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6.


《진짜 별이 아닌 별이 나오는 진짜 이야기》

 오카다 준 글·윤정주 그림/이경옥 옮김, 보림, 2008.8.25.



둘레에서 우리 아이들을 볼 적마다 으레 “몇 학년이니?” 하고 묻는다. 어른이라는 이들은 다 이렇다. 어른들 스스로 아이를 보며 “난 몇 살이야. 넌 몇 살이니?”처럼 먼저 스스로 밝히는 이가 드물다. 게다가 “네 이름은 뭐니?” 하고만 물어볼 뿐, 어른 스스로 “난 이름이 ○○야. 넌 이름이 뭐니?”처럼 먼저 이름을 밝히는 이도 아주 드물다. 생각해 보라. 반가이 맞이하거나 사귀거나 알고 싶다면, 어른부터 스스로 이름이며 나이를 밝힐 노릇 아닌가? 그대(어른)가 누구인지 알고 아이들이 그대한테 이름이며 나이를 밝혀 주어야 하는가? 《진짜 별이 아닌 별이 나오는 진짜 이야기》를 얼결에 만났다. 얼결이라기보다는 글쓴님 다른 책을 읽고서 꽤 마음에 들어 이분 책을 하나하나 장만해서 읽는다. 다른 책도 좋은데 이 책 ‘별’을 다루는 이야기도 꽤 좋다. 한국에서 ‘별 스티커’를 교실 뒤쪽 알림판에 붙여서 서로 겨룸판이 되도록 일삼던 짓은 아마 일본에서 건너오지 않았을까? 이런 흐름이 여느 일터로도 넘어가서 ‘영업 매출 성과표’로 불거지고. 아이들이 저마다 별인 줄, 또 어른도 어른이란 몸이기 앞서 저마다 다르면서 고운 별인 줄 잊는다면 이 삶터는 망가지는 길로 가겠지. 별을 엉뚱한 데서 찾지 말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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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7.


《지젤 알랭 5

 카사이 수이 글·그림/이청 옮김, 대원씨아이, 2019.10.31.



아이들한테 읍내마실이란 무엇일까? 큰아이는 이제 웬만해서는 읍내이든 다른 곳이든 나가고 싶지 않다. 작은아이는 가깝든 멀든 나들이를 다니고 싶다. 아버지는 책숲 알림종이를 뜨려고 읍내에 다녀오기로 하는데, 작은아이는 같이 가겠다고 짐을 꾸린다. 새삼스럽지만, 시골에서 시골버스를 타노라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늘 새치기를 한다. 새치기를 안 하셔도 빈자리가 많으나 굳이 새치기를 한다. 이 모습을 보는 어린이나 푸름이도 똑같이 군다. 다만 어린이나 푸름이 가운데에는 이런 꼴이 싫어 일부러 뒤로 가서 기다리는 아이가 더러 있다. 오늘도 할아버지들이 새치기를 하며 작은아이 머리를 툭 밀치고는 멀쩡히 올라탄다. “할배, 뭐 하시는 짓이오?” 새치기를 할 적에는 다들 얼마나 잽싼지 모른다. 하! 한숨을 가늘게 내쉬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2011년에 처음 한국말로 나오고 2014년을 끝으로 더는 한국말로 안 나오던 《지젤 알랭》이 다섯 해 만에 다섯걸음이 나왔다. 드디어! 반가이 펼친다. 여러 해 만에 넘겨서 그런지 줄거리가 살짝 가물거리다가 쉰 쪽쯤 읽자 비로소 떠오른다. 그런데 좀 늘어진다. 늘어지네. 느슨하네. 다잡아 주면 좋겠는데, 어려운 노릇일까. 그래도 오랜만에 뒷걸음이 나온 대목이 고맙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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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도서관 이야기


 부안 전주 샘님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2019.11.2.)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토요일 낮나절에 책숲에 두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처음에는 책숲이 아닌 저희 살림집으로 찾아오셨어요. 책숲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채 그저 ‘숲노래(최종규)’ 이름만 챙겨서 달려오셨대요. 한 분은 부안에서, 한 분은 전주에서, 이렇게 두 분이 오셨는데, 두 분 모두 ‘샘님(교사)’으로 일하신다고 해요. 《우리말 동시 사전》을 만나면서 동시쓰기하고 글쓰기를 놓고서 즐거이 실마리를 듣고 싶어서 걸음한 두 분 발자국에는 틀림없이 즐거운 빛줄기가 드리웠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느 날에는 배움터에서 샘님이란 이름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실 텐데, 이날은 이렇게 스스럼없이 새로 배우는 걸음을 하셨거든요. 우리는 배울 수 있기에 가르치지 않을까요? 우리는 가르치기에 새로 배워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여러 이웃님이 저희 책숲까지 마실을 하는 일이 매우 반갑다고 느껴요. 때로는 저희를 이웃님이 계신 삶터로 살그마니 불러서 한결 느긋하게 이야기밭을 일구어도 재미날 테고요. 저는 제가 삶을 지어 살림을 노래하는 자리에서는 늘 ‘우리 집 꽃하고 나무하고 풀하고 풀벌레하고 새하고 바람하고 별빛하고 구름하고 빗물하고 이슬하고 ……’ 이런 동무하고 도란도란 속삭여요. 제가 쓰는 모든 글은 바로 이 동무하고 나눈 말이랍니다. 저희를 이웃님 계신 자리에 불러서 제가 나들이를 갈 적에는 이웃님을 그리면서 새롭게 동시를 한 자락 쓰고, 모처럼 느긋하게 버스나 기차에서 책을 읽으며 이웃님 둘레 마을살이를 돌아보면서 새삼스레 배웁니다. 다같이 배울 수 있기에 이 별이 아름다울 테고, 배운 살림을 한결 넉넉히 나누면서 누리기에 이 별에 사랑이라는 꽃이 핀다고 여깁니다. 올 11월하고 12월에는 어느 이웃님을 만날는지, 또 제가 어디로 찾아갈는지, 하나하나 그려 봅니다. 모두 홀가분한 발걸음 되겠지요.  ㅅㄴㄹ 





* 새로운 한국말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알라딘에서]

 http://blog.aladin.co.kr/hbooks/578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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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사춘기란 뭘까요?



[물어봅니다]

  선생님, ‘사춘기’란 뭘까요? 아, 그냥 모르겠어요. 사춘기란 말뜻도,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겠어요.


[이야기합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푸름이가 사춘기인가요? 아마 그럴는지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사춘기란 참말 무엇이려나요? 사전 뜻풀이를 넘어서, 또 둘레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대목을 넘어서, 푸름이 스스로 “사춘기란 참말 뭘까?”를 먼저 마음으로 물어보면 좋겠어요.


[표준국어대사전]

사춘기(思春期) :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어 가는 시기. 성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여 이차 성징이 나타나며, 생식 기능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이성(異性)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춘정(春情)을 느끼게 된다. 청년 초기로 보통 15∼20세를 이른다


  여느 사전에서 ‘사춘기’란 한자말을 찾아보았습니다. “어른이 되어 가며 몸이 달라지며 ‘춘정을 느끼’는 때”가 사춘기라 하는데, 이런 뜻풀이가 가슴으로 와닿는지요?


  제가 어른이란 몸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이 뜻풀이는 사춘기를 제대로 풀이하지 않은 듯합니다. 자, 사춘기란 한자말을 잘 뜯어 볼게요. ‘思(생각/헤아림) + 春(봄) + 期(때/철)’ 얼개요, 이는 ‘봄을 생각하는/헤아리는 때/철’입니다.


  푸름이 여러분, “봄을 생각하는 때”나 “봄을 헤아리는 철”이란 무엇일까요? 봄은 어떤 철일까요?


 봄 : 새싹. 새잎. 새로운 나뭇가지하고 나무줄기 + 이른 꽃

 여름 : 짙은 잎. 굵은 가지하고 줄기 + 무르익는 꽃 + 이른 열매

 가을 : 바래는 잎. 지는 잎. 가랑잎 + 무르익는 열매 + 갈무리

 겨울 : 씨앗. 새봄을 기다리며 꿈꾸는 잎눈하고 꽃눈


  네 철을 이렇게 갈라 볼 수 있습니다. 이 흐름을 본다면 “봄을 생각하는/봄을 헤아리는” 무렵이란, 새로 돋을 잎을 이야기한다고 할 만해요. 사춘기란, 이제 갓 피어나려는 옅고 보드라우면서 푸른 잎사귀를 그리는 철이나 나이라 할 만하지요. 그러나 아직 여름이 아닌 봄인 터라, 잎이 돋고 줄기나 가지가 차근차근 뻗으려 해요. 아마 사춘기라는 나이나 때나 철을 지나면 줄기하고 가지가 굵으면서 꽃이 피는 흐름으로 들어서겠지요.


  푸름이 여러분은 이런 ‘봄나이’나 ‘봄철’을 그려 보았을까요? 흔히들 사춘기라는 때는 “성호르몬 분비에 따른 이차성징으로 몸이 많이 바뀌면서 힘들고 어지럽고 아픈 나날”로 여깁니다. 그렇지만 굳이 이렇게 볼 일은 없지 싶어요. 우리가 새봄에 마주하는 꽃이며 풀이며 나무는 그다지 아프거나 힘들거나 어지러워 보이지 않거든요.


  봄날 매화꽃이나 벚꽃이 아파 보이는 꽃인가요? 봄에 돋는 새싹이 아파 보이나요? 봄꽃이 어지러워 보이나요? 봄꽃이 힘들어 보이나요? 온통 기쁨으로 반짝이고, 언제나 기쁘게 활짝활짝 웃음을 지으면서 눈부시게 우리를 부르지 않나요? 이리하여 저는 ‘사춘기’라는 낱말을 새롭게 풀이하려고 생각합니다.


[숲노래 사전]

사춘기 : → 꽃나이. 봄나이. 꽃철. 봄철

꽃나이 : 1. 꽃을 생각하거나 그리거나 꿈꾸거나 마음에 품는 나이. 씨앗·열매을 맺으려고 피우는 숨결을 품었다 할 나이나 때 2.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거나 눈부신 나날·때·철·삶이라 여기면서 마음에 품는 나이나 때 3. 가장 돋보이거나 대수롭거나 뜻있거나 크거나 사랑스럽거나 뛰어나거나 아름답다고 할 나이나 때


  먼저 ‘사춘기’란 이름보다는 ‘꽃나이’나 ‘봄나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쓰고 싶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꽃철’이나 ‘봄철’을 함께 쓸 수 있어요. 뜻풀이는 ‘꽃나이’를 붙여 봅니다. 꽃을 생각하는 나이라서 꽃나이라 할 만해요. 꽃을 생각한다는 뜻은 꽃다운 숨결을 앞으로 이루려는 뜻이나 꿈으로 간다는 나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푸름이 여러분이 맞이하는 꽃나이·봄나이·꽃철·봄철은 어지럽거나 힘들거나 아픈 때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꼬물꼬물 애벌레가 깊이 잠들고 나서 눈부신 나비로 거듭나듯이, 푸름이 여러분은 바야흐로 ‘꿈꾸는 애벌레’처럼 한창 꿈을 꾸면서 곧 이 꿈에서 일어나 ‘나비로 거듭나는 길’에 들어선다는 뜻입니다.


꽃나이·푸른꽃나이

봄나이·봄

꽃철·봄철·꽃날·봄날

푸름이·푸른날


  저는 여러분을 ‘푸름이’란 이름으로 부릅니다. 한자말 ‘청소년’은 그다지 안 쓰고 싶습니다. ‘청소년’이란 이름을 사회에서 널리 쓰기는 해도 제 입에는 잘 안 붙어요. 푸르게 빛나고 싶은 꿈꾸는 애벌레다운, 또 새봄을 맞이해서 갓 돋은 맑은 풀빛다운 넋이요 숨결이 바로 여러분이라고 느끼기에, ‘푸르다 + 이’ 얼개로 ‘푸름이’라는 이름을 쓰곤 합니다.


  우리는 사춘기를 거쳐야 할 까닭이 없다고 여깁니다. 꽃나이를 즐겁게 맞이하고 누리면서 꽃철로 접어드는 꽃길을 가면 넉넉하다고 여깁니다. 푸름이 여러분은 중2병도 고2병도 고3병도 아닌 언제나 싱그러운 푸름이요 푸른꽃이요 푸른봄이요 푸른나이라고 느낍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곳에서 푸르게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는 숨결을 바로 저 같은 어른한테 푸른 사랑으로 나누어 준다고 느낍니다.


  자, 봄철 봄나이를 누려 볼까요? 꽃철 꽃나이를 누리면 어때요? 푸른꽃나이를 누리고, 푸른봄나이를 함께해 봐요. 여러분 모두 다 다르게 빛나는 나비가 되어 온누리에 아름다운 사랑을 널리 펴시면 좋겠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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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김은영 지음, 김상섭 그림 / 창비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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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09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김은영 글

 김상섭 그림

 창비

 2001.7.30.



  놀이를 싫어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놀고 싶지 않은 아이는 참으로 하나도 없습니다. 이와 달리 아이가 놀기를 바라지 않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아이한테 일을 시켜야 해서 아이가 못 놀게 하기보다는, 아이가 시험공부나 학교수업을 해야 한다고 여겨서 못 놀게 하지 싶습니다. 초등학교라는 곳을 다니면서 하루에 한나절이라도 마음껏 노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공부도 수업도 하지 않고서 적어도 한나절을 뛰놀고 꿈꾸며 활짝 웃고 노래하는 아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는 시골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 눈높이로 쓴 동시를 들려줍니다. 어디까지나 어른 눈높이입니다. 아이 눈높이는 아닙니다. 아무래도 교사라는 자리인 터라 아이들을 반듯하게 이끌거나 가르치는 이야기가 흐르고, 서울처럼 크지 않고 수수한 아이들을 지켜본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런데 교사란 자리라 하더라도 ‘아이들아, 같이 놀자? 날 어른으로 여기지 말고 너희랑 똑같은 동무로 여기며 같이 놀자?’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김치를 꺼리고 샐러드를 먹더라도 ‘너희 입맛은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억지로 김치 먹이지 맙시다. 날배추도 배추지짐도 배추된장국도 있습니다. 동시를 어른 눈으로 쓰면 억지스럽습니다. ㅅㄴㄹ



찬주의 주머니 속엔 / 놀이가 들어 있네 / 동무도 들어 있고 / 가을도 들어 있네 (20∼21쪽/찬주의 바지 주머니 속에는 무엇이 들었나)


샐러드는 잘 먹어도 / 김치는 싫어하는 아이들아 / 케첩은 잘 먹어도 / 된장 고추장은 싫어하는 아이들아 //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 된장 고추장에 / 푸르딩딩한 풋고추 / 푹 찍어 먹어 보자 // 아려 오는 혀와 입술 / 타오르는 목구멍 / 입 크게 벌리고 / 허― / 숨을 내뱉으면 / 혀 밑으로 / 끈끈하고 맑은 침이 고이리라 (54쪽/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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