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말넋 2025.3.23.
오늘말. 채
이 길을 걷기에 훌륭하지 않은 줄 안다면, 이 터전에서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어서 즐겁게 틀을 짭니다. 저 길을 안 걷기에 안 훌륭하지 않은 줄 안다면, 어느 얼거리여도 스스로 자분자분 짚으면서 구성지게 여밉니다. 밥을 차릴 적에는 채로 썰기도 하고 깍둑깍둑 썰기도 하고, 길다랗거나 얇게 썰기도 합니다. 자리에 맞게 칼질을 합니다. 글을 길게 쓸 때가 있고, 조각글로 넉넉할 때가 있어요. 토막토막 끊기도 하고, 긴긴 쪽에 걸쳐서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합니다. 우리가 일구는 글은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남한테 보이려고 쓰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 스스로 마음한테 보여주는 글입니다. 차분하게 삶을 되새기면서 찬찬히 살림을 가꾸는 밑씨앗으로 삼는 글입니다. 걸쭉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게있지 않아도 넉넉하고, 재미를 따질 까닭이 없습니다. 멋을 안 부리기에 글답지 않을 수 없어요. 어쩐지 초라한 몰골 같아도 됩니다. 어느 모습이건 우리 스스로 이 하루를 담아내는 짜임새이면 빛나요. 좋은글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살아온 자취를 얹는 글이요, 꿈이라는 그림을 펴는 글이며, 도탑게 마음을 북돋우며 자아내는 글입니다.
ㅍㄹㄴ
자리·터·터전·길·길눈·길꽃·둘레·짜임새·얼개·얼거리·틀·틀거리·판·판짜임 ← 지정학(地政學), 지정학적
조각·쪽·쪼가리·도막·토막·지푸라기·짚풀·부스러기·지스러기·보풀·보푸라기·검불·검부러기·셈대·셈가지·채·채썰다·저미다 ← 칩(chip)
모습·몰골·꼴·빛·그림·멋·맛·맛나다·맛있다·재미·깊다·그윽하다·무게있다·걸쭉하다·도탑다·두텁다·차분하다·찬찬히·자분자분·점잔·자아내다·볼거리·구경거리·보이다·보여주다·곳·데·께·마을·짝·자리·자취·터·터전·한마당·그림같다·구성지다·새롭다·좋다·멋있다·보기좋다 ← 정취(情趣)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