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평화통일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34
정주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전쟁을 억누른대서 평화가 되지 않습니다



《10대와 통하는 평화통일 이야기》

 정주진

 철수와영희

 2019.9.4.



남한과 북한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싸우다 보니 우리는 항상 전쟁을 생각하고 전쟁을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24쪽)


독재자와 정치인은 오히려 국민의 무관심과 무지에 힘입어 남북 대립과 군사적 대결을 강화했습니다. (54쪽)


그렇지만 증오만 생각하면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파괴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63쪽)


남북관계와 북한에 대해 가짜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은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가짜뉴스를 만드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을 너무 증오해서 북한과 관계가 좋아지는 것도, 대화를 하는 것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반도 평화와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방해합니다. 다른 하나는 가짜뉴스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90쪽)


국방부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국민과 함께 평화를 만드는 강한 국방’이라는 구호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무력 강화가 곧 평화를 보장하고, 국민이 원하는 바이며,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구호는 7조 4000억 원을 들여서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40대를 도입하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108쪽)


(산불 진화용) 250억 원짜리 대형 소방헬기와 (전쟁용) 1150억 원짜리 스텔스 전투기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잘 말해 줍니다. 거의 쓸 일이 없는 스텔스 전투기에는 막대한 돈을 쓰면서 안전을 위해 정말 필요한 소방헬기에는 돈을 쓰지 못하는 현실을요. (110쪽)


함께 살아가려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북한은 우리 이웃이라는 점입니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이루어야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우리는 북한과 서로 위협하고 싸우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둘 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162쪽)



  이제 우리는 스스로 묻고 이웃나라에도 물어보아야 할 때입니다. ‘서로서로 군대를 이렇게 키우고 해마다 어마어마한 돈을 군대에 쏟아부어서 우리가 여태 평화로웠나요, 아니면 더 다투거나 싸우면서 군대에 돈을 더 쏟아부어야 했고, 더 아슬아슬해야 했으며, 더 미워하는 길을 걸었나요?’ 하고요. 군대가 있었기에 참말로 평화를 지켰을까요, 아니면 군대가 있었기에 참으로 평화하고는 동떨어졌을까요?


  흔히 말하기를, 저쪽이 무기를 안 버리는데 우리부터 먼저 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저쪽도 우리하고 똑같이 말하겠지요. 우리가 무기를 안 버리니 저쪽도 먼저 무기를 버릴 수 없다지요.


  《10대와 통하는 평화통일 이야기》(정주진, 철수와영희, 2019)는 이 나라 푸름이가 앞으로 이 나라를 새롭게 가꾸는 든든하고 아름다운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화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평화와 전쟁이라는 이름에 감추어진 민낯을 드러내고, 남북녘 모두 군대에 그토록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느라 정작 무엇을 안 하거나 못 하는가를 낱낱이 비추어서 들려줍니다.


  따지고 보면 남북녘뿐 아니라 미국도 매한가지입니다. 미국도 그토록 군대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붓느라 정작 여느 미국사람 살림살이는 엉망이라고 하지요. 미국에서는 식구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군인이 되는 길을 가야 비로소 살림을 펼 수 있고, 배울 수 있으며, 의료 도움을 받을 수 있다지요.


  평화를 지킨다고 하는 군대를 제대로 들여다보아야지 싶습니다. 모든 군대는 ‘쳐들어오는 저쪽을 막으’려고 있지 않습니다. ‘먼저 쳐서 끝장을 내’려고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알 수 있어요. 핵폭탄이든 미사일이든 먼저 퍼부어대면 모든 전쟁은 바로 끝납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그렇게 폭탄이며 미사일을 퍼부어대면, 이쪽도 똑같이 ‘나만 못 죽는다. 너도 죽어라’ 하면서 똑같이 폭탄하고 미사일을 퍼붓겠지요. 다시 말해서, 오늘날 ‘평화를 지키는 듯 보이’는 모든 모습은 허울입니다. 어느 한쪽이든 먼저 치면 저쪽을 무너뜨리기 쉬우나, 그렇게 나섰다가는 다같이 죽음수렁으로 갈밖에 없으니, 그렇게 군대하고 무기를 잔뜩 갖추었어도 쳐들어가지 않고, 더 센 군대하고 무기를 거느리려고 치달을 뿐입니다.


  오늘날 어른은 앞으로 어른이 될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군대하고 전쟁무기로 가득한 이 나라를 물려주어야 평화로울까요? 군대하고 전쟁무기를 거느리느라 나라살림이 얼마나 휘청이는데, 이런 휘청살림을 물려주어야 평화일까요? 아니면 남북녘이며 일본이며 미국이며 중국이며 러시아이며, 모두 평화로 나아가자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아나서면서 ‘새로운 무기 개발을 끝장내’고서, 이런 데에 쏟아부은 돈을 온나라에 푸른 숲을 이루는 아름다운 살림길로 바꾸어내야 평화일까요?


  《10대와 통하는 평화통일 이야기》에서 여러모로 짚기도 하지만, 소방헬기는 갖추지 못하지만 무시무시한 갖가지 전쟁무기는 잔뜩 갖추려는 나라살림입니다. 굳이 건강보험료나 국민연금을 거두지 않고도 의료 도움이나 밑살림을 누구나 느긋이 꾸릴 만한 돈이 어엿이 있습니다. 다만 이 돈은 언제나 새로운 무기(요새는 무인 군사드론 개발)를 뚝딱거리는 데에 다 들어갔을 뿐입니다. 그리고 주한미군을 먹여살리는 데에 다 쓸 뿐이고요.


  ‘전쟁 억제력’은 평화가 아닌 전쟁길입니다. 전쟁이 안 터지게 군사힘을 키워서 억누르는 길은 낡았습니다. 이 낡은 길이 아닌, 사람들 살림살이를 남녘도 북녘도 제대로 바라보면서 돌보는 길을 가야지 싶습니다. 그 길이 바로 평화일 테니까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속독법 : 모든 속독법은 거짓말이다. 모든 속독법은 책읽기하고 동떨어진다. 책은 빨리 읽을 까닭도 없지만 느리게 읽을 까닭도 없다. 책을 손에 쥐어서 무언가 얻고 싶다면 ‘줄거리 아닌 사랑’을 얻으면 될 뿐이다. 속독법은 뭔가? 속독법은 책에 흐르는 사랑이 아닌 한낱 줄거리만 빨리 받아먹도록 이끈다. 자, 생각해 보라. 속독법, 이른바 ‘빨리읽기·빨리훑기’를 해내어 백 권이나 천 권이나 만 권에 이르는 책이 어떤 줄거리인가를 알아내면 무엇이 달라질까? 무엇을 배울까? 이렇게 줄거리를 얻은 삶은 어떻게 나아지거나 달라지거나 좋아질까? 자, 스스로 보라. 빨리빨리 읽어내어 줄거리를 꿰찬 이들은 딱히 안 나아지거나 안 달라지거나 안 좋아진다. ‘사랑 아닌 줄거리’를 꿰찼으니까. 그렇다면 느리게 읽어야 하는가? 아니다. 굳이 느릿느릿 읽어야 할 까닭이 없다. 속이 빈 책은 느리게 읽을 수도 없을 만큼 허술하기에 몇 쪽만 넘겨도 모조리 꿰뚫을 수 있다. 텅텅 빈 속을 감추려고 겉을 꾸미거나 글멋을 부리거나 껍데기를 반짝반짝 꾸민 책이라면 더더구나 알맹이가 없기 마련이라, 이런 책은 애써 넘기거나 사지 않더라도 ‘텅 빈 속살’이자 ‘사랑 없이 맹물인 가슴’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다. 마음을 읽으면 다 알아낸다. 사랑을 읽으려 하면 다 보인다. 마음을 읽으려고 책을 펴 보라. 마음이 없는 책이라면 끝 쪽까지 그냥 후루룩 넘기다가 끝이 난다. 사랑이 없는 책도 이와 같으니, 구태여 속독법 따위를 배우려 하지 말고, 빠르게도 느리게도 읽을 까닭조차 없다. 오직 온마음을 다해서 마주한 다음 그저 마음을 읽고 사랑을 읽으려 하면 된다. 1998.1.6.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책을 눈감고 읽자 : 눈을 뜨지 못하면 책을 읽지 못한다고 여기겠지. 맞는 소리이다. 그런데 몸눈만 뜬대서 책을 읽지는 못한다. 마음눈을 떠야 비로소 책을 읽는다. 생각해 보라. ‘글씨읽기 = 책읽기’인가? 아니다. 글씨에 적힌 마음을 읽어야 비로소 책읽기이다. 다시 말해 ‘글씨읽기 ≠ 책읽기’요, ‘마음읽기 = 책읽기’인 얼개이다. 우리는 글쓴이 이름이나 펴낸곳 이름에 안 매이면서 오로지 마음을 읽어야 할 뿐이다. 글쓴이나 펴낸곳 이름이 아무리 높든 낮든 따지지 말 노릇이다. 그저 글씨마다 깃든 속내를 읽고 속뜻을 살피며 속길을 느껴서 우리 살림자리로 받아들이면 넉넉하다. 다시 말해 ‘몸눈은 감고서 책을 읽을’ 수 있다. 두 눈을 살며시 감고서 손바닥에 책을 얹어 보자. 마음눈을 뜨고서 이 책에 서린 기운을 읽어 보자. 몸눈은 가만히 감은 다음, 마음눈을 뜨고서 책을 한 쪽씩 넘겨 보자. 감은 눈으로도 마음을 볼 수 있겠는가? 감은 눈에서 어떤 마음을 느낄 수 있겠는가? 2002.9.12.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외국어 전파담 - 외국어는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가
로버트 파우저 지음 / 혜화1117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웃으로 사귀려는 ‘외국말 배우기’가 되기를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00



《외국어 전파담》

 로버트 파우저

 혜화1117

 2018.5.5.



아르메니아 문자는 비단 성경의 번역어로서만 역할을 한 것이 아니다. 자국어로 된 문학 활동을 풍성하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인접 언어권의 문자를 만드는 데에도 좋은 사례가 되었다. (42쪽)


쿠릴라이 칸은 새로운 제국의 통치를 위해 누구나 배우기 쉬운 보편적인 언어와 문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고, 파스파 문자는 그런 보편성을 염두에 두고 제국의 지배가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문자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65쪽)

 

이러한 기관들은 하나의 국가 안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와 방언들 대신 왕실의 언어를 국어로 만들고, 보급하고 관리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 (86쪽)


기본적으로 선교 활동은 침략이라는 패러다임에서 이루어졌고, 언어를 배우는 이들과 가르치는 이들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관계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 차츰 자신들의 언어를 버리고 선교사들의 언어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선주민들의 언어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110쪽)


미국 백인 주류 계층은 선주민들에게 영어를 가르침으로써 그들의 언어를 말살시키려 했다. 이를 통해 선주민들 고유의 민족성을 없앤 뒤 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려 했다. (159쪽)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문인들은 한국어와 일본어, 한문은 물론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작품에 활용하는 것에 매우 익숙했다. (234쪽)



  열두 살을 지나가는 큰아이가 한창 영어를 배웁니다. 올봄까지는 영어 배우기를 시큰둥히 여겼지만, 이웃나라 사람을 잔뜩 만나는 자리에 다녀오고는 스스로 하고픈 말을 할 수 없어 갑갑했다며 영어를 배우기로 다짐합니다.


  말이건 다른 살림을 배우건 언제나 발판이 있어야 할 테지요. 큰아이는 어머니한테서 빵굽기를 배운 뒤에 ‘가게에서 사다 먹는 빵’은 ‘집에서 스스로 구워서 먹는 빵’ 같은 즐겁고 아늑한 맛이 나지 않는다면서, 이제는 빵을 먹고 싶으면 스스로 반죽해서 부풀린 뒤에 스스로 굽습니다.


  여러 나라 말을 배우는 재미에 사로잡혀서 온갖 말을 재미나게 배웠다고 하는 분이 한국말로 쓴 《외국어 전파담》(로버트 파우저, 혜화1117, 2018)을 읽었습니다. 재미있어요. 일본말도 할 줄 알고 한국말도 할 줄 아는 이웃나라 사람이 한국말로 책을 썼다고 하니까요.


  다만 이 책은 ‘한국말로 썼다’기보다 ‘한글로 썼다’고 해야 올바르지 싶더군요. 글쓴님은 이른바 번역 말씨하고 일본 한자말로 책을 썼어요. 아무래도 글쓴님은 이녁한테 낯선 말을 익힐 적에 ‘어른 눈높이’에서 인문책이나 어른문학을 곁에 두고서 익혔을 테니, 한국 인문학이나 사회학에 두루 퍼진, 이러면서 아직 씻거나 가다듬거나 손질하지 못한 번역 말씨하고 일본 한자말로 이야기를 풀어냈을 테지요.


  어린이가 외국말을 익힐 적에는 아주 마땅히 그림책이나 동화책부터 가까이하기 마련입니다. 어른이 외국말을 익힐 적에는 어떠한가요? 푸름이라면 청소년문학을 가까이하면서 외국말을 익히겠지요? 어른도 어른문학이나 어른 인문책만 가까이하기보다는 그림책하고 동화책하고 동시집부터 가까이하면 좋겠어요. 그 나라 지식 사회 말도 익히면 좋겠습니다만, 처음에는 그 나라 수수한 살림자리 말을 익힐 적에 훨씬 좋을 테니까요.


  인문책 《외국어 전파담》은 글쓴님이 지구별 여러 가지 말을 배우는 동안 느끼거나 살폈던 대목을 대학 교재 얼거리로 풀어냅니다. 예부터 언제나 ‘세계 통치자나 권력자’가 제 나라 말글을 이웃나라로 퍼뜨려서 군사힘뿐 아니라 문화힘으로도 다스리려 했다는 대목을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이란 나라에서도 중국말을 섬긴 대목, 또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가 일본말을 ‘국어(國語)’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가르치려 하면서 한국말을 짓밟은 대목, 또 해방 뒤에 군정으로 들어온 미국을 앞세운 미국말(영국말보다는)이 확 퍼진 대목에 얽힌 뒷그늘을 읽을 만합니다.


  더 살피면 한국하고 일본 사이는 여러모로 얽힙니다. 일본이 군사힘으로 쳐들어온 적도 있으나, 일본은 조선한테서 이모저모 얻거나 나누려는 뜻으로 조선에 ‘조선말을 배우는 곳’을 세워 꾸준히 사람을 보내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에서는 일본말을 배우려는 곳이 있었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중국말을 섬기면서 지식 사회에서는 어릴 적부터 중국 말글을 배우도록 했어요. 한국도 꽤 예전부터 ‘외국말 배우기’를 한 셈입니다.


  한국으로 나들이를 오는 여러 나라 이웃은 한국말을 배우려 합니다. 이웃으로 사귀고 싶기에 이웃말을 배우려 하지요. 군사힘이나 문화힘이나 정치힘으로 사로잡거나 윽박지르려 하는 물결이 아닌, 수수한 자리에서 서로 이웃이 되려고 만나고 배우려는 ‘외국말 어깨동무’로 나아간다면, 이때에는 제 나라 말도 이웃나라 말도 서로 기쁘게 맞아들여서 배울 만하지 싶습니다. ‘외국어 전파’를 시키는 힘이 아닌, ‘어깨동무하는 사이가 되는 즐거움’으로 서로서로 이웃 삶자리를 담아낸 말을 나누는 길이 되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9.


《그림자의 섬》

 이마 이치코 글·그림/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3.8.15.



하루가 가볍게 흐른다. 어제는 어느덧 어렴풋하다. 오늘은 새로 오른 해를 보면서 맞이한다. 큰아이가 문득 묻는다. “아버지는 여름하고 겨울이 오는 줄 어떻게 알아?” 내가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아는 바를 바로 말하려다가 멈춘다. 아니야, 이렇게 물어오면 먼저 아이 생각을 들어야지.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느껴서 아는데, 벼리는 어떻게 느껴서 아니?” 큰아이는 철마다 다른 냄새가 있다며, 이 냄새가 어떠한가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멋지구나. 예전에는 아이 말을 내가 손수 수첩에 옮겨적었지만 이제는 “그래, 네 멋진 느낌을 글로 갈무리하고서 즐겁게 밤꿈을 꾸자.” 하고 이야기한다. 《그림자의 섬》은 아껴 둔 이마 이치코 님 만화책. 새님하고 살아가는 만화님은 꾸준히 《백귀야행》을 선보이는데, 언제 다음걸음이 한국말로 나오는가 하고 목빠지게 기다리다가 드문드문 이런 짤막얘기를 읽는다. 새님하고 하루를 열고 닫는 만화님이기에 더더욱 마음으로 여러 소리를 듣고서 이러한 결을 만화로도 담아내지 싶다. 생각해 보라. 새님하고는 입으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마음으로 이야기를 할 노릇이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철마다 달마다 다른 빛을 가슴으로 품고서 환하게 일어나는 하루가 되리라 본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