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5.


《NANA 20》

 야자와 아이 글·그림/박새라 옮김, 학산문화사, 2009.1.25.



뜨개질을 할 줄 알면서 새롭게 손멋을 살리는 길이란 언제 보아도 곱다. 어머니한테서 차근차근 배운 뜨개질이 차츰 나아가는 큰아이는 이제 스스로 새로운 뜨개질을 익히고 싶다. 동글동글하게 뜨고 별을 뜨고 꽃을 뜨며 네모반듯한 판에 무늬를 빛빛으로 넣어 뜨다가, 이제 새를 뜨고 싶다 한다. 어른이 보아도 좋고 아이가 보아도 재미있는 ‘아르네 & 카를로스’ 뜨개책을 시키기로 한다. 한국에 없는 책이라 아이가 받으려면 보름 가까이 걸린다네. 열 해 만에 《NANA》 스무걸음을 다시 읽어 보았다. 스스로 헤매고 아파하는 스물 안팎 넋을 담은 만화인데, 이 젊은 넋은 노래를 빼놓고는 스스로 삶을 즐기거나 누리는 길이 없다시피 하다. 이러다 보니 살을 섞고 담배를 태우고 술을 퍼부으면서 하루를 잊으려고만 한다. 이 스물 안팎 넋이 뜨개질을 했다면, 서로 손으로 찬찬히 뜨개바늘을 딱딱딱 놀리면서 스스로 차분한 빛이 되기도 했다면, 자동차만 몰려 하지 말고 두 손으로 실 한 가닥을 잡고서 새롭게 살림을 짓는 길을 나누어 보았다면 사뭇 달랐으리라 본다. 그렇다고 만화에 나온 줄거리가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나로서는 이렇게 틀에 박힌 줄거리가 그저 따분하다고 느낄 뿐이다. 스스로 지으면 스스로 새로우며 즐겁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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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공주를 만난 소년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30
나탈리 민 글.그림, 바람숲아이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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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153


《인어 공주를 만난 소년》

 나탈리 민

 바람숲아이 옮김

 한울림어린이

 2017.5.26.



  큰아이가 밤에 문득 “아버지는 밤새가 아버지한테 뭐라고 말하는 듯해요?” 하고 묻습니다. 아이더러 넌 어떤 얘기를 들었느냐고 묻기 앞서 가만히 밤새 노랫소리를 그립니다. “이쁜 아이들, 이쁜 아이들, 아직 꿈나라에 가지 않은 이쁜 아이들, 이제 곧 꿈나라에서 놀지?”라든지 “아직 꿈나라에 가고 싶지 않다면 이리로 훨훨 날아와서 같이 놀지?” 같은 말을 들려준다고 느낍니다. 《인어 공주를 만난 소년》을 펴면 ‘인어 공주’하고 ‘소년’이 만나는 이야기가 흘러요. 그런데 두 이름은 두 아이가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모두 어른들이 붙인 이름이에요. 어른들은 두 아이를 아이로 보기보다는 서로 멀리하거나 꺼리기를 바라면서 ‘얄궂거나 나쁘거나 모진 모습’을 가르치려 하는구나 싶습니다. 이와 달리 두 아이는 마음으로 만나서 즐겁게 어울려 노는 사이에 새롭게 스스로 배웁니다. 둘은 어른이 붙인 이름이 아닌 ‘바다아이’하고 ‘뭍아이’일 뿐이요, 서로 ‘바다살림’하고 ‘뭍살림’을 새삼스레 마주하면서 더욱 재미난 하루가 되는구나 하고 깨달아요. 바다가 낫지 않고 뭍이 낫지 않습니다. 어느 쪽도 위나 아래가 아닙니다. 그저 다른 삶자리에서 다르면서 아름답게 피어난 사랑스러운 하루가 흐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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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왕 케로리
이토 히로시 지음, 사과나무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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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147


《올챙이왕 케로리》

 이토 히로시

 사과나무 옮김

 크레용하우스

 2011.5.30.



  옛말에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가 있어요. 예전에 볼품없거나 모자라거나 어렵던 모습을 잊어버린 사람을 빗대면서 쓴다지만, 썩 안 어울리는 풀이라고 느낍니다. 올챙이하고 개구리는 확 다른 삶이거든요. 더구나 올챙이는 볼품없거나 모자라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올챙이는 올챙이대로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삶이요, 개구리는 개구리대로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삶이에요. 애벌레하고 나비를 놓고도 매한가지입니다. 애벌레이기에 나쁠 수만 없고, 나비이기에 좋을 수만 없어요. 저마다 다른 삶일 뿐입니다. 《올챙이왕 케로리》는 올챙이로 태어나서 사는 동안 못에서 누구도 따를 수 없도록 즐겁고 멋진 나날을 보내던 아이 케로리가 그만 개구리로 몸이 바뀔 적에 겪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제까지 어떤 올챙이도 못에서 힘들게 살았다지만 케로리만큼은 다른 어느 물벗도 올챙이한테 아뭇소리를 못했을 뿐 아니라, 다른 물벗이 케로리를 임금님처럼 섬겼대요. 자, 케로리는 올챙이로만 살아갈 적에 좋을까요, 굳이 개구리로 바뀌어야 좋을까요? 그리고 케로리가 올챙이란 옷을 벗고서 개구리란 옷으로 갈아입는다면? 우리가 마음으로 올챙이 말을 듣고 개구리 얘기를 듣는다면 옜말을 새로 읽겠지요. 거듭나며 새로 마주하는 길일 뿐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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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풀이하기 어려운 낱말이 있나요?



[물어봅니다]

  국어사전을 쓰시면서 기억에 남거나, 뭔가 뜻을 풀이하기 어려운 낱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이야기합니다]

  ㅅ(시옷) 이야기를 해볼까 싶네요. 저는 처음에 ㅅ이라고 하는 닿소리로 여는 낱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시골에서 살고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삶을 물려줄 수 있어야 어버이다운가를 생각하다 보니까 여러모로 ㅅ하고 얽힌 말이 자꾸 들어오더군요. ‘시골’에서도 시옷이 들어가는데요, 시골이 어떤 곳인가를 생각해 보니까, 다른 사전에 나오는 시골 뜻풀이가 아닌 나 스스로 시골이라는 낱말에 새롭게 뜻풀이를 붙이자고 생각해 보니 두 가지가 있어요. 시골이라고 한다면 첫째는 숲이 있어야 돼요. 숲이 없으면 시골이라고 할 수 없어요. 둘째로는 골, 골짜기, 멧골, 멧갓, 봉우리, 그러니까 산이 있어야 하고요. 숲하고 갓(메·산)이 어우러진 곳이 시골이라 할 만하지 싶더군요. 숲이 있으면 저절로 샘물이 솟아서 냇물이 흐를 테니, 시골이라는 곳은 누구나 스스로 땅을 일구어 밥옷집을 얻거나 살림을 가꿀 수 있는 터전인 셈이지요. 이러면서 온갖 짐승하고 푸나무가 함께 살아가는 곳이고요. 예전에는 생각도 못한 뜻풀이요 얼거리였습니다만, 삶터를 바꾸고 살림을 새로 가꾸면서 비로소 눈에 들어오고 마음으로 느낀 뜻풀이예요.


  서울 같은 도시에 너른 공원이나 높은 산이 함께 있어도 이곳은 시골이 되지 못해요. 집하고 길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저마다 제 땅을 못 누리거든요. 마당이든 텃밭이든 말이지요. 그런데 여느 사전을 살피면 ‘시골’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풀이하고 그쳐요. 오늘날 우리는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잖아요? 시골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시골에 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작 시골이 어떠한 곳인가를 사전 뜻풀이부터 제대로 못 밝히니, 사람들은 시골을 더더구나 알 수 없겠구나 싶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돈이 많든 적든 학교를 오래 다녔든 아니든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누구나 제 땅에서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지을 수 있으면서 맑은 물하고 바람을 누리는 곳이 ‘시골’일 텐데,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라는 뜻을 사전에서 못 밝히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에 우리는 무엇을 볼까요?


  저는 사전 뜻풀이가 어렵다고 여긴 적은 없지만, 바로 이 대목을 늘 느껴요. 저처럼 사전을 새로 쓰고 뜻풀이하고 보기글까지 새로 붙이는 몫을 맡은 사람이 낱말 하나를 놓고서 제대로 짚거나 다루거나 풀이하거나 이야기를 붙이지 못한다면, 또 낱말 하나하고 얽힌 보기글을 슬기로우면서 아름답고 뜻있게 달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어느 낱말 하나만 제대로 모를 뿐 아니라, 그 낱말하고 얽힌 삶이며 생각이며 꿈이며 사랑이며 이야기를 모두 모를 수 있어요. 어느 모로 보면 무섭거나 무시무시한 일이 될 만해요. 고작 사전에서 낱말 하나를 엉성하게 다루고 그치는 일이 아니더군요. 바로 그 엉성하게 다룬 낱말풀이를 읽는 분들이 생각이 고이거나 갇혀 버리기 쉬워요.


[표준국어대사전]

어린이문학 : 1. [문학] 어린이를 대상으로 그들의 교육과 정서를 위하여 창작한 문학. 동요, 동시, 동화, 아동극 따위이다 2. [문학] 어린이가 지은 문학 작품

그림책 : 1. 그림을 모아 놓은 책 2. 어린이를 위하여 주로 그림으로 꾸민 책 3. 그림본으로 쓰는 책 4. ‘화투’를 속되게 이르는 말

동시 : 1. [문학] 주로 어린이를 독자로 예상하고 어린이의 정서를 읊은 시 2. [문학] 어린이가 지은 시


  푸름이 여러분은 동시나 동화를 요즈음 읽는가요? 이제는 안 읽고 소설과 어른시만 읽나요? 어때요? 동시나 동화 같은 어린이문학은, 또 그림책은 푸름이 나이에는 멀리하거나 안 읽을 이야기나 책일까요? 어린이만 읽어야 하는 어린이문학이거나 그림책일까요?


  사전 뜻풀이를 보면 어린이문학이든 그림책이든 동시이든 다 ‘어린이만 보는’ 틀로 담습니다. 자, 이 뜻풀이를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만, 무척 많은 분들이 이 뜻풀이가 알맞지 않다고 여겨요.


  그런데 무척 많은 분들이 이 뜻풀이가 알맞지 않다고 여겨도 정작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는 이런 뜻풀이를 바로잡거나 손질하거나 고치려고 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적잖은 어른들이 어린이문학을 안 읽거나 그림책을 안 들여다보는 탓일 수 있어요. 푸름이 여러분 같은 딸아들을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 자리에 서서 어린이문학이나 그림책을 가까이한 어른이라면 흔히 이렇게 말한답니다. “와! 이렇게 아름답고 재미난 책이 어린이문학이었네? 어쩜 이렇게 눈물겹고 웃음나며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다 있을까? 그야말로 쉽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화이고 그림책이네!” 이리하여 ‘동화읽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이 있답니다. 동화나 동시나 그림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누리고 즐기고 나누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사랑을 배운다’는 마음을 주고받으려고 해요.


[숲노래 사전]

어린이문학 :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로 담아서 누구나 읽고 누리고 나누고 즐길 수 있는 글. 어른이 쓰기도 하고 어린이가 쓰기도 한다.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만 읽는 글이 아닌 어린이부터 다같이 읽고 누리며 나누는 글이다

그림책 : 1. 그림을 모으거나 엮거나 담은 책 2.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이야기를 그림을 바탕으로 엮은 책. 그림을 바탕으로 줄거리를 엮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아기나 어린이도 쉽게 알아보거나 느끼도록 엮기 마련이고, 아기나 어린이부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책

동시 (= 노래꽃)

: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노래. 어린이 스스로 쓰는 동시가 있고, 어른이 써서 어린이하고 함께 읽는 동시가 있다. 동시는 누가 쓰든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인데, 시란 우리가 나누는 말을 마치 노래처럼 누리는 글이기에, 따로 ‘노래꽃’이라 해볼 수 있다. 동시도 시도 ‘노래꽃’이라 할 만하다


  제가 쓰는 사전은 이렇게 ‘어린이문학·그림책·동시’ 같은 낱말을 아주 새롭게, 또 오늘날 흐름이나 결에 맞추어서 풀이하려고 합니다. 푸름이 여러분을 만나는 이 자리뿐 아니라 여느 어른을 마주하는 자리에서도 이런 새 뜻풀이를 이야기하지요.


  거듭 말씀을 하겠습니다만, 저는 뜻풀이를 붙이면서 어렵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다만 여느 사전이 여태까지 무척 엉성하거나 한켠으로 기울어진 뜻풀이를 참으로 많이 했다고 느껴요. 저로서는 이런 엉성한 여느 사전 뜻풀이나 한켠으로 기울어진 뜻풀이를 가다듬거나 확 뜯어고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즐겁고 새로운 빛이 될 뜻풀이하고 보기글을 즐겁게 붙이자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렇게도 이야기할 만해요. 제가 어느 낱말 하나에 뜻을 제대로 붙일 수 있다면, 이리하여 제대로 붙인 뜻풀이를 찬찬히 읽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우리는 어느 낱말 하나를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삶과 살림과 사람과 사랑을 모두 새롭게 바라보면서 스스로 씩씩하게 일어서는 힘을 찾아내거나 키울 수 있답니다.


  그나저나 푸름이 여러분이 궁금해 하는 대목은 이런 얘기가 아닐 수 있을 텐데요, 제가 말풀이를 달기 어려웠던 낱말을 굳이 꼽아 보라면 ‘생각’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하다’라든지 ‘있다’처럼, 아주 쉽고 흔한 낱말이에요. ‘보다’나 ‘주다’나 ‘가다’ 같은 낱말도 섣불리 뜻풀이를 마무리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저로서는 어렵지는 않았고 좀 품이 들었을 뿐이에요. 이를테면 ‘생각’이나 ‘사랑’ 같은 낱말은 뜻풀이를 붙여서 마무리하기까지 적어도 여섯 달이 걸렸어요. 여섯 달을 써서 낱말 하나를 풀이했답니다. ‘보다’나 ‘주다’는 석 달쯤 걸렸고요.


  이렇게 말해도 되겠는데요, 우리가 ‘흔히 어렵다고 여기는 낱말’은 오히려 뜻풀이가 쉽습니다. 우리가 ‘으레 쉽다고 여겨서 사전을 거의 안 찾아보는 낱말’이 도리어 뜻풀이가 어렵다고 할 수 있어요. 이 대목이 참 재미있어요. 생각해 봐요. 푸름이 여러분이 한국말사전에서 ‘있다·보다·주다’나 ‘생각’ 같은 낱말을 찾아보나요? ‘시골’ 같은 낱말도 그렇고요. 그런데 오히려 이런 낱말, 사람들이 사전에서 잘 안 찾아볼 듯한 낱말이야말로 뜻풀이를 제대로 붙이기까지 훨씬 긴 나날에 오랜 품을 들여야 한답니다. 전문용어 같은 낱말은 뜻풀이가 대단히 쉬워요. 삶말이나 살림말은 뜻풀이에 오래오래 마음을 써야 하고요.

  ‘시골’이란 이름을 놓고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제가 시골을 풀이할 적에는, 시골은 ‘숲’하고 ‘살림’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느꼈고, 둘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있으면 안 어울리겠다고 여겼어요. 둘이 같이 있어야 되고 둘을 사람이 만지지요. 사람이 숲하고 살림 사이에서 둘을 만지는 셈이에요. 이러면서 숲하고 살림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슬기로울 수 있어야겠지요. 사람이 있되 그냥 아무 사람이나 있어야 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슬기로운 사람이 있어야겠지요. 그런데 ‘슬기롭다’고 하는 이 말은 ‘똑똑하다’하고도 이어지거든요. 머리가 좋기만 해서는 슬기롭거나 똑똑하지 않아요. 머리가 좋기만 하면 ‘꾀부리는’ 길로 빠질 수 있답니다. ‘꿍꿍이’를 꾸밀 수 있고요. 그러니까 “사람이 슬기롭게 살림을 살펴서 새롭게 살아가는 숲이 사랑스러워서 시골”이라고 할 수 있다고 느껴요. 집이 숲이 되고, 숲이 집이 되는 터전이 시골이라고 해도 좋고요.


  저는 사람들이 머리가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생각이 밝고 마음이 상냥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더 많은 지식을 머리에 쌓기보다는, 한 가지 지식이라도 즐겁고 상냥하면서 밝고 따스하게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쁜 텃말을 더 많이 알지 않아도 되어요. 말 한 마디에 깃든 고운 넋을 삶으로 받아들여서 즐겁게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이란 그렇거든요. 우리 생각을 말에 담는 대로 우리 하루가 달라질 수 있어요.


  우리는 ‘사람’이 되어서 살아야 할 텐데, 이 사람이란 슬기롭기만 해서는 안 되겠고 사랑이 있어야겠더라고요. 좋은 머리를 사랑으로 보듬을 줄 알아야 되겠더라고요. 머리만 좋아서는 망가지는 사람이 되고요. 이 좋은 머리를 사랑이라고 하는 마음으로 추스를 수 있어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줄 느껴서, “시골 = 숲 + 살림”인데 여기에 ‘사람’이 있고 사람마다 ‘슬기’가 더 있으며, 슬기는 다시 사람으로 이어져, 여기에는 이제 삶이 태어날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삶이 태어나는 곳에는 무엇이 있느냐 하면 새로운 생각이 자랄 수 있어요. 새로운 생각은 우리 목숨, 숨을 살리는 결이라고 해서 ‘숨결’이 되고요. 바로 이 숨결은 오늘 내가 이곳에 있는 ‘씨앗’이 되는구나 싶더군요. 이렇게 해서 저는 ㅅ으로 여는 말을 아주 좋아해요. ㅅ을 좋아해서 ㅅ 낱말을 틈틈이 다시 읽어 보기도 하는데요. 뜻풀이를 마무리했어도 ‘삶’이나 ‘사람’이나 ‘생각’이나 ‘슬기’ 같은 낱말에 붙인 풀이를 꾸준히 보태거나 새로 이어 보려고 하기도 합니다.


  뜻풀이 붙이기란 한 벌로 그치지 않거든요. 어느 낱말 하나를 어느 때에 새롭게 쓰기도 하고요. 새로운 쓰임새가 나타나면 이 새로운 쓰임새를 뜻풀이에 더 담을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이 대목을 어렵게 여기면 사전짓기는 끝내 할 수 없는 일이 되지만, 늘 새롭게 쓰임새가 늘어나는 말을 사랑할 수 있다면, “말풀이는 끝날 수 없어서 한결 즐겁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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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과 취향 - 철학의 현장에서 기록한 불화의 목소리
김영건 지음 / 최측의농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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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99


《변명과 취향》

 김영건 

 최측의농간

 2019.9.5.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며, 답답하고 추상적인 논리 풀이나 말장난도 아니다. (17쪽)


나는 우리의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 나는 외국어가 주인이 되는 그런 철학이 아니라, 우리말로 된 철학을 하고 싶다. (23쪽)


이런 멋부리는 문장이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준다면 그것은 괜찮다. 그러나 언제나 이런 종류의 문장은 우리 자유를 몽롱하고 멍청하게 만든다. (80쪽)


도道라는 한자어는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획득하는 데 반하여 도道의 우리말 표현인 ‘길’은 심오한 의미가 없는 사소한 일상어로서 낮게 취급된다. 그냥 ‘생각’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사고思考’라는 한자어로 표현한다. ‘나’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자아自我’라고 표현한다. (189쪽)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학문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 (354쪽)



  한국에서 가르치거나 배우는 역사를 살피면, 한국은 꽤 옛날부터 일본에 이것저것 이어주거나 물려주거나 알려주곤 했다고 합니다. 일본은 가장 가까이에 한국이 있는 터라 으레 한국한테서 얻거나 받거나 배우는 살림이었다고 해요. 요새야 비행기나 인터넷이 있으니 나라하고 나라 사이가 훨씬 가깝다지만, 예전에는 아니었겠지요. 그래서 일본은 옛날부터 한국말을 배우는 사람이 무척 많았고, 한국말을 일본말로 옮기는 일을 참으로 오랫동안 했답니다.


  오늘날은 어떠할까요? 오늘날 일본은 한국 문학이나 문화나 과학을 얼마나 받아들이거나 배우는 길일까요? 어쩌면 오늘날 일본은 한국한테서 배우는 길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 않나요? 거꾸로 오늘날 한국은 거의 일본 것을 옮기거나 배우는 길이 되지 않았을까요?


  책만 놓고 보아도 일본 문학책이며 그림책이며 만화책이며 인문책이며 과학책이며 …… 갖은 책을 엄청나게 한국말로 옮깁니다. 이제는 한국이 일본한테서 배우는 때라고 할까요? 밉거나 못된 짓을 많이 한 옆나라인 일본이라지만, 한국은 한국 나름대로 더 나아가거나 뻗는 길을 제대로 갈고닦지 못했다고 여겨야지 싶어요.


  《변명과 취향》(김영건, 최측의농간, 2019)을 읽으며 ‘철학자가 늘 부대껴야 하는 근심걱정’을 낱낱이 읽습니다. 틀림없이 겉으로 보기에는 ‘한국말’을 쓴다고 하지만, 무늬로만 한글이기 일쑤라지요. 요새는 한자말을 한자로 새까맣게 쓰는 사람이 없다시피 합니다. 한자말이건 영어이건 그냥 한글로 적습니다. 그런데 철학이란 자리에서 본다면 ‘무늬만 한글’로는 깊거나 넓게 파고들기 어려워요. 한자나 한문이나 영어나 라틴말은 바로 이 나라 한국이라는 터전에 뿌리를 내리고서 태어난 말이 아니니까요.


  한자말이나 영어를 쓰기에 철학을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자나 한문이나 영어는 한국에서 태어난 글이나 말이 아니란 뜻입니다. 우리는 ‘땅’이란 낱말을 종이에 적거나 마음에 띄우면서 이 말이 태어난 깊이하고 너비를 헤아릴 수 있어요. 그러나 ‘地’나 ‘earth·ground’ 같은 낱말을 코앞에 둘 적에는 이 한자나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그곳 사람들이 닦아 놓은 깊이하고 너비를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슬기를 가꾸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철학하는 글쓴님은 책이름 《변명과 취향》으로 여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무래도 핑계(변명)를 댈밖에 없는 일이 많습니다. 여러모로 좋아하기(취향)에 따라 다 다를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핑계를 대면서 그 길을 가고, 좋아한다면서 끊지 못한다지요.


  더 돌아보면 ‘철학’이란 이름도 한국사람 스스로 지어서 쓰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셈·슬기·헤아림·살핌·봄·여김’ 같은 낱말로 삶을 읽는 길을 안 찾으면서 그냥그냥 쓰는 한자말 이름입니다. ‘철학’ 같은 낱말은 깊거나 넓은 듯 여기면서도 막상 한국 철학자 가운데 ‘생각·셈·슬기·헤아림·살핌·봄·여김’이 어떻게 태어난 말이며, 이 말마다 서린 넋하고 숨결이 얼마나 깊거나 너른가를 따지거나 짚거나 찾아내거나 캐내거나 밝히거나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시피 해요.


  여기에서 살아가려고 생각을 합니다. 새롭게 키우려고 생각을 합니다. 사랑으로 살림을 짓고 싶기에 생각을 합니다. 이 생각길을 걷는 학자도, 수수한 이웃도, 이제는 우리 두 손으로 가꾸면서 빛내는 길로 접어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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