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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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5.26.

까칠읽기 9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민음사

 2016.10.14.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2016)을 읽으면서 지나간 1982년을 떠올린다. 나는 이해에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 들어갔고, 윗내기인 1974년에 태어난 언니하고 1975년에 태어난 또래가 확 다를 뿐 아니라, 동생인 1976년 아이들도 훅 다른 줄 느꼈다.


  우리나라만큼 나라가 와장창 뒤엎히며 바뀌는 곳이 없다. 나나 언니는 한두 시간뿐 아니라 서너 시간쯤 가볍게 걷던 길이 어느덧 동생들한테는 ‘시내버스’로 차츰 바뀌고, 1982년에 태어난 까마득한 동생이 어린배움터에 들어갈 즈음에는 둘레에 ‘자가용’을 ‘프라이드’부터 장만하는 이웃이 조금씩 늘었다. 동생이 늘어날수록 ‘자가용 + 아파트’가 무섭도록 늘더니, 어느새 작은 골목집에서 사는 동생을 웬만해서는 못 만났다.


  우리 집 곁님은 1980년에 태어났고, 곁님 또래뿐 아니라 내 또래도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듯 ‘시내버스에서 타고내릴 적에 으스스한 사내나 아저씨’가 따라붙는 소름돋는 일을 겪었다. 그런데 이 일은 순이뿐 아니라 돌이도 똑같이 겪었다. 사람잡이(인신매매)와 양아치(깡패)는 순이만 가리지 않았다. 엉큼질(성추행)을 저지르는 놈은 순이돌이 모두한테 저지른다. 엉큼질을 겪은 돌이가 입꾹닫을 해서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다. 싸움터(군대)뿐 아니라 배움터와 마을과 여느 살림집에서도 ‘돌이를 괴롭히는 엉큼짓’이 숱하다.


  《82년생 김지영》은 얼핏 차분하게 잘 쓴 글 같으나, 곰곰이 새길수록 어쩐지 “이 나라에서 사내는 느긋하게 잘 살았잖아?” 하고 비웃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순이한테 아늑한 터전”이 아니기는 한데, “돌이한테도 나란히 아늑하지 않은 터전”이다. 힘꾼과 이름꾼과 돈꾼이 아니면 모든 순이돌이가 고단하고 괴롭고 다치고 아플 뿐 아니라 목숨까지 쉽게 빼앗기는 불수렁이라고 할 만하다.


  아무래도 순이와 돌이 삶길을 나란히 담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 그나마 ‘아픈순이’는 여러모로 멍울을 밝히거나 털어놓는 수다라도 하는데, ‘아픈돌이’는 오히려 웅크리면서 입을 꿰매고 마니까, 글님으로서는 ‘몰랐’을 수 있다. 1982년에 들어간 어린배움터에서 날마다 겪은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를 들자면, “선생님, 왜 남자만 더 세게 많이 때려요? 여자도 똑같이 세게 많이 때려 주세요!” 하고 외치는 동무가 꽤 있었다. 철없는 사내는 ‘학교폭력’이라는 대목을 깨닫고서 없애도록 힘쓰기보다는 “너희(순이)도 좀 똑같이 얻어터져 봐!” 하는 부아를 내기 일쑤였다.


  똑같이 숙제를 안 했거나, 지각·결석을 했거나, 돈(육성회비·방위성금·갖가지 회비)을 안 냈거나, 크리스마스실을 안 샀거나, 가을에 국화를 안 샀거나, 폐품을 안 냈거나, ‘학교에 내는 쌀’을 안 가져오면, 사내가 열 대를 맞을 적에 가시내는 한두 대를 맞거나 안 맞았다. 사내가 뺨을 맞으면 가시내는 손바닥을 맞거나 안 맞았다. 사내가 엉덩이와 허벅지에 밀대자루로 피멍이 들도록 맞으면 가시내는 종아리에 회초리를 맞거나 안 맞았다. 사내가 운동장 열 바퀴를 돌면 가시내는 운동장 한 바퀴를 돌거나 구경을 했다. 안 맞거나 구경을 하는 적잖은 가시내는 얻어터지거나 운동장을 도는 사내한테 혀를 내밀거나 놀리기 일쑤였다. 이러다 보니, 어린배움터 여섯 해 내내 순이돌이는 날마다 힘겨루기에 쌈박질이었다.


  1994년에 들어간 대학교에서 겪은 여러 일을 돌아본다. 똑같은 술자리를 마칠 즈음, 여학생은 선배들이 택시를 태워서 따로 한 사람씩 집에 보낸다. 남학생은 길바닥에서 한뎃잠을 이루거나, 동아리방이나 과방에서 덜덜 떨면서 서로 부둥켜안으며 새벽이 밝기를 기다렸다. 또는 밤을 새워 집까지 걸어갔다. 나는 처음에는 서울 이문동에서 인천 연수동까지 밤새워서 걷다가, 나중에는 그냥 한뎃잠을 이루면서 덜덜 떨다가 새벽 첫 전철로 집으로 얼른 돌아가서 옷만 갈아입고 다시 학교로 왔다.


  이 나라를 버티는 나라힘(국가권력)을 되새겨 본다. 나라(정부·기득권)는 자꾸 순이돌이가 서로 다투면서 스스로 갈라치기를 하라고 내모는구나 싶다. 왜 순이돌이가 다투거나 싸워야 하는가? 둘은 서로 다르게 짓밟히고 억눌리고 시달리고 들볶이면서, 서로 다르게 피멍이 들 뿐 아니라 목숨을 빼앗긴 동무와 언니와 동생이 있는, 서로 다르지만 나란히 아픈 사이 아닌가?


  누가 더 아프거나 고달팠다고 말할 일이란 없다. 서로 어떻게 달리 아프고 고달팠는지 흉허물없이 털어놓으면서 서로 토닥일 수 있는 길을 바라보고 열고 틔울 노릇이라고 본다.


  이곳뿐 아니라 이 별은, 딸한테도 아들한테도 서로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사랑으로 살림을 지을 터전으로 거듭날 노릇이어야지 싶다. 아줌마도 아저씨도 사이좋게 어울리면서 살림꾼으로서 새롭게 일어설 노릇이어야지 싶다.


  집안일은 누가 해야 할까? 나라일은 누가 맡아야 할까? 마을일은 누가 해야 할까? 이 별을 사랑하는 길은 뭘까? 집안일은 순이도 돌이도 함께 맡을 노릇이요, 둘 모두 “모든 집안일을 살뜰히 건사할 줄 알아야 한”다.


  《82년생 김지영》을 쓴 글님이 ‘새길’을 바라보려는 눈이었다면 줄거리나 글결이 아주 달랐으리라 본다. 1982년에도 2022년에도 ‘지영’이만 태어나지 않았고, ‘지영’은 순이한테뿐 아니라 돌이한테도 흔한 이름이다. “두 지영 씨”가 있는데, “따돌림받은 다른 지영 씨”를 너무 모르려 하거나 아예 등돌려 버린다면, 어깨동무가 없는 길이라면, 그곳에서는 ‘사랑’뿐 아니라 ‘기쁨’도 ‘즐거움’도 ‘살림’도 ‘꿈’도 ‘씨앗’도 없는, 오직 힘(권력)·돈(재산)·이름(명예)만 드날릴 뿐이다.


ㅅㄴㄹ


김지영 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 김지영 씨가 딸을 도맡는다

→ 김지영 씨가 딸을 혼자 돌본다

9쪽


이건 또 무슨 유체 이탈 화법이야

→ 아니 또 무슨 넋나간 말씨야

→ 또 무슨 얼나간 소리야

12쪽


어떻게 그런 끔찍한 주사가 있을까 새삼 몸서리를 쳤다

→ 어떻게 그리 끔찍히 술지랄일까 새삼 몸서리를 쳤다

→ 어떻게 그리 곤드레할까 새삼 몸서리를 쳤다

14쪽


거대한 빙하 위에 온 가족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 얼음장에 온집안이 앉은 듯했다

→ 얼음판에 온사람이 앉은 듯했다

17쪽


안 그래도 짧은 스커트를 최대한 걷어 올리고

→ 안 그래도 짧은 치마를 더 걷어올리고

35쪽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되짚어 봤지만

→ 그동안 있던 일을 얼른 되짚어 봤지만

→ 그동안을 훅 되짚어 봤지만

→ 여태 겪은 일을 휙 되짚어 봤지만

41쪽


오래된 주택을 조금씩 고치다 보니 재래식과 현대식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 오래된 집을 조금씩 고치다 보니 옛틀과 새틀이 섞였다

→ 오래된 집을 조금씩 고치다 보니 예스러우면서 새로웠다

48쪽


김지영 씨의 사정은 나은 편이었다

→ 김지영 씨는 낫다

→ 김지영 씨는 좀 낫다

64쪽


행인 한 명 지나가지 않았고

→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고

→ 한 사람도 안 지나갔고

67쪽


두 사람 사이에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남아 있던 어느 날

→ 두 사람 사이가 아직 쌀쌀하던 어느 날

→ 두 사람이 그대로 차갑던 어느 날

→ 둘이 아직 싸늘히 지내던 어느 날 

77쪽


어머니는 김지영 씨의 불안감을 단 한 마디로 잠재웠다

→ 어머니는 김지영 씨 걱정을 딱 한 마디로 잠재웠다

→ 어머니는 걱정하는 김지영씨를 한 마디로 잠재웠다

79쪽


고향에 내려가 1년만 돈을 벌겠다고 했다

→ 집에 가서 한 해만 돈을 벌겠다고 했다

85쪽


꽃이니 홍일점이니 하면서

→ 꽃이니 혼꽃이니 하면서

→ 꽃이니 홀꽃이니 하면서

91쪽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만

→ 술을 즐기지만

→ 술을 즐겨 마시지만

93쪽


귀를 살짝 덮는 길이의 단발머리를 하고

→ 귀를 살짝 덮는 머리를 하고

→ 귀밑머리를 하고

101쪽


대답 하나가 당락을 좌우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 말 하나로 붙거나 떨어지지 않는다고

→ 한마디 때문에 바뀌지는 않는다고

102쪽


정대현 씨의 말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 정대현 씨 말에 불끈하지 않고

→ 정대현 씨한테 바글대지 않고

137쪽


순진한 소리를 해서 그랬는지

→ 철없는 소리를 해서 그랬는지

→ 몰라서 그랬는지

160쪽


김지영 씨의 인생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 정도다

→ 김지영 씨가 살아온 날을 이쯤 추스를 수 있다

→ 김지영 씨가 보낸 나날을 이렇게 적어 본다

→ 김지영 씨 발자국을 얼추 이렇게 적어 본다

169쪽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 김지영 씨도 그러기를 바란다

→ 김지영 씨도 그러기를 빈다

174쪽


딸이 살아갈 세상은 제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되어야 하고, 될 거라 믿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딸이 살아갈 나라는 제가 살아온 나라보다 나은 곳이어야 하고, 나으리라 믿고, 낫도록 애씁니다

→ 딸이 살아갈 곳은 제가 살아온 곳보다 나아야 하고, 나으리라 믿고, 낫도록 힘씁니다

17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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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핸드메이드 2
소영 지음 / 비아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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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5.21.

까칠읽기 7


《오늘도 핸드메이드! 2》

 소영

 비아북

 2017.11.1.



《오늘도 핸드메이드! 2》(소영, 비아북, 2017)을 되읽었다. 손으로 짓는 살림길을 보여주는구나 싶어서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려고 했다가 그만두었는데, 다시 읽어 보아도 여러모로 아쉽다. 요새는 나이가 어리건 젊건 많건 우리말을 쓸 줄 모르거나 생각조차 없기 일쑤이지만, 뭔가 ‘손짓기’를 하는 사람은 유난히 ‘아트’로 여기면서 ‘핸드메이드’라는 허울을 붙든다. ‘손’으로 ‘지으’면서 ‘핸드’로 ‘메이드’한다고 쓰는 두동진 말씨를 너무나 못 느낀다. 손살림에는 손길이 닿아서 솜씨가 퍼지고 손빛이 반짝인다. 우리가 쓰는 수수한 낱말에도 말씨가 깃들어 말빛이 반짝이게 마련이다. 아무렇게나 손을 대면 망가지듯, 아무 낱말이나 닥치는 대로 쓸 적에는 말도 마음도 어긋난다. 마음하고 마음이 만나기를 바라는 손길이라면, 마음하고 마음을 잇는 말씨를 눈여겨볼 수 있기를 빈다.


ㅅㄴㄹ


+


동이가 옆에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생활이 됐는데

→ 동이가 옆에 있는 삶은 아주 마땅한데

→ 동이는 늘 옆에 있는데

7


개와 사람의 시간이 다름을 요즘 참 자주 느끼고 있습니다

→ 개와 사람이 다르게 살아가는 줄 요즘 참 자주 느낍니다

→ 개와 사람이 다른 줄 요즘 참 자주 느낍니다

7


내 동생의 노년이 조금 더 다채롭길 바라는 마음으로

→ 동생이 늘그막에 조금 더 넉넉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9


시작과 끝이 자연스럽게 만나야 되니

→ 처음과 끝이 부드럽게 만나야 하니

20


보다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한 입체 자수를 놓으려고 합니다

→ 더 또렷하게 담아낼 볼록 바늘땀을 놓으려고 합니다

45


‘헤데보’라고 불리는 이 자수법은 덴마크어로 ‘들판’이라는 뜻입니다

→ 이 바늘땀은 덴마크말로 ‘헤데보’이고 우리말로는 ‘들판’입니다

→ 이 ‘들판’ 무늬넣기를 덴마크에서 ‘헤데보’라 합니다

57


식탁 위에 헤데보 매트를 깔고 따뜻한 수프를 만듭니다

→ 밥자리에 들판깔개를 놓고서 국을 끓입니다

→ 자리에 들빛판을 깔고서 국물을 입니다

5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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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의 언어 - 《런던 리뷰 오브 북스》 편집장 메리케이 윌머스의 읽고 쓰는 삶
메리케이 윌머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돌베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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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5.21.

까칠읽기 8


《서평의 언어》

 메리케이 윌머스

 송섬별 옮김

 돌베개

 2022.6.30.



《서평의 언어》(메리케이 윌머스/송섬별 옮김, 돌베개, 2022)를 읽었다. “○○의 언어”는 무늬만 한글인 일본말씨이다. 우리는 니콘·캐논 같은 데에서 내놓는 찰칵이를 쓸 뿐, 우리 손으로 찰칵이를 내놓지는 못 하지만, “서평의 언어”라는 일본말이 아닌 “서평하는 말”이나 “책을 말하다”나 “책말”이나 “책을 읽는 말”이나 “책읽는 낱말”처럼 우리말을 쓸 수 있다. 애써 한글로 옮긴 글자락이되, 옮김말씨하고 일본말씨가 너무 춤춘다. 우리는 왜 우리말을 안 쓸까? 우리는 왜 우리말씨를 안 살필까? 일본이 바다에 더럼물(오염수)을 버리는 바보짓이 얼마나 사나운 줄 안다면, 미처 가다듬지 못 한 글결로 꾸러미를 여밀 적에 ‘생각을 짓는 길’하고 동떨어진 줄 느낄 만하지 않은가. 요새 다들 이런 일본말씨에 옮김말씨를 쓴다고도 여기는데, 이런 마음이라면 일본이나 중국이나 우리나라가 바다에 더럼물을 함부로 버리는 짓도 매한가지이다.


22쪽에 나오는 “내가 화가 나면 아이는 식량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으며, 위기에 처한 아이는 화가 났다”를 돌아본다. 어떤 엄마아빠가 이런 말을 쓰겠는가? “내가 성을 내면 아이는 굶고, 굶는 아이도 성이 난다”처럼 우리말을 헤아릴 수 있기를 빌 뿐이다.


ㅅㄴㄹ


내가 화가 나면 아이는 식량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으며, 위기에 처한 아이는 화가 났다. (22쪽)


이 책에는 “손이 깨끗하지 않을 때는 절대로 책을 만지지 마시오”, “책을 절대 바닥에 떨어뜨리지 마시오” 같은, 독학자를 위한 ‘책 사용 시 주의 사항’이 실려 있다. (한때 책이라는 것이 이렇게 존중받았단 사실을 상기할 수 있다는 면에서 좋다) (60쪽)


칭찬은 서평가들에게 무엇보다 어려운 과업이다. (100쪽)


#HumanRelationsandOtherDifficulties #Essays #MaryKayWilmers


+


원하는 만큼 모임을 갖지 못하다가

→ 바라는 만큼 모임을 못 하다가

→ 뜻하는 만큼 모이지 못 하다가

7쪽


지금보다 더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 요새보다 더 고갱이를 차지하였다

→ 요즘보다 더 큰몫을 차지하였다

→ 오늘날보다 더 기둥이었다

→ 오늘보다 더 알짬이었다

8쪽


그는 글쓰기에 지난한 노력과 에너지를 쏟았으며

→ 그는 글쓰기에 고되게 힘을 쏟았으며

→ 그는 고단할 만큼 글을 썼으며

→ 그는 고되도록 글을 썼으며

9쪽


단순히 책 한 권을 요약했다기보다 세상 전체를 통찰하는 것이리라

→ 그저 책 하나를 간추렸다기보다 온누리를 아울렀다

→ 그냥 책 한 자락을 추렸다기보다 온넋을 헤아렸다

11쪽


대상에 양가적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없었더라면

13


출산이란 이처럼 축하받고 싶은 소망이 상식을 압도해 버리는 함정으로 가득한 일이다

19


설상가상인 것은 좋은 어머니처럼 행동한다 해도 결코 충분치 않다는 점인데

20


발기부전에 대해 가진 공포에 그토록 공감했던 적이 없었다

21


내가 화가 나면 아이는 식량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으며, 위기에 처한 아이는 화가 났다

→ 내가 성을 내면 아이는 굶고, 굶는 아이도 성이 난다

→ 내가 이글거리면 아이는 쫄쫄 굶고, 아이도 이글거린다

→ 내가 짜증내면 아이는 굶어야 하고, 아이도 짜증난다

22쪽


여든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

→ 여든넷에 떠났으니

→ 여든넷에 이 땅을 떠났으니

25쪽


과한 표현을 쓰면서도

→ 부풀리면서도

→ 추켜세우면서도

28


부고는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하는 취미마저도 등한시해 온 듯한데, 이 또한 아비규환 때문일지 모르겠다

33


대체로 어떤 업이 가진 광휘를 한층 더 빛내주기 위해 쓰인다

38


배럿의 지휘 아래

→ 배럿이 이끌어

→ 배럿이 꾸려서

53


초판 복각본을 발행했다

59


사건은 특정 단어, 특히 도덕과 예의범절에 관한 단어의 의미가 세월이 흐르면서 꾸준한 사용을 통해 고착화된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59


편찬자의 즐거움은 어디에나 묻어 있다

→ 엮은이는 어디서나 즐거웠다

→ 엮은 내내 즐거운 듯하다

67쪽


이런 의견들 가운데 딱히 시류에 맞는 것은 없었고

70


잠깐 부끄럽고 말 수준이 아니라 영원한 고갈을 불러일읔는 종류의 빈곤함을 지닌 졸작이다

86


위 인용문 속 괄호는

→ 이 글에서 묶음은

→ 여기에서 묶음칸은

90


혼란에 빠진 작가가 핍진성을 부정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91


칭찬의 어휘는 한정되어 있기에 같은 표현이 주야장천 등장하지만

100

101


동료들이 큰 자각 없이 사용하는 클리셰를 피하고자 선택하는 표현들 역시 금세 또 하나의 클리셰가 된다

101


정부를 두는 것은 말을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유한 이들은 할 수 있으나

→ 딴님을 두려면 말을 두듯, 돈있는 이는 할 수 있으나

→ 뒷님을 두자면 말을 두듯, 돈이 있으면 할 수 있으나

203


그들이 원하는 사회적 성공이라면 물론 오로지 돈으로만 거머쥘 수 있는 종류의 성공이고

209


명성은 순식간에 쏟아지듯 밀려왔다

→ 이름값은 확 생겼다

→ 이름은 갑자기 치솟았다

38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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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 제네릭 로맨스 2 - S코믹스 S코믹스
마유즈키 준 지음, 김현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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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만화책 2024.5.19.

까칠읽기 6


《구룡 제네릭 로맨스 2》

 마유즈키 준

 김현주 옮김

 소미미디어

 2021.10.6.



《구룡 제네릭 로맨스 2》(마유즈키 준/김현주 옮김, 소미미디어, 2021)을 읽은 지 한참 지났다. 첫걸음을 읽으면서 굳이 두걸음을 읽어야 할까 여겼으나, 두걸음을 읽었고, 석걸음부터는 애써 더 읽지 말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다. 못 그린 줄거리는 아니라고 본다만, 이제 사라진 홍콩 ‘구룡성’을 그리고픈 마음에 기대어 얼기설기 짜맞추는 틀이 썩 와닿지 않았다. 그림님은 개미굴에서 살아 보았을까? 꼭 살아 보았어야 그림으로 담아야 하지 않을 테고, 살아 보았더라도 누구나 다르게 바라보고 담아내겠지. 큰소리뿐 아니라 작은소리마저 위밑옆에서 끝없이 스미는 다닥집은 ‘만화하고 다르’다. 어쩌면 구룡성 같은 다닥집살이야말로 ‘만화 같다’고 할 수 있겠지.


ㅅㄴㄹ


#九龍ジェネリックロマンス #眉月じゅん


가게 개척은 당신 혼자 마음대로

→ 가게찾기는 그대 혼자 마음대로

→ 가게둟기는 너 혼자 마음대로

8


섣불리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도 납득이 되지

→ 섣불리 곧이 말하지 않을 만하지

→ 섣불리 속내를 말하지 않을 만하지

51


자연스럽게 레이코가 각성하는 걸 기다리는 편이 좋지

→ 부드럽게 레이코가 깨어나기를 기다리지

→ 가만히 레이코가 눈뜨기를 기다려야지

51


그럼 나안으로만 검사하겠습니다

→ 그럼 맨눈으로만 보겠습니다

87


안티에이징은 여러 코스가 있네

→ 안늙기는 여러 길이 있네

→ 젊음길은 여러 갈래가 있네

→ 

14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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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아빠를 위한 매뉴얼
예신형 지음 / 부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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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책넋·책살림 2024.5.14.

까칠읽기 5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아빠를 위한 메뉴얼》

 예신형

 부키

 2019.4.22.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아빠를 위한 메뉴얼》(예신형, 부키, 2019)이라는 책은 이름부터 눈을 끈다. 덥석 집어서 읽는다. 그런데 첫 대목부터 쓸쓸하다. 글쓴이는 “아빠가 자전거를 찾아올” 테니 “딸은 그저 타려고 하면 된다”고 말한다. 첫머리부터 잘못 꿰는구나. 자전거는 아빠(남성) 혼자 찾아올 살림이 아니다. 저잣마실을 갈 적에 엄마(여성)처럼 꼼꼼하게 이모저모 살피고 따지고 견주면서 헤아려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덥석 살 자전거가 아니다. 몇 날 며칠뿐 아니라, 달포나 한두 해에 걸쳐서 “어떤 자전거를 살까?” 하고 함께 알아볼 노릇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전거를 빌려서 타기”부터 할 일이고, 빌려서 타 보는 동안에 “아이 몸과 마음에 맞는 자전거를 바로 아이부터 스스로 알아야 하고, 곁에서 어버이도 나란히 알아차려야 한”다. 또한 이 책은 ‘사서 쓰기(소비)’에서 그쳤다. 아무래도 글쓴이와 딸아이와 곁님은 ‘서울(도시)’에서만 살아갈 듯하니, ‘착하고 슬기로운 도시 소비자’라는 길을 살피는구나 싶은데, ‘도시 소비자’가 아닌 ‘사람’이라는 눈으로 볼 노릇이라고 느낀다. 이 책에 한 줄로조차 안 나오지만, 자동차를 장만하려면 ‘자동차 기본정비’도 익힐 노릇이다. 옷을 장만하려면 ‘옷 빨래와 손질’도 익혀야 하지 않나? 빨래틀(세탁기)을 장만해 놓고서 ‘빨래틀 돌리기’뿐 아니라, ‘세탁기 기본정비·청소’를 안 익힌다면 어찌 되겠는가? ‘배롱빛 바지’를 사서 입다가 찢어지면 버리나? 바느질을 익혀서 찢긴 데를 기워야 하겠지? 그러니까, “자전거 타기”에 반드시 뒤따를 여럿 가운데 하나로 “자전거 손질(정비)과 닦기(청소)”가 있는데, 이 책에는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전거 손질과 닦기”는 아예 못 쳐다본다. 글쓴이는 자전거를 새로 샀는지 궁금한데, 모든 새 자전거에는 “자전거 길잡이책”이 딸려 나온다. 5만 원짜리이든 100만 원이나 1000만 원짜리이든 “자전거 회사에서 짜맞추어 파는 모든 자전거”에는 “자전거 길잡이책”이 붙어서 나오고, 이 길잡이책을 읽으면 누구나 집에서 가볍게 손질하는 길을 비롯해서, 안장과 손잡이 높이 맞추기라든지, 기본 교통 법규·지식과 안전장구 이야기도 꽤 꼼꼼하게 나온다. 이밖에 안타깝고 아쉬운 대목이 철철 넘치지만, 더 말하지는 않기로 한다. 부디 글쓴이가 스스로 깨닫기를 빈다. 자전거는 딸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들아이한테도 어떻게 타야 ‘사람다운지’ 짚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페달을 마구 밟아” 주면 된다고 9쪽에 적는데, 발판을 마구 밟으면 자전거는 비틀거리다가 콱 넘어지거나 자빠지거나 다른 자전거를 처박고 만다. 자전거를 제대로 타려면, 발판을 부드럽고 가볍게 밀고 당겨야 한다. 삿대를 젓듯 천천히 바람을 타면서 슬슬 밟기에 자전거가 바람을 부드러이 가르면서 알맞고 아름답게 나아간다.


ㅅㄴㄹ


아빠가 자전거를 구해 올게. 너는 ‘자전거 타기’만 시작하면 돼

→ 아빠가 두바퀴를 찾아올게. 너는 ‘두바퀴 타기’만 하면 돼

→ 아빠가 두바퀴를 사올게. 너는 ‘두바퀴 타기’만 해보면 돼

8


출발시킨 뒤에, 다른 발을 맞은편 페달에 얹고 마구 밟아 주면 돼

→ 굴린 뒤에, 다른 발을 맞은쪽 발판에 얹고 부드럽게 밟으면 돼

9


그건 확실히 정상이 아니지

→ 참말로 엉터리이지

→ 아주 얄궂지

→ 몹시 어긋났지

11


배 나온 중년의 아저씨가 딱 붙는 핑크색 바지라니

→ 배 나온 아저씨가 딱 붙는 배롱빛 바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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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여자다움이라는 허상을 좇아

→ 막상 있지도 않는 순이다움이라는 허깨비를 좇아

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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