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화가 났어? 울퉁불퉁 어린이 감성 동화 1
톤 텔레헨 글, 마르크 부타방 그림, 유동익 옮김 / 분홍고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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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부림하는 마음을 다스리기

― 너도 화가 났어?

 톤 텔레헨 글

 마르크 부타방 그림

 유동익 옮김

 분홍고래 펴냄, 2015.2.28. 13000원



  ‘화(火)’가 난다고 할 때가 있어요. 요즈음 사람들이 흔히 쓰는 한자말인데, ‘화’는 한국말로 ‘성’을 가리킵니다. ‘성’은 싫거나 섭섭하거나 서운한 마음을 가볍게 나타내려 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낱말이에요. ‘성’하고 비슷한 ‘부아’는 어떤 일이 잘 안 된다고 할 적에 싫은 마음이 일어나는 모습을 가리켜요. 그리고, ‘골’은 마음에 거슬리거나 싫은 일이 있을 적에 벌컥 안 좋은 마음이 일어나는 모습을 가리키고, ‘짜증’은 마음에 안 맞거나 하기 싫어서 갑자기 치미는 안 좋은 마음을 가리켜요.


  곰곰이 돌아보면, 뭔가 마음에 안 들거나 서운하거나 싫거나 할 적에 느낌이 다 다를 텐데, 요즈음은 ‘화’라는 한 가지로만 뭉뚱그려서 나타낸다고 할 수 있어요. 이냥저냥 다 싫고 마음에 안 드니 굳이 여러 낱말을 알맞게 골라서 쓸 겨를이 없을 수 있겠지요. 성이나 부아나 골이나 짜증 가운데 아이들이 문득 입술을 내밀면서 툭툭거리는 모습은 ‘골’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을 해 보려고 하는데 자꾸 안 되거나 어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꽝 하고 터지는 모습은 ‘부아’예요.



드디어 코끼리가 나무 꼭대기에 올랐어요. 코끼리는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발아래로 숲이 펼쳐져 있었어요. 저 멀리 바다에는 태양이 파도 위로 일렁거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멋진 광경은 태어나서 처음 봤어요. 코끼리는 한 다리로 섰어요. 너무나 행복해 귀를 펄럭이며 코를 하늘 높이 올리고 발레리나처럼 춤을 추려고 했어요. 그런데 몸이 기우뚱하더니 이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13쪽)




  톤 텔레헨 님이 글을 쓰고, 마르크 부타방 님이 그림을 그린 《너도 화가 났어?》(분홍고래,2015)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마음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화가 나든 성이 나든 골이 나든 부아가 나든 짜증이 나든, 이런 마음이 되는 까닭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아무래도 어떤 일이 잘 안 되기에 싫은 마음이 됩니다. 어떤 일이 잘 된다고 할 적에 싫은 마음이 들 일은 없으리라 느껴요. 해도 해도 안 되니까 골이 나요. 나는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니 부아가 치밀어요. 다른 아이들은 잘 하는데 나만 못 한다는 생각에 젖어서 그만 성을 내고 짜증이 샘솟아요.


  《너도 화가 났어?》에 나오는 코끼리는 나무 꼭대기를 반드시 올라가고야 말겠다면서 씩씩거립니다. 그런데 커다란 코끼리 몸집으로는 나무를 타고 오를 적마다 자꾸 미끄러져요. 커다란 코끼리는 나무에서 미끄러져서 바닥에 엉덩이를 찧을 적마다 부아를 냅니다. 다른 사람이나 나무한테 부아를 내지 않고, 코끼리 저 스스로한테 부아를 내요. 이러다가 끝내 우듬지까지 올라가지요. 그러고는 이 우듬지에서 무척 먼 곳까지 환하게 내다보며 모든 부아가 풀려요.


  드디어 스스로 해냈거든요. 참말 스스로 이렇게 해냈거든요. 스스로 마음에 품은 뜻이나 꿈을 이루기까지 넘어지거나 엎어지거나 깨지면 자꾸 부아가 날 만하지만, 이 모두를 헤치고 끝까지 나아가고 보니 부아가 나던 마음은 말끔히 사라져요.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어요.



“글로 쓴다면 그렇게 될 거야. 내가 ‘나는 기뻐’라고 쓰면 나는 기쁜 거야. 기쁘지 않다면 기쁘다고 쓸 리가 없어. 편지 맨 끝에 ‘고슴도치’라고 쓰면 내가 고슴도치가 맞잖아.” 고슴도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내가 무엇이라고 쓰면 그게 바로 나야.’ (36쪽)




  어린이는 어른보다 힘이 여리고 손도 작고 솜씨도 모자란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어린이가 못 하는 일이란 없어요. 어린이는 언제나 어린이 나름대로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더러 어른처럼 무거운 짐을 나르라 할 수 없고, 밥을 지으라든지 집을 지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도 어린이 나름대로 심부름을 할 만하고, 조그마한 살림을 얼마든지 거들 만해요.


  어른도 뜨개질을 처음 하려 하면 잘 안 되지요. 어린이도 뜨개질을 처음 손에 쥐면 잘 안 되기 마련이에요. 안 되고 엉키고 헝클어지고 하면서 천천히 깨닫고 배웁니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흙집을 지을 적에도 처음부터 멋지게 흙집을 짓는 어린이나 어른은 없습니다. 무너지고 쌓고 무너지고 쌓고 하는 몸짓을 되풀이하면서 차근차근 익숙해져서 나중에 흙집을 잘 쌓습니다.


  가위질도 그렇고 글씨쓰기도 그렇지요. 씩씩하게 하고 꿋꿋하게 하면서 비로소 즐겁게 해낼 만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을 처음으로 마주한다면, 서두르지 않을 수 있어야 해요. 서두르기에 부아가 나요. 빨리 해내려 하니 골이 나요. 어른처럼 못 하거나 다른 동무처럼 안 된다고 여기면서 짜증이 나지요.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사람이라서, 어른 사이에서도 이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있고, 이 일이 더딘 사람이 있어요. 어린이 사이에서도 똑같으니, 더 빨리 하는 아이가 있고, 더 천천히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개미는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곳에 ‘화’를 잘 숨길 수도 있다고 했어요. ‘화’를 바다로 흘려보낸 뒤 파도에 밀려 진정시킬 수도 있고요. 그리고 시들어 더는 볼 수 없게 할 수도 있어요. 또 노래를 불러서 ‘화’를 없애 버릴 수도 있다고 했어요. “노래를 불러서 없애 버린다고?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두꺼비가 물었어요. (66쪽)




  어린이한테 ‘싫은 마음 다스리기’를 넌지시 알려주는 《너도 화가 났어?》는 화가 난 아이한테 ‘네가 잘못하지는 않았단다’ 하고 부드럽게 타이릅니다. 화가 날 수 있지요. 화가 나도 되고요. 다만, 화가 났으면, 이 화를 어떻게 스스로 다스리면서 새로운 몸짓으로 거듭날 때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할 수 있으면 돼요.


  즐거움이 사라지기에 화도 나고 성도 나고 골도 납니다. 즐거움을 잊었기에 부아가 나고 짜증이 나지요. 내 마음이 즐거움으로 가득하다면 섭섭하거나 서운한 일이 없어요. 내 마음이 즐거움으로 노래가 된다면 싫거나 밉거나 시샘하는 마음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어른들은 흔히 명상을 하는데, 어린이도 어른하고 함께 가만히 마음을 다스리면서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어린이들은 참으로 고단하거든요. 학교 공부로 고단하고, 학원 공부로도 고달파요. 홀가분하게 뛰놀 틈이 거의 없는 오늘날 어린이인 터라, 어린이도 골이 날 일이 잦다고 할 수 있어요.


  화풀이나 성풀이를 해야 화나 성이 풀릴 수 있기도 할 테지만, 이보다는 저 먼 바닷물에 화를 띄워 보낸다든지, 가랑잎에 성을 실어서 흙으로 돌려 보낸다든지, 가만히 노래를 부르면서 이 노랫가락에 날려 보낸다든지 할 수 있어요.


  “그래, 네가 골이 났네. 그러면 그 골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풀면 되지. 골이 났다고 해서 나쁜 일이 아니야. 골이 난 까닭을 생각해서, 앞으로 즐겁게 노래하면서 놀면 돼. 아니면, 앞으로도 이대로 골만 내면서 아무것도 못 하거나 안 하고 싶니?” 하는 말을 아이한테도 들려주고, 어른인 내가 나 스스로한테도 들려줍니다. 즐거움을 잊은 마음에 어느새 끼어들려고 하는 골부림을 빙그레 웃으면서 슥슥삭삭 비질을 하며 치웁니다. 4349.1.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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