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얼굴
이슬아 지음 / 위고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까칠읽기 40


《날씨와 얼굴》

 이슬아

 위고

 2023.2.20.



  아는 사람이 너무 없더라. 이 나라에서는 어떤 풀과 나무도 제 목숨대로 못 산다. 과일밭에서 피눈물이며 피고름을 짜내어서 사람한테 열매를 바치는 능금나무나 배나무나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나 복숭아나무가 어떻게 시달리고 짓밟히고 괴로운지 눈여겨보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너무 어렵다. 이 나라 과일밭에서는 과일나무가 고작 열 해를 살 동 말 동하는 줄 아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나무는 즈믄해(1000년)쯤 거뜬히 살아간다고 여기지만, 우리나라 과일밭에서는 고작 열 해를 살까 말까 아슬아슬하다면, 과일밭에서 무슨 짓을 한다는 뜻일까? 쇠줄(철사)로 줄기랑 가지를 잡아당겨서 바닥에 박거나 동여맨다. 하나같이 짜리몽땅한 과일나무로 피눈물과 피고름을 짜내라고 들볶으면서, 거름이 아닌 죽음재(화학비료)를 뿌리고, 풀죽임물(농약)까지 끝없이 뿌려대는 판이라, 나무가 열 해나 살아남는다는 대목이 오히려 놀랍다고 할 만하다.


  더구나 적잖은 과일밭은 아예 비닐이나 유리로 덮어씌운다. 새가 쫄 수 없게 가린다는데, 비닐집이나 유리집에 갇혀서 쇠사슬과 쇠줄에 묶인 나무는 해도 바람도 비도 없이 피눈물과 피고름을 짜낼 뿐이다.


  닭과 돼지와 소만 좁은 가두리에서 시달리다가 끔찍하게 죽지 않는다. 모든 과일도 매한가지이다. 그런데 과일뿐인가? 쌀이나 보리나 밀이나 콩은 어떤가? 오늘날 우리나라 논밭은 ‘씨바꿈(품종개량·유전자조작)’을 해댄 낟알인 터라, 그저 낟알만 굵고 잔뜩 내놓도록 시달린다. 이뿐인가? 논도 밭도 끝없이 뿌려대는 풀죽임물과 죽음재 탓에 시들시들하다. 더구나 ‘흙’조차 없는 ‘스마트팜’에서 해바람비마저 없이 억지로 몸뚱이만 키우고 반들반들 푸릇푸릇 ‘남새 흉내’를 내야 하기까지 한다.


  더 들여다보자. 해를 못 쬐고서 전깃불빛을 받아야 하는 스마트팜에서 거두는 풀(채소)이 사람한테 이바지하겠는가? 더구나 샘물도 냇물도 빗물도 아닌 꼭짓물(수돗물)을 머금어야 하는 풀과 낟알과 열매인데, 풀꽃나무한테는 들볶음질(고문)이지 않은가?


  “아이들이 고기를 먹어야 키가 크고 튼튼하지!” 같은 말도 엉터리이지만, “풀밥(채식·비건)이 좋고 고기밥(육식)은 나쁘다!” 같은 말도 뜬금없다. 사람이 고기로 삼는 짐승은 ‘풀’을 즐긴다. 사람은 ‘고기 먹는 짐승’은 안 먹는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왜 고양이를 고기로 안 삼았겠는가? 고양이는 오직 고기짐승인 탓이다. 예부터 ‘고기로 삼는 개’는 ‘고기’가 아닌 ‘된장국에 만 밥’을 사람하고 나란히 먹으면서 살았다. 예부터 ‘고기로 삼는 돼지’도 ‘고깃기운’이 없는 밥을 사람하고 똑같이 누렸다.


  《날씨와 얼굴》은 경향신문에 실은 글을 모았다고 한다. 애써서 쓴 글이라고는 느끼지만, 풀도 꽃도 나무도, 뭇짐승과 뭇숨결도, 또 벌레와 새도, 해와 바람과 비와 흙도, 거의 어느 하나도 제대로 안 들여다본 채, 목소리만 외곬로 높인다고 느낀다.


  풀을 먹기를 바란다면서 왜 ‘풀밥’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한자말 ‘채식’조차도 쓰기 싫어서 ‘비건’을 써야 할까? 그런데 왜 억지스런 한자말 ‘모부(母父)’에 매달리는가? 한자는 우리말이 아니다. 잘 알아야 한다. 한자는 우리말이 아니다. 그러면 한자는 중국말이나 일본말인가? 아니다. 한자는 ‘그놈말(권력자 언어)’이다. 한자는 중국과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우두머리와 벼슬아치와 나리(양반)라고 일컫는 무리가 사람들을 억누르면서 쥐어짠 ‘그놈말·힘말(권력용어)·싸움말(전쟁용어)’일 뿐이다.


  “우리말이 아니다”라는 한마디를 제대로 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쓸 말이 아니”라는 뜻이고, “우리하고 동떨어진 말”이라는 뜻이다.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서 돌보는 ‘우리’가 쓸 말이 아니고, 서로서로 사랑으로 만나서 보금자리를 이룰 ‘우리’가 쓸 수 없는 말이라는 뜻이다.


  ‘그놈말·힘말(권력용어)·싸움말(전쟁용어)’인 한자로 적을 적에는 ‘부모(父母)’처럼 ‘아버지 + 어머니’일 텐데, 사이좋게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수수한 순이돌이가 주고받던 말로는 ‘어버이(어머니 + 아버지)’이다. 더구나 아이들은 ‘엄빠(엄마아빠)’처럼 언제나 엄마를 앞에 놓는다. 우리는 ‘어버이·어버이날’처럼 언제나 어머니(순이·여성)를 앞세운다. ‘부부’를 가리키는 우리말 ‘가시버시’도 순이(여성)를 앞세운다.


  무엇을 먹든 대수롭지는 않다. 어떤 눈길과 마음과 삶으로 먹느냐가 대수롭다. 풀밥은 먹지만 사랑이라는 마음이 없이 미움(혐오)만 가득하다면, 게다가 이 나라 흙길(농업)이 풀꽃나무를 마구 괴롭히고 짓밟으면서 피눈물을 짜내는 줄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온풀밥이건 아름풀밥이건 허울스러울 뿐이다.


  글쓰기를 하려면 우리말부터 익힐 노릇이다. 우리나라는 아주 오래도록 ‘엄마누리(모계사회)’였고, 이 엄마누리를 깬 ‘그놈들(권력자)’이 말도 글도 마음도 삶터도 마을도 망가뜨리면서 굴레를 씌우려고 했다. 그리고 ‘그놈들’에서 ‘그놈’은 ‘돌이(남성)’만 있지 않다. 힘을 거머쥐려는 무리가 그저 모두 ‘그놈’일 뿐이다.


  수수한 ‘풀’이라는 낱말이 왜 ‘풀’인지 생각해야 한다. ‘나무’와 ‘숲’이라는 낱말이 왜 ‘나무’와 ‘숲’인지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으니 휩쓸리고, 생각을 안 하니 서로 미워하며, 생각을 접으니 그만 외곬에 사로잡힌다.


  이 나라가 아름답기를 바란다면, 모든 민낯을 볼 노릇이다. 고기밥을 놓고서 여러모로 넘치는 굴레를 짚으려 한다면, 풀밥을 놓고도 온갖 수렁이 가득한 줄 나란히 짚으면서, 모든 굴레와 수렁을 싹 걷어낼 노릇이다.


  옳거나 바르다고 여길 길만 바라보지 말자. 아름길과 사랑길과 살림길과 숲길을 바라보자. 무엇보다도 이제는 좀 서울에서 떠나자. 서울에서 맴돌며 쳇바퀴를 돌기 때문에 글결에도 말결에도 ‘서울힘(서울권력)’이 너무나도 넘친다. 부디 우리 스스로 전라도 시골로 삶터를 옮기고, 경상도 시골로 삶자리를 옮기자. 경상도가 꼴통이라고 여기는 분이라면 경상도 시골로 씩씩하게 삶자리를 옮겨서, 경상도 시골을 새롭게 일구자. 전라도가 꼰대라고 여기는 분이라면 전라도 시골로 즐겁게 삶터를 옮겨서, 전라도 시골을 새롭게 가꾸자.


  서울에 깃들어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쥐면서 목소리만 내는 글은 덧없다. 오늘날 이 나라 구석구석이 어떻게 찌들고 물들고 앓는지를 지켜보지 않고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눈앞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쓰레질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서 글만 쓰려고 한다면, 새로 자라나고 태어날 아이들한테 참말로 창피한 일이다.


ㅅㄴㄹ


《날씨와 얼굴》(이슬아, 위고, 2023)


얼굴을 가진 우리는 가속화될 기후위기 앞에서 모두 운명공동체다

→ 얼굴이 있는 우리는 모두 휘몰아치는 벼락날씨를 겪어야 한다

→ 얼굴이 있는 우리는 모두 몰아치는 막날씨를 받아들여야 한다

7쪽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동물의 얼굴 또한 마주할 것이다

→ 사람뿐 아니라 사람 아닌 이웃얼굴도 마주한다

→ 사람얼굴과 짐승얼굴도 마주한다

7쪽


마음에 걸리는 얼굴들 때문에, 이 책은 쓰여졌다

→ 마음에 걸리는 얼굴 때문에 이 책을 썼다

→ 마음에 걸리는 얼굴이 있어서 이 책을 쓴다

7쪽


분명 어떤 얼굴들은 충분히 말해지지 않는다

→ 틀림없이 어떤 얼굴은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 참말로 어떤 얼굴은 잘 다루지 않는다

7쪽


나는 비밀 병기를 장전해주는 심정으로 미래 세대와의 글쓰기 수업을 시작한다

→ 나는 속힘을 채워 주는 마음으로 아이들하고 글쓰기를 익힌다

→ 나는 속빛을 챙겨 주려고 푸름이하고 글쓰기 자리를 연다

13쪽


나에게 비거니즘은 어떤 착취에 더 이상 일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동물과 인간이 관계 맺어온 방식을 개선하고 싶다는 의지다

→ 나는 온풀밥을 다짐하며 더는 어떻게도 빼앗지 않으면서, 짐승과 사람이 맺은 길을 바꾸고 싶다

→ 나는 온풀살이를 하며 더는 아무것도 들볶지 않으면서, 짐승과 사람이 맺은 얼거리를 고치고 싶다

16쪽


고기 먹기를 일단 멈춘 동지로서 당신을 기다리겠다

→ 고기를 이제 그만 먹는 그대를 기다린다

→ 아무튼 고기를 멈춘 이웃인 그대를 기다린다

19쪽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꼭 서로한테서 배울 수 있다

→ 우리는 늘 서로 가르칠 수 있다

19쪽


한 명의 돼지. 한 명의 소. 한 명의 닭

→ 돼지 하나. 소 하나. 닭 하나

→ 돼지. 소. 닭

43쪽


‘모부’라는 단어에도 힘을 싣고 싶다

→ ‘어버이’라는 말을 힘껏 쓰고 싶다

→ ‘엄빠’라는 낱말을 힘차게 쓰고 싶다

45쪽


누군가의 목숨을 나란히 생각할 때 우리가 쓰는 말도 새로워진다

→ 이웃 목숨을 나란히 살피면 우리가 쓰는 말도 다르다

→ 이웃을 나란히 헤아리면 우리가 쓰는 말부터 바꾼다

46쪽


내일이 올 것임을 안다

→ 다음날은 온다

→ 새날이 올 줄 안다

→ 새 하루가 온다

63쪽


열 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이 시대에 맞게 변주하고 전개했다

→ 열 가지 이야기를 오늘날에 맞게 추스르고 들려준다

→ 열 갈래 이야기를 요즈음에 맞게 가다듬고 내놓는다

77쪽


‘기다린다’라는 동사를 빼고 그의 도서 일대기를 설명할 수 있을까

→ ‘기다린다’라는 움씨를 빼고서 그이 책삶을 말할 수 있을까

→ ‘기다린다’라는 말을 빼고서 그이 책읽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93쪽


생애주기는 우리로 하여금 이토록 다양한 자리에 서게 한다

→ 우리는 삶에 따라 이토록 온갖 자리에 선다

→ 우리는 발걸음에 따라 이토록 여러 자리에 선다

116쪽


우리는 모두 어떤 사회적 신분 안에 있다

→ 우리는 모두 어떤 자리에 있다

→ 우리는 모두 어떤 높낮이에 선다

116쪽


사실 이 땅의 모든 소는 위급 상황에 처해 있다. 고기 혹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품종개량되고 사육되고 좁은 축사 안에 갇혀 살다가 도살된다. 어떤 소도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한다

→ 이 땅에서 모든 소는 아슬판이다. 고기나 소젖을 내놓아야 하기에 씨를 바꾸고, 좁은 우리에 갇혀 살다가 죽는다. 어떤 소도 제 목숨대로 살지 못한다

16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동사의 멸종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3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8.9.

까칠읽기 39


《어떤 동사의 멸종》

 한승태

 시대의창

 2024.6.17.



《어떤 동사의 멸종》(한승태, 시대의창, 2024)을 읽는 내내 《하얀 구름 외길》(조지 오웰/권자인 옮김, 행림각, 1990)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어떤 동사의 멸종》은 어쩐지 ‘조지 오웰’스러운 글이기를 바란 듯싶다. 다만, 아무리 보아도 ‘조지 오웰을 한글판으로 옮긴 일본말씨’스럽다.


조지 오웰이라는 분은 ‘밑바닥 일자리’에 스스럼없이 녹아들어서 함께 일하고 함께 쉬고 함께 살아낸 하루를 글로 옮겼다. 조지 오웰 님이 쓴 영어가 ‘어렵’거나 ‘먹물스럽’지 않았으리라. 글을 못 배운 사람이라면 조지 오웰 님이 쓴 글을 아예 못 읽을 수밖에 없지만, ‘조지 오웰이 쓴 글을 말로 들려주’면, ‘글을 모르는 누구라도 다 알아들을’ 만했으리라.


이와 달리 《어떤 동사의 멸종》은 ‘글을 모르는 일꾼’이 읽어내기에 대단히 빡빡하고 어렵고 뒤숭숭하다. 조지 오웰 님은 글멋을 부리거나 겉멋글을 쓰려고 밑바닥 이웃하고 함께 일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승태 씨는 ‘글로 멋을 부리는 길’로 나아가려고 이런저런 곁일(알바)을 했구나.


“어떤 동사의 멸종”은 무슨 뜻일까? 책이름도 이렇게 겉멋을 부려야 할까? 일본말씨하고 옮김말씨를 뒤섞은 책이름처럼,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온통 글치레로 넘실거린다. ‘일을 했’으나 ‘일하는 말씨’가 아니다. 일자리를 찾아서 몸을 기울였지만, 막상 ‘일말’이 아니다.


“사라지는 일”을 하면서 바라본 “사라지는 말”일 텐데, 돈을 버는 일자리에 앞서 집안일부터 해야 할 텐데 싶다. 집에서 밥살림을 차근차근 하고 나서야 ‘밥하는 일자리’를 맡아야 하지 않을까? 부엌칼질을 못 하는 사람은 없다. 안 하려고 하니 안 할 뿐이다. 어린이가 기나긴 해에 걸쳐서 어버이 곁에서 소꿉놀이를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알뜰하고 다부진 살림꾼으로 거듭나듯, ‘먹물글’이 아닌 ‘땀글’과 ‘일글’과 ‘살림글’을 쓸 수 있기를 빈다. 틀림없이 땀을 옴팡 쏟는 일을 했다지만, 글자락에 땀이 묻어나지는 않고, 먹물만 묻어난다. 글쓴이는 이곳저곳에서 땀을 잔뜩 쏟았구나 싶으나, 정작 땀빛을 이슬빛으로 풀어내는 빗방울빛으로 살리는 길을 아예 눈감거나 귀닫은 듯싶다.


《토지》를 남긴 박경리 님은 밭짓기를 그렇게 즐기셨지만, 막상 밭일을 하는 할매나 할배가 쓰는 시골말이나 흙말을 글에는 아예 안 썼다. 글을 몰라도 살림을 짓고 사랑을 나누고 삶을 일구는 수수한 사람들이 어떤 삶말과 살림말과 사랑말과 숲말을 지피는가를 눈여겨보거나 귀담아듣지 않을 적에는, 누구라도 글치레라는 굴레에 갇힌다. 더구나 36쪽 글줄은 뭔가? 돌고래가 어떤 바다이웃인지 참말로 몰라서 이런 허튼글을 쓰는가?


ㅅㄴㄹ


첨단 기술에는 사이드미러와 비슷한 성질이 있다

→ 눈부신 길은 옆거울과 비슷하다

→ 높은곳은 옆거을과 비슷하다

8


대신 나는 사라져가는 직업들의 비망록을 남겨 보려고 한다

→ 나는 사라져가는 일을 남겨 보려고 한다

→ 나는 사라져가는 일을 옮겨 보려고 한다

→ 나는 사라져가는 일을 적어 보려고 한다

10쪽


국민연금 개시연령인 65세 정도까지가 대다수인데

→ 나라꽃돈 받는나이인 65살쯤까지가 흔한데

20


돌고래와 비등비등한 두뇌의 한계로 괴로워하는 영혼들 앞에서 지적 능력을 과시하던 철없던 젊은이는

→ 머리가 안 돌아서 괴로워하는 넋 앞에서 똑똑하다고 자랑하는 철없는 젊은이는

36


이곳의 드레스 코드는 ‘이거 어제 입었던 건지 아무도 눈치 못 채겠지?’인 듯싶었다

→ 이곳 옷차림은 ‘어제 입은 줄 아무도 눈치 못 채겠지?’인 듯싶다

→ 이곳은 ‘어제 입은 줄 아무도 눈치 못 채겠지?’ 하는 차림새 같다

43쪽


갑자기 기억 속으로 파고들어 와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든다

→ 갑자기 떠올라 온몸이 부들부들한다

→ 갑자기 생각나 온몸을 떤다

→ 갑자기 되살아나 온몸이 타오르고 떤다

63


결코 자신의 문제일 수 없는 일을 자기 일처럼 대하길 요구하는 사람의 딜레마가

→ 내 일일 수 없는데 내 일처럼 여기길 바라니 엇갈리고

→ 내가 풀 수 없는데 내가 풀기를 바라니 힘들고

→ 내 짐이 아닌데 내가 지기를 바라니 막다르고

102쪽


밥벌이의 수단으로 친절을 사용해야 하는 일자리의 모든 것이 이 한 마디 속에 압축되어 있었다

→ 밥벌이를 하려면 착해야 한다는 뜻이 이 한 마디에 담겼다

→ 밥벌이를 하려면 사근사근해야 하는 얼개를 이 한 마디에 담았다

102쪽


물이 샌다. 줄줄 샌다. 누수漏水

→ 물이 샌다. 줄줄 샌다

133


묵언 수행 중이거나 수다쟁이거나

→ 말이 없거나 수다쟁이거나

→ 조용하거나 수다쟁이거나

141


상차 작업에 익숙해지면 고구려인 못지않은 축성의 대가가 될 것 같았다

→ 짐싣기가 익숙하면 고구려사람 못지않게 담을 잘 쌓을 듯했다

152


육체적으로도 하차보다 수월하지 않다

→ 내릴 때보다 수월하지 않다

→ 내리는 힘보다 수월하지 않다

152


하차 작업은 위에 있는 짐을 내려놓는 동작이 많지만

→ 내릴 적에는 위쪽 짐을 내려놓는 몸짓이지만

152


다른 평범한 일들이 에둘러 암시하고 마는 것

→ 다른 수수한 일로 에두르는 길

→ 다른 작은 일로 에두르는 길

160


필자에겐 이쑤시개만 한 면봉이 존재의 근원까지 박살 낼 수 있는 몽둥이처럼 보인 적이 있다

→ 이쑤시개만 한 솜막대가 나를 박살낼 수 있는 몽둥이처럼 보인 적이 있다

→ 이쑤시개만 한 솜대가 목숨을 박살낼 수 있는 몽둥이처럼 보인 적이 있다

181


1인분씩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 한그릇씩 하지 않기 때문에

193


사수가 없어서 아쉬운 점은, 좋게 말해도 예측 불가인 나 자신의 불, 칼 다루는 솜씨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감독이 없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 길잡이가 없으니, 불이나 칼을 못 다루는 나를 돌볼 사람이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 앞사람이 없으니, 불과 칼을 엉성히 다루는 나를 지켜볼 사람이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204


이제는 홀과 주방 사이의 비무장지대마저 사라져버렸다

→ 이제는 마루와 부엌 사이에 고요터마저 사라져버렸다

→ 이제는 마루와 부엌 사이에 아늑터마저 사라져버렸다

204


홀 직원의 분노에 찬 십자포화를 오롯이 받아내야 했다

→ 짜증난 마루일꾼이 퍼붓는 말을 오롯이 받아내야 했다

→ 마루지기가 활활 쏘아대는 말을 오롯이 받아내야 했다

204쪽


음식 쓰레기 처리 문제는 실제로 물리적 전투를 불러일으킬 뻔했다

→ 밥쓰레기를 누가 버리느냐 때문에 싸울 뻔했다

→ 밥쓰레기를 치우는 일로 주먹이 오갈 뻔했다

224


오랫동안 주방에서 함께 일하면 가족이 되거나 원수가 된다

→ 오랫동안 부엌에서 함께 일하면 한집안이거나 미워한다

225


웍을 불 쪽으로 살짝 기울여서는 불맛까지 입히는 것이 여지없는 고수의 솜씨였다

→ 우묵이를 불 쪽으로 살짝 기울여서는 불맛까지 입히니 대단하다

230


하지만 이 작업이 시종일관 형벌이기만 한 건 아니다

→ 그러나 이 일이 늘 힘들기만 하지는 않다

→ 그런데 이 일이 내내 고되지는 않다

302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고민을 하게끔 만드는 지점에 서게 하는 것이다

→ 사람들이 그곳을 생각하게끔 북돋아야 한다

→ 사람들이 그곳을 바라보게끔 이끌어야 한다

38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빛 에너지 마을에 놀러 오세요 - 에너지 자립 마을 이야기 귀를 기울이면
임정은 지음, 신슬기 그림 / 우리학교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8.6.

까칠읽기 34


《햇빛 에너지 마을에 놀러 오세요》

 임정은 글

 신슬기 그림

 우리학교

 2023.4.24.



《햇빛 에너지 마을에 놀러 오세요》(임정은·신슬기, 우리학교, 2023)를 읽었다. 책이름에 이미 줄거리가 드러난다. ‘햇볕판’이 나쁠 까닭은 없으나, 아무 곳에나 함부로 때려박거나 심는다면 얄궂을밖에 없는데, 이러한 말썽거리는 아예 안 들여다보는구나 싶다. 들숲바다를 아끼자는 뜻으로 펼치려는 ‘햇볕판’이어야 하지 않을까? 들숲을 싹 밀어대고서 잿더미(시멘트)를 듬뿍 깔아서 세우는 햇볕판으로 얻는 빛(전기)이 우리한테 무엇을 이바지할까? 깨끗바다(해상 국립공원)에 때려박은 햇볕판하고 바람개비(풍력발전시설)는 참말로 우리한테 어떻게 이바지할까? 햇볕판을 둘러싼 온갖 말썽거리를 모르쇠로 넘어간다면, 햇볕판으로 뒷돈을 두둑히 챙기는 벼슬꾼을 나무랄 줄 모른다면, 햇볕판을 왜 세워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라남도에 때려박은 햇볕판과 바람개비에서 얻은 빛을 전라남도에서 쓸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면서, 2024년부터 ‘바다밑 특특고압 송전고속도로’를 깐다면서 바다밑을 한참 까뒤집는다. 자그마치 8조 원을 들여서 전라남도부터 서울까지 바다밑으로 빛줄(송전선)을 잇는다는데, 8조 원 삽질로 끝날는지, 더 쏟아부어야 할는지 까마득하다.


《햇빛 에너지 마을에 놀러 오세요》는 “비건 제품을 사용하고, 무포장 제품을 사고, 텃밭을 가꿔서 채식을 생활화해요. 그리고 가장 좋은 방법은 재생 에너지를 쓰는 거예요.” 같은 목소리를 편다. 이 목소리가 나쁘지는 않지만, 너무 틀에 박혔고, 너무 뻔하다. 아니, 그냥그냥 서울살이를 이으면 될 뿐일까? ‘사서 쓰기’라는 쳇바퀴에서만 멈춘다면, “채식 생활화”만 외치기보다는, 이제는 새길과 다른길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텐데 싶다.


또한 글이 우리말스럽지 않다. 영어도 옮김말씨도 일본말씨도 넘친다. 푸른길을 바라보자는 뜻을 펴는 책이라면 더더욱 푸른말씨로 가다듬어야지 싶다. 푸르게 우거지는 숲을 사랑하려는 줄거리라면, 푸르게 빛나는 숲말을 살리는 얼거리로 짤 수 있기를 빈다. ‘어깻힘 빼기’하고 ‘나를 살리는 숲말’을 볼 수 있기를 빈다.


덧붙여, 책겉에 나오는 그림이 얄궂다. 담쟁이덩굴이 타고 오르는, 물결무늬를 이루는 지붕은 ‘슬레트(석면)’ 지붕인 줄 알까? 줄기를 이리저리 휘어 놓은, 마당 한켠에 자라며 우듬지에만 가지가 조금 남은 소나무는, 사람이 소나무를 모질게 괴롭힌 모습인 줄 알까? 소나무는 ‘솟다’라는 낱말하고 밑동이 같다. 곧게 솟는 나무요, 잎도 ‘송곳’처럼 가늘고 길게 솟듯 올라서 ‘솔’이다.


ㅅㄴㄹ


이야기를 시작하며 (4쪽) → 이야기를 열며 . 이야기를 풀며

살기 좋은 마을의 공통점은? (4쪽) → 살 만한 마을은? . 즐겁게 살 마을은?

햇빛이 에너지예요 (31쪽) → 해가 살려요 . 해가 북돋아요 . 해로 가꿔요

고기라고 불리는 동물 (73쪽) → 고기라고 하는 목숨

당신을 햇빛과 바람의 수호자로 임명합니다 (99쪽) → 그대를 햇빛과 바람 지킴이로 모십니다



한낮이 되도록 늦잠을 잔 거예요

→ 한낮이 되도록 늦잠이에요

→ 한낮이 되도록 잤어요

11쪽


피곤하기도 했지만 늦잠을 자도 괜찮은 날이거든요. 일요일이니까요

→ 고단하기도 했지만 늦잠도 즐거운 날이거든요. 해날이니까요

→ 지치기도 했지만 늦잠으로 느긋한 날이거든요. 해날이니까요

11쪽


이사를 잘 왔어. 산이 보이는 뷰라니!

→ 잘 옮겼어. 멧골이 보인다니!

→ 잘 왔어. 멧자락을 본다니!

11쪽


밖의 탁 트인 풍경이 참 좋았지요

→ 밖이 탁 트여 시원하지요

→ 밖이 탁 트여 시원시원하지요

13쪽


이사를 와서 좋은 점은 그뿐이 아니었어요

→ 옮겨서 여러모로 나아요

→ 새집은 이모저모 즐거워요

13쪽


직장과 가까워서 아침이 한결 여유로워졌답니다

→ 일터와 가까워서 아침이 한결 느긋하답니다

→ 일터와 가까워서 아침이 한결 넉넉하답니다

13쪽


어슬렁어슬렁 동네 구경을 다닐 거예요

→ 어슬렁어슬렁 마실을 다니려 합니다

→ 마을을 어슬렁어슬렁할 마음입니다

13쪽


저녁으로는 배달음식을 주문해 먹으면 되고요

→ 저녁은 시켜먹으면 되고요

→ 저녁은 시키면 되고요

13쪽


“출발!” 윤미 씨의 밝고 명쾌한 목소리가 힘차게 퍼져 나갔어요

→ “가자!” 윤미 씨는 밝고 시원하게 외쳐요

→ “간다!” 윤미 씨는 밝고 힘차게 외쳐요

14쪽


이 꽃은 처음 보는데? 너무 이쁘다

→ 이 꽃은 처음 보는데? 이쁘다

→ 이 꽃은 처음 보는데? 참 이쁘다

14쪽


아이의 당돌한 말투에

→ 아이 말씨가 다부져

→ 아이가 바라지게 말해

19쪽


두 사람은 굳게 악수를 나누었지요

→ 두 사람은 손을 꽉 잡았지요

→ 두 사람은 손을 힘껏 잡았지요

21쪽


서로 말도 편하게 하고, 그러니까 존댓말 안 쓰고 서로 말 놓는 거야

→ 서로 말도 가볍게 하고, 그러니까 높임말 안 쓰고 서로 말 놓자

→ 서로 말도 따스히 하고, 그러니까 높임말 없이 서로 말 놓자

21쪽


언니는 좋은 어른인 것 같아

→ 언니는 어른스러워

→ 언니는 참해 보여

→ 언니는 착한 사람 같아

22쪽


사람들 사이의 관계, 친숙함, 소속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말이에요

→ 사람들 사이, 마음, 자리에 따라 뜻이 다른 말이에요

2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숙론 - 어떻게 마주 앉아 대화할 것인가
최재천 지음 / 김영사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7.12.

까칠읽기 31


《숙론》

 최재천

 김영사

 2024.5.10.



요사이 들르는 마을책집마다 《숙론》(최재천, 김영사, 2024)이 어김없이 있기에, 틈틈이 조금씩 읽었다. 마을책집에서 읽을 적마다 책집지기님한테 “이 책 읽어 보셨나요?” 하고 여쭈는데, 먼저 읽고서 들인 분은 못 만났다. 그저 큰책집이건 작은책집이건 놓기만 하면 잘 팔린다고들 말씀한다. 꼭 한 곳에서만 책자취를 살폈는데, 첫판이 5월 10일이고, 넉벌을 5월 13일에 찍었다고 한다. 장난도 아니고 무슨 날마다 새로찍기를 하나?


많이 찍어서 널리 판다고 자랑하려는 작은 장난일 텐데, “토론討論에서 숙론熟論으로”라든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으려는 것이다”를 책날개에 넣기도 하는데, 엮은이도 글쓴이도 길을 잃고서 종잡지 못 하는구나 싶다. ‘숙론’은 ‘숙고’하고 결이 비슷하기는 하되, ‘토론’은 ‘토벌’하고 결이 비슷하다. 이미 나라와 배움터에서 ‘민주주의 = 자유 + 토론’으로 달달 외우며 길든 터전인데, 이 뿌리에서 오른 줄기와 가지와 숲을 어떡해야겠는가? 그저 삽차로 밀어서 서울(신도시)을 닦으면 될까? 요모조모 가지치기를 해서 보기좋게 쉼터(공원)로 꾸미면 될까?


‘토론 = 쳐내는 말’이고, ‘숙론 = 익히는 말’일 텐데, 이제부터 ‘익힘말’로 가려면 뭘 해야 할는지 제대로 짚을 노릇이다. ‘익힘말’로 나아가려면 ‘살림짓기’를 할 일이요, ‘살림 = 살리는 길과 빛과 손’이다. 다르게 말한다면, ‘살림 = 집안일’이다.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치울 뿐 아니라, 아기를 낳아서 돌보고 같이 놀고 소꿉하고 노래하면서 천천히 하루를 즐기는 길이 바로 ‘살림’이다.


말만 주고받는 대서 ‘익힘말(숙론)’로는 안 간다. 집안일부터 하고, 집에서 살림하는 어른으로 설 때라야 비로소 ‘익히는 말’이 피어나서, 서로 도란도란 마음을 나누고, 이 마음이 ‘이야기’로 깨어난다.


‘치다’는 ‘짐승치기’처럼 “먹이를 주어서 몸집을 불리다”로도 쓰되, ‘때리다’라는 말뜻이 바탕이고, ‘가지치기’처럼 ‘자르다’로도 쓴다. 때로는 “그렇게 치기로 한다”처럼 어느 결로 ‘보다’를 나타내는데, 이때에도 ‘쳐낸 바대로 본다’일 뿐이다. ‘치다·치우다’는 맞물린다. 말끔하게 없애려고 친다. ‘토론’이란, 저쪽하고 이쪽하고 그쪽이 불꽃이 튀도록 싸우고 부딪히고 다투면서 어느 하나만 말끔히 남도록 하는 일이다. 여러모로 보면, ‘민주주의’는 높고낮음이 따로 없이 모든 길이 서로 죽도록 싸우는 ‘자유’가 있는 셈이다. 마음껏 싸워서 끝까지 버티고 이기는 쪽을 따라가는 길이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선거는 ‘1등 뽑기’이다. 한 놈만 뽑아서 밀어주는 틀이다.


‘익히다’는 ‘잇다·있다·이다’하고 말밑이 같다. ‘읽다 = 일다 + 익다’이다. 물결이 일듯 새롭게 일으키면서 속으로 고이 맞아들여서 따뜻하게 깨우는 길이 ‘읽다’라는 낱말이 나타내는 참뜻이다. ‘잇다’는 ㅅ(사이시옷)이 깃드는 바대로 사이에 놓은 다리가 있어서, 어제하고 오늘이 만나는 목이면서 너랑 나를 하나로 삼는 길이다. ㅅ을 겹으로 붙이는 ㅆ인 ‘있다’는 ‘사이 + 사이 = 틈새’이니, 하늘과 땅 사이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터·자리·판·마당·마루’로 바꾸어서 그대로 머무는 결을 나타낸다. ‘이다’는 짐을 머리에 놓는 결이면서, ‘올리다’를 나타낸다. ㄱ을 받침으로 삼는 ‘익다’란 무엇이겠는가? ㄱ은 우리말에서 ‘길·가다’를 빗댄다. 머리에 놓아서 나아가는 길이 ‘익다’이니, 씨앗을 품고서 찬찬히 나아가서 속으로 가득한(찬) 삶을 만나는 결을 나타낸다고 할 만하다.


우리말 ‘이야기 = 잇는 말 = 잇는 길’이다. 우리말 ‘말’은 “마음을 담아낸 소리”이다. ‘이야기를 한다 = 말로 서로 잇는다 = 말을 나눈다 = 마음을 나눈다’인 얼거리이다. 이 얼거리를 모르거나 안 배웠다면, “이야기를 나눈다”처럼 겹말을 쓰고 만다. 이미 ‘이야기 = 나누는 말’인 줄 알아차리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이는 이야기를 못 한다.


‘말’은 얼마든지 혼자서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둘이나 여럿이 서로 오가야만 이룬다. 한쪽만 잔뜩 말을 쏟아내면 ‘이야기’가 아닌 ‘혼잣말’이다. 또는 ‘시킴말(심부름)’이다. 이야기라 할 적에는, 서로 고르게 말(마음)을 펴고 나누면서, 서로 고르게 말(마음)을 받아들이는 사이에, 서로 고르게 생각을 살찌우면서 새롭게 나아가려는 자리와 길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디에 이야기가 있는가? 바로 먼먼 옛날부터 ‘임금님·벼슬아치·글바치·나리’가 아닌, ‘흙을 일구고 아이를 낳아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순이돌이’한테서 이야기가 피어났고 자랐고 흘렀다. 요새는 ‘옛이야기’처럼 ‘옛-’을 앞에 붙이는데, 수수하게 흙살림을 짓던 순이돌이는 그저 ‘이야기’만 했다. 가르침도 배움도 아닌 그저 이야기이다.


수수한 순이돌이는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살림을 짓고 가다듬는다. 순이는 돌이를 가르치고, 돌이는 순이를 일깨운다. 순이는 돌이를 타이르고, 돌이는 순이를 돌아본다(돌본다). 이러는 사이에 둘은 사랑으로 아기를 낳는다. 순이는 아기를 배어 낳기까지 집안일을 못 한다. 돌이는 진작부터 온갖 집안일을 스스로 맡아야 하는 줄 깨닫고, 순이가 아기를 돌보고 젖을 물리는 사이 모든 집살림을 손수 해내되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맡아야 하는 줄 익힌다. 이리하여, 순이는 아이한테 삶과 살림과 사랑을 말과 노래와 이야기로 부드러이 들려주는 몫이다. 돌이는 순이와 아이가 즐겁게 보금자리를 누리면서 앞으로 철든 어른으로 피어나도록 모든 집안팎일을 맡을 뿐 아니라 살림을 알뜰살뜰 여미는 듬직한 일꾼으로 거듭나는 몫이다.


순이는 새 숨결을 몸에 품으면서 사랑을 깨닫고, 언제나 숲을 헤아리면서 앞으로도 온누리에 새 숨결이 푸르게 자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말에 얹어서 아이하고 돌이한테 이야기로 들려준다.


돌이는 오롯이 스스로 집안팎일을 도맡을 뿐 아니라, 웃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해내는 몸으로 거듭나야 하는 줄 알아채는데, 늘 아이가 저(돌이·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어깨너머로 구경하고 배우기에, 몸짓 하나조차 허투루 기울지 않도록 가다듬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면서 나아가야 하는 길을 알아본다. 돌이는 일하면서 일깨운 하루를 아이하고 순이한테 이야기로 들려준다.


《숙론》을 다시 짚어 본다. 못 쓴 책이 아니다만, 알맹이가 안 보인다. 이제 이 글쓴이쯤 되는 발자국하고 나이라면, 서울을 기꺼이 버리고서 시골로 갈 노릇이다. 유투브로 ‘말발’만 펴지 말고, 이제는 시골에서 들숲바다를 품으면서 조용히 두꺼비 노래를 듣고, 풀개구리 낮잠을 보고, 제비 날갯짓을 배우는 하루를 살아야 하지 않을까? ‘가르침teaching’이라든지 ‘학교school’라든지 ‘교육education’처럼 쓰는 글이란 얼마나 덧없는 자랑질인가? 이런 글쓰기는 일제강점기 글바치가 ‘가르치다敎授·訓戒’라든지 ‘학교學校’라든지 ‘교육敎育’이라 적는 글하고 뭐가 다른가?


우리말 ‘가르치다·배우다’나 ‘이야기·말·마음’은 임금님이 안 지었다.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흙살림을 짓고 집을 짓고 밥을 차리며 늘 노래하고 춤추던 수수한 순이돌이가 지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바라볼 곳은 ‘인문지식·교육’이 아닌, ‘시골·살림·숲·사랑’이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배움터에는 ‘성교육’만 있을 뿐 막상 ‘사랑’이 없다. 오늘날 이 나라에는 ‘친환경·환경운동’은 있되 정작 ‘숲’과 ‘풀꽃나무’가 없다.


온누리를 이은 모든 겨레와 나라에서도 매한가지인데, 글로 남은 자국만 들여다보면서 가라사대를 한다면 늘 쳇바퀴 서울잔치이다. 글을 모르고 붓과 종이를 쥔 일조차 없이, 오직 말로 마음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편 수수한 사람들이 일군 열매인 ‘철’을 바라보고 깨달을 적에 ‘눈’을 뜨면서 ‘살림’을 알아보겠지.


우리는 ‘이야기’를 하면 된다. ‘강의·강론·강좌’는 거의 혼잣말이다. ‘이야기’는 ‘나눔말’이다. 아이한테서 배우기에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두꺼비한테서 배우기에 이야기를 한다. 빗물한테서 배우니 이야기를 한다. 구름과 해와 별한테서 배우니 이야기를 한다. 다른 책에서 따오는 인문강연을 글쓴이 스스로 멈출 줄 안다면, 이제야말로 제대로 어떤 ‘책’을 쓰셔야 할는지 알아보겠지? 감투꾼(국회의원)한테 건넬 책은 쓰지 말고, 글쓴이 스스로 늘 되읽고 곱씹을 글을 먼저 말로 펴서 들숲바다 이웃숨결하고 이야기를 해보시기를 빈다.


누가 옳은지 그른지 찾아야 하지 않는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따져야 하지 않는다. 누구나 살림을 찾고, 사랑을 찾고, 숲을 찾고, 하루를 찾고, 마음을 찾아서, 이야기를 찾을 적에, 다 다르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다다르면서 생각을 담는 오늘로 다가가고 다가설 수 있다. 마음에 닿으려고 다스리기에 말을 담는다. 마음을 담는 말을 꾹 닫아건다면 담벼락만 높이 쌓겠지.


이야기란, 닫힌 담벼락을 살살 다독이면서 풀어내는 길이다. ‘토론·숙론’도 아닌, ‘교육·인문’도 아닌, 그저 ‘살림을 사랑으로 숲빛으로 짓는 사람’으로서 풀빛을 닮으려는 눈빛으로 다가온다면, 다 다른 사람이 이제는 닦달도 다그치기도 아닌, 부드러이 당기는 바람결로 가볍게 바다에 닻을 내리면서 사랑을 담뿍 길어올리는 샘물을 이루리라고 본다.


ㅅㄴㄹ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 세계에도 배움은 넘쳐난다. 그러나 가르침teaching은 거의 없거나 매우 드물다

→ 사람 말고 다른 숨붙이도 널리 배운다. 그러나 거의 안 가르치는 듯하다

7


일일이 설명하고instructing 지도하지coaching 않는다

→ 하나하나 풀이하고 이끌지 않는다

→ 하나씩 들려주고 앞장서지 않는다

8


우선 비교적 평평한 돌 위에 견과를 올려놓은 다음

→ 먼저 판판한 돌에 굳은알을 올려놓은 다음

→ 처음은 반반한 돌에 굳열매를 올려놓은 다음

8


이런 과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급기야 학교school를 만들었다

→ 이런 길을 더 알뜰히 열려고 바야흐로 배움터를 세운다

→ 이런 일을 더 알차게 하려고 드디어 배움터를 연다

9


체계적 가르침, 즉 교육education을 시작한 것이다

→ 차근차근 가르친다

→ 차곡차곡 가르친다

→ 찬찬히 가르친다

9


기어코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결기로 충만해

→ 끝내 저놈을 누르겠다면서

→ 꼭 저 녀석을 무찌르겠다면서

15


숙론은 상대를 제압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른지 숙고해 보고 자기 생각을 다듬으려고 하는 행위다

→ 익힘길은 저쪽을 누르려는 뜻이 아니라 저쪽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나와 저쪽이 다르게 보는지 살펴보고서 내 생각을 다듬으려는 일이다

→ 익힘꽃은 남을 누르려는 뜻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왜 나와 남이 다르게 보는지 헤아리고서 내 뜻을 다듬으려는 길이다

19


이 책의 집필을 2015년 무렵에 시작해 탈고를 거의 앞둔 시점에서 졸지에 《최재천의 공부》를 내게 되었다

→ 이 책을 2015년 무렵부터 써서 거의 마칠 무렵에 《최재천의 공부》를 얼결에 냈다

2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
율리우스 베르거 지음, 나성인 옮김 / 풍월당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7.12.

까칠읽기 18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

 율리우스 베르거

 나성인 옮김

 풍월당

 2021.11.10.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율리우스 베르거/나성인 옮김, 풍월당, 2021)는 ‘Tautropfen’을 옮겼다고 한다. 그런데 책이름이 뜬금없다. 옮긴이는 “작가의 의도를 우리 독자들에게 좀더 풀어 전달하기 위해 국역 제목”을 바꾸었다고 적는다. 글쓴이 뜻은 옮긴이가 잘 옮기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글쓴이가 수수하게 ‘이슬방울’이라고만 이름을 붙였고, 이 책이 태어난 이웃나라 엮음이와 펴냄이가 수수하게 붙인 뜻부터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곰곰이 보면, 우리나라는 갈수록 허울과 겉멋과 치레가 넘친다. 이슬을 ‘이슬’로 못 보고, 풀을 ‘풀’로 못 보고, 비를 ‘비’로 못 본다. 고스란히 보는 눈을 스스로 잊고, 그대로 읽는 마음을 스스로 잃고, 꾸밈없이 짓는 손길을 스스로 버리는 우리나라이다. 이런 나라인 줄 헤아린다면 책이름을 ‘이슬방울’처럼 수수하게 붙이면 안 어울리겠다고 여길 수 있다.


다만, 참빛을 잊고 잃다 못해 버리기까지 하는 우리나라이니, 더더욱 수수하게 이름을 차려야 알맞다고 느낀다. 참빛을 잃고서 허울에 갇힌 사람들한테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처럼 내려다보는 말씨로 나무란다면 거꾸로 더 쌀쌀맞으리라. 그리고 옮김말씨가 영 우리말씨가 아니다. 이슬은 독일에서도 이슬이고 프랑스에서도 이슬이고 일본에서 이슬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슬이다. 이와 달리, 이 나라에서 말빛은 차츰 사라지고, 말씨를 자꾸 뜬금없이 심을 뿐더러, 말결이 물결처럼 노래로 흐르던 숨결을 스스로 등돌린다고 느낀다.


밤과 새벽과 아침에 다 다른 이슬을 밤과 새벽과 아침에 늘 새롭게 맞이해 보기를 빈다. 겨울과 여름은 이슬빛이 다르고, 봄과 가을은 이슬맛이 다르다. 철빛을 읽고 물빛을 품고 살림빛을 안을 적에 비로소 우리말씨도 이웃말씨도 제대로 가르는 눈매를 가다듬으면서, 글이건 그림이건 빛꽃(사진)이건 집안일이건 바깥일이건 싱그럽고 맑게 추스르겠지.


#BergerJulius #Tautropfen


ㅅㄴㄹ


가끔씩 종이쪽지가 붙곤 했다

→ 가끔 종이쪽이 붙는다

→ 종이가 붙곤 한다

5쪽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

→ 이슬소리를 들어라

11쪽


독일어 원서의 제목 ‘Tautropfen’을 그대로 옮기면 ‘이슬방울’이 된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를 우리 독자들에게 좀더 풀어 전달하기 위해 국역 제목은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로 정했다

→ 독일판 ‘Tautropfen’을 그대로 옮기면 ‘이슬방울’이다. 그러나 글쓴이 뜻을 좀더 풀어서 들려주려고 한글판은 ‘이슬소리를 들어라’로 붙인다

12쪽


서른여섯 컷밖에 찍을 수 없는 아날로그 카메라가 있다

→ 서른여섯 칸밖에 찍을 수 없는 오랜 찰칵이가 있다

15쪽


이슬방울을 촬영하는 일은 내게 하나의 발견과도 같았다

→ 이슬방울을 찍을 때마다 새롭게 보았다

→ 이슬방울을 찍으며 새롭게 눈을 떴다

15쪽


내 인생에 내린 이슬방울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 적었다

→ 내 하루에 내린 이슬방울 이야기를 여기 적는다

→ 내 삶에 내린 이슬방울을 여기에 적는다

16쪽


때때로 인생에 각인되는 순간이 있다

→ 때때로 이 삶에 남는다

→ 우리 삶에 아로새기는 때가 있다

→ 문득 남는 때가 있다

22쪽


페스티벌이 끝난 뒤 나는 오래도록 품고 있던 계획을 추진하고 싶었다

→ 오래도록 품은 꿈을 한마당이 끝난 뒤에 펴고 싶었다

→ 오래도록 꿈꾸던 일을 잔치가 끝난 뒤에 벌이고 싶었다

23쪽


물론 우리는 날씨처럼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담소를 나눴다

→ 우리는 날씨처럼 흔한 이야기도 했다

→ 우리는 날씨 이야기도 가볍게 했다

26쪽


정신 지체를 지닌 우리 누나에 대해 소피아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 느림보 우리 누나인데 소피아는 유난히 마음을 기울였다

→ 소피아는 느린꽃 우리 누나를 눈여겨보았다

2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