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그것밖에 못 읽는다 : 그것밖에 못 읽는다면, 그것밖에 귀를 안 열었다는 뜻이니, 이이한테 더 입을 열어 본들 더 들어갈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굳이 입이 아프게 덧말을 하지 말 노릇이다. 그것밖에 못 읽는다면, 그래도 그것이나마 귀를 열고서 읽는다는 뜻이니, 이이로서는 그것이라도 읽도록 지켜보면 된다. 다른 이야기나 새로운 이야기나 이어지는 이야기가 수두룩하지만, 그것만 읽는 눈빛인 그이한테 구태여 다른 이야기나 새로운 이야기나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추지 말자. 자칫 그이는 뒤죽박죽이 되어 그나마 그것이라도 읽은 머리가 터져 버릴 수 있다. 1994.10.1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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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통한 날 문학동네 동시집 2
이안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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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08


《고양이와 통한 날》

 이안

 문학동네

 2008.11.24.



  어린이가 쓰고 읽는 글이기에 동시일 수 없습니다. 동시란 어린이부터 누구나 삶을 새롭게 읽고 사랑을 슬기롭게 익히며 꿈을 즐겁게 노래하는 글이라고 여깁니다. 때로는 어른 사이에서만 흐르는 시를 쓸 수 있겠지요. 그러나 어른 사이에서 따지거나 다룰 이야기를 시로 쓰더라도 언제나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리는 마음으로 쓸 노릇이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시란 언제나 노래이거든요. 노래란 누구나 부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빛이거든요. 《고양이와 통한 날》을 읽는데, “고양이와 통하는” 길이 뭔가 아리송합니다. “고양이하고 만나는” 길일까요, “고양이하고 사귀는” 길일까요, “고양이랑 노는” 길일까요, “고양이를 구경하는” 길일까요? 아니면? 동시란 이름으로 글을 쓸 적에는 어렴풋한 말을 쓸 수 없습니다. 또렷하되 여러모로 생각을 넓힐 말을 가려서 쓸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어린이부터 어른 누구나 마음을 북돋우도록 낱말을 고르고 말씨를 가리며 글자락을 여밀 적에 비로소 동시가 되어요. 곧 동시란 여느 어른시하고 대면 대단히 어렵지만 매우 쉬운 글이에요. 우리가 같이 동시를 쓸 줄 아는 마음이라면 어떤 노래이든 부를 수 있고, 어떤 길을 걷더라도 아름드리꽃이 되지 싶습니다. 꽤 아쉽습니다. ㅅㄴㄹ



빨래하기 전 아버지는 마당에 나가 / 하늘 한 바퀴 둘러보신다 / 바람 한 자락 만져 보신다 (빨래/20쪽)


고양이는 고양이 / 개가 아니죠 // 오란다구 오지 않고 / 가란다구 가지 않죠 (고양이는 고양이/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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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나를 위로하다 모악시인선 16
박두규 지음 / 모악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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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07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

 박두규

 모악

 2018.11.23.



  시를 어떻게 쓰면 좋을까 하고 묻는 분한테 늘 한 가지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책을 눈으로 글씨를 읽지 않는다고, 우리는 책에 적힌 글씨에 흐르는 마음을 읽는다고, 이를 한자말로 바꾸어 ‘행간 읽기’라고들 하지만, 이런 말은 누구나 알아듣기 쉽지 않다고, 꾸밈없이 ‘마음 읽기’라고 말해야 어린이부터 누구나 알아듣는다고, 곧 시를 쓸 적에는 언제나 우리 마음으로 이웃 마음을 읽는 몸짓이 되어 손에 붓을 쥐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를 읽으면서 시쓴님 마음을 헤아립니다. 시쓴님은 이녁 둘레에 흐르는 마음을 어떻게 읽으면서 글줄을 여미었을까요?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읽을까요? 꿈이나 기쁨이나 반가움이나 노래라는 마음으로 읽을까요? 곰곰이 보면 시쓴님은 이녁 싯말 곳곳에 드러내기도 했듯이 ‘어둠’으로 바라보면서 글줄을 여미었구나 싶어요. 어둠이라는 눈길하고 마음으로도 얼마든지 이웃을 볼 만하겠지요. 그러나 스스로 어둠을 지우거나 씻거나 털어낸 말끔한 이웃을 ‘어둠이란 눈길’로 바라보려고 하면 무엇을 보거나 느낄까요? 어둡게 살아도 나쁘지 않아요. 어둠에 감싸인 채 시를 써도 나쁘지 않아요. 다만 어둠도 어둠 그대로 바라본다면 이 시집이 사뭇 달랐으리라 느낍니다. ㅅㄴㄹ



숲길에서 꽃 한 송이에 걸음이 멈추면 / 나는 그 꽃입니다. (그렇게 그대가 오면/28쪽)


이젠 내 어둠도 가벼워져야 해. 아무리 순도 높은 어둠이라 해도 이젠 변해야 해. (새벽에 문득 깨어/57쪽)


10년을 살든 110년을 살든 사랑이 없다면 그게 무슨 삶이겠는가. 나는 길을 가는 아무나 붙잡고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토해내고 싶었다. (빌카밤바의 110살/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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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HaHa)
오시키리 렌스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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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



《하하 HaHa》

 오시키리 렌스케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8.5.31.



“부모의 의견과 가지꽃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고 하잖니?” “어차피 나 같은 가지는 꽃도 안 피워.” …… “나는 아직 18세 꽃다운 소녀. 마음 내키는 대로 살면서 술판을 벌이지. 그거야말로 나다운 인생이야. 벌써부터 어른이 될 걸 걱정하면서 살면 반대로 손해잖아. 어떤 것도 나를 묶어놓을 수는 없어!” (10쪽)



  오늘 이곳에서 바라보는 살림이 매우 팍팍하다 싶은데 어머니는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요? 궁금한 아이는 어머니한테 여쭙니다. 어머니는 새롭게 싱글싱글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럼, 웃을 일이 있는데 웃지, 우니?” 멍하니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이한테 어머니는 몇 마디를 보탭니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즐거운 일은 웃으면서 살아야지. 아무리 힘들더라도 스스로 웃어야 즐겁지. 아무리 어렵더라도 웃음으로 풀어서 넘겨야지.”


  아이는 어머니 말을 알아들었을까요? 아이는 어머니 말을 언제쯤 알아듣고서 찬찬히 철이 들 만할까요? 어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어릴 적에 어떤 나날을 보냈을까요?



“타에 언니, 그렇게 심하게 혼내도 괜찮은 거야?” “어머, 노부. 야단 좀 맞았다고 그만둘 것 같으면 이 일 못하지.” “그건 그래.” “엄격하면 엄격할수록 한 사람 몫을 해내는 거야. 그걸 생각하면 야단 좀 맞는 건 별것 아니지.” (30쪽)



  만화책 《하하 HaHa》(오시키리 렌스케/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8)는 어머니하고 아이 사이에 흐르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오늘은 어머니였으나 어제는 아이였던 삶을, 그리고 어제 아이였던 사람한테 어머니나 아버지였던 분이 더 옛날에는 어떤 아이로 살았으려나 하고 어림해 보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짚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이로서 어머니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우리 어머니는 왜 저 따위야?’라든지 ‘우리 어머니는 늘 저래서 못 이긴다니까!’ 같은 생각이 왜 불거지고 어떻게 풀리는가를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엄마의 뇌리에는 지금까지 홀대받은 애견들의 원통한 얼굴이 떠올랐고, 그 원한이 쌓이고 쌓여 할아버지에게 대들기 충분한 용기가 갖춰져 있었다. “그만두렴, 노부. 아버지는 딸의 기분도, 개의 기분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66쪽)



  ‘하하’라는 말소리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똑같이 웃음소리를 나타냅니다. 무척 재미난 말이에요. 어쩌면 세 나라뿐 아니라 온누리 모든 나라에서 ‘하하’는 웃음을 가리키는 말소리이지 않을까요? 사람한테뿐 아니라 새한테도 나무한테도 별한테도 ‘하하’는 즐거운 웃음이요 슬픔을 씻는 웃음이며 아픔을 달래는 웃음이지 않을까요?


  일본에서는 ‘하하(はは)’에 다른 뜻도 깃듭니다. 바로 ‘어머니’예요. 웃음소리이자 어머니를 가리키는 ‘하하’입니다.


  재미나지요. 다른 말소리도 아닌 웃음소리를 가리키는 말하고 어머니를 가리키는 말이 같아요. 어머니라고 하는 자리는, 어머니라고 하는 숨결은, 어머니로 나아가는 길은, 몸뚱이만 크고 나이만 먹는 삶이 아닌, 슬기로우면서 따뜻하고 즐거운 살림이겠구나 싶습니다.



“그거야, 그 감정. 남을 탓하는 감정을 억누르질 못하잖니. ‘개똥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새들까지 똥을 날리는 거야. 이상한 사람들이 금방 시비를 거는 것도 네가 비슷해 보이니까, 시비 걸고 싶도록 하고 다니기 때문이지. 정신을 맑게 유지해야 해.” (106쪽)



  말 한 마디로 가르칩니다. 몸짓 하나로 보여줍니다. 웃음 하나로 일깨웁니다. 말 두 마디로 같이 배웁니다. 새로운 몸짓으로 나란히 지켜봅니다. 웃음 두 판째로 깨우칩니다.


  낯을 찡그리고 다닌들 나아질 일이 없습니다. 잔뜩 일그러뜨린 얼굴로는 달라질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는 낯이 되면? 글쎄요. 엇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웃는 낯일 적에는? 글쎄요, 아마 다르지 않을까요?


  누가 우리를 괴롭혔다고 한들, 이를 대수로이 여기지 않으면서 웃음으로 흘려보낼 수 있거나 살짝 튕겨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누가 우리를 못살게 굴거나 들볶거나 힘들게 하더라도, 이를 가볍게 여기면서 웃음으로 휙 넘기거나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갈 수 있으면 어떨까요?



“그렇지 않아. 네가 다가가기만 하면, 분명 그쪽도 그렇게 할 거야.” (191쪽)


“싫은 일도 상관없어. 괴로운 일도 덤비라고 해.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그 전부 통틀어서 즐기는 거야. 살아가면서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다고 생각하면 별것도 아니니까.” (216쪽)



  다시 돌아봅니다. 다시 물어봅니다. 어머니는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어떻게 웃음으로 하루하루 살아내고서 오늘 이곳에서 아이한테 웃음 띤 낯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아이로 자라는 우리는 앞으로 어떤 어버이(어머니나 아버지)가 되어 활짝활짝 웃음꽃으로 웃음어른이 될 만할까요?


  모두 웃음으로 품을 줄 알기에 웃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모두 웃음으로 안는 몸짓이기에 우스우면서 즐겁습니다. 남들이 우리를 비웃을 수 있어요. 남들이 우리를 손가락질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일 뿐, 우리는 그들도 저들도 아니랍니다. 우리는 우리로서 오늘 이곳을 누려요. 우리는 우리답게 오늘 여기에서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고 살림을 사랑으로 가꾸면서 즐겁게 일어섭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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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아버지 : 아버지라고 하는 자리는, 아버지라고 하는 숨결은, 아버지로 나아가는 길은, 몸피만 크고 나이만 많은 삶이 아닌, 상냥하면서 씩씩하고 신나는 살림이어야지 싶다. 노래할 줄 알기에 아버지일 테지. 노래로 달래고 노래로 씻고 노래로 다독이고 노래로 가꾸고 노래로 사랑하고 노래로 살아가는 길을 어질면서 참하게 이야기로 베풀 줄 알기에 아버지일 테지. 1987.12.8.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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