해서 마을에도 나라에도 온누리에도 고운 꽃내음이 흐드러질 수 있어요. 4349.1.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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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화가 났어? 울퉁불퉁 어린이 감성 동화 1
톤 텔레헨 글, 마르크 부타방 그림, 유동익 옮김 / 분홍고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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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1



골부림하는 마음을 다스리기

― 너도 화가 났어?

 톤 텔레헨 글

 마르크 부타방 그림

 유동익 옮김

 분홍고래 펴냄, 2015.2.28. 13000원



  ‘화(火)’가 난다고 할 때가 있어요. 요즈음 사람들이 흔히 쓰는 한자말인데, ‘화’는 한국말로 ‘성’을 가리킵니다. ‘성’은 싫거나 섭섭하거나 서운한 마음을 가볍게 나타내려 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낱말이에요. ‘성’하고 비슷한 ‘부아’는 어떤 일이 잘 안 된다고 할 적에 싫은 마음이 일어나는 모습을 가리켜요. 그리고, ‘골’은 마음에 거슬리거나 싫은 일이 있을 적에 벌컥 안 좋은 마음이 일어나는 모습을 가리키고, ‘짜증’은 마음에 안 맞거나 하기 싫어서 갑자기 치미는 안 좋은 마음을 가리켜요.


  곰곰이 돌아보면, 뭔가 마음에 안 들거나 서운하거나 싫거나 할 적에 느낌이 다 다를 텐데, 요즈음은 ‘화’라는 한 가지로만 뭉뚱그려서 나타낸다고 할 수 있어요. 이냥저냥 다 싫고 마음에 안 드니 굳이 여러 낱말을 알맞게 골라서 쓸 겨를이 없을 수 있겠지요. 성이나 부아나 골이나 짜증 가운데 아이들이 문득 입술을 내밀면서 툭툭거리는 모습은 ‘골’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을 해 보려고 하는데 자꾸 안 되거나 어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꽝 하고 터지는 모습은 ‘부아’예요.



드디어 코끼리가 나무 꼭대기에 올랐어요. 코끼리는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발아래로 숲이 펼쳐져 있었어요. 저 멀리 바다에는 태양이 파도 위로 일렁거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멋진 광경은 태어나서 처음 봤어요. 코끼리는 한 다리로 섰어요. 너무나 행복해 귀를 펄럭이며 코를 하늘 높이 올리고 발레리나처럼 춤을 추려고 했어요. 그런데 몸이 기우뚱하더니 이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13쪽)




  톤 텔레헨 님이 글을 쓰고, 마르크 부타방 님이 그림을 그린 《너도 화가 났어?》(분홍고래,2015)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마음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화가 나든 성이 나든 골이 나든 부아가 나든 짜증이 나든, 이런 마음이 되는 까닭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아무래도 어떤 일이 잘 안 되기에 싫은 마음이 됩니다. 어떤 일이 잘 된다고 할 적에 싫은 마음이 들 일은 없으리라 느껴요. 해도 해도 안 되니까 골이 나요. 나는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니 부아가 치밀어요. 다른 아이들은 잘 하는데 나만 못 한다는 생각에 젖어서 그만 성을 내고 짜증이 샘솟아요.


  《너도 화가 났어?》에 나오는 코끼리는 나무 꼭대기를 반드시 올라가고야 말겠다면서 씩씩거립니다. 그런데 커다란 코끼리 몸집으로는 나무를 타고 오를 적마다 자꾸 미끄러져요. 커다란 코끼리는 나무에서 미끄러져서 바닥에 엉덩이를 찧을 적마다 부아를 냅니다. 다른 사람이나 나무한테 부아를 내지 않고, 코끼리 저 스스로한테 부아를 내요. 이러다가 끝내 우듬지까지 올라가지요. 그러고는 이 우듬지에서 무척 먼 곳까지 환하게 내다보며 모든 부아가 풀려요.


  드디어 스스로 해냈거든요. 참말 스스로 이렇게 해냈거든요. 스스로 마음에 품은 뜻이나 꿈을 이루기까지 넘어지거나 엎어지거나 깨지면 자꾸 부아가 날 만하지만, 이 모두를 헤치고 끝까지 나아가고 보니 부아가 나던 마음은 말끔히 사라져요.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어요.



“글로 쓴다면 그렇게 될 거야. 내가 ‘나는 기뻐’라고 쓰면 나는 기쁜 거야. 기쁘지 않다면 기쁘다고 쓸 리가 없어. 편지 맨 끝에 ‘고슴도치’라고 쓰면 내가 고슴도치가 맞잖아.” 고슴도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내가 무엇이라고 쓰면 그게 바로 나야.’ (36쪽)




  어린이는 어른보다 힘이 여리고 손도 작고 솜씨도 모자란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어린이가 못 하는 일이란 없어요. 어린이는 언제나 어린이 나름대로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더러 어른처럼 무거운 짐을 나르라 할 수 없고, 밥을 지으라든지 집을 지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도 어린이 나름대로 심부름을 할 만하고, 조그마한 살림을 얼마든지 거들 만해요.


  어른도 뜨개질을 처음 하려 하면 잘 안 되지요. 어린이도 뜨개질을 처음 손에 쥐면 잘 안 되기 마련이에요. 안 되고 엉키고 헝클어지고 하면서 천천히 깨닫고 배웁니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흙집을 지을 적에도 처음부터 멋지게 흙집을 짓는 어린이나 어른은 없습니다. 무너지고 쌓고 무너지고 쌓고 하는 몸짓을 되풀이하면서 차근차근 익숙해져서 나중에 흙집을 잘 쌓습니다.


  가위질도 그렇고 글씨쓰기도 그렇지요. 씩씩하게 하고 꿋꿋하게 하면서 비로소 즐겁게 해낼 만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을 처음으로 마주한다면, 서두르지 않을 수 있어야 해요. 서두르기에 부아가 나요. 빨리 해내려 하니 골이 나요. 어른처럼 못 하거나 다른 동무처럼 안 된다고 여기면서 짜증이 나지요.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사람이라서, 어른 사이에서도 이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있고, 이 일이 더딘 사람이 있어요. 어린이 사이에서도 똑같으니, 더 빨리 하는 아이가 있고, 더 천천히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개미는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곳에 ‘화’를 잘 숨길 수도 있다고 했어요. ‘화’를 바다로 흘려보낸 뒤 파도에 밀려 진정시킬 수도 있고요. 그리고 시들어 더는 볼 수 없게 할 수도 있어요. 또 노래를 불러서 ‘화’를 없애 버릴 수도 있다고 했어요. “노래를 불러서 없애 버린다고?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두꺼비가 물었어요. (66쪽)




  어린이한테 ‘싫은 마음 다스리기’를 넌지시 알려주는 《너도 화가 났어?》는 화가 난 아이한테 ‘네가 잘못하지는 않았단다’ 하고 부드럽게 타이릅니다. 화가 날 수 있지요. 화가 나도 되고요. 다만, 화가 났으면, 이 화를 어떻게 스스로 다스리면서 새로운 몸짓으로 거듭날 때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할 수 있으면 돼요.


  즐거움이 사라지기에 화도 나고 성도 나고 골도 납니다. 즐거움을 잊었기에 부아가 나고 짜증이 나지요. 내 마음이 즐거움으로 가득하다면 섭섭하거나 서운한 일이 없어요. 내 마음이 즐거움으로 노래가 된다면 싫거나 밉거나 시샘하는 마음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어른들은 흔히 명상을 하는데, 어린이도 어른하고 함께 가만히 마음을 다스리면서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어린이들은 참으로 고단하거든요. 학교 공부로 고단하고, 학원 공부로도 고달파요. 홀가분하게 뛰놀 틈이 거의 없는 오늘날 어린이인 터라, 어린이도 골이 날 일이 잦다고 할 수 있어요.


  화풀이나 성풀이를 해야 화나 성이 풀릴 수 있기도 할 테지만, 이보다는 저 먼 바닷물에 화를 띄워 보낸다든지, 가랑잎에 성을 실어서 흙으로 돌려 보낸다든지, 가만히 노래를 부르면서 이 노랫가락에 날려 보낸다든지 할 수 있어요.


  “그래, 네가 골이 났네. 그러면 그 골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풀면 되지. 골이 났다고 해서 나쁜 일이 아니야. 골이 난 까닭을 생각해서, 앞으로 즐겁게 노래하면서 놀면 돼. 아니면, 앞으로도 이대로 골만 내면서 아무것도 못 하거나 안 하고 싶니?” 하는 말을 아이한테도 들려주고, 어른인 내가 나 스스로한테도 들려줍니다. 즐거움을 잊은 마음에 어느새 끼어들려고 하는 골부림을 빙그레 웃으면서 슥슥삭삭 비질을 하며 치웁니다. 4349.1.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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